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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戱作 정희작

不對靑銅久 부대청동구
吾顔莫記誰 오안막기수
偶來方炤井 우래방조정
似昔稍相知 사석초상지

우물에 비친 얼굴을 보고 장난삼아 짓다

오랫동안 거울을 보지 않았더니,
내 얼굴이 통 기억이 나지 않아
우연히 우물에 막 비친 모습은
전에 어디서 얼핏 본 듯한 녀석일세

*고려사람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시다. 무신정권기를 살며 당대의 명문장가였다. 저서로 동국이상국집이 있다.

거울을 본적이 있던가? 아침 마다 수염을 깎으면서도 제 얼굴이 가물가물 하는 것이 셀카가 일상인 시대를 살면서도 남의 일이라 여겼으니 제 얼굴 볼 의지가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옛사람들이야 방법이 없었으니 겨우 물에 비친 얼굴 보는 것이 전부였을 것이라 제 얼굴 잊어 먹은 게 이해가 된다.

뭔가 어색함을 피할 방법이 없어 프로필도 뒷모습이다. 이것도 큰 마음을 낸 결과이니 무엇이 제 얼굴 보기를 이토록 어렵게 하는 것일까. 세상 보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산 속 꽃에나 눈길을 둔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때를 놓치지 않고 숲에 들어 꽃을 찾는 것은 혹 잊어버린 제 얼굴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어리석음은 아닌지. 전생의 기억을 찾아 헤매는 일이 만만치 않다.

꽃에서 제 얼굴을 만날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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澹掃蛾眉白苧衫 담소아미백저삼
訴衷情語鶯呢喃 소충정어앵니남
佳人莫問郞年幾 가인막문낭년기
五十年前二十三 오십년전이십삼

흰 모시 적삼 입고 눈썹 곱게 단장하고
소근소근 이야기 하는 마음 속 정스럽네
어여쁜 사람아 내 나이 묻지를 마오
오십년 전에는 스물 셋이었다오

*조선사람 자하(紫霞) 신위(申緯)의 시다. 시, 서, 화 삼절로 일컬어진 문신이고 화가이며 서예가다.

자하 선생 73세 때인 어느날 서울 남쪽에 사는 어떤 젊은 여인이 찾아와 노년의 선생 돌보기를 자청하였다. 외모뿐만 아니라 매우 영민하고 글도 깨우친 재덕을 겸비한 여인이었다고 한다.

자하 선생은 자신의 연로함을 들어 이 여인의 청을 정중히 사양하고 이 시를 써 주었다고 한다. 그 여인은 변승애(卞僧愛)란 기생이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또 다른 시를 찾아본다.

奉虛言 봉허언
向儂思愛非眞辭 향농사애비진사
最是難憑夢見之 최시난빙몽견지
若使如儂眠不得 약사여농면부득
更成何夢見儂時 갱성하몽견농시

거짓인 듯 믿어주오
날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말 사실이 아니니
꿈 속에 나 봤다는 말은 정말로 믿기 어려워라
만약에 나 같은 사람 잠들어 못 보았다면
어느 꿈속에서 나를 볼 때가 다시 있으리오

*꽃을 보기 위해 지리산 높은 곳을 쉬엄쉬엄 올랐다. 혼자 나선 길이고 바쁠 것도 없기에 꽃 찾아 두리번 거리는 것은 눈 만은 아니다. 왕복 7시간의 먼 길이 버겁지가 않았다.

눈 앞에 놓인 꽃을 두고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등산객들의 번잡함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꽃을 온전히 누리고 싶은 마음이 앞서 때문이다.

이 꽃이 참기생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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看山 간산
倦馬看山好 권마간산호
執鞭故不加 집편고불가
岩間纔一路 암간재일로
煙處或三家 연처혹삼가
花色春來矣 화색춘래의
溪聲雨過耶 계성우과야
渾忘吾歸去 혼망오귀거
奴曰夕陽斜 노왈석양사

산을 구경하다
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하기가 좋아서
채찍질 멈추고 천천히 가네
바위 사이로 겨우 길 하나 있고
연기 나는 곳에 두세 집이 보이네
꽃 색깔 고우니 봄이 왔음을 알겠고
시냇물 소리 크게 들리니 비가 왔나 보네
멍하니 서서 돌아갈 생각도 잊었는데
해가 진다고 하인이 말하네

*조선 사람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의 시다. 김삿갓으로 더 유명하다. 그의 행적을 생각하면 짐작되는 바가 있다.

허망함을 다독일 방법을 찾지 못한다. 눈 앞에 아른거리는 전과 후의 모습이 선명하다. 함께한 시간보다 더 긴 호흡이 필요하리라.


먼 산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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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物 관물
無事此靜坐 무사차정좌
擧目觀物態 거목관물태
鳥聲自和悅 조성자화열
人語多細碎 인어다세쇄
彼由天機動 피유천기동
此以人慾晦 차이인욕회
於斯愼所恥 어사신소치
毫釐莫相貸 호리막상대

일없이 고요히 앉아서
눈길을 사물에 맞춰 모양을 살펴 보노라면
새 소리는 나긋나긋 즐거이 들리는데
사람 말은 자질구레 시끄럽구나
저 놈은 자연 섭리대로 살아가고
이 쪽은 사람처럼 욕심을 감추고 있네
이치를 깨닫고 무엇을 얻을지 신중하여
털끝만큼도 서로 느슨하지 말아야하네
 
* 조선사람 순암 안정복(安鼎福, 1712~1792)의 오언율시다.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간다. 바뀌는 때를 맞아 눈에 들어오는 사물의 모양에 집중해 본다.
 
간혹, 한들거리는 바람에 놀란 풀꽃이나 앉았다 날아가는 새로인해 흔들거리는 나무가지를 보며 덩달아 일렁이는 마음자리를 다독인다.
 
나뭇잎을 파고드는 빛의 움직임도, 귓가를 스치는 바람도, 나무 사이를 넘나드는 새의 움직임도 오롯이 들어오는 때가 있다. 찰라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음은 애써 무엇을 보려는 수고의 결과라기 보다는 자연과 온전히 하나된 물아일체에 비롯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 숲에 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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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살고 싶은 선비의 서툰 세상 나들이를 위로하는 것이 지는 매화이고, 아플 것을 지레짐작하며 미리 포기하고 한꺼번에 떨어지는 것이 벚꽃이다. 있을때 다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뒷북치며 매달리다 스스로 부끄러워 붉어지는 것이 동백이고, 헤어짐의 불편한 속내를 위로 하는 것이 즈려밟는 진달래다. 소의 눈망울을 닮은 사내의 가슴에 닭똥같은 눈물방울을 흘리게 만드는 것이 지는 산벚꽃이고, 지극정성을 다한 후 처절하게 지고마는 것이 목련과 노각나무 꽃이다.

늘 다녀서 익숙한 계곡에 들던 어느날, 다 타버리고 남은 희나리 처럼 물위어 떠 있던 노각나무 꽃무덤을 발견했다. 순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먹먹함에 한동안 꼼짝도 못한 채 물끄러미 꽃무덤만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꽃무덤 찾기가 올 봄에도 이어진다. 매화의 수줍은 낙화로 부터 시작된 꽃무덤 찾기는 살구나무에서 멈추었다가 벚꽃과 진달래, 철쭉으로 이어진다. 삼백예순날을 기다려 마주한 모란에서는 닷세동안 주춤거린다. 때죽나무와 쪽동백에서 다시 시작되어 여름철 노각나무에 이르러 큰 고개를 넘는다. 찬바람 불고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차꽃 지는 모습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몸과 마음을 하얗게 불사르고 난 후에도 순결한 속내를 고스란히 간직한 때죽나무와 쪽동백처럼 뒷 모습이 당당한 꽃을 가슴에 담는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꽃무덤 찾는 발걸음 마다 꽃의 정령이 깃들어 내 가슴에서 다시 꽃으로 필 것을 믿는다.

조용히 꽃무덤 앞에 두손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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