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 2024 사순절 묵상집
한국YWCA연합회 외 엮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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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도들이 강조했던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여정이 담겨 있는 사순절 기간은 예수님의 순종과 고난을 묵상하는 기독교의 핵심적인 절기입니다. 우리는 이 기간을 통해 주님의 순종과 고난에 동참하며, 부활절을 고대하게 됩니다.



물론 교단 차원에서 사순절을 지키지 않는 곳도 있지만, 고난주간의 확장으로 생각하며 주님이 걸어가셨던 그 여정을 함께 묵상하는 것은 소중한 경험일 것입니다. 매일의 삶이 주님과 잇대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 기간만큼이라도 더 깊이 그리스도를 묵상해 보는 것입니다.



이 책 『받아서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는 좀 더 깊은 묵상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매일의 짧은 묵상 글과 기도문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철저하게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함께 걸어가게 됩니다.



CBS 유튜브 채널 '잘잘법'을 통해 널리 알려진 김학철 교수는 성경의 내용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탁월한 교사입니다. 매일의 묵상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간 사순절의 의미와 해당 본문의 친절한 해설은 사순절을 기리는 영적 여정에 큰 힘과 도움이 됩니다.



또한 주일에 배치된 기도문과 음악 묵상은 우리의 영적 여정이 지적 희열로 끝나지 않도록 우리를 다잡아줍니다. 공동기도문을 통해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QR코드를 통해 직접 음악을 묵상하며, 온몸을 감싸는 영적 충만함을 경험합니다.



설 연휴가 지나면 곧 사순절입니다. 자칫 들뜬 마음으로 인해 정신없이 그 기간을 맞이할 것만 같습니다. 얇지만 강력한 묵상집은 우리를 다시금 주님 앞으로 붙들어주는 도구가 될 것입니다. 공교회가 한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한다는 것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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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주세요, 주님!
지푸.최재욱.이창수 지음 / 이야기가있는집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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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장벽이 존재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교회에 더 많은 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에서 '거룩'이라는 단어는 좀 더 정제되고 점잖은 표현이나 태도를 뜻하게 된 듯합니다. 기존의 문화와 다르면 재빨리 선을 그으며, 세속적이라 비난할 때도 있습니다.



그 틈을 메우려 했던 사람들 중에서도 성속의 이분법을 완전하게 넘어서지 못한 사람들이 보입니다. 가령 힙합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지만, 언어는 부드러워야 하며, 내용은 복음적이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물론 아직도 힙합이나 랩이라는 도구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생경한 문화에 대해서는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특히 뭔가 거친 표현들은 여전히 저를 움츠려들게 합니다. 이 책 『비트 주세요, 주님! 』을 읽으며, 혹여 저의 시선으로 재단하여 타인을 판단한 적은 없었는가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책을 위해 그리스도인이면서 힙합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동안 보이지 않게 그어져있던 힙합과 복음의 선을 지우려 합니다. 이러한 주제는 어디든 적용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어떤 문화와도 대입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의 자전적 이야기는 참으로 유쾌하게 진행됩니다. 하지만 교회 내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문드러진 문제를 직시하게 만듭니다. 주인공 진배의 찌릿한 아픔은 우리가 관심 갖지 못한 누군가의 고통이며 슬픔입니다. 진배를 바라보는 교회의 냉소적 시선은 우리의 차가움과 닮아있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견됩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까요? 상처 입은 영혼에게 가장 적실한 사람을 곳곳에 배치하시는 하나님의 섬세함을 보게 됩니다. 가슴 한편에 분노가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을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적절한 개입을 경험합니다.



문제의 해결은 예수님의 마음과 태도로까지 가보는 것입니다. 정말로 주님이 차별과 편견으로 다른 사람을 배제하시는 분이신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이 책의 백미는 바로 이 지점입니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낮아지심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고 이해하려 하신 행동이었다는 점입니다.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려 하시는 예수님. 그 주님이 바로 힙합입니다. 가난하고 찌들어 있는 삶의 장소였던 게토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이자 자랑으로 삼는 힙합. 예수님도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의 삶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갈릴리에서 더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잘나가고 힘 있는 사람들 편이 아니라, 낮고 가난하며 연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동일한 아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감싸주십니다. 불의 앞에서는 불처럼 화를 내시며, 싸워야 될 때는 물러섬이 없는 모습. 이것이 바로 힙합의 정신과 매우 흡사합니다.



결국 본질이 중요합니다. 어떤 형식과 도구를 사용하는가 보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정신이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더불어 자유롭게 서로를 존중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으로 주님께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감동적으로 이 모든 것을 아우릅니다. 주인공 진배가 쓴 그동안의 고민과 아픔, 성숙의 과정을 담은 랩을 읽으며 많이 울었습니다. 촌철살인과 같은 언어의 향연에 빠져듭니다. 이 음원은 책과 함께 출시되어 더 큰 감동을 선사합니다. 이제 비트에 몸을 맡길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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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거룩하게 - 망가진 존재 속에서 반짝이는 은총의 순간들
나디아 볼즈웨버 지음, 윤종석 옮김 / 바람이불어오는곳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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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해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교회는 무엇이며, 어떠한 모습이어야 할까요? 정답은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다양한 이론만큼이나, 실재하는 교회는 저마다 다른 모습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은혜를 누리기도 하지만, 실패와 좌절을 맛보기도 합니다.



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있겠지만, 교회에 무엇보다 우선되는 것은 죄인을 환대할 수 있는 은혜의 능력일 것입니다. 소외된 이웃, 불편한 사람일지라도 너끈하게 감당하며 포용할 수 있는 모습 말입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교회조차도 깨어진 죄인들의 모임이니까요.



결국 죄인이 죄인을 수용하고 사랑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실마리를 풀기가 어렵습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불협화음은 끊이지 않습니다. 잘못을 했지만 미안해하기보다 억울해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변화의 시작은 실제로 교회답게 살아내는 교회를 찾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목회자, 죄인을 수용하는 교회를 통해 추상적 명제가 아닌 실제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그런 서사가 우리에게 쌓이다 보면 희망의 빛을 쫓아 우리 또한 한걸음 내디딜 수 있을 것입니다.



루터교 목사인 나디아 볼즈웨버(Nadia Bolz-Weber)는 한번 보면 잊지 못할 외모를 지녔습니다. 근육질의 몸은 문신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이지만 과거는 정반대입니다. 깡마른 몸에 홀로 식사를 해야 해서 늘 외톨이였다고 고백합니다.



홀로 힘겨운 시절을 보낸 그녀는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분노로 풀어냅니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홀로 두지 않으셨습니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신학생인 현재의 남편을 만나게 되고, 자신도 루터교 목사가 됩니다.



볼즈웨버 목사는 시종일관 솔직하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여전히 입에 욕을 달고 살며, 우울증과 공황 장애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거룩함을 추구합니다. 그 거룩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소외된 이웃을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일입니다.



그녀의 교회는 보수적인 교회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혹은 드러내놓을 수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입니다. 철저히 외면받았던 그들은 나디아 볼즈웨버의 교회에서 이웃이 됩니다. 환대 받습니다.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합니다.



모든 교회나 목회자가 이 교회와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교회가 품고 있는 예수님의 정신은 본받아야 합니다. 그 누구보다도 이웃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어줘야 합니다. 죄인들, 가난하고 소외되고 연약한 사람들 말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우리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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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 자캐오에게 말을 건네다
토마시 할리크 지음, 최문희 옮김 / 분도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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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지냈습니다.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하고,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주일성수나 헌금 생활 등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습니다.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주어진 정답에 따라 행동하려 했습니다.



명확한 선을 긋고, 내부자로 있는 것이 편했습니다. 안전해 보였죠. 간혹 질문이 떠오르더라도 재빨리 떨쳐냈습니다. 불경해 보였거든요. 괜한 어려움을 끼치기가 싫었습니다. 나 하나만 침묵하면 평안한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느 순간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양한 부류가 있지만 거칠게 표현하자면) 내부자이지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 외부자이지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저조차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좌충우돌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복음서를 읽고, 성경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나님을 가둔 것은 아닌가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편협한 시각으로 예수님을 재단하지는 않았는가 돌아보았습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은 품이 너무도 컸고, 따뜻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놓으시면서까지 말입니다.




체코의 신학자이자 사제이며,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토마시 할리크(Tomáš Halík). 그는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자케오에게 말을 건네다』에서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을 환대하시는 예수님에 주목합니다. 외부자도 내부자도 아닌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는 명확하고 분명한 교리를 원합니다. 체계적이고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확신 말이지요. 하지만 저자는 우리 삶과 세상은 불확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참 신앙은 정답을 제시하기 이전에 인내 가운데 신비와 더불어 살아가는 것임을 역설합니다.



고난과 의심이 우리 삶에 찾아올 때는 우리의 평안이 깨어지는 순간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틈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희미했던 얼굴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상황은 어렵게 흘러가지만, 우리의 신앙은 무한한 신비 가운데로 들어갑니다.



실상 복음서의 예수님은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를 택하십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연약한 자들을 위해 일하십니다. 오히려 중심부의 사람과 제도, 그 사회의 지도자들과는 철저한 긴장 상태에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가난한 마음을 가지라고 강조합니다.



복음서 뿐만 아니라, 바울의 서신도 동일합니다. 바울은 울타리를 뛰어넘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이라는 큰 장벽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방인을 찾고, 이방인을 위해 사역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는 믿음으로 말이죠.



결국 우리가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역경 없는 안전한 삶을 허락하시는 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고통이 없는 편안함이 지속되리라 약속하지 않으셨음을요. 오히려 어둠 가운데도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듣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위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나 자신이 경계선에 있음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외부자와 같은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비난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또한 온전하지 못한 사람임을 자연스레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도 질문이 가득하며, 혼란함으로 흔들리는 존재임을 말이죠.



그제야 주변 사람이 보입니다. 아파하는 사람이요.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분들이요. 하나님이 없는 것 같다고 울부짖고 소리치는 사람들 말입니다. 말없이 품어 안아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음을 이제는 잘 알기에 말입니다. 신비의 밤을 인내로 견딘 사람이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위로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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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 MZ 세대를 포함한 15주 열다섯 독일인의 새 이해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외 14인 지음, 주도홍 옮김 / 기독교문서선교회(CLC)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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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왜 믿는지가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각 주제는 몇 시간의 강의나 몇 권의 책으로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그만큼 각각의 주제는 무겁고, 방대합니다. 섬세하게 논증하지 않으면, 풀어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믿음의 내용에 대해 정형화할 순 없지만, 오랜 시간 고백된 신조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그것은 믿음의 선배들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입니다. 여러 신학적 논쟁이 있어왔고, 그 풍파를 겪고도 살아남았기에 여전히 매우 의미 있는 문장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책 『사도신경,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는 사도신경을 주제로 독일 라디오 방송에서 일반 청취자를 대상으로 보낸 내용입니다. 독특한 점은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와 비신학자가 엇비슷한 비율로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공교회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이기에 참으로 의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송을 염두에 둔 글이기에 논리적 치밀함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각 장의 기고자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주제를 설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신학적이며 성경적으로 사도신경의 그 구절이 어떤 의미인지, 현재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신학의 색채와 전제가 다르지만 독일을 대표하는 신학자들의 고백과 논조를 듣는 것은 참 흥미롭고도 귀한 일입니다.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와 칼 라너(Karl Rahner), 몰트만(Jürgen Moltmann)과 보른캄(Günther Bornkamm), 콘첼만(Hans Conzelmann)과 에벨링(Gerhard Ebeling) 등을 한곳에서 볼 수 있죠.



특히 저자들이 중점에 두는 것은 '사도신경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하는 점입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고백인지, 그 안에 담겨 있는 참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점에서는 사변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철저한 분석들이 흥미롭습니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사도신경이 '믿음'의 고백임을 놓치지 않습니다.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20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신조가 여전히 유효함을 역설합니다. 저자들은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 사려 깊게 신학적 해석을 감행합니다.



여전히 사도신경은 온 세계에서 주일마다 고백됩니다. 그저 순서의 일부이니 습관적으로 암송했다면, 조금 더 문장마다에 담긴 메시지에 주목해 보면 어떨까요? 이 책은 각 문장에 담긴 핵심적인 의도와 메시지를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우리의 읊조림이 참된 고백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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