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독일인입니다 - 전쟁과 역사와 죄의식에 대하여
노라 크루크 지음, 권진아 옮김 / 엘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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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크루크. 미국 대학에 자리를 잡은 독일인 교수. 그녀가 40여년 살면서 계속 붙잡아 왔던 그 화두를 오랜 조사를 거쳐 고백하듯 풀어낸 책을 나는 고작 몇 줄로 기억해 쓰려니 저자에게 미안해진다. 


온라인 상 표지 이미지로만 보았을 때보다 책 판형이 훨씬 컸다. 게다가,잡지인지, 일기인지, 사진첩인지 장르를 특정할 수 없는 독특한 형식도 참신했고, 수록한 자료들 역시 참신했다. 책만 봐도 저자의 전공을 알 것 같았다(일러스트레이션). 


[나는 독일인입니다] 안에는 저자 로라 크루거가 학창시절 문장문장 분석하며 읽었던 히틀러의 연설물,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서류, 저자 가족들의 옛 사진, 삼촌이 10대 때 썼던 일기 등 다양한 자료가 등장한다 이 모든 자료는 "로라 크루거가 독일인"이며, 그녀의 삼촌이 이차세계대전 중 사망하였고, 할아버지가 나치 부역자라는 사실과 관계된다, 저자는 그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왔으며 숨기지 않고 저 빗장 안까지 열어보려 했다. 그 시대 독일에서 살아보지도, 독버섯의 은유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한국인이지만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 연민도 느꼈다가 슬펐다가 안도도 한다. 








저자에게 한 번 더 미안해지는 대목인데, 사실 나는 [나는 독일인입니다]를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고, 읽고 나서도 계속 생각나는 것이 저자의 문장이 아니다. 저 사진이다. 이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패전하자 미 연합군은 독일인 민간인들에게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직접 목격하도록 시켰다. 혹은 포로수용소의 시신을 실은 차량을 일부러 독일 시민들이 볼 수 있게 하였다고 한다. 


실제 저 사진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행한, 아니 독일인이 유대인에게 행한 짓에 경악하는 이들이 모두 여성이나 아이인 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실제로는 성별을 특정하여서 그 광경에 노출되게(즉 아이와 여성만 골라서 그 잔혹한 장면을 보게)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여성만을 특정해서 참상을 보게 했다면 왜 인지 궁금하다. 혹은, 성별 특정하지 않고 독일 시민이면 누구나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들이 저지른 만행을 알게 했던 거라면, 왜 하필 위 사진에서는 여성만 등장하게 편집했는지 그 의도가 무척 의아하다. 답을 모르겠으니 계속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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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계속 엄선해서 배출하고, 서가에 공간 생기니 또 다시 책을 들이고.....약이 없는 병이다. 다시 솟아 오른 책 더미에서 [검은 개]부터 뽑아들었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제일 먼저 멀리한 장르가 소설이었다. 그런데, 책 덕후들의 서재를 기웃거리다보면 결국은 소설이 공통의 축인 것 같았다. 읽지 않아왔던 교만을 반성하며 [검은 개]를 탐독했건만, 이것은 왠 철학책이던가! [TENET] N차 관람하듯, N차로 읽어야 한단 말인가! 




이웃 서재를 드나들며 뒤늦게 알게 된 이언 매큐언의 작품들을 차근차근 독파해왔다. 미셸 투르니에, 아멜리 노통브 이후 좋아하는 작가 목록에 이름을 더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다. 그러나, [검은 개]만큼은 줄거리 이해도 어렵다.


화자인 지식인 중년 남성이 아내의 부모에게 흥미를 느껴 장인장모님 이야기를 한다. 떠오른 줄거리 아래로 들어가보면, 유럽정치사(세계대전, 이념충돌, 홀로코스트, 세상의 표리부동(내세우는 가치와 실제의 간극)뿐 아니라 세대의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새벽에 읽을 땐 몰랐는데 아침에 다시 생각해보니 이책엔 유난히 자식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주인공만 해도 여덟 살에 부모님을 잃었고, 주인공의 조카 역시 폭력적 부모 밑에서 반 버림 받았고, 장인장모님의 냉전(?)에 그 자녀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방치되었다. 이언 메큐언은 가족에서의 관계보다 더 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과거의 혼란(전쟁, 살상, 이념적 대립, 이념형과 실제의 괴리), 이미 일어났던 일로 인해 현재 세대, 그리고 나중 세대들이 감내해야 할 숙제가 늘어간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나? 내가 유럽인이었다면, 유럽의 역사와 현 정치상황을 좀 더 잘 안다면 [검은 개]를 이해하는 수준이 달랐으려나? N차 읽고 나면, [검은 개]의 "검은 개"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 지금은,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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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0-09-04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선해서 방출하기는 모든 장서가들의 고민이네요

2020-09-05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05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용헌의 인생독법
조용헌 지음 / 불광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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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江湖 동양학자." 이색적인 이름이다. [인생독법] 책날개에서 작가 조용헌을 소개하는 단어인데, 오직 그에게만 붙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조용헌은 어렸을 때부터  "~사"는 "~사"인데, "도사"를 꿈꿔왔다 한다. 불교학을 선택했던 이유도 그 꿈에 근접시켜줄 것 같아서였다 하고(그는 불교민속학 박사이다)... 어린 시절 꿈을 따르듯, 그는 "강호江湖," 그것도 한국 땅만으로 부족해서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특별한 공간들을 방문해왔다. 그렇게 반편생을 살아 이제 인생의 가을에 온 그가, [인생독법]에서 잘 사는 법을 들려준다. 



조용헌의 글은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읽어왔다. 그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와 작용을 믿고 경험해보았으며, 거기서 배웠다. 나는 넓디넓은 "강호"는 커녕, 시멘트로 지어진 집 밖으로도 잘 안나가면서(사회적 거리두기를 핑계로 더욱), 조용헌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발냄새, 땀냄새 나는" 그의 글에서 크게 배운다. [인생독법]에서 새롭게 배운 점, 아니 부러워한 점은 그의 소신이다. 


그는 자신을 386세대이며, 한국의 386세대들이 그러하듯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았"다 한다. 그의 시원한 문장을 직접 인용해 본다. 


"나는 386세대에 해당한다. 이 세대의 특징은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은 세대라는 점이다. 세례란 무엇인가? 성스러운 강물이나 호수의 물속에 한 번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적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물은 알고보면 표피만 적신다. 피부만 적실뿐인지 몸속까지 뼛속까지 그 물이 적실 수는 없다. 비록 사회과학의 세례를 받기는 하였지만, 나의 근육과 뼛속까지 와 닿은 것은 전통 사상인 유, 불 선이었다. " [인생독법] 11쪽 


인생에 대해서, 더군다나 인생을 읽는 법, 잘 사는 법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조용헌은 시종일관 같은 심지에서 나온 불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뜨겁게 전달력이 있고, 읽는 이는 감화시킨다. 한 마디로 여러 노선 갈아타지 않고 시종일관이 있기에 힘이 있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적어도 현재에는. 많이 부족하다. 


내게 익숙한 언어와 틀거리는 사회과학이지만, 하늘과 바람과 나무를 그 세계의 언어로 알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다시 진자는 돌아와, 익숙한 단어들을 버무려 세상을 보려한다. 충분치 않다. 진자가 다시 움직인다. 다른 세계에도 손 뻗어보고 싶다. 하지만 머리만 차가워서 그 언어 또한 제대로 듣지도 못한다. 한 심지에서 타는 불이 아니다. 그래서 약하다. 팔레트를 여러개 들었다 해서, 명화가 나오겠는가. 내게 딱 맞는 팔레트를 찾아야지, 색만 섞는다고 그림이 나오겠는가. 왜 그 질문이 중요하고, 그 질문에 답하고자 하는 뜨거움이 있기나 한건지 고민해야지.


[조용헌의 인생독법]은 한 심지의 힘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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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아이 13호 라임 청소년 문학 43
알바로 야리투 지음, 김정하 옮김 / 라임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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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읽어대면서도 가장 가까이하지 못했던 장르가 소설이었는데 간만에 참 재미있는 책을 만났다. [남극의 아이 13호 (La paz de las maquinas)]는 스페인 작가, 알바로 야리투Álvaro Yarritu가 쓴 첫번째 "청소년" 소설이라 한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청소년보다 훨씬 어른인 독자까지 팬으로 끌어들일만한 작품이다. 깜빡거렸던 유년기의 상상력 스위치가 다시 켜졌나 기뻤을만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캐릭터들이 영화의 장면처럼 마음 속에서 움직였다. 특히나 인간 주인공보다도 기계주인공이 더 잘 그려지다니 놀라웠다. 작가의 필력 덕분일까, 아니면 나름 Sci-Fi 영화 초보 마니아로서 그동안 보아온 영화들 덕분일까. 오래 기억할 소설이다. 


Jcurz / CC0


거슬러 올라가면 [걸리버 여행기]의 "공중도시"에서부터 [아키라] 혹은 [배틀 앤젤]에서의 "공중도시"까지, 다른 세계에 대한 상상은 수직, 주로 위로 올라가는 경향이 있는 듯 했다. 그런데 [남극의 아이 13호]에서는 지구 대기권을 벗어나지 않고 "남극"을 무대로 전개된다. 소설에서 "남극"은 파괴적인 대규모 전쟁 이후, 인간과 기계가 평화를 약속하고 유일하게 공존하는 중립지역이다. 하지만 말이 좋아 "공존"이지, 기계와 인간은 엄밀히는 "분리"되어 있다. 필요에 따라 "협력"은 하지만, 긴강관계이다. 이미 기술적 특이점을 넘어버렸고 기계에게 잔혹하게 사냥당하는 전쟁을 겪었기에 인간은 기계, 네트워크를 믿지 못한다. 단지 불신을 넘어, 아예 기계와의 공존이라는 발상 자체를 부정하고 기계를 몰살하려는 인간세력도 있다. 작가는 이 단체에 "러다이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과거의 러다이트만큼 소설 속 러다이트 역시 기계를 몰아내고 인간들만의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그러나 이미 많은 Sci-Fi 영화와 소설에서 보여주었듯이, 그런 이분 대립의 세계에는 늘 연결적 존재가 있게 마련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반역자가 될 수도 있겠다.) 인간은 상상 속에서나마 대립보다는 공존을 희구하는 것 같다. 스페인어 제목을 달고 나온 원서 표지색은 차가운 화이트와 블루이다. 한국어 번역판의 표지는 분홍빛이 감돈다. 마치 분홍빛 공존을 꿈꾸듯이.....어쩌면 우리는 이미 무서운 시나리오들에 충분히 압도되어왔기에, 가끔 분홍빛 미래도 상상해볼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사피엔스]의 유발 하라리는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면서도 회색톤 시나리오로써 경고하지만, [남극의 아이 13호]은 독자에게 다른 가능성도 그려보게 한다. 훨씬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의 가능성을.  그러나 내 안의 공포심 때문에 "13호"를 "아이"라고 부르기 어려우니 아이러니이다. "13호"가 인간과의 공존가능성을 보여주는 아이콘일지라 할지라도 "인간"이 아니기에, 더더욱 "아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나야말로 "러다이트"? 자학적 자문을 해본다. 그래도 작가가 [남극의 아이 13호]를 통해 그리고 싶어하는 공존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하다. 걱정인형을 미리 안고 사는 편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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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20-08-1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네요. SF라니 관심이 갑니다. 나중에 기회되면 구해보겠습니다.

2020-08-11 1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트렌디하지 못했던 건지, 어린이 독자를 타겟으로 "아름다운 부자 이야기" 시리즈가 출간되었다기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위인전"이라는 단어 자체가 낡은 용어인양 밀려나고 "인물전"이 대세가 되어가는 21세기. 요즘 꼬마들은 베토벤, 황희, 심사임당보다는 동시대의 인물 봉준호, 손흥민, 아이유 이야기를 읽는다. 한 번 비딱한 마음 먹고 찾아볼까? 성공하고도 가난한 사람 이야기를 다룬 어린이용 책은 드물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성취를 이뤘고 물질적으로도 성취를 이룬 이들 이야기가 대세이다. 그래서 시리즈 제목만 보고 잠시 혼란스러웠다. 콕 집어, "아름다운 부자들"라니, 출판사는 아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 이 시리즈를 기획했을까? 궁금해서 집었다. 


[스웨덴의 자랑, 발렌베리 사람들]만 우선 읽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시리즈를 출간된 권은 모두 읽어야 겠다. 



André Oscar Wallenberg (1816-86) / CC0


[스웨덴의 자랑, 발렌베리 사람들]에서는 발렌베리 1세대인 앙드레부터 21세기에 활약중인 5세대에 이르기까지 인물을 가풍과 시대적 상황 속에서 조명한다. 특히, 나치의 검은 손길로부터 수만명 유대인의 생명을 구한 라울 발렌베리 이야기에 꽤 긴 페이지를 할애한다. 오늘 읽은 스티븐 스필버그 전기에도 유대인 박해의 이야기가 상당 부분을 차지했는데, 한 번 제대로 공부해보자고 숙제로 남겨둔다. 


이 만화책에서는 소위 암투나 권력투쟁 없이 형제애와 인류애 아래서 소신있게 사회적 정의까지 실천하려는 발렌베리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시아권 독자로서 먼 유럽인들의 무대 뒤 이야기를 알 길 없으니 일단 그렇게 접수하기로 한다. 가풍이라는 게 불과 2세대만 지나도 희석되거나 끊길 수 있을텐데, 만약 앙드레 발렌베리의 정신이 2020년의 발렌베리 후손들에게 정말 전해지는 거라면(이 책에서처럼), 존경의 박수를 보내드려야겠다. 특히, 교육과정에서 반드시 해양 경험을 통해 정신력과 체력을 기르게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따르기는 어렵겠지만....


출판사에서 친절하게 북 트레일러를 공유해주었다. 

이 시리즈의 다른 내용도 일단 훑어보기/

http://naver.me/x3g6eDF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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