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10년도 딱 9일이 남았다.
아이들은 곧 겨울방학에 들어갈테고 대부분의 가족들은 특별할 것도 없는 새해의 일출을 보러 갈 계획을 세울지도 모르겠다.  다른 그 어떤 날들과 비교해도 전혀 색다르지 않은 일출을 보러 동해안의 한 지점을 향해 다들 몰려가는 이유를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나도  한번 일출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그것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정동진으로.  새벽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는 괜히 왔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날은 더구나 구름이 많아 아침이 훤히 밝은 후에야 태양을 볼 수 있었다.

새해를 맞으며 새로운 결심을 한다는 것, 그리고 지난 해(年)를 돌이켜 본다는 것은 의미있고 유익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그것은 지극히 사적인 일이요, 차분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일이기에 오히려 여러 사람이 북적대는 일출의 명소보다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신의 서재와 같은 조용한 공간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년 이맘때면 경쟁적으로 진행되는 각종 수상식이나 2010년도 10대 뉴스 등과 같이 자신만의 2010년도 잊지 못할 사건 사고를 선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
또는 블로그를 하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겠지만 자신이 쓴 글 중에 베스트 쓰리를 뽑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기록해 보는 것도 좋겠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를, 또는 연극이나 음악회도 그렇게 순위를 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축하할 일이 있다면 내가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을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내게도 2010년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좋았던 일뿐 아니라 안좋은 일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실수로 벌어진 안좋은 일도 소중한 추억으로 기억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내린 결정은 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망치려고 최악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지나간 시간의 과오를 포근히 감싸안고 따뜻이 위로할 필요가 있다.  내 자신이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 시기인가.  우리는 그 위로의 힘으로 또 한 해를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생각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옛사람의 생각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생각의 방향이나 영역 면에서 일정한 틀을 유지하는 것은 굳어진 화석처럼 반복되는 관습 속에는 행동과 더불어 생각도 대물림되고 있음이다.

책에 비유하자면 초판에서 내용만 살짝 바뀐 개정증보판 정도라고나 할까?

이런 까닭에 과학의 놀라운 발전에 비해 인문학의 수준이 늘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진실이라고 믿어온  생각들은  여전히 진실이라 믿고 따르게 되고, 타인의 생각이 내 생각인 양 수용하는 데 너무도 익숙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스펙트럼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행위, 즉 '의심'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은 잊혀진 지 오래다.  그것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3이 무리수임을 증명하기 어렵듯이 우리가 잘 알고 있고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은 오히려 설명하기 어렵다.  간혹 우리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조금의 의심도 없이.

잘못된 내 생각의 몇몇을 바로잡아 본다.

 1. '기적'과 '절망'의 거리는 우리의 생각처럼 멀지 않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생각보다 일찍 오면 '기적'이 되고,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절망'이 된다.  
    우리는 그 거리를 알지 못한다.

2. 시간은 항상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우리는 가끔 게으름으로 뻗대면 시간이 천천히 흐를 것이라 믿는다. 
 

3. 중독은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과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중독이 좋아하는 대상으로 끌리는 현상이라 이해한다.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끊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4. 사랑을 지속하기 어려운 것은 일상에서 비이성적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과도하게 커졌기 때문이다.
   이성과 감정은 늘 균형을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다.

5. 우리는 돈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넘어선 탐욕을 미워하는 것이다.

6.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것은 분산된 가능성이 한곳으로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은 추락할 여력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바닥을 딛지 못하는 허공에서 우리는 희망을 말하곤 한다.

7. 사랑에 욕심이 개입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헌신할 것을 강요한다. 
   일말의 욕심도 없이 사랑할 수 있는 경우는 '신의 사랑'이 유일하다.

8. 버릇없는 행동은 예절을 지켜야 하는 까닭을 납득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
   우리는 그의 무례함만을 보고 있다.

9. 우리는 웃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웃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부러워 하는 것이다.
웃음에는 항상 노력이 따른다.

10. 삶이 두려울 때는 현실이 어려울 때나 행복할 때 둘 다에 해당한다.
    우리는 현실이 어려울 때만 삶이 두렵다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루종일 겨울비가 내렸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시험이 끝난 아이들과 작은 파티를 했다.
파티라야 퇴근길에 마트에 들려 사온 호빵과 음료수가 전부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맛있게 먹는다.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속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아이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
그들에게 대화는 시시껄렁한 농담이나 욕설 등 겉도는 이야기가 전부였을 터.
처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나의 어린 시절을 말해 주었다.
몇 마디 질문이 오가고 아이들은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이야기들을 조금씩 말한다.
가난이라는 환경은 좀체 적응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다.
아이들은 체념을 통하여 가난을 잊는다.
그것을 적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세상과 맞서 싸울 단 하나의 무기도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체념을 선택했나보다.
그들은 내게 많은 이야기가 담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내가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줄 수 있을까?
그들은 그렇게 믿는 듯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두렵고 부담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날이 차다.
아침을 먹고 배움을 위해, 엄밀히 말하면 기말고사 준비를 위해 나를 찾아올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벌써 2주째 집엘 가지 못하고 있다.
아들과 아내에게는 사정 설명을 하고 양해를 구한 터이지만 마음은 불편하다.

주변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했던 애초의 목표와 결심이 자꾸 흔들린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나의 예전 생활로의 회귀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나를 흔들고 있다.
회식이 잦은 12월.
나는 아이들을 핑계로 일이 끝남과 동시에 서둘러 나의 숙소로 돌아온다.
다른 사람들의 이해를 바라기 이전에 내가 한 발 더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나와 가장 가까운 아내와 아들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텐데 다른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고등학교 졸업 이후엔 쳐다 보지도 않던 정석을 다시 공부한다는 것도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은 천근만근이고 성당의 주일 미사도 자주 빠지는 현실.
이미 기말고사를 치른 학생들은 표정이 밝다.
덕분에 시험을 잘 보았다는 학생들과 그 부모님들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리 예상 못한 바는 아니지만, 내가 공부할 분량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도 조금씩 요령이 생기고 더불어 약간의 여유를 갖게 되리라던 추측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다.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어수선한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세이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윈터홀릭 두 번째 이야기 

윤창호 글.사진 / 시공사 / 2010년 11월 

다시 또 겨울. 어렸을 적 처음으로 설경을 보았을 때의 경이로운 잔상효과는 이름도 알 수 없는 설국의 나라, 그 환상의 장소로 나를 데려간다.  <닥터 지바고>의 바리키노씬처럼 잊혀지지 않는 그리움의 장면들. 

 

 

 

풍경의 깊이 사람의 깊이 

최일남 지음, 송영방 그림 / 문학의문학 / 2010년 11월  

만나야 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되고, 꽃 피워야 할 꽃은 반드시 피어나듯 어울렁 더울렁 살아가나 봅니다.  한 살 한 살 나이 들수록 사람의 아들은 자연을 닮아, 한줌의 흙으로 흩어지는 그날까지 그렇게 오래도록. 

 

 

 

  나는 아버지입니다 

딕 호이트.던 예거 지음, 정회성 옮김 / 황금물고기 / 2010년 11월  

세상이 두려울 때는 "아버지"를 찾는다. 삶이 힘들 때는 또 "아버지'를 찾는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세상릉 배우고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반성-되돌아 보고 나를 찾다 

김용택.박완서.이순원 외 지음 / 더숲 / 2010년 11월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습관처럼 또 반성을 한다.  그래서 사람이다.  반성하는 내용도 그 방식도 작년과 비슷하건만 나는 명년 이맘때 똑같은 반성을 아니할 것이라 장담하지 못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