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과 광기로 가득한 작품은 치밀한 구성을 통해 가능했다”
생각의 즐거움 | 에드거 앨런 포 에세이 | 송경원 옮김 | 하늘연못 | 286쪽 | 8500원


▲ 이탈리아 카툰 사이트(www.fanofunny.com)에 소개된
미국의 시인·소설가·비평가 에드거 앨런 포(1809~1849).
어둠에 싸인 인간의 내면 세계를 공포와 환상, 광기와 풍자 등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여준 에드거 앨런 포<그림>는 오늘날까지 그 독창성과 천재성을 인정받고 있다. 근대적 계몽주의가 제공하는 합리적 이성을 거부한 그는 유령과 악마가 출몰하는 광기의 세계와 환멸적인 현실로부터의 탈주 등을 단골 주제로 삼은 시대의 이단자였다.

이 책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포의 에세이집으로, 그의 문학세계의 근거와 시의 창작원리, 예술론에 관한 수려한 산문 다섯 편을 싣고 있다. 상상과 환상으로 가득찬 그의 작품 경향과는 달리 산문들은 치밀하고 논리적이다. 이를 통해 세상 만물의 이치는 물론 인간의 심리 상태와 행동 양식 모두를 이성적인 추론을 통해 분석하고 증명해보이는 문학세계를 보여준다. 심지어 환상과 몽유의 세계조차도!

그의 작품 창작의 원리를 밝히는 일은 팬터지, 추리, 공포문학의 원조로서 현대문학의 마르지 않는 문학적 원천의 한 줄기를 탐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포는 ‘강렬한 독창성’이란 짧은 글에서 자신의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한 단계 한 단계 상세히 밝히고 있다. “철저한 계산을 바탕으로 미리 결말까지 구상한 뒤 비로소 집필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분석 대상은 자신의 시 ‘갈가마귀(The Raven)’로 삼았으며, 시 창작이 ‘우연이나 직관’의 영역이 아니라 ‘수학문제의 정확성과 엄밀한 귀결’ 속에서 결말로 한 단계씩 나아가는 것임을 명확히 규명하고 있다.

‘갈가마귀’ 창작 과정에서 제일 먼저 고려한 것은 ‘길이’였다. 시는 한자리에 앉아 읽기에 너무 길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시의 길이는 강렬한 격정과 영혼의 고양을 끌어낼 수 있는 시적 효과의 정도와 수학적 관계를 가져야 한다. 간결함은 시적 효과의 강렬함과 정확히 비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100행 정도가 적당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다음은 전달하고자 하는 인상이나 효과. 가장 강렬하고 고양되고 순수한 쾌락은 미(美)를 관조하는 데 있었다. 그 미를 가장 잘 나타내는 정조는 ‘애상조’였다. 미는 종류를 막론하고 가장 발전된 상태에서는 섬세한 사람을 눈물짓게 만들기 때문이다.

포는 극적인 예술적 효과를 위해 ‘짧은 반복구’ 활용을 구상한다. 이 반복구는 가장 울림이 좋은 모음 ‘o’와 발음이 쉬운 자음 ‘r’이 들어간 단어 ‘다시는 안 돼요(nevermore)’가 선정된다. 각 연 끝에 ‘다시는 안 돼요’라는 말을 단조롭게 반복하는 불길한 ‘갈가마귀’의 등장 단계까지 다다른 시인은 최후의 질문을 던진다.

“인류 보편적으로 가장 애상적인 주제는 무엇일까?” 명백히, 죽음이 그 답이다. “그리고 언제 이 가장 애상적인 주제가 가장 시적인 것이 될까?” 미(美)에 가장 가깝게 연결되어 있었을 때였다. 그렇다면 물을 것도 없이 ‘아름다운 여인의 죽음’이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주제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것을 말하는 주체는 상(喪)을 당한 연인이 가장 적합했다. 작품의 장소는 고립된 사건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고, 주의를 집중시키는 정신적 힘까지 발휘하는 닫힌 공간으로 결정됐다. 실제 작품에서는 여인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침실이 배경이 됐다.

언뜻 보기에 불길한 암시와 환상으로 가득찬 듯이 보이는 시 ‘갈가마귀’의 이면에는 이렇듯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한 논리가 단단히 기초공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 창작노트의 비밀은 ‘겉으론 시인, 속으론 논리학자’라고 할 수 있다. ‘천상의 미’를 추구한 탐미주의적 작품은 수학적 정밀함을 곁들인 구성, 운율과 격조에 대한 배려, 비애적 정서의 환기 등의 요소가 빈틈없이 배열된 고차방정식을 통해 가능했다. 그는 “작품의 독창성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충동이나 직관의 문제가 아니다. 독창성은 세심하게 추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 최홍렬기자 hrchoi@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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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사랑타령은 모두… 욕정일 뿐이야”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 실비아 플라스 지음 / 김선형 옮김 / 문예출판사 / 709쪽 | 2만5000원

작년 11월, 나는 노스햄튼의 스미스 대학에서 포에트리 센터가 주관하는 낭독회를 열었다. 그곳에서 만난 그 대학의 교수들은 모두 나에게 닐슨 도서관에 가보자고 제의했다. 왜냐하면 그곳이 실비아 플라스의 기념관이며, 그곳엔 그녀의 일기 원본이 보관되어 있다고 했다.(물론 이번에 출간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중 절반 이상이 그녀의 스미스 대학의 학생 시절과 강사 시절을 다루고 있다.) 그들 중에 특히 여자 교수들은 실비아 플라스가 그 학교 출신이라는 것, 재학 기간 중 400편의 시를 썼다는 점 등을 기꺼워 하는 눈치였고, 그 대학에선 해마다 수많은 실비아 플라스 강좌와 그녀와 관련된 행사가 열리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 얘기 끝에 시인이 일기를 남기고 죽는 것이 좋은가, 아닌가에 대해서 농담 섞인 토론을 했다.

나는 자살한 예술가들의 신화를 믿지 않는다. 자살하지 않고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살한 예술가가 남긴 깨끗하고 넓은 백지 위에다 자꾸만 무언가를 쓰려고 한다. 그 예술가의 삶이 정지되었다고 하는데도 한참이나 남아 있는 백지가 부담스러워서일까. 아니면 여전히 살아가느라 지리멸렬함을 견디고 있는 자신의 백지가 한심스러워서일까. 어쨌든 사람들은 그 예술가가 남긴 백지 위에다 무언가를 끄적거려야만 자신의 생의 알리바이가 성립된다고 믿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심지어는 살아서 자신의 신화를 완성하려고 덤비는 예술가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요절한 예술가의 삶은 나날이 뚱뚱해지고, 그의 순진하고 단순했던 생의 시간들은 신화라는 덧칠로 괴팍해지고, 주인공도 없는데 나날이 길어지기까지 한다.

실비아 플라스도 그런 사후 대접을 받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서른 살에 어린 두 아이 앞에 먹을 것을 두고 가스 오븐에 머리를 처박아 자살한 여자의 짧은 생에 관해 무수한 글들이 쓰여졌다. 그녀의 삶은 난도질되었고, 부풀려졌으며, 소비되었다. 자살 사건은 수십 명의 정신분석의들에 의해 분석되면서, 끝없이 우리 앞에 반복 상연되었다.(심지어 BBC는 영화로 만들 거라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남성 세계에 의해 희생된 여성 시인의 전형, 혹은 갖가지 신화의 베일을 둘러쓴 여신이 되었다. 심지어 남편이었던 테드 휴즈는 아이들이 읽을까봐 두려운 나머지 자신과의 적나라한 관계가 드러나는 마지막 나날의 일기 한 권은 폐기한 채(그는 ‘그 당시 나는 망각이 생존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썼다.) 그녀의 일기를 출간했으며, 그녀가 죽은 후 35년이 지나서야 그녀를 기리는 88편의 시(‘생일 편지’)를 쓰기도 했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고백적 언술 방법과 여성으로서만이 발화할 수 있는 시적인 언어들, 그리고 그 언어들의 구축 원리를 스스로 체득한 자의 내면 세계를 보여줌과 동시에 어린 처녀에서 성숙한 성인으로 커가는 한 여성의 평범하나 입체적인 삶을 치사할 정도로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모든 생의 경험들을 이 일기 쓰기를 통해 시의 근원에 다가가는 몸짓으로 탈바꿈시킨다. 마치 그녀는 시를 위해 헌신하는 하녀, 창녀처럼 보이기까지 한다.(물론 덤으로 구역질 0나도록 처절한 세속적 욕망과 망설임들을 읽을 수 있다.)

“신경체계의 작용이란 얼마나 복잡하고도 오묘한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는 전화기의 전자음은 자궁벽을 따라 짜릿한 기대감을 전송한다. 전화선 너머 거칠고, 건방지고, 허물없는 그의 목소리에 창자가 꽉 죄어온다. 대중 가요의 ‘사랑’ 타령을 모두 ‘욕정’이라는 단어로 바꾼다면 아마 훨씬 더 진실에 가까워질 텐데.”(1959년 대학 신입생 시절의 일기)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의 한 대목을 읽을 때는 거대한 스미스 대학 강의실 한가운데서 온몸에 전율이 좌르륵 흐르는 걸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자살, 1953년 여름, 나는 그녀의 자살을 재현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다.”(1957년의 일기)

“글쓰기가 나의 건강이다. 차가운 자의식에서 벗어나 만사를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다면, 내게 어떤 의미인가, 내가 뭘 얻을 수 있는가를 따지지 않는다면.”(1959년의 일기)

이 일기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남성들이 써내려간 히스토리에 자신의 몸을 처단하는 히스테리로 반항한 한 여성시인의 시의 가면들이 오히려 진정성이었음을, 지독히 정상적이었음을 깨닫는 진한 아픔이 밀려온다. 그리고 죽어서도 남들에 의해 쓰여지고 있는 온갖 신화의 덧칠을 정직한 일기와 죽음의 형식으로 완성한 시들로 떨쳐내려는 여성시인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김혜순·시인·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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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벤치 2004-03-27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야 죽어도 결코 유명해질리야 없지만, 몇년에 한 번씩 일기 내지 잡문을 태워버리지요 십대 후반에 자살소동을 몇 번 벌인 이후로 생긴 버릇이지요, '죽음의 이유는 죽은 당사자만이 알 수있는 것, 타인은 남의 죽음을 수학공식처럼 풀어내지 말라 '는 유서를 남기고...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살고 있어요 몸은 좀 망가졌지만 ...
실비아 플라스의 시를 읽으면 예전의 제 목소릴 느끼곤 했지요
 

발터 벤야민의 ‘문예 이론’;영상시대의 미학 이론
발행일 : 2000-10-14 [Books]    기자/기고자 : 안인희
 
1980년대 말 동구권이 붕괴되는 것과 아울러 이데올로기와 연관된 서적들이 갑자기 일반의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부당하게 함께 논의에서 멀어진 인물 중에 발터 벤야민(1892~1940)도 들어있다.

90년대 들어 우리 사회에서 영상예술이 차지하는 위치가 급격하게 부상하면서 어쩌면 그는 가장 절실하게 논의되어야 할 미학자의 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악명 높은 난해한 문체가 걸림돌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에 들어있는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하나만 해도 작게는 소설과 영화의 문제에서 크게는 정보시대의 기본적 속성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깊이 있는 분석을 담고 있다.

물론 ‘문예이론’이라는 제목이 어딘지 시대에 맞지 않는 느낌을 주는 것이 현실의 사정이다. 따져보면 80년대에 너무 ‘이론’을 좋아한 후유증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실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문학작품 말고도 영화와 환상소설과 게임의 형태를 한 이야기들. 인터넷의 유머와 심지어 TV 광고, 그리고 토크쇼에 이르기까지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이야기 대신에 여러 매체를 이용한 각종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형태야 어떻든 이들 수많은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상상력이 반영되어 있고 오래 된 이야기의 구조가 들어있다.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는 모티브는 반복되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야기 구조와 상상력은 바로 문예학의 문제가 아니던가.

편역자가 세심하게 선별해 놓은 이 미학 에세이 책에는 브레히트, 카프카, 프루스트, 보들레르 등 몇몇 작가들에 대한 평론과 함께, 이야기와 이야기꾼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상황의 변화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들어있다. 입으로 이야기를 전하던 고대의 이야기꾼, 인쇄매체를 통해 복제되지만 고독한 개인에 의해 창작·수용되는 소설의 상황, 이어서 집단으로 창작과 수용이 이루어지는 영상시대의 상황까지 펼쳐지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사건정보를 전하는 신문이 새로움, 간결성, 이해하기 쉬움, 사건들간의 연관성이 없음 등 저널리즘 속성을 통해서 독자의 상상력을 마비시킨다는 관찰이다. 20세기 독일 최고의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지만 대학으로 가는 길이 막힌 채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는 ‘자유’ 문필가로 남았던 사람의 관찰이니 분명 일리가 있을 것이다.

문학의 상황뿐 아니라 미술품과 사진에 대한 관찰도 이루어진다. 화가가 보여주는 그림은 ‘아우라’를 가진 전체적인 것이지만, 카메라맨이 잡아낸 영상은 여러 부분으로 쪼개서 촬영한 단편적인 영상들을 편집을 통해서 다시 조립해낸 것이다.

‘정신분석을 통해서 충동의 무의식 세계를 알게 되었듯이 카메라의 개입을 통해서 우리는 시각(시각)의 무의식 세계를 알게 되었다. ’ 예를 들면 운동선수의 동작 하나 하나를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미술작품 앞에서 깊은 관조적인 침잠에 잠겼다면 오늘날 관객은 움직이는 영상에서 정신을 분산시키는 오락을 기대한다. 요즘 흔히 거론되는 사용자(User)로서의 독자 및 관객의 속성 일부를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쉴러, 헤겔, 니체, 루카치, 아도르노 등 독일 미학 전통의 맥락에 서있는 유태인 벤야민은 나치를 피해 도망치다가 길이 막히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30년대에 주로 쓰여진 이 글들이 현재 우리의 상황까지도 부분적으로 짚고 있어서 21세기를 사는 내게도 직접적인 호소력을 가지는 데다가, 드물지 않게 튀어나오는 촌철살인(촌철살인)의 명문장들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곤 했다.

/안인희·번역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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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갈대 > 심리학의 학파

심리학의 학파



구성주의(constructivism) -

구성주의 는 철학, 심리학, 두뇌공학에 뿌리를 둔 지식의 이론으로서, 지식은 개인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아가 지식의 구성 과정에서 개인의 능동적 참여뿐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의 상호작용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구성주의 심리학의 역사적 발단을 Jean Piaget (1896-1980)와 Lev Vygotsky (1896-1934)의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두 이론을 중심으로 본 연구에서는 먼저 구성주의의 태동을 심리학의 역사적 맥락에서 간략히 살펴보았으며, 이어서 구성주의의 다양한 입장들을 살펴보았다. 그 다음에는 개인적 및 사회적 구성주의 입장을 설명하는 주요 개념 및 전제, 이들의 지식 구성의 방식 혹은 특성, 그리고 지식 발달의 심리적 과정에 대한 해석과 기제를 고찰하고 분석하였다.

최초의 심리학 학파인 구성주의는 19세기에 생겨났다. 구성주의자들은 물질을 분석하고 세포, 원자, 분자로 분류하는 생물학자, 화학자, 물리학자들의 영향을 받고 태어났다. 이러한 영향으로 구성주의자들은 마음을 구성요소를 통해 분석하고 이러한 구성요소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구성주의는 Wundt의 제자인 Titchener에 의해 이름 붙여졌고 일반화되었습니다. 영국인인 Titchener는 코넬 대학의 학부 교수가 되면서 미국에 구성주의를 소개하게 됩니다. 마음을 연구하기 위해서 그는 정신의 기본 요소라고 생각한 심상, 느낌, 감각의 세 가지 요소로써 복잡한 정신 경험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분석적 내성법(analystic introspection)'을 사용하였다. 내성법이란 자신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게 하는 방법으로써 초창기의 심리학에서 많이 쓰였다. 그냥 자기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가를 보고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분석적 내성법을 이용한 전형적인 한 연구에서 Titchener는 피험자에게 소리와 같은 자극을 제시한 후에 피험자로 하여금 그 소리로 인해 생겨나는 심상, 느낌, 감각에 대해 보고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분석적 내성법은 꼼꼼하고 지루한 절차였죠. 피험자가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만 번의 내성을 하여야 했다. 그헌 후에 1~2초간 주어지는 자극에 대한 반응의 내성적 보고를 위해 20분이나 소요되었다.

Titchener의 학문적 기여 중에는 미각을 분석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를 통해 미각이 짠맛, 쓴맛, 단맛, 신맛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구성주의는 최초로 등장한 학파인 반면 역시 가장 먼저 모습을 감춘 학파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연구가 연구실에만 제한이 되었고, 또한 이성적이고 언어적으로 능숙한 성인의 의식적인 정신적 경험을 연구하는 데 제한된 내성법에 지나치게 의존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일반화의 문제라고 그러는데 연구실에서 혹은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들이 실제 생활에서도 비슷하게 예측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심리학자들은 특정한 자극에 대한 내성법적 보고가 자극의 변화에 대해 일관되지 못하기 때문에 내성법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과학의 필수요건인 객관성이 충족되지 못했다.

비슷한 자극에 대한 내성법적 보고서는 피험자에 따라 일관성을 보이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내성적 활동이 보고되어지는 실제의 의식적 경험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비록 분석적 내성법의 단점이 구성주의자들의 소멸을 초래하기는 하였지만 오늘날 많은 심리학자들은 피험자들의 정신과정에 대한 언어적 보고를 이용한 연구 절차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연과학처럼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는 없다.


기능주의
- 기능주의라 불리는 미국의 심리학파는 구성주의에 대한 대응으로 생겨났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정선의 구성 요소를 분석함에 있어서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이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비판했다. 즉, 어린이, 정신장애자, 동물 등은 대상에서 제외했고, 또한 실험실에서의 연구에만 초점을 두었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정신이 인간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만일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이 맛에 대한 정신적 요소를 연구한다면,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다른 맛을 구별하는 능력이 어떻게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연구할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전적 형질의 역할을 강조하는 Darwin의 진화 이론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의식적인 정신이 인류의 생존을 증진시키기 때문에 의식적인 정신은 진화한다고 가정하였다. 우리의 의식적인 정신은 우리가 현재의 상황을 평가할 수 있게 해주고, 그에 부합하는 최적의 행동을 선택하도록 한다.

가장 유명한 기능주의 심리학자는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철학자인 William James이다. 제임스는 여러 가지의 지능 분야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심리학에 대한 접근을 살펴보면 제임스는 정신을 실제 조류의 흐름같이 별개의 조각들로 나뉘어 질 수 없는 하나의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이 선호했던 일종의 분석적 연구는 정신(의식의 흐름)을 연구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것은 결국 Wundt와의 경쟁을 야기시키게 된다.

분트가 라이프니찌 대학에 연구소를 세운 1875년에 제임스는 하버드 대학에 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러나 분트와는 달리 제임스는 연구소를 실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증명을 위해서 사용하였다. 실제로 제임스는 연구소에서의 연구에는 관심이 없었고 실험실에서의 제한된 행동이나 정신 경험에 대한 연구에 국한시키는 심리학자들을 비판하였다. 대신에 제임스는 심리학자들에게 실험실 밖의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연구하라고 촉구했다. 비록 얼마 안되는 실험을 하였지만 제임스는 심리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고전이 된 그의 저서 <심리학의 원칙>은 철학과 물리학 그리고 심리학의 상호관계를 다루고 있다.

제임스는 또한 감정의 이론에도 공헌하였고 그의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 연구에서 사용되는 실험 대상들을 동물이나 아이들뿐 만 아니라 정신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하였다. 또한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에서의 주요 문제들에 기억, 사고, 성격과 같은 주제들까지 포함시켰다. 그리고 연구를 실험실에 국한 시켰던 구성주의자들과는 달리,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베이컨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들의 연구를 일상생활에 적용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응용 심리학 분야의 창시자로 간주되어지는 사람은 Munsterberg였다.

1892년 하버드 대학에서 심리학 연구소를 운영하는 데 싫증을 느낀 제임스는 분트 아래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독일의 유명한 심리학자가 된 Munsterberg에게 연구소를 위임하였다. Munsterberg는 미국에서 명성을 얻게 되는데, 1898년에는 미국 심리학회 회장이 되었고 1899년에는 하버드 대학의 철학과 심리학부의 대표가 되었으며, 1907년에는 미국 철학협회 회장이 되었다.

20세기의 처음 10년 동안 심리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은 제임스에 버금간다. 그는 많은 저서와 연설을 통하여 심리학을 대중화시켰고 많은 저명한 인사들을 친구로 삼았다. 거기에 H. G. Wells 같은 작가와 카네기와 같은 실업가, 그리고 루즈벨트 대통령도 포합되어 있었다. Munsterberg는 비록 하버드 대학의 연구소를 운영하기 위해 채용되었지만 응용 심리학의 창시자로 가장 많은 공헌을 하게 된다. 그의 연구는 심리학이 법, 산업, 교육, 심리치료, 그리고 영화 비평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저술을 남기게 하였다.

Munsterberg와 그의 동료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을 연구실 밖으로 옮겨 일상 생활에 적용시키고자 하였다. 그들은 오직 심리학이 연구실에 남아있을 때만 심리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Titchener 같은 구성주의 심리학자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심리학자들은 연구 방법들, 연구 실험 대상들,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연구 장치를 발전시킨 기능주의자들을 지지하였다.


행동주의(Behaviorism) -
기능주의적 교수에서 동물 심리학 분야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Watson(1878~1950)은 당신 심리학 연구 방향의 주류이었으며 현대 심리학 발달 초기에 중용한 역할을 했던 의식 심리학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한다. 그는 의식이니 정신이니 하는 개념들을 중세시대의 유물인 미신이라고 단정했다. 즉 이러한 개념은 영혼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정의될 수는 없거니와 측정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막연한 개념을 토대로 하는 과학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은 객관적인 관찰이 가능하고 측정할 수 있는 행동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심리학을 행동주의(Behaviorism) 심리학이라고 하는데, 행동주의 심리학은 Povlov(1849~1936)가 현재의 행동을 과거에 학습한 영향의 결과로 설명한 것에 영햐을 받았으면 숀다이크의 고양이 실험(1898)과 스키너의 쥐의 실험(1838)과 같은 동물학습실험에 의해 과학적 측면이 더욱 견고히 되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모든 행동이 조건형성(conditioning)의 결과로 보고 인간이해의 기본 공식 자극-반응(stimulus-response)이라고 하여 S-R 심리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단순 함수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동물의 행동에 있어서는 그 관계가 성립될 수도 있으나 인간의 행동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음에 따라 Woodworth(1869~1962)는 자극과 반응 공식사이에 유기체(organism)를 삽입하여 S-O-R의 공식을 제시하며 이 유기체의 변인, 즉. 인간의 마음과 정신과정이 자극과 반응 사이를 연결하여 반응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 그는 신행동주의 심리학파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사상은 1950년대까지 심리하계와 미국 사회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나 1960년대에 들어와서 인간은 자극을 받아 행동한다는 수동적 인간관에서 벗어나, 인간은 환경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적극적인 존재로 보는 경향이 강조됨에 따라 쇠퇴하게 되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Watson의 이 대담한 발언은 반세기 동안이나 심리학 분야를 지배했던 행동주의라는 학파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Watson은 기능주의 심리학자들과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이 공유했던, 정신이 심리학의 적절한 연구대상이라는 점에 반대하였습니다. 러시아의 저명한 심리학자 Pavlov는 그의 연구소에서 정신에 대한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해고시킬 것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Watson과 파블로프같은 심리학자들에게 심리학 연구의 올바른 대상은 관찰가능한 행동이었다. 정신의 경험과는 달리 행동은 측정되어지고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서 증명되어 질 수 있는 것이였다. 예를 들어, 어떤 심리학자들은 배고픔에 대한 정신적 경험을 연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관찰 가능한 섭식 행동을 연구하는 것을 선호할 것입니다. 비록 Watson은 정신 과정이 행동을 야기시킨다는 것은 부정했지만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배고픔이라고 불리는 정신적 경험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했던 반면에 섭식을 야기시키는 정신적 경험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배고픈 느낌같은 정신에서 섭식의 원인을 찾는 대신에 저혈당과 같은 신체 혹은 식욕을 자극하는 향기 같은 환경에서 원인을 찾아 설명하려고 하였다.


형태주의(Gestalt) -
Watson이 미국에서 행동주의를 주창할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는 Wertheimer(1880~1943)가 1912년에 정신과정의 조직과 관계되는 형태심리학을 발표했다.

마음을 구성 요소들로 분석해 내려는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의 시도와 인간을 환경적 반응에 대한 수동적인 반응자로 보려 했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견해는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을 창시한 독일의 심리학자 Wertheimer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된다.

Wertheimer는 인간이란 개별적 부분의 조합을 인식하기보다는 전체로 인식하는 존재라는 그의 믿음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게슈탈트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영어에서의 Form 혹은 Shape에 해당된다. 형태주의 혹은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다."라고 단언하였고, 이런 기본적인 가정 때문에 Wertheimer는 정신적 경험을 그것의 각각의 부분으로 분석해 내려는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의 시도를 벽돌과 시멘트의 심리학이라고 비웃었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시작은 1912년 Wertheimer의 여름 휴가 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기차 여행 동안 파이 현상(phi-phenominon,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 대한 생각에 빠져 들었다. 그는 정거장에 닿자 기차에서 내려 장난감 섬광촬영장치(stroboscope, 마치 영화처럼 서로 약간씩 다른 그림들을 연속적으로 빠르게 제시함으로써 움직임의 환상을 만들어 내는 기계)를 샀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돌아와 그것보다 더 정교한 장치를 만들어 그의 연구를 계속 하게 된다.

Wertheimer는 연속적으로 두 줄의 빛을 발하는(한 번은 수직으로 그 다음은 수평으로) 순간 노출기를 이용했다. 두 빛 사이의 시간 간격이 적당하면 한 줄의 빛이 수직에서 수평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네온사인 같은 것이죠. Wertheimer에 따르면 정신은 부분적인 자극에 대하여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들을 응집된 전체로서 조직화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인지(認知)는 개별적인 감각 이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적 입력의 활동적인 조종자로서 정신을 취급했던 Kant의 개념에 따른 것이었다. 만약 정신이 부분적인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한다면 Wertheimer의 증명을 관찰했을 때 우리는 처음에 수직의 라인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음에 수평의 라인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정신이 부분의 합과는 다른 전체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다른 예로 애국가와 같은 멜로디를 생각해 봅시다. 그것이 노래로 불리든 허밍으로 되든 휘파람으로 되든, 혹은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든, 어떠한 수단으로 연주되든지 상관없이 인지될 수 있다. 따라서 멜로디는 특정한 원천에 의하여 발생되는 특정한 감각 연속의 결과가 아니다. 멜로디는 정신의 다양한 원천에 의하여 발생될 수 있는 감각들의 정신의 활동적 과정에 의지한 것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감각들을 의미있는 지각들로 조직함에 있어서 정신의 활동적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심리학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게 된다.

비록 게슈탈트 심리학이 Wertheimer에 의하여 주창되었지만 그의 동료인 Koffka와 Kohler에 의하여 대중화되었다. 이들은 나치 정권에서 추방되어 미국에서 연구활동을 계속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은 나치가 사라진 후 게슈탈트 심리학을 미국에 소개했습니다. 쾰러는 형태주의자들과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최고의 측면들을 포함한 심리학을 만들어 내야한다고 하였다. 인지주의적 관점을 선호했던 심리학자들은 쾰러의 조언을 따랐다. 또한 독일의 심리학자 Lewin은 미국으로 이민한 후 게슈탈트 심리학의 원리들을 리더쉽 형태, 소수 그룹 행동의 원칙 그리고 사회 충돌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활용하는 연구를 활성화시키게 되었다.


정신분석(Psychoanalisys) -
Sigmund Freud(1856~1939)의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은 신경증적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임상겸험, 사례연구를 통하여 인간의 행동이나 사고는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여 무의식을 분석해야만 인간이해가 완정하다고 중장한다. 정신분석학파는 의식의 내용이 심리학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론을 비판하며, 의식보다는 더 깊은 심리적 영역인 무의식 영역을 연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게슈탈트 심리학과 다른 초기의 심리학파가 대학에서 시작되었던 것과는 달리 정신분석은 의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Sigmund Freud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신경과 의사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정신의 정복자라고 말할 정도로 이 분야의 독보적인 사람이었다. 인류를 우선 동물로 보았던 프로이드의 견해는 다윈의 진화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신분석은 신체적 고통을 겪는 호환자 예를 들어 마비, 실어증, 신체 감각의 상실같이 명백하게 병인을 알지 못하는 환자들에 대한 프로이드의 치료 시도에서 발전하였다. 전환성 히스테리 (conversion histeria)의 징후를 겪는 환자들에 대한 그의 치료에 기초하여 프로이드는 장애란 성적 흥미에 대한 사회의 금기에 의하여 야기되는 성에 대한 무의식들의 충돌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충돌들은 때때로 환자들에게 금기 행동에 관련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구실을 제공하는 전환성 히스테리에서 볼 수 있는 신체적 증후들로 전환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프로이드의 환자들에 대한 사례 연구들은 그에게 대개 성과 공격성에 관련이 있는 무의식적 충동들이 인간 행동의 제일가는 동인(動因)이 된다고 추측하였다. 비록 무의식적 동기들의 중요성에 대한 프로이드의 생각들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을 심리학에 포함시킨 최초의 연구자였다. 프로이드는 사람의 행동이 정상이건 비정상이건 간에 때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심리학적 동기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 생각은 정신 결정론이라고 불리는데, 그의 책 <일상 생활에서의 정신병리학>에서 그는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들이 정신 결정론에 의하여 얼마나 명백히 설명될 수 있는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는 인간은 주로 성과 같은 무의식에 의하여 동기화된다고 함으로써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동 초기의 경험들이 성격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주장을 펴기도 하였다. 프로이드는 무의식에 저장된 아동 초기 경험의 기억들이 인생을 통하여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이런 무의식적 영향은 많은 인간 행동의 비논리성과 심리학적 장애의 기원을 설명해준다고 하였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은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프로이드는 심리학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중 한명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많은 학자로부터의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비평가들은 무의식이 아무런 명확한 원인이 없는 행동을 설명하는 데 너무 쉽게 사용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정신분석가들은 성적 추동, 무의식적 과정, 그리고 아동 초기의 경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적합한 연구 자료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프로이드는 그의 이론을 실험적으로 측정한 적이 없다. 대신에 그는 환자들과 면담을 한 후에 적었던 그의 기록에 자신의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게다가 프로이드는 심리적 장애 상태에 있는 소수의 사례 연구 결과를 모든 이들에게 일반화시킴으로서 과학적 접근과는 동떨어져 있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프로이드의 견해는 꿈, 창조, 동기, 발달, 성격, 그리고 심리요법 등과 같이 다양한 주제들의 심리학적 연구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와 함께 프로이드의 생각은 예술, 문학, 영화 등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심리주의적'이라는 말은 바로 프로이드 심리학을 지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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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갈대 >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위한 30가지 법칙

1. 호감 가는 태도로 상대방을 대한다.

2. 본인과 친근하면 타인과도 친근할 수 있다.

3. 상대방에게 요구할 때는 우선 이익을 준다.

4. 질투나 증오의 감정은 다른 에너지로 전환한다.

5. 상상 속의 진실한 대화는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6. 당신의 성의를 상대방은 성가시게 느낄 수도 있다.

7. ‘친구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친구를 얻지 못한다.

8. 상대방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생각한다.

9. 험담을 들으면 그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10. 감정을 훌륭하게 발산하는 방법을 습득한다.

11. 호감을 사려면 먼저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12.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이루어진다.

13. 억울한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된다.

14. 용서하고 축복할 줄 알아야 다음에 좋은 상대를 만날 수 있다.

15. 긍정적인 생각은 최악의 상황을 최상의 상황으로 바꾼다.

16. 나의 두려움은 상대방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

17. 순수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실수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

18. 당혹감과 수고, 번민에 정력을 소비하지 마라.

19. 인간 관계에 자신이 없으면 작은 성공을 경험해 보라.

20.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대중의 판단에 휘둘리지 않는다.

21.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 설득의 최대 무기이다.

22. 험담은 그 자리에 없는 상대방에게도 전달된다.

23. 무심코 내뱉은 남의 말 때문에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지 말라.

24. 어설프게 이기기보다 지는 것이, 좋은 인간관계에 보탬이 된다.

25. 누구와 사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좌우된다.

26. 현재의 생각이 올바르다면 과거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27.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나쁘다.

28. 부모와의 관계가 지나치게 밀접하면 타인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하다.

29.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하면 비참한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30. 고통을 함께 나눌 존재가 있다면 파괴적인 행동은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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