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함께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카테고리입니다. 이 카테고리에 글쓰기

추일 秋日
竹分翠影侵書榻 죽분취영침서탑
菊送淸香滿客意 국송청향만객의
落葉亦能生氣勢 낙엽역능생기세
一庭風雨自飛飛 일정풍우자비비

대 그림자 파랗게 책걸상에 앉고
국화는 맑은 향기를 보내 나그네 마음을 가득 채우네
뜰 앞에 지는 잎 뭐가 좋은지
쓸쓸한 비바람에 펄렁대누나

*조선사람 매헌 권우(1363∼1419)의 시다. 조선전기 원주목사, 예문관제학, 세자빈객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이다.

된서리 내렸다지만
국화의 기상을 꺾지는 못한다.
어떤 이는 술잔 나눌 이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누이를 생각하며
다른 이는 은일에 벗하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가을을 떠올린다.

난 술도 못하고
생각할 누이도 없고
더군다나 은일은 꿈도 꾸지 못하기에
그저 바라만 볼 뿐ᆢ.

각시覺時 -불현듯, 알아차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후 세 시의 사람ㆍ3
그는 꽃밭을 만들었다
계절마다 서로 다른 꽃들이 가득 피고 나비와 별들도 찾아온다
달팽이와 지렁이도 함께 산다
누군가 어느 날 이 꽃을 모두 따간다 해도 그는 걱정 없다
꽃 심기 메뉴얼은 그의 머릿속에 다 들어 있다
어느 계절에 어떤 꽃을 어떻게 심어야 할지 그는 잘 알고 있다
그의 방에는 꽃씨 봉지가 가득 든 가방이 있다
그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또 하나의 꿈이 있다면
누군가가 자기만큼 꽃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거다
그에게 이 가방을 선물할 것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 어디쯤에 그가 꽃밭을 가꾸기를 바란다
같은 바람이 두 꽃밭을 오갈 것이고
같은 나비도 벌도 오갈 것이다
그가 갖고 싶은 것은 아름다운 꽃밭을 가진 이웃이다
그때는 꽃씨가 든 가방을 또 만들 것이다
이 세상이 꽃씨가 담긴 가방을 든 사람들로 넘쳐 나는 것
어디선가 바람이 꽃 냄새를 실어나르는
꽃밭이 새로 생기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에게 오후 세 시는 오전 아홉 시이고 오후 다섯 시다
그에게는 꽃이 시계다
 
*최옥정의 '오후 세 시의 사람'에 나오는 '오후 세 시의 사람ㆍ3'의 일부다. 꽃씨 봉투를 받고 보니 이 글이 생각나 하루 종일 이리저리 찾다가 포기했는데 이른 아침에 불쑥 생각이 났다. 마음에 닿는 온기가 남다르지 않아 다소 긴 문장을 옮긴다.
 
눈길 속에서 시작된 꽃이 피고 지는 때를 따라 이곳 저곳을 넘나들며 한해를 살아왔다. 꽃이 궁해진 시간을 건너 다시 꽃 따라 가는 여정 속에 서기까지 다소 틈이 생겼다. 틈은 쉼이고 숨이기에 꽃이 전해준 꽃마음을 조금씩 풀어 내 그 틈을 메꿔갈 것이다.
 
"누군가가 자기만큼 꽃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거다"라는 문장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바람과 나비와 벌이 오가는 거리에 있는 그 사람이 내겐 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何必絲與竹 하필사여죽
山水有淸音 산수유청음
무엇 때문에 실과 대나무가 필요하겠소
산수 속에 맑은 음악이 있는데

*중국 진나라 때의 시인 좌사의 '초은招隱'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실絲은 현악기를 대나무竹는 관악기를 이르는 말이다.

전해오는 말에 중국 양나라의 소명태자가 어느 날 뱃놀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를 따르던 문인 후궤라는 사람이 아첨하여 말하기를 "이만한 뱃놀이에 여인과 음악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하자 소명태자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좌사의 이 시구절만 읊었다고 한다.

볕 좋은 날 푸른 하늘 가운데 하얀구름 떠가고 바람따라 흔들리는 나무가지의 끊어질듯 이어지는 춤사위와 솔바람 소리에 화답하는 새 소리 들리는데 더이상 무엇을 더하여 자연의 소리에 흠뻑 빠진 감흥을 깨뜨린단 말인가.

거미줄에 걸린 낙엽이 느긋하게 바람에 의지하여 리듬에 몸을 실었다. 위태로움 보다는 한가로움에 주목한다.

산을 넘어오는 바람에 단풍보다 더 붉은 마음이 묻어 있다. 가을가을 하고 노래를 불렀던 이유가 여기에 있나 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흥타령
창밖에 국화를 심고국화밑에 술을 빚어 놓니
술익자 국화피자 벗님오니 달이 돋네
아이야 거문고 정 쳐라 밤 새도록 놀아 보리라
아이고 데고~음~~ 성화가 낫네
 
청계수 맑은 물은 음~무슨 그리 못 잊는지
울며 흐느끼며 흐르고 흐르건만무심타 청산이여
가는 줄 제 모르고구름은 산으로 돌고 청계만 흐르느냐
아이고 데고~음~~성화가 낫네
 
허무한 세상에 음~사람을 내일때 웃는길과 우는길을
그 어느 누가 매엿든고 뜻이나 일러주오
웃는길 찾으려고 헤매여 왔건만은 웃는길은 여엉 없고
아미타블 관세음보살님 지성으로 부르고불러
이생에 맺힌 한,후생에나 풀어 주시라 염불발원을 하여보세
아이고 데고~음~~성화가 낫네
 
만경창파수라도 음~못 다 씻은 청고수심을
위로주 한잔 술로 이제와서 씻엇으니
태밸이 이름으로 장취불성이 되었네
아이고 데고~음~~성화가 낫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속이요 이것 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로다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 가는 인생
부질 없다 깨려거든 꿈은 깨여서 무엇을 헐꺼나
아니고 데고~음~~ 성화가 낫네
 
빗소리도 임의소리 바람소리도 임의소리
아침에 까치가 울어데니 행여 임이 오시려나
삼경이면 오시려나 고운 마음으로
고운 임을 기다리건만 고운님은 오지않고
벼겟머리만 적시네
아이고 데고~음~~ 성화가 낫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을 다 보내고
낙목한천 찬 바람에.어이홀로 피엇느냐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
아이고 데고 ~음~~ 성화가 낫네
 
얄궂은 운명일세 사랑이 무어길래
원수도 못보는 눈이라면 차라리 생기지나 말것을
눈이 멀엇다고 사랑조차 멀엇던가
춘삼월 고운 바람에 백화가 피어나고
꽃송이마다 벌나비 찾아오고
사랑의 그 님을 찾아 얼기설리 맺으리라
아이고데고 ~음~~ 성화가 낫네
지척에 임을 두고 보지 못한 이 내 심정
보고파라 우리임아 안 보이네 볼 수 없네
자느냐 누웟느냐 애타게 불러 보것만
무정한 그 님은 간 곳이 없네
아이고 데고 ~음~~ 성화가 낫네
 
아깝다 내 청춘 언제 다시 올꺼나
철따라 봄은 가고 봄 따라 청춘가니
오난 백발을 어찌 할꺼나
아이고 데고~음~~성화가 낫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花笑聲未聽 화소성미청
鳥啼淚難看 조제루난간

꽃은 웃어도 소리를 들을 수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을 보기 어렵다

*추구집推句集에 실려 있는 한 구절이다.
환청일까. 꽃의 웃음소리 뿐 아니라 재잘거림도 듣는다. 피기 전부터 피고지는 모든 과정에서 환하고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는 웃음소리가 있다. 단지, 주목하지 않아서 모르고 지나칠 뿐.

어디 꽃 피는 소리 뿐이랴. 새 우는 소리, 해와 달이 뜨고지는 표정, 안개 피어나는 새벽강의 울음에 서리꽃에 서린 향기까지도 생생하다. 하니, 어느 한 철이라고 꽃 웃는 소리가 없을 때가 있을까.

내 마음 속
꽃피는 세상이 따로 있는 까닭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