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情,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우문愚問에 현답을 기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저 묵묵히 바라다 볼 뿐이다.

마주하는 눈에 담긴 뜻情이 가득하다. 만든이의 마음이나 뜰에 들인이의 마음에 보는 이의 마음이 더하여 온기가 스며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천개의 향나무, 열개의 목서가 특유의 향기로 울타리를 만들었으니 情이 새록새록 깊어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염화시중의 미소가 번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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爲人賦嶺花 위인부령화

毋將一紅字 무장일홍자
泛稱滿眼花 범칭만안화
花鬚有多少 화수유다소
細心一看過 세심일간과

고개 위의 꽃

‘홍(紅)’자 한 글자만을 가지고
널리 눈에 가득 찬 꽃을 일컫지 말라
꽃 수염도 많고 적음이 있으니
세심하게 하나하나 살펴보게나

*조선 사람 박제가(朴齊家 1750~1815)의 시 爲人賦嶺花 위인부령화다. 실학자이자 문인. 호는 초정楚亭. 본관은 밀양이다.

붉은 빛을 띤 꽃을 보면 쉽사리 붉은 꽃이라고만 말한다. 그렇지만 그 붉은 빛깔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붉기의 정도, 꽃잎의 모양과 꽃술의 생김새, 서로의 조화로움 등 하나하나 빼놓지 않고 자세히 보면 분명 남들과는 다른 무엇을 보게 된다. 그렇게 만난 꽃은 내 마음에 비로소 꽃으로 피어나 특유의 향기를 발한다.

석회질 성분이 많은 바위에 피는 병아리풀이다. 전체 크기도 작아 꽃은 눈을 크게 떠야 겨우 보일 정도다. 이 작은 꽃에도 갖출 건 다 갖추고 있고 더욱 선명한 색까지 품고 있다. 스스로를 돋보여 스스로의 가치를 더 빛내고 있는 것이다.

볕의 까실함이 좋은 휴일 오후, 섬진강에서 한가로움을 누리며 지난 여름 마음에 품은 꽃을 꺼내 들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제 각기 가을로 질주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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莫笞牛行 막태우행

소를 매질하지 마라, 소는 불쌍하니
아무리 네 소지만 꼭 때려야 되느냐?
소가 네게 무엇을 저버렸다고
걸핏하면 소를 꾸짖는 거냐
무거운 짐 지고 만 리 길을 다녀
네 어깨 뻐근함을 대신해 주고
숨을 헐떡이며 넓은 밭을 갈아
너의 배를 불려준다
이만해도 네게 주는 게 많은데
너는 또 걸핏하면 올라타는구나
너는 피리 불며 희희낙락하다가도
소가 힘들어 천천히 가면
꾸물댄다고 또 꾸짖어 대며
몇 번이고 매질을 하지
소질 매질하지 마라, 소는 불쌍하니
하루아침에 소가 죽는다면 넌들 살 수 있겠느냐?
소 치는 아이야 넌 참 어리석다
소의 몸이 무쇠가 아닌데 어찌 배겨 내겠느냐?

*고려사람 이규보 시 막태우행이다. 농경사회에서 소의 존재가 어떨지는 짐작되는 바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을 넘어선 무엇을 본다.

그림은 김홍도의 기우취적이다. 예로부터 우리음악에 쓰이는 악기 중 가로로 부는 것을 적笛이라 쓰는 저라 읽었다. 이규보의 막태우행에 등장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이미지이긴 하지만 소 등에 올라 이 악기를 부는 모습을 상상만으로도 운치 있어 보인다.

땡볕의 여름날 내리는 소나기를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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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등선羽化登仙
입추立秋라 그런걸까. 습기를 덜어낸 땡볕에선 잘 말라가는 풀 냄새가 난다. 뽀송뽀송하면서도 부서지진 않을 적당한 까실거림이 이 느낌과 비슷할까.

소동파가 유배지 황주에서 쓴 적벽부에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이라는 말이 나온다.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른다는 이야기 속 모델이 바로 매미다.

중국 진나라 시인 육운陸雲은 한선부寒蟬賦에서 매미는 5가지 덕을 갖춘 익충益蟲이라고 평가했다.

학식文, 청결淸, 청렴廉, 검소儉, 신의信

머리에 관대가 있으니 문文이고,
이슬만 먹으니 청결淸하고,
곡식에 피해를 끼치지 않으니 청렴廉하고,
집 없이 사니 검소儉하고,
때를 맞춰 나타나니 신의信를 안다.

그래서 옛날 임금님들은 매미의 오덕처럼 선정을 펼치라는 의미로 매미의 투명한 날개를 형상화한 익선관翼善冠을 썼다고 한다.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간혹 부는 바람이 전하는 가을의 냄새를 놓치지는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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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을 사랑함에 대하여'
물과 땅에서 나는 꽃 중에는 사랑스러운 것이 매우 많다. 진나라의 도연명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이씨의 당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은 모란을 몹시 사랑했으나 나는 홀로 연꽃을 사랑한다.

진흙 속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고
맑은 물 잔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으되 밖은 곧아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도 없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우뚝 깨끗하게 서 있으니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되 함부로 다룰 수는 없다.
나는 말하겠다.
국화는 꽃 중의 은일자요.
모란은 꽃 중의 부귀한 자요.
연은 꽃 중의 군자라고.
아!
국화에 대한 사랑은 도연명 이후에는 들은 적이 드물고 연꽃에 대한 사랑은 나와 같은 이가 몇 사람인고 모란에 대한 사랑은 많을 것이 당연하리라.

*중국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周敦頤(1017~1073)의 애련설愛蓮說이다. 연꽃이 절정인 때다. 연못에 연을 심어두고 꽃 피기를 기다리는 마음이나 불볕 더위에도 연꽃을 보러가는 이들은 알까. 주돈이의 이 애련설로 출발하여 연꽃을 향한 마음들이 고귀해졌다는 것을.

김소월의 진달래, 김영랑의 모란, 이효석의 매밀꽃, 김유정의 동백(생강나무), 도종환의 접시꽃ᆢ등. 그 사람이 있어 꽃이 있는 듯 특정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졌다. 한사람의 칭송이 그렇게 만든 시초이나 뭇사람들의 암묵적 동의가 따라붙어 형성된 이미지리라.

꽃따라 사계절을 주유하는 마음 한가운데 특정한 꽃을 놓아두고 시시때때로 떠올리며 정취를 누리는 마음이 행복이다. 무슨 꽃이면 어떠랴, 향기와 모양, 색으로 들어와 은근하게 피어날 꽃이면 그만이다. 주돈이의 연꽃보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름 한복판이다. 더위는 이때다 하고 절정일 것이나 염덕炎德을 생각한다. 이미 늦었다고 머뭇거리지 말고 연꽃 피었다 지는 것은 지극히 짧으니 그 때를 놓치지 마시라.

연향은 멀리서 더 은근한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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