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 싸인 : 별똥별이 떨어질 때
이선희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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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수십 년 만에 혜성이 우리별 지구를 스쳐 지나가는 날이라거나 별똥별이 수없이 떨어지는 날이면 그 모습을 뉴스로 보여준다거나 하면서 그걸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라고들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위해 천문대를 가거나 높은 산에 오르기도 하는 등 축제 같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스릴러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그 혜성이나 별똥별에 뭔가 알지 못하는 생명체가 같이 실려오거나 괴바이러스가 같이 있다 지구로 은밀하게 퍼져나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런 상상력을 소설로 그려낸 것이 바로 이 책 싸인이다.

K-좀비 스릴러 기대작을 표방하는 싸인은 스릴러 장르의 여러 가지 장치와 요소를 다 갖추고 있는 데다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는 낯선 괴생명체를 등장시켜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사고로 시력을 잃은 박하는 다행히 누군가로부터 안구기증을 받아 각막수술에 성공해 이제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박하가 입원한 병원이 누군가의 고발로 생체실험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드러나면서 여론이 나빠지고 병원이 어수선한 틈을 타 병원의 지하 3층...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도록 엄격히 통제받던 곳에서 보안 요원 홍철은 낯선 생명체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병원이 폐쇄되면서 박하를 비롯해 사람들은 갇히게 되고 누구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는 이른바 밀실 상태가 된 병원에서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로부터 사람들은 공격을 당하고 무차별적인 살육이 벌어진다.

하지만 무차별적으로 도륙하는 듯 보이는 그 무엇은 사실은 특정의 사람들만 공격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사람들을 카리온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보안요원과 함께 탈출구를 찾으면서 숨을 잠시 돌린 듯하지만 이내 또 다른 긴장 상황을 불러온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카리온이 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공격하기 시작하는 카리온...그리고 그런 카리온의 공포로 인해 사람들은 서로 분열하고 내부 배신자까지 나오는 상황이 연속되면서 병원을 탈출하는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고 반목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함께 하는 상황에 묘하게도 박하만은 공격하지 않는 카리온의 모습에서 박하라는 아이가 이 모든 일에 뭔가 히든 키를 가진 존재임을 알 수 있다.

폐쇄된 병원이라는 밀실 상태 그리고 그 속에서 사람들을 공격하고 살육하는 괴생명체... 서로 도와 이 위기를 탈출해도 부족한 마당에 뭔가 비밀을 숨긴 채 오히려 괴생명체에게 사람들을 떠미는 것 같은 보안요원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둘씩 괴물의 정체에 대해 밝혀지면서 긴장감을 서서히 높여가는 싸인은 드라마적 요소가 많아 영상으로 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괴생명체가 우리와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설정만 보면 오래전 영화 맨 인 블랙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그 영화에서의 외계인은 겉모습을 평범한 사람들처럼 하고 같이 생활할 뿐 만 아니라 특별히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선 이 책의 괴생명체와 차이가 있다.

어쩌면 영화 에일리언 속의 기괴하면서도 섬뜩한 외계의 그 무서운 생명체와 더 닮아있다.

계속되는 긴장감이 오히려 몰입을 조금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지만 가독성도 괜찮았고 좀비와 같은 괴생명체가 등장하는 호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괜찮은 선택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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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소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6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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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시리즈 중 하나인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 중 2번째 작품인 내가 죽인 소녀가 새롭게 리뉴얼되어 나왔다.

예전의 시리즈는 워낙 텀이 있어서인지 표지가 시리즈 느낌이라기보다 각각의 단권 느낌이 강했다면 이번에는 시리즈의 연속성을 고려해서 비슷한 느낌으로 맞춘듯한데... 둘 다 각각의 매력이 있다.

뭐... 책이 재밌다면 솔직히 표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

그런 점을 본다면 내겐 믿고 보는 시리즈 중 하나라는 말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작가인 하라 료가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 우연히 읽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히로인 필립 말로에 매료되어 미스터리 작가로 전향을 했다는 다소 이채로운 그의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인생을 전환시켜준 챈들러의 작풍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걸 알 수 있다.

그의 작품 속에 나오는 왠지 어딘가 권태로운듯한 탐정인 사와자키는 챈들러의 작품인 필립 말로와 비슷한 듯 닮아있다.

속물적인듯하면서도 책임감이 강하고 마초 같은 느낌도 들면서 우직한... 그리고 경찰들의 협박에도 눈 하나 깜작하지 않으면서 제 갈 길을 간다..

일본인 같지 않은 느낌의 이 탐정.. 그래서 묘하게 친근감도 가고 신뢰가 더 갔었다.

작가인 하라 료의 특징이 잘 산 이 작품은 그의 작품들처럼 스타일리시하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탐정 사와자키.. 이번엔 엉뚱하게도 소녀의 유괴범으로 몰린다.

단지 의뢰인의 부탁으로 의뢰인의 집을 방문했을 뿐인데... 기다리던 형사들에게 연행당하고 그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

그에겐 오래전 경찰들의 신뢰를 저버리고 엄청난 거금을 챙겨 달아난 동업자의 굴레가 아직도 씌어있었기에 이번에도 경찰들은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지만 유괴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돈을 맡기는데 그들이 우려했던 대로 어처구니없이 그 돈을 강탈당하고 결국 그 소녀는 사체로 발견된다.

그 소녀의 사망 추정 시간이 그가 돈을 빼앗기고 난 전후의 시간이랑 비슷하기에 소녀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는 사와자키

그리고 그런 사와자키에게 뜻밖에도 소녀의 외삼촌이 사건을 의뢰해오면서 드디어 사건의 진상은 만천하에 드러난다

 그의 책은 현재 단 5권만 번역되어 출간된 걸로 아는데.. 그런 작품 수에 비해 그의 다음 작을 기다리는 독자가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그의 작품 단 1권만 읽어도 그의 스타일리시한 작품세계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데.. 영미 작가가 그리는 하드보일드와 일본 작가인 그가 그리는 하드보일드는 비슷한듯하면서도 어딘지 조금 다르다.

그의 작품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잔인하게 총기들이 등장하고 피를 흩뿌리지 않기에 좀 더 인간적이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든 달까... 그리고 그가 만들어낸 사와자키라는 인물에도 묘한 매력이 있다.

한 마리의 고독한 늑대처럼 늘 혼자 다니고 누구에게도 자신의 곁을 허락하지 않는 일종의 완벽주의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며 유괴사건과 관계가 없으매도 자신이 돈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책임을 강하게 느끼고 어쩌면 자신이 그녀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을 하는 부분에서 그라는 캐릭터가 가진 성격이 확연히 드러난다.

하나의 사건에 끝까지 덤벼들어 결국 끝장을 보고야 마는 그의 근성 역시 그에게서 수컷을 향기를 강하게 느끼게 하기에 그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한다.

책 속에 나오는 구절이지만... 돈을 노린 유괴사건의 대부분이 가족이나 가족 주변 즉 지인과 연관된 사건일 확률이 가장 높다는 말이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과 맞물려 참으로 씁쓸하게 다가온다.

복잡한듯한 사건이었지만 그 사건 속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이어서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은 허무한듯하지만 충분히 납득할 만한 내용이었다.

조만간 그의 세 번째 작품이자 역시 사와자키의 활약을 담은 `안녕 긴 잠이여`가 새롭게 나온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다시 읽어도 역시 좋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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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오브 맨
크리스티나 스위니베어드 지음, 양혜진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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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 년 전 세계가 고통받았던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아직도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많다.

더 무서운 건 앞으로도 코로나19보다 더 세고 변종이 강한 바이러스가 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던 의료기술과 과학기술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우리가 실체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바이러스가 수없이 많고 거기에 인류는 얼마나 속수무책인지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이 책 엔드 오브 맨 역시 그런 신종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변해버린 세상을 그린 것과 동시에 우리가 평소 이런저런 상상을 했던 것 중 하나를 구체화해 뼈대에 살을 붙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남녀 갈등이 치열해지고 있는 요즘... 한 번쯤 생각해 봤음 직한 상상 즉 남자가 혹은 여자가 지상에서 사라진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하는 우리의 상상을 구체화하고 있는 엔드 오브 맨은 결국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서로 반목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처음 이상을 발견한 건 스코틀랜드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 어맨더였다.

단순 독감 환자처럼 보였던 남자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그녀로 하여금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했고 주변의 응급환자들을 조사하다 이내 이게 단순 독감이 아니라 남자들만 공격하는 팬데믹의 전조라는 걸 깨닫는다.

자신이 알게 된 사실을 보고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 이 바이러스는 스코틀랜드를 시작으로 런던을 포함해 영국 전역을 넘어 다른 대륙으로 순식간에 전파된다.

각국은 이 바이러스의 정체에 대해 알지도 못해 허둥거리는 사이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어찌해 볼 틈은 없었다.

우리가 처음 코로나 상황을 잘 못 판단한 것처럼 한순간의 판단 착오는 이제 걷잡을 수 없을 사태로 번지는 데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남자들이 죽어 나가다 보니 사회 전반을 유지하는 인프라가 올 스톱 된 것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릴 사령탑도 부재하고 공공시설을 유지 보수도 불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대륙 간 이동도 불가능해져서 모든 것이 멈춘 것이나 다름없다. 이젠 인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이야기 전반은 남자들에게 치명적인 이 바이러스로 인해 사랑하는 아들이 남편이 형제가 죽는 걸 손놓고 바라만 봐야 했던 여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으로 이뤄졌다면 중반 이후부터 즉, 수많은 생명이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의 대책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반전되기 시작한다.

이제 인류의 반격이 시작된 것

누구보다 먼저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했던 어맨더는 어디서 이 바이러스가 시작된 건지 그 흔적을 쫓아 마침내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고 그런 그녀의 노력은 바이러스의 실체를 파악해 백신을 발견하는 데 이르게 된다.

이렇게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인해 가족이 붕괴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후 고통받는 여자들의 심경과 이 모든 험난한 과정을 이겨내가는 사람들의 노력이 마침내 무서운 바이러스로부터 벗어나가는 과정을 심도 있게 그린 것만으로도 소설적 재미를 주기에 충분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남자들에게만 치명적인 바이러스라는 설정을 통해 만약 지구상에 남자들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여자들이 우세인 세상이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 하는 재밌는 상상을 더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불평등하게 이뤄져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사회 전반에 걸쳐 남자든 여자든 어떤 분야에 있어 성비의 완벽한 왜곡이 만약의 사태일 때 어떤 불안을 가져오는지에 대한 극단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는데... 어쩌면 작가가 하고자 했던 말의 핵심은 이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더해 만약 여자들이 세상의 우위에 있고 중요사항을 결정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여자가 된다면 과연 어떤 세상이 될까 하는 한 번쯤 생각해 봤음 직한 상상을 세심하면서도 극단적으로 풀어낸 게 바로 이 책 엔드 오브 맨이다.

스릴러로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였고 풀어가는 과정 역시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세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더 공감이 갔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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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의 파라솔
후지와라 이오리 지음, 민현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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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라는 단어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나라 중 하나가 일본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일본에서도 전국에서 대학생들이 대대적으로 데모를 하고 폭력시위가 벌어지던 시기 이른바 전공투라고 칭하던 시기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 세대였고 그의 소설에서도 그 당시의 분위기를 설명하는 글들이 제법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책의 주인공이 바로 그 세대를 지나온 사람이었다.

도쿄대 출신으로 학생운동을 했으나 그 전공투가 좌절되고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면서 학교를 때려치운 채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서서히 알코올 중독에 빠져든 남자 시마무라는 지금은 골목 술집의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그는 휴일이면 공원에서 한가로이 위스키를 마시는 게 유일한 낙이자 일과였지만 그의 평화로운 휴일은 누군가가 공원에 폭탄을 터트리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공원 곳곳에 사상자가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가 한 일은 황급히 그곳을 빠져나오는 게 아니라 잠깐 그의 곁을 스쳐갔던 여자아이의 안위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시마무라라는 캐릭터의 성격을 온전히 알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이익을 쫓기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유형... 게다가 그는 경찰에게 쫓기는 수배자 신분이었음에도 몸을 피하기 보다 아이의 안전을 확인하는 등 남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자신의 신분이 곧 발각될 거라는 걸 알고 거처를 옮기려는 그에게 오래전 자신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고 잠시지만 같이 산 적도 있었던 유코의 딸이 찾아와서 밝힌 사실로 인해 이 사건이 여느 평범한 사건과는 다른 흑막이 있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날 그 공원에 유코도 있었음이 밝혀지면서 이제 시마무라에게 이 사건은 개인적인 일이 된다.

게다가 조사를 하다 역시 같이 학생운동을 했고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구와노 역시 유코와 함께 그 공원 테러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점점 더 사건의 진상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한날한시에 한때같이 학생운동을 했던 세 사람이 한곳에 있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폭탄 테러는 뭘 노린 걸까?

잠시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을 떨어댈 정도로 알코올 중독이 심각한 시마무라지만 이런저런 사실에서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사건 이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지적이다.

게다가 경찰에 의해 수배령이 떨어지고 야쿠자마저 그의 뒤를 쫓는 와중에도 노숙인을 챙기고 자신으로 인해 누구라도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신경 쓰는 모습은 그가 왜 지금의 사회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지 깨닫게 된다.

한때는 꿈과 이상을 위해 기존 세대와 대치도 하고 데모도 했던 그들이지만 꿈과 이상이 좌절된 후로 그들이 걸어온 길은 녹록지 않았다.

현실에 깎이고 닳으면서 조금씩 그때의 자신들과 달라져가는 여느 사람 들과 달리 고집스럽게 그때 그 모습 그대로를 가진 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 가는 시마무라의 모습은 겉으로 봐선 사회 부적응자 혹은 실패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굳건하고 삶을 대하는 태도도 유연하다.

어쩌면 그래서 그를 질투하는 사람도 있었던 게 아닐까?

사건의 진실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면서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했지만 이야기가 끝을 향해 가도록 좀처럼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눈팔 틈을 주지 않고 몰입해서 읽게 만드는 테러리스트의 파라솔은 한때 고민하고 방황하며 사회비판에 앞장섰던 젊은 날의 우리를 보는 것 같은 아련함을 느끼게 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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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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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비롯해 다소 특이한 설정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피터 스완슨

이번엔 완벽한 살인을 하는 연쇄살인마와 함께 돌아왔다.

게다가 완벽한 살인을 실현한 소설을 포스팅 한 글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역시 평범하지 않은 설정을 가져왔다.

몇 해전 사랑하는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고 홀로 살면서 스릴러 소설 전문 서점을 공동 운영하는 남자 맬컴 커쇼는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다소 문제가 있어 언제나 혼자다.

그리고 그런 맬컴에게 어느 날 FBI 요원이 찾아와 자신이 오래전 블로그에 포스팅 한 글에 대해 묻는다.

누군가가 그가 블로그에 올려놓은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에 관한 소설을 소개한 글을 따라 모방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

당연하게도 그 역시 용의자 중 한 사람이 분명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살인사건이 마치 사고사처럼 위장되어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묻혀 버릴 수도 있었을 사건이거나 용의자로 의심될 만한 사람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존재하는... 그야말로 완전범죄형 살인사건들이었고 FBI 요원만이 그 살해된 사람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다 우연히 맬컴이 쓴 블로그의 글을 보게 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사건들을 보게 되었고 실마리를 쫓아 그에게 왔던 것

그리고 그 소설 속 살인의 방법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은 피해자 중 한 사람은 맬컴이 운영하는 서점의 오랜 단골이자 진상 고객 중 한 사람임이 밝혀지면서 그 역시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쯤 되면 맬컴이 범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누구나 하게 된다.

친구가 거의 없이 홀로 사는 독신 남자 게다가 별다른 취미 생활도 없이 마치 구도자처럼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무엇보다 결정적인 건 그의 아내의 죽음이 사고사라는 것까지... 게다가 그는 뭔가를 숨기는 듯하다

그야말로 완벽하게 범인 상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책을 좀 읽어본 사람이라면 너무 착착 맞아떨어지는 건 오히려 정답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그에게 마치 자신을 찾아보라는 것처럼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걸까?

맬컴 주변 인물을 비롯해 그와 접촉한 사람 모두에게 혐의를 두고 이번엔 당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관심 있게 보지만 뚜렷하게 범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고 이야기가 진행될 수도 오히려 맬컴에게 혐의가 짙어져간다.

어쩌면 모든 건 맬컴의 자작극이 아닐까?

그러고 보면 살인사건을 대하는 태도에도 일반 사람과 달리 전혀 놀라거나 당황함이 없다.

마치 이런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닌 것처럼...

그리고 작가는 독자들의 이런 의심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맬컴이 과거에 저지른 살인사건을 밝힘으로써 모든 걸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버린다.

이제까지 작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유형은 일반적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살인마거나 악녀 혹은 스토커 등등... 다소 자극적인 소재와 평범하지 않은 전개를 보였던 작가는 이번에는 전통적인 범죄물에 가까운 소재를 가져왔고 기존의 작품과 달리 차분한 전개를 보이고 있는데 이런 방식도 나름대로 매력적이었다.

살인사건이 생생하게 묘사되거나 사건 중심이 아니라 스토리 중심으로 풀고 가는 여덟 건의 완벽한 살인은 이전 작품의 어딘지 다소 들뜬듯한 분위기가 아닌 차분한 서술이 돋보이는 작품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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