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는 바람이 있다. 바람을 느끼고 싶으면 바다로 온다. 바다에는 바다의 바람이 분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창문을 열어 놓으면 부는 바람은 바람이 아니다. 그건 그저 터뷸런스 일 뿐이다. 바람에도 입이 있어서 바다를 찾은 사람이 마음에 들면 입으로 속삭여 준다. 너무나 마음에 드는 사람의 잠든 모습은 행복보다는 안타깝게 보인다고 바람은 말한다.


바닷바람은 머리카락을 한 올, 두 올 쓸어 넘긴다. 마치 연인이 머리를 쓰다듬듯이. 바다의 연한 바람은 딱딱하게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주무른다. 바다에 부는 바람의 입은 포용의 마음과 눈물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변심하는 여자처럼 태도가 돌변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바다를 찾는 이가 마음을 열어 바람의 속삭임을 듣는다면 다른 삶에 대해서 귀가 열린다.


바닷바람이 하는 말은 나긋나긋하기도 하고 명랑하기도 하고 발랄하며 엉뚱하기도 하다. 마치 바닷가에 사진 찍으러 와서 나는 누구? 같은 표정의 그녀와 닮았다. 바다에 부는 바람은 직설적이지 않다. 방해자가 없어서 곧장 달려들 것 같아서 직설화법으로 말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건 바다 위에 또 다른 바람과 부딪히기 때문이다. 바닷바람은 말한다. 실수를 품으로 끌어안는 방법에 대해서.


나는 바닷바람을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바닷바람의 색은 필름 색감을 닮았다. 너무 깨끗하지 않고 먼지가 약간은 껴 있어서 부예진 바람은 에구구구하며 옷을 터는 것처럼 불어와서 재잘재잘 거린다.


바닷바람은 우리를 좀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잘 꾸미고 온 자들도 바다에서는 다 흐트러진다. 바람이 심술궂어 입으로 후 하고 신나게 불면 한 껏 꾸미고 온 자들도 속수무책이 된다.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들 틈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가면 곧 특별해진다. 바닷바람은 우리를 그렇게 특별하게 만든다.



바다는 사실 무척 아픈 날도 있지만 절대 말하지 않는다. 언제나 가면 “난 오늘도 무사해”라고 한다. 나를 볼 땐 눈으로 보기보다 마음으로 봐줘,라고 당부하는 것 같다. 치열한 문장들 속에서 살아남는 건 평범하고 일상적인 문장이다. 평범한 것은 실수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다.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상대방에게 의도치 않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바닷바람을 나에게 속삭인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면 고민을 하고 해 버려야 한다고도 말한다.


바람은 말한다. 바다와 한 번 맺은 인연은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선명하며 꽤 단단하다고 한다. 쉽게 끊을 수 없는 만큼 한 번 끊어지면 다시 이어 붙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바다와 바람은 우리에게 선물을 하나 준다. 그건 좀 더 상처 받는 나, 좀 더 슬퍼하는 나, 좀 더 사고하는 나, 좀 더 고민하는 나를 나에게 준다. 언젠가 힘이 들 때 선물 받은 나를 꺼낼 수 있게 바닷바람은 나에게 선물을 준다.


우리는 저녁까지 바닷바람의 이야기를 듣다가 신나게 사진을 찍고 돌아왔다. 아주 평범한 것들. 나의 평범한 일상 속에는 달리기와 바다가 있다. 그리고 사진이 있다. 그리고 글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경계가 모호하고 전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크앙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https://youtu.be/JwZqzSWs-O0

이정현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다. 이렇게 지난 노래를 신나게 듣고 있으면 꼭 입대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오래된 노래를 듣냐느니, 촌스럽다느니 한다. 비틀스나 엘비스 프레슬리나 레드 제플린은 되는데 우리나라 지난 가요는 꼭 촌스럽다고 하는 인간들이 있다. 나는 10대 여고생들과도 교류가 많은데 10대들은 오히려 노래를 더 좋아하고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다. 꼭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이 그런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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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올여름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조금씩 달렸다. 8월은, 지금까지는 비가 오는 날이 많았는데 조깅을 하러 나가면 소강상태에 있거나 흩날릴 정도로 오면 그냥 달리거나, 비가 쏴아 쏟아지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강변 중간중간 마련해 둔 몸을 푸는 곳까지 가서 거기서 근력 운동을 좀 하고 온다. 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는 날에 거기에 가면 사람이 1도 없기 때문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뭐라고 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를 수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840


이 글을 쓴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일 년 전이라니.


조깅을 하는 코스가 있는데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는 반대 코스로 달린다. 그러려면 강을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서 저기의 다리를 한컷 찍어봤다. 요즘은 계절이 막 바뀌려고 해서 그런지, 물의 온도의 변화 때문인지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 강변으로 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물결처럼 보이지만 그게 물결이 아니라 물고기들이 주둥이를 수면 위로 오구오구 드러내고 떼로 몰려다닌다. 그런 모습은 꼭 열심히 달리고 있을 때 보여서 갑자기 멈추어서 사진을 찍기가 좀 그랬다. 달리는 호흡이 끊어지기 때문에 계속 달려야만 했다.


오리가족의 모습은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빠 오리가 위험한 게 있나 없나 앞장서서 개척한다. 그리고 나머지 오리가족이 뒤 따라간다. 가장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다. 오리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형성한 가족이 붕괴되는 모습이 뉴스를 늘 장식하니까 아이러니다. 아빠 오리는 새끼 오리들이 위험할까 무슨 일이 있을까 앞장서는데 방에서 죽어가는 3살 아이를 팽개친 엄마는 어떤 생각일까.

오리가족이 졸졸졸 물 위에 떠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마음이 편안하다. 어린 시절의 잠깐이지만 행복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저녁 준비로 고등어를 굽고 동생은 엄마 옆에서 종알종알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는 회사에고 오고 있고 나는 티브이를 보며 저녁시간을 기다리는 모습. 그러다가 아버지가 버스 정류장에 내릴 시간이면 나는 동생과 함께 마중을 간다. 동생과 이 버스, 저 버스, 내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다가 한 버스에서 아버지가 내리면 동생은 아버지에게 달려가고 아버지는 동생을 안아 올리고. 오리 가족은 내 유년의 잠깐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린다. 오리 가족의 모습은 정말 별거 아닌데 일단 강변으로 나와서 조깅을 해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건물 안에만 있다면 전혀 볼 수 없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이 요사스러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도 매일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비가 온 후 갠 하늘이 좋다. 저기 구름 사이에 달이 숨어 있다. 달이 빼꼼하며 고개를 내미는데 그런 모습을 잘 기억해 뒀다가 멋지게 적어보고 싶다. 구름의 냄새를 맡고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은, 생명은 지니되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체들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매일 밤 적당한 거리의 하늘에서 빛을 땅으로 쏟아낸다. 달이 없다면 정말 이 세상은 어떤 식으로 변할까. 그러고 보니 살선생, 타코 센세이가 나오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암살 교실에서는 달이 반 정도 파괴된다. 엄청 재미있게 봤는데. 영화가 나왔을 때 예리나 선생으로 카라의 강지영이 나온다.


달은 늘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달을 보며 누군가를 생각하고 달빛이 비치는 가로등에서는 시를 그리기도 한다.


검은 밤 가운데

그대 이름을 써 봅니다


같은 오글거리는 글귀도 달밤에는 아무렇지 않다.


또 열심히 달리다 보면 아빠를 졸라서 밖으로 나온 귀염둥이들을 잔뜩 볼 수 있다.  저 녀석 뒷자리가 편한지 자세가 딱 저 자세로 줄곧이다. 아빠가 잠시 멈춰 전화를 받아도 딱 저 자세다. 강변을 따라 저녁에 조깅을 하면 엄빠를 따라 산책 나온 귀염둥이들이 많다. 전부 행복해 보이고 집에서 귀여움 받으며 잘 자라고 있는 느낌이 충만하다. 뉴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학대받고 버림받는 강아지들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며칠 전에 초딩 5학년 정도로 보이는 녀석이 강아지를 몰고 산책을 하면서 전화를 받으며 나불나불 가는데 강아지가 가기 싫다고 멈칫멈칫거리니 목줄을 확 잡아당기는 것이다. 제길.


신나게 한 판 달리고 도착하면 엘베에서 한 컷 올리고 들어간다. 보통은 그저 물을 마시는데 텀블러에 받아 놓은 물이 없으면 음료를 사 먹는다. 미숫가루처럼 보이지만 아이스라테다. 샷 추가.

이제 저녁에는 제법 바람이 차다. 땀도 폭염 때만큼 나지 않는다. 윗도리가 땀에 젖긴 젖지만 축축하지는 않다.


그간 매일 조깅을 하면서 선택에 대해서 왕왕 생각을 한다. 우리는 늘 선택 앞에서 고민을 하고 더 나은 선택을 못 한 것에 후회를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두 가지의 선택지에 섰다면 근래에는 선택지가 여러 갈래로 있다.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그 사이 길로 갈까, 선택의 폭은 더 넓고 더 어려워졌다. 선택을 하고 나서 늘 찝찝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잘못한 선택이라면 그 선택을 잘 한 선택으로 바꾸면 된다. 내가 택한 선택지가 비록 택하지 못한 선택지보다 못하지만 뭔가를 해서 이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이 들게 바꾸면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서 옳은 선택이라도 그 결과가 옳지 못한 경우가 되는 것을 많이 봤다. 요컨대 일류대학에 가서 모두가 이 사람은 부자에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초유의 기업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앞날이 탄탄할 거라 생각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좋은 직장은 있을 수 있으나 좋은 직업은 딱히 없다. 좋은 직장에서 좋지 못한 업무를 맡거나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해 조직에 귀속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며 매일을 보낸다면 그건 좋은 직업은 아니다. 여의도 증권가가 몰린 마천루에서 화이트 컬러들이 일을 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된다. 모두가 우르르 흘러나와 점심밥을 먹기 위해 북엇국을 잘하는 집 앞에 긴 줄을 선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와서도 점심을 먹으려면 북엇국 집 앞에 줄을 서야 한다. 누구나 식당을 하기는 꺼려한다. 힘들다며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줄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뭐가 좋고 나쁘고 그걸 정할 수 있을까. 좋은 직업이란 따로 있지 않다. 귀천이 없다.


글을 쓰기로 생각한 사람은 선택에 있어서 어쩌면 옳지 못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특히 문학을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을 한다는 건, 글을 쓴다는 건 세상에 가장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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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경리가 손주를 업고 창문틀에 원고지를 대고 글을 썼다. 사위인 김지하 시인은 옥고를 치르고 외동딸인 김영주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고 있어서 손주를 돌 볼 사람은 박경리뿐이었다. 밥을 해 먹을 수 없어서 마른 북어포를 뜯어먹어가며 손주를 달래며 서서 글을 적었다.


글을 적으려면 불빛과 탁자가 있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누워서도, 걸으면서, 불빛이 없어도 글을 적을 수 있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기를 일일이 메모했다가 부랴부랴 노트북을 열어서 글을 적을 필요도 없어졌다. 더 쉬워졌고 간편해졌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렇게 편리하고 글을 쓰기에 너무나 적합한 요즘 저 위의 박경리 소설가가 글을 적기 위해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글을 쓸 만큼 절실함이 나에게 있을까.


나는 계란 프라이를 먹으며, 창틀에 서서 북어포를 먹으며 손주를 업고 한 손으로 글을 쓴 박경리 소설가를 생각한다. 고작 계란 프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 계란 두세 개를 먹을 수 있다는 건 계란값이 오른 작금의 시기에 마음의 사치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사치는 조금씩 영역을 넓혀 아직 아이로 남아있으려는 마음속의 절실함을 가져가는지도 모른다.


복어포를 뜯으며 창문턱에 서서 글을 쓴 박경리 소설가에 비할바는 못 되지만 근래에 나에게 이토록 글에 대한 절실함이 남아있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분명, 글에 대한 갈망으로 잠들기 전까지 고민하며 글을 쓰다가 잠들었다. 매일 조금씩 그 시간에는 쓰고자 하는 글을 썼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에도 환자가족 대기실에서 글을 쓰다가 잠들기도 했다. 그때 새벽에 눈을 뜨니(겨울이었는데 5시가 되면 보일러를 끈다. 그래서 추워서라도 일어나야 한다) 다른 가족이 나에게 이불을 덮어놨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그때에 가졌던 절실함을 손상되지 않게 가지고 있느냐,라고 한다면 나도 자신이 없다. 지금은 분명 그때보다 방대하게 글을 쓰고 있다. 습관과 루틴이 고착되어서 나의 생활 반경 내에서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그에 맞게 방호막을 치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상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메모를 해놓고 모두가 잠든 밤이 도래하면 노트북을 열어 화면에서 나오는 빛을 받은 나는 신나게 글을 적었을 때의 나에게는 마음의 사치는 적어도 없었다. 그때 맛있게 먹었던 계란 프라이는 지금 먹는 맛과는 또 달랐다. 그때는 고작 계란 프라이였고 단골 식당에서 계란 프라이 하나 달라고 하기도 했다.


박경리의 토지는 못 읽었다. 아마 앞으로도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다. 김약국의 딸들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허장강, 엄앵란과 황정순이 나오는 영화로도 몇 번 봤다. 통영의 유지 김약국 네가 일본인이 들어옴으로 해서 몰락해가는 과정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을 했던 유현목 감독은 붕괴해가는 한 가정의 이야기 ‘오발탄’도 만들었다. 나에게 있어 재산이라 함은 흑백 시대의 한국 영화를 잔뜩 본 기억이다.


박경리 소설가는 글을 써야만 하는, 그리고 그의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었다는 것은 절실함을 넘은 어떤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건 초기 작품들이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미망인의 이야기가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박경리는 비극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비극은 칼날이 되어 베고 찌르고 아프게 했다. 고 생각한다.


예술은 잔인하다. 예술은 삶과 흡사하고 밀착되어 있다. 삶도 잔인하다. 잔인하게 인간을 몰아세운다. 고작 계란 프라이를 매일 먹을 수 있다는 건 잔인한 매일을 숨을 쉬게 해 준다. 북어포를 씹어 먹으며 창문 틈에 서서 손주를 업고 글을 쓴 박경리를 생각한다. 26년 동안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를 생각한다. 대문호라는 칭호는 박경리 소설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 유명한 소설 ‘토지’를 읽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의 딸 김영주 토지문학 재단 이사장이 토지를 알리기 위해 생을 보냈다. 그랬던 김영주도 2019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늘 이전에도 매일 먹었던 고작 계란 프라이를 앞으로도 매일 먹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마음의 사치를 줄이고 매일 계란 프라이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열심히 글을 적겠다. 연일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한다. 마지막 여름을 일별 한다. 매미소리가 좀 더 크게, 길게 들려온다.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https://youtu.be/mLc5FHrVTP0

가사가 좋아서 왕왕 듣게 되는 하얀 나비. 아주 많은 리메이크가 있는 노래가 이 노래, 하얀 나비가 아닐까 싶다. 김정호는 폐결핵 때문에 일찍 죽었다. 김정호는 폐가 망가지는대도 요양원에서 뛰쳐나와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통을 참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아마 딸에게 아빠가 가수라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래를 힘겹지만 불렀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련하다. 아련함이란 말을 영어로는 어떻게 될까.


김정호는 솔로로 노래를 부르기 전에 ‘사월과 오월’ 그리고 ‘어니언스’에서 활동을 했다. 풍부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음악만을 하게 두면 되는데 대마초 파동에 연관도 없는 김정호가 연루되어서 피해자가 되고 만다. 김정호가 죽은 나이 고작 33살. 그의 노래 ‘이름 없는 소녀’는 정말 호소력 짙다.


재미있는 건 저 유튜브 속 윤복희 쇼에서 노래를 부르는 김정호의 영상 댓글에 가수 윤복희가 댓글로 김정호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 어린 대댓글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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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굿즈


https://brunch.co.kr/@drillmasteer/1633 하루키 굿즈 키링을 만들었을 때


이번에는 폰 링을 만들어 보았다. 키링보다 작고 귀여워서 하루키가 익살스럽게 보인다. 아직 정식적이지는 않지만 코로나 이전에 하던 독서모임을 다시 하려고 하루키를 좋아하는 두 명의 독자와 모임을 짤막하게 가졌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건 즐겁다. 하루키의 소설을 이야기하는 것도, 에세이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리고 하루키를 이야기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관계인데도 어쩐지 가족보다 더 친밀하게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렇게만 된 인간관계라면 이 세상을 얼마나 편하게 지낼 수 있을까 싶지만 고개를 6도만 돌리면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복잡해서 이해와 오해가 우리를 늘 괴롭힌다.


코로나 때문인지 불행은 몹시 구체적이고 체계적이고 깊이도 깊고 길다. 그에 비해 행복은 다 엇비슷하고 추상적이다. 무엇보다 행복의 순간은 짧다. 이렇게 하루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도 금방 지나가버린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원래 하늘 위에서 비행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또 이렇게 모임을 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씁쓸하면서도 모두가 웃으면서 울었다.


하루키의 실물(은 못 봤지만)은 정말 저기 키링 속의 하루키 얼굴처럼 생겼다. 아직 안자이 미즈마루 씨가 살아있었다면 조금 더 나이가 든 얼굴의 하루키를 점. 선. 면.으로 잘 표현했을 텐데 아쉽다.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단편 ‘드라이브 마이카’가 영화가 되었다. 만년 소년 같은 얼굴의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나온다. 이 소설은 이제 운전을 하지 못하게 된 나이 든 가후쿠라는 남자가 여성 운전자 미사키를 전속 드라이버로 소개받으면서 가후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잔잔한 단편 소설이다. https://youtu.be/dHHRI7W6ilI


그런데 영화는 거의 3시간 가까이 된다고 한다. 원래 부산 로케로 죽 달리면서 영화를 담을 예정이었다는데 코로나 때문에 일본에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드라이브 마이카를 영화로 만든 감독이 한국과 인연이 좀 있다고 한다. 봉 감독의 기생충에 머리를 한 방 맞은 것 같은 영감을 받았고, 자신의 두 번째 영화 ‘심도’가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감독은 ‘아사코’를 만들었고, 또 작년에 개봉했던 ‘스파이의 아내’의 각본을 썼다.


하루키의 소설은 영화가 되기 힘들다고 하는데 오늘을 기점으로 보면 하루키의 소설이 다른 그 어느 소설가보다 더 많이 영화가 만들어진 것 같다. 게다가 일본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하루키의 소설을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했다.


먼저 ‘빵가게 재습격’이 멕시코 감독이 커스틴 던스트(초대 스파이더맨의 메리 제인)와 함께 만들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469


덴마크에서 하루키의 소설을 번역하는 번역가가 하루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만든 하루키 다큐.

https://brunch.co.kr/@drillmasteer/1081



https://brunch.co.kr/@drillmasteer/1085 우리가 너무나 빠져 들었던 노르웨이 숲.



https://brunch.co.kr/@drillmasteer/156 요시다 요의 연기가 압권이었던 하나레이 베이.



https://brunch.co.kr/@drillmasteer/908 이창동의 손에서 재탄생한 버닝.


조촐한 모임을 한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만약 우리에게 하루키가 없었다면 더 비관적이었을 이 시기에 하루키 덕분에 즐겁게 시간을 가졌다. 나는 그들에게 폰 링을 하나씩 선물로 주었다. 그러려고 만든 거니까. 아무튼 하루키 덕분에 재미없는 삶을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 재미있는 영감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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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서 가장 재미있는 모습은 바다를 멍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늘 그 자리에 이는 물결과 그 색이 그 색이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바다를 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재미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바다멍에 빠지면 아무튼 돌처럼 가만히 있게 된다. 세속적인 것은 잊고 체재니 나르시시즘이니 그런 것 따위 그저 다 잊게 된다. 바다가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이 바다를 보는 이유가 아마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일단 태어나서 사회에 흘러 들어가게 되면 복잡한 인간관계와 돈에 얽힌 것들에 늘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바다를 보며 세금을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생각 없이 멍 하게 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어쩌면 하늘도 그런 비슷한 이유로 자주 쳐다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닷가에서는 갈매기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지난번에도 갈매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 했다. 지난번에는 갈매기를 따라 하고픈 바닷가의 비둘기의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갈매기와 까마귀의 이야기다. 바닷가에는 갈매기만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각종 새들이 있다. 각종 새들이라 하면 비둘기나 도요새도 볼 수 있다. 참새와 제비도 바닷가 근처에서 날아다닌다. 그리고 까마귀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까마귀들은 겨울이면 많이 볼 수 있는데 근래에는 여름에도 무리를 지어 바닷가를 거닐고 있다. 마치 사람처럼.

https://brunch.co.kr/@drillmasteer/1820

갈매기들이 바닷가에 자주 오지 않고 까마귀들이 어슬렁어슬렁 무리를 지어 동네 간섭하고 다니다가, 어느 날 까마귀들이 바닷가의 갈매기들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까마귀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바닷가에 있던 새들을 겁주기 시작했다.


어이, 이제 이 구역은 우리 거야, 그러니 당장 여기서 벗어나. 까악. 까악.


까마귀들은 까만 옷으로 무장을 하고 여러 새들을 위협한다. 까마귀들이 오면 동네 새들이 무서워서 바닷가에서 도망을 가고 만다. 닭처럼 보이는 비둘기들은 아예 얼씬거리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무법자 까마귀들 앞에 이 구역의 미친 갈매기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 갈매기 녀석은 까마귀들이 위협을 하든 말든 흥, 하며 어부가 던져 준 물고기를 맛있게 뜯어먹고 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보는 까마귀들.


야, 저 녀석 우리를 겁내지 않네. 신경도 안 쓰잖아. 저 미친 갈매기는 뭐야. 까악. 까악.


까마귀들이 자신들을 마치 투명인간 취급하는 갈매기 녀석에게 단단히 화가 났다. 갈매기는 그러거나 말거나 혼자서 맛있게 물고기를 뜯어먹었다.


냠냠, 아이 신나. 이렇게 맛있는 물고기를 먹게 되다니.


그러다가 까마귀들이 하도 시끄럽게 까악 까악 거리니까 갈매기가 까마귀 세 마리를 쳐다봤다.


엥? 뭐야? 까마귀 세끼들? 너희들? 너희들 지금 여름인데 덥겠네? 우헤헤.


갈매기는 귀찮은지 먹던 물고기를 들고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냠냠 맛있게 물고기를 먹는 갈매기 녀석. 기가 막힌 까마귀들은 한 마리를 더 불렀다. 까마귀는 총 네 마리가 되었다. 아마도 까마귀들 중에 대장이 온 것 같았다. 이제 갈매기 한 마리를 혼내줄 때가 온 것이다.


어이, 대장 왔어? 저 녀석이야, 저 녀석이 혼자서 아주 큰 물고기를 먹고 있어. 까악. 까악.

뭐야? 정말이야? 우리 구역에서 그렇다 이거지? 가서 뺐어오자. 까악.


그렇게 까마귀 무리는 작당모의를 하고 갈매기가 있는 곳으로 갔다.


무리가 갈매기가 있는 곳으로 가다가 물고기를 먹던 갈매기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딴청 하는 까마귀 한 마리. 그리고 나머지 세 마리는 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세 마리가 이야기 중이다. 그런데 말이야 어제 우리 집에 까치가 와서 잠들었지 모니, 어머? 그래? 호호호. 까아악.


갈매기는 까마귀 무리를 한참 노려봤다. 마치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 내 음식에 눈독 들이지 마라. 좋은 말로 할 때 꺼지라고.라고 했다.


갈매기를 가까이서 보면 크기가 크다. 날개를 펼치면 어린이 다리 만하다. 그리고 눈도 아주 무섭다. 하지만 까마귀들 역시 크기가 아주 크다. 비둘기는 아예 이 근처에 오지도 못한다. 까마귀들은 우르르 달려가서 갈매기를 혼내주고 먹이를 뺐어오고 싶지만 쉽지 않다. 그러다가 까마귀 무리 중에 대장이 갈매기에게 한 마디 했다.


물고기 내놔! 까악!


그러자 바로 까마귀 무리 곁으로 달려오는(절대 날아오지 않는다. 갈매기의 본분은 다다닥 달려서 가는 것) 갈매기 녀석. 갈매기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까마귀 무리로 간다. 이 구역 미친놈 갈매기는 무서운 것이 없다. 그러자 까마귀 무리 중에 가장 겁이 많은 까마귀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 도망을 간다.


뭐야 저 갈매기 새끼, 도대체 왜 겁을 먹지 않는 거야! 까악.


이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왔던 이 구역의 미친 갈매기는 그렇게 까마귀들과 맞짱을 뜨려 했다. 하지만 무서움을 느낀 까마귀들은 이 구역의 미친 갈매기에게 욕을 하며 전부 멀리 달아난다.


그런데 이 틈을 이용해서 오른쪽 바다에 있던 갈매기 두 마리가 슬슬 오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다, 저 갈매기 녀석이 왜 이 구역의 미친놈이었나 하면, 지 물고기에는 갈매기들도 오지 못하게 했다. 그 어떤 갈매기가 날아와서 물고기를 먹으려 해도 전부 다 막아내는 이 구역 미친놈 갈매기. 이 구역 미친 갈매기 놈은 갈매기든 까마귀든 참새든 도요새든 자신의 먹이를 건드리면 누구든 달려들어 물고리를 지켰다. 대단한 놈이었다. 끈질긴 놈.


문득 갈매기 소리를 내고 싶지만 까악은 까마귀고 갈매기 소리는 어떻게 되지? 아무튼 바닷가에 있으면 큭큭큭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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