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모>가 끝났다. 끝난지가 언젠데 이제와서 그러느냐고 하겠지만, 시상이란 건 원래 갑자기, 문득, suddenly 떠오르는 법, 오늘 아침 오지않는 기차를 기다리다보니 다모에 관해 글을 쓰고 싶어졌다. 다른 사람들이 이미 다 한 얘기겠지만,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도대체 어떤 글이 가능하겠는가. 혹시 모르는 일이다. 지루하더라도 참고 읽어주면 복 받을지.

<다모>는 방영 첫회부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어찌나 반응이 뜨거웠는지,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하지원이 자신의 홈피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며 감격에 겨운 인사말을 남겼을 정도. 이서진, 김민준 등 다모 출연진들은 하나같이 스타덤에 올랐ㄱ소, 시청자게시판에 오른 글의 수가 무려 2만개, 한때 게시판이 다운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열기를 짐작할 만하다.

어찌보면 평범한 무협극에 불과한 다모가 이렇게 인기를 끈 이유가 뭘까. <홍국영>의 실패에서 보듯, 어설픈 무협극은 이제 별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시대가 됐고, <다모>의 액션 또한 그리 대단한 게 아닌데 말이다. 딴지일보 기자인 노바리님은 <다모>의 액션을 이렇게 혹평했다.

[나뭇잎 하나 디딤돌로 삼지 않아도
수평으로 붕 날아다니는 중력 예외의 법칙은 뭐며,
공중 부딪힘 씬에서 각도가 전혀 안 나옴에도
쿵 떨어지자 어깨에 칼 맞고 피 흘리는 건 또 뭐며,
<와호장룡>에서도 장즈이와 양자경의 무술 스타일은
명확히 대조된 바
황보윤과 장성백과 장채옥 사이에
전혀 차이 없는 무협 안무는 또 무엇이었는가 말이다....(9/21, 나도 한때 다모폐인이었소)]

과히 웃기지 않은 <조폭마누라>가 조폭영화 중 최초로 여자인 신은경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공전의 히트를 했듯, <다모>의 주인공이 여자, 그것도 걸출한 매력을 지닌 하지원이라는 게 드라마의 인기에 결정적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다. 그 드라마의 배경은 조선시대. 요즘이야 성공한 직장여성들이 많지만, 그 시대는 그야말로 남성들의 시대였다. 여성은 능력이 있어도 사장시켜야 했고, 그저 남편 잘 모시고, 자식 잘 기르면 족했다. 행여 남편이 죽은 후 따라죽으면 열녀비를 세워주며 칭송했고, 현대의 대표적 마초 이문열은 <선택>이라는 책을 통해 조선시대를 본받으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니 조선시대에 기억할만한 여성이 없는 건 당연하다. 이상적 여인상으로 회자되는 신사임당은 사실 이율곡의 어머니라서 유명한 것일진대, 요즘 여성들이 "신사임당을 존경한다"고 하는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안타깝다. 오죽 인물이 없으면 여성단체에서 "신사임당 대신 허난설헌을 기리자"는 운동을 하는가. 허난설헌이 훌륭한 누나라는 건 동의하지만, 그녀도 사실 시나 읊을 줄 알았지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한 게 없지 않은가. 그 시대 여자들 중 우리가 기억하는 사람은 남자를 홀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켰던 장희빈 류다. 그런데, 그 조선시대에 다모라는 여형사가 있었다니. 쌀 한가마니를 우습게 들고, 막걸리 세사발을 숨도 안쉬고 원샷하며, 공중을 날아다니며 무술을 하는 여성이 있었다니, 여성들로서는 난데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일이다. 남성들의 상당수가 하지원을 보기 위해 그 드라마를 봤다면, 여성들은 바로 그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 <다모>를 봤다.

소위 다모폐인 중 여성들이 많은 건 이해하겠는데, 왜 패기발랄한 20대가 아닌, 30대 여성이 주를 이룰까? 미국의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지적한 것처럼 20대 여성은 페미니즘의 불모지다. 20대 여성이 갖고 있는 싱그러움은 남성 욕망의 대상이자 마케팅의 타겟으로 칭송된다. 하지만 남성과의 경쟁에서 일상적 차별을 당하고, 성적 매력마저 시나브로 잃어가는 30대가 되면 그제서야 여성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페미니스트가 되어간다. 30대 여성들은 <다모>를 보면서 그들의 한을 발산하지 않았을까?

두터운 매니아층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다모>의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20대는 좀더 밝은 트렌디 드라마를, 여성이 설치는 게 못내 불편한 40, 50대는 또 다른 드라마에 채널을 고정시켰을테니, 열광적인 반응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않은 건 당연해 보인다. 게시판에 글이 2만개 올랐다 하더라도, '일인당 100개씩 올렸으니 실제 매니아는 200명 뿐'이라는 어떤 '반다모이스트'의 지적은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다.

아쉬웠던 점은 8회까지 "탄탄하게 짜인 스토리를 자랑하"던 이 드라마가 9회부터 점점 변질되었다는 것. 다시 노바리님의 기사를 인용한다.

[9회부터 엿가락처럼 늘어지기 시작하더니
대략
스토리의 난
플롯의 난
캐릭터의 난
을 겪으며
삼천포로 빠져나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늘어짐과 엇박자를 자랑하다가
사미, 즉 뱀꼬리는커녕
토룡미, 즉 지렁이꼬리가 되고 만
기막힌 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까 8회까지 다모에 열광하던 다모폐인들은 할수없이, 분에 떨면서, 짜증을 내면서, 허탈한 맘으로 나머지 부분을 봤을거다. 한국축구의 고질병이 문전처리 미숙이듯, 우리나라 드라마들의 약점도 끝이 안좋다는 것인데, 이 점에서 <다모>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혹자는 내게 물을 거다. "근데 너 이 드라마 봤어? 봤냐고?" 안봤다. 내가 안봤으니 드라마 내용 얘기할 때 노바리님 기사를 인용했던 거 아닌가. 그리고 <앞집여자>를 보느라 <다모>에 눈울 돌릴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 혹자는 다시 물을 거다. "보지도 않고 어떻게 글을 써? 그게 말이 돼?" 난 이렇게 대답하련다. "넌 꼭 애를 낳아봐야 애 낳는 게 아픈지 아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메이져리그 포스트시즌 경기를 보느라 정신없는 요즘, 야구를 보는 짬짬이 <은밀한 유혹>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다. "100만달러에 당신 아내와 하룻밤을 자겠다!"는 도발적인 문구로 화제가 되었던 바로 그 영화. 십년쯤 전에 개봉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로버트 레드포드도 참 멋있지만, 데미 무어의 미모는 정말 100만달러를 주는 게 아깝지 않을만큼 빛이 난다.

중간부터 봐서 왜 돈이 필요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데미 무어는 로버트 레드포드와 하룻밤을 보내러 가는데, 내 기대와 달리 배에서 보낸 그 하룻밤이 잘렸다 (일부러 자른 게 아니라, 궁금하라고 안내보낸 것 같다). 어쨌거나 데미 무어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초조하게 그녀를 기다리던 남편은 돌아온 그녀를 껴안으며 "사랑해"라고 말한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돈을 필요로 하게끔 만든 사람도 자기고, 데미 무어는 원하지도 않는 하룻밤을 보낸 거니, 미안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그는 달라진다.
그놈: 도저히 그날 일을 잊을 수가 없어.
무어: 알려고 하지 마.
그놈: 진실을 알고 잊어버릴께. 말해줘.
무어: 싫어.

참나, 왜 그런 걸 알려고 할까. 첫날밤에 '다른 남자와 경험이 있냐'고 솔직히 털어놓으라고 해놓고선 막상 진실을 말하면 그걸 빌미로 학대하는, 남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 이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그놈: 말해봐. 그녀석과 좋았어?
무어: (어이없다는 표정) 그래. 섹스를 너무 잘해, 밤새도록 사랑을 나누었어.
그놈: 거짓말!!!
무어: 어차피 안믿을 거면서 왜 물어? 당신이 바라는 건, 그 남자가 형편없었다는 대답 아냐?


정말 그렇다. 믿지도 않을 걸 왜 묻는담? 그 일이 남편에게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인 것처럼, 아내에게도 그건 악몽일 것이다. 도대체 그 일을 실토하게 해 그때 일을 다시 떠올리는 건 왜일까? 남자는 "당신이 그놈한테 먼저 꼬리쳤잖아!"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고, 급기야 물건을 부수며 화를 낸다. 그렇게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그는 심지어 아내의 지갑을 뒤지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것은 뻔한 이치, 데미 무어는 결국 남편을 떠난다. 때로는 묻어 둬야 할 진실이 있는 법이고, 그 배에서 데미 무어가 얼마나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했는지 십분의 일만 이해했다면, 그리고 자신의 아내를 믿었다면 이런 파국은 없었으리라. 야구가 재미있어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친구의 말에 의하면 결국 둘이 갈라선단다.

남자란 동물은 섹스를 소유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넌 나와 잤으니 이제부터 넌 내거야'라는 식의. 자기는 다른 여자와 자도 되지만, 자기 여자가 남과 자는 것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건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이미 수많은 경험을 했을 유부녀를 꼬시는 데 공을 들이는 건,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뺐는다는 쾌감 때문이 아닐까? 소유욕에 얽매여 있으니 자기 부인이 강도에게 강간을 당하는 게 이혼사유가 되고, 아내의 바람은 용서할 수 없는 죄가 된다. 소유욕에 얽매인 정신적으로 미숙한 존재, 그게 바로 남성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매일 저녁 7시부터 8시 반까지, 어머님은 컴퓨터를 배우신다.
처음에는 내게 컴퓨터를 배우려고 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을 가르쳐 줄만큼의 실력이 되지 못하는데다, 선생의 자질마저 없다. 자기가 아는 걸 남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난 유감스럽게도 그런 능력이 없다. 내가 공부를 제법 잘했던 고등학교 때도 내게 뭔가를 물으러 오는 사람이 없었을 정도. 내가 받은 질문이라야 "오늘 야구 선발투수 누구냐?" 따위가 전부다.

그래도 난 어머님께 몇가지 기본적인 것들을 가르쳐 드렸다. 사이트에 회원으로 등록하기, 메일 보내기, 한글을 열고 저장하는 법, 기차표 예약하는 법. 이걸 가르쳐 드리고 나니 더 가르칠 게 없었다. 그래서 난 어머님께 "하산하세요"라고 했지만, 어머님은 뭔가 더를 요구하셨다. "아니 배울 게 더 뭐가 있어요? 이제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마음껏 누비세요"
컴맹이면서도 인생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는 나로서는 그렇게 말하는 게 당연했다 (가끔 불편하다. 중간고사 본 거, 엑셀에 저장했는데 아직까지 평균을 못냈다 T.T)

어머니도 특정 사이트에 가입한 뒤 거기다 글을 쓰고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 잡지나 신문을 볼 수도 있고, 인터넷으로 쇼핑도 할 수 있는데 뭐가 걱정이람? 게다가 내가 가르쳐드린 몇 안되는 것마저 어머님은 까먹으셨다.
"민아, 메일 확인을 어떻게 하더라?"
내가 인내심이 워낙 없다보니, 다시 가르쳐드릴 때 짜증이 묻어났나보다.
툭하면 "왜 구박을 하고 그러지?"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님은 결국 학원을 등록했다.
국가에서 보조를 해주는 곳으로 한달 수강료는 겨우 2만원.
"나도 이제 너한테 가르쳐달라고 안할거야!"라고 날 놀리시는 어머님을 보니, 평소 좀 잘해드릴걸 하는 후회감이 들었다.

하지만.... 학원이라고 해서 어머님께 마냥 관대한 건 아니었다. 서른살에 미혼인 남자 강사는 60을 넘긴 어머님보다는 20대 여성들에게 더 관심이 많았고, 결정적으로 어머님은 컴퓨터에 기초가 너무 없었다. 강사와 어머니 모두, 수난시대에 접어들었다.

강사: 엑셀을 여세요
엄마: 인터넷에 들어가서 하는 거에요?
강사: 아이 참, 미치겠네


강사: 잠깐 비껴봐요. 제가 해드릴께요.
엄마: 제가 해봐야 늘지요.
강사: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엄마: 선생님, 여기 좀 봐주세요.
강사: 혼자만 그렇게 질문을 하니 진도를 못나가잖아요.
엄마: 오늘은 아직 한번도 안물어봤잖아요.
강사: 평소에 그렇다는 얘기에요!

나중에는 어머님이 SOS를 쳐도 아예 외면해 버렸단다. "엄마, 엄마가 그 중에서 나이 제일 많아?"
"50대가 한명 있고, 나머진 다 20대야. 근데 그 50대, 참 컴퓨터 잘하더라"
내가 다녔어도 구박받았을 환경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어머니가 멋져 보이면서, 한편으로는 그 강사가 안되어 보였다. 엄마가 한달 더 다닐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걸 그가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래도 어머니가 딱 하나 잘하는 게 있다. 바로 워드실력. 아버님의 간병을 하실 때, 어머니는 틈나는대로 노트북을 펴놓고 병상일지를 쓰셨다. 양이 제법 되고, 지금 그걸 보면 눈물이 나지만, 그 덕에 어머니가 워드 하나는 잘 치신다. 1분에 200타 정도니 대단한 건 아니지만, 학원선생이 엄마가 워드치는 걸 보고는 "제법이네"라고 했단다.
새로운 걸 배우길 싫어하는 나에 비해, 어머님은 뭐든지 열심이시다. 내 또래 중에도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못쓰는 사람이 있지만, 어머님은 곧잘 내게 문자를 날리신다.
"민아, 오늘은 술먹지 말고 일찍와라"라고 보내서 탈이지만....

나에 대한 어머님의 헌신에 늘 감사드리지만, 가끔은 어머님의 삶이 너무 재미없다고 느낄 때가 많다. 젊었을 때 연애도 한번 못해보셨고, 세번 만나고 아버님과 결혼하신 뒤부턴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마음고생이 심하셨다. 우리 넷을 낳아 기르느라 아무것도 못하셨고, 우리가 다 컸을 때부턴 아버님이 편찮으셨다. 아버님이 입원해 계시는 몇년간, 어머님은 병원에서 안주무신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헌신적인 간병을 하셨다. 그래도 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자식들은 이제 컸다고 말도 잘 안듣는다. 과거를 아무리 뒤져봐도 즐거웠던 기억이 별로 없다는 어머님을 보면서, 우리 세대부터는 여자들이 일방적으로 자식에게 헌신하기보다는 자신의 삶도 좀 즐길 줄 아는 그런 어머니가 되었으면 한다.
한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살아야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참 좋은 글이라 생각해서 퍼왔습니다.
------------------

아는 사람이 많은 정도로...

유명한 삼국지의 고사중의 하나입니다.

조조가 마등의 아들, 마초를 토벌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으나

마초와 그의 부친의 친우인 한수의 협공 아래,

조조군은 고전을 면치못하지요...

어느 날이었습니다.

조조가 닭갈비를 먹고 있는데, 먹는 동안 자신이 먹고 있던 갈비를 한참 바라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지요.

"계륵같구나.. 계륵같구나.."

계륵은 닭의 갈비를 의미합니다.

이 이야기를 조조의 참모진이 듣게되지요. 그 때 참모중의 하나인

'양수'라는 자가... 자신들의 주군인 조조가 후퇴를 명했으니 어서 준비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다른 참모들은 의아해하게되지요. 어떻게 계륵이란 말이 후퇴를 의미하냐고요...

양수는 설명했습니다.

"닭의 갈비뼈는 살이 있는듯, 없는듯하여... 먹기에는 귀찮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그런 부위지요. 지금 주군께서는 지금의 전시상황이 마치 계속 진격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후퇴하기에는 아까운 그런 상황에 있다고 보고계십니다.

이미 그런 흔들림이 있다는것은, 거의 후퇴를 결정하신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어서 후퇴준비를 서둘러야할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조조는 갈갈이 날뛰며 화를 냈습니다.

조조는 자신의 속내를 부하에게 들킨것이 뭇내 부끄러웠던것이지요.

양수는 처형 직전까지 갔으나, 하후돈 등의 위시한 측근들의 만류로

양수는 간신히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조는 보란듯이 진격을 계속했지만, 결국 상황은 더더욱 악화되어

결국 수도인 허창으로 병사를 물리게 되지요...

.

.

.

.

.

사람들의 사이에서도 이런 '계륵'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특히 20대에서는

연애 감정에 그것이 많이 나타나는 법이지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보셨을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을 두고...

내가 사귀기에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남 주기에는 아까운... 그런 사람.

분명히 그런 사람이 있었을것입니다. 없다면 거짓말이지요.

사람의 애정감정은 언제나 가치판단 기준이 정확하지 못하여 늘 애매모호한법이지요.

물론 첫눈에 반했다는둥의 그런 감정도 있지만, 별로 신용하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여러분은 자신이 다른 사람을 계륵으로 본 적이 있을 것이고,

또한 타인도 여러분을 계륵으로 생각한 적도 있을것입니다.

저도 물론 예외는 아니고요...

그런데, 살다보니.. 이 계륵만큼 상대를 상처입히는 것도 없습니다.

쉽게말해서,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듯, 말 듯... 하다가... 고민하고... 기뻐하고...상처받고...

그런 식이지요.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의 감정을 갖고 장난치는 듯한 그런 행위는..

절대적으로 옳을수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한 여성분도, 남자를 그런 식으로 늘 재는 분이 있지요. 물론 누구인지는 비밀입니다만..

남자분도 물론 있지요.

그리고 저도 그런 경험을 한 적도, 당해본적도 있고요.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으로 해서는 안될일입니다.

상대방의 아름다운 마음을... 그런 계산적인 마음으로 갖고논다는 것은...

해서는 안될일입니다.

물론, 감정이란 것이... 흑이다/백이다. 이렇게 잘라말하기가 어려운 건 사실입니디만,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자신의 마음이 확실히 갈피를 잡을때까지는

상대방으로하여금, 오해를 사게해서는 안되겠지요. 마음이 정해지면

그때는 태도를 분명히 해야겠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수능 17번의 문제는 이렇다.
[17 (가)의 ㉠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을 <보기>에서 고르면?

<보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테세우스는 미궁으로 들어가 비밀의 방에 이르고자 한다. 비밀의 방에는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있다. 미궁을 통과하는 길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미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이 아니다.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존재하고 열리는 문이다. 테세우스는 미궁의 문을 찾아 실 끝을 미궁의 문설주에 묶어 놓은 뒤 자신의 예지와 본능으로 미로를 더듬어 비밀의 방에 이른다. 테세우스는 괴물을 죽인 후 실을 따라 무사히 밖으로 나온다. 이 '미궁의 신화'는 문학 예술 작품에서 다양하게 변형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① 테세우스 ② 미노타우로스
③ 미궁의 문 ④ 비밀의 방
⑤ 실 
 
 (가) 고향 -백석-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어 누어서 어느 아츰 ㉠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집드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 정주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씰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띄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어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그러니까 고향에 가기 위해 뭐가 필요하냐는 건데, 정답을 3번으로 한 평가원의 해석은 이렇다. "핵심은 그 과제를 해결하는 관건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굴로 가는 문을 찾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들어갈 때 들고 가는 밧줄은 나중에 동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필요한 도구이지요"

아니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도구인 것처럼, '의원' 역시 고향에 이르고자 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의원이 고향을 일깨워 줬다면, 실타래는 미궁의 문으로 나오게 해준 것, 이카루스였다면 아마도 날개가 정답일 테지.. 그래서, 많은 수험생이 정답으로 쓴 5가 타당하다는 게 내 생각이며, 평가원의 해석은 그다지 보편타당하지는 않은 것 같다. 뒤늦게나마 5번도 정답이라고 한 것은, 당장의 공신력 실추는 있을지언정 스스로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하는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우스운 것은 3번을 썼던 수험생들의 행태다. 다른 경쟁자들이 2점씩 올라가는 게 참을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그들은 거리로 나서 무력시위를 했다. 난 고교생들이 시위를 하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견해를 시위 등을 통해 밝히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한 게 아닌가. 하지만 그 이유가 문제다. "다른 애들 점수 올려주면 내 등수가 떨어지잖아!"라는 게 과연 시위의 이유일 수 있을까. 그들의 시위에는 부안 사람들의 시위에서 느껴지는 절박함이나, 농민 시위에서 보이는 생존권을 위한 몸부림이 들어있지 않다. 등수가 떨어지는 데 대한 시기심 말고는 난  신문에 난 그들의 시위모습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오답은 바로잡아야 한다. 오답을 인정하고 5번을 정답으로 하는 것은 정의가 바로잡히는 일, 그렇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등수 보존을 위해서 정의의 구현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되버린다. 원칙적으로 따지면 5번이 정답이 됨으로써 3번은 정답이 아닌 게 되어야 하고, 그들의 점수는 2점이 깎여야 맞다. 하지만 평가원 측은 그럴 배짱은 없었고, 3번을 쓴 애들은 공연히 2점이 올라갔다. 그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일을, 5번은 틀리게 하라고 시위를 한다?

안다.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가르쳤음을. 진리를 추구하기보다는 남을 짓밟고라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게, 남들 것을 빼앗아 하나라도 더 많이 갖는 게 정의라고 말이다.  그들은 지금, 배운대로 행동하고 있다. 하물며 자신의 일생이 걸린 수능시험인데!!! 다른 나라들은 다 하는 사회적 연대를 왜 우리는 못하는지, 우리는 왜 모든 갈등이 극한투쟁까지 가는지 그 이유를 대충 알만하다. 그렇다. 모든 갈등의 배후에는 살인적인 대입경쟁이, 수능이 있다. 권모술수와 정략으로 점철된 <삼국지>가 수능 준비를 위해 꼭 읽어야 필독서가 되버린 것도, 우리의 대학입시가 권모술수와 정략이 판을 치는 곳이기 때문이 아닌지.


단 한번의 대학입시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소름끼치는 학벌주의가 깨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수능파동을 보면서 또다시 느낀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