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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에는 평소 선생님으로, 인생의 스승님으로 존경하는 한 분이 계시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생님이라서 이렇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흔히 말하는 진유(眞儒)란 바로 선생님을 두고 하는 말이지 싶다. 워낙 훌륭한 인품을 지니신 선생님인데다가 유학자로서의 고매함뿐 아니라 역사, 의술, 보학, 지리학에서의 깊이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운 분이다. 기절을 지닌 선비는 조선에서만 찾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닌 듯 하다. 선생님의 기절 또한 존경스럽기 그지없다.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에 이런 분이 또 계실까...

 

 그러나 선생님께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당신 스스로의 함자는 언제나 하상봉(何相逢)이시다... 이번에 방문했던 곳에서 일하는 분께서 선생님을 다시 만난 기쁨도 기쁨이려니와 아쉬움을 달래려는지 헤어지면서 선생님의 함자가 정말로 하상봉이시냐고 묻는 바람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저 껄껄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이분에게도 하상봉이라 일러두셨던 모양이다.

 

 

 

 

 

 

 

 

 대전은 조선의 역사와 관련한 유적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대전은 고려 때 망이 망소의 난(1176년)의 중심지역이기에 일찍이 역사의 유래가 깊은 곳이다. 또한 역사적 사건들이 매우 치열했던 인조조때부터 숙종조까지 우리 역사와 관련된 인물들이 있는 곳이 대전이다. 인조반정이 있은 후부터 숙종조까지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방문해보기로는 대전만한 곳이 또 없다.


大田의 본래 지명은 태전(太田)이었다고 한다. 태전이라는 말에는 드넓은 벌이라는 의미와 콩을 많이 심었던 고로 콩밭이라는 의미도 함께 들어가 있다고 한다. 콩밭 역시 太田이라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우리말로 한밭을 뜻하는 太田을 大田으로 개명했다는 것이다. 개명을 한 주범은 바로 이등박문이라고 한다. 대전은 원래의 지명과 관련한 ‘한밭’을 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공공기관 및 장소들이 많은데 한밭 초중고, 대학교는 물론 한밭도서관을 비롯 한밭 식당까지 그 범위다 다양하다. 혹시나 우리의 옛 이름인 태전을 태전에게 돌려주는 것은 어떨지...하는 생각도 든다.


 일제가 우리의 지명을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바꾼 곳은 한 두 곳이 아니다. 그 중 한 예가 충청남도의 태안에 자리잡은 안면도(安眠島)이다. 현재 안면도(安眠島)라는 지명도 본디 안민도(安民島) 였다. 즉 민(民)을 평안하게(安) 하는 섬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 편안하다는 뜻의 안(安)자를 잠자다는 뜻의 면(眠)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백성을 편안케 하는 섬이 졸지에 꾸벅 꾸벅 졸거나 아니면 잠만 쿨쿨자는 그런 섬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섬의 이름까지 개명을 하다니...정말 지독한 넘들이다. 그런데 희안한 사실은 그 곳 주민들은 아직도 그들 스스로 ‘안민도’라고 부르고 있다는 점이다.

 

 대전에는 또한 우리 문화와 관련한 지명으로 ‘문화동’이라는 동을 가지고 있다. 문화유적이 아주 많은 곳이 대전이라는 의미이겠다. 문화동에는 한밭 도서관이 있는데 최근 대출순위를 살펴보니 Who? 시리즈가 1위(who? 힐러리 클린턴)에 랭크되어 있고 또한 같은 시리즈가 압도적이다. 우리나라 학생들 역시 호기심이 많다. 호기심은 자기 발전의 원동력... 그런데.. 대전 어른신들도 책을 잘 안 읽으시나보다 ... 랭크된 책 대부분 학생용이다. 이 책을 읽은 학생들은 여학생들일까...ㅠ.ㅠ

 


대전에 사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대전 광역시 대덕구에는 송촌동(宋村同)이라는 마을이 있다. 온통 은진송(恩津宋)씨의 본 고장이나 다름이 없는 곳이다. 오죽했으면 송촌초등학교 송촌중학교 송촌고등학교가 다 있을까... 그러니까 이 곳의 지명이 바로 宋村인 것이다. 동(同) 이름의 宋자는 바로 恩津宋씨의

宋자를 딴 것이다. 대전에서 宋氏 집안이 행사하는 강력한 파워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물론 학자로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 많다. 취금헌(醉琴軒) 박팽년, 탄옹(炭翁) 권시, 백호(白湖) 윤휴등은 빼놓을 수 없는 우리 역사의 인물들이다.

 

특히 대전을 중심으로 한 시대를 구가했던 기호학파(畿湖學派)는 성리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바 크다. 권시의 손자이고 송시열의 외손인 권이진은 유형원의 실학사상을 계승한 것으로 유명하고 충신 박팽년이나 백호 윤휴등은 바로 진유(眞儒)이다.) 은진송씨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인물로는 그 이름도 유명한 우암 송시열선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이름이 3,000번이나 등장한다고 하니 말 다했다. 또한 동춘당 송준길선생도 있다. 역사 학자들은 당시 조선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향을 끼친 이 두 사람을 양송(兩宋)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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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1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트님은 뼈대있는 가문의 후손 맞아요.
진유의 뜻이 뭔지 저 같이 평범한 집 규수는 알길이 없습니다.
하상봉도 진짜 존경하신다는 스승님의 존함인 줄 알았잖아요.
암튼 존경하는 스승이 계시다는 건 복인 것 같아요.
저는 공부를 게을리했더니 그다지 존경할만한 선생님은 못 뵌 것 같습니다.ㅠㅠ

차트랑 2012-03-10 17:08   좋아요 0 | URL
어이구...무슨 말씀을요..
요즘 뼈대 뭐 그런 말을 하는 시대는 아닌뎅^^
그리고,
하상봉의 뜻을 이미 간파하고 계시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쩌십니까요^^

스스로 공부를 게을리하셨다는 말씀은
엄살이 좀 심하신 것입니다..
공부를 게을리해가지고서는 그렇게 수준있는 글을
쓸수는 없는 일이거든요!!!

스텔라님 글 읽으면
제가 다 바짝 쫄거든요~!!!
글발이 장난 아니시면서 ㅠ.ㅠ
 

드보르작은 체코의 작곡가로서 미국으로 건너가 작품활동을 하면서 미국인들의 환대에 보답하는 의미와 더불어 '신세계로부터' 라는 교향곡 9번을 작곡하게 된다. 'From the New World'라는 교향곡을 완성한 해가 1893년 있으니  미국을 신세계라고 생각할만 했음직하다.

 

우리들에게도 낮설지 않은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이 가장 각광받고 있는 곳은 사실 호주이다. 호주땅에는 본디 '아보리진'이라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곳이었다. 그런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세계의 땅이란 땅은 모두 개척 혹은 탐험 혹은 발견이라는 이름으로 서구인들의 발아래 무릅을 끓어야 했다. 그러한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지금으로부터 대략 200여년 전 호주는 영국인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는 1770년 영국의 쿡 선장의 배가 호주로 떠밀려가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대략 200여년 전 이 호주에 영국인 죄수 700명을 포함한 영국인 1300여명이 시드니에 도착하게되면서 호주의 역사는 급변하게된다. 애초에 호주는 영국의 악질 범죄자들의 수용소로 사용할 계획이었다. 영국의 역사가 워낙 혼잡하고 자신들 스스로의 조상들은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족들의 집합체이다. 특히 색슨족들은 매우 거친 민족으로 유명하다. 영국은 자신들의 기질이 매우 거칠다는 것을 자각하고 스스로 정화 작업에 나선다. 그리하여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되는 죄수들을 호주라는 먼 섬에 강제 압송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사회 정화의 의지가 얼마나 컷던지 강제 압송된 죄수 중에는 어린이와 여성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도대체 어린이가 그 어떤 강력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이다.  

 

아일랜드 정치범, 살인자, 강도, 사기꾼등 범죄자들을 이렇게 먼 곳으로 유배를 보내는 목적은  사회를 정화하는 차원이었다. 하여 간혹 영국 영화의 한 장면에서는 '호주로 갈래 아니면 죽을래?' 하는 식의 질문을 주고 받는 장면들이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덕분에 영국은 사회 질서의 안정을 찾았고 엄격한 교육(도둑질하는 어린이의 손을 자르는 등의)을 병행한 결과 현재 우리들은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사의 나라 영국이라고 알려지기 까지는 영국의 엄청난 자정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 이후 80여년 동안 영국은 16만명에 해당하는 영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쓰레기'들인 범죄자들을 호주에다 내다 버리는 일을 추진한다.

 

 

 

 

그러던 1851년 어느 날...호주에서 금광맥이 발견되는 엄청난 사건이 터지고 만다. 금맥의 발견은 호주의 역사를 다시 한 번 바꾸어 놓은 대형 사건이었다. 단순한 유배지가 아니라 골드러쉬가 시작된 것이다. 급기야 호주에는 600만명에 달하는 이민자들이 유입되면서 황금 전쟁이 시작된다.

 

호주는 이제 영국인들의 차지가 된것이다. 호주의 아보리진은 당시 약 500여 부족의 대략 50만명 (어떤 이는 100만명에 달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한 원주민의 인구가 무려 4만명이라는 수치로 격감하게된다. 만약 100만이라는 수치가 사살이라면 도대체....영국인들은 호주 원주민들에게 무슨 짖을 한 것이란 말인가...거의 90%이상, 아니 95%이상의 호주 원주민들이 영국인들에 의하여 희생되었다는 뜻이다. 순식간에 날벼력을 맞은 원주민들은 그 얼마나 억울했을까...

 호주에서 열린 시드니 올림픽 때에는 원주민들과의 '화의'라는 기치하에 아보리진들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기도 했다. 봉화 봉송주자들을 대거 원주민들로 구성해 넣었다. 그러나 밑바탕에 깔려있는 인종 차별은 여전히 개선될 기미가 없다고들 한다. 원주민들은 여전히 소외계층으로 남아있고 들러리 비주류이다. 200여년 전 땅의 주인이 바뀐 후 원주민들의 고통은 여전하다

 

억울했던 원주민들의 역사는 차치하고, 이 곳 호주로 이주해온 영국인들의 가슴에는 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배일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아프리카의 고향을 강제로 떠나 아메리카로 잡혀간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그들의 슬픔과 아픔을 음악으로 달래듯이 호주로 이주한 영국인들은 이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으로 마음을 달래는 듯 싶다. 원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웬수와 같은 영국인들이겠지만 그들도 고단한 나날을들 보냈노라고 말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들의 조상들은 고향인 영국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다가 죽음을 맞이했으니 그 향수는 대를 이었을 것이고 현대에 와서는 가장 애호하는 교향곡을 드보르작 9번 신세계로부터를 꼽고있다. 노래는 고향곡의 2악장에 노랫말을 붙야 세계적으로 널리 불리고 있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Go'in home, go'in home/  I'll be go'in home

Quiet light, some still day/  I'm just go'in home

 

It's not far, just close by/  Through an open door

Work all done, care laid by/ Go'in to fear no more


Mother's there xpect'in me/ Father's wait'in, too

Lots of folk gathered there/ All the friends I know

all the friends I knew


Nothing's lost, all's gain/ No more fret nor pain

No more stumbl'in on the way/ No more long'in for the day

Go'in to roam no more

 

 

Morning star lights the way / Restless dreams all done

Shadows gone break of day / Real life just begun


There's no break, there's no end/ just'a liv'in on

Wide awake with a smile / go'in on and on

Go'in home, go'in home / I'll be go'in home

It's not far, just close by/ Through an open door

 

I'm just go'in home / Go'in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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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3-05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음악이 아침부터 멋지게 울리네요...
소년 합창단의 목소리는 종소리같아요.

세계의 역사에는 이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세가 넘어서입니다.
정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시민씨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아직도
고히 간직하고 있는 이유가 그렇기도 하구요... 사람 사는 사회란, 참으로 복잡하고
그리고 한 덩어리로 치부해버리기엔, 개인의 역사 또한 참 길다는 생각이 들어요.

즐거운 한주되시기 바랍니다.

차트랑 2012-03-05 11:58   좋아요 0 | URL
말씀해주신대로 역사란...
참으로 묘한 것입니다.
바른 역사를 알리려는 사람들보다는 이를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려는 경우가 많으니 말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도 재고할 필요성이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한 주 되세요
 

장지글러선생은 2007년에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한국의 서점가에 출간했도, 한 해 뒤 '탐욕의 시대'를 출간했다.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하 왜)는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도 필독서로 추천을 할정도로 널리 알려진 책이다.

 

 반면 많이 읽히고는 있지만 '탐욕의 시대'는 '왜-'만큼은 아닌 듯 하다. 두 책을 모두 읽던 당시  '왜-'보다는 '탐욕의 시대'가 훨씬 더 의도를 전달하는데 성실하고 더 집중해서 쓴 책이 아닌가 생각했다. 같은 저자의 유사한 책으로 정보 전달력에서나 글쓴이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훨씬 더 효과적인 '탐욕의 시대'가 같은 목적을 달성하는데 상대적으로 약한 '왜-'보다 인지도면에서 뒤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2007년

 

 

두 책의 비교

 

                                           세일즈포인트   표시가      할인율    알라딘판매가     쪽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96,583         9,800원   30%      6,860원       201 쪽

탐욕의 시대                        :   11,138         15,000원  50%     7,500원       362 쪽

 

단순히 표면적인 비교로보아 '왜-'의 인지도가 '탐욕의 시대'보다 훨씬 압도적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수 있는 지표이다. 물론 알라딘 세일즈포인트로 본다면 출간 년도로도아 '왜'가 1년이라는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부인 할 수는 없다. 그러나 2007년에 출간된 책(왜-)의 할인율이 30%이고 2008년에 출간된 책(탐-)의 할인율은 50%라는 할인율로 볼때 현재 판매 지수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책은 즉, 인지도면에서 '왜-'가 앞세도 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탐욕의 시대'가 그 목적을 전달하는데 훨씬 더 좋은 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언뜻 납득이 가지 않는 현실과 직면하게된다...왜 이런 기묘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고민거리가 없으니 별걸 다 고민한다 싶겠지만 사실은 '탐욕의 시대'가 '왜-'보다 훨씬 더 좋은 도서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름대로 생각해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는 책의 이름이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린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하는데 매우 충실한 표지어는 누가뭐래도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다. '탐욕의 시대'는 '왜-'와 내용에서 거의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탐욕'이라는 용어가 매우 광의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단점을 가진 용어라는 점이다. '탐욕의 시대'는 경제적으로 강력한 부를 일군 초강대국들이 아직 개발 중에 있거나 개발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국가들의 양털을 어떻게 깍아내는지 매우 잘 전달해주고 있고, 그 작용력의 원리를 훨씬 더 세부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이는 '왜-'와 그 내용면에서 큰 차이는 없다. 

 

 한마디로 '탐욕의 시대'는 세계의 강대국들이 약소국의 아이들이 굶주리고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데도 고개를 왜면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들이 경제적으로 나아질 수 없는 환경속으로 자꾸만 밀어넣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이 훨씬 잘 표현되어 있다.  

 

 일반인들에게는 그렇다 치더라도 '탐욕의 시대'는 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조차도 비교적 덜 알려진 느낌이다. 이는 가독성의 차이로 설명할 수도 있다. 가독성은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추천 대상서적으로서 중요한 참고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독성을 따진다면 단연 '왜-'보다는 '탐욕의 시대'를 권하고 싶을 정도이다. 저자는 자신의 목적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데 있어 '왜-'를 압축한 형태로 저술했다. 반대로 탐'욕의 시대' 안에는 좀더 많은 정보를 담아두어 독자들이 읽어나가는데 훨씬 유리하도록 했다. 왜 초강국들이  상대적으로 약소한 국가들을 그토록 못살게 구는가에 대한 설명이 더 자세하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인터넷 주문이다. 인터넷으로 읽을 책을 구매하다보면, 받아보고나서... 이게 아닌데...라는 경험을 한 번 쯤 하게 마련이다. 독자들의 리뷰가 있기는  하지만 각자의 입장에서 같은 책에대한 평가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신간이라면 리뷰를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읽는데는 시간이 소요되고 읽는 독자 중 리뷰를 쓰는 경우는 그 비율이 많지 않아보인다. 하여 때로는 땡스투를 누를 기회도 없이 책을 사야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책방에가서 직접 책을 골라 선택하는 경우라면 분명 '탐욕의 시대'와 '왜-'의 상대적 우위는 아마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생각하는 이유이다.  

 

모든 면에서 보아 단연 알라딘 세일즈포인트에서나 할인율에서 단연 우위를 점해야 하는 '탐욕의 시대'를 50% 할인한 가격으로 내놓는 모습을 보니 이름도 잘지어야 겠구나 싶다. 또한 좋은 책이 제대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아 섭섭한 마음에 뜻하지 않은 페이퍼를 쓰게되었다...

 

물론 제대로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책이 어디 이 책 뿐이랴...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들 중 그 자격이 없는 책이 베스트셀러 행세를 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책의 가치 평가는 개개인이 하는것이지 객관적인 잣대로 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책 혹은 고전이라는 대접을 받는 책들은 많이 팔린다고해서 그 자격을 얻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만한 가치를 객관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리 인정받는데 어려움이 있는 책들이 여전히 많다. 독자들이 득서를 하는 이유와 그 목적이 서로 다른 것이 이유일까...여하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더 좋은 책이 밀려나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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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01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요. 베스트셀러라고 다 좋은 책은 아니라니까요.
서점의 논리는 시장의 논리와 같아 기본적으로 잘 나가는 책을 밀어주지
좋은 책을 밀어주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좋은 책은 일케 독자에 의해 입소문을 타야한다는 거죠.ㅋ

차트랑 2012-03-02 00:00   좋아요 0 | URL
시장의 논리가 서점가에도 적용이 되다니...
좀 서글픈 생각이 듭니다..
시장의 논리가 세계의 절반을 굶주리게 하는 이유인데...말이지요ㅠ.ㅠ
 

 

대학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잘 아시다시피 근대까지 거의 필독 항목이었다. 과거 시험이라는 점은 제쳐두고라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학문과 지혜의 근간을 이루는 필독서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에 있는 8조목은 대학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조차도 널리 알려진 자기 발전의 단계로 유명한 문구이다. 학문에 뜻을 둔 사람치고 대학을 읽지 않는 선조들은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특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대학의 소중한 가르침은 그 어느 현대의 학문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늘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것은 주자라는 인물의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다는 점이다. 대학과 중용에 대한 주자의 해설은 그 어떤 인물의 주석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했고 조선의 학문은 결국 공자의 학문이라기보다는 주자의 학문으로 통했다. 특히 조선 중 후기로 오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더욱 뚜렷해진다. 

 

 

 

 조선의 성리학을 읽으면서 빠트릴 수 없는 항목은 양명학이 아닌가 한다. 깉은 뿌리를 가진 학문이면서도 기존 유학에게 철저하게 배타당하고 짖밟힌 학문이기 때문이다. 왕양명은 학지행합일을 강조하면서 실천의 중요성을 설파한 명나라의 왕수인은 국가의 재정이 흔들리자 불안해진 정권에 국가와 백성이 모두 함께 공생하는 실천적 제도를 주창한다. 그의 주장은 매우 현실적이었으면서도 국가와 백성을 위하는 위정자들이라면 기꺼이 박수를 보냈어야 했다. 그러나 기득권의 유학자들이자 정부의 관료들에 의하여 그의 구제책들은 철저히 묵살되고 그를 반대하는 기득권세력에 의하여 작위와 세습봉록마저 박탈당했지만 사후 신원되어 공자의 묘에 배향되는 영광을 안았다.


 조선에서처럼 유학을 지배의 철저한 도구로 활용하지 않았던 중국에서조차 그런 홀대를 받았던 양명학은 조선에서는 여지없이 사문난적으로 간주된다. 정치세력과 지배세력은 물론  왕권마저도 위협하는 신권을 획득한 조선의 선비들은 왕수인을 철저히 배격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왕수인의 양명학이 전파된다면 조선의 지배 근본이념에 혼란을 가져올 곳것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것이 그토록 두려웠던 이유는 무엇 이었을까...


백성을 위한 정치란 백성의 굶주림을 해소시키는 등, 현대적인 용어로 풀이하자면 복지정책을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노비를 가지고 막대한 토지를 이용하여 권력과 부를 이루고 있던 조선의 선비들에게 백성의 복지정책이란 곧 자신들의 손해를 뜻했다. 백성들이 글자를 알고 지식을 획득한다면 자신들의 부조리를 파헤칠 것이고 이는 백성들의 반란, 즉 선비양반들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불안감을 뜻하기도 했다. 자신들은 막대한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금은 한 푼도 내지 않았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담시키고 있다는 부조리에 대한 반발은 절대로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조선의 노비는 대략 30%였다고 한다. 보수를 줄 필요가 없는 노비들의 노동력이야말로 노동을 하지 않던 조선 선비들에게는 부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군역 또한 마찬가지였다. 양반들은 군역의 의무를 지지 않았다. 노비와 천민등도 물론 군역의 의무는 없었다. 국가가 노비와 천민등은 국가의 보호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노비에게 군역을 지울 경우 자신들의 노비를 군역으로 내보내야 했는데 이 또한 선비들의 입장에서는 막대한 재산의 손실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양민이라고 부르는 농민들만이 등골이 휘어지곤 했는데 이를 견디다 못해 도망을 가곤했던 것으로 보아 그들의 설움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이러한 정치적 부조리를 개선하고자 설파하는 학문이 바로 양명학이었으니... 과연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 양명학이 그들에게 어떻게 다루어주어야 하는지 잘 알 수 있을 수밖에... 까딱 잘못하다가는 조선의 신분 질서는 물론이고 사회의 대 혼란을 예고할 수도 있는 학문이 아니던가... 이는 조선에 사문난적이라는 용어가 왜 탄생하게 되었으며 조선의 선비들이 그 사문난적을 사사하여 죽음에 이르르게 하면서 까지 그들 유일한 가치로서의 골수유학을 고집했는지의 이유가 된다. 이러한 이유들은 百家의 학문에 능했던 조선의 학자 정제두선생이 교과서나 교양서에서 언급되지 않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정제두선생께서 지은 논어해, 맹자설, 대학설, 중용해들을 연구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제두선생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지 않으며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도서는 두어 종 뿐이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주자는 마치 막시즘의 마르크스와 같은 존재였다. 조선의 선비들에게 주자는 마치 한 종교 일파의 교주와도 같은 역할을 했다. 조선의 신비들 대부분은 주자에 죽고 주자에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조선 사회의 현상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사문난적의 출현이다. 주자의 해석과 다른 견해를 주장하는 기타의 모든 이론들은 사문난적이 되어 처결해야하는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퇴계 이황과 경대승의 관계 그리고 송시열과 윤휴의 학문적 대립각이다. 


송시열은 주자 맹신자라고 해도 과언아 아니었다. 윤휴는 이치를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른단 말이냐 라고 설파했다고 한다. 그러자 송시열은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치부했고 결국 서인들은 윤휴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단초가 되고 만다.

 주자이론의 교조적 현상이 왜 위험한 것이었는지 명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생각이 다르다하여 생각이 다른 타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시대적 비극은 주자라는 인물에 대한 교조적 맹신에서 오는 편협함이다. 


학문의 절정에 다다랐다고 해도 과언아 아닌 조선의 신비들이 생각이 다른 타자를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죽음으로 몰아 넣어야만 자신들의 강건한 사상적 배경을 이룰 수 있었다는 점은 그 사상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들어내는 역사적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이는 마치 현대의 정치적 형태로 본다면 일당 독재의 공산당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주자의 사상이 지배계급이 하위계급을 통제하고 다스리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은 역사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여 조선 중 후기로 접어들면서 중국에서는 이미 그 힘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여전히 주자학을 신봉하는 사회적 현상이 지속된다. 이는 권력의 중심에 있는 자들이 백성을 통치하고 다스리며 기득권을 더욱 튼튼히 하기위한 결정적인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좋은 학문이라도 그 학문은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여전히 미제로 남는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가 그 힘의 방향을 어떻게 지향하느냐는 사회적 비극이 될 수 도 있고 복지가 될 수도 있다. 대학을 읽으며 주의할 점은 바로 이러한 점들이라 생각한다. 대학의 문구인 친민(親民)을 신민(新民)으로 바꾸어가면서 사상적 바탕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정자와 주자의 학문은 동기 자체가 매우 불순하다하지 않을 수 없다. 제 아무리 좋은 가르침이라 해도 편견과 오만에 사로잡히고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사상은 사상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며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왕부지의 대학이 주자의 주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많은 아쉬움을 많이 남긴다. 그러나 기타의 견해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견해란 사회의 활력이다. 그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의식에 입각한 학문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주희가 전력을 기울여 경서들을 연구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할 수 있다. 

 특이 한 점은 기존의 유학적 관점과는 달리 그는 기(氣)를 구체적인 사물이라고 보고, 이(理)를 기(氣)에 종속하는 것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즉, 구체적인 사물인 氣를 벗어난 理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이는 김용옥선생의 기철학과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기와 이를 하나의 것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러한 이유로 왕부지는 중국 유물론의 정점을 차지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중국의 ‘氣思想’은 1600여년에 걸쳐 중국의 유물주의 철학사를 완성하게 된다고 하는데 왕윤에서 출발하여 왕안석 그리고 왕부지를 거치면서 그 절정에 다다른다고 한다. 이는 중국의 氣論이 왕윤에서 싹이 터 왕부지에서 완성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의 사상은 모택동에게 커다란 사상적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이러한 왕부지의 중화사상은 중국 공산당의 사상적 기반을 이룬다고 하는데, 이러한 왕부지의 중화사상을 이용, 중국은 주변 민족들을 중국의 속국 혹은 변방국으로 강제 편입시키거나 소수민족을 중국으로 강제 편입시키는 등 부작용을 낳은 것도 사실이다.


이 역시 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불쾌한 일임에 분명하다. 과연 학문은 정치의 시녀노릇을 언제까지 계속해야하는 것인가 라는 회의감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운 이유이다. 

사정은 이러하지만 대학을 순수한 학문을 위해 일독하려하시는 독자들께는 왕부지의 해석이 주자의 큰 틀을 벗어나지는 않으나 독자들에게 대학의 또 다른 이해를 돕는데 일조하리라 믿는다. 공산당 선언도 그 순수한 의미에서 공부한다면 그 공산당 선언이 과연 어떻게 정치적로 이용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권력자들에게 부적절하게 이용당하는 사상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그 순수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사상의 순수성은 존재하지만 그 사상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고자 한 엘리트들에게 그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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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야는 거의 지식이 없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주되시기 바랍니다.

차트랑 2012-02-28 08:19   좋아요 0 | URL
저도 아는 바가 많지 않습니다.
기 철학분야는 이제 막 관심을 가진 정도에 불과하구요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뇨고양이님

마립간 2012-02-27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철학 연구'가 마음에 드는데, 목차를 보니 내용이 방대하군요. (아니면 소개 정도로 끝나려나.)

2012-02-28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차트랑 2012-02-28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작하신대로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매우 만족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의철학, 이의철학을 역사적으로 발생과정을 밝힌 책으로는
장입문의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철학이라는 것이...
한번 시작을 하면 대책이 없을 정도로 확산되는 성질을^^

낭만인생 2012-02-28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의 기철학을 잘은 모르지만 제가 알기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쟁이 아닌 듯 생각이 됩니다. 앞으로 좀더 많은 기철학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차트랑 2012-02-29 00:37   좋아요 0 | URL
어구 낭만인생님
저도 기철학에대해서 관심을 가진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잘 아는 바가 없답니다.
그러나 좀더 공부하게되면 페이페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낭만인생님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중국의 쑹홍빈이 쓴 ‘화폐의 전쟁’은 보이지 않는 손이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화폐의 전쟁이 그 모습을 갖추게 된 출발점은 워털루 전투라고 한다.

  1813년에 있었던 라히프찌히 전투에서 패배한 보나파르트는 엘바섬으로 유배당하지만 1815년 섬을 탈출한 뒤 병력을 모아 파리에 입성, 프랑스 제국의 부활을 도모한다. 프랑스 제국을 해체시키고 그에 해당하는 이익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유럽은 보나파르트의 복귀에 급 당황하면서 즉시 연합전선을 구축, 프랑스로 진격한다.


그리하여 연합군 총 21만 명, 프랑스 주력군 13만 명이 대치하게 된다. 워털루 전투는 1815년 영국∙네덜란드∙프로이센 연합군인 7만 병력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끄는 7만 병력, 즉 7만 대 7만의 병력으로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벌인 전쟁이다. 결과는 보나파르트의 패배였고 현대유럽국들의 국경을 결정하는 직접적인 동기가 되었다. 그는 마지막 전쟁인 워털루 전투의 패배로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당한다. 당시 프랑스군의 사망자는 약 5만 명, 연합군은 2만 3천명이라고 한다.


쏭훙빈에 따르면 바로 이 워털루 전투는 세계의 금융역사에 한 획을 긋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워털루 전투는 유태계 독일인 로스차일드 가문을 세계 금융의 핵심으로 부상시키는 발판을 마련해준다. 당시의 뉴스 전달 속도가 느리다는 점을 이용, 로스차일드가는 엄청난 부를 일궈낸다. 워털루 전투의 승패가 결정된 날은 1815년 6월 18일, 월링턴 장군이 승전의 소식을 공표한 시각은 21일 밤 11시 였다. 로스차일드가는 공식적인 뉴스가 전파되기 만 하루 전인 20일에 이 소식을 정보원을 이용하여 입수했다. 로스차일드가는 워털루 전투의 결과를 영국 본토보다 하루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영국은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 엄청난 액수의 국공채를 발행한 상태였다. 전쟁에서 진다면 영국은 쫄딱 망하는 것이고 이긴다면 엄청난 이익을 거머쥐는 그야말로 한 판의 도박이나 다름이 없는 전쟁이었던 것이다. 영국은 기필코 이기고야 말겠다는 필사의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영국의 증권가는 전쟁의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로스차일드가는 엄청난 정쟁의 결과를 공표했다. ‘영국, 워털루 전투 패배’ 이 소식은 일 순간 증권가에서 영국 국공채의 투매현상을 일으켰다. 투자자들은 공채를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공채 값는 땅바닦에 떨어졌다. 공채값이 휴지조각이 된다 싶을 정도로 하락하자, 때를 기다린 로스차일드가는 투자자들이 투매한 공채를 전면 조용히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로스차일드가가 6월 20일 하루 만에 벌어들인 금액은 투자금의 20배에 달했다. 이는 나폴레옹과 웰링턴이 전쟁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액수였다고 한다.   


 워털루 전투를 교묘하게 투자의 기회로 이용한 로스차일드가는 이를 계기로 영국 최고의 채권자로 부상했고, 공채발행을 주도하면서 잉글랜드 은행의 실권을 장악했다. 영국의 국민들이 내는 세금은 고스란히 로스차일드의 가문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상의 내용은 현재 세계 금융을 주도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출발점이다.


이를 발판으로 로스차일드가는 전 세계의 금융망을 구축하고 보이지 않는 여타의 금융세력들과 연합, 심지어 미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의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버냉키, 그린스펀등 유명한 금융인사들은 바로 RRB의 의장들이다. 또한 보이지 않는 손에 해당하는 거대 금융기업들은 로스차일드가를 비롯, 골드만삭스, 리먼브러더스, JP 모건, 모건 스탠리등이고 관련 기업들은 미국의 5대 언론사 및 카네기 재단, 록펠러 재단, 기업으로는 포드사를 비롯,  록히드, 엑슨 모빌, 쿤롭, 시티뱅크, 20세기 폭스, 파라마운트, 유니버설, 워너브러더스, 인물로는 JP모건, 버냉키, 조지 소로스, 케인즈 등등이다. 해당 기업들과 재단 및 인물들은 미국 정부와도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의 국제 단체이며 드러나지 않는 힘을 가진 인물과 기업들의 통제를 받는 단체들은 NATO, UN, IBRD, TWO, IMF등등이다. 우리는 구제금융 당시 IMF에 의하여 엄청난 요구를 들어주는 댓가를 치루어야 했다.

 

 

<김영삼정부 이전의 한국 경제 구조는 외국인이 한국기업에 개입할 수 없는 구조였고 외국기업이 개입을 하더라도 그 상한선을 분명하게 그어주고 있었으므로 한국의 기업이 외국인의 손에 경영권을 넘기는 일은 발생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러나 금융 시장의 개방은 외국인에게 한국 기업의 주식 보유를 늘려 경영권을 박탈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준 것이다.  

그리하여 외국인들은 하나 둘씩 한국기업의 경영권을 빼앗아 갔다. 그 결과 현재 시중 은행은 물론 한국의 산업구조의 중요한 기저가 될 수 있는 기업들이 외국인의 손에 넘어간 상태이다. 외국인의 경영 방침은 한국의 경제 구조에 커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이윤을 창출하는 방식이 과거 한국 기업의 방식과는 전혀다른 것이 그것이다. 외국 기업은 투자를 최소화한다. 인건비를 줄여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근로자들은 명퇴를 하기에 이르른다. 전국의 금융기업들은 물론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국내 고용의 문제는 심각한 상태이다. 계약직 근로자들의 문제가 바로 그것인데 그 원인은 위와 같은 국내경제의 구조변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한국 경제의 기반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한국은 바로 구제금융에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한국도 IMF의 조정책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IMF는 경제강국들의 시종이나 마찬가지인 국제 기구이다. IMF는 한국의 경제 정책에 적극개입했다. 구제 금융당시 한국은 한국의 예산조차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는 나라였다. 한국이 금융시장을 개방한 댓가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멀쩡하던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게된다. 근로자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했고, 국민들의 수입구조에 커다란 변화가 몰아닥쳤다. 구제금융 당시 한국의 이혼율을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국가 경제의 변화는 가정경제 구조의 변화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가정이 뿌리채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근로자들은 실업을 하거나 계약직으로 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우리는 기아자동차 사태를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얼마나 치열했던가... 물론 이는 널리 알려진 결과물의 하나에 불과하다. 금융시장의 개방이 가져온 결과는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사금융의 중심이 모여 있는 괴물 FRB


 

<이 책의 저자는 경제 저격수였다고 한다. 일종의 양심선언을 한 것이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 손의 하수인으로서 어떻게 한 국가의 경제력을 장악했고 그 나라를 경제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는지 매우 잘 드러내주고 있다. 경제 저격수가 나서면 틀림없이 그 나라의 경제를 장악하고 만다. 만약 실패한다면 더 큰 힘을 작동시켜 그 목적을 반드시 이루어 낸다. 파나마 운하를 미국이 장악하게 되는 과정도 잘 나타나 있다. 파나마 운하를 손에 넣기 위해 미국은 콜럼비아로부터 파나마를 독립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이 과정은 전형적인 경제 저격수들과 배후 세력의 작전을 잘 보여준다. 결국 미국은 85년간 파나마 운하의 경영권을 장악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한다.>  

 

미국의 달러를 찍어내는 곳은 FRB 즉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다. 우리나라 돈은 한국은행에서 찍어내기 때문에 달러를 찍어내는 곳이 미국의 국영중앙은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상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인데 이는 미국 정부가 운용하는 국영은행이 아니다. 한마디로 FRB는 사채를 운용하는 사적 영리단체인 것이다. 초대 FRB의 의장이 로스차일드가의 폴 워버그였다는 점은 이를 입증하고 있다. FRB 의장직은 미국 대통령의 지명권에 해당하는 자리이지만 실상은 자체 선출된 인물을 통보하면 미대통령은 이를 따르는 것 뿐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발행되는 달러 그 자체를 채무로 떠안아야 하고 그에 대한 이자도 꼬박꼬박 지불해야 한다. 달러를 발행 할 수록 빚이 늘어가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이는 미국인의 세금이 고스란히 FRB라는 사기업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이며, 미국으로서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1920년대 경제대공황의 진실


<화폐 전쟁과 일맥 상통하는 책이다. 화폐전쟁의 요약본이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는 책이다.>

 

이렇게 미국에서 자리를 확실하게 잡은 긍융재벌가들은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선다. 수많은 전쟁등에 깊이 관련하여 어마어마한 금액을 거머쥐었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1920년대 미국발 경제 대공황은 본격적인 돈벌이의 일환이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그 뿌리를 확실하게 내린 FRB는 1914년부터 1919년까지 달러를 아낌없이 찍어내어 시중 은행에 거의 100%에 달하는 금액을 뿌려댄다. 소규모 은행들은 저렴한 이자로 미국민들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엄청난 주식 투자에 나선다. 미국의 국민들 역시 저렴한 이자의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는가하면 주식에 투자하게 된다. 당시 소규모은행들과 미국 국민들은 저렴한 이자로 활기 좋은 주식투자로 짭짤한 이익을 내고 있었다. 경기는 살아나고 미국의 경제는 거침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1920년, FRB가 갑자기 시중은행에 뿌려댄 돈을 무자비하게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소규모 은행들은 미국의 국민들에게 대출해준 돈을 긴급하게 회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식간에 미전역은 금융 대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미국민들과 시중 은행들이 엄청난 빛더미에 올라 줄줄이 도산하고 있었다. 당시 FRB에 가입하지 않은 5,400여개의 미전역에 소재하던 은행들이 완전히 파산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파산한 전국의 인행들을 금융재벌들은 헐값에 거두어들였다. 1920년대 미국의 대공황은 금융재벌들의 작전에 불과한 것이고, 이를 모르고 있던 미국의 국민들은 그들의 덪에 걸려든 것이다. FRB는 다시 통화량을 늘려 미국을 빛 더미에 앉혀놓았다. 이렇게 해서 미전역의 금융망을 그들이 접수한 것이다.  



금융 과두들의 모임


<금융 과두들의 조직 중 하나인 빌더버그클럽을 중심으로 매우 세부적으로 파헤친 책이다. 세계의 경제를 움직이는 힘의 동력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 의하면 한국에도 20여명의 회원이 있다고 한다 ㅠ.ㅠ 도대체 누군거?>

 

300인 위원회, 미국외교협회, 삼각위원회, 로마클럽, 빌더버그클럽 등이다. 우리가 비정부기구라고 알고있는 NGO 역시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물론 드러나지 않는 금융과두들의 모임이다. 세계의 금융을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들의 결정사항은 향배 세계의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은 그 예이다. 1915년 영국은 여객선 ‘루시타니아호’를 독일군 잠수함이 있는 바다로 흘러보 낸다. 이는 고의였다고 한다. 기대했던 대로 독일은 U-보트를 이용 여객선은 침몰시킨다. 그 여객선에는 미국 민간인 128명이 타고 있었다.


 자 이쯤하면 미국의 여론을 분발시킬 수 있는 충분조건이 되어준다. 전쟁돌입에 미지근한 윌슨을 루즈벨트는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대통령에 오르고 미국은 328,000명 이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미국의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만든다. 미국은 전쟁비용으로 300만 달러를 지출했지만 록펠러는 20억 달러라는 엄청난 전쟁 수입을 벌여들였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것은 전쟁비용은 모두 FRB에서 나오는 자금이며 이에 대한 이자를 FRB에 또 물어야 한다. 매우 흥미로운 금융구조를 가진 나라가 바로 미국이며 세계 경제의 혈관을 틀어쥐고 있는 존재가 바로 보이지 않는 그들이다. 이는 마치 일본을 자극하여 진주만을 공습하게 만들어 미국 국민들의 공분을 일으키며 전쟁참여를 무사히 의회에 통과시키는 전략과 동일 한 수법이었다.


 그간 일본의 경제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해본 분들이 계실 것이다. 사실 일본은 약 10여년 전 부터 강력했던 경제력을 상실했고 과거의 영화에 비하면 영 시원치 않게도 비실거리고 있다. 인건비에 따른 경쟁력을 상실해왔다는 점과 부동산 버블이 일본 전역을 강타하면서 영 헤어날 줄을 모르고 있다.


 또한 그리스의 심각한 경제적 역경의 상황을 잘 아실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그리스의 사회적 요인들을 그 이유로 꼽고 있지만 실상은 지하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큰 때문이다. 지하금융이란 바로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경제의 흐름을 말한다. 그 보이지 않는 경제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탈리아 또한 만만하지 않은 상태의 금융문제로 심각한 상황이다.


 <쑹홍빈도 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부채가 GDP를 넘어서는 2057년 달러의 붕괴를 예측하고 있다. 새로운 화폐의 전쟁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쑹홍빈은 새로운 화폐로 금과 탄소화폐를 들고 있다. 탄소가 어떻게 화폐로서의 역할을 하게될지에 관한 정보는 화폐 전쟁에 잘 서술되어 있다.> 

 

이들의 원인을 통찰력있게 분석한 쑹홍빈에 따르면 키워서 깍아먹는 다는 전형적인 ‘양털깍기’에 당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다음은 어느 나라 차례인가...대한민국은 좀 멀었다고 본다. 일차적으로 IMF 구제금융 당시 1차적으로 손을 본 국가이기도 하지만 아직 경제력의 규모로 보건데 털이 덜 자란 양이다. 어쩌면 다음의 타겟은 중국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지난 30여년간 엄청난 부를 창출한 국가이다. 중국 국민 전체적인 삶의 질로 판단한다면 아직 한참 멀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국가적으로 본다면 당연 군침이 도는 나라이다. 30여년간 벌어들인 외화의 규모는 세계 최대이다.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 역시 만만찮은 량일 것이다.

 

 지난 30여년간 10억이 훨씬 넘는 인구가 열심히 벌어들인 부의 액수를 상상해보시라...전 세계의 소비제품들을 생산하는 나라가 중국이며 미국에는 중국의 저렴한 생활용품이 없으면 당장 도산 가능한 가구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생활용품이 전 세계 구석구석 휩쓸고 있다. 그렇게 벌어들인 화폐의 가치는 무려 달러로 3조 8000억에 이른다.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를 국고에 담아두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모두 달러화하여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국은 보이지 않는 금융과두들의 눈에 그 얼마나 군침이 도는 국가 이겠는가...조만간 중국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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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2-02-24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트랑공님의 이 페이퍼는 제가 현재 생각하는 것들과 너무나 비슷하여
무척 공감이 갑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준비도 없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으로 우리나라 금융을 홀랑 열어버린 것이, 첫번째 우리 몰락의 시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시장주의를 여전히 옹호하신게 그 다음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구요, 그 분들이 왜 그러셨을까 저는 좀 궁금합니다.

<화폐전쟁>은 정말 읽어보고픈 책인데, 영... 시간이 나질 않네요. ㅠ

일본이 확실하게 휘청거리는거 같습니다. 수출이 삼성이나 LG등에 밀려서 줄어들고 외국에 투자한 금융 자본도 이율이 적어지면서 형편없고, 국가 부채 장난 아니라고 하는데 거기가 무너지면, 세계 경제가 어찌될지도 무섭고... 우리나라가 꼭 10-15년 정도 일본보다 뒤떨어져서 똑같이 달려간다는 점도 우려스럽습니다. 전에 마립간님께서 페이퍼에서 언급하셨듯이, 혁명이나 전쟁이라도 날 분위기 직전 같습니다. ㅠ

차트랑 2012-02-24 21:42   좋아요 0 | URL
화폐전쟁은 정말 읽어보셔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력한 힘이지만 개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그나마 나은지도 알 수 있구요 ㅠ.ㅠ
말씀해주신대로 미래가 좀 걱정되더라구요 ㅠ.ㅠ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마녀고양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