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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里靑天 雲起雨來 만리청천 운기우래
空山無人 水流花開 공산무인 수류화개
靜坐處 茶半香初 정좌처 다반향초
妙用時 水流花開 묘용시 수류화개

덧없는 푸른 하늘엔 구름 일고 비가 오는데
텅 빈 산엔 사람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고요히 앉아 차를 반쯤 마셔도 그 향은 처음과 같고
묘용시에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중국 북송시대 황정견(1045~1105)의 시다. 수많은 시간동안 많은 이들이 시를 차용하며 그 의미를 나누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공산무인 수류화개"나 "다반향초"가 있는 듯하다.

어떤 이는 시종일관에 주목하고 다른이는 물아일체에 주목한다. 다 자신의 의지나 지향점에 비추어 해석한 결과이니 스스로 얻은 이치를 살피면 그만일 것이다.

하늘을 날아서 짠물을 건넜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 요동치는 바람과 부서지는 파도 앞에서 무심히 바라본 꽃에 몰입한다. 바깥 세상의 혼란스러움과는 상관없디는듯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는 꽃이나 그꽃을 바라보는 이나 다르지 않다.

고요히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몸과 마음에 움직임이 없으니 우러난 차향과 같다. 비로소 움직이면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물아일여物我一如
물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꽃은 그냥 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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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이 피면 한 차례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한 차례 모이고,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차례 모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서지에 연꽃이 피면 구경하기 위해 한 차례 모이고, 국화꽃이 피어나면 한 차례 모이고, 겨울에 큰눈이 오면 한 차례 모이고, 세모에 화분의 매화가 피면 한 차례 모인다.

모일때 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준비하여 술을 마시며 시가를 읊조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부터 준비물을 마련토록 하여, 차례대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까지 한 바퀴 돌아가 다 끝나면 다시 시작하여 돌아가게 한다."

*정약용의 '죽난시사첩서竹欄詩社帖序'에 나오는 문장이다. 죽난시사는 정약용 선생이 시詩 짓는 사람들과 만든 차茶 모임이다. 나이가 4년 많은 사람으로부터 4년 적은 사람까지 모이니 15명이었다. 이들이 모여 약속한 것이 이 내용이다.

옛사람들의 이 마음이 부러웠다. 따지고 보면 이와 같은 모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옛사람들은 그들대로 지금은 또 나름대로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누리면 되는 것이다. 시대를 초월하는 마음자리가 이어지는 이유다.

해가 바뀌어 남쪽으로부터 꽃소식이 전해지면 섬진강 매화와 눈속에 복수초 필때 한번, 변산바람꽃과 노루귀 필때 한번, 동강할미꽃 필때 한번, 깽깽이풀과 얼레지 필때 한번, 한계령풀 필때 한번, 병아리난초와 닭의난초 필때 한번, 참기생꽃 필때 한번, 지네발란 필때 한번, 병아리풀과 남개연 필때 한번, 금강초롱꽃 필때 한번, 해국과 물매화 필때 삼삼오오 모였다.

챙길 준비물은 따로 있을 까닭이 없다. 꽃 담을 폰이든 카메라든 이미 있고, 꽃보며 행복했던 눈과 마음이 있기에 빈손으로도 충분하다. 꽃을 사이에 두고 가슴에 품었던 향기를 꺼내놓고 꽃같은 마음을 나누면 그만이다.

꽃이 시들해지는 때가 오니 꽃길에서 만나지 못한 벗이 그리워 갯쑥부쟁이를 핑개로 다시, 바다를 건너 꽃놀이를 다녀왔다. 한해를 마감하기에는 턱없이 이른 때이긴 하지만 꽃쟁이들의 발걸음이 멈추는 시기이니 그것도 무방하다 할 것이다. 벌써 섬진강 매화피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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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는 하나다
贈李聖徵令公赴京序 증이성징영공부경서

누런 것은 스스로 누렇다 하고, 푸른 것은 스스로 푸르다 하는데, 그 누렇고 푸른 것이 과연 그 본성이겠는가? 갑에게 물으면 갑이 옳고 을은 그르다 하고, 을에게 물으면 을이 옳고 갑은 그르다고 한다. 그 둘 다 옳은 것인가? 아니면 둘 다 그른 것인가? 갑과 을이 둘 다 옳을 수는 없는 것인가?

나는 혼자다. 지금의 선비를 보건데 나처럼 혼자인 자가 있는가. 나 혼자서 세상길을 가나니, 벗 사귀는 도리를 어찌 어느 한 편에 빌붙으랴. 한 편에 붙지 않기에 나머지 넷, 다섯이 모두 나의 벗이 된다. 그런즉 나의 도리가 또한 넓지 않은가. 그 차가움은 얼음을 얼릴 정도지만 내가 떨지 않고, 그 뜨거움은 흙을 태울 정도이나 내가 애태우지 않는다. 가한 것도 불가한 것도 없이 오직 내 마음을 따라 행동할 뿐이다. 마음이 돌아가는 바는 오직 나 한 개인에게 있을 뿐이니, 나의 거취가 느긋하게 여유가 있지 않겠는가.

*조선사람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집 於于集'에 실린 글이다.'연경으로 가는 이정귀(자 성징) 영공에게 주는 글 '贈李聖徵令公赴京序 증이성징영공부경서'의 일부다. 북인에 속하는 유몽인이 서인인 이정구와의 우정을 회고하고 진정한 우정의 소중함을 담고 있다.

내달리는 가을의 속내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살아가는 동안 각기 다른 모양과 색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만 지향하는 방향은 같다.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다른 생을 준비한다.

영겁의 시간 속에서 모두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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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종 2021-11-1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다른 생을 준비하는 생명들을 상상하니 겸허해지고 마음이 넓어지는 느낌입니다.

사진 색감이 너무 이뻐서 실제로 보면 얼마나 두근거릴까 상상해보았습니다..
 

기다린 마음과는 상관없다는 듯 한없이 더디오더니 이제는 급했나 보다. 여기저기 들러 청하는 모든이에게 안부를 전하며 노닥거리느라 늦었던 걸음이 내 앞에 와서야 서두른다. 산 너머에만 머물던 가을이 코앞까지 왔다.

인위적인 경계를 넘는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은 매달 다르지만 십일월을 맞이하는 마음엔 유독 조급함이 함께 한다. 당도한 끝 지점보다는 마무리로 내달리는 안쓰러움이 그것이다. 그 별스러운 일에 슬그머니 끼어드는 마음이 그다지 낯설지가 않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맞이하는 시간은 기다린 매 순간의 마음과는 달리 늘 서툴기 마련이다. 그 서툰 마음짓으로 다시 다음을 기약한다지만 그 다음이 있을지는 미지수라 헛튼 속내는 안으로만 잠기다.

붙잡힌 발걸음을 욺길 이유를 찾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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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참 좋다. 막바지 가을걷이에 땀방울 흘리는 농부의 이마를 스치는 살랑거리는 바람까지 있어 여유로운 오후다. 다소 더운듯도 하지만 이 귀한 볕이 있어 하늘은 더 푸르고 단풍은 더 곱고 석양은 더 붉으리라.

오후를 건너는 해가 단풍들어가는 잎에 기대어 숨고르기를 한다. 푸른 하늘 품에는 긴밤을 건너온 달이 반쪽 웃음을 비워가는 동안 해는 서산을 넘기 위해 꽃단장을 한다. 그러고도 남는 넉넉한 해의 빛은 푸르고 깊은 밤을 밝혀줄 달의 벗인 샘이다.

오후 3시를 넘어선 햇살이 곱다. 그 볕으로 인해 지친 시간을 건너온 이들은 잠시 쉼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이처럼 계절이 건네는 풍요로움은 볕을 나눠가지는 모든 생명이 누리는 축복이다. 그 풍요로움 속에 그대도 나도 깃들어 있다.

노을도 그 노을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도 빛으로 오롯이 붉어질 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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