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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은 사람을 그윽하게 하고, 술은 사람을 초연하게 하고, 돌은 사람을 준수하게 하고, 거문고는 사람을 고요하게 하고, 차는 사람을 상쾌하게 하고, 대나무는 사람을 차갑게 하고, 달은 사람을 외롭게 하고, 바둑은 사람을 한가롭게 하고, 지팡이는 사람을 가볍게 하고, 미인은 사람을 어여삐하게 하고, 중은 사람을 담박하게 하고, 꽃은 사람을 운치롭게 하고, 금석정이金石鼎彛는 사람을 예스럽게 한다.

그런데 매화와 난은 거기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옛사람이 어찌 애지중지할 줄 몰랐으리요만 평범한 꽃에 운치를 비교할 수 없고 특히 한 글자로써 적당히 표현할 수 없으므로 거기서 빠뜨린 것이다.

나는 한 글자를 뽑아내어 그것에 해당시기를 '수壽'라고 한다. 수의 뜻은 눈을 감고 한번 생각해 볼 것이다."

*조선사람 우봉 조희룡(1789~1866)의 글이다. 매화에 벽이 있을 정도로 좋아해 매화 그림을 많이 그려 '매화화가'로 불렸던 사람이다. 작품으로 '매화서옥도'와 '홍매대련' 등이 있다. 이글은 '한와헌제화잡존'에 있다. 조희룡은 나이들어 호를 '수도인壽道人'이라고 지을만큼 '수壽'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달도, 거문고도, 꽃도 좋아하고 물론 매화도 관심이 많은 사람이지만 조희룡의 이 글에 다 공강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해서 관심을 갖고 그 주목하는 바가 벽癖이 생길 정도라면 혹 다를지도 모르겠다.

어찌보면 치癡나 벽癖이 없는 사람은 그 삶이 무미건조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무엇에 그토록 관심을 갖고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며 복이라는 생각에 공감한다.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할 대상이 있는가? 나이들어 갈수록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하는 대상이 늘어난다. 그러니 틈이 생긴 만큼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꽃, 나무, 서각, 피리, 책ᆢ.

혼자 있는 시간을 무엇과 함께 어떻게 누려야할까.
나는 혼자서도 잘 놀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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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제1낙樂

맑은 창가에 책상을 깨끗이 정돈하고,
향을 피우고,
차를 달여놓고,
마음에 맞는 사람과 더불어 산수를 이야기하고,
법서法書와 명화名畵를 품평하는 것을
인생의 제1낙樂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장서가와 서화수장가로 유명했던 담헌 이하곤李夏坤(1677~1744)의 말이다. 출사하여 입신양명을 중요한 가치로 치던 조선시대에 출세에 미련을 버리고 마음 맞는 사람과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최고의 즐거움으로 삼았다.

무엇에 대한 가치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지만 사람이 벗을 찾아 함께 누리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가 아닌가 싶다. 깊어가는 가을이 주는 정취는 자기를 돌아보게 하며 사람과 사람의 사귐에 대해 성찰을 요구하는 시간이다.

같은 때 같은 곳에 머문다. 소회를 묻는 말에 오히려 특별한 것이 있으면 안되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정신 없이 빠져나왔던 곳에 들어가 일년 전 그때를 되뇌여봤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다른가?

자유는 매이는 것으로부터 풀려남이니 마음이든 몸이든 평소에 무엇에 매일 구실을 주지 말아야 한다. 새삼스레 일상의 평범이 귀함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나에게 있어 인생의 제1낙樂은 무엇일까.

'침잠沈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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寫影自贊 사영자찬

貌有形 모습에는 형상 있고
神無形 정신에는 형상 없네
其有形者可模 형상 있는 것은 그릴 수 있지만
無形者不可模 형상 없는 것은 그릴 수가 없네
有形者定 형상 있는 것이 정해져야
無形者完 형상 없는 것이 온전하다네
有形者衰 형상 있는 것이 쇠하면
無形者謝 형상 없는 것은 시들해지고
有形者盡 형상 있는 것이 다하면
無形者去 형상 없는 것은 떠나간다네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이 자기의 초상화를 보고 쓴 글이다. 23세 젊은 때를 그린 초상을 늙고 쇠잔한 때에 마주보는 감회가 담겼다.

삶을 돌아본다는 것은 죽음에 임박한 때나 늘그막에 와서 기운빠져 할 일이 없을 때나 하는 일일까. 가끔 접하는 옛사람들의 글 속에는 나이와 상관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 가짐을 다잡는 글이 많다. 모두 자기성찰에 중심을 두고 있다.

셀카가 일상인 시대다. 어느 시대보다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살필 수 있는 시대를 산다. 셀카를 찍으며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려는 모습들이 참 좋다. 겉모습 뿐만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로 삼는 이런 노력이 더해지면 뒷모습도 그만큼 아름다워진다고 할 수 있을까.

한나절 물매화 핀 풀숲에서 어슬렁거리며 놀았다. 친숙하게 접할 수 있는 것보다는 다른 것을 탐하는 마음이야 모르는 바는 아니나 지나고보면 맹숭맹숭한 그것이 심중에 남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처음 눈맞춤하는 붉은 기운의 그것보다 치장하지 않은 민낯의 모습이 더 오래 기억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전히 낯설기만 한 내모습이다. 물매화를 보며 심중에 그려가는 내모습이 이랬으면 싶다. 부려도 좋을 욕심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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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樂 지락
値會心時節 逢會心友生 作會心言語 讀會心詩文 此至樂 而何其至稀也 一生凡幾許番
치회심시절 봉회심우생 작회심언어 독회심시문 차지락 이하기지희야 일생범기허번

최상의 즐거움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고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고 마음에 맞는 시와 글을 읽는다. 이것이 최상의 즐거움이지만 지극히 드문 일이다. 이런 기회는 인생 동안 다 합해도 몇 번에 불과하다.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선귤당농소'에 나오는 글이다.

지난 주말 멀리 사는 벗들이 오랫만에 모였다. 짧은 만남이 주는 긴 여운을 알기에 기꺼이 시간을 낸 것이리라. 돌아서는 뒷모습이 꼭 이와같아 닮았다.

최상의 즐거움이 어디 따로 있을까. '절정의 순간이었다'는 것은 언제나 과거의 일이다. 지나고보니 그렇더라는 것이기에 늘 아쉬움만 남는다. 일상에서 누리는 자잘한 행복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제는 알기에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매 순간 누리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쌓여 그 사람의 삶의 향기를 결정한다. 오늘을 놓치지 말아야 할 이유다.

花樣年華화양연화는 지금 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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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22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시는 사진이랑 글 너무 좋아요.
애독자입니다~♡
 

만약 한 사람의 지기知己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마땅히 십 년 동안 뽕나무를 심을 것이고, 일 년 동안 누에를 길러 손수 다섯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할 것이다. 열흘에 한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한다면 오십 일 만에 다섯 가지 색의 실을 염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오색의 실을 따뜻한 봄날 햇볕에 쬐어 말리고, 아내에게 부탁해 수없이 단련한 금침으로 내 지기의 얼굴을 수놓게 해 기이한 비단으로 장식하고 고옥古玉으로 축을 만들 것이다. 그것을 높게 치솟은 산과 한없이 흐르는 물 사이에 걸어 놓고 서로 말없이 마주하다가 해질녘에 가슴에 품고 돌아올 것이다.
 
若得一知己 我當十年種桑 一年飼蠶 手染五絲 十日成一色 五十日成五色 曬之以陽春之煦 使弱妻 持百鍊金針 繡我知己面 裝以異錦 軸以古玉 高山峨峨 流水洋洋 張于其間 相對無言 薄暮懷而歸也
 
*조선사람 이덕무의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에 나오는 글이다. 한정주는 '문장의 온도'에서 이글에 언급한 벗의 예를 다음의 경우로 이야기 한다.
 
"김시습의 매화와 달, 성수침의 소나무, 허난설헌의 난초와 눈, 최북의 붓, 정약용의 차, 정철조의 돌, 이긍익의 명아주 지팡이, 유금의 기하학, 서유구의 단풍나무, 김정호의 산, 이규보의 거문고와 시와 술, 허균의 이무기, 박제가의 굴원의 초사, 이덕무의 귤과 해오라기와 매화"
 
*대부분 자연에서 찾은 벗들이다. 어찌 사람 사이 벗의 이야기를 하면서 '겸재 정선과 사천 이병연'이나 '문무자 이옥과 담정 김려'와 같은 예를 찾지 않은 것일까. 나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벗으로 사귐의 어려움을 반증하는 것이라해도 불편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에 몸살을 앓더니 올 가을 꽃이 부실하지만 향기는 더욱 그윽하다.
 
산 너머로 금목서 향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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