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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이 있어
 
오늘은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이 있어
길을 가다 우연히 갈대숲 사이 개개비의 둥지를 보았네
그대여, 나의 못다 한 말은
이 외곽의 둥지처럼 천둥과 바람과 눈보라를 홀로 맞고 있으리
둥지에는 두어 개 부드럽고 말갛고 따뜻한 새알이 있으리
나의 가슴을 열어젖히면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나의 말은
막 껍질을 깨치고 나올 듯
작디작은 심장으로 뛰고 있으리
 
*문태준의 시 '당신에게 미루어 놓은 말이 있어'다. 정령치를 건너다 보는 산기슭에는 250 여년의 같은 시간을 쌓아온 소나무 네그루가 있다. 잘 익어가는 나무는 넉넉한 품을 만들어 뭇 생명들에게 쉼의 시간을 나눠주고 있다.
 
성급한 가을을 전하는 바람이 들판을 건너 사람들의 터에 당도하고 있다. 소나무 품에 들어 도란도란 나누는 저들의 말에도 잘 익은 속내가 담겼을 것이다. 다정도 하다.
 
미루지 말아야 할 말이 있듯이 때론 미루어 두고 한 템포 쉬어야 할 말도 있기 마련이다. 가슴 속으로 곱씹어 익히고 걸러야 비로소 온전해지는 무엇, 오늘은 당신에게 그 말을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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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슬한 바람이 마음에 불어
나비인 듯 날아 마음이 닿는 곳
마음 같지 않은 세상
그 마음 다 알아줄 수는 없지만
늘 곁에 함께 있다오"

*이선희의 노래 '안부'의 한 소절이다. 출근길 문득 떠올라 내내 뇌리를 멤도는 맬로디가 불러온 노래다. 방점은 소슬蕭瑟에 둔다.

비가 그치지 않은 날의 연속이다. 비내음에 젖어 하루가 말랑해졌다는 것 말고도 성급하게 계절을 맞이하는 마음이 부산스럽다는 것이 달라진 마음가짐이다.

9월, 숫자가 알려주는 달이 바뀐 것일 뿐이지만 마음은 천지차가 난다. 몸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빠른 감성이 높아지는 하늘만 쫒고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을 좁히라고 연달아 신호를 전하는 소슬바람의 속내가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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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에 있지만 태평스럽기 그지없다. 나란히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는 얼굴에 미소가 피어난다. 그바탕은 믿음이다. 밝고 향기로운 기운이 감도니 더이상 무엇을 탐하랴.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올라 바위 끝자락에서 홀연히 빛나는 한쌍의 꽃에 몸과 마음이 사로잡혔다. 한동안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기필코 바위에 올랐다.

달빛의 어루만짐이 이럴까. 신윤복의 월하정인의 달빛에는 애잔함이 흐르지만 무진의 지네발란에는 지족知足이 머문다.

撫 어루만질 무
나아가고 물러섬이 없는 분명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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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군 2022-02-02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어루만질무의 뜻이 참 아름답네요 나아가고 물러섬이 없는자리의 뜻으로 되는가요
 

'기다린다는 것'

막연함이 아니라 확신이다. 든든한 믿음이 있기에 느긋함을 포함한다. 다소 시간이 걸리고 먼 길 돌아오게 되더라도 꼭 온다는 믿음으로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 이때의 기다림은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의 다짐이다.

이 확고한 믿음 없이 상사화는 어찌 그 긴 시간을 견디며 매미는 땅속의 시간에도 내일을 꿈꾸고 민들레는 갓털은 어찌 바람에 그 운명을 맞기겠는가?

이러한 믿음은 의지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심장 박동이 가르쳐준 본래의 마음자리에 근거한다. 머리의 해석보다 더 근본자리인 가슴의 울림으로부터 출발한다.

금강초롱, 긴 시간을 기다렸고 먼길을 달려와 첫눈맞춤을 한다. 짧은 눈맞춤이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를 아우르는 시간이다.

미소는 어제나 내일이 아닌 오늘의 몫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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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슬蕭瑟바람을 기다린다. 볕의 기세가 한풀 꺾여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은 이미 대숲을 건너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아침 기온이 전해주는 소식에 조금은 더 깊어져야 한낯의 볕이 반가울 때라지만 간혹 쏟아지는 소나기가 까실한 공기를 불러오니 문턱은 넘어선 것으로 본다.

할일없다는 듯 대숲을 걷다가 혹 챙기지 못한 내 흔적이라도 있을까 싶어 돌아본 자리에 발걸음이 붙잡혔다. 한동안 허공에 걸려 한들거리는 댓잎하고 눈맞춤하였더니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흔들리는 나를 댓잎이 가져가버렸다.

소슬바람을 기다리는 내 마음이 저 허공에 걸린 댓잎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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