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 혹은 세뇌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새삼 돌아봅니다. 강원도 횡성에 이틀간 머무는 내내 "횡성 한우 맛집"을 검색했습니다. 저는 일부러는 육식할 일 없는 "채소 예찬자"입니다. 어차피 한우 음식점에 가더라도 버섯, 마늘, 쌈채에만 손을 댈 텐데도 계속 "횡성 한우"를 입에 올리고 검색하는 자신이 어느 순간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나는 반복학습(횡성 하면 한우, 횡성 한우, 횡성=한우....) 세뇌의 자동누름버튼에 조종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 끼 음식을 두고 별생각 다하지요? ^^;; 아무튼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횡성여행에서 '한우'가 필요조건인양 생각하게 된 경로를 되짚어보다가, 에라! 감자를 찾아봅니다. 강원도하면 감자잖아요? 다행히 급 목표 수정해 찾은 로컬식당에는 감자와 메밀을 주재료 삼은 고마운 메뉴가 있었네요. 쫄깃하고 찰진 감자옹심이메밀칼국수! 


#횡성한우에 생각이 너무 많은 식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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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zie44, CC BY-SA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앤서니 버지스(Anthony Burgess)에게 독자로서 불경을 고백합니다. [시계태엽 오렌지] 하면 오직 "스탠리 큐브릭" 감독만 생각나는 겁니다. 영화 원작 소설을 누가 썼는지는 관심 없었고요. 하지만 책날개 작가 소개가 워낙 인상적인지라 한 번 알게 되니 쉽게 잊히지 않겠군요. 앤서니 버지스는 뇌종양 판정을 받고 홀로 남을 아내의 여생을 염려하며 창작열을 불태웠는데 실은 오진이었던지라 이후 33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는 부모님이 '돈이 많이 든다'라며 음악가의 길을 인정해 주지 않자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운 음악애호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디스토피아 블랙코미디 [시계태엽 오렌지]가 전개되는 내내 클래식 음악이 캐릭터 성향을 드러낼 뿐 아니라 작품의 상징 의미를 해독하게 해주는 중요 장치처럼 활용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몽골몽골한 분위기와 결코 어울리지 않는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를 3시간 동안 읽는 내내 [1984]를 떠올렸는데요. 번역자 박시영의 해설을 살펴보니 앤서니 버지스는 조지 오웰의 열렬한 팬이었다 합니다. 


제가 계속 변죽만 울리고 있네요. 그래서 [시계태엽 오렌지]는 어떤 작품이냐고요?

작품 초반에는 역겨운 강력 범죄, 그것도 10대 소년들이 저지르는 폭력과 일탈이 충격적일 만큼 상세하게 묘사됩니다. 마약 탄 음료를 (비유적으로는 "칼을 섞어") 마시고 면도칼, 칼, 쇠사슬을 무기로 휘두르면서 이유 없이 폭력이라는 설사를 밤거리에 싸고 다니는 무리에서 독자는 공포감을 느낍니다. 전통 서구 사회는 이런 일탈자를 '교도소'라는 교화기관에 격리하는 방식을 택해왔죠? 이 디스토피아 SF 소설에서는 약물과 심리요법을 결합한 새로운 교화술로 일탈자를 다스립니다. 폭력, 범죄를 상상하거나 보기만 해도 신체적으로 극렬한 고통을 느끼기에 그 욕구 자체를 누르도록 인간개조를 하는 것이지요. 마치 영화 [이퀼리브리엄]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사람들이 약물로 인간 본성의 어떤 측면을 꾹꾹 눌러 억제하도록 강요당하듯이요.

이 교화술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며 국민을 통제하려는 정부고위관료(장관)은 이렇게 자화자찬합니다.


우리의 임상 대상은, 여러분도 보다시피, 강제적으로 착한 일을 하게끔 되었습니다...폭력적으로 행동하려는 의도에 동반해서 육체적 괴로움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그러자 승진 가능성을 확 낮출 걸 알면서도 교도소의 신부가 고위관료에게 소신발언합니다.


저 애에게는 진정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렇지 않나요? 자기 이익,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모독하는 괴이한 행동을 하게 된 거죠... 쟤는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또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신의 피조물도 더 이상은 아니지요." 

고위관료에게는 "임상대상," 신부에게는 "불쌍한 아이"인, 우리의 주인공은 그렇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요?



나, 나, 나. 도대체 나는 어쩌라고요? 난 여기서 뭐란 말이야? 내가 무슨 짐승이나 개란 말이야?.... 내가 무슨 태엽 달린 오렌지란 말이야?"



독자가 전반부에 묘사되는 강간폭력살인마약 등 자극적인 소재에 정신줄 놓지 마시고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저자 앤서니 버지스가 인간 본성과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도 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가정을 꾸려 사회 일원으로 정착하고픈 욕구'가 무엇보다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교화술인듯 제시되는 마지막 장면은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지만, 60년 전 소설(1962)의 흡인력이 이처럼 강렬하다니!

저는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무척 부적절한 영화겠지만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까지 섭렵하러 가야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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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3-12-24 1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와 <시계태엽오렌지>랑 좀 안어울리긴 하지만 책은 죄가 없죠 ㅋㅋ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3-12-24 23:23   좋아요 2 | URL
ㅋㅋ저는 새파랑님의 점잖은 유머감각이 좋아요
맞아요 맞아. 책은 죄가 없어요

다 읽고 나니, 증보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이왕 읽을 걸 증보판으로 읽었으면 좀 틈새 정보 많이 알았을텐데, 살짝 후회되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하시어요 새파랑님^^

초원 2023-12-24 22: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23년 알라딘 서재를 정답게 가꿔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평안하시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얄라알라 2023-12-24 23:22   좋아요 0 | URL
무한냥님 감사드립니다
다정한 이웃님들 계시는 알라딘 서재 덕분에 외롭지 않고 행복했어요.
무한냥님, 2024년에 더 자주 뵈어요^^
 

덜 씁쓸한 연말의 비결은?

계획단계부터 엉성하게, 그러면 덜 가혹해질 연말 평가. 아직 "2023년"이 입에 붙지도 않았는데 2024년 달력이 나왔냐고 자조하는 지인과 함께 웃었다. 나도 2023년 1월 1일이 곧 온다고 착각하니까. 그렇게 뇌를 속여봐야 뭐하니? 2024년이 3주 앞이다.


뚜렷한 발자국 못 남기는 2023년, 12월에라도 분발해야 하는데 자꾸 책에 손이 간다. 그것도 고구마 줄기 캐듯 한번 쥐면 놓기 싫은 주제 독서! '법의학'과 '법의인류학'을 두 주일째 파고 있다. 이 분야는 언제 읽어도 짜릿하다.


피, 뼈, 시신, 부패, 시취......


현실에서는 이런 단어조차 입에 못 올릴 겁많은 내가 활자화된 죽음 이야기엔 용감하게 다가간다. 아마도 죽음 그 자체보다도 인간이 죽은 다른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 매혹되는 것 같다. 생명이 꺼진 다른 인간 몸을 내려다보는 인간에게서 원초적 감정은 유예되고 대신 '직업적 훈련'이 조련해낸 전문가적 냉철함이 유지되는 점은 (법의학 모르는 일반인 눈에) 참 신기하다.

궁금하다.

법의학자 리처드 셰퍼드의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나 법의인류학자 수 블랙의 [뼈의 증언]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죽음에 대한 초연한 태도는 직업적 에토스인지, 영국이라는 맥락과 관련된 것인지 몹시 궁금하다. 또한 두 책에서 언급되는 범죄 사례에 가족간 살해가 많이 등장하는 양상이 영국적인 것인지도 궁금하다.

적어도 리처드 셰퍼드 박사에 따르면 "의도된 죽음"의 양상(사인, 가해-피해자 관계 양상 등)에는 연령대, 즉 삶의 단계가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에는 가정폭력, 젊은 날에는 연인이나 친구, 중년기에는 술 등 중독 행위 혹은 부부갈등 등 가족문제, 노년기에는 사소한 이벤트의 나비효과가 죽음으로 치달는 경우 등....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가 인생 주기를 7단계로 나누어 연령대별 사인을 주요 사례와 함께 소개하는 데 치중한 반면 [뼈의 증언]은 뼈 부위별로 각 뼈의 생김새나 특징, 각 부위 뼈와 관련된 대표적 사례 중심으로 엮었다. 재미있어서, [서울의 봄] 상영전 15분이나 계속되는 광고 시간에도 극장 좌석에서 [뼈의 증언] 책장을 넘겼다! 어떤 분야이든 직업적 소명의식으로 헌신하시는 프로페셔널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그런데 [서울의 봄]에서도 언급했지만 왜 그렇게 대한민국엔 "똥별"들이 많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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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2-10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구야 어느새 2023년도 다 가 버리고
이제 20일 정도 남았나요?

새 책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또 램프의 요정
에서는 고놈의 천원을 자꾸만 줘서 책 사라
는 유혹을... 여튼 어제는 이번에 새로 나온
새 번역의 <율리시즈>를 사서 읽기 시작했
답니다. 과연 다 읽을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요. 일단 시작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구요.

얄라알라 2023-12-10 21:51   좋아요 1 | URL
ㅎㅎ 갑자기 레삭매냐님 말씀에

내가 ˝율리시즈˝ 스펠링을 아는가? 궁금해져서 써보려니...허걱.
책도 안 읽어봤지만, 제목 원어로도 모르네요

시작이 반! 매냐님은 읽다 중도하차 별로 안 하시잖아요^^ 저와는 달리, 홧팅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23-12-10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얄라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내년 한 해에도 좋은 이웃으로 함께 해주시길 바라봅니다. 행복한 한 주 시작되세요! ^^:)

얄라알라 2023-12-10 21:52   좋아요 1 | URL
그렇네요.
겨울호랑이님, 책 읽는 가족, 친구...다 드문에 책읽는 이웃이라니 갑자기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내년에도 책 읽는 분들이 많이 많이
세상에서 책 사랑이 크게 크게 퍼지기를요

행복한 일요일 밤 되세요. 감사드립니다

감은빛 2023-12-12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권의 책 모두 흥미롭네요.
죽음이란 주제에 자꾸만 끌리는 이유가 가끔 궁금해요.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해야 할 일이 생기는 것이 두려운데,
막상 나의 죽음은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그 순간이 온다면 아주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23-12-24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3-12-12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권 모두 재밌어 보입니다. 상연 전에도 열독 하시는 얄라님 너무 멋집니다!!!

연말 잘 마무리하세요^^!

얄라알라 2023-12-24 23:25   좋아요 1 | URL
ㅋㅋ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상영관에서 막간을 이용해서도 읽었을까요 ㅎㅎ
그정도로 리처드 셰퍼드 글 솜씨가 좋아요^^

고양이라디오님 해피 크리스마스 보내시고 달리기, 조심조심 꾸준히 하시기를 응원드립니다!!!!
 
죽음을 해부하는 의사 - 영국 최고의 법의학자가 풀어놓는 인생의 일곱 단계
리처드 셰퍼드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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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내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인 법의학자로서 23000여 건의 검시를 진행하며 인생의 단층(PTSD)를 겪었던 셰퍼드 박사가 한층 성숙하고 여유있는 필체로 인생의 단맛쓴맛과 인체의 매혹적 신비를 풀어쓴 에세이. 냉철한 프로페셔널리즘과 자아성찰이 함께 가는 그의 삶을 엿보는 자체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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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12-05 2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얄라알라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좋은 시간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3-12-10 15:2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9개의 황금엠블렘
많이 많이 선배이신 서니데이님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일욜 오후 보내시어요

고양이라디오 2023-12-07 1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2024년에도 파이팅합시다!

행복한 연말 되세요^^

얄라알라 2023-12-10 15:23   좋아요 1 | URL
고양이 라디오님!!!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2024년 파이팅!! 기분 좋은 인사해주셔서 더 감사드려요
제가 먼저 들려서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고양이라디오님도 23년 황금 엠블렘 축하드립니다
 

[담을 넘은 아이]를 읽으며 상상한 김정민 작가는 최소 50대, 푸근한 이미지의 할머니였다. #젖어미 #푸실이 #뒤지 #암죽 등 21세기엔 거의 잊힌 어휘를 어린이 동화에서 자연스레 쓰시는 걸로 보아 작가가 날것의 가난을 몸소 겪어본 옛 세대 분이겠거니 했다.

주인공 소녀, "푸실"의 작명배경은 충격이었다. 풀 위에서 (아기를) 낳아서 "푸실"이었다. "푸실"의 예쁜 어감에서 '플라워리스트,' '푸름' '복실복실' 등을 연상했던 내겐 충격이었다. 일하다가 (밭, 논, 산) 풀 위에서 아기를 낳다니! 일하시다가 흙묻은 버선 발로 방에 뛰어 들어가 아기를 낳으셨다고 하신 90대 할머님의 인생사를 듣고 받았던 충격에 버금갔다.

"뒤지"란 단어도 그랬다. "뒷간," "뒷일" 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인지라 상상은 했지만 [담을 넘은 아이]에서 처음 들어보았다. 동화 속에서는 주인공 '푸실'이가 애지중지하던 책, 다른 세계로 이끌어줄 유일한 탈출구였던 책을 7살 난 남동생이 친구들과 사이 좋게 '뒤지'로 나눠 쓰는 설정이었다.

"젖어미" 역시 충격이었다. 물론 "젖동냥"도 있었고 "젖을 공유한 유사 형제자매" 관념도 있었을 테이지만, [담을 넘은 아이]에서는 가난하여 '젖어미'가 된 여성이 굶어 죽어가는 제 자식에게 젖을 주자 도둑 취급 받는 상황이 등장한다. 매혈과 같은 맥락에서, 약자에게 남은 가장 마지막 무기이자 수탈 대상인 몸이 쪽쪽 다 빨려 권력자에게 흡수당한다는 상황은 끔찍했다.

# 뒤지 #젖어미 #푸실

불과 몇 세대 만에 가난의 어휘는 상상력을 그러모아도 실체화되지 않을 수준으로 낯설어지지 않았는가? 이 말을 뒤집어 보면, 2023년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안전과 풍요로움이 불과 몇 세대만에 생소한 감각이 될 수도 있겠구나! 이 추운 겨울 전쟁의 잔혹함과 공포를 겪는 이들의 고통이 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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