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건 삶의 일부를 거기다 투자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영화라고 크게 다르진 않다. 언제 종영할지 모르니 달력을 보면서 언제 시간이 되는지를 따져야 하니까. 그래서 난, 시간 있을 때 몰아서 보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혹자는 하루에 두편을 보면 어지럽다고 하는 모양인데, 다행히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1.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내가 감독이고,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받았다면 1초도 지체하지 않고 휴 그랜트에게 연락을 했을 것이다. 그 말고 누가 이처럼 로맨틱한 매력이 넘치는 퇴물가수 역을 할 수 있을까? 휴 그랜트가 시간이 안난다면? 답은 ‘그가 시간이 날 때까지 기다린다’이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건 남자가 피아노를 치면 참 멋있게 보인다는 거다. 안그래도 멋있긴 하지만, 여자의 작사에 즉석에서 작곡을 하는 휴 그랜트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남자가 피아노를 치는 게 여성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피아노를 치면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것처럼 보여서가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난 피아노 치기를 죽도록 싫어했던 어린 시절을 후회했다. 바이엘을 다 떼었으니 기본이야 있지만, 두손으로 반주를 할 실력은 못된다. 친구도 없어 외로웠던 그 시절, 대체 피아노도 안치고 뭘 한 걸까?
휴 그랜트의 매력과 더불어 영화를 빛나게 한 건 드루 배리모와 휴 그랜트가 같이 부른 ‘Way Back into Love’란 노래였다. 다른 노래도 다 좋지만, 이 노래의 멜로디는 특히 아름답다. 지금 그 노래가 내 컴퓨터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2. 훌라 걸스
일본은 무슨무슨 ‘걸스’나 ‘보이스’가 들어가는 영화를 자주 만드는 듯하다. 그저그런 청춘물 중 하나인 줄 알았건만 영화는 의외로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탄광촌을 다뤘다는 점에서 ‘풀몬티’ 생각이 났고, 스토리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공식을 따르지만, 보다가 눈물이 절로 흐를만큼 진한 감동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이 영화에서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건 훌라댄스를 배우러 온 사람들을 미모 가지고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 미모가 빼어나긴 해도 주인공 격인 두 명의 여인은 키가 작고 어려 보여, 관능적인 매력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른 한명은 평범한 유부녀였고, 나머지 한명은 남자와 구별이 잘 안갔다. 그래서 난 “너희들은 왜 왔냐?”면서 자르는 걸 예상했지만, 이들은 결국 멋진 훌라 댄서로 성공을 한다. 미녀만 밝히는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훈훈한 광경이었다.
내가 느끼는 이 영화의 미덕 중 하나는 작위적인 장면을 배제했다는 거다. 이제부터 스포일러. 주인공의 친구는 집안 사정으로 훌라댄서를 그만두고 멀리 떠나야 하는데, 다른 영화 같으면 훌라 댄스 첫 공연 때 “나 왔다!”며 저 멀리서 뛰어오는 장면이 있었을 거다. 그랬다면 마음은 훈훈했겠지만 얼마나 비현실적이겠나. 하나 더. 주인공의 오빠는 처음에 훌라댄스 선생을 적대시하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둘의 로맨스가 꽃피는 장면으로 끝이 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끝까지 그런 일이 없다. 그랬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멋진 영화였겠지만, 오버하지 않아서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