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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뜰
탁현규 지음 / 안그라픽스 / 2017년 3월
평점 :
사임당, 초충도에 담은 예술가의 삶
뜰이라는 곳은 집 안의 앞뒤나 좌우로 가까이 딸려 있는 빈터로 화초나 나무를 가꾸기도 하고, 푸성귀 따위를 심기도 하는 곳이다. 이 뜰이라는 말은 생활환경의 변화로 인해 이제 점점 생소한 말이 되어간다. 하여 뜰에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삶의 모습도 잊혀지기 마련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뜰을 가꾸며 그 안에 함께 살고 있는 다양한 식물들과 엮어가는 일상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뜰은 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의 범주에서 당연히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뜰은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것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대를 살았던 여성들에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공간이었으며 당시 세상과 만나는 몇 안되는 통로였을 것이다. 이 특별한 공간에 함께했던 다양한 생명들을 화폭에 옮겨놓은 이가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유명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이다.
간송미술관의 연구원으로 옛 그림들을 소개하는 '그림소담', '고화정담' 등으로 만났던 탁현규의 신간‘사임당의 뜰’은 바로 사임당이 머물렀던 공간인 뜰에서 마주한 생명들을 중심으로 화폭에 옮겼을 것이라는 추정되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해방 후 시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현모양처'라는 다분히 의도적인 이미지에 가려진 예술가 사임당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 ‘사임당의 뜰’에는 간송미술관 소장 ‘묵포도’, ‘쏘가리’를 비롯하여 간송미술관 소장 ‘사임당초충화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사임당필초충도’, 오죽헌시립박물관 소장 ‘신사임당초충도병’ 등에 실린 달개비와 추규, 민들레와 땅꽈리, 맨드라미와 도라지, 오이와 개미취, 가지와 땅딸기, 원추리와 패랭이, 양귀비와 호랑나비, 수박과 들쥐, 워추리와 벌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사임당의 첫째딸 매창의 화첩에서 월매도, 신죽쌍작, 월야노안, 화간쟁명 등의 화조도 작품은 상림당과는 다른 의미에서 함께 살펴 '여성 예술가 사임당'에 한층 더 폭넓은 시각으로 주목하고 있다.
익숙하여 친근하고 규격화된 그림 속에 때론 어색한 그림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살아있는 것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작품 속 등장하는 주인공들로 역사 속 갇힌 박제화된 이미지를 벗어나 지금이나 별다른 차이를 가지지 않은 친근한 예술가를 바라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더불어 저자의 기획의도가 확실히 보이는 ‘함께 이야기 나누며’에서는 역사 속 인물 사임당에게 궁금했으나 물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매창, 율곡, 사임당과의 대화를 통해서 ‘어머니’와 ‘여성 예술가 사임당’을 소개하는 부분이 이채롭다.
사임당이 남긴 화첩 속 그림에 등장하는 다양한 식물과 곤충 등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서 담긴 의미뿐 아니라 사임당이 살았던 당시의 뜰을 상상해보는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일상에서 익숙하게 만날 수 있었던 식물과 곤충 등으로 사임당이 전하는 생명의 메시지를 통해 보다 넓은 시각으로 사임당의 삶을 조명하는 기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