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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꽃이 피고 지는 사이를 '한 호흡'이라 부르자고 했다. 이 '한 호흡' 사이는 중요하지 않은 한 순간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특정한 때에 주목하여 호불호를 가린다. 찰나와 무한을 포함하는 '한 호흡'에도 주목하는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고 같은 사람일지라도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이 주목하는 순간이다. 어느 특정한 순간에 주목하여 얻고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무엇이 스스로를 멈추고 주목하게 하는지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만큼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살아간다.

花看半開 酒飮微醉 화간반개 주음미취
此中大有佳趣 차중대유가취
若至爛漫酕醄 약지난만모도
便成惡境矣 변성안경의
履盈滿者 宜思之 이영만자 의사지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고 술은 조금 취하도록 마시면,
그 가운데에 멋이 있다.
만약 꽃이 만개하고 술에 만취하면
좋지 않은 경지가 되게 되니
가득찬 자리에 오른 사람은
마땅히 이를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가을 꽃의 백미, 물매화가 꽃문을 열기 시작한다. 한동안 곁을 맴돌다 가던 길이지만 다시 돌아서와 이번엔 아애 자리를 잡고 앉았다. 꽃의 무엇이 나를 이토록 붙잡는 이유인지 따져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보고 또 보길 반복한다.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옮기면서 울렁이는 속내를 다독이는 향기에 그저 미소지을 뿐이다. 매년 반복되는 이 일이 조금씩 쌓이다보면 꽃 피고 지는 그 '한 호흡'에 들어선 자신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볼 뿐이다.

채근담에 나오는 글귀를 나즈막하게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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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後採新茶 우후채신다

乍晴朝雨掩柴扉 사청조우엄시비
借問茶田向竹園 차문다전향죽원
禽舌驚人啼白日 금설경인제백일
童稚喚友點黃昏 동치환우점황혼
纖枝應密深林壑 섬지응밀심림학
嫩葉偏多少石邨 눈엽편다소석촌
煎造如令依法製 전조여령의법제
銅甁活水飮淸魂 동병활수음청혼

비온 후 차를 따다

아침부터 나리던 비 잠시 개어 사립문을 지치고
차밭을 물어 물어 대나무 동산으로 향하노라
한 낮의 새 혀 같은 차 잎, 인기척에 놀라 소리 죽이고
어린 동자 불러 벗 삼으니 어느새 황혼이구려
깊숙한 숲속에는 예상대로 잔가지 빽빽한데
어린 차 잎 다분히 석촌 쪽에 치우쳤구나
법제대로 다려 졌는가
구리병에 생기 있는 차, 마시고 나니 혼이 맑아 오네

*초의 선사의 다송茶頌이다. 여름 소나기 처럼 쏟아지던 비가 그쳤다. 가을에 찻잎을 따는 것이 생소하지만 이때 딴 차를 끝물차라고 한단다. 마알간 햇살이 나니 문득 이 시를 떠올려 본다.

가을로 접어들며 싱숭생숭한 마음자리를 다독이는데 차를 마주하는 시간만큼 좋은게 또 있을까. 아직 단풍들지 않은 숲길을 걷는 것은 성질급한 가을을 일부러 마중하러 나가는 것만 같아 주저하게 된다. 찻잔을 놓고 마주 앉은 이 없이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 이때쯤이 아닌가도 싶다.

靜坐處茶半香初 정좌처다반향초
妙用時水流花開 묘용시수류화개

"고요히 앉아있는 것은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과 같고, 오묘하게 행동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과 같네"

초의선사와 교분이 두터웠던 추사 김정희의 차에 대한 욕심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초의 선사에게 보낸 편지글에 들어 있던 다송茶頌이다.

고요함을 찾는 것은 오묘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다. 차를 마시고 나니 혼이 맑아 온다는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차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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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한다는 것'
빛이 따스함으로 온 몸을 감싸듯 그렇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미 마음의 무게 중심이 상대에게 가 있다. 염려한다는 것은 상대가 어떤 상태인지 궁금함에 머물지 않고 상대의 처한 상황의 변화를 시도한다.

나뭇잎 사이를 지나온 햇살이 꽃잎을 부드럽게 감싸며 꽃의 심장을 두드린다. 햇살의 온기를 품은 꽃은 비로소 주어진 사명에 충실할 수 있다.

염려한다는 것은 꽃의 심장을 두드려 깨우는 햇살의 작용과 다르지 않다. 달을, 음악을, 꽃을, 노을을, 하늘을 핑개로 염려의 마음을 전하는 것은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교감을 하고자 함이다. 염려하는 마음이 상대와 교감을 일으켜 기적을 만드는 까닭이다.

문득 전하는 나의 염려가 가슴에서 닿아 온전히 밝고 환한 미소로 피어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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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함께 걸었다. 제법 긴 숲길을 오르내리며 두런두런 이야기 꽃이 핀다.
 
나란히 걷기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때론 거리가 멀어지기도 한다. 말을 건네는 것은 듣기 위함이니 오가는 말에 온기가 가득하고 혹은 말이 없더라도 이미 충분한 공감이 있다. 주고 받는 이야기 속에는 기대와 염려가 있고 위로와 희망, 격려가 있다.
 
함께 걷지만 혼자 걷는 것과 다르지 않고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눈길 닿는 곳에 있음을 알기에 조바심이 없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마음이 주는 위로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넉넉한 마음자리다.
 
하던 일 멈추고 선듯 나서준 딸아이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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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聽得心이청득심'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는 뜻으로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마음을 얻기 위해 귀 기울인다는 것의 본 바탕은 공존共存에 있다. 홀로 우뚝 서 자신만을 드러내기 보다는 곁에서 함께 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이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해지는 일이며, 너그러운 마음 자세를 관용寬容이라 한다.

관용에는 네가지 단계가 있다.
첫 번째는 '나와 다른 것을 이해하는 것'
두 번째는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
세 번째는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
네 번째는 '나와 다른 것과 함께하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모르면 세상살이가 팍팍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자신 만의 맛과 멋을 다른 이와 더불어 누릴 수 있다면 모두가 추구하는 행복한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얻고자 하는 근본 바탕은 공존이 있고,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 그 시작이다.

*마음을 얻어야 하는 이들이 제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낮은 자세가 필요함에도 뻣뻣하게 목을 세우고 오히려 화를 내는가 하면 자기 아니면 안된다며 남탓하기에 바쁘더니 결국 집마져 허물었다. 무엇을 하고자 나선 자리인지 아애 잊은 모양이다.

이 가을엔 내가 가고 싶은 이의 심장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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