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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죽였을까 ㅣ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7
하마오 시로.기기 다카타로 지음, 조찬희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8월
평점 :
일본의 고전 미스터리를 소개하는 이 시리즈는 소재의 다양성 면에서도 그렇고 지금과 다른 듯 비슷한 사건 전개 방식, 여기에다 그렇게 오래전에도 범인들이 사건을 저지르는 동기는 현재와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점을 발견하게 해 읽는 재미를 준다.
게다가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숨기기 위해 어떤 짓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 역시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걸 보면 사람은 크게 진화하지도 발전하지도 않은듯하다.
이번 편에선 2명의 작가가 쓴 단편을 모아놓았는데 두 사람의 이력이 특이해서인지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조금 다른데 그게 또 매력적이다.
내용들이 상당히 전문적이고 구체화되었는데 그건 아마도 한 사람은 법률가로 또 다른 사람은 의료인으로서의 공부를 한 뒤 추리소설을 쓴 이력 때문이리라
표제작인 그 남자가 죽였을까부터 하마오 시로가 쓴 3편의 단편은 그의 장기를 잘 살려 법적으로 완전 종결이 된 사건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한 여자를 애타게 연모했고 그녀 역시 비록 남편이 있지만 자신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라 믿었던 남자가 부부를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그 남자가 죽였을까는 범인이 스스로의 범죄를 자백했고 정황상 그가 부부를 죽인 듯이 보이지만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는 변호사의 노력에도 사형이 집행된다.
그리고 발견된 그의 수기에서 그가 진범이 아닌데도 스스로가 원해 범인임을 자처한 동기가 나오면서 법률가로서 법이 얼마나 공정하게 그리고 약간의 의심도 없이 집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실려있다.
죽어가면서 자신이 짠 각본에 따라 아무런 죄도 없는 자신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법체제를 비웃으며 사라져간 남자의 비뚤어진 연정을 시작으로 또 다른 이야기인 그는 누구를 죽였는가에서도 한 남자의 질투가 불러온 비극을 다루고 있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그 마음을 표현하기보다 오히려 아내와 친밀하게 지내는 아내의 사촌을 질투하던 남자
사촌을 외진 곳으로 불러내었는데 끝내 사촌은 주검이 되어 돌아오고 남편은 별다른 조사 없이 사고사로 처리되었지만 이후 남편은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얼마 후차에 치여 죽게 된다.
이 교통사건을 조사하던 경찰은 차를 친 남자가 얼마 전 죽은 그 사촌의 형이라는 복잡한 관계를 알아내고 그를 향한 의심을 눈길을 보내지만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그를 방면한다.
이렇듯 사실관계가 명확하고 모든 정황이 범인이라 지목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용의자를 무죄라 방면해도 될까? 아니면 틀림없이 범인이라 생각했지만 정말 만 분의 일의 확률로 그 사람이 억울한 누명을 쓴 경우는 없는 걸까?
두 편의 단편은 그런 딜레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범행 수법이 단순하지만 빠져나가기 쉽지 않은 법의 틈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취한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써 법이라는 것 역시 사람이 행하는 것이라 실수가 있을 수도 있음을 그래서 더욱 형을 선고함에 있어 냉정하게 확인 또 확인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이와는 조금 다른 정신이상의 병리학적 특징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 기기 다카타로의 소설은 좀 더 싸늘하다.
망막 맥시증은 아빠를 무서워하던 소년이 어느 날부터 엄마를 멀리하고 아빠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더니 말을 무서워하다 이제는 작은 동물에 두려움을 느끼고 죽은 쥐를 보면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공포를 느끼고 이제는 집이 불탄다는 말을 하면서 공포 발작을 일으킨다.
그를 진단하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그야말로 의외의 결과... 소년이 이렇게 변화해가는 이유를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근거를 드러내 하나씩 밝혀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한데 여기에다 의문의 실종과 더불어 엄청난 비밀이 드러난다.
용의자를 내세운 것도 아니고 사건이 뚜렷하게 발생하기도 전에 오로지 소년과의 문답을 통해 사건 전체의 그림을 그려내는 과정이 아주 흥미로웠다.
잠자는 인형과 취면의식은 좀 더 병적인 느낌이 강한데 자신이 가진 지식을 동원해 원하는 욕망을 취하는 사람들이 처음의 의도와 달리 점점 더 편집증적인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참으로 그로테스크했고 그 결말을 보면서 요즘의 메디컬 스릴러와 비교해도 소재의 신선함이나 파격성 면에서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이전에 나온 시리즈보다 좀 더 현대물과 닮아 있는... 그래서 읽는 재미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