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갈대 > 심리학의 학파

심리학의 학파



구성주의(constructivism) -

구성주의 는 철학, 심리학, 두뇌공학에 뿌리를 둔 지식의 이론으로서, 지식은 개인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에 의해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아가 지식의 구성 과정에서 개인의 능동적 참여뿐 아니라 사회적 맥락에서의 상호작용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구성주의 심리학의 역사적 발단을 Jean Piaget (1896-1980)와 Lev Vygotsky (1896-1934)의 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 두 이론을 중심으로 본 연구에서는 먼저 구성주의의 태동을 심리학의 역사적 맥락에서 간략히 살펴보았으며, 이어서 구성주의의 다양한 입장들을 살펴보았다. 그 다음에는 개인적 및 사회적 구성주의 입장을 설명하는 주요 개념 및 전제, 이들의 지식 구성의 방식 혹은 특성, 그리고 지식 발달의 심리적 과정에 대한 해석과 기제를 고찰하고 분석하였다.

최초의 심리학 학파인 구성주의는 19세기에 생겨났다. 구성주의자들은 물질을 분석하고 세포, 원자, 분자로 분류하는 생물학자, 화학자, 물리학자들의 영향을 받고 태어났다. 이러한 영향으로 구성주의자들은 마음을 구성요소를 통해 분석하고 이러한 구성요소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구성주의는 Wundt의 제자인 Titchener에 의해 이름 붙여졌고 일반화되었습니다. 영국인인 Titchener는 코넬 대학의 학부 교수가 되면서 미국에 구성주의를 소개하게 됩니다. 마음을 연구하기 위해서 그는 정신의 기본 요소라고 생각한 심상, 느낌, 감각의 세 가지 요소로써 복잡한 정신 경험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분석적 내성법(analystic introspection)'을 사용하였다. 내성법이란 자신의 마음 속에 일어나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게 하는 방법으로써 초창기의 심리학에서 많이 쓰였다. 그냥 자기 마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가를 보고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분석적 내성법을 이용한 전형적인 한 연구에서 Titchener는 피험자에게 소리와 같은 자극을 제시한 후에 피험자로 하여금 그 소리로 인해 생겨나는 심상, 느낌, 감각에 대해 보고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분석적 내성법은 꼼꼼하고 지루한 절차였죠. 피험자가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만 번의 내성을 하여야 했다. 그헌 후에 1~2초간 주어지는 자극에 대한 반응의 내성적 보고를 위해 20분이나 소요되었다.

Titchener의 학문적 기여 중에는 미각을 분석한 연구가 있다. 이 연구를 통해 미각이 짠맛, 쓴맛, 단맛, 신맛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구성주의는 최초로 등장한 학파인 반면 역시 가장 먼저 모습을 감춘 학파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연구가 연구실에만 제한이 되었고, 또한 이성적이고 언어적으로 능숙한 성인의 의식적인 정신적 경험을 연구하는 데 제한된 내성법에 지나치게 의존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일반화의 문제라고 그러는데 연구실에서 혹은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들이 실제 생활에서도 비슷하게 예측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심리학자들은 특정한 자극에 대한 내성법적 보고가 자극의 변화에 대해 일관되지 못하기 때문에 내성법은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과학의 필수요건인 객관성이 충족되지 못했다.

비슷한 자극에 대한 내성법적 보고서는 피험자에 따라 일관성을 보이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내성적 활동이 보고되어지는 실제의 의식적 경험 자체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비록 분석적 내성법의 단점이 구성주의자들의 소멸을 초래하기는 하였지만 오늘날 많은 심리학자들은 피험자들의 정신과정에 대한 언어적 보고를 이용한 연구 절차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연과학처럼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는 없다.


기능주의
- 기능주의라 불리는 미국의 심리학파는 구성주의에 대한 대응으로 생겨났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정선의 구성 요소를 분석함에 있어서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이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비판했다. 즉, 어린이, 정신장애자, 동물 등은 대상에서 제외했고, 또한 실험실에서의 연구에만 초점을 두었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정신이 인간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느냐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만일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이 맛에 대한 정신적 요소를 연구한다면,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다른 맛을 구별하는 능력이 어떻게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연구할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환경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전적 형질의 역할을 강조하는 Darwin의 진화 이론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의식적인 정신이 인류의 생존을 증진시키기 때문에 의식적인 정신은 진화한다고 가정하였다. 우리의 의식적인 정신은 우리가 현재의 상황을 평가할 수 있게 해주고, 그에 부합하는 최적의 행동을 선택하도록 한다.

가장 유명한 기능주의 심리학자는 미국의 심리학자이며 철학자인 William James이다. 제임스는 여러 가지의 지능 분야에 대하여 연구하였다. 심리학에 대한 접근을 살펴보면 제임스는 정신을 실제 조류의 흐름같이 별개의 조각들로 나뉘어 질 수 없는 하나의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이 선호했던 일종의 분석적 연구는 정신(의식의 흐름)을 연구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것은 결국 Wundt와의 경쟁을 야기시키게 된다.

분트가 라이프니찌 대학에 연구소를 세운 1875년에 제임스는 하버드 대학에 연구소를 만들었다. 그러나 분트와는 달리 제임스는 연구소를 실험을 위해서가 아니라 증명을 위해서 사용하였다. 실제로 제임스는 연구소에서의 연구에는 관심이 없었고 실험실에서의 제한된 행동이나 정신 경험에 대한 연구에 국한시키는 심리학자들을 비판하였다. 대신에 제임스는 심리학자들에게 실험실 밖의 세상에서 인간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연구하라고 촉구했다. 비록 얼마 안되는 실험을 하였지만 제임스는 심리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고전이 된 그의 저서 <심리학의 원칙>은 철학과 물리학 그리고 심리학의 상호관계를 다루고 있다.

제임스는 또한 감정의 이론에도 공헌하였고 그의 이론은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 연구에서 사용되는 실험 대상들을 동물이나 아이들뿐 만 아니라 정신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하였다. 또한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에서의 주요 문제들에 기억, 사고, 성격과 같은 주제들까지 포함시켰다. 그리고 연구를 실험실에 국한 시켰던 구성주의자들과는 달리,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베이컨의 전통을 이어받아 그들의 연구를 일상생활에 적용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응용 심리학 분야의 창시자로 간주되어지는 사람은 Munsterberg였다.

1892년 하버드 대학에서 심리학 연구소를 운영하는 데 싫증을 느낀 제임스는 분트 아래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독일의 유명한 심리학자가 된 Munsterberg에게 연구소를 위임하였다. Munsterberg는 미국에서 명성을 얻게 되는데, 1898년에는 미국 심리학회 회장이 되었고 1899년에는 하버드 대학의 철학과 심리학부의 대표가 되었으며, 1907년에는 미국 철학협회 회장이 되었다.

20세기의 처음 10년 동안 심리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은 제임스에 버금간다. 그는 많은 저서와 연설을 통하여 심리학을 대중화시켰고 많은 저명한 인사들을 친구로 삼았다. 거기에 H. G. Wells 같은 작가와 카네기와 같은 실업가, 그리고 루즈벨트 대통령도 포합되어 있었다. Munsterberg는 비록 하버드 대학의 연구소를 운영하기 위해 채용되었지만 응용 심리학의 창시자로 가장 많은 공헌을 하게 된다. 그의 연구는 심리학이 법, 산업, 교육, 심리치료, 그리고 영화 비평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저술을 남기게 하였다.

Munsterberg와 그의 동료 기능주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을 연구실 밖으로 옮겨 일상 생활에 적용시키고자 하였다. 그들은 오직 심리학이 연구실에 남아있을 때만 심리학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 Titchener 같은 구성주의 심리학자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심리학자들은 연구 방법들, 연구 실험 대상들, 그리고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연구 장치를 발전시킨 기능주의자들을 지지하였다.


행동주의(Behaviorism) -
기능주의적 교수에서 동물 심리학 분야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Watson(1878~1950)은 당신 심리학 연구 방향의 주류이었으며 현대 심리학 발달 초기에 중용한 역할을 했던 의식 심리학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한다. 그는 의식이니 정신이니 하는 개념들을 중세시대의 유물인 미신이라고 단정했다. 즉 이러한 개념은 영혼이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정의될 수는 없거니와 측정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막연한 개념을 토대로 하는 과학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은 객관적인 관찰이 가능하고 측정할 수 있는 행동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심리학을 행동주의(Behaviorism) 심리학이라고 하는데, 행동주의 심리학은 Povlov(1849~1936)가 현재의 행동을 과거에 학습한 영향의 결과로 설명한 것에 영햐을 받았으면 숀다이크의 고양이 실험(1898)과 스키너의 쥐의 실험(1838)과 같은 동물학습실험에 의해 과학적 측면이 더욱 견고히 되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모든 행동이 조건형성(conditioning)의 결과로 보고 인간이해의 기본 공식 자극-반응(stimulus-response)이라고 하여 S-R 심리학이라고 한다. 그러나 극단적인 단순 함수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동물의 행동에 있어서는 그 관계가 성립될 수도 있으나 인간의 행동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음에 따라 Woodworth(1869~1962)는 자극과 반응 공식사이에 유기체(organism)를 삽입하여 S-O-R의 공식을 제시하며 이 유기체의 변인, 즉. 인간의 마음과 정신과정이 자극과 반응 사이를 연결하여 반응을 최종적으로 결정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 그는 신행동주의 심리학파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사상은 1950년대까지 심리하계와 미국 사회에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나 1960년대에 들어와서 인간은 자극을 받아 행동한다는 수동적 인간관에서 벗어나, 인간은 환경을 파악하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적극적인 존재로 보는 경향이 강조됨에 따라 쇠퇴하게 되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Watson의 이 대담한 발언은 반세기 동안이나 심리학 분야를 지배했던 행동주의라는 학파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Watson은 기능주의 심리학자들과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이 공유했던, 정신이 심리학의 적절한 연구대상이라는 점에 반대하였습니다. 러시아의 저명한 심리학자 Pavlov는 그의 연구소에서 정신에 대한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해고시킬 것이라고까지 하였습니다.

Watson과 파블로프같은 심리학자들에게 심리학 연구의 올바른 대상은 관찰가능한 행동이었다. 정신의 경험과는 달리 행동은 측정되어지고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서 증명되어 질 수 있는 것이였다. 예를 들어, 어떤 심리학자들은 배고픔에 대한 정신적 경험을 연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관찰 가능한 섭식 행동을 연구하는 것을 선호할 것입니다. 비록 Watson은 정신 과정이 행동을 야기시킨다는 것은 부정했지만 정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는 배고픔이라고 불리는 정신적 경험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했던 반면에 섭식을 야기시키는 정신적 경험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배고픈 느낌같은 정신에서 섭식의 원인을 찾는 대신에 저혈당과 같은 신체 혹은 식욕을 자극하는 향기 같은 환경에서 원인을 찾아 설명하려고 하였다.


형태주의(Gestalt) -
Watson이 미국에서 행동주의를 주창할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독일에서는 Wertheimer(1880~1943)가 1912년에 정신과정의 조직과 관계되는 형태심리학을 발표했다.

마음을 구성 요소들로 분석해 내려는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의 시도와 인간을 환경적 반응에 대한 수동적인 반응자로 보려 했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견해는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을 창시한 독일의 심리학자 Wertheimer에 의해 비판을 받게 된다.

Wertheimer는 인간이란 개별적 부분의 조합을 인식하기보다는 전체로 인식하는 존재라는 그의 믿음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게슈탈트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는 영어에서의 Form 혹은 Shape에 해당된다. 형태주의 혹은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다."라고 단언하였고, 이런 기본적인 가정 때문에 Wertheimer는 정신적 경험을 그것의 각각의 부분으로 분석해 내려는 구성주의 심리학자들의 시도를 벽돌과 시멘트의 심리학이라고 비웃었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시작은 1912년 Wertheimer의 여름 휴가 때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기차 여행 동안 파이 현상(phi-phenominon,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데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 대한 생각에 빠져 들었다. 그는 정거장에 닿자 기차에서 내려 장난감 섬광촬영장치(stroboscope, 마치 영화처럼 서로 약간씩 다른 그림들을 연속적으로 빠르게 제시함으로써 움직임의 환상을 만들어 내는 기계)를 샀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돌아와 그것보다 더 정교한 장치를 만들어 그의 연구를 계속 하게 된다.

Wertheimer는 연속적으로 두 줄의 빛을 발하는(한 번은 수직으로 그 다음은 수평으로) 순간 노출기를 이용했다. 두 빛 사이의 시간 간격이 적당하면 한 줄의 빛이 수직에서 수평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우리가 흔히 보는 네온사인 같은 것이죠. Wertheimer에 따르면 정신은 부분적인 자극에 대하여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들을 응집된 전체로서 조직화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인지(認知)는 개별적인 감각 이상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적 입력의 활동적인 조종자로서 정신을 취급했던 Kant의 개념에 따른 것이었다. 만약 정신이 부분적인 자극에 수동적으로 반응한다면 Wertheimer의 증명을 관찰했을 때 우리는 처음에 수직의 라인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다음에 수평의 라인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정신이 부분의 합과는 다른 전체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다른 예로 애국가와 같은 멜로디를 생각해 봅시다. 그것이 노래로 불리든 허밍으로 되든 휘파람으로 되든, 혹은 심포니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든, 어떠한 수단으로 연주되든지 상관없이 인지될 수 있다. 따라서 멜로디는 특정한 원천에 의하여 발생되는 특정한 감각 연속의 결과가 아니다. 멜로디는 정신의 다양한 원천에 의하여 발생될 수 있는 감각들의 정신의 활동적 과정에 의지한 것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감각들을 의미있는 지각들로 조직함에 있어서 정신의 활동적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심리학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게 된다.

비록 게슈탈트 심리학이 Wertheimer에 의하여 주창되었지만 그의 동료인 Koffka와 Kohler에 의하여 대중화되었다. 이들은 나치 정권에서 추방되어 미국에서 연구활동을 계속하게 된다. 이 두 사람은 나치가 사라진 후 게슈탈트 심리학을 미국에 소개했습니다. 쾰러는 형태주의자들과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최고의 측면들을 포함한 심리학을 만들어 내야한다고 하였다. 인지주의적 관점을 선호했던 심리학자들은 쾰러의 조언을 따랐다. 또한 독일의 심리학자 Lewin은 미국으로 이민한 후 게슈탈트 심리학의 원리들을 리더쉽 형태, 소수 그룹 행동의 원칙 그리고 사회 충돌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 활용하는 연구를 활성화시키게 되었다.


정신분석(Psychoanalisys) -
Sigmund Freud(1856~1939)의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은 신경증적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임상겸험, 사례연구를 통하여 인간의 행동이나 사고는 의식보다는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여 무의식을 분석해야만 인간이해가 완정하다고 중장한다. 정신분석학파는 의식의 내용이 심리학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이론을 비판하며, 의식보다는 더 깊은 심리적 영역인 무의식 영역을 연구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게슈탈트 심리학과 다른 초기의 심리학파가 대학에서 시작되었던 것과는 달리 정신분석은 의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Sigmund Freud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신경과 의사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정신의 정복자라고 말할 정도로 이 분야의 독보적인 사람이었다. 인류를 우선 동물로 보았던 프로이드의 견해는 다윈의 진화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정신분석은 신체적 고통을 겪는 호환자 예를 들어 마비, 실어증, 신체 감각의 상실같이 명백하게 병인을 알지 못하는 환자들에 대한 프로이드의 치료 시도에서 발전하였다. 전환성 히스테리 (conversion histeria)의 징후를 겪는 환자들에 대한 그의 치료에 기초하여 프로이드는 장애란 성적 흥미에 대한 사회의 금기에 의하여 야기되는 성에 대한 무의식들의 충돌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런 충돌들은 때때로 환자들에게 금기 행동에 관련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구실을 제공하는 전환성 히스테리에서 볼 수 있는 신체적 증후들로 전환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프로이드의 환자들에 대한 사례 연구들은 그에게 대개 성과 공격성에 관련이 있는 무의식적 충동들이 인간 행동의 제일가는 동인(動因)이 된다고 추측하였다. 비록 무의식적 동기들의 중요성에 대한 프로이드의 생각들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을 심리학에 포함시킨 최초의 연구자였다. 프로이드는 사람의 행동이 정상이건 비정상이건 간에 때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심리학적 동기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 생각은 정신 결정론이라고 불리는데, 그의 책 <일상 생활에서의 정신병리학>에서 그는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들이 정신 결정론에 의하여 얼마나 명백히 설명될 수 있는지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는 인간은 주로 성과 같은 무의식에 의하여 동기화된다고 함으로써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동 초기의 경험들이 성격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주장을 펴기도 하였다. 프로이드는 무의식에 저장된 아동 초기 경험의 기억들이 인생을 통하여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믿었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이런 무의식적 영향은 많은 인간 행동의 비논리성과 심리학적 장애의 기원을 설명해준다고 하였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은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프로이드는 심리학 역사상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중 한명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많은 학자로부터의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비평가들은 무의식이 아무런 명확한 원인이 없는 행동을 설명하는 데 너무 쉽게 사용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정신분석가들은 성적 추동, 무의식적 과정, 그리고 아동 초기의 경험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적합한 연구 자료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실제로 프로이드는 그의 이론을 실험적으로 측정한 적이 없다. 대신에 그는 환자들과 면담을 한 후에 적었던 그의 기록에 자신의 이론적 근거를 두고 있다. 게다가 프로이드는 심리적 장애 상태에 있는 소수의 사례 연구 결과를 모든 이들에게 일반화시킴으로서 과학적 접근과는 동떨어져 있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프로이드의 견해는 꿈, 창조, 동기, 발달, 성격, 그리고 심리요법 등과 같이 다양한 주제들의 심리학적 연구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와 함께 프로이드의 생각은 예술, 문학, 영화 등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다양한 예술 영역에서 '심리주의적'이라는 말은 바로 프로이드 심리학을 지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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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갈대 >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위한 30가지 법칙

1. 호감 가는 태도로 상대방을 대한다.

2. 본인과 친근하면 타인과도 친근할 수 있다.

3. 상대방에게 요구할 때는 우선 이익을 준다.

4. 질투나 증오의 감정은 다른 에너지로 전환한다.

5. 상상 속의 진실한 대화는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6. 당신의 성의를 상대방은 성가시게 느낄 수도 있다.

7. ‘친구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영원히 친구를 얻지 못한다.

8. 상대방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생각한다.

9. 험담을 들으면 그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한다.

10. 감정을 훌륭하게 발산하는 방법을 습득한다.

11. 호감을 사려면 먼저 상대방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

12.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이루어진다.

13. 억울한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된다.

14. 용서하고 축복할 줄 알아야 다음에 좋은 상대를 만날 수 있다.

15. 긍정적인 생각은 최악의 상황을 최상의 상황으로 바꾼다.

16. 나의 두려움은 상대방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

17. 순수한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실수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

18. 당혹감과 수고, 번민에 정력을 소비하지 마라.

19. 인간 관계에 자신이 없으면 작은 성공을 경험해 보라.

20.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대중의 판단에 휘둘리지 않는다.

21. 남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것이 설득의 최대 무기이다.

22. 험담은 그 자리에 없는 상대방에게도 전달된다.

23. 무심코 내뱉은 남의 말 때문에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지 말라.

24. 어설프게 이기기보다 지는 것이, 좋은 인간관계에 보탬이 된다.

25. 누구와 사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운명이 좌우된다.

26. 현재의 생각이 올바르다면 과거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27. 원만하지 못한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나쁘다.

28. 부모와의 관계가 지나치게 밀접하면 타인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하다.

29.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하면 비참한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30. 고통을 함께 나눌 존재가 있다면 파괴적인 행동은 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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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것은 싫다! 예술은 끝없는 탈주
미학오디세이 1·2·3/진중권 지음/휴머니스트/371쪽/각권 1만4000원

이 혼돈의 시대에 예술은 더 이상 책장 안에 갇혀 있거나 미술관에 걸린 박제품이 아니다. 현실을 뒤집고 비틀었을 때 비로소 진실이 드러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익숙한 것을 거꾸로 던져 놓은 예술이 오히려 진실과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더구나 요즘처럼 텔레비전과 인터넷으로 가상 이미지가 실제를 대체하고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미지들 속에 숨은 진실의 언어를 찾는 힘은 ‘미학’ 훈련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고대부터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예술사가 빚어놓은 현란한 대형 벽화 속으로 들어가 마치 오디세우스처럼 떠돌아다녀 보는 것은 어떨까. 편집자

미학 오디세이’가 10년 만에 3편으로 완간됐다. 94년 에셔의 이상야릇한 그림이 상징하는 ‘가상의 세계’를 화두로 ‘아름다움(美)’의 세계로 탐험을 떠났던 미학자 진중권은 구어체와 문어체를 적절히 넘나드는 글쓰기와 독특한 구성을 통해 전문성과 대중성을 아우른 교양서의 한 모범을 보여줬다. 대중적으로 쉽게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이 책은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를 표제로 삼은 2편까지 무려 50만부(!)가 큰 소리 내지 않고 팔리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1, 2권이 고전에서 시작해 근대와 탈근대의 경계까지 탐험했다면 ‘피라네시와 함께…’ 탐험을 떠나는 3권은 탈근대의 관점을 두루 살핀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 체셔 고양이의 웃음과 모네의 ‘수련’, 영화 ‘장미의 이름’ 같은 익숙한 예술 작품들을 통해 예술과 현실의 경계와 인식 문제를 설명한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미술 애호가’를 위한 그림읽기 입문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우리 눈에 익숙한 그림들과 너무도 친숙한 이야기의 ‘속내를 읽자’고 자극하는 지적 선동일 수도 있다. 정치와 경제 논리가 아닌 미학의 시점으로 볼 때 현실과 가상의 위험한 경계는 그 맨얼굴을 더 생생하게 드러낸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이 권유하는 탈근대 미학으로의 항해는 현실 일탈이 아니라 현실 탐사가 된다.

이 책은 어느 부분을 펼쳐 읽든 그곳이 당분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탈근대적’ 구성으로 짜였다. 나는 글 머리를 먼저 읽고 마지막 부분인 ‘미디어의 미학:다시 가상과 현실’을 읽은 뒤 그 중간 부분은 무작위로 펼쳐 읽었다.

‘미디어의 미학’은 사실상 우리 시대 문화 전반의 상황과 배경을 집약하고 있다. ‘존재한다고 사실이 아니다. 일어난다고 사건이 아니다. 사실이 존재하려면 보도가 있어야 하고, 사건이 일어나려면 카메라에 복제되어야 한다. 미디어로 복제되지 않는 한 사실은 존재할 수 없고, 사건은 일어날 수 없다. 사실과 사건을 있게 하는 것은 미디어다.’ 이 얼마나 적절한 지적인가. 선형적이고 체계적인 독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도대체 내가 지금 책에서 어디쯤을 가고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변죽만 울린다 싶으면 어느새 중심이 출몰한다. 중심인가 싶으면 무수한 갈래들로 흩어진다. 버성긴 갈래들의 숫자만 느는가 싶으면 다시 중심이다. 요컨대 이 책과 저자의 글쓰기 자체가 탈근대적 미학의 실천이며, 저자의 ‘너무 하릴없지도 너무 진지하지도 않은’ 놀이터다. 이에 따라 독자들도 일종의 탈근대적 독서 체험을 할 수 있다. 저자의 말대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은 내용으로 첨부되는 게 아니라 형식 속에 침전되는 법”이다.

이 책은 상당 분량을 대화(對話) 형식으로 구성한다. 1, 2권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길항 구도였다면 3권은 디오게네스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탈근대의 관점을 상징하는 디오게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말한다.

“현대 예술을 보게. 내용의 독재가 사라지고, 형과 색이 자율을 얻지 않았나?(디)” “무정부의 카오스 상태군요.(아)” “자네 눈에는 질서는 곧 위계질서로 보이나 보지?(디)” “그럼 다른 질서도 있나……?(아)” “게다가 ‘시학’에서 뭐라고 말했나? 전체 줄거리의 진행에 관계없는 삽화들은 빼라고 하지 않았나.(디)” “그래야 짜임새가 생기지요.(아)” “하지만 그게 사회의 구성원리라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개인은 배제되어야 한다. ‘반동분자’ 혹은 ‘반국가분자’로…….(디)”

저자는 오래전에 탈근대 미학을 선취한 벤야민, 하이데거, 아도르노 등과 상대적으로 최근에 속하는 푸코, 데리다, 들뢰즈, 보드리야르 등을 불러낸다. 하지만 그런 인물을 해설하거나 단순 원용하는 건 저자의 관심 밖이다.

그들은 원본과 복제, 복제의 복제인 시뮬라크르, 가상과 현실 등의 문제를 심리하기 위해 소환된 참고인들이다. 그 심리의 시작은 이렇다. “하늘에서 해를 사라지게 해도 수천 수만의 복제된 해들이 세상을 도처에서 비춘다.

그게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라는 이름의 세상이다. 누군가 진리의 신, 태양신을 제 것으로 독점해도 그것을 우러를 것 없이 세상은 수없이 복제된 작은 진리들의 빛으로 별일 없이 돌아간다. 우리는 원본 없는 세상 위에 복제된 빛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평소 궁금해하던 것 하나. 오늘날의 예술은 왜 이해하기 어렵게만 느껴지는 걸까? 저자는 “현대 예술이 추하고 추상적이며 고통스러운 까닭은 현대 사회가 추할 대로 추해졌으며, 인간 관계가 추상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요컨대 현대 예술은 사회를 재현하지 않고도 사회의 고통을 미메시스(모방)한다. 우리가 현대 예술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곧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불편함이라는 것이다. 현대 예술은 대중이 공유하는 코드를 일부러 깨고 다양한 형식 실험을 통해 자기만의 코드를 만들어낸다. 왜 굳이 그렇게 하려 드는 걸까? 모든 것을 획일화하는 동일성의 폭력으로부터 자기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상투적 코드 안에 가두려는 문화산업의 추적을 피해 끝없이 탈주하고 혁신하는 게 현대 예술의 숙명이다.

저자는 학문 분야로서의 미학 안에 머무르기보다는 늘 그것의 바깥, 다분히 구체적인 삶의 방식과 실천까지 포함하는 ‘존재 미학’을 염두에 둔다. 그 ‘존재 미학’은 저자 자신의 어떤 결의까지도 포함하는 듯하다. ‘관리되는 사회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탈주의 실천이다. 개별자의 고유성을 지우고 모든 것을 획일화하는 사회.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진리는 거기에 동화되기를 거부하고 단독자로 남는 것이다.’

(표정훈·출판평론가·조선일보 서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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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강미경 옮김

세종서적

1만8000원

그림은 보는 것일까 읽는 것일까? 당연히 보고 읽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보는 것을 물리적인 지각에만 초점을 맞춰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들어오자마자 우리의 뇌에 의해 해석된다. 해석은 읽기이다. 읽되 우리의 경험과 지식, 기억에 입각해 읽는 것이다. 그림 감상에 있어 보는 것과 읽는 것은 결코 칼로 두부를 자르듯 분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독서할 때 우리는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일까? 읽기를 통해 우리는 본다. 저자의 생각과 의도, 글이 지향하는 바를 꿰뚫어보게 된다. 비록 물리적인 시각 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그런 경험처럼 ‘읽기=해석’에 의해 파악된 세계의 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보는 것은 분별과 관계가 있고, 읽는 것은 이해와 관계가 있다. 분별함으로써 이해하게 되고 이해함으로써 분별하게 되는 것은 대상이 무엇이든 모든 인식의 기초이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독서의 역사’의 저자 알베르토 망구엘이 쓴 ‘나의 그림 읽기’는 흔히 보는 행위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그림을 읽는 행위의 대상으로 보았을 때, 그러니까 전자 못지않게 후자에도 진지한 관심을 기울일 때,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그것이 또 얼마나 우리의 지식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는지 면밀히 살펴본 책이다. 읽는 행위로서 미술감상이란 그 정답이나 한계가 존재할 수 없는 행위라는 점에서 끝 모를 사유의 강물에 스스로를 던지는 행위와 같다. 미술작품의 이미지는 자연의 사물과 달리 즉물적으로 스스로를 천명하지도 않고, 글과 달리 일관된 체계로서 의미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망구엘은 화가의 의도와 개인사, 도상학적 이해, 작품의 시대적 배경, 세월이 흐르면서 쌓인 비평과 해석, 작품을 대하는 개인의 주관적 경험 등을 두루 아우르며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려(찾는 것이 아니라) 노력한다. 비록 정답은 없지만, 아니 정답이 없기에 현재의 시점에서 작품을 가장 잘 이해하는 길은 나름의 논리적 정합성을 지니고 공감을 자아내는 의미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물론 이 의미망은 다른 이에 의해, 혹은 시간이 흘러, 새로운 환경과 지식의 토대 위에 형성된 의미망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게 되고 그때마다 깊은 감동을 덤으로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망구엘은 책을 모두 12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반 고흐의 ‘생트마리 해변의 고기잡이배’와 로베르 캉팽의 ‘화열 가리개 앞의 동정녀와 아기 예수’, 가트너의 ‘서 있는 네 사람’, 피카소의 ‘통곡하는 여인’, 카라바조의 ‘일곱 가지 자비로운 행동’ 등 각 장마다 대표 작품을 선정하고 이를 ‘이야기와 이미지’, ‘수수께끼의 이미지’, ‘악몽의 이미지’, ‘폭력의 이미지’, ‘극장의 이미지’ 등 이미지에 대한 깊고 넓은 해석으로 풀어낸다. 그의 박학다식과 그 위를 종횡으로 내달리는 글쓰기는 작품 분석이 해석자의 역량에 얼마나 큰 빚을 지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가트너의 ‘서 있는 네 사람’을 통해 “존재는 이유가 없다”고 한 철학자 우나무노의 명제를 확인하고, 피카소의 ‘통곡하는 여인’을 통해 그의 미술의 남성적 폭력성을 추출하는 대목 같은 것은 매우 인상적이다. 비록 12개의 작품에 한정해 분석을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어느새 미술과 이미지 전반, 나아가 존재와 인식의 문제에 관한 복합적인 성찰로 이어진다. 그 미시적이고도 거시적인 시선이 뒤섞여 하나의 책으로 융합돼 나온 것이 감탄스러운데, 그것은 미술 감상이라는 포용성과 융통성이 매우 뛰어난 통찰의 바인더가 있어 가능한 것이었다 하겠다. 이주헌·학고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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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칠일 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강연록
발행일 : 2004-02-28 D7 [Books]    기자/기고자 : 김광일
 
송병선 옮김

현대문학

1만2000원

‘스티븐슨이 말했듯이 ‘매혹’이란 작가가 가져야만 하는 근본적인 자질 중의 하나입니다. 매혹이 없으면, 나머지는 모두 소용없는 것입니다. ’(16쪽)

이 책은 보르헤스<사진>가 칠일 밤에 걸쳐 강연한 일곱 가지 문학 얘기를 주제별로 묶은 것이다. 1977년 여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콜리세오 극장에서 행했던 강연 초록을 여러 차례 수정한 끝에 1980년에 발간했고, 이번에 한국어로 초역됐다. 그가 선택한 주제들은 ‘신곡’ ‘악몽’ ‘천하룻밤의 이야기’ ‘불교’ ‘시’ ‘카발라’ ‘실명’ 등이다. 죽는 날까지 마치 유언장처럼 그를 뜨겁게 달군 주제들이라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독자들에게는 수많은 고전과 현대물이 풍부하게 녹아 있는 일종의 독서 에세이로 보일 것이다.

“천국은 도서관과 같은 곳”이라고 비유한 보르헤스는 1955년 아람부루 정부에 의해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임명됐다. (231쪽) 아르헨티나 출신의 그(1899~1986)는 평생 자신을 따라다닌 수많은 수식어 중에서 ‘도서관장’이란 직함을 가장 영예롭게 생각했다. 밀튼이나 제임스 조이스가 말년에 시력을 잃었듯이 그는 도서관에서 엄청난 양의 지식에 함빡 빠졌다가 작가로서는 치명적인 실명에 이르게 된다.

‘20세기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 현대 환상문학의 거장, 소설을 죽음에서 구해낸 작가’로 불리는 보르헤스는 이 책에서 그가 어떤 작품과 사상들에 연결되어 있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준다. 문학 속의 보르헤스와 더불어 현실의 보르헤스를 보여주고, 인간적인 보르헤스도 알게 해준다. 이 책을 한마디로 줄이면 보르헤스의 문학적 운명을 밝히는 책이다.

‘항상 나는 내 운명이 무엇보다도 문학임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게는 수많은 나쁜 일과 몇 개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임을 예감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런 모든 것, 특히 나쁜 일들이 장기적으로는 글로 변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246쪽)

한 가지. 보르헤스의 어머니인 레오노르 아세베도는 99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아들의 책 한 권을 침대 머리맡에 놓아 두었다. 그러나 그 책을 제외하고는 보르헤스의 집에 그의 책은 한 권도 없었다. 보르헤스는 자기가 사랑하고 아끼는 책들과 ‘중요하지 않은’ 자기 책들을 뒤섞어 놓는다는 것을 참을 수 없는 허영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267쪽) 김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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