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김영민 지음 / 늘봄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이던가? SF(공상과학) 모 문예지가 창간하면서 그 속에 함께 실린 김영민 교수의 글을 처음 읽어 보았다. 너무 재밌게 읽어서 언제 한 번 이 양반의 책을 읽어 봐야지 했다. 그러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이 책을 선택했는데 웬걸, 이름은 같은데 그 사람이 이 사람이 아니다. 동명이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말했던 김영민 교수가 언젠가 공부에 관한 책을 냈는데, 이 책도 공부에 관한 책이다. 연장선상에서 책을 냈는가 보다 했다. 그러다 한마디로 찍-쌌다.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인터넷 서점을 들어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었던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도 동명이인이 존재할 거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총기가 떨어지고 있고, 저자에겐 미안한 일이 됐다.  


그래도 이왕 어떤 이유에서건 내 손에 들어왔으니 읽어는 봐야 한다. 저자는 철학자 겸 시인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저자가 공부하면서 느꼈던 바들을 써 놓은 일종의 단상집이다. 


솔직히 우리는 공부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한 가지 방법으로만 공부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는 원죄가 있다. 그나마 그것도 학교 공부를 마치면 더 이상 공부할게 없다고 손을 놔버리기도 하지 않는가. 이게 참 불행하고 아이러니란 생각이 든다. 


더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학습 능력은 다른 나라 학생과 비교할 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수학 올림피아드 뭐 이런 거 하면 거의 탑이다. 심지어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교과 과정을 동경하는 나라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학업을 비관해서 학교 옥상에서, 아파트 꼭대기에서 몸을 던지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아무리 뛰어난 학습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10년, 20년 후에도 여전히 탑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성인들의 고찰을 담은 글들은 계속 나와 독자의 자칫 무뎌질 수 있는 지적 욕구와 감수성을 자극해 줘야 한다.


그런 말이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인간만이 사고하고, 공부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 앎에 대한 욕망과 촉수를 매일 벼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책, 제목도 좋고 의도도 좋긴 한데 너무 어렵다. 한 꼭지 안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어렵다. 이런 책은 뭔가 깊이 음미하며 읽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공부에 대한 단상을 적는데 이렇게 어려울 필요가 있을까? 공연히 심술이 났다. 어려운 공부 한다고 은근 자랑하는 건가? 나 같이 얄팍한 학식을 가진 사람은 어쩌라고 이렇게 어렵게 썼나 짜증도 났다. 


원래 공부란 어렵게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쉽게 쉽게 하는 게 어디 공부인가? 어렵지만 부딪쳐 보고 그다음 단계로 나가고 거기서 모종의 성취감도 누리고 하는 것이 공부다. 엄밀히 말해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말마따나 독학이 됐건 어떤 전문지식을 위해 학교나 학원을 가던 스스로가 길을 찾고, 방법을 찾고 그 길을 가는 것이다. 누가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고, 떠먹여줘야 하는 건 공부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옛 선생님들이 한 우물을 파 보라는 말은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한 우물만 파면 외골수가 되기 쉽다고 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방면에서 뛰어날 수는 없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긴 하지만 지금은 한 우물이라도 제대로 파보고 싶다. 하지만 한 우물을 파서 외골수가 된다면 그건 아직도 덜 팠다는 얘기도 된다. 누구는 그랬다. 그렇게 우물을 팠더니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더라고. 공부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만을 아는 사람은 기실 깊이 아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는 척할 뿐이지. 알면 알수록 입을 다물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더 모르기 때문에 또 알고 싶어서. 아마도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짧고 간단하게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저자는 그다지 독자들을 사로잡거나 설득하려고 애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냥 자신이 깨달은 건 이런 거라고 툭 던져보는 식인 것도 같다. 뭐 그래서 동의하면 끄덕여 보시던가 그런 식. 그동안 책 쓰기를 위한 책들은 얼마나 독자들을 공략하라고 외치고 부르짖었던가. 물론 글 써서 돈을 벌 사람들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긴 하겠지만 책은 꼭 그런 방식으로만 쓰거나 통용되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말 중에 이런 말이 나오긴 한다.



통상 공부를 결심한 이가 제일 먼저 손대는 게 책이다. 그러나 이게 병통이다. 그래서, 레비 스트로스의 지적처럼 '정신의 성숙과 생각의 복잡을 혼동하는 일이 생겨난다. 어떤 공부에서든 (좋은) 책 읽기를 생략할 수 없지만, 책 읽기는 반편의 진실을 보여줄 뿐이다. 


(81p)  


저런 얘기 하면 책 관련 종사자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공부를 하려면 관련된 책들을 쌓아놓고,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스스로를 상아탑 안에 가둬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물론 난 그러고 결코 살지 못했지만. ㅠ) 어쩌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평생 노동을 해 온 우리가 알만한 사람들이 진짜 학업자인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은 반드시 땅 파고, 건설하는 사람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가정 건사하고 직장 다니는 사람도 노동자다. 그러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 그 사람 그 역시 학업자 아닌가.


공부는 어렵다. 그 어려운 공부를 어떻게든 쉽게 해 보려고 발버둥 치는 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저 공부하는데 위로가 되고 벗으로 삼을 것들이 있어야 쉬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다석 가지 반려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산책이고, 둘째는 적바림하는 버릇이고, 셋째는 차(茶), 넷째는 낮잠. 저자는 기이하다고 하면서 오후에 10~15분 잠깐 잠을 잔단다. (그렇지 않아도 의사들도 건강을 위해 낮잠을 권하기도 하는데 그게 30분 이내라고 했다. 저자의 잠은 너무 짧고 나는 잠을 사랑한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는 설명이 어렵다며 설명하지 않겠단다. 그런 것으로 봐 그 반려에 관해서는 너무 깊이 가르쳐 주는 것 같아 언급을 회피하지 않았을까 싶다. 즉 다섯째는 독자 스스로 가져 보라고 남겨 둔 것도 같다. 그렇다면 난 어떤 걸 해 볼까? TV 시청이다. 물론 과하지 않는. 볼만한 드라마나 영화, 다큐나 강연 프로는 얼마나 많은가. 



책이 다 어려운 것은 아니다. 간간이 웃자고 하는 말도 더러는 섞여 있다. 예를 들면 '수컷들의 꿈' 같은 거. 

수컷 일반이 잘 배우지 안(못하)는 원인은......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남성 호르몬의 효과 속에서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며, 동물행동학의 맥락 속에서는 순위제를 둘러싼 사회적 형태가 이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특히 한국-남자들이 공부하지 안(못하)는 원인은 물론 이들 중 열에 아홉은 그 작업이나 나이와 무관하게 '건달'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공의 꿈은 건달의 길과 매섭게 나뉘지 않는데, 그 길은 아무래도 공부 길이 아닌 것. (139p)


어찌 보면 어려운 말 같기도 한데 위트가 있다. 즉 공부하지 않는 것을 건달에 빗대고, 그러면서도 사회적 성공을 바라거나 성공했다면 그 사회는 얼마나 불안한가를 지적한다. 더구나 한국 남자들은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건 뭐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단지 여성은 상대적으로 묻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으며,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앎은 질문에서 시작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배우려고 하지 않아 건달이 되는 사회는 위험하다.


요즘 5, 60대의 학업성취도도 예전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그런데도 나이 들면 들수록 배움엔 여러모로 용기가 필요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생각해 봤더니 나는 벌써 꽤 오랫동안 공부하기 위해 어딘가를 정기적으로 다니는 곳이 없다. 공부도 젊을 때 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녹슬게 방치해 두면 안 된다. 건달이 되는 거보다 더 무서운 건 무뎌지고 녹슬어 쇠해지는 거 아닌가.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다. 저 다섯 가지 반려와 함께.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3-02-25 19: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처럼 입시위주의 경쟁적인 교육제 아래에서는 수학 올림피아드는 가능하지만
앞으로도 노벨문학상은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대학 졸업하고 방송대
들어갔을때 비로소 공부하는 재미를 알았거든요. 독서 재미는 더 늦게 알았고요.^^

stella.K 2023-02-25 18:35   좋아요 3 | URL
맞아요. 중요한 건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게하는 건데 울나라는 그게 참 없어요. 방통대가 재미있군요. 하긴 저도 대학 다닐 땐 죽지못해 다녔고 모 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심리 상담 참 재밌게 공부한 기억이나요.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감탄하면서.ㅋ
다시 공부한다면 국문학을하고 싶어요.^^

바람돌이 2023-02-25 1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부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어야지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언제나 공부가 목표가 되니 온갖 비극이 일어나는거죠. 저도 공부가 재미있어진건 대학 졸업 이후예요. 그 전까지는 공부는 어쩌지 못해 하는 노동이요.

stella.K 2023-02-25 19:46   좋아요 3 | URL
ㅎㅎ 우리의 공부는 거의 이런 식인 것 같아요. 대학 때 전공 좋아하는 사람 거의 못 봤어요. 말씀마따나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목표가 돼버리니 어떻게든 맞혀서 대학을 가는 형편이니 참...

니르바나 2023-02-26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공부에 관한 책 중에 이런 책이 있습니다.
공부도둑- 공부의 즐거움- 공부이야기로 개정된 책입니다.
물리학자인데 한때 유행했던 통섭적인 학문을 하신 장회익 교수님인데
재미있게 <공부의 즐거움>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부를 중국어로 쿵후(쿵푸)라고 하지요.
공부도 따지고 보면 몸의 수련인 셈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책을 못 읽는 분들이 정말 아주 많이 있죠.
그 이유는 책읽는 수련이 전혀 안되어 있어 독서를 못하는거죠.
그런 의미에서 스텔라님은 독서 마스터, 공부 따거이십니다. ㅎㅎ


stella.K 2023-02-27 16:58   좋아요 1 | URL
아, 그러고 보니 몇년 전에 김열규 교수가 쓴 공부에 관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우연히 중고샵에서 발견하고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독서도 수련이란 생각 많이 듭니다.
이게 조금만 딴생각을 하거나 시간을 딴곳에 쓰면 독서는 물건너 갈 때가 많죠.
저는 책이 좋은 거지 독서는 정말 수행이구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해요. ㅠ
따거는 무슨…ㅋㅋ

페크pek0501 2023-02-27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하기 위해 어딘가를 다닌 적이 없으시다니... 그래도 이 정도로 글을 쓰시다니 훌륭하십니다.
저는 문창과 졸업이 아니라는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문창과 학생들이 들을 법한 강좌는 다 들어야지, 하면서 다니던 시절이 있었어요. 생각보다 큰 효과는 없었을 거예요. 왕복 두 시간을 들여 가고 겨우 두 시간 강의를 듣고 오는 게 다 였으니...하루가 날아가는 거죠. 상품으로 말하면 가성비가 낮았던 거죠.
지금은 무료의 온라인 강좌와 유튜브 강좌가 많은지라 굳이 강의를 들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게 편리한 것 같아요. 눈 안구건조증이 느껴질 땐 오디오로 듣는 책으로 보완할 수 있고요. 이 시대가 주는 혜택입니다...^^

stella.K 2023-02-27 17:07   좋아요 1 | URL
다 좋은 글을 쓰고자하는 열망 때문 아니겠습니까? ㅋㅋㅋ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아요. 오고가고 시간 넘 많이 뺏깁니다. 요즘엔 정말 시대가 좋아졌죠?
그래도 어떤 강의는 직접가서 듣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시나리오 강의 들었을 때 끝나고 뒤풀이 할 때가 정말 좋아던 것 같아요.
앞의 두 시간은 이론 강의고 술잔 부딪혀 가며 수다 떠는 게 진짜 강의죠.
누구는 술판 벌어지는 게 무슨 공부냐고 할지 모르지만. ㅋㅋ

yamoo 2023-03-12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민 저자의 책을 몇권 봤는데 저는 그리 좋은 줄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책은 꾸준히 내고 퀄러티도 어느정도 있어서 간혹 들춰는 보는 작가인데 제겐 별로 임팩트가 없는 작가에요~

stella.K 2023-03-12 18:37   좋아요 1 | URL
동명이인이예요.
아마 야무님이 말씀하시는 김명민은 이 책의 김영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맞다면 저는 그 김영민이 관심이 가더라구요.
근데 이 책의 저자는 넘 어려웠어요.
이 저자를 좋아하는 독자도 나름 있는 것 같긴하더라구요.
 
그 의사의 코로나
임야비 지음 / 고유명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로 코로나 4년 차. 어찌 살아왔나 싶다.

전염병은 남의 나라 이야기인 줄 알았다. 더구나 팬데믹이란 생전 입에 떠올릴 필요 없을 것 같은 단어가 이렇게 익숙한 단어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미세먼지 많은 날에도 잘하지 않았던 마스크를 사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구할 수도 없었던 때가 있었다. 후에 구할 수 있게 되었다 해도 인당 구할 수 있는 양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만 구할 수 있다고 생긴 긴 줄.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마스크를 구해 보겠다고 그 긴 행렬에 끼게 될 것도 상상도 못했다. 이제 당당히 선진국 반열에 들어 섰다는 대한민국에서 이 무슨 구태의연한 공산주의식 배급 방식인가. 검사에서 확진이 나오면 무조건 격리돼야 하고, 이에 불복종하면 끝내 찾아내 격리시킨다. 그뿐인가. 교회도 온전히 다닐 수도 없었다. 교회가 크든 작든 20명을 초과하면 안 되는 규정이 생겼고, 하늘길은 완전히 끊기고. 사회적 거리 두기로 거리는 한산하다. 연일 몇천에서 몇만의 사람이 확진되고 또 몇백 명의 사람이 죽어 나갔다. 영화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디스토피아의 세상을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난 그제야 전염병이 무섭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전에 사스나 메르스 때도 마스크 착용이 권고되었지만 난 그때 마스크하고 다니는 사람을 속으로 비웃거나 측은하게 생각했었다. 2차 세계 대전의 포격을 멈추게 했던 것이 평화를 열망했던 사람들의 노력과 외침이 아니라 전염병이라고 하지 않던가. 전염병이 끝나면 나라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예상은  비껴가지 않고 어려움이 닥쳤다. 아직 채 끝나기도 전에.      


그래도 사람들은 코로나를 꼭 나쁘게만은 생각하지 않았다.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지만 크든 작든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려고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려고 애썼다. 하다못해 일에 치여 살았던 내 조카는 드디어 눈치 안 보고 쉴 수 있게 되었다고 좋아했단다. 그러면서 또 한 번 걸렸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물론 앓고 누워있는 게 뭐 그리 좋겠는가만 그래도 쉴 새도 없이 일하는 것보다 낫단다. 그건 또 어찌 보면 이런 상황에서 묵묵히 애쓰는 의료진들을 생각하면 얍삽하다 못해 비열하단 느낌도 든다. 어쨌거나 그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고 위험한 사람들은 최전선에서 일하는 의료진들과 기저질환자들 아닌가.           


그때처럼 의료진들이 영웅처럼 보였던 때도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뉴스는 인간의 온갖 비리와 불온한 소식들만을 전달하기에 급급했는데 코로나 의료진들에 대한 보도는 얼마나 훈훈하고 덕스러웠던가. 더구나 아무리 더워도 달나라 우주복 같은 방진복들을 벗지 못하는 그들을 보면서 역시 의사는 의사구나 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우리가 의사를 보는 시각은 그리 좋은 것만도 아닌 것도 사실 아닌가. 그러면서 과연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를 매일 생각했다. 


또 그런 와중에도 우리나라는 확진자의 관리와 방역을 잘한다고 해서 K- 방역이란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새로운 인사법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엄지 척 들어 올린 손을 다른 한 손이 받아드는 모양.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백신이 나오자 사람들의 마음이 전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비빌 언덕이 생긴 셈이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그전까지는 확진이 되면 불편했는 데 지금은 걸린 자 보다 안 걸린 자를 찾아보기가 더 어려워졌으니 더더욱. (참고로 난 아직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백신 한 번 맞으면 코로나가 곧 사라질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다. 3개월이 지나면 약 효과 떨어지니 또 맞아야 한다. 그리도 K- 방역을 자랑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게도 피해가 막심한 미국이나 여타의 주류 국가에 비해 아직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다. 뭔가 모를 이율배반을 느낀다.


코로나는 어떤 식으로든 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길을 만들기도 한다. 이 책은 나를 비롯한 일반인들에게 코로나의 또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낯설면서도 가리어져 있는 부분을 드러내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르포 문학이다. 글쓴이가 보고 느꼈던 세계를 가감 없이 쓴 논픽션이다.


저자는 코로나가 있기 바로 전해인 2019년에 의사직을 그만둔다. 그리고 코로나 자원봉사자를 지원을 한다. 그리고 첫 발령지가 외진 어느 정신병원이다. 의사직도 그만뒀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허드렛일이나 거들 요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신병원이라니. 더구나 저자는 '그 의사'라고만 할 뿐 자신의 전공을 밝히지도 않는다. 그런 것으로 봐 정신과와는 거리가 먼 쪽인듯하다. 처음엔 그런 곳에 배정받았다고 투덜거렸겠지만 환자를 위하는 사명이 투철한 어느 수녀님과 간호사와 의사들을 보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닫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비록 육체는 힘들어도. 하지만 정들자 이별이라고 기간제로 봉사하는 거라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진다. 


나는 이 책을 읽어서야 비로소 정신병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병인지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런 환자들에게 코로나 확진은 또 얼마나 무서운 위협이 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세상에 마음이 아픈 사람은 왜 그리도 많은지 읽는 내내 마음이 착잡했다.  


책은 공교롭게도 저자가 100일 간격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게 되는 과정과 그 병원에서의 코로나 진료 과정을 서로 교차하며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애초에 자원봉사를 했던 것도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잊고자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그것이 어떤 사람이 보기엔 자책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다른 때도 아니고 코로나란 엄중한 시기 아니던가.  


읽으면서 자꾸만 마음이 동화돼 몇 번이고 읽는 것을 멈추고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그게 꼭 30여 년 전과 10년 전에 돌아간 내 아버지와 오빠가 생각나서만도 아니다. 그들은 이제 나에겐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저자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진 후 한 달 동안 가족과 함께 간호하는 그 신산했던 과정이 자꾸만 나의 의식을 건드려 놓는 것이다. 더구나 문체는 건조해 읽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더 신산하고 고독하게 만든다.    


죽음을 모를 땐 그저 삶은 온전히 내 편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은 정해진 이치 따라 살고 죽는 거라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보는 건 그 믿음을 배신하기에 충분하고 때로 혹독하기까지 하다. 할 수만 있으면 삶에서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 그를 붙들고 싶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죽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그것을 100일 만에 또 겪어야 한다는 건 얼마나 전율할 일인가.


저자는 그 첫 번째 봉사 이후에 다시 봉사를 나간다.

이번에 배정받은 곳 역시 똑같은 정신병원이지만 이곳은 먼저 갔던 곳과는 사뭇 다르다. 훨씬 넓고 시설도 좋지만 원래 있어야 할 의사들은 보이지 않고 간호사들만 있다. 의사들이 자기는 코로나 전담 의사가 아니라며 환자에게서 코로나가 옮을까 봐 피신해 있는 것이다. 오더를 내려야 할 의사가 손을 놓고 있으니 함부로 도와줄 수도 처방도 내릴 수 없고 대략난감한 상황이다. 그때의 저자의 의사로서의 활약상은 가히 내가 봤던 최고의 의학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를 연상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저자는 그곳에서 영웅이 될 생각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분개하고 행동했을 뿐인데 한마디로 어느새 영웅과 깡패(요즘엔 이 말을 나쁜 의미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오해 없긴 바란다.)를 오가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니 어찌 김사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으랴. 


사람은 평안할 땐 자기가 처한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른다. 그저 편안함에 취해 저 밑바닥에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다 뭔가의 파문이 이러나 밑바닥을 휘저어 놓으면 잠자고 있던 의식이 수면으로 올라온다. 코로나 역시 그랬다. 보라. 코로나로 인해 이단의 교주가 그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저자가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그런 병원에 가지도 않았겠거니와 이런 책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이번에 백신을 세 번이나 맞았고, 확진자의 격리와 사후관리를 보면서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막연하게나마 느꼈지만, 책은 훨씬 적나라하게 우리나라 의사의 방만한 태도와 의료 윤리를 꼬집는다.


어느 분야든지 세대 차이의 극복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더구나 공중보건의 문제 역시 심각해 보인다.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요즘 젊은 의사들은 버릇이 없으며 자기밖에 모른다고 하고, 젊은 의사들은 나이 든 선배들을 꼰대 취급하며 그들에게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닌자라고 하는 레지던트 기간을 통째로 날려 먹는다. 그리고 어떻게든 개업할 생각만 한다고 통탄한다. 역시 읽는 나도 씁쓸해진다. 그건 다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기성세대에 보고 배울 사람이 없으니 젊은 의사라고 나을 것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세대나 의인은 있기 마련이다.  


난 이 대목을 읽을 때야 비로소 저자가 왜 본명 대신 필명을 쓰며 자신의 전공을 밝히지 않고 있는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에는 뭐 그러는 거야 자유겠지만 독자의 입장에선 불친절하다고 하다고 생각했다.) 스웨덴의 칼 오베 크라우스고르라는 작가는 자신의 자서전을 쓰면서 거기 등장하는 사람들의 실명을 거론하므로 지금까지 가깝게 지낸 사람들과 불편해졌고, 어떤 사람에게 고소까지 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도 고소는 몰라도 가급적 있을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불편과 오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생각에서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물론 시설명까지 다 가명으로 하지 않았나 한다. 그래서 논픽션, 르포문학이 어렵다는 것일 것이다. 새삼 르포 문학의 한 축을 담당했던 조지 오웰도 생각이 난다.


저자는 현재 연극에 투신하면서 소설을 쓰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어느 음악잡지에 칼럼을 기고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모쪼록 그의 제2의 인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1-19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23-01-20 12:46   좋아요 1 | URL
ㅎㅎㅎ 속옷 벗는...?!
외모의 평준화.ㅋㅋㅋㅋ
하긴 이게 언제 그렇게 익숙해졌는지 모르겠어요.
처음엔 마스크 하는 거 잊어버려서 식겁한 적이 어제 같은데...
세수 안하고 나가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근데 정말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건 안 좋은 것 같아요.
30일부터는 실내 마스크 해제라던데 대중교통도 마져하지
적어도 혼잡한 시간은 제외하고 해제로 가닥을 잡으면 좋을텐데 말이죠.
아무튼 잘 견뎌왔다 싶네요.^^

바람돌이 2023-01-19 2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특히나 공공의료부문에서는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개 의료 종사자들의 희생정신 이런데 기대서는 안되는..... 저자가 본 두번째 병원이 그런 시스템이 무너진 적나라한 예가 아닐까 싶네요. 다행히 그런 곳보다는 안 그런 곳이 더 많긴 하겟지만 이 시스템이라는게 사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또 걷잡을 수 없달까 그래서 우리가 정치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는거 같아요. 이런 책이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stella.K 2023-01-20 13:42   좋아요 3 | URL
맞아요. 그동안 전염병이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가 선재적으로
해 온 일이 있더라구요.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 의료 수준은
선진국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문제점은 반드시 집고 넘어갈 필요는 있다고 봐요.
저자는 바로 이점을 문제제기 한거고요.
원래 조그만 구멍 하나가 둑을 무너뜨리잖아요.
정치지도자들 과거 가지고 자꾸 싸우고 그럴 일이 아닌데 말이죠.
이 책 참 좋더군요. 르포라고 하지만 괜찮은 문학작품 읽는 느낌도
들어요. 저자가 부러웠습니다. ㅋ

희선 2023-01-20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로 여러 가지 달라진 게 많은 사람 많겠습니다 좋아진 사람도 있겠지만, 더 힘들어진 사람 많겠네요 그래도 코로나가 처음보다 심하지 않아 다행이지만, 변이가 자꾸 나오다 다시 안 좋아질 수도 있을지... 그런 바이러스도 사람 때문에 생긴 거나 마찬가지죠 사람이 지구를 덜 망쳐야 할 텐데... 의료를 하는 사람은 코로나 초기에는 많이 힘들었겠습니다 어디나 예전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교사도... 그런 말이 나온다 해도 그 안에는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하는 사람 있으리라고 봅니다


희선

stella.K 2023-01-20 13:51   좋아요 2 | URL
그럼요. 이제 30일부턴 실내 마스크도 해제 한다는데
기대 반, 걱정 반이네요.
함께 잘 견뎠다 싶어요. 의술도 많이 좋아졌고.
중세 시대 때 흑사병은 7, 8년이었더군요. 사람도 더 많이 죽었을 겁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코로나가 우리를 많이 가르쳤어요. 그죠?

yamoo 2023-01-21 12: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코로나가 지속되어도 그리 나쁠 거 같진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점도 있고 그랬는데...

코로나 해제한다니 걱정이 반입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 마스크를 쓰고 다닐 것입니다~~ 마스크의 장점은 참으로 많은 듯합니다..ㅎㅎ

스텔라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길요~~

stella.K 2023-01-21 14:34   좋아요 1 | URL
아유, 무슨 그런 말씀을...
하긴 코로나 원년을 생각하면 그렇기도 하네요.
그때 바다와 하늘이 살만했죠. 사람도 많이 안 모이고.
하지만 세계적으로사람들 떼죽음을 당한 거 보면 이거
한 번이나 겪지 두 번 겪을 건 아니다 싶어요.

백신을 안 맞으셨다면 마스크 계속 하시는 게 좋을 것 같긴해요.
사람들이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거리에서도 마스크를 거의 다 하더군요.

고맙습니다. 야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좋은 일 많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좋은 작품 많이 만드시고요.^^
 
여자는 존재 자체로 낙인이었어
오현세 지음 / 달콤한책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가 활동 이력이 나름 화려하다. 

다른 건 차치하고라도 영화사에서도 일을 하고 700여 편의 광고와 객원기자, 칼럼니스트, 그룹사운드의 리드 기타, 탁구 선수 등으로도 일을 하고 바둑 문학상도 받았단다. 현재는 합창단 지휘를 하고 있다.  그러다 뒤늦게 갑골문에 심취해 10년간 자료를 모으고, 그에 대한 첫 번째 결과로 이 책을 냈다고 한다. 솔직히 이거 하나만 파도 시간이 모자랄 텐데 그렇게 많은 활동을 하면서 어떻게 자료를 모았을지 대단하다 싶다.  


나도 변하는 걸까? 이런 불온한 제목의 책은 예전 같으면 안 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뭔지는 모르겠는데 끌렸다. 아마도 표지 디자인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비녀를 꽂은 여인의 뒷모습이라니. 더구나 저 비녀는 남근의 상징이라고 하지 않는가. 한눈에 봐도 여자는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우리는 여자가 하나의 재산이나 노예로 취급받던 고대 시대로부터 너무 많이 떨어져 나왔기 때문에 그게 어떤 의미인 건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나마 우린 지난 세월 페미니즘 운동으로 이만큼이라도 주권을 누리고 사는 거지만, 그 시대를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착잡함과 만감이 교차한다. 우린 당장 가장 가까운 일제강점기를 더듬어 봐도 남자도 견디기 어려운 망국의 한을 여자가 어떻게 견뎠을지 그것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괴롭다.    


그보다 더 오랜 조선의 병자호란은 어땠을까? 오랑캐에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으면서 50만의 여성이 세자와 함께 끌려가야만 했다. 그나마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 와도 그녀들의 고향에선 환영받을 수  없었다. 오랑캐의 땅에서 어떻게 굴러 먹었을지 모르니 안 오느니만 못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에게 붙여진 이름이 '환향녀'였고, 말 그대로 고향으로 환향한 여자가 오늘날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뿐인가. 그런 전쟁이 아니어도 왕이 왕비를 맞이한다고 하면 일단 금혼령이 내려진다. 당시론 여자가 그리 건강한 것은 아니고 아기를 낳다 죽는 일이 흔했으니 그만큼 금혼령도 자주 내렸을 것이다. 왕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고 왕비 후보들의 나이는 상대적으로 젊어진다. 가장 많은 나이 차이를 보였던 건 영조였다. 왕비를 다시 간택할 때의 나이가 60대 초반이고, 새로운 왕비의 나이는 10대에 불과했다. 지금 같으면 할아버지가 손녀뻘의 여자를 맞이한 거지만 그땐 그것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권력이 좋다지만 그런 늙은 왕에게 시집보내기를 즐거워하는 아비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딸이 있는 사대부들은 금혼령이 내려지기 직전 서둘러 시집을 보내거나 몰래 혼사를 치르다 발각이 되면 치도곤을 면치 못했다.  그러고 보면 우린 순화되다 못해 말도 안 되는 사극을 보면서 역사 공부의 재미를 붙였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모든 불온한 것들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알 수가 없다. 그보다 더 오래전 고대 시대엔 남자들이 밤새 여자를 가지고 놀다가 다음 날 삶아 먹기도 했다는 기록도 있다니 여자는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없고 그저 남자의 애완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나마 세월이 흐르면서 공창이 생기고 매춘이 사화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이 되자 숨이 트이기도 했다.  내가 공창이란 단어를 처음 들은 건 중학교 때었다. 당시 여자로서 드물게 경찰계에 높은 직위에 있었던 한 여성 경관님이 공창을 주장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남자도 아니고 여자가 저런 소리를 하나 어린 마음에 분개했다. 사창이든 공창이든 매춘이란 직업은 없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것이 여성을 옹호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한 주장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창녀가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고 공창이 돼야 그녀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이처럼 사회의 발전에 따라 여자에 대한 인식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지만, 고대 시대를 연구한다고 해서 여자들이 왜 이토록이나 천대받아야 하는지를 알 수는 없다. 단지 그것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갑골문만이 증명해 줄 뿐이다. 갑골문이 뭔가? 한자 이전의 문자고 뼈에 아로새긴 문자다. 바로 그 갑골문에 여자를 상징하는 온갖 문자들은 한마디로 불온하기 짝이 없다. 어느 것 하나 계집 女 자를 좋은 뜻에서 쓴 글자가 하나도 없다. 또한 그 이미지는 철저하게 남성의 시각에 고정되어 있다. 모르긴 해도 이 책은 극히 일부를 소개했을 뿐 더 알아보면 사전 한 권도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반응도 여러 가지일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읽다가 던져버릴지도 모른다. 어떻게 여자가 이렇게까지 비하되고 착취 당할 수 있냐며. 솔직히 여성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기 시작한 건 100년 남짓 아닌가. 그전까지는 물건 아니면 집에서 키우는 암컷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인간이 사회 문화적 존재로 발전했다고 하지만 동물적 본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고개를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남녀가 데이트를 하다가도 죽일 수 있고 죽음을 당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착잡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왜 여자끼리 연합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선사시대로부터 암컷으로 길들여진 존재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오랜 세월 여자들은 딸이 태어난 것을 기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어쩌면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것은 성 정체성을 말하기 이전의 얘기니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혐오하며 싸우더라.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서로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싸우는 것이 아니겠냐며. 분명 이 책은 서로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싸움 역시 모르긴 해도 꽤 오래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느 때까지라고 못 밖을 수는 없지만, 여자가 착취되어 온 세월만큼 또 그것이 착취인 줄도 모르고 살아왔던 남자의 역사만큼 치열하고 길지 않을까. 그러다 어느 때가 되면 합의점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때가 조금이라도 앞당겨지길 바랄 뿐이다.


책이 의외로 흥미롭고 재미(?) 있다. 저자는 갑골문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동파문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동파문이란 중국의 소수민족인 나시족이 7세기 경부터 만들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순수 그림문자다. 이는 현대의 이모티콘과 놀랄만치 흡사하다. 여기에서만 머물렀다면 읽다가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중간중간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있어 흥미롭게 읽힌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일독을 권한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3-01-12 16: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최근 <금혼령>이란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는걸로 아는데
당시에는 금혼령일때 왕이 저렇듯 젊은 경우가 많지 않았겠네요.
60대와 10대라니 ㅠ.ㅠ

stella.K 2023-01-12 18:1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금혼령 함 봐야겠어요.
그런 걸 보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민주 자본주의에 길들여져서
도저히 조선시대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나 싶어요.
그 시대 사람들은 그게 전혀 이상할 게 없었을텐데 말입니다.

요즘 드라마 볼게 넘 많아요. 언제 다 보죠?ㅋㅋ

책읽는나무 2023-01-12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를 삶아먹었다니??ㅜㅜ
정말 여자의 삶이란...
영조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맞아요~그랬어요ㅜㅜ

stella.K 2023-01-12 18:13   좋아요 1 | URL
그러니깐요. 저도 그 부분 읽고 놀랐어요.
그때 여자도 뭔가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을 텐데
자기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존재를 어떻게 삶아 먹었다는 건지
아찔해지더군요.
암튼 이책 은근 재밌어요. 기회되면 함 보셔요.^^

니르바나 2023-01-12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마이리뷰에 꼭 당선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것 저것 섞어 놓은 리뷰보다 이렇게 쓰신 심플한 리뷰가 저는 더 좋아요.
스텔라님, 올해도 좋은 리뷰 계속 부탁드립니다.^^

stella.K 2023-01-12 20:34   좋아요 1 | URL
ㅎㅎ 될거 같은 리뷰는 쓰고나서의 느낌이 다르긴한데 이게 또 항상 맞는 것은 아니라서요. ㅋ
그래도 니르바나님 이렇게 응원해 주시니 좋은 결과 있지 않을까요? 고맙습니다. ^^

희선 2023-01-13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가 여자를 삶아 먹은 일도 있었다니, 무섭네요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은 거였나 봅니다 지금도 그런 게 아주 사라지지 않았을지도... 오래 이어져 왔으니... 앞으로도 바뀌어가겠지요 조금씩이겠지만...


희선

stella.K 2023-01-14 11:45   좋아요 1 | URL
지금도 있죠. 정말 미개한 거죠. 히잡 안 쓴다고 죽이는 나라도 있지 않습니까? ㅠ

페크pek0501 2023-01-14 12: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이 서로 연대하면 좋을 텐데 여자의 적은 여자, 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니...
역사 속의 여성들을 보면 지금 우리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얼마나 높아졌나를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등에서는 아직도 여성보단 남성 직원을 선호하고 있고 여성은 여자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죠.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음, 이에요.

stella.K 2023-01-14 13:18   좋아요 1 | URL
그럼요. 그래도 안 잡혀 먹는 문화시대에 사는 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ㅠㅠ

yamoo 2023-01-16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골문과 여성차별의 연결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책에 나오나요?? 근대이전에 여성이 사람이 아니었다는 건 일반적인 상식이 되지 오래였고, 그리스 시대나 중세시대를 다룬 책들만 봐도 여성이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소상히 나와있죠. 특히 여성사를 보면 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나와있습니다.

저자의 이력이 매우 독특해서 도대체 갑골문에는 왜 빠져들었고, 여성 차별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 궁금했는데, 요는 책을 읽어야하는 거였군요~ㅎㅎ 저는 저자의 이력에 매우 관심이 갑니다..ㅎㅎ

stella.K 2023-01-16 18:30   좋아요 0 | URL
역시 야무님은 지식욕이 강하십니다. 사실 저자의 이력이 다양해서 쓰면 얼마나 잘 써 놨으려나 좀 의문스럽기도 했어요. 식당도 서너 가지 음식만 잘 하는 곳이 좋지 메뉴 많은 곳 일단 의심스럽잖아요. 나만 그런가? ㅋ 암튼 근데 읽을 수록 빠져들더군요. 특히 갑골문이라니 말이어요. 어떤 면에선 저자의 생각 보단 지식 나열이란 느낌도 들긴하지만 전 아주 흥미롭게 읽었어요. 야무님도 이분야가 첨이라면 흥미있게 읽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
 
시가 흐르는 경복궁
박순 지음 / 한언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조선의 임금과 함께 개국 공신들의 이름이 대거 등장한다. 이 책은 경복궁을 창건하고 그 안에 있는 각 전각과 루에 담긴 뜻과 의미를 되새기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엔 정도전이나 하륜, 서거정, 이이나 이황 같은 내로라하는 문필가들이 지은 시와 그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경복궁에 시가 있었다니. 미처 알지 못했다. 경복궁은 알다시피 <시경>의 '군자만년 개이경복 (君子萬年 介爾景福)'의 그 경복에서 따온 말로 정도전이 지은 이름이다. 백성과 함께 크나큰 복을 누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 안에 '근정전'은 어떠한가. 부지런할 근(勤)에 다스릴 정(政)으로 이것 역시 정도전이 지었으며, 부지런히 정사에 힘쓰라는 의미에서 지었다고 한다. 경복궁의 상징이고, 임금과 신하의 모든 사무가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정도전이 이 근정전을 두고 이런 글을 썼다.

천하의 일이 부지런하면 다스려지고 게으르면 망하는 것은 필연의 이치입니다. 작은 일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정사와 같은 큰일은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다만 인군이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만 알고 부지런해야 하는 까닭을 일지 못한다면 끝내 그 부지런함은 번잡하고 까다롭게만 될 뿐이므로 볼만한 것이 못될 것입니다.

선유들이 말하기를, "아침에는 정사를 행하고, 낮에는 어진이에게 묻고, 저녁에는 명령할 일들을 가다듬고, 밤에는 편안히 쉰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인군의 부지런함입니다. ......(하략)

그만큼 정도전은 얼마나 임금이 부지런히 정사를 살피기를 바랐는지 알 것도 같다.

사정전도 있었다. 규모는 근정전만 하지는 않았지만 이곳 역시 실제의 정사를 관장하는 집무공간이었다. 한마디로 '정사를 생각하는 곳'이었다. 정도전은 이를 두고,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고 생각하지 않으면 잃는다고 했다.


경회루 누각은 하륜이 지었다. 하륜은 정도전과 함께 고려 말 이색에게서 성리학을 배운 기라성 같은 수재 중 한 사람으로 나이는 정도전보다 5살이 어리다. 경회루는 태종 때 지어진 것으로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경사스러운 모임 즉 연회를 뜻하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고, 임금과 신하가 연회를 벌이는 공간이었다. 하륜의 <경회루기>를 보면, 태종이 정도전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했을 때 아버지 태조에게 지은 불효를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마음에서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것도 태조가 승하한지 4년 뒤에야 완공되었다고 한다.


경회루는 박자청이란 사람이 설계했는데 특별히 저자는 그를 꼭 기억해 주길 바랐다. 그는 당대 천재 건축가였다. 사실 박자청의 본래 신분은 노비였다. 하지만 그는 건축, 토목 공사에 상당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고, 훗날 정 2품 판한성부사(오늘 날 사울시장에 해당)까지 역임했다. 이쯤 되면 누군가 떠오르지 않나? 맞다. 장영실이다. 처음 신분도 같은 노비였지만 그는 훗날 탁월한 과학자가 된다. 물론 장영실은 세종 시대 사람이고, 그는 그 이전의 사람이다. 저자는 박자청이 장영실 못지않은 사람인데 후대의 사람들이 기억을 못 해 주는 것 같아 아쉬워한다. 앞으로 장영실하면 박자청도 함께 기억해야겠다.


그리고 세종, 문종, 단종, 세조, 예종, 성종을 모셨던 고급관료였던 서거정은 경회루를 두고 이런 시를 지었다. 그것을 한글로 풀어보면,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시니

만물이 기뻐한다네

이예 즐거워서 음복하고자

질서 정연히 화려한 주연 베푸니

훈풍은 전각에 서늘하게 불어오고

밝은 태양은 중천에 높이 떴도다

천재일우로 밝은 임금과 어진 신하 만나서

지극히 즐거움에 감히 편치 못하여

인의로써 처신한다네

그 밖에도 황홍헌, 이이 등도 경회루를 두고 글을 남기기도 했으니 경회루는 경복궁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었나 보다.


사정전은 왕과 신하가 한가로이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누던 일종의 거실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술자리도 벌이기도 했다고 하니 경회루보다 작았던 모양이다. 말이 좋아 군신 간의 한담이지 세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면 그 앞에서 물 한 모금 제대로 삼켰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세조를 두고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인재만큼은 잘 등용하길 바랐나 보다.

좌불안석하며 현인을 구하였고 이미 적임자를 얻었는데

더구나 때맞춰 내리는 비가 온 나라를 두루 적셨네

용 같고 범 같은 영재에게 술잔을 듬뿍 내리니

기쁘고 흡족한 연회에서 빙빙 돌진 말게나

이런 시를 지은 것을 보면 천하의 세조도 영재를 등용하는 일에 깨나 고민이 많았나 보다. 이 시는 당대 불세출의 영재 김수온을 등용하고 지은 시로 그래서였을까, 김수온은 세종부터 세조는 물론이고 성종까지 주요 요직을 거쳤다고 한다.


사정전에 이황은 이런 글을 썼다.

삼가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뒤 수많은 복들 찾아들고 백신들 옹위하여 전각은 강릉(산마루와 구릉)처럼 오래가고 국세는 반석처럼 안정되며, 전하의 성스러움과 공경함이 날로 드높아져 새롭고 또 새로워져 그치지 않으며, 덕 있는 정치는 바람으로 휩쓸리듯 널리 퍼져 황폐하지 말며, 사방의 기운 화평하여 육진의 질병 쓸어내고, 백성의 풍속 순박하며 해마다 풍년 되어 굶주림이 없어지며, 천자께 드린 문안 은총을 받으며 상제의 보살핌이 길이 자손에 전하소서

라고 썼다. 알다시피 상량문은 기원의 글을 쓴다. 그 바람과 기원이 어디 사정전에게만 있겠는가. 경복궁 전체가 태평성세를 기원하며 지었을 것이다. 주요 전각이 불에 타기도 했다. 태조 3년 만에 임금의 침실이라던 강녕전과 사정전, 흠경각이 모두 불에 탔다. 그뿐인가, 임진왜란 때도 타 고종 때야 비로소 복원하기도 했다. 왜 그처럼 오랜 시차를 두고 복원이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2008년이었던가? 어처구니 없게도 한 취객에 의해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도 안타까움이 컸는데 경복궁을 거쳐 간 임금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은 조선이란 나라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에도 말없이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복궁 한 번 안 가 본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두어 번 갔고 그곳을 지나다닌 적도 있는데, 너무 지식 없이 무심하게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역사하면 사람의한 역사를 되짚어 보곤 했는데 경복궁 같은 사적을 통해 역사를 볼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나름 읽어 볼 만한 책이긴 한데 좋게 말하면 친절하고, 나쁘게 말하면 설명이 좀 장황하다는 느낌도 든다. 난 그저 시만 온전히 음미하는 그런 책인 줄 알았는데.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넬로페 2023-01-05 17: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경복궁에 몇 번 가 보았고 문화재 해설사님의 설명도 들었는데,
다시 자세하게 경복궁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네요.
조선 왕조의 상징이지만 거기에 또 많은 아픔과 굴곡이 있는 것 같습니다^^

stella.K 2023-01-05 18:09   좋아요 3 | URL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안 가 본 것도 아닌데 내가 정말 경복궁에 대해 몰랐구나 했어요.
그나마 사극에서 근정전이니 강녕전이니 주워들은 건 있어
낮설진 않았다는 정도.ㅋ
책이 공들였다는 느낌과 약간 산만하다는 느낌도 들고 대충 그러네요.
전 그냥 시만 집중해서 감상하길 바랐는데.^^

바람돌이 2023-01-05 1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온갖 권위와 형식미를 다 갖다붙인 공간이 경복궁인데 시와는 딱히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에요. 조선시대에 왕의 정궁에 비유하는 시가 자유로울수는 절대 없었을거고, 진짜 유교경전을 풀어내는 시가 주류가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이 들어요. 책이 지루햇다면 저는 시와 경복궁이라는 소재 자체가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드네요. ^^

stella.K 2023-01-05 20:07   좋아요 2 | URL
아, 그러고보니 그러네요. 전 그저 단순히 저자가 좀 설명이 장황하다 뭐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또 알고보면 경복궁의 역사가 좋은건 아니잖아요. 말없이 왕조를 지켜 온 걸 생각하면 짠하기도 하고.
아, 전 왜 아이들마냥 모든지 의인화하는 걸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

희선 2023-01-06 0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복궁과 시 몰랐네요 이 이름이 시경에 있는 말이었다니... 다른 책에서 뭔가 이야기 본 적 있을 텐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납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서울편에서... 서울편 두편이 더 나왔더군요 서울엔 갈 곳이 많은가 봅니다 제가 사는 곳도 잘 모르네요 2023년 1월에 나온 책이군요


희선

stella.K 2023-01-06 09:30   좋아요 1 | URL
아, 경복궁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나오겠네요. 어떻게 나왔을지 모르겠지만 이게 좀 더 자세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진도 많이 들어있고. 기왕이면 컬러면 좋을 것 같은데 흑백이라 저는 그점도 좀 아쉽더군요. ㅠ

페크pek0501 2023-01-10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갑자기 학교시절 역사 시간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학생 때 역사 선생님이 가장 똑똑해 보였어요. 저 많은 걸 어떻게 외워서 우리에게 설명해 주는지 놀라웠거든요.
경복궁은 고궁 중 가장 많이 가 본 것 같아요. 최근엔 못 갔는데 몇 년 전과 또 다를 것 같네요.

stella.K 2023-01-10 18:14   좋아요 0 | URL
아, 맞아요. 저도 국사 선생님 생각나요. 그 선생님은 정말 역사를 열정적으로 가르치셨어요. 거의 대학교 강의 수준이었지요. 애들 가르치기엔 정말 아깝단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모르긴 해도 나중에 대학교수가 되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별로 친한 선생님은 아니었는데 존경스럽긴 하더군요.

yamoo 2023-01-16 1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복궁의 경복은 시경에 나온 시구였죠. 경복궁을 지으면서 정도전이 계획한 궁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꽤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선의 궁궐을 다룬 책에서 다수 다루어졌었어요..이 책은 몰루는 책인데, 대체로 궁궐에 관계된 책들은 내용이 비슷한 거 같아요. 하지만 책마다 특색이 있어서 이 책은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하긴 합니다..^^

stella.K 2023-01-16 18:35   좋아요 0 | URL
경복궁에 대해 읽으셨다면 굳이 안 읽으셔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ㅋ
그러게요. 정도전은 정말 시대가 낳은 천재는 아닐까 합니다. 이거 읽으니까 김탁환의 정도전을 다룬 혁명인가? 그게 읽고 싶어졌어요. ㅠ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
최진석 지음 / 북루덴스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자가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때가 있었을까?

없지는 않았다. 지금도 백수를 누리고 있는 김형석 교수나 고인이 된 안병욱 교수가 1980년 대 거의 혜성같이 나타나 독서계를 주름잡은 적이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분들은 철학의 대중화보단 그냥 잔잔한 수필을 썼던 분으로 더 각인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본격적인 철학의 대중화는 강신주란 걸출한 철학자가 한 10년 전쯤 나오면서부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전이라고 그런 노력들이 없었겠냐만 우리나라 사람이 딱히 독서를 좋아하는 민족은 아니지 않는가.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데 철학이라고 좋아할 리도 없고. 그저 미미한 꿈틀거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노력들이 꾸준히 있어왔기에 이만큼이라도 철학의 대중화를 이룰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예나 지금이나 철학은 정말 별 볼 일없구나 싶다. 어쩌면 그리도 안 바뀌는지. 저자가 대학을 들어갔던 80년 대 초, 아버지가 철학은 해 뭐 하냐며 전공을 바꾸라는 걸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열심히 철학을 공부했느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 


그런 걸 보면 핍박이 좀 심해서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왠지 철학은 그래도 될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현실에 발을 딛고는 결코 못할 일이 그거 아닌가. 사실은 현실에 발을 딛고 해야 하는 일이 그것인데 철학과 현실은 아직도 괴리가 있어 보인다. 그나마 요즘은 인문학이 인기가 많다지만 편차는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나이 먹고 은퇴하고 하는 거지 사느라 바쁜 젊음에겐 언감생심인 것 같다. 더구나 동양철학을.


저자의 이력이 좀 흥미롭다. 원래 저자는 서양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것도 그 어렵다던 독일철학을 미간을 찌푸리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철학을 멀리하는 이유일 것이다. 전공자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안 그래도 미간 찌푸릴 일 많은데 공부까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공부가 축복이 돼야지 고난이 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다 저자는 장자를 읽다가 그 재미에 푹 빠졌다고 한다. 사람이 공부를 하던 일을 하던 그렇게 해야 한다.  재밌어서 하는 것. 옛날이야 먹고 사느라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21세기 아닌가. 아무튼 난 그렇게 많은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전이나 평전류를 좋아하고 동양 철학을 곁들인 에세이 냈다고 하니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250쪽 내외니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 근데 그게 아니었다. 책이란 얇다고 해서 금방 읽고, 두껍다고 해서 늦게까지 읽으라는 법은 없다. 얇아도 한참 붙들고 읽는 책이 있고, 두꺼워도 금방 읽는 의외의 책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전자에 해당하는 책이다. 언제나 그렇듯 철학은 어떤 형식으로 풀어내도 가독성이 좋은 책은 아닌 성싶다.


그래도 첫 부분에서 다룬 저자의 자전은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힌다. 저자가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는지 시를 인용하면서 글의 격을 높인다. 또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므로 철학자의 글쓰기를 새롭게 하는데 좋은 예를 보여주기도 한다. 왠지 철학자는 말마따나 미간을 찌푸리며 묵직한 표준어만을 사용할 것 같지 않은가. 한마디로 저자의 글발이 좋다. 기라성 같은 글발 좋은 저자들이 수두룩 빽빽인데 (처음 읽어 본 나로선) 결코 기죽지 않은 저자만의 탁월한 시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글 속엔 죽음에 대한 의식, 무의식적 두려움이 깔려있다. 

어렸을 때 백혈병으로 죽은 큰 누나와 삶의 마지막 순간 곡기를 끊고 그런 지 8일 만에 돌아간 아버지를 생각하며 저자는 적잖이 삶과 죽음을 사유했겠구나 싶다. 개인적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곡기를 끊는 것이 제대로 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곡기를 끊었기 때문에 죽는 것인지 아니면 죽으려고 곡기를 끊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게 소위 말하는 자연사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 주위엔 사고로, 병으로, 자살로 심지어는 타살로 생을 마무리하는 죽음이 얼마나 많은가. 자연사는 확실히 복된 죽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들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우린 할 수만 있으면 죽음을 얘기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발버둥 친다. 큰 누나가 어린 나이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로 큰 누나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건 비단 저자만 그런 건 아니다. 우리 중 누구도 죽음에 대해 의식, 무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해 말하길 삼간다. 사람은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삶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아쉬운 건, 전체가 저자의 자전 에세이인 줄 알았더니 앞부분에서만 다루었고, 그 뒤로 또 다른 주제의 에세이가 이어진다. 갈수록 말랑말랑하고 내 스타일에 맞는 책만 읽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모처럼 뭔가 도끼로 두껍게 얼어붙은 강바닥을 깨는 느낌이다. 정신나는 문장들이 많아 얼마나 많이 줄을 쳐 가면서 읽었는지 모른다. 


특히 지식 수입국이라는 우리나라 지식 생태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던지는 쓴소리는 좀 음미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권문세도가들이 어떤 우를 범하고, 왜 그런 우를 범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저자 특유의 사유가 돋보인다. 그리고 그건 갈수록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철학 없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가능할까. 당연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린 지금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중간중간에 그림이 들어가 있던데 따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자 자신의 작품인듯하다. 필치도 프로의 경지다.


책은 대체로 좋다. 나중에라도 다시 한번 읽고 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책의 3분의 2 정도가 지나면 뭔 말을 하는 것인지 그 주제와 촛점이 좀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뭐 어려운 동양철학을 이만큼 썼다면 용서해 줄 마음도 없진 않지만, 이건 우리나라 저자들이 주로 많이 하는 실수는 아닌가 지적하고 싶다. 


그건 그만큼 뒷심 좋은 작가들이 그리 많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도 같고, 아니면 반대로 집중력과 지구력이 다소 떨어지는 독자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는 절대로 후자로 자신을 자책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어려운 걸 쉽게 풀어쓸 의무와 책임이 있다. 최후의 한 장까지 잘 쓰고 마무리하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22-12-29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년에는 철학관련 책들을 읽어볼 계획을 잡고 있어요^^
막상 읽어보려고 도서관 쪽이나 서점을 기웃거려 보아도 이쪽 계통에 워낙 문외한이라 그런지? 쉽게 읽을 만한 책들이 눈에 띄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요즘 유튭 철학책 소개 코너도 보고, 일단 제일 눈에 익은 강신주 작가의 책이랑 도서관에서 빌려왔어요. 지금 읽고 있는 책 다 읽음 읽으려구요^^
뭐든 잡고 읽다보면 이 책, 저 책 확장되어가겠거니~~겁 먹고 미루던 분야의 책을 이제 시작해 볼 생각인데...이 책도 눈에 띄네요. 일단 담아가겠습니다^^
작가님이 눈에 익네요?
사유? 관련 다른 책도 내신 것 같은 기억이 떠오르네요?^^

stella.K 2022-12-29 20:06   좋아요 1 | URL
역시 부지런한 책나무님!
철학 좋죠. 이 책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뒤가 좀 어려워서 그렇지 뭔가 쨍하는 느낌이 있어요.
강신주만큼은 아니어고 좀 유명하긴 하죠.
내년에도 파이팅!!

호우 2022-12-29 16: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자들은 어려운 걸 쉽게 풀어 쓸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강력히 동의합니다) 제대로 알면 더 싑게 설명 할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

stella.K 2022-12-29 20:09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니까요. 글쓰기 강사는 쉽게 쓰라고 해 놓고
어떤 저자 어렵게 쓰면 모순이잖아요.
글을 어렵게 쓴다는 건 그만큼 설명이 안 되있다는 거잖아요.
뭐 이 책이 그렇다는 건 아니구요.
나름 잘 썼어요.^^

꼬마요정 2022-12-29 17: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분도 책을 참 쉽게 쓰신 걸로 기억해요. 최진석님 책은 <탁월한 사유의 시선> 일부를 읽었는데요, 저도 철학 수입국이라고, ‘높은 수준의 생각‘은 수입해서 내면화 하면서 자기 것이라고 착각한다고 하신 말씀 공감했어요. 멋진 분이세요. 다만, 책은 재밌게 쓰시고 분명 쉽게 쓰시는 것 같은데 저는 잘 모른다는 게...ㅠㅠ
강신주님 너무 좋아요. 요즘 건강은 괜찮으신지 모르겠네요. 한 때 이 분 안 나오는 교양 프로그램 없었던 것 같아요. ㅋㅋㅋ

stella.K 2022-12-29 20:15   좋아요 2 | URL
맞아요. 재밌게 쓰시고 분명 쉽게 쓰시는 것 같은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 표현이 딱! ㅋㅋㅋ
그래서 읽으면서 별 다섯 개다 했는데 나중에 하나 빼게되더라구요.
그래도 뭐 어려운 동양철학을 이만큼 쓰면 잘 쓰는 거죠.
요즘 정치인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요즘 정치인들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yamoo 2023-01-02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진석의 신간인가 봅니다. 다른 분 리뷰에서도 봤는데요...이거 조만간 한 번 훑어나 봐야 겠어요. 최진석의 책을 보고 실망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책은 매우 쉽고 가독성도 좋지만 철학 에세이 또는 시론이면 최소한 탄탄한 논증은 기본인데...좀 탁석산 책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철저히 보면 책의 단점이 더 도드라져 보일 거 같아 걍 빠르게 일독하곤 했는데, 이 책은 어떤지 저도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스텔라 님이 어렵다고 느낀 후반부만 좀 볼까 합니다..ㅎㅎ

stella.K 2023-01-02 19:04   좋아요 0 | URL
아유, 그럼 비추여요. 야무님 또 실망하실라. 이 분에 대해선 호불호 가 있는 것 같긴하더라구요. 에세이가 뭐 특별히 논리가 필요한가요? 자기 느끼는대로 쓰는거죠. 근데 정말 잘 가다가 뒤로 갈수록 뭔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더군요. 아쉬웠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