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읽는 타르코프스키 영화 7편
 김용규 지음/ 이론과 실천 / 335쪽 

영화가 구원에 이르는 길을 보여줄 수 있을까. 긍정하기 쉽잖은 질문에 만일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우리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란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장편 데뷔작 ‘이반의 어린시절’(1962)에서 유작 ‘희생’(1986)까지 모두 7편에 이르는 걸작들에 담긴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 지향점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바로 구원일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의 순교일기’(두레) 같은 책을 보면 그가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태도로 영화작업에 매달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예술가였고 철학자였으며 동시에 구도자였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의 영화 7편을 철학적으로 치밀하게 해석해낸 역작이다. (엄청난 대중적 영향력을 지닌) 영화라는 매체를 빌려 (골방에 유폐된) 철학을 설명하려는 책들은 많이 나왔지만, 영화 자체를 철학적으로 해설한 책들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위대한 창작자에 대한 존경을 잃지 않는 이 책은 단연 빛난다. 저자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10부작 영화 ‘십계’를 한 편 한 편 꼼꼼히 다뤄낸 책 ‘데칼로그’에서도 영화 해석의 또 다른 깊이를 보여준 바 있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개념들은 그 자체로 교양과 지식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감독의 영화세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동원되는 도구에 가깝다. 자전적인 작품 ‘거울’을 해설하기 위해 라캉을 끌어들이고, ‘이반의 어린시절’ 속 현대문명에 대한 위기의식을 설명하기 위해 마르쿠제의 저서 ‘일차원적 인간’과 연결짓는 등 상대적으로 익숙한 독법도 있지만, ‘안드레이 류블료프’의 주인공이 처한 실존적 위기를 니콜라이 하르트만의 윤리학으로 해설하는 것처럼 독특한 시도도 담겨있다. 학문의 딱딱한 개념어로 예술의 풍부한 상징을 난도질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책이 지닌 또 하나의 장점이다.


▲ 타르코프스키의 대표작 '노스탤지어'
저자는 각 작품을 장별로 분석하면서도 ‘타르코프스키적 구원’이란 중심테마에 대한 관심을 내내 잊지 않음으로써 이 책에 튼튼한 척추 하나를 심어놓았다. 첫 작품 ‘이반의 어린시절’을 타르코프스키 예술 세계 전반에 대한 ‘위대한 질문’ 자체로 인상적 자리매김을 한 저자는, 마지막 작품 ‘희생’에 대한 글을 맺는 자리에서 애초 제기한 물음을 다시 상기시킨 뒤 타르코프스키의 말을 인용해 답변을 시도한다.

그리고 한 빼어난 영화 철학자의 뇌와 심장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려 했던 이 책의 맨 마지막 페이지는 독자(관객)의 윤리적 결단을 상기시키는 묵직한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다른 감독에 대한 책이라면 너무 많이 나아간 결말일 확률이 높겠지만, 그게 타르코프스키에 대한 것이라면, 사실 이보다 더 적절한 마무리를 찾기도 어렵지 않을까.

(이동진기자 dj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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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naomi > 대인관계

*때로는 어떤 말로서 남들에게 대단한 감명을 주기도 하지만,때로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경우도 있다.

*적이라 판단되는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훨씬 더 건설적인 상황이 될 것이다.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돌을 들어 분노의 대상에게 던지는 것보다 한결 쓸모가 있다. 화가 심하게 날수록 더욱 그러하다. 적대감이 클수록, 자기와 타인 모두들 위해 선한 일을 할 잠재력도 커지기 때문이다.

*진실로 열린 마음을 가지면, 자연스레 자신감과 자신에 대한 가치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이를 겁낼 필요가 없어진다.

*누군가 내게 큰 피해를 입히거나 상처를 주더라도,먼저 그 사람과의 장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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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4-29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이긴 한데 실천은 어려울 듯...홧병 생길것만 같은데요.ㅎㅎ
 

‘왕중왕’ ‘벤허’에선 사랑과 용서의 신성한 이미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등 고뇌하는 인간 모습 담아


지난 2일 국내 개봉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예수의 인생 마지막 12시간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12제자와 최후의 만찬을 마친 예수가 기도를 하기 위해 겟세마네 동산에 올랐을 때부터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숨을 거둘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로마 병사로부터 매질 당하는 장면은 20여분에 걸쳐 묘사된다. ‘브레이브 하트’로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던 멜 깁슨이 감독과 제작을 함께 맡았고, 미국 텍사스의 한 살인범이 이 영화를 보고는 경찰에 자수했다고 해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작품이다.

그러나 좋은 쪽의 화제 이상으로 이 영화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감동적인 명작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게 한 장본인으로 유대인을 조명함으로써 반(反) 유대정서를 부추긴다’고 반발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USA투데이 등도 ‘유혈이 낭자한 난도질 영화’라고 혹평했다. 이 영화를 관람하던 한 유대인 여성은 심장마비로 숨지기도 했다.

이에 반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영화를 관람한 후 “강렬하고 감동적인 명작”이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영화”라고 말했다.

그런데 일반 관객들의 주목을 끈 것은 ‘반유대주의’ 논쟁보다도 작품 속에서 생생하다 못해 처절하게까지 그려진 예수(짐 카비젤)의 수난과 인간적인 면모였다. 영화는 예수의 살점 하나, 핏줄 하나 놓치지 않는 극사실주의를 차용했기에 예수는 신(神)보다 인간에 가까운 모습으로 재현됐다.

이처럼 예수는 영화를 통해서도 계속 부활하면서 점점 인간의 형상을 갖기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신’에서 ‘인간’으로, ‘성인(聖人)’에서 고난받고 고뇌하는 ‘성인(成人)’으로의 변천과정을 겪어온 것이다.

예수가 등장하는 초창기 영화 속에서는 인간성보다는 신(神)성이 강조됐다. 세실 B 드밀 감독의 흑백무성영화 ‘왕중왕’(1927년작)에서 예수(헨리 워너)는 전형적인 성인(聖人)의 모습으로 등장해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의 성경 구절을 재해석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예수의 신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머리 주위에 둥근 모양의 후광도 비춘다. 예수는 늘 광채에 휩싸여 있거나 스스로 빛을 발한다. 이는 신성을 강조하는 전통적 예수의 모습이다. 또한 베드로는 긍정적으로, 유다는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등 선악대비가 뚜렷하다.


▲ 나사렛 예수(1977), 예수의 마지막 유혹(1988), 가든 오브 에덴(1999),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 (왼쪽부터)

1961년 니콜라스 레이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왕중왕’은 1920년대 작품과 유사한 줄거리 구성과 해석을 보여준다. 예수의 광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경외의 대상으로 묘사돼 전통적인 예수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오슨 웰스가 내레이션을 맡고 제프리 헌터가 예수로 출연했다.

1890년 소설을 원작으로 1926년 제작한 무성영화를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리메이크한 작품, 찰턴 헤스턴 주연의 ‘벤허’(1959년작)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예수는 유대민족과 로마의 갈등과 원한을 초월한 사랑과 용서의 근원으로 형상화된다. 예수의 모습은 대사없이 뒷모습이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으로만 등장한다. 철저히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인간과는 다른 신성한 존재라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즉 벤허의 예수상은 ‘왕중왕’의 예수상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다.

노먼 주이슨 감독의 뮤지컬 영화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1973년작)에서부터 예수의 인간적인 면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의 1971년작 록 오페라를 영화화한 작품. 이 영화를 통해 화려한 화면과 음악은 물론, 이전 영화들에 비해 확연하게 달라진 예수상을 관람객들은 목격했다. 예수(테드 넬리)를 배신하는 악역 유다를 새로운 인물로 그리며 예수의 두려움, 분노 등 인간적인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이 같은 예수의 인간적인 면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예수의 마지막 유혹’(1988년작)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작품 속에서 예수(윌렘 데포)는 악마의 유혹, 로마인들을 위해 십자가를 만들어준 것에 대한 죄책감, 세상에 대한 미련, 신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부름으로 괴로워한다. 결국 나사렛의 목수 예수는 신이 자신에게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그의 사명이 거의 이뤄질 때쯤 그는 보통 남성으로서의 커다란 유혹에 직면한다.

사탄이 변신한 소녀 수호천사가 “이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복종을 충분히 보여줬으니 십자가에서 내려와 인간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도 된다”고 유혹한다. 고통에 몸무림치던 예수는 십자가를 내려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한다. 이어 인간 예수는 자신의 상처를 닦아주던 아내와 육체적 관계를 갖는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예수는 그것이 악마의 유혹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스인 조르바’ 등으로 유명한 그리스 출신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원작 소설을 영화한 이 작품은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는다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뜨거운 논란을 낳았다. 예수가 자신의 신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것으로 인해 기독교계의 반발을 빚은 것이다. 한국에는 1998년 수입돼 개신교계의 거센 반발로 등급심의가 보류됐다가 2002년 1월 뒤늦게 개봉됐다.

이 밖에도 ‘위대한 생애’(1965년작)는 예수(막스 폰 시도)의 생애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자이언트’ ‘젊은이의 양지’의 조지 스티븐스 감독이 연출했고 찰턴 헤스턴, 시드니 포이티어 등이 출연했다. ‘나사렛 예수’(1977년작)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프랑코 제피렐리가 메가폰을 잡았다. 예수 역의 로버트 파웰과 성모 마리아 역의 올리비아 핫세가 최고의 캐스팅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예수가 등장하는 작품으로는 이외에도 ‘가든 오브 에덴’ ‘마태복음’ ‘나사렛 예수’ 등이 있다. 알렉산드로 달라트리 감독의 ‘가든 오브 에덴’(1999년작)도 논란의 대상이 된 바 있다. 4복음서에 등장하지 않는 예수의 12~30세 시절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마태복음’(1962년작)은 복음을 충실히 담아내면서도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민중을 부각시켰다. 파졸리니 감독의 유물론적 관점으로 이 영화는 예수를 영혼의 구원자이자 막시스트로 묘사하기도 했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 ihseo@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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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예술의 도시라는 명성을 누리는 것은 이처럼 기존의 관습과 관성을 일상적으로 뛰어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타성(惰性)이라는 사실 입니다. 타성은 그것이 억압이나 구속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그것은 견고한 무쇠 방입니다.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감성이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 추구해야할 목적이나 예술이 수행하는 기능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개인과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잠재적 에너지를 해방의 역할에 주목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관용과 다양성은 그런 점에서 예술의 전제이며 예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해방이 어떠한 예술 양식을 만들어 내고 얼마만한 성취를 이룩하였느냐 하는 평가는 그 다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인간을 예술화하고 사회를 예술화 하는 미래적 과제는 무엇보다 먼저 해방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진부한 틀에서 해방하고 완고한 가치로부터 해방하는 일입니다.

                                                            -신영복, <더불어 숲>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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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4-0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에 요새 <더불어 숲>을 발췌해서 매일 조금씩 읽고 있어요.
홍세화의 똘레랑스...같이 생각해 봤었던 부분이죠.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타성이다"라는 부분을 읽었을 때 그 앗차!하던 느낌이라니...

stella.K 2004-04-09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감입니다.^^

waho 2004-04-2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영복님 글 너무 좋아여...
 
 전출처 : 카를 > 마카아벨리와 다른 사상들과의 비교

마카아벨리와 다른 사상들과의 비교

고려대 심재우교수

1. 韓非子와의 비교

흔히들 韓非子를 동양의 마키아벨리로 비유하기도 하며, 일견 이둘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韓非子와 마키아벨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은 거의 흡사하다. 韓非子는 전국시대의 전쟁상태에서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루고자 하였으며, 마키아벨리는 16세기 유럽의 혼전 양상 속에서, 조국 이탈리아를 지켜내고자 했다.

먼저 韓非子의 법사상을 간략하게 요약해보자.47) 韓非子는 전국시대 후기에 법가의 제학설을 집대성하여 법가이론을 완성한 사람으로서, 수세기에 걸친 전쟁과 혼란으로 점철된 천하대란의 상태를 안정으로 이끌기 위하여 강력한 군주중심의 국가체제를 정립하고자 했다. 이러한 목적 하에서 전개된 韓非子의 법사상은 크게 法治, 術治, 勢治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신하들과 백성의 일체의 언행을 통제하기 위한 法治, 신하들로부터 군주의 권한을 보호하기 위한 술책으로서의 術治, 신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천하를 호령하려고 하는 勢治 등은 하나 같이 군주 중심의 권력국가 사상을 대변한다. 韓非子의 최종목적은 군주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에 놓여 있는 것이지 인민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다. 法治는 권력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며, 術治는 군주를 위한 술책이다. 勢治는 천하를 호령하기 위한 전제에 불과하다. 이렇게 본다면, 韓非子의 법치주의는 모든 사람(특히 정치권력)을 법의 지배 하에 두고자했던 서양의 법치주의사상와는 무관하다. 한비자의 법치주의는 군주를 구속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인민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 한비자를 마키아벨리과 비교해 보자. 흔히 마키아벨리의 여러 가지 비도덕적 정지지침과 한비자의 술치를 비교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둘은 그점에서 매우 비슷하다.

한비자 : 군주는 그의 의도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군주가 그 속마음을 드러내 보이면 신하는 자신의 표현을 달리 꾸밀 것이다..... 군주는 지략이나 지혜도 감추어야 한다48)

마키아벨리 : 자비롭고 신의가 있고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경건한(종교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좋고, 또한 실제로 그런 것이 좋다. 그러나 달리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면, 당신은 정반대로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하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군주론, 123쪽)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둘은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한다. 한비자는 "군주의 이익" 그 자체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계속하여 권력국가사상을 유지하였다. 전국시대의 천하대란을 평정하고 천하통일을 가져오게 한 권력국가론을 전개한 것은 그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맞는 것이었으나, 천하통일 후에도 (법치국가로 이행한 것이 아니라) 권력국가를 계속 유지한 것은 문제였다. 이를 받아들인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긴 했지만 곧 망한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이다.49)

그러나, 마키아벨리의 경우는 다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마키아벨리는 궁극적으로 시민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공화정"을 꿈꾸었으며,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일단 "무법의 자연상태"를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도덕이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인식했으며, 다만 위기 상황 속에서는 "비도덕적 정치행위"를 사용해서라도 일단 국가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일견 비슷해 보이는 "정치기술"들도 실은 그 이유가 전혀 다른 것인데, 한비자가 이를 "군주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라면, 마키아벨리는 이를 "시민의 자유보호"를 위해서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마키아벨리와 韓非子의 정치기술이 유사하다고 해서 둘을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본다면 마키아벨리는 韓非子 보다는 오히려 홉스와 유사한 점이 더 많다고 하겠다.

2. 홉스와의 비교

홉스가 처한 상황(종교전쟁과 내란)은 마키아벨리와 거의 유사했으며, 그들이 내놓은 대안 역시 거의 일치한다고 보여진다. 먼저, 홉스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상태"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급선무라고 본 것과 마키아벨리가 일단 "국가 그자체"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는 점은 같다. 그리고 홉스가 "국가의 목적은 개인의 안전이다"50) (앞서 지적한 바대로) 마키아벨리가 자신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공화정의 최대가치를 "시민의 자유 보장"(First Book, Chap.16, pp.162~163)에 두었다는 사실과 완전히 일치한다. 게다가 두 사람 "국가 그 자체의 존속"을 상당히 강조함으로서, 권력국가사상이 아니냐는 의혹을 끊임없이 받았다는 점까지 비슷하다. 그러나 두사람은 "전쟁상태"에서 일단 국가를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지, "권력국가사상"을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홉스나 마키아벨리는 모두 "인간의 존엄"이나 "인권"을 자연법적인 법가치로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자연법이 실정법의 우위에 있으며, 실정법이 이에 구속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지는 못했다. 이점은 그들의 사상이 "실질적 법치국가"를 지향했다고 보기 힘들게 만드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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