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되는 기억 - 도시 문헌학자의 사진 기록
김시덕 지음 / 열린책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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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에 관심 많아 답사까지 다니는 친구가 이 분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김시덕. 나는 그 방면에 까막눈이라 시큰둥하게 반응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분은 부동산 관계자가 아니라 학자였다. 그것도 "도시문헌학자." 출사표(?)를 던질 때 심정은 이러했다고 한다.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 문헌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시 속의 문헌을 연구하는 것은 이제까지 제가 옛 문헌을 연구하던 것과 똑 같은 방식으로 가능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답사하면서 수집한 문헌을 연구하는 것을 '도시문헌학'이라고 이름 붙이기로 했습니다.

[철거되는 기억] 79쪽

김시덕은 재능이 이끄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발을 옮기다가 '도시 문헌학자'에 이르렀다. 일본문학을 오래 공부한 그는 일본 문헌학 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시덕은 "답사를 직업으로 삼은 이래로 여름마다 열사병에, 대상 포진에, 한 가지씩 병을 얻고 있다"(245)면서도 직업적 사명감으로 서울 경기 일대는 물론 전국을 돌며 답사 중이다. 답사마다 100~500장까지 사진을 남기다 보니 자료가 엄청나게 쌓였는데 그 중 책에 수록하지 못했던 사진을 엮어 [철거되는 기억]을 썼다.


[철거되는 기억]은 2017년 이후 10년의 궤적을 담은 사진기록 중 175장을 엄선하여 총 4부로 엮었다.

1. 길에서 마주하다: 집과 길, 그리고 사람

2. 거리에서 발견하다: 간판과 글자, 그리고 그림

3. 역사의 흐름을 기록하다: 포구, 그리고 광산촌

4. 철거되는 기억: 사라진, 사라질 개발의 풍경

평소 가볼 일 드문 경상도, 전라도, 인천, 강원도, 제주도 등의 풍경도 흥미로웠지만 답사 내공 9단의 김시덕이 남긴 현장 방문의 소회와 후기가 더욱 흥미로웠다. 이런 식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오동리...화순 탄광의 광산촌으로서 번성했을 듯한 이 말은 폐광 이전에 이미 활기를 잃은 상태였습니다...화순 탄광은 2023년 6월에 정식으로 폐광되었지만 탄광촌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 뒤에도 이 천운장 마을은 지금의 오래되고 단정한 경관을 한동안 유지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179쪽

김시덕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담벼락에 꼬마들이 남긴 낙서, 예를 들어 프랑스 만화 캐릭터 바바파파네 가족들, 나 마을 주민들이 플라스틱 통에 정성껐 가꾼 도시 화원, 눈 밭에 어지러이 널려 있는 고양이들 발자국 등이다. 나는 그의 이런 따스한 시선이 무척 맘에 든다. 사람과 공간을 포용하는 그의 너그러움이 나에게 힐링이 된다.

서울 중구 회현의 시민 아파트. "세탁물 널지 마십시오"라고 써 있는데 바로 그 옆에 이불을 말리고 있다! 와! 하지 말라는 것만 쏙쏙 골라서 하는 K 반항 기질이 김시덕의 카메라에 담겼다.



예전에는 "후지필름" 같은 데서 슈퍼나 전파사 간판을 대신 해주고 자신의 회사 로고를 넣어 간접광고를 제대로 했다 한다. 그나저나 후지 필름이라니! 와!


"차부"는 여성을 말하는 단어가 아니었다! 맙소사! 이것은 "버스 정류장"의 옛말이다! 나는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슈퍼라는 뜻인 줄 알았다.


의외로 이 책에는 기지촌 사진이 많다. 김시덕이 일부러 기지촌 흔적을 많이 담았거나 한국에는 아직도 기지촌 흔적이 남아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어느편이 맞는지 모르겠다. 기지촌 창이 휑하게 뚫린 숙소(?)에 왜 자개 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윗 사진은 경기도 의정부시 옛 캠프 라과디아 주변 기지촌이라 한다. 아래는 놀랍게도 경기도 수원. 팔달산과 화성이 있을 듯한 주소 "팔달구"인데 거리 한 복판에 이렇게 성매매 업소가 있다니 놀랐다. 심지어 성매매 집결 정비 사업에 반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민이 있어 애도의 문구가 유리창에 붙어 있다.

4월 중에 김시덕의 다른 책들도 다 찾아 읽을 생각이다. 사진 자료가 많아서 책장이 술술 넘어갈 것이라는 전제 아래서 부려보는 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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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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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문구용품처럼 아기자기하고, 무명작가가 무명 출판사에서 낸 소설을 덥석 물지는 않는다. 읽을 거리, 산 옆에 산으로 쌓여 있는데, 그런 소설에까지 손 뻗을 여유가 없다는 오만함으로. 김지혜의 소설, [책들의 부엌]도 친구의 선물이 아니었다면 내가 일부러 찾아 읽을 책은 결코 아니었다. 그 정도로 나는 편견에 쩐 독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벚꽃 만개한 4월 첫주의 주말,

[책들의 부엌]을 다 읽고 난 소감은

한 마디로,

"기대 이상".

김지혜 작가 스스로 "인생의 경계 지대에 오래 머물"(289)었다고 고백하는 만큼, 작가는 대기자/낙오자의 조바심도 느껴봤고, 인생이란 비행의 '연착'과 '지연'이 주는 낭패감도 경험했다. PD되기를 열망했던 그녀는 꿈을 접고 IT 회사에 취업해 살다가 결혼 출산 육아 3종 세트를 거친 후, 현재는 카페에서 소설을 쓰며 산다. 뒤늦게 천직을 찾아 나간 케이스이다.

[책들의 부엌]에 등장하는 인물도 죄다 작가를 닮아 있다. 성별, 연령대, 전공과 직업, 가정환경 등등의 세부 사항은 달라도 모두, 사회가 기대하는 '정상 경로'를 기꺼이 일탈하고 개척지 일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소설의 핵심 공간인 '소양리 북스 키친'을 일사천리에 오픈한 사장 유진은 서울 토박이로서 강남 테헤란로로 출근하던 일중독자이다. 하지만 시골 오지의 택지를 매입해서 복합문화공간, 북 스테이 공간을 오픈한다. 소설은 이 공간의 운영자와 스태프, 손님을 중심으로 '북스 키친'에 머물며 인생 항로를 수정하고, 나아갈 힘을 얻는 사례를 펼쳐놓는다. 그들은 최연소 합격자를 숭배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소소한 혁명을 일으킨다. 마음 가는 대로, 뜻 가는 대로 따르는 삶! 내면의 욕구에 충실한 삶.

작가는 대 놓고 소설 속 문장에 인생관을 박제한다.


우리 사회는 최연소 합격자와 최단 시간에 문제를 풀어내는 사람을 숭배해요. 각자가 꽃피우는 방식을 다를 수 있고, 인생의 경로는 다양하게 설정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조금이라도 길을 벗어나면 초조함에 발을 동동 굴러요.121쪽

매화는 말이야. 봄이 오기를 제일 기다리는 아이야... 봄이 오는 기척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채는 꽃이기도 하고. 꽃샘추의 따위는 두렵지 않다는 듯 온 힘을 다해서 꽃을 피워내는 기개가 근사한 아이지. 30쪽

김지혜 작가는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20대를 반영한 캐릭터들에 애정과 입체감을 불어 넣어 흡인력 있는 소설을 낳았다. 또 모를 일, 김지혜 작가가 훗날, 자신의 이름을 딴 북 스테이 공간을 오픈할지 누가 알랴?^^ 응원합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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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리포트 - 인생 제2막을 위한 융 심리상담
대릴 샤프 지음, 정여울 옮김 / CRETA(크레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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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북서˝ 출판사의 [생의.절반에서 융을 만나다]와 동일한.내용인데 출판사와 제목만.달리해서 새로 나왔나봐요. 모르고 두 권을 다 구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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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6-02-14 2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정판 낼 때 제목 안 바꾸면 좋겠어요 ㅠㅠ

2026-03-31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4-05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죽음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 후회 없는 삶을 위한 56가지 문답
최준식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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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많은 책을 펴내셨어도 좀체 당신의 이야기를.안해오셨다는 교수님께서, 다른 세계_보이지 않고 증명하기.어려운 세계_에.대한.호기심과 열렬한.탐구욕때문에 부적응한 외톨이셨단 말씀도 해주시네요. 말 걸듯 카톡 대화체로 써주신 책이.많은 사람에게 위안이 되어 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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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미래가 도착했다 - AI시대 인간의 조건
우숙영 지음 / 창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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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머털도사'에서 도술로 두 명이 된 머털이 중 진짜를 찾아내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무려 36년 전 작품이다. [어느 날 미래가 도착했다: AI 시대 인간의 조건]에서 '디지털 도플갱어digital doppleganger'니 '디지털 페르소나persona' 개념을 접하면서 내적 소름을 느꼈다. 한때 황당무계하다고 여겨졌던 그 설정이 2025년, 디지털 세계에서는 현실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

'인공지능 미디어 아티스트'라는 이색 직함으로 소개되는 저자 우숙영은 AI 시대를 "현실적이고 실존적"(9) 차원에서 탐색한다. "마음 가는 부분부터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10)는 저자의 너그러운 안내에도 불구하고 맨 앞장부터 차근차근 책장을 넘겼다. '상실과 애도' '존재와 기억' '대화와 관계' '믿음과 신뢰' '추천과 선택' '위임과 책임' '고용과 일' '배움과 교육' '생산과 윤리' 그리고 마지막 10장, '죽음과 삶'까지...읽어 나가면서, 나는 이 책이 단순한 기술 논의가 아니라 AI 시대를 살아가는(또는 살아갈) '인간실존'에 대 정면으로 질문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만약 저자가 최신 AI 산업 지형도와 국제 규제, 국가 정책 등 기술적 이슈에만 주력했다면, 독자로서 나는 저자가 제기하는 질문을 '남의 일, 먼 미래의 일'로 흘려보냈을지 모른. 하지만 우숙영은 한 줌의 AI 전문가나 엘리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AI 시대를 새로운 존재론으로 살아내 하는 보통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는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 "죽은 사람을 (디지털로) 재현하는 것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20)

  • "디지털 도플갱어를 정말 나의 영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62)

  • “인공지능과의 대화는 …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 모든 대화에서 나의 발화와 욕망이 우선시된다. 우리의 삶에 이런 종류의 대화가 보편화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98쪽)

  • "인공지능이 생각해낸 것을 내가 생각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62)

  • “인공지능이 내린 판단은 정말로 인간의 기대만큼 객관적이고 공정할까?”(179쪽)

  • “무엇을 자동화하고 무엇은 자동화하지 않을까?”(218쪽)

  •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은 어떤 역량을 말하는 걸까?"(240)

이 질문들은 인류의 실존과 삶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물음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예술 전공생을 가르치는 동시에 언어·데이터·AI를 아우르는 프로젝트를 기획해온 이력만큼이나 앞선 질문을 답하기 위해 다채로운 자료를 끌어온다. 근미래 디스토피아 대표 드라마인 [Black Mirror]를 비롯해, [1984]의 '빅 브라더Big Brother와 [멋진 신세계]의 '작은 누이들 Little sisters',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After Yang](2022), [Her](2013)을 인용한다. 또한 AI 시대 인간이 마주한 실존적 문제를 보여주는 현실의 구체적인 사례를 적절히 배치하여 읽는 이론적 논의를 삶의 문제로 끌어와준다. 예를 들어, 챗봇 앱과 6주 동안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 챗봇의 유도로 생을 마감한 벨기에의 한 남성, 암투병 중인 아버지의 챗봇, Dadbot을 만든 제임스 블라호스,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피해자가 되었던 테일러 등 현실의 예는, "어느날 미래가 도착했다"는 책 제목을 실감나게 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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