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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笑聲未聽 화소성미청
鳥啼淚難看 조제루난간

꽃은 웃어도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을 보기 어렵다

*추구집推句集에 실려 있는 한 구절이다.
환청일까. 꽃의 웃음소리 뿐 아니라 재잘거림도 듣는다. 피기 전부터 피고지는 모든 과정에서 환하고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는 웃음소리가 있다. 단지, 주목하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칠 뿐.

어디 꽃 피는 소리 뿐이랴. 새 우는 소리, 해와 달이 뜨고지는 표정, 안개 피어나는 새벽강의 울음에 서리꽃에 서린 향기까지도 생생하다. 하니, 어느 한 철이라고 꽃 웃는 소리가 없을 때가 있을까.

내 마음 속
꽃피는 세상이 따로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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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雨蕭蕭送薄涼 추우소소송박량
小窓危坐味深長 소창위좌미심장
宦情羈思都忘了 환정기사도망료
一椀新茶一炷香 일완신다일주향

가을비가 소소히 내리며 서늘함을 보내오니
작은 창 아래 단정히 앉아 있는 그 맛이 깊고 깊도다
벼슬살이 시름 나그네 근심 모두 잊어버리고서
향불 한 심지 피워 놓고 햇차 한 잔 마신다네

*고려사람 목은 이색(李穡, 1328~1396)의 시다.

많은 이들이 가을 단풍에 주목한다지만 가을의 또다른 정취를 전해주는 것으로 추적추적 내리는 비 만한 것이 있을까. 올가을 귀한 비로 목마른 것은 식물만이 아니다. 다소 시끄러운 속내를 달래줄 비를 기다리며 옛사람의 마음 한구석에 의지해 본다.

남쪽의 가을은 앞산 무릎에 올라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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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行 산행
閒花自落好禽啼 한화자락호금제
一徑淸陰轉碧溪 일경청음전벽계
坐睡行吟時得句 좌수행음시득구
山中無筆不須題 산중무필불수제

산길을 가다
조용한 꽃 절로 지니 고운 새 우짖고
외길 맑은 그늘 푸른 계곡 따라 도네
앉아 졸고 가며 읊어 가끔 시 되어도
산에 붓 없으니 적으려 할 것도 없네

*조선사람 김시진(金始振, 1618~1667)의 시다.

숲에 들어 한가로운 걸음으로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헐거워진 숲에는 까실한 볕이 들어올 틈이 넓어졌다. 누운 나무 둥치에 깃들어 사는 이끼들에게도 볕이 찾아 들었다.

겨울을 건너기 위해서 볕의 온기가 필요한 것은 이끼뿐 만이 아니다. 숨을 쉬는 모든 생명들에게 틈을 열어 온기를 품도록 허락하는 가을숲의 여유로움이 고맙다.

없는 붓을 핑개로 수줍은 감정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는 가을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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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이 피면 한 차례 모이고, 복숭아꽃이 피면 한 차례 모이고, 한여름에 참외가 익으면 한 차례 모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 서지에 연꽃이 피면 구경하기 위해 한 차례 모이고, 국화꽃이 피어나면 한 차례 모이고, 겨울에 큰눈이 오면 한 차례 모이고, 세모에 화분의 매화가 피면 한 차례 모인다.

모일때 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를 준비하여 술을 마시며 시가를 읊조릴 수 있게 해야 한다.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부터 준비물을 마련토록 하여, 차례대로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까지 한 바퀴 돌아가 다 끝나면 다시 시작하여 돌아가게 한다."

*정약용의 '죽난시사첩서竹欄詩社帖序'에 나오는 문장의 일부다. 죽난시사는 정약용 선생이 시詩 짓는 사람들과 만든 차茶 모임이라고 한다. 나이가 4년 많은 사람으로부터 4년 적은 사람까지 모이니 15명이었다. 이들이 모여 약속한 것이 이 내용이다.

누구는 운치와 풍류를 이야기하고, 누구는 벗의 사귐을 이야기하고, 누구는 전원생활을 이야기한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모임이 없지는 않을 것이지만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해가 바뀌어 남쪽으로부터 꽃소식이 전해지면 섬진강 매화 필때 한번, 변산바람꽃과 노루귀 필때 한번, 깽깽이풀 필때 한번, 병아리난초 필때 한번, 솔나리 필때 한번, 바위솔 필때 한번, 상사화 필때 한번, 물매화 필때 한번, 금목서 필때 한번, 대나무에 눈꽃 필때 한번 만나 서로 꽃보며 가슴에 품었던 향기를 꺼내놓고 꽃같은 마음을 나눈다.

챙길 준비물은 따로 있을 까닭이 없다. 꽃 담을 폰이든 카메라든 이미 있고, 그것이 없어도 꽃보며 행복했던 눈과 코, 마음이 있기에 빈손으로도 충분하다. 꽃이 시들해지는 때가 가까워오니 꽃보며 만난 사람들이 더 그리워지는 이유다.

물매화 지고 좀딱취 피었다는데 벗들은 언제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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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달라진 질감으로 얼굴에 닿는 볕이 아깝지만 붙잡을 도리가 없다. 볕 날 때 그 볕에 들어 볕의 온기를 가슴에 품어두는 수밖에.

향기 또한 다르지 않다. 가을볕의 질감으로 안겨드는 향기를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가을볕 만큼이나 짧은 향기가 아까워 한 줌 덜어다 그릇에 옮겨두었다.

하늘의 볕을 고스란히 품었으니 볕의 질감을 그대로 닮았다. 색감에서 뚝뚝 떨어지듯 뭉텅이로 덤벼지는 향기에 그만 넋을 잃어 가을날의 한때를 이렇게 품는다. 다소 넘치는 듯하나 치이지 않을만큼이니 충분히 누려도 좋을 가을의 선물이다.

아는 이는 반가움에 가슴이 먼저 부풀고, 처음 본 이는 눈이 먼저 부풀어 이내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 이 향기다. 하늘색 종이 봉투에 한 줌 담아서 그리운 이의 가슴에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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