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숲 - 합본
신영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난 이 책을 서점에서 처음 봤을 때, 두께에 일단 마음이 갔다. 예전 같았으면 두꺼운 책은 좀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완독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두꺼운 책에도 마음이 갔다. 그것은 우선 책값이 장난이 아닌 관계로, 나 같이 책을 느리게 읽는 사람에겐 마냥 읽기에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난 이 책을 아주 천천히 읽어 나갔다.

원래 책 읽는 것에 속도감이 없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웬지 난  빨리 읽고 싶지도 않았다. 물론 두꺼워도 마음 먹기에 따라선 빨리 읽을 수도 있는 책이었다. 문체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글자도 큼직한데다, 중간중간에 저자가 직접 그렸다는 그림도 삽화처럼 끼어 있어서(그림은 또 왜 그리 잘 그리는지?) 읽기에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래도 빨리 읽고 싶지 않았다. 

이 책은 알려진 대로 저자의 기행문이다. 그냥 여행안내서가 아니다. 저자는 몸소 그곳을 가보고, 부딪혀 보고, 느껴보고, 거기서 얻은 통찰과 직관을 가지고 글을 썼다. 이런 글은 오래도록 음미하며 읽어야 재맛이 난다. 그래서 정말 밑줄 긋고 싶은 글도 많았고, 미처 개념 정리가 안돼있던 부분도 이 책을 통해 정리가 되기도 했다. 게다기 이 책은 정말 문장이 좋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기 사상을 주입하려 하지 않고, 독자들로 하여금 깨어있으라고 독려한다. 이 얼마나 고마운 책인가?  

나이가 들면 들수록 타성에 젖고, 내 방식을 고집하고, 시야가 자꾸만 좁아지려한다. 이럴 때 이런 잘 쓴 기행문 하나 옆에 딱 꿰차고 어느 조용한 숲속에 자리잡고 앉아 읽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여행이야 직접 갈수만 있다면 좋은 것이지만, 마음 먹으면 어디든 갈수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신 이런 책으로 대리만족 시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성 싶다. 그리고 이건 사족이긴 하지만 정말 저자 같이 돌아 다닐려면 체력은 좋아야겠다는 당연한 생각을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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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4-12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그 동안 페이퍼에 올리신 '더불어 숲'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보관함에 쏘옥 넣고 말았군요. 저도 한번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볼 생각입니다. 조용한 숲속은 아닐지라도...

stella.K 2004-04-1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여행을 좋아하시는 잉크님한테 잘 어울릴 책 같군요.^^

icaru 2004-04-2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얼마전에...더불어숲을 샀어요.

나이가 들면 들수록 타성에 젖고, 내 방식을 고집하고, 시야가 자꾸만 좁아지려한다. 이럴 때 이런 잘 쓴 기행문 하나 옆에 딱 꿰차고 어느 조용한 숲속에 자리잡고 앉아 읽고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님의 이 말에 공감해요....



잉크냄새 2004-04-24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번주에 주문해서 받았는데...
복순이 언니님의 리뷰가 기대되네요...
전 아무래도 저의 책읽기 습관상 채터별로 읽으면 3주정도 예상됩니다...

stella.K 2004-04-24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뻐요. ^^ 저도 두분 리뷰 기대할게요.

겨울 2004-04-28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에게 빌려 읽고 돌려주기 싫었던 책인데, 역시 책값이 만만치가 않아서... 이 분의 책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가장 좋았어요. 최근에 나온 '엽서'라는 책도 너무 비싸서 참았다 일년 후에 사기로 했다는^^

waho 2004-04-2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편해지는 책이었는데...이 분의 책은 읽을 때 느낌이 좋아요.
 

강정인 지음 | 아카넷 | 586쪽 


간혹 ‘서양의 역사와 문화’라는 교양 과목을 가르칠 때가 있다. 학생들과 대면하는 첫 시간부터 늘 곤혹스럽다. ‘서양’이나 ‘동양’이 역사·지리적 실재가 아니라 만들어진 ‘상상의 역사 지리’임을 강조하노라면, ‘서양의 역사와 문화’라는 과목의 정당성을 처음부터 부정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실정성이 부정되면, ‘서양사’ 전공 교수로 분류되어 ‘서양사’를 연구하고 가르쳐야 하는 내 자신의 학문적 존재와 재생산의 근거가 사라진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서양’의 대학에는 ‘서양사’라는 전공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 대학의 지식 분류 체계가 ‘서양’보다 더 서양적인 것이다.

강정인 교수(서강대·정치학)의 ‘서구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서양’보다 더 서양적인 한국의 지식사회에 보내는 차분하면서도 통렬한 경고장이다. ‘서구중심적 세계관을 내면화’한 이 땅의 지식인들에 대한 그의 비판은 자기 성찰에서 출발하기에 단단한 존재론적 기반을 갖는다.

그에 의하면 ‘서구중심주의’는 서구우월주의, 서구보편주의·역사주의, 문명화·근대화·지구화라는 세 가지 명제로 압축된다. 서구는 다른 문명에 비해 내재적으로 우월한 요인들을 갖고 있어서 먼저 근대 문명의 길로 접어들었고, 서양의 근대가 걸어 온 길은 여타 문명권도 본받아야 할 인류 역사 발전의 보편적 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서구예외(例外)주의’와 ‘오리엔탈리즘’으로 요약된다. 계몽주의, 자유주의, 합리주의, 진보사상 등을 특징으로 부여하면서 서구를 특권화하여 ‘유럽의 기적이라는 신화’를 만든 서구예외주의와, 비유럽은 자유주의, 합리주의, 법치주의, 사유재산 등이 결여되었다는 ‘부재의 신화’를 만든 오리엔탈리즘은 사실상 한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서구중심주의’는 제국에 앞서 제국을 정당화하는 지식 체계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로부터 영국 이주민들의 재산권을 옹호하고자 했던 로크의 재산권 이론에서부터 기독교에 대한 서구예외주의와 유교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으로 가득 찬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 이르기까지 그 목록은 끝이 없다.

사이드, 채터지, 블로트, 프랭크, 영 등 탈식민주의 연구자들의 선구적 업적을 계승한 저자의 이러한 문제 의식은 선언적 차원을 넘어선다. 한국의 현실을 서구의 경험과 개념에 두들겨 맞추는 서구중심주의적 심성에서 한국 보수주의의 특수성을 끌어내는 저자의 신선한 시도는 자신의 문제 의식을 학문적으로 감당하고자하는 한 지식인의 고투를 보여준다.

‘동양’에 대한 ‘서양’의 편견을 지적하거나 겉으로 드러나는 제국의 지배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상대적으로 쉽다. 21세기의 탈식민적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더 이상 ‘군림하는 제국’이 아니라 ‘헤게모니로서의 제국’이다. 지배하지 않는 듯한 외양을 띠는 헤게모니는 늘 숨어 있다. 그리고 더 심층에서 더 정교하게 작동한다.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제국의 헤게모니에 대한 비판 작업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 이데올로기가 소외와 억압의 기제이며 비(非)서구 사회의 지식인이나 일반인 모두 그 피해자라는 저자의 지적은 옳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서구 사회 자체 내에서도 시민을 규율화하고 주변인을 만들어내는 소외와 억압의 기제로 작동한다.

지구적 차원의 민주화 혹은 ‘다중심적 다문화주의’에서 대안을 발견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동양’의 피해자뿐 아니라 ‘서양’의 주변인에게도 눈을 돌릴 때,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도 ‘서양’이 있듯이 뉴욕에도 ‘동양’이 있는 것이다. ‘서양’의 해체는 ‘동양’의 해체이지, ‘동양’의 반사적 구축은 아닌 것이다.

임지현·한양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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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읽는 타르코프스키 영화 7편
 김용규 지음/ 이론과 실천 / 335쪽 

영화가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보여줄 수 있을까. 긍정하기 쉽잖은 질문에 만일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우리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란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편 데뷔작 ‘이반의 어린시절’(1962)에서 유작 ‘희생’(1986)까지 모두 7편에 이르는 걸작들에 담긴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 지향점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바로 구원일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두레) 같은 책을 보면 그가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태도로 영화작업에 매달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예술가였고 철학자였으며 동시에 구도자였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의 영화 7편을 철학적으로 치밀하게 해석해낸 역작이다. (엄청난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영화라는 매체를 빌려 (골방에 유폐된) 철학을 설명하려는 책들은 많이 나왔지만, 영화 자체를 철학적으로 해설한 책들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위대한 창작자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는 이 책은 단연 빛난다. 저자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10부작 영화 ‘십계’를 한 편 한 편 꼼꼼히 다뤄낸 책 ‘데칼로그’에서도 영화 해석의 또 다른 깊이를 보여준 바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개념들은 그 자체로 교양과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감독의 영화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동원되는 도구에 가깝다. 자전적인 작품 ‘거울’을 해설하기 위해 라캉을 끌어들이고, ‘이반의 어린시절’ 속 현대문명에 대한 위기의식을 설명하기 위해 마르쿠제의 저서 ‘일차원적 인간’과 연결짓는 등 상대적으로 익숙한 독법도 있지만, ‘안드레이 류블료프’의 주인공이 처한 실존적 위기를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윤리학으로 해설하는 것처럼 독특한 시도도 담겨있다. 학문의 딱딱한 개념어로 예술의 풍부한 상징을 난도질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이다.


▲ 타르코프스키의 대표작 '노스탤지어'
저자는 각 작품을 장별로 분석하면서도 ‘타르코프스키적 구원’이란 중심테마에 대한 관심을 내내 잊지 않음으로써 이 책에 튼튼한 척추 하나를 심어놓았다. 첫 작품 ‘이반의 어린시절’을 타르코프스키 예술 세계 전반에 대한 ‘위대한 질문’ 자체로 인상적 자리매김을 한 저자는, 마지막 작품 ‘희생’에 대한 글을 맺는 자리에서 애초 제기한 물음을 다시 상기시킨 뒤 타르코프스키의 말을 인용해 답변을 시도한다.

그리고 한 빼어난 영화 철학자의 뇌와 심장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려 했던 이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독자(관객)의 윤리적 결단을 상기시키는 묵직한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다른 감독에 대한 책이라면 너무 많이 나아간 결말일 확률이 높겠지만, 그게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것이라면, 사실 이보다 더 적절한 마무리를 찾기도 어렵지 않을까.

(이동진기자 dj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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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aomi > 대인관계

*때로는 어떤 말로서 남들에게 대단한 감명을 주기도 하지만,때로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경우도 있다.

*적이라 판단되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훨씬 더 건설적인 상황이 될 것이다.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돌을 들어 분노의 대상에게 던지는 것보다 한결 쓸모가 있다. 화가 심하게 날수록 더욱 그러하다. 적대감이 클수록, 자기와 타인 모두들 위해 선한 일을 할 잠재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진실로 열린 마음을 가지면, 자연스레 자신감과 자신에 대한 가치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이를 겁낼 필요가 없어진다.

*누군가 내게 큰 피해를 입히거나 상처를 주더라도,먼저 그 사람과의 장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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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4-29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이긴 한데 실천은 어려울 듯...홧병 생길것만 같은데요.ㅎㅎ
 

‘왕중왕’ ‘벤허’에선 사랑과 용서의 신성한 이미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등 고뇌하는 인간 모습 담아


지난 2일 국내 개봉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의 인생 마지막 12시간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12제자와 최후의 만찬을 마친 예수가 기도를 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올랐을 때부터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둘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로마 병사로부터 매질 당하는 장면은 20여분에 걸쳐 묘사된다. ‘브레이브 하트’로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던 멜 깁슨이 감독과 제작을 함께 맡았고, 미국 텍사스의 한 살인범이 이 영화를 보고는 경찰에 자수했다고 해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그러나 좋은 쪽의 화제 이상으로 이 영화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감동적인 명작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게 한 장본인으로 유대인을 조명함으로써 반(反) 유대정서를 부추긴다’고 반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USA투데이 등도 ‘유혈이 낭자한 난도질 영화’라고 혹평했다. 이 영화를 관람하던 한 유대인 여성은 심장마비로 숨지기도 했다.

이에 반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영화를 관람한 후 “강렬하고 감동적인 명작”이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영화”라고 말했다.

그런데 일반 관객들의 주목을 끈 것은 ‘반유대주의’ 논쟁보다도 작품 속에서 생생하다 못해 처절하게까지 그려진 예수(짐 카비젤)의 수난과 인간적인 면모였다. 영화는 예수의 살점 하나, 핏줄 하나 놓치지 않는 극사실주의를 차용했기에 예수는 신(神)보다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재현됐다.

이처럼 예수는 영화를 통해서도 계속 부활하면서 점점 인간의 형상을 갖기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신’에서 ‘인간’으로, ‘성인(聖人)’에서 고난받고 고뇌하는 ‘성인(成人)’으로의 변천과정을 겪어온 것이다.

예수가 등장하는 초창기 영화 속에서는 인간성보다는 신(神)성이 강조됐다. 세실 B 드밀 감독의 흑백무성영화 ‘왕중왕’(1927년작)에서 예수(헨리 워너)는 전형적인 성인(聖人)의 모습으로 등장해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성경 구절을 재해석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예수의 신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머리 주위에 둥근 모양의 후광도 비춘다. 예수는 늘 광채에 휩싸여 있거나 스스로 빛을 발한다. 이는 신성을 강조하는 전통적 예수의 모습이다. 또한 베드로는 긍정적으로, 유다는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등 선악대비가 뚜렷하다.


▲ 나사렛 예수(1977), 예수의 마지막 유혹(1988), 가든 오브 에덴(1999),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 (왼쪽부터)

1961년 니콜라스 레이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왕중왕’은 1920년대 작품과 유사한 줄거리 구성과 해석을 보여준다. 예수의 광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경외의 대상으로 묘사돼 전통적인 예수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오슨 웰스가 내레이션을 맡고 제프리 헌터가 예수로 출연했다.

1890년 소설을 원작으로 1926년 제작한 무성영화를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리메이크한 작품, 찰턴 헤스턴 주연의 ‘벤허’(1959년작)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예수는 유대민족과 로마의 갈등과 원한을 초월한 사랑과 용서의 근원으로 형상화된다. 예수의 모습은 대사없이 뒷모습이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으로만 등장한다. 철저히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인간과는 다른 신성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즉 벤허의 예수상은 ‘왕중왕’의 예수상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다.

노먼 주이슨 감독의 뮤지컬 영화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1973년작)에서부터 예수의 인간적인 면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의 1971년작 록 오페라를 영화화한 작품. 이 영화를 통해 화려한 화면과 음악은 물론, 이전 영화들에 비해 확연하게 달라진 예수상을 관람객들은 목격했다. 예수(테드 넬리)를 배신하는 악역 유다를 새로운 인물로 그리며 예수의 두려움, 분노 등 인간적인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이 같은 예수의 인간적인 면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예수의 마지막 유혹’(1988년작)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 속에서 예수(윌렘 데포)는 악마의 유혹, 로마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만들어준 것에 대한 죄책감, 세상에 대한 미련, 신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부름으로 괴로워한다. 결국 나사렛의 목수 예수는 신이 자신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그의 사명이 거의 이뤄질 때쯤 그는 보통 남성으로서의 커다란 유혹에 직면한다.

사탄이 변신한 소녀 수호천사가 “이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복종을 충분히 보여줬으니 십자가에서 내려와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된다”고 유혹한다. 고통에 몸무림치던 예수는 십자가를 내려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한다. 이어 인간 예수는 자신의 상처를 닦아주던 아내와 육체적 관계를 갖는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예수는 그것이 악마의 유혹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스인 조르바’ 등으로 유명한 그리스 출신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원작 소설을 영화한 이 작품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는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뜨거운 논란을 낳았다. 예수가 자신의 신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것으로 인해 기독교계의 반발을 빚은 것이다. 한국에는 1998년 수입돼 개신교계의 거센 반발로 등급심의가 보류됐다가 2002년 1월 뒤늦게 개봉됐다.

이 밖에도 ‘위대한 생애’(1965년작)는 예수(막스 폰 시도)의 생애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자이언트’ ‘젊은이의 양지’의 조지 스티븐스 감독이 연출했고 찰턴 헤스턴, 시드니 포이티어 등이 출연했다. ‘나사렛 예수’(1977년작)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프랑코 제피렐리가 메가폰을 잡았다. 예수 역의 로버트 파웰과 성모 마리아 역의 올리비아 핫세가 최고의 캐스팅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예수가 등장하는 작품으로는 이외에도 ‘가든 오브 에덴’ ‘마태복음’ ‘나사렛 예수’ 등이 있다. 알렉산드로 달라트리 감독의 ‘가든 오브 에덴’(1999년작)도 논란의 대상이 된 바 있다. 4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는 예수의 12~30세 시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마태복음’(1962년작)은 복음을 충실히 담아내면서도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민중을 부각시켰다. 파졸리니 감독의 유물론적 관점으로 이 영화는 예수를 영혼의 구원자이자 막시스트로 묘사하기도 했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 ihseo@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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