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이) 청과 러시아, 일본 가운데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 토론을 거친 후 차선책으로 일본을 선택했으며 이는 역사에 기록돼 있다"
90년대 초부터 숱한 망언으로 물의를 빚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가 엊그제 한 말이다.
<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 >을 쓴 인기작가이기도 한 그가 툭하면 망언을 되풀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망언을 하고, 주변국에서 그를 비난할수록 인기가 더 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무시하는 것이 상책일 듯도 한데, 그의 지위가 지위니만큼 그냥 넘어갈 수도 없는 일, 그의 망언이 나올 때마다 우리 측에서는 꼬박꼬박 항의를 한다. 어제도 주일 대사가 그를 만나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고 한다.

침략행위를 반성하기는커녕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속성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치를 떤다. 그런데 그런 얘기가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닌 한국인에 의해 발설된다면? 이론상으로는 더 흥분해야 말이 된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정말 그런 일이 있냐고? 대표적인 보수논객 복거일이 얼마 전에 펴낸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의 일부다.

[일본의 조선 합병은 공식적인 행위였고 모든 다른 나라들의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조선사람들 대부분은 일본의 통치를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414쪽)]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가 이룬 놀라운 성취는 일본에 의한 조선 사회의 강제적 개화에 바탕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331쪽)]

[일본의 식민통치는 조선 사람들이 생존할 만한 환경을 제공했다. 정치적 관심을 거두고 독립을 꿈꾸지 않으면, 식민지 조선은 그런대로 살아갈 만한 세상이었다(398쪽)]

[어떤 통치의 성격과 효율은 궁극적으로 인구 추세에 반영된다.....식민지 시기 조선인 인구는 비슷한 시기의 아시아나 세계인구보다 빠르게 늘어났다...일본의 식민통치 아래서 조선 사람들이 상당히 잘 살았다(11-13쪽)]

일부만 가지고 책 전부를 폄하하는 게 아니냐고? 글쎄다. 어찌되었건간에 그 책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그때는 저항할 처지가 아니었다구. 일본 애들이 워낙 악독했으니까..그런데 사실 저항할 필요도 없었어. 일본 애들이 사실은 좋은 일들을 많이 했거든(고종석 저, 인물과 사상 28권, 336쪽)]

난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이 이시하라 신타로의 망언과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른다. 일본 사람이 식민통치를 합리화하면 망언이고, 우리나라 보수논객이 말하면 '합리적인 말'이 되는 것일까? 그런 게 아니라면, 우리 사회가 이 책에 보이는 침묵은 도무지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자칭 '민족지'인 동아일보가 이 책에 관한 기사를 크게 실어줘, 판매에 도움을 준 것도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알라딘에 오른 독자서평의 일부다.

"복거일을 다시 보게 한 명저라고 말하고 싶다(kje0525)"
"한국인이면 놓쳐서는 안될 책이라고 생각한다(간달프)"

이시하라가 이런 사태를 본다면 얼마나 비웃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민족정기라는 것은 복거일의 말처럼 "생산성이 낮은", 그래서 버려야 할 쓸데없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일까. 만일 전자라고 생각한다면, 일본에 대해 더이상 사과를 묻지 말자. 그들의 망언에 흥분하지 않아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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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애를 낳고 싶지 않다. 그렇게 아픈 줄 미리 알았다면 그 한명도 낳지 않았을 것같다"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는 내 친구의 부인이 한 말이다.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출산이라는 건 무지하게 고통스러운 일일 것같다. 친구의 부인처럼 날씬한 몸매를 가졌다면 더더욱 힘들 것이다. 남편이나 시댁에서 부인의 뜻을 존중하는지라 그녀가 더이상 그런 고통을 겪는 일이 없을 거라는 게 참으로 다행스럽다. 내 다른 친구 하나도 딸만 달랑 하나고, 더 낳을 마음도 없다. 그 친구 역시 부인이 너무 힘들었다고 학을 떼는 바람에 차마 더 낳자는 말을 하지 못했단다. 먼젓번과는 달리 그녀는 제법 육중한 몸매를 가진 여자인데, 그런 걸 보면 마른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애 낳는 고통은 매일반인가보다.

그 반면 애를 비교적 쉽게 낳는 사람도 있다. 나와 같은 직장에서 근무했던 국모 선생은 별다른 고통 없이 애 둘을 낳았단다. "엉덩이가 커서 애를 쑥쑥 낳았지"라고 말하는 그녀는 정말 산만한 히프를 가졌다. 6년에 걸쳐 우리 넷을 낳은 어머니도 비교적 애를 순탄하게 낳은 편인데, 50킬로가 채 안될만큼 날씬한 몸매를 가진 누나나 여동생이 그다지  힘들이지 않고 셋, 둘을 낳은 걸 보면, 그런 것도 유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애 낳는 게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거다. 아무리 무통분만 어쩌고 해도, 골반이 벌어지고 몇킬로는 되는 애들이 밖으로 나오는 과정이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열명 가까이 자식을 낳는 게 일상적이었던 30년 전의 어머니들은 정말 많이 힘드셨을 거다.

그땐 그게 당연시되었던 시대였으니 별수 없이 아픔을 감수했겠지만, 여성들이 자기 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게 된 요즘 같아선 어림도 없다. 애를 낳느라 십몇년 청춘을 다 보내고 나면 자신의 인생은 뭐가 되는가. 출산률이 1.13이라는 기록적인 수치로 떨어진 것은 출산과 육아에 대한 복지가 전무한 것도 있지만, 여성은 애낳는 기계가 아니라는, 자기 몸에 대한 여성들의 자각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문제는 계속 이렇게 갈 경우, 사회의 노령화가 필연적이라는 거다. 경제활동인구 4명이 노인 한명을 먹여살리는 것도 힘든 우리나라에서 젊은이와 노인의 비율이 1:1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부에서는 "육아휴직하면 한달에 30만원을 준다!"는 발표를 했지만, 문제의 핵심을 잘못 짚은 것 같아 안타깝다. 국민 복지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우리 정부에게 출산.육아 휴가를 15개월이나 주는 스웨덴이나 7개월을 주는 덴마크 수준의 복지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가 임산부를 보는 시각만큼은 바뀌어야지 않을까? 출산이나 육아가 단기적으로는 기업에 손해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애보러 집에 간다"는 여직원을 째려보는 일도 없어야 한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남편의 배려다. 내가 아는 어떤 애는 임신으로 입맛이 까다로운 부인을 위해 온갖 음식시중을 도맡아 하는데, 한달에 외식비가 100만원이 넘는다고 하니 정성이 뻗친다. 그런 게 감동적인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의무가 된다면, 우리 여인들의 출산파업은 줄어들지 않을까? 알아주지도 않는데 무작정 고통을 감수할 사람은 별로 없다. 참고로 난 잘할 자신이 없다보니 아직 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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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 사건이 일어난 건 95년이다. 조교 때였는데,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그 뉴스를 봤다. 반공정신이 투철했던 난 간첩에 의한 테러인 줄 알았고, 백화점이 저절로 무너진 거라는 걸 나중에 알고는 어이없어하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는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다. 서해페리호가 침몰해 삼백몇십명이 죽고, 대구 지하철이 폭파되어 1백명이 죽었다. 하지만 삼풍 참사는 그 어이없음이나 사망자 수를 보나 사건사고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했다.

삼풍 앞을 우연히 지나갔다. 그때의 상처는 이미 씻어진 듯, 거대한 타워 팰리스가 우뚝 솟아 있다. 순간적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 금싸라기 같은 땅이니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수많은 원혼들이 묻힌 땅에 꼭 그런 게 세워져야 할까. 졸속으로, 압축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진 과거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추모공원 같은 것을 세우면 안됐을까. 각종 사건, 사고로 어이없게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는 곳 말이다. 꼭 그분들의 시신을 묻지 않더라도, 추모비나 탑 같은 것을 세워서 우리의 비인간적인 경제개발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면 좋지 않았을까.

뉴스를 보니 광화문 땅도 그렇게 될 모양이다. 붉은 악마의 진원지였고, 촛불시위 등 각종 시위의 메카였던 광화문에 고밀도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집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아파트를 계속 지어야겠지만, 아파트가 숲을 이룬 서울은 너무 삭막해 보인다. 안그래도 시민들의 쉴곳이 부족한 곳이니 월드컵을 기념하는 광장 같은 게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김민수 전 서울대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한강 하면 자살하는 사람 얘기밖에 없잖아요. 그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다리란 보는 것 이전에 본질적으로는 건너면서 느끼는 구조물입니다. 시각적 감상의 대상이기 전에 온몸으로 교감되어야 할 게 다리지요. 한데 한강의 다리는 거의가 차를 타고 60-70킬로의 속도로 횡하니 빨리 건너야 할 군사용 다리처럼 느껴져요. 6.25 당시 다리가 끊어졌을 때의 아픈 추억이 있으니까 다리는 무조건 빨리 건너야만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고, 성수대교 생각하면 무너지기 전에 빨리 건너고 싶은 생각도... 천천히 걸어서 건너면서 정말 절로 노래가 나오는 다리가 있으면 좋겠어요(다시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지승호 저, 306쪽)]

이미 기형적인 모습이 되어버린 서울이지만, 우리가 대대로 살아갈 곳이니만큼 아쉬운 대로나마 인간적인 모습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서울의 모습이 조금씩이나마 바뀐다면, 우리의 마음에 각인된 각박함도 조금씩 씻겨지리라는 기대를 해보지만, 유감스럽게도 서울은 아직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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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파월의 아들이라고, 내가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하곤 했던 콜린 파렐이 나오는 영화다. 그는 브래드 피트를 닮았다. 브래드 피트가 약간은 우수에 젖은 표정이라면, 파렐의 이미지는 그보단 밝다. 그렇다 해도 누군가를 닮았다는 건 연예인 생활을 함에 있어서 불리한 요소가 될수밖에 없는데, 파렐은 출중한 연기실력으로 그 불리함을 극복, 적어도 내게는 '괜찮은 배우' 자리에 올라있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를 못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파렐의 연기가 빛나는 건 아니다. 영화 자체의 아이디어가 워낙 뛰어난 탓에 보는내내 감탄을 했다. 좁디좁은 폰부스에서 모든 일이 일어나니 돈도 그리 많이 들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정말이지 시나리오 작가의 빛나는 머리에 찬사를 보낸다.



콜린 파렐이 폰부스에 갇히게 되는 계기는 대충 이렇다. 첫째, 비싼 양복을 입는 등 허풍을 부렸다. 둘째, 아내를 놔두고 미혼이라고 속인 채 술집 종업원에게 집적댔다.

세째, 피자 배달원에게 무례하게 대했다. 범인은 이렇게 위선적인 콜린 파렐을 응징하려 했던 거다. 난 비싼 옷도 싼 옷처럼 후질근하게 입는데다 양복은 더더군다나 입기 싫어한다. 그리고 피자배달원이건 누구건 그렇게 무례하게 대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두번째 이유, 다른 여자에게 한눈을 파는 건 지킬 자신이 없다. 술집 종업원에게 집적대는 건 거의 내 생활이 아니던가. 범인과 같은 놈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난 폰 부스에 골백번도 더 갇혔지 않을까? 성경에 의하면 마음으로 간음하는 것도 죄가 되지만, 그렇게 따지면 죄인 아닌 남자가 얼마나 될까?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흥행하지 못한 건, 영화의 스케일이 너무 작아서리라. 큰 스케일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관객에게 "전화박스 안에서 모든 일이 일어난다"는 선전 문구는 별로 매력적인 것이 못되니까. 이런 얘기를 하기는 좀 뭐하지만, 파렐의 부인으로 나오는 '켈리'라는 여자는 하나도 이쁘지 않으며, 그가 한눈을 팔았던 '팸'이라는 여자 역시 전혀 이쁘지 않다. 부인이 이뻤다면 "남자는 이쁜 부인이 있어도 바람을 피운다"는 평범한 진리를, 팸이 이뻤다면 "남자는 젊고 이쁜 여자에겐 언제나 한눈을 판다"는 더더욱 진부한 진리를 확인시켜 줬을텐데. 좁은 공간에, 안이쁜 배우들, 제작비를 너무 아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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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2-11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콜린 파렐 넘 멋져요...

싸이런스 2006-07-14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릉댁이 4일 먼저군요
 

다이안 레인을 안 건 꽤 오래 전이다. 그러니까 내가 중학생 쯤 됐을 때, 누나가 빌려온 <스크린>이란 잡지를 뒤적이다 보니, 그녀의 이름이 여러번 나왔다. 이쁘긴 했지만, 내 타입은 아니었다. 그당시 내가 좋아했던 여자는 피비 캐츠. 그래서 그런지 다이안 레인이 나온 영화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아니다. 하나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녀의 출연작 중 <저지 드래드>라는 게 있는데, 난 그걸 극장에서 봤다. "재미있다"는 친구의 말에 속아서. 하지만 그 영화는 실베스타 스탤론의 영화, 다이안 레인이 나왔던 걸 모르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아무튼 다이안 레인은 내가 어릴적 대표적인 아이돌 스타였다. 하지만 그 당시 떴던 애들 중 제대로 큰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연기력을 인정 못받은 브룩 실즈는 아가시와 염문을 일으킨 걸 제외하면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있고, 소피 마르소도 뭐 그리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진 않다. 내가 좋아하던 피비 캐츠는 뭐하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 하지만 다이안 레인은 좀 다르다. 내가 몰라서 그렇지, 필모그래피를 보니 해마다 한편씩 영화에 출연 중이다.

그런 그녀를 <언페이스풀>에서 다시 만났는데, 얼마나 이쁜지 기절할 뻔했다. '언페이스풀'은 성실하지 못하다는, 다시말해서 바람을 피운다는 뜻인데, 다이안 레인은 숨막힐 듯한 미모를 과시하며 젊은이와 불륜에 빠진 아내 역을 잘 소화해 낸다. 늘씬한 다리, 분위기 있는 미소, 그런 유부녀가 곁에 있다면 누가 감히 거부할 수 있겠는가. 어릴 적엔 내 타입이 아니었는지 몰라도, 지금의 그녀는 내 타입 그 자체다. (안젤리나 졸리는 어떡하고?)

리차드 기어를 알게 된 건, 중3 때 봤던 <사관과 신사>에서였다. 데브라 윙거도 참 이뻤지만, 리처드 기어가 어찌나 멋있는지,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면서 실의에 빠졌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1981년이니 무려 22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리처드 기어는 여전히 멋있어 날 주눅들게 한다. 1949년생, 우리 나이로 55세라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건지, 아니면 화장빨인지? <사관과 신사>에서도 그랬지만, 인자한 그의 미소는 남자인 내 가슴마저 뛰게 만든다 (내가 원래...좀 그렇다). 그렇게 멋진 남편을 두고 아내가 바람을 피운다는 설정이 영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영화 속 한장면. 다이안 레인이 욕조에 앉아 바람피는 남자가 아랫배에 새겨준 하트를 열나게 지우는데, 리처드 기어가 불쑥 들어온다. 당황하는 다이안 레인에게 리처드가 한 말, "자리 있어?" 그 대사를 보면서 리처드 기어는 실제로도 저렇게 멋진 말을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뭐라고 했을까?
"미자, 우리 같이 목욕할까? 으흐흐흐흐"라거나, "미자, 등 밀어줄까? 음하하하"라고 했을지도?
그런 말을 할 상황이 온다면 앞으론 무조건 말해야겠다. "자리 있어?"라고.

두 배우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결말은 영 미적지근했지만, 매력과 연기력을 모두 갖춘 배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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