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학 수업이 있는 날.
첫시간에는 인사만 하고, 그 다음 시간에는 실습을 한다고 일찍 끝내고,
그 다음 주는 추석 연휴 전날이라고 휴강을 했더니만
강의할 게 무지무지 많아졌다.
무려 250장의 슬라이드를 돌려야 하니 마음이 급했다.
‘달리는 치타’ 사진을 보여주며 “치타처럼 달려 봅시다”라고 말한 뒤
정말 빠르게 진도를 나갔다.
너무 열강을 했던 탓이다.
말을 하다가 내 입에서 큼지막한 파편이 컴퓨터 모니터에 튀어버린 것.
누가 본 사람이 있나 좌우를 살펴봤다.
대부분 스크린에 비친 기생충 사진을 보고 있는데,
저 앞줄에 여학생 하나는 날 똑바로 보고 있다.
하필이면 여학생이라니, 무척 무안했다.
모니터에 묻은 파편을 닦아 봤지만, 그런다고 만회되는 건 아니다.
수업 후 그 여학생은 필시 이럴 것이다.
“야야야, 서모 선생 말야, 수업 하는데 글쎄 사람 주먹만한 파편이 나가는 거 있지?”
그걸 듣는 애들은 이럴 것이다.
“어머어머, 어쩜 그럴 수가. 난 그 사람 그렇게 안봤는데.”
개미같이 일을 하다가 병원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가져간 책을 읽으며 밥숟갈을 입에 떠 넣고 있는데,
내과 선생님 한분이 내 앞자리에 식판을 올려 놓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내가 먼저 밥을 다 먹었다.
할 일도 많은지라 일어나고 싶었지만 예의상 앉은 채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내 입에서 밥풀 하나가 튀어 내 식판으로 날아간다.
그 선생이 이 장면을 보는 걸 나도 보았다(그래도 내 식판인 게 다행이다).
그가 갑자기 이런다.
“선생님, 다 드셨으면 먼저 일어나셔도 되요. 바쁘신 것 같은데...”
밥풀을 보기 전엔 그런 말을 안하더니만!
그런다고 진짜 일어나서 가버리면 밥풀 때문에 삐친 줄 알까봐
그냥 앉아서 계속 그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하루에 두 번이나 파편이 튀다니,
집에 가선 조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