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힘들다가 들어와서 위로를 받는 음식 중에는 뜨끈하게 한 냄비 가득한 찌개가 있다. 나에게 그런 위로의 찌개는 꽁치찌개였다. 찌개는 도심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쉽게 해 먹기 힘들다. 한국사람이니까 어릴 때 집에서 먹던 찌개가 먹고 싶고, 찌개는 해 먹기 힘들고, 영차영차 노력해서 찌개를 끓이는 도중에 어쩌면 기운이라는 것이 엑토플라즘처럼 빠져나가버려 막상 한 냄비 해 놓은 찌개를 그저 떠나는 연인을 바라보듯 멍하게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꽁치찌개는 다르다. 꽁치찌개는 나의 자취생활의 동반자와 같았다. 싱크대 선반에 라면은 없어도 꽁치통조림이 일렬로 차렷 자세로 꼿꼿하게 서 있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꽁치통조림 그 자체로 모든 맛이 이미 완성에 가까이 다가가 있기 때문에 끓는 물에 김치와 함께 넣어서 끓이면 된다. 끝이다. 힘들지 않은데 정성스럽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은 마법을 볼 수 있는 찌개가 꽁치찌개다. 꽁치는 먹고 싶고, 구이는 정말 엄두가 나지 않을 때 꽁치통조림으로 찌개를 먹고 나면 어느 정도 해갈이 된다.


나는 꽁치보다 꽁치통조림을 좋아했다. 꽁치통조림은 자취할 때 나의 허기를 채워주는 든든한 식량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만화 같은 모습으로 몸을 질질 끌며 집으로 와서 꽁치통조림을 따서 보글보글 김치를 넣고 끓여서 후후 불어 먹었다. 그러면 조금은 기운이 나고 위로가 되었다. 마치 세상이 폭삭 무너져 아포칼립스가 도래했을 때 내가 사는 집의 주방에는 꽁치통조림만은 가득 들어 있어서 한시름 놓은 것 같았다. 자취할 때는 아이들이 놀러 와서 술을 마시려고 하는데 그때 꽁치통조림을 내놓으면 아이들이 전부 싫어했다. 나는 꽁치통조림을 따서 그대로 먹는 게 맛있는데 아이들은 비린내 때문에 우욱 했다. 그 비린맛이 좋아서 꽁치통조림을 그렇게도 먹었다. 


요즘은 예전만큼 비린맛을 찾지 않지만 있으면 곧잘 먹는다. 예전에는 국밥도 꼬릿 한 냄새와 맛이 나는 시장통 국밥집을 찾아가서 먹곤 했는데 나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린이 입맛으로 바뀌는 것 같다.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특히 민초가 맛있단 말이지. 쳐다보지도 않았던 케첩을 뿌리고, 치즈를 빵과 과자 사이에 넣어서 먹고, 민초를 오물오물 먹곤 한다. 과자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인체의 신비다.


그런데 이렇게 꽁치로 찌개를 끓여 먹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먹나. 우리나라에도 통조림이 많지만 다른 나라에도 통조림 음식이 많을 텐데 영화 같은 데서 꽁치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가끔 꽁치김치찌개를 먹는 장면이 나오지만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다. 대만만 가도 취두부가 통조림부터 길거리, 편의점에서 대중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꽁치는 모든 사람들이 먹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본다.


꽁치통조림은 개인적으로 정말 최상의 음식이다. 카레에 넣어도, 물과 김치를 끓이면서 넣어도, 그냥 먹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맛도 좋다. 통조림 속의 꽁치는 또 된장과도 아주 잘 어울린다. 그래서 된장을 넣고 김치 넣고 통조림을 따서 한통 넣은 다음 팔팔 끓이기만 하면 된다. 냄새 또한 기가 막힐 정도로 좋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고 한 한창훈 소설가의 에세이가 있는데, 일상이 허기질 때 꽁치통조림을 따라, 그리고 꽁치를 라면에 넣어라고 하고 싶다. 라면수프가 끓어오르는 냄새와 꽁치가 뜨겁게 익어가는 냄새가 좋다. 라면이 그렇듯이 부글부글 끓는 사운드 역시 좋다. 좋은 것과 좋은 것이 만나서 좋은 맛을 낸다. 꽁치 찌개는 나의 소울푸드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다 위로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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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모 - 젊음의 코드, 록


임진모의 책이 몇 권 있는데 그중에 한 권의 책이다. 제목만 봐도 눈에 딱 들어온다. ‘젊음의 코드, 록’이라는 제목이 록을 좋아하는 사람을 잡아끈다.


우리가 젊음을 언제까지다,라고 지정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가끔씩 하고, 또 여러 방송 같은 곳에서 젊음이란 몇 살까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제목을 보면 얼추 그 답을 유추할 수 있다. 젊음의 코드, 록이라는 것은 록은 젊음의 상징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는 건 록을 듣고 있다면 그. 자리, 그 시기, 그 나이가 젊음이라는 말이다. 임진모 형님도 젊음을 죽 끌고 갈 수 있는 이유가 록을 좋아하고 듣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젊음이라는 것은 단지 나이나 외모 같은 표층적인 모습이 아니다. 그건 좀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나는 주로 소설을 읽고 또 책을 거의 새것처럼 읽는 편이다. 책에 줄을 그어가며 읽는 스타일이 아닌데 임진모 형님의 이 책은 줄을 죽죽 그어가며 읽었다. 이 책을 읽은 시기가 대략 2005년도쯤인데, 아무튼 열심히 읽었던 모양이다.


스파이더맨, 에릭 사티, 하루키, 존 레넌, 커트 코베인, 에밀리 디킨슨, 릴케, 헤세, 카프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전부 외톨이라는 것. 이들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외톨이로 외롭게 작업을 했다. 스파이더맨은 좀 다른 의미지만. 외톨이라는 건 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타고나서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미쳐서 환장하는 록을 발산하는 록 그룹 역시 외톨이처럼 음악을 만들고 연습을 했을 것이다. 헤세는 고독한 사람에게서 문화가 탄생한다는 취지에서 이런 말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독자적인 삶이나 독자적인 사고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일생 동안 군중의 일원으로 살고 행동한다는 것, 이런 사실을 그대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중략]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다릅니다. 개별자로서의 개성과 삶을 소명으로 여기고 감당할 능력이 있는 소수에 속하며, 군중과 달리 섬세한 감각과 뛰어난 사고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더 자세하게, 더 예민하게, 더 풍부하게 뉘앙스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합니다.”


군중과는 다른, 독특한 개성과 뛰어난 사고력을 지니고 더 풍부하게 많은 것을 느끼는 외톨이들이 문화의 제1선에서 창작과 창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임진모 형님도 있다. 이 책은 록의 시작부터 지금의 헤비 한 메틀까지 정리가 잘 되어 있다. 그래서 록 마니아들은 홀딱 빠져서 읽게 된다.


록의 정신, 록 스피릿은 바로 ‘저항’이다. 그래서 사화에 대한 반감이 생기고 부모세대에 반항을 하기 시작하는 청소년기에 대체로 록을 접하는 경우가 많고 그들 중 반 이상은 록이 세계에 빠지기도 한다. 천사보다는 악마 쪽에 더 기운다. 보수보다는 진보에 가깝고 지키려는 쪽보다 부수고 변화를 꾀하는 쪽에 가깝다. 그러다 보니 항상 변화의 바람 앞에는 록이 시대를 같이 해왔다.


이 책에는 록의 본거지인 미국이나 유럽뿐 아니라 한국 록의 시작점과 한국 록의 정신 그리고 포크록의 대부 한대수와 양희은부터 지금까지(라고 해봤자 15년 전이다)의 한국 록에 대한 계보와 이해 그리고 록의 사상 같은 것들이 임진모의 손가락 끝에서 탄생되었다.


책과는 별개로 ‘물 좀 주소’의 한대수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1세대 격인 물리학자, 그것도 핵물리학자인데 실종이 되었다. 아직도 이유가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조부는 또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냈다. 그런데 아버지가 실종이 되고 한대수가 16살이 되던 무렵에 미국 FBI에게 연락이 와서 아버지를 만났는데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고 과거를 싹 잊어버렸다고 한다. 한대수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면 검색해서 찾아보면 된다. 한대수의 좋은 노래들이 많지만 '원데이'를 한 번 들어보자. 89년 곡인데 2015년에 뮤직비디오로 다시 태어났다.


한대수 형님도 록을 하고 있으니 젊은것이다. 한대수 형님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한대수 형님의 예전, 모든 노래들을 들으면 그렇다.


록이 가장 전성했던 시기는 60년대와 7, 80년대였다. 세계적으로 기근과 전쟁이 기승을 부리고 산업혁명이 나라 이곳저곳에서 일어났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간이 인간에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스스럼없이 당겼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반항, 저항 그리고 발광은 사람들을 한 목소리로 뭉치게 만들었다. 시작점은 미국의 주다스 프리스트, 영국의 롤링스톤즈 같은 록의 전설이 된 그룹들이었다. 그들의 공연은 사람들을 몰고 다녔고 음악으로 전쟁의 중심에 있는 총을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가사에 시를 입히고 철학을 노래한 포크록의 보브 딜런, 조안 바에즈가 있었다. 두 사람은 한때 뜨겁게 열애를 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록이 상륙을 한다. 전쟁을 치렀던 나라는 혁명이 빨리 일어난다.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들이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그들과 함께 미제 문화가 들어온다. 그중 하나가 음악인데 신중현과 엽전들, 미니스커트의 윤복희, 미 8군에서 노래를 불렀던 패티 김을 선두로 해서 위에서 말한 포크 록의 한대수 등이 저항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용과는 상관없지만 어머니 영향으로 나도 패티김의 노래를 줄곧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패티김의 공연을 세 번 봤다. 언제 한 번 썰을 풀어 보겠다.


책의 중반부터 헤비메탈은 무엇인가?로 시작해서 끝까지 간다. 이후로는 헤비메탈에 대한 임진모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책에는 안 나오지만 프로그래시브 록 그룹 '아웃 월드'의 캘리 카펜터가 있는데 뭐랄까, 우리는 흔히 고음 하면 쉬즈 곤을 생각하지만 캘리 카펜터의 목소리는 그것을 넘어버린, 미칠듯한 고음으로 뇌를 터지게 만드는, 초고음 외계 물질 테러 같은 목소리를 내뿜는다. 캘리 카펜터는 인간 형상을 한 외계인이라는.


일본으로 가면 극악의 샤우팅을 하는 그룹이 있다. 에니메탈이라는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바로 마징가제트를 록 버전으로 부른 악마 보컬 사카모토 에이조다. 극렬하고 과격한, 아니 이걸 넘어서는 극악무도의 샤우팅을 한다. 무자비한 악마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얼굴의 페인팅은 그룹 키스를 보는 것처럼 무시무시하고 지옥이 몸에 있다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듯 노래를 부른다. 마징가제트를 이렇게 과격하게 부르는 건, 마징가가 단순한 로봇이 아니라 에반게리온이나 게놈처럼 하나의 크리쳐 같은 개념으로 마성이 분출하는 마신이다. 그러니까 에반게리온처럼 각성을 하면 마성이 깨어나 악마가 되는 게 마징가다.


아무튼 이런 헤비 한 록도, 포크 록도, 그리고 펑크 록을 비롯한 모든 록을 들으며 좋아하는 건 젊음과 일맥상통한다. 앞서 시끄러운 록을 들었으니까 마지막으로 한영애의 ‘여울목’을 들어 보자.


맑은 시냇물 따라 꿈과 흘러가다가

어느 날 거센 물결이 굽이치는 여울목에서

나는 맴돌다 꿈과 헤어져 험하고 먼 길을 흘러서 간다


가사의 한 부분인데 시다. 시. 블루스적인 한영애의 목소리가 시를 만나 슬픔의 향을 풍긴다. 임진모 형님이 이 노래를 찬양했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어린 시절에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 속의 어른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첩을 뒤지다가 부모님의 사진을 본다. 옷도 이상하고 화장도 과하고 머리고 촌스럽고. 큭큭 거리며 웃다가 문득 사진 속의 부모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임을 깨닫고 생각에 잠긴다. 내 부모도 나와 같은 시기를 거쳤으니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두렵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 모든 시간을 거치고 헤쳐 지금의 나이에 이르렀다는 걸 느끼고 인간의 삶에 평범한 삶은 없다는 것과 위대하다는 것을 동시에 깨닫는다.


마냥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에는 어른이 되면 무서운 것도, 겁나는 것도 없을 줄 알았다. 모든 것이 생각하는 대로 뚝딱 해결될 줄 알았다.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조그만 움직임에도 선뜻 내 뜻대로 할 수 없다. 온통 정글이고 겁나는 것 투성이다. 수많은 고민 끝에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은 나를 배신하고 만다.


히가시노 게이코의 ‘유가와’가 옆에 있다면 무심하게 이랬을 것이다. 문제에는 분명히 답이 있지, 그렇지만 그것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이제부터 너는 몇 개든 그런 경험을 하겠지, 그건 나도 똑같아, 그렇지만 초조할 필요는 없어, 우리들 자신이 성장해나가면 분명 그 해답에 도달할 것이다, 네가 그 답을 찾을 때까지 나도 같이 생각할게, 함께 고민해 나가는 거다, 잊지 마, 너는 혼자가 아니야.


유가와의 이런 말을 듣는다면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말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어른이 되면 목놓아 울 수도 없다. 책임이라는 막중한 무게가 눈물도 쏙 들어가게 만든다. 어른이 될수록 ‘약해짐’에 가까워진다.


시간 5부작으로 유명한 미국의 작가 ‘매들렌 렝글’은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약점이 없이 완벽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는 것은 취약성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취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약함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한영애의 여울목을 와삭 거리는 낙엽이 많은 계곡에서 들으면 좋다는 임진모는 이 노래를 한없이 찬양했다. 발 밑으로는 색이 죽은 낙엽이 가득하여 쓸쓸하지만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찬란한 색으로 물든 단풍과 파란색 물감을 부어 놓은 하늘이 있다. 그것이 어른의 모습이다. 그 어른은 젊음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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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9-16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대수님의 가족사는 교관님 글에서 처음 읽는데, 충격적이네요....

교관 2021-09-16 12:14   좋아요 0 | URL
한대수가 직접 ㅂ밝힌 일화도 있구요, 또 많은 곳에서 자세하게 다뤘거든요. 정말 미스터리입니다. 어떻든 열심히 원데이 같은 곡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라디오는 계란찜과 비슷하다. 너무 해 먹어서 질릴 법도 한데 또 하면 맛있다. 이렇게 부드럽고 맛있는 계란찜을 매일 먹을 수 있다면 그건 정말 괜찮은 삶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라디오는 매일 나오지만 라디오보다 더 나은 플랫폼이 많아서 이제 사람들은 라디오를 잘 듣지 않는다. 그래도 라디오를 매일 들을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라디오 따위 듣는 사람들이 없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듣고 있다. 왜냐하면 라디오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러니까 너와 나, 우리의 사연을 나누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하면서, 운전하며 라디오를 듣고 웃고 눈물을 흘린다.


재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상에서 신나는 일 중에 하나는 라디오에 사연이 소개되는 일이다. 라디오에 사연이 소개가 되는 일을 나는 몇 번 겪었다. 일단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선물이 전혀 없는 배캠(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선물도 날아온 적이 있었다.


그리고 서울 정희에서도 사연이 소개가 되어 선물을 받은 적이 있는데 파우치 세트가 온 적도 있었다. 라디오는 MBC FM포유를 죽 듣는다. 오전 7시부터 저녁까지는 라디오를 틀어 놓고 있다. 라디오는 집중해서 리스닝하기보다 그저 히어링 하는 것이다. 디제이들이 오전 시간에는 차근차근 새록새록, 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톤으로 사연들을 소개하고 음악을 들려준다. 오히려 규디가 하는 오전 7시의 굿모닝 FM이 무척 소란스럽다. 아무래도 사람들을 깨우고 출근과 등교를 돕기 위해서 시끄럽다.


9시부터 11시까지 지디가 하는 라디오를 지나 현디(김현철 디제이)가 하는 골든 디스크는 책장을 천천히 넘기듯 조용하고 고요하게 흘러간다. 그러다가 정오를 넘어가면 으랏차차, 우당탕탕, 하며 열심히 라디오를 진행한다. 정말 들어보면 마치 오늘만 사는 것처럼 에너지를 쏟는다. 회사원처럼 하루에 5시간, 6시간씩 디제이를 했다면 아마도 바로 병원행일 것이다. 음악과 소개에 이렇게 진심일 수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후 4시에 하는 샵디(이지혜)가 하는 ‘오후의 발견 이지혜입니다’는 임신 6개월의 몸으로 점심 먹고 노곤해지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서 난리난리 대환장이다. 그때가 가장 나른하고 잠이 오는 시간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샵디는 자신의 골수까지 뽑아낼 정도로 혼신을 다하는 것처럼 들린다. 내가 오버해서 말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한 번 들어보시길.


그래서 요즘 라디오 디제이들은 전문 디제이들은 없다. 김기덕이나, “안녕하쉽니꽈, 이 종 환입니돠”라며 젊잖게 시작을 하며 전문 음악 소개 방송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들의 방송은 새벽으로 가거나 거의 없어졌다. 자정을 지나면서 음악평론가라고 해야 할까, 아직은 좀 웃긴 부분을 맡고 있는 배순탁, 음악 작가 신혜림, 영화평론가 김세윤이 각각 시간별로 해서 새벽 3시까지 한다.


이제는 라디오도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방송으로 바뀌어서 전문 디제이보다는 가수나, 코미디언이 하는 경우가 다분해졌다. 컬투의 생명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것 역시 이상하다거나 별로야,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근래에는 라디오에 참여하는 빈도가 줄었지만 그래도 가끔씩 사연을 보내는데 여름이 오기 바로 직전에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는데 소개가 되었다.


지디(정지영 디제이)가 하는 오전 프로그램에 사연을 보냈다. 노래 세 곡을 들려주는 코너에 사연을 보내면 소개가 되면서 신청곡이 세 곡이나 나온다. 내가 보낸 사연은 대충 위에서 말한 것처럼 라디오 디제이들에 대한 생각을 적었다. 디제이들도 사람이라 일상에서 힘들거나 아픈 일들이 있을 텐데, 라디오 부스에만 앉으면 사연을 읽어주고 진심으로 매일 웃고 기뻐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디제이들은 프로이기 때문에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청취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디제이들도 청취자가 힘든 사연을 보내듯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라디오를 통해 이야기를 하고 청취자들이 고민을 듣고 위로를 해주고 방법을 같이 찾으면 배철수처럼 긴긴 시간 같이 나이 들어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내용의 사연이었다.


지디가 사연을 소개하면서 이런 사연은 처음이었다. 디제이들을 생각해줘서 고맙다는 뉘앙스로 말을 했다. 그리고 댓글창에서도 사연이 좋다는 글들이 계속 올라왔다. 그리고 내가 신청한 노래 세 곡이 나왔다.


정오가 되면 나는 지역 방송국의 정희(정오의 희망곡)를 유튜브로 듣는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과 방송에 참여를 한다. 지역 방송 정희에는 늘 조촐한 멤버들이 시간만 되면 온다. 그래서 뭐랄까 대체로 친구들 같다. 그리고 사연을 보낸 사람이 식당을 하면 그곳으로 가서 우연을 가장하여 서로 만나기도 한다. 이 조촐한 지방의 정희에 참여를 하면 사연이 매일 소개가 된다. 사연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하지만 한 줄의 댓글과 교관님은 이런 노래를 신청했습니다. 같은 말을 하루에 두 번도 소개가 된다.


이게 좀 재미있고 웃긴 건 매일 이렇게 두 시간씩 조촐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방송에 참여를 하니까 실제로 만나도 마치 꼭 늘 만나던 사람들처럼 여겨진다. 무엇보다 라디오에 이름이 매일 나온다. 메이저 방송은 사연 소개의 경쟁이 치열하지만, 지역 방송은 경쟁에서 덜 치열해서 그런지 꽤나 가족적인 분위기다. 또 그 나름대로의 소소한 재미가 있다.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 동안은 세상의 불행에서 잠시 벗어나게 된다. 쉬는 날 오전에 창을 미미하게 투과하는 빛 때문에 잠에서 깨다 다시 잠들고, 그런 반복이 주는 안정감 속에 라디오의 소리가 그 사이를 조용하게 파고든다. 잠에서 깨고 싶지 않은 나와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고픈 내가 부딪히는 그 사이를 라디오는 아무런 의심 없이 평온하게 이어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태어나는 순간 노래를 만든 이의 것이 아니라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것이라, 빛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색채처럼 만든 이의 고통으로 이루어진 노래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로해준다. 그리고 라디오가 있다. 라디오는 계란찜처럼 부드럽다.


예전에는 참 많이도 사연을 보내고 글을 올렸는데 언젠가부터 하지 않게 된 라디오 사연. 그러다가 문득 며칠 전에 사연을 한 번 보냈는데 그 사연이 아침의 평온한 공기 틈을 가르고 나왔다. 위로와 공감, 그 흔한 말도 디제이의 입을 빌려 스피커를 통해서 듣게 되면 또 조금은 특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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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책 중에 '보통날의 파스타'라는 책이 있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라는 책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박찬일의 글을 읽는다는 건 일타이피의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원래부터 글쟁이가 꿈이었던 박찬일은 이탈리아에 건너간 후로 그만 파스타에 미쳐서 요리사가 되었다. 그렇지만 박찬일은 여러 신문이나 잡지에 칼럼을 싣고 있는데 읽어 보면 글을 정말 잘 쓴다. 읽고 있으면 마치 눈앞에 그 풍경이 그대로 홀로그램처럼 나타나는 착각이 든다. 글은 그렇게 써야 한다고 나는 나에게 늘 말하곤 한다. 박찬일의 여러 칼럼을 찾아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보통날의 파스타는 파스타의 이야기다. 그 속에는 한국화 된 파스타가 아닌 제대로 된 파스타의 세계가 가득하다. 무엇보다 이탈리아에서처럼 집에서 손쉽게 파스타를 해 먹을 수 있게 여러 종류의 파스타 레시피를 알려주고 있는데 따라 해 먹기가 이렇게도 쉽다니.


몇 해 전이지만 덕분에 마트에 들르는 일이 자주 있었고 집에서 만들어 먹고 사진으로 남긴 파스타만 해도 스무 종류가 넘었다. 그래서 살이 통통하게 올랐고 파스타를 삶고 있으면 집에서 욕을 들어 먹기도 했다. 정말 해 먹고 싶은 파스타는 엔초비 파스타인데 큰 생 멸치를 준비해서 숙성하려고 병에 담가 두었는데 저녁에 집에 들어와 보니 비린내 때문에 모친이 버려버렸다. 순간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본고장과 한국의 파스타가 다른 점은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면에 양념을 거의 묻히는 수준으로 먹는다는 것이고 우리의 파스타는 국물에 말아먹는다는 것이다. 나는 조금 덜 삶아서 심이 씹히는 맛을 죽 느꼈었는데 적응이 되면 익숙해지고 그러면 파스타를 오래 씹을 수 있으니 맛이라는 것에 조금은 더 접근이 용이하다. 고 생각한다.


나의 주위에 미국에서 2년 정도 공부를 하다가 온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2년 동안 미국에서 먹은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그게 마치 미국의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본 것처럼 말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우리나라에서 죽 살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나라 음식을 다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집집마다 담그는 김치 맛이 다르고 지역마다 음식의 맛이 다르고 계절에 따라 나오는 음식 맛이 다르다. 음식은 당연하지만 문화다. 문화가 1, 2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먹어봐서 좀 아는데, 같은 말을 하는 사람 치고 신뢰가 가는 사람을 못 봤다. 이탈리아의 파스타 종류가 몇 가지나 있을까. 책에는 그 답에 대해서 잘 나와있다.


파스타는 이탈리아에서 우리 한국의 밥과 같다. 그런 파스타가 우리 곁으로 왔다. 그것도 깊숙이 들어왔다. 우리와 친숙하게 된 계기는 파스타는 해 먹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또 이전에는 파스타가 짜장면보다 훨씬 비쌌지만 이제는 가격도 저렴해졌다. 보통날의 파스타가 보통의 나날들 속으로 온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나쁘다거나 이상한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재 한 끼를 해 먹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조리하는 방법이 어려운 요리보다는 간단하고 맛있고 배부른 요리를 찾게 된다.


박찬일은 자신의 요리를 자신의 레스토랑보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게 서교동에 '몽로'라는 주점을 열었다. 몽로가 영업을 개시하자마자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우르르 가서 먹고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그것도 벌써 몇 년 전이었다. 지금은 몽로가 다른 곳에 또 문을 연 것 같다. 서울의 미식가 술꾼들은 복이 터졌다. 보통 2, 3만 원 미만으로 박찬일의 요리를 술과 함께 즐길 수 있다니. 몽로의 입구부터 문학의 기운이 가득한 반찬일 만의 분위기가 있다. 몽로에는 깍두기가 있는데 당당하게 하나의 안주로 가격을 받는 요리라 한다. 서울 근교에는 임지호의 식당도 있고, 가끔 서울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다. 임지호에 대한 글도 가끔씩 썼는데 그는 올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고 보통의 나날의 중심에 있고 보통날의 파스타를 먹는다. 보통날의 중심에서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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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09-16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년 있었으면서 모두 먹어 본 것처럼˝^^;; 조용한 일침이시네요. 합당한 말씀이십니다.

교관 2021-09-16 12:1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그쵸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는 순간 프라이팬이 달아오른다.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후끈 뜨거워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니 기름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난다.


동글동글 계란을 탁 깨트려서 달군 프라이팬에 펼친다. 촤아아아 소리가 경쾌하다. 일상에서 이렇게나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계란 프라이가 익어가는 소리가 아닐까.


기름을 만나 지글지글 투명하던 흰자가 점점 하얀색이 되어 간다. 마법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어디 가지 말고 계란 프라이는 이 모습을 두 발로 딱 서서 지켜봐야 한다.


기름을 찰방 하게 둘렀다면 계란 프라이의 끝이 비스킷처럼 그러데이션으로 바삭하게 익어 갈 텐데. 하지만 괜찮다.


그 순간 중간의 노른자가 샛노랄 뿐야, 라며 익어간다. 어제는 이맘때 꺼내서 먹었으니 오늘은 좀 더 익혀서 먹자. 한 번 뒤집는다. 샛노란 노른자가 터지지 않게 입을 다물고 숨을 참고 한 번에 성공을 한다.


계란 프라이가 잘 보일 수 있게 옮긴다. 접시 위에 계란이 떠올랐다. 후추를 솔솔 뿌리고 참기름을 한 두 방울 뿌린다. 으음 고소한 향이 코 안으로 들어와 뇌를 전부 흩트려 놓는다.


젓가락으로 후루룩 먹어도 맛있지만 오늘은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자. 끝에서부터 잘라서 야금야금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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