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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향 머무는 시간'

雪裡寒梅雨後蘭 설리한매우후난
看時容易畵時難 간시용이화시난
早知不入時人眼 조지불입시인안
寧把膽脂寫牧丹 영파담지사목단

눈 속의 겨울매화, 비 내린 후의 난초
보기는 쉬워도 그리기는 어려워라
세상사람 눈에 들지 못할 것을 일찍 알았던들
차라리 연지燕脂 잡고 모란이나 그릴 것을

*1498년 무오사화戊午士禍의 단서를 제공하고 부관참시를 당한 인물. 조선 전기 훈구파에 대항한 참신한 정치 세력이었던 사림파의 영수 김종직(1431~1492)의 시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은 세상에 대한 원성을 사뭇 심각하게 담았다. 그런다고 그로써는 세상 쫒아 모란을 그릴 수야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눈 속 매화의 절개와 비 맞은 난초의 기품을 알아버린 고수의 몫은 아닌 것이었기에ᆢ

시를 쓴 사람의 뜻이야 따로 있겠지만 이 시를 대하자니 마음은 대숲에서 눈맞고 고개숙인 차꽃에 머문다. 찬바람에 몸보다는 마음 깃을 잘 다독여서 섬진강 매화의 맑은 향기를 기다린다.

겨울이 춥기만하다고 마냥 피할것 만은 아니다. 매향, 차향 담은 꽃과 새 잎도 이 차가운 겨울 덕분에 가능한 일 아닌가. 그대 몸 버거운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마음 깃 잘 여며서 이른봄 매화향기 맞이해야 하지 않겠는가.

특별사면,
어떤 곳에만 눈 온다는 크리스마스 이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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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치던 강추위가 무색하리만치 포근한 날이 이어진다. 흩뿌연 미세먼지로 기운을 잃은 햇볕이 간신히 비추지만 기온은 봄날의 그것을 떠올리게 한다. 바람은 잔잔하고 기온은 높아 더없이 느긋하게 하루를 열었다.

미처 계절을 건너지 못한 국수나무 잎에 겨울볕이 머문다. 눈맞춤의 순간은 지극히 짧지만 가슴에 들어온 온기는 춥고 긴 겨울을 건너는 힘이다.

온기는 어디에도 어느 순간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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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타령
배고파 지어 놓은 밥에 뉘도 많고 돌도 많다 뉘 많고 돌 많기는 임이 안 계신 탓이로다 그 밥에 어떤 돌이 들었더냐

초벌로 새문안 거지바위 문턱바위 둥글바위 너럭바위 치마바위 감투바위 뱀바위 구렁바위 독사바위 행금바위 중바위 동교로 북바위 갓바위 동소문 밖 덤 바위 자하문 밖 붙임바위 백운대로 결단바위 승갓절 쪽도리바위 용바위 신선바위 부처바위 필운대로 삿갓바위 남산은 꾀꼬리바위 벙바위 궤바위 남문 밖 자암바위 우수재로 두텁바위 이태원 녹바위 헌 다리 땅바위 모화관 호랑바위 선바위 길마재로 말목바위 감투바위 서호정 용바위 골바위 둥그재로 배꼽바위 말굽바위 밧바위 안바위 할미바위 숫돌바위 하마바위 애오개는 걸 바위 너분바위 쌍룡정 거좌바위 봉학정 벼락바위 삼개는 벙바위 고양도 벙바위 양천은 허바위 김포로 돌아 감바위 통진 붉은 바위 인천은 석 바위 시흥 운문산 누덕바위 형제바위 삼신바위 과천 관악산 염불암 연주대로 세수바위 문바위 문턱바위 수원 한 나루 영웅바위 돌정바위 검바위 광주는 서성바위 이천은 곤지바위 음죽은 앉을바위 여주 흔바위 양근은 독바위 황해도로 내려 금천은 실바위 연안 건들바위 서흥 병풍바위 동설령 새남 찍꺾바위 과줄바위 황주는 쪽도리 바위 평양 감영 장경 문안 쇠바위 덕바위 서문 안에 안장바위 웃바위 순안은 실바위 숙천은 허바위라

도로 올라 한양 서울 정퇴절 법당 앞에 개대 바위 서강에 농바위 같은 돌멩이가 하얀 흰밥에 청대콩 많이 까둔 듯이 드문 듬성이 박혔더라 그 밥을 건목을 치고 이를 쑤시고 자세 보니 연주문 돌기둥 한 쌍이 금니 박히듯 박혔더라 그 밥을 다 먹고 나서 눌은 밥을 훑으려고 솥뚜껑 열고 보니 해태 한 쌍이 엉금엉금

*무심코 듣던 라디오에서 휘몰아치는 리듬 속에 듣도보도 못한 바위 이름이 나온다. 이게 뭔가 싶어 찾아서 다시 들었다. 서울지방 잡가 중 하나라고 한다.

이 소리를 듣는데 문득 떠오르는 그림이 하나 있다. 표암 강세황의 "영통동구도 靈通洞口圖"라는 그림이다. 나로썬 이 소리와 그림의 서로 연관성을 찾을 재주는 없다. 강세황의 독특한 바위 그림이 강한 인상으로 남았고 이 소리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 밖에는.

https://youtu.be/0m_n9r2uPwU

여러 소리꾼들이 불렀지만 오늘은 이춘희와 채수현의 소리로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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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이 맑다커늘 우장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날은 찬비를 맞았시니 얼어잘까 하노라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가 평양기생 한우寒雨를 보고 첫눈에 반한 속내를 드러낸다. 벼슬이나 권력에 연연하지않고 패기 넘치는 호남아답게 거침이 없다.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 얼어자리
원앙 침 비취금을 어데두고 얼어자리
오날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한우寒雨 역시 한술 더뜬다. 재색을 겸비하고 시문에 능하고 거문고와 가야금에도 뛰어나며 노래까지 절창인 기녀답게 은근하지만 속되지 않다.

주는 이나 받는 이가 마음이 맞았으니 여기에 무엇을 더하랴.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멋이 아닐런지. 비로소 손끝이 시리고 코끝이 찡한 겨울다운 날씨다. 겨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려는 하늘의 배려가 아닐까.

김용우의 '어이얼어자리'를 듣는다.

https://youtu.be/edrQUe1Dh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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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타령

창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 놓으니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이 돋네
아이야 거문고 청쳐라 밤새도록 놀아보리라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청계수 맑은 물은 무엇을 그리 못잊는지 울며 느끼며
흐르건만 무심타 청산이여 잡을 줄 제 모르고 구름은 산으로 돌고 청계만 도냐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허무한 세상에 사람을 내일 제 웃는 길과 우는 길은
그 누가 내었든고 뜻이나 일러주오 웃는 길 찾으려고
헤매어 왔건마는 웃는 길은 여영 없고 아미타불
관세음보살님 지성으로 부르고 불러 이 생의 맺힌
한을 후생에나 풀어주시라 염불발원을 허여보세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만경창파 수라도 못다 씻은 천고수심이 위로주 한 잔
술로 이제 와서 씻었으니 태뱅이 이름으로 장취불성이 되었네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은 꾸어서 무엇을 할거나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빗소리도 님의 소리 바람소리도 님의 소리
아침에 까치가 울어대니 행여 임이 오시려나
삼경이면 오시려나 고운 마음으로 고운 임을 기다리건만 고운 임은 오지않고 베게 머리만 적시네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을 다 보내고 낙목한천
찬 바람에 어이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이
너 뿐인가 하노라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얄궂은 운명일세 사랑이 뭐길래 원수도 못보는 눈이라면 차라리 생기지나 말 것을 눈이 멀었다고 사랑조차 멀었든가 춘 삼월 봄 바람에 백화가 피어나 듯 꽃 송이마다 벌 나비 찾어가듯 사랑은 그 님을 찾아 얼기설기 맺으리라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지척에 임을 두고 보지 못한 이 내 심정 보고파라
우리님아 안보이네 볼 수 없네 자느냐 누웠느냐 애 타게 불러봐도 무정한 그 님은 간 곳이 없네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아깝다 내 청춘 언제 다시 올거나 철 따라 봄은 가고
봄 따라 청춘가니 오는 백발을 어찌 헐끄나
아이고 대고 허허 성화가 났네 헤

https://youtu.be/sC_O8fLduXo

*자주 들어 익숙한 가락이지만 제대로 내용을 음미해 볼 생각을 못하다 이제서야 정독해 본다. 순전히 국화를 핑개삼아 듣는 것이라지만 영화 취화선에 나왔던 김수연 명창의 소리를 찾아 듣는다.

왜 흥타령인지 듣고 또 듣고 가락도 가사도 익숙해질 무렵에서야 짐작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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