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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쏟아지던 비가 그쳤다. 하늘에선 연신 비행기가 연신 환영 퍼레이드를 펼치고 그 사이에 간혹 나오는 볕이 반갑다.

현玄.
"검다ㆍ적흑색ㆍ하늘빛ㆍ아득히 멂" 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 더 넓고 깊은 무엇을 공유하는 색이라고 이해한다. 단어가 뜻하는 의미는 사뭇 더 넓고 깊다.

제주 현무암 위에 생명의 세상이 펼쳐진다. 시선의 높이는 마음에 틈을 가진 이들의 넓고 깊은 창의 다른 표현이다. 보이는대로 담는다지만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볼 뿐이다.

현玄, 검지만 탁하지 않음이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과 다르지 않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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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좋다'
거칠것 없이 쏟아내던 하늘도 쉴 틈은 있어야 한다는듯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더니 밤사이 남은 숨을 내놓는다. 얼굴을 스치는 는개는 차갑다. 밤을 길게 건너온 때문이리라.

짠물을 건너 검은 돌 틈 사이에서 만난 벌노랑이다. 각지에서 모인 각양각색의 벗들이 제각기 모습대로 서성대는 시간. 좋은 벗을 곁에 두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이 이 꽃과 서로 다르지 않다.

'그냥'이라는 말이 가진 힘은 이처럼 여유로움과 자연스러움에 있다. 그렇게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그것이 '그냥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냥'이라는 이 느낌은 그냥 오지는 않는다. 관심, 애씀, 견딤, 기쁨, 성냄, 울음, 외로움, 고독 등ᆢ수없이 많은 감정의 파고를 건너고 나서야 얻어지는 마음 상태다. 기꺼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길을 가면서 얻어지는 뿌듯함과도 다르지 않다.

그냥 그렇게,
그대를 향하는 내 마음도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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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긴밤을 건너오는 동안 손을 놓았으리라. 여전히 색과 모양 온전함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아 그 마지막이 수월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무엇이든 통째로 내어놓는 일은 이와같이 주저함도 막힘도 없이 수월해야 하는 것, 맺힌 것도 남은 것도 없이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일과 다르지 않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난리도 아니다. 이제 초복 지났으니 여름의 시작이나 다름없다. 찌는 듯이 더워야 키와 품을 키워야 하는 곡식과 열매 맺어 영글어가는 과수들에게 지극히 필요한 때이다.

나무 그늘에 들어 간혹 부는 건들바람이 그토록 시원한 것도 다 이글거리는 태양 덕분임을 안다. 꽃이 절정에 이르러 통째로 내어놓는 것처럼 모름지기 여름은 더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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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其所友 관기소우
觀其所爲友 관기소위우
亦觀其所不友 역관기소불우
吾之所以友也 오지소이우야

그가 누구를 벗하는지 살펴보고,
누구의 벗이 되는지 살펴보며,
또한 누구와 벗하지 않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바로 내가 벗을 사귀는 방법이다.

*이 글은 담헌(湛軒) 홍대용(1731~1783)이 중국에 들어가 사귄 세명의 벗인 엄성, 반정균, 육비와의 만남을 기록한 글 '회우록'을 지어 연암 박지원에게 부탁한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홍대용과 이 세사람의 우정은 당시 널리 알려진 것으로 대를 이어 이어지며 사람 사귐의 도리로 회자되었다.

한동안 자발적으로 사회적 격리를 택했다. 극히 제한적인 사람들만 만났고 무엇을 하든 혼자할 수 있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 시간이 편하고 좋았다. 큰 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이 벽에 틈을 내도록 한 것이 꽃이었다. 꽃을 보러다니다 보니 어느새 꽃같은 사람들 틈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흰머리가 늘어나면서 일상에 많은 이들이 꼭 필요한가라는 의문은 여전한 화두 중 하나다. 몸도 마음도 쇠락해지는 과정이니 많은 곳에 에너지를 쏟아부을 여력이 없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집중해 스스로를 다독여야 할 때라는 것이 그 이유다.

벗의 사귐도 이와 다르지 않다. 좋은 벗에 집중하여 마음 나눔이 주는 위로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사귐에 신중할 수밖에 없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틈이 없다.

노각나무에 꽃이 피었다. 순한 색감, 곱고 단아한 모습에 필히 찾아보는 꽃이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주목받는 이유는 스스로가 갖춘 내면의 충만함에 있을 것이다. 매번 찾아 마음에 담는 나는 이 꽃을 '벗'으로 받아들였다.

담헌과 연암, 그 벗들의 사귐은 나의 오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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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걸음 하시는 이들을 위해 들고나는 길목에다 두었다. 가녀린 줄기 하나가 담장을 타고 오르더니 제법 튼실해지면서 몇해를 지나는 동안 어느해 보다 풍성하다.

"가슴을 물어라. 뜯어내면 철철 피흘리는
천근 사랑 같은 것"

*김명인의 시 '저 능소화'의 일부다. 속내를 숨기지 않고 하늘을 보는 능소화는 지고 나서야 시든다. 담장을 넘어서 피어야 제 맛인데 그 모습을 그려낸 시 중에서 종종 찾아본다.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 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이원규의 시 '능소화'의 일부다. 담을 넘어서 피어야 제 맛이라 했지만 대놓고 들이대면 능소화가 아니다. 담을 넘는 당돌함은 있지만 동시에 수줍음이 있어야 더 간절한 법이다.

무지막지하게 쏟아붓는 비로 하루를 연다. 능소화 피고지는 동안 여름은 그 열기를 담아 열매를 키워갈 것이다. 덩달아 나도 여물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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