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들어서 보면 예전에 안 보였던 것들이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연걸의 영화 중에 가장 좋은 영화에 속하는 황비홍 1편. 황비홍의 영화가 주는 매력은- 이전의 중국 무협극에서는 빌런에게 많이 얻어맞다가 이기는 액션에 비해 황비홍은 빌런에게, 빌런들에게 몸을 내주지 않는다. 절대 한 대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점이 아주 좋다. 무영각을 사용할 때는 발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봐도 1편은 명작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이연걸의 대역이 대부분 액션을 한다. 그게 표가 많이 난다.

 

좀 더 이전의 영화, 세계적으로 대박을 친 ‘플래시 댄스’의 알렉스의 춤도 근래에 보면 제니퍼 빌즈가 아니라 대역의 표가 그대로 드러난다. 제니퍼 빌즈는 당시에 춤을 전혀 추지 못해서 대역을 사용했는데 감독이 애매하게 말을 흘리는 바람에 제니퍼 빌즈만 안 좋게 소문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픽이라든가, 전혀 표가 나지 않는 영화가 있다. 뭐야 그게 그래픽이라고? 하는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더 울프 오브 윌스트리트’가 그렇다. 이 멋지고 약 빨고 만든 것 같은 약 빤 영화에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마고 로비가 나온다. 욕 버전의 번역이 있는데 그 버전이 너무 좋다. 이 영화는 놀랍게도 천억이 들었고 그 대부분의 돈이 그래픽에 들어갔다. 아니 이 영화에 무슨 그래픽이 나오며 천억이나 쏟아붓지? 할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배경이 거의 다 그래픽이다. 그러니까, 큰 요트도, 태풍도, 파도도, 물도, 집도 모두가 다 그래픽이다. 이 영화도 시간이 지나면 그래픽이라는 게 일반 사람들도 눈으로 알게 될까. 그런 날이 올까. 온다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할까.


방송에 대한 잘못된, 눈에 드러나는 호러블 한 모습에 대한 이야기는 빨간고 무통을 빌려 한 번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338


방송이라는 게 시간이 지나서 보면 대역이 눈에 보이지만 당시에는 전혀 대역이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방송이라는 것에 몰입하게 되고 이입이 된다. 그리하여 어머니, 아버지들이 방송에서 이게 좋다고 하면 주머니를 털어 영양제나 평소에 먹지 않던 식품을 왕창 구입을 한다.


음식을 먹고 병이 낫는다던가, 또는 그 결과를 보려면 기본적으로 매일, 1.5톤 트럭으로 여섯 트럭은 먹어야 그게 가능할 텐데, 그런 것 따위 방송에서 말해주지 않으니 방송에 보이는 모습만 맹목적으로 믿게 된다.


방송에 대한 이런 민낯은 우리가 다 알고 있고 방송가에서도 알고 있지만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고 누군가 문제를 지적해도 거대한 방송가는 흥, 하며 코웃음을 칠 뿐, 그것에 대해서 적극 해명하거나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중은 개돼지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터졌을 때 다른 문제를 터트리면 자연스럽게 대중은 꿀꿀하며 그쪽으로 몰려가게 되어 있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고 있기에 방송은, 방송가는 대역을 사용하던, 또는 거짓을 말하던 크게 개의치 않는다. 시청률, 조회수가 많이 나온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런데 이런 관행에 직접 뛰어든 피디가 있었다. 김재환 감독으로 정말 골 때리는 프로듀서다. 김재환 감독은 ‘미각 스캔들’을 연출한 피디로 미각 스캔들을 통해 음식, 식당, 식재료의 진실을 알려서 크게 화재가 되었다. 그리하여 시청률이 좋아서 방송국에서 회차를 더 늘려 방송을 더 하자고 했지만 정해놓은 방송 분량만 기획을 하고 조사를 했기에 할 수 없다며 딱 정해진 회차만 하고 방송사의 거대한 유혹을 뿌리쳤다.


김재환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2011년에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를 만들면서 방송가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에 직접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트루맛쇼를 보지 않았다면 롸잇 나우. 당장 가서 보기를 바란다. 당시에 트루맛쇼가 극장에 걸리고 난 이후 대단한 후폭풍이 있었다.


그저 생방송 투데이, VJ특공대 같은 방송에 돈만 많이 주니 식당을 맛집으로 둔갑시키는 그 행태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영화제작자들이 직접 식당을 차려서 그들과 접촉을 하고 티브이에 방송이 되는 과정까지, 그 민낯을 세세하게 보여주었다. 당시 MBC에서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그것이 기각되면서 트루맛쇼는 더 큰 관심을 모으게 된다. 김재환 감독의 인터뷰 전문이다.


https://star.mt.co.kr/stview.php?no=2011060909034500908

영화를 한 번 보면 입이 크게 벌어지며 실 웃음이 나온다. 허허 그것 참. 그리고 지금 10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 되었을까. 여전히 지난번 빨간고 무통의 방송처럼 크게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대역을 쓰고, 그 대역이 사람들에게 대역이라는 사실이 크게 드러날 때쯤이면 시간이 아주 많이 흘러가 버려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럼 방송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도 모른다. 각자도생이며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 내가 굳건하게 믿고 있는 것들을 한 번씩 리셋해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 안다고 착각하는 것에서 모든 갈등과 문제는 일어나기 때문이다.


https://youtu.be/1Mv07WEnrXk

다큐멘터리 [트루맛쇼]를 보고 나서 사람들의 반응: 시흥 미디어

https://weekly.donga.com/List/3/all/11/92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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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는 내가 일하는 곳에서 아주 가깝다. 1분 정도 떨어진 거리다. 좀 걸어서 늘 가는 로컬카페에 가지 않고 오늘은 스타벅스에 들어갔다. 로컬 카페에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가 걸린다. 그 정도 걷는 동안 들어오는 오전의 도심지 풍경이 좋다. 매일 똑같은 곳인데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오늘은 바로 옆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자주 왔던 곳이다.  


스타벅스의 기둥에는 미술작품이 걸려 있었다. 나는 한참 쳐다보았다. 기둥 뒤에는 온통 유리창인데, 때마침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카페 안으로 와장창 쏟아졌다. 미술작품을 보고 있으니 작품 속으로 감각을 잃은 나의 마음도 같이 우르르 쏟아졌다.


이전에 왔을 때는 분명 없었던 그림인데 때가 되면 갈아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악마의 피처럼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들고 다니는 텀블러가 있어서 커피는 늘 거기에 담아서 마신다. 텀블러에는 술도 담아서 마시고 어묵 국물도 담아서 마시기도 한다.


텀블러에 받아서 온 커피를 홀짝이며 그림을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그림은 입체감이 드는 작품으로 글자 속에 숲이 가득했다. 초록과 세피아의 중간으로 보이는 색감의 나무와 숲이 글자의 음각 밑으로 펼쳐져 있는 착각이 드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잘 들여다보고 있으니 글자 속의 숲에도 빛이 마구 쏟아졌다.


한참을 보시네요.

왕왕 가서 눈인사를 주고받는 직원이 옆으로 와서 말했다.


예, 시선을 끄네요, 좋네요.

이 자리에 원래 불이 나면 이쪽 계단으로 나가시오, 같은 팻말이 붙어 있었던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어머, 맞아요, 주임님이 그 팻말은 저기로 옮기고 여기에는 그림을 걸었어요.라고 직원이 말했다.


커피를 더 드릴까요?라고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예? 그래도 됩니까?라고 내가 직원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자 직원이 따라오세요,라고 했다. 그제야 그림에서 눈을 떼고 기둥을 돌아서 가는 직원을 봤다. 직원은 빨간 조끼를 입고 있었다. 빨간 조끼? 게다가 키가 좀 작아진 것 같았다.


기둥을 돌아서니 햇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었다. 이렇게 보니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 것은 빨간 조끼를 입고 귀가 큰 토끼였다. 기둥 뒤의 문을 열고 그 속으로 쑥 들어갔다. 문이 막 닫히려고 했다. 나는 텀블러를 들고 그 문으로 따라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손에 들고 있던 텀블러가 어쩐지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떨어졌다. 나는 떨어지면서 옆으로 누웠다가 슈퍼맨처럼 팔을 뻗어 보기도 했다. 가끔 잠도 청했다. 이렇게 3박 4일 떨어지다 보면 저기 저 숲으로 떨어져 빛이 될까.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Somewhere Only We Know의 귀요미 버전 https://youtu.be/mer6X7nOY_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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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년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어. 하지만 굉장했지. 85년에 라이브 에이드가 있었거든. 라이브 에이드를 보며 사람들은 행복했지. 행. 복. 충. 만. 그것이었어. 정말 가슴 여기, 이 부분, 이 부분이 점점 따뜻해지는 게, 그때 그 따뜻함으로 사람들은 지금까지 지내왔을지도 모르지.


봐봐, 데이빗 보위가 저렇게도 지구인들의 틈에 끼여 지구인인 척 노래를 부르잖아. 프레디 머큐리도 그 옆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고. 데이빗 보위가 2016년에 우리에게 안녕을 고하고 자기네 별로 가서 프레디 머큐리를 만났을 때가 생각나.


이봐 프레디, 그간 잘 지냈나.


그렇다네 데이빗. 자넨 잠시 있겠다고 하더니 그렇게도 오래도록 머물다 오다니. 그곳 생활이 마음에 들었나 보네. 자네는 인간의 모습으로 잘 지내는 것 같았지.


프레디, 인간들은 꽤나 재미있게 지내고 있어. 금방 변질될 결혼생활에 책임감이라는 방부제를 뿌려 쉽게 변색되지 않게 하기도 해, 하지만 인간들은 말이야, 사랑이라는 묘한 감정으로 서로에게 어떤 힘 같은 것을 불어넣어주더군. 그 힘이라는 게 위로 같은 거야.


데이빗, 인간들이란 바보스럽긴 해도 사랑스러운 생명체라네.


그들은 내가 만든 노래를 좋아해 주었어. 프레디 자네의 노래처럼 말이야, 내가 지구인이 아니란 걸 모르는 것 같았어.


데이빗, 아마 그들 모두 알고 있었을 거야. 그들은 자네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인 거지. 저길 보라구. [당신을 통해 우리는 고양되는 존재] 자네가 지구인이 아니지만 저들은 아직도 자네를 지구인과 똑같이 추모를 하고 있어.


프레디 머큐리와 데이빗 보위가 만나 저 먼 스페이스 오디티에서 초록별을 보며 이제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지. 두 사람은 스페이스 오디티를 지나 러빙 더 에일리언까지 닿았어. 모두가 히어로가 된 거지.


조지 마이클 까지, 그들은 잠시 지구에 머물러 마법을 펼치고 사라졌지. 이 세상에서, 아니 은하계에서 가장 이상하고 엉뚱한 사람들. 개또라이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이 좋아.


그들이 85년에 한데 모여 이웃을 돕자며 신나게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지. 모두가 아이 같은 표정으로. 저렇게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데 어떻게 무대를 보는 우리가 신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있을까.


노래는 별거 아니야. 정말 별거 없어. 그저 시에 음을 갖다 붙인 거잖아. 그래서 별거 아닌 인간이 별거 아닌 노래를 부르니 이렇게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거야.


앞일도 모르며 활짝 웃으며 서로 붙어서 노래를 부르는 프레디 머큐리, 데이빗 보위, 조지 마이클을 봐봐. 정말 6세 아이들 같잖아. 저들은 지구인들이 아니야. 맨 앤 블랙의 관리 대상들이지. 잠시 지구에 와서 우리에게 행복과 즐거움을 잔뜩 던져 주고 다시 자기네 별로 가버렸어.



그래서 오늘 선곡은 모다? https://youtu.be/NxaGnK3A-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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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가지 않지만 나의 단골 선술집이 있었다. 어촌에는 일본에서 온 사에키 씨가 운영하는 작은 술집이 있다. 도쿄의 뒷골목에서 사에키 씨의 언니가 하는 이자카야의 모습과 메뉴를 그대로 들고 와서 이곳 바닷가에서 하고 있다. 작은 곳인데 늘 사람들이 많고 혼자서도 편하게 맥주 한 잔에 맛있는 꼬치구이를 몇 개 먹고 갈 수 있다.


처음 읽는 사람을 위해 말하자면 우리 동네는 바닷가입니다.

사에키 씨는 묘한 사람으로, 말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옆에서 늘 따라다니는 수행비서 같은 분위기다. 눈을 깜빡이지 않는 그런 신비한 사람처럼 보인다. 사에키 씨는 일본 사람이지만 일본 노래는 잘 모른다. 신승훈의 노래를 좋아하며 하루키가 누군지도 모른다. 당연하지만 한국말보다 일본 말을 더 잘하는데 한국 언어를 농담을 섞어 한국식으로, 게다가 여기 지역 특성상 사투리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루키를 모르는 만큼 오에 겐자부로나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누군지 관심도 없다.


그게 누구야? 교 짱?


사에키 씨는 나를 교 짱이라고 부른다. 나의 이름을 물었을 때 교관이라고 하니 편하게 교 짱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곳에 일주일 한두 번은 들러서 책을 좀 보며 맥주를 홀짝였다. 내가 책을 보고 있으면 무슨 책이냐고 꼭 묻고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라고 말하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표정 없는 얼굴로 그게 누규?

사에키 씨는 두세 달에 한 번씩 도쿄로 가서 비법양념이라든가, 중요 부품? 은 직접 싸들고 온다. 이 집은 전갱이 꼬치가 아주 맛있다. 물론 나의 기준이지만. 꼬치에 구워진 전갱이 구이를 한 입 먹고 맥주를 마시면 피로가 날아간다. 타지방이나 타국에서 나에게 손님들이 오면 – 친척이던, 친구든, 이모부든 사에키 씨의 가게로 데리고 갔다.


가게 안은 작아서 조촐한데 꽉 찬 분위기, 무엇보다 맛있는 꼬치구이가 있고 왁자지껄한 기분 좋은 소음이 가득했다. 이곳 어촌에도 일본인들이 많은데 그들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이곳에 사는 일본인들은 사에키 씨의 가게가 비좁아서 자리가 늘 없는데 일어서서 맥주를 마시고 꼬치구이를 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한다. 꼭 자리에 앉아야지, 같은 분위기는 없다.


교 짱? 어때 맛있어?라고 꼬치를 먹을 때면 사에키 씨는 꼭 물어본다. 그리고 나에게 듣고 싶은 일본 노래가 있냐고 묻는다. 좋아하는 노래 들려줄게.라고 말하지만 일본 노래는 몇 없다. 사에키 씨의 가게에는 주로 신승훈의 노래나 한국 가요가 조용하게 흘러나온다. 아직도 시디와 테이프로 노래를 튼다. 그래서 내가 듣고 싶은 일본 노래를 말하면 – 요컨대 이즈미 사카이가 있던 자드의 노래를 틀어 달라고 하면, 오케이 알았어,라고 하고는 신승훈의 노래를 튼다. 그런 식이다.


한 번은 술을 많이 마시고 나에게 있던 스메싱 펌킨스의 카세트테이프를 건네주며 틀어 달라고 했다. 스메싱 펌킨스는 대단한 그룹이지만 좋아하는 사람들만 좋아한다. 세계적인 그룹이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그룹이다. 사에키 씨의 가게에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별로 없을 때 스메싱 펌킨스의 1979를 들으면 기분이 참 좋다. 몽롱하며 모호한 분위기가 뇌를 툭 건드리는 느낌이다.

빌리 코건의 목소리만큼 매력적인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라고 나는 사에키 씨에게 말했다. 사에키 씨는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지? 같은 표정 없는 얼굴로 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다.


빌리 코건이 부르는 노래에는 어떤 의미가 있거든요. 시인이 한 줄의 시를 적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읽듯이 빌리 코건 역시 한 줄의 가사를 써내기 위해 엄청난 독서를 하잖아요. 빌리 코건은 술과 담배도 하지 않는 아주 이상한 사람이에요. 마치 오노 지로가 그 좋아하는 마늘도 명절에만 먹고 외출을 할 때 장갑을 꼈듯이 스시에 철학을 담았다고 하잖아요. 빌리 코건의 노래가 그런 것 같아요.


어머 교 짱, 오노 상을 알아?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야. 별일이네. 오노 상의 가게에도 몇 번 갔었지. 물론 예약을 거쳐야 하지만 말이야. 오노 상이 만든 스시를 먹고 있으면 도심 속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거야. 그때 나도 그렇게 장사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지. 교 짱이 오노 상을 다 알고 신기하네.


전 다 알아요.라고 나는 큭큭 웃었다. 그랬더니 사에키 씨가 교 짱, 귀엽네(어쩐지 귀엽다는 말은 한국어가 아닌 카와이 같은 말로 들으면 더 좋을 같지만),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사에키 씨, 생강 채 썬 거 좀 더 주세요. 와사비도 듬뿍 주세요. 전 여기 와사비가 너무 맛있거든요.


그랬다, 정말 와사비가 말도 안 되게 맛있다. 그냥 뜨거운 밥에 와사비를 비벼 먹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면 사에키 씨는 파를 더 얹어줄까?라고 한다. 사에키 씨의 가게에 파는 마늘 꼬치도 아주 맛있다. 역시 와사비를 살짝 찍으면 맥주를 부른다.


이 모든 게 전부 코로나 이전의 이야기다.

사에키 씨는 이렇게 생겨서 한 번 그려봄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사에키 씨가 너무 좋아하는 신승훈의 그 노래

https://youtu.be/k4X0z_Lv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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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시간이 조금 흐르면 영화의 끝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를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건지 아니면 뇌의 어떤 구간이 끝이라는 걸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인지. 어제도 영화를 두 편 봤는데 역시 하루가 지나니 끝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끝은 늘 그렇다.


꿈을 꿨는데 나의 꿈은 정말 뒤죽박죽 초현실이다. 그래서 꿈을 꾸고 나면 꿈을 잊어버리기 전에 메모를 해 놓는다. 잠이 까무룩 공격을 해도 꿈의 정경을 메모를 한다. 그래야 꿈 전체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꿈이라는 건 신나게 꾸고 나면 끝은 고사하고 무슨 꿈을 꿨는지, 내용이 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꿈을 꿨다는 기억만 있다. 그래서 초현실 꿈을 꾸면 메모를 해 둔다. 으 하는 얼굴로 미친놈처럼.


아니 그런 꿈 따위 기억이 안 나면 어때?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메모를 해 놓으면 현실에서도 꼭 꿈속에 있는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게 꼭 좋은 것은 아니나 나쁘지는 않다. 왜냐하면 초현실이니까. 좋다고만 할 수 없는 이유는 꿈속에서도 불안에 떨고 있거나 무서운 것들이 주위에 도사리고 있어서 이다.


[꿈의 내용]

어제는 나를 잘 안다는 사람이 나를 횟집으로 데리고 갔다. 가면서 나에게 자신의 아내와 신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 사람을 모르는데 왜 따라갈까, 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잠시, 곧 횟집에 들어갔다. 횟집인데 횟집 같지 않고 여느 선술집 같았다. 그 사람은 여기의 술집을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직원이 구십 도로 인사를 하고 우리를 한 테이블로 안내를 했다. 뒤돌아 보니 직원은 계속 구십 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고 직원은 구십 도로 꺾인 몸으로 나를 안내했다.


안내를 받고 따라가니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서 이 복도를 타고 가라고 했다. 또 다른 사람은 직원 복장은 아니었다. 복도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앞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와있고 머리는 아주 짧은 스포츠형에 눈의 초점이 없었다. 예를 들자면 영화 '잭 더 자이언트 킬러'에 나오는 못생긴 거인이나, 영화 '베오울프'에 나오는 그렌델을 닮았다.


나는 복도를 따라 끝까지 갔다. 복도의 끝에는 문이 달려 있고 그 문을 여니 또 다른 횟집(이건 진짜 바닷가에 붙어 있는 횟집 같은 횟집) 같은데 계단을 타고 내려가서 화장실에 가야 했다. 그런데 계단이 동남아 지역의 계단식 논처럼 타원형에 밑으로 한 없이 내려가야 했다. 계단을 내려 내려가니 횟집의 바닥이 나왔는데 화장실은 계단의 중간에 있었다. 그래서 다시 계단을 오르려 하니 내려올 때는 몰랐지만 오를 때는 말 그대로 올라야 했다. 낑낑 거리며 벽을 타듯이 계단을 올라야 이동이 가능했다.


다시 계단을 올라 중간에서 빠져야 화장실로 갈 수 있다. 거기서 화장실용 실내화를 신어야 하는데 신발이 가오리처럼 아주 컸다. 한쪽 신발에 두 발을 다 집어넣어도 될 것 같았다. 가오리 실내화를 신호 기우뚱 거리며 화장실에 가니 소변기가 3개가 있는데 2개는 망가져 있고 하나만 제대로 있었다. 제대로 된 소변기 앞에는 이빨이 사람 같은 개가 변기를 핥고 똥 같은 것을 먹고 있었다.


꿈 해석가님들, 저는 꿈을 꾸면 화장실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옵니다. 저의 삶이 더러워서 그런 겁니까. 화장실도 집에서처럼 깨끗한 변기가 아니라 아주 더럽고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재래식 화장실에서 무서워 벌벌 떨고 있다가 결국 똥통에 빠지기도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이 고장 난 두 개의 소변기 중에 하나의 소변기에 오줌을 누려했다. 그런데 소변기가 아예 박살이 나고 시멘트 벽에 소변기가 박혔던 흔적에 소변을 보려 하는데 사람 이빨을 가진 개가 와서 나의 다리를 핥았다. 그 순간 등으로 더럽다는 느낌이 척추를 타고 뇌를 건드렸다. 개는 온몸이 하얀 털을 가졌는데 이빨은 사람 이빨이고 입 주위에는 똥을 먹은 표가 났다. 그리고 화장실에는 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아주 더러웠는데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고 사람 이빨의 개와 그 사람과 함께 사진을 찍고 화장실을 나왔다.


그래서 끝은 어떻게 됐냐고 하면 모른다. 메모를 하다가 잠이 다 달아나버려서 그냥 일어났다. 꿈이라는 게 늘 이런 식이다. 그 시간이 한 6시 30분쯤 된다. 잠은 안 오지만 머리는 몽롱하고 아직 실제로 생리적 현상이 나오는 시간은 아니고, 이렇게 일어나면 애매하다. 예전에는 바닷가에 맥도널드가 24 시간 해서 일찍 일어나면 거기에 가서 커피를 홀짝이며 맥모닝 같은 걸 먹으며 책을 좀 읽고 있으면 사람들이 하나둘 출근을 하고 학교를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마지막도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마지막을 지켜봤는데, 그래서 그 마지막의 장면을 컴퓨터에 길게 기록을 해 놨는데, 그런데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왜 그렇게 많이 하냐고 하는데 그렇게 많이 하지 않으며, 또 내 아버지는 너무 하찮아서 나 정도가 이렇게 언급을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기 때문에 왕왕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하루키도 70이 되도록 언급을 하지 않았던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2019년 문예지 문예춘추 6월호를 통해 꺼냈다. 제목은 ‘고양이를 버리다 – 아버지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며 후에 한국에는 단편집으로 출간이 되었다. 나는 코로나가 덮치기 전, 한국 출간이 되기 전 하루키의 신작 에세이가 실린 이 문예지를 구입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서 달랑 이 책 한 권을 사들고 왔다. 그러고 나서 세상에 코로나가 도래했다. 하루키라는 대작가도 아버지를 잊지 않기 위해 어딘가에 자신의 아버지를 언급한다.

 

이 세상의 어떤 유명한 사람, 지도자, 대작가, 배우, 예술가. 세상을 호령했던 자들도 일단 달의 뒤편으로 가고 나면 누구도 애써 기억하려 들지 않는다.

나는 일어를 전혀 읽을 줄 모른다


나와 아버지는 그렇게 좋은 관계도, 그렇다고 안 좋은 관계도 아니었다. 어릴 때 목욕탕에 같이 가던 사이에서 후에 혼자 가게 되면서 사이는 보통의 서먹한 부자지간이 되었다. 누군가 먼저 다가가려 하지도 않았고 으레 그것이 마땅한 것처럼 지냈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아버지와 나는 알아서 그랬는지 필요 이상의 말이나 친한 척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버지로서 나는 나로서 지냈다.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거나 더 멀리 떨어지지 않고 그저 관조하거나 안부를 묻거나.

 


조깅을 하고 오는 길에 이제 잘 볼 수 없는 오래전에 지어진 집과 여인숙과 슈퍼를 봤다. 메타버스 시대에 언제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들이다. 시작은 있지만 언젠가 끝을 맞이하게 되면 그 끝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철거되기 전에 주민은 이곳을 떠날 것이고, 철거를 하는 사람들은 늘 하는 일상이라 특별히 이곳의 끝을 기억하거나 기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은 기억에서 배제된다.


매년 반복되는 가을이지만 올해 가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래서 올해의 가을 끝을 기억하는 사람도 어쩌면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내년에 다시 가을이 오기 때문에 지나간, 그간의 가을의 끝은 그대로 기억에서 사라진다.


얼마 전에 넷플 지옥을 봤다. 연상호의 ‘사이비’를 볼 때가 떠올랐다. 그때 상영관에서 3일인가 상영을 했고 이른 오전과 오밤중이거나 마지막에 영화를 틀어줬다. 마지막 상영을 봤는데 보는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사이비라는 영화를 보면 지옥이 정말 무엇인지, 그 세계관에 대해서 조금 알 수 있다.


지옥 시리즈도 그 속을 살짝 벌리면 그 지옥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 보인다. 내가 구치소에서 근무를 할 때 재소자(죄수)들의 접견(면회)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우리 애는 죄가 없어요, 다 친구를 잘못 만난 겁니다”라는 말이었다.

 

“원래 그런 애가 아니에요, 너무 착해서 그래요”가 결국 죄를 짓고 구치소를 거쳐 교도소로 가기도 한다. 그리고 제대로 그에 타당한 죗값을 받지도 않고 출소되기도 하고, 또 엇비슷한 죄를 짓기도 한다. 죄는 유전자처럼 사람에게 옮겨 붙어 계속 반복하기를 바란다.


아이러니하지만 죄를 짓고 잡혀야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편하게 잠들 수 있고 밥도 맛있게 잘 먹을 수 있다. 피해자 가족들이 돈을 들여 사람을 사서 가해자를 괴롭힐 수 없고, 아무래도 구치소는 안전한 곳이니까.


모두가 구치소, 교도소, 그곳이 지옥이라고 하지만 그곳은 사실 아주 평온하고 고요하게 흘러간다. 밥도 맛있고, 누구든 들어오면 규칙적인 생활로 인해 살도 찐다. 그래야 교정 시절의 인식이 좋기 때문이다. 진짜 지옥은 구치소 밖이다. 이 세상이, 이 현실이 지옥인 것이다.


밖에서는 자존심 뭉개지며 하하 호호 웃으며 사회생활을 하고 늦은 밤 파김치가 되어서 집에 들어와 잠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떨구며 이를 악물고 살아가야 하는 이곳이 지옥인 것이다.


넷플 지옥을 보면서 감독은 형태가 모호한 이 사회에 대한 불만을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전부 쏟아낸 것 같았다.


친구가 근래에 억울한 일을 당해서 약을 먹으며 겨우 잠을 청하고 있다. 친구는 보스턴에 있다가 요리를 잘해서 자신의 키친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했다. 한국으로 와서 자신의 샵을 차리고 사람들에게 쉽게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는 것도 알려줬다. 준비해서 출간한 책은 굉장히 인기가 좋다.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도 십만 명이 넘었다. 조금 푼수 끼는 있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건물주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었다. 서류상으로,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세를 밀린 것도 아니고 계약기간이 2022년까지인데 강제집행 서류가 나와서 당연하게도 법원에 정지를 신청했지만 기각이 나왔다. 황당하게도 이유가 없음이었다. 너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곧 대법원으로 가고 변호사까지 선임을 했다. 변호사도 너무 이상한 일이라 고심을 하는 것 같았다. 건물주 여자는 부동산업자로 이런 쪽으로 아무래도 잘 아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친구는 어제 잡지사와 인터뷰까지 했다. 거기서는 헤헤 호호하며 해야 하는데 너무 힘든 것이다. 소모하지 말아야 할 일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매일 지옥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왜 법은 억울한 사람을 자꾸 나타나게 만드는 것일까. 내년 오늘이 되면 작년 오늘을 웃으며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아이가 없어서 부모 마음은 잘 알 수 없지만 아이에 대한 사건사고의 법 처벌은 늘 사람들과 수직적이다. 정인이 양모 감형에 대한 7가지 이유를 봐도 그렇지만 법은 우리를 지켜준다기보다 억울한 사람을 자꾸 양산해낸다. 힘이 없고 세상의 약자는 법에 의해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 곳이 지옥인 것이다.  


끝은 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는 정말 끝이 어떻게 끝났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꿈도 그렇다. 꿈은 끝이라는 게 너무 모호하고 힘들다.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을 테니까 우리의 인생도 끝이 있을 것이다. 있겠지.









저 안에서 치킨에 맥주를 홀짝홀짝하면 참 맛있겠다.


가을의 색은 아름답지



너도 이제 겨울을 견뎌야 하겠구나


오전에 걷기 좋은 날이다


여기는 어디일까. 우리는 매일 어디로 가는 걸까. 매일매일 이동하는데 도대체 끝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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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2-03 1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래 전 비슷한 꿈을 반복해서 꿨던 적이 있죠.
저는 그게 해소되지 못한 욕구불만이 있어서는 아닐까 싶기도 해요.
생각도 많고. 또 젊었을 땐 잠을 엄청 많이 자게 되죠.
잠과 꿈은 아무래도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근데 지금은 꿈을 거의 안 꿔요. 안 꾼다기 보다 거의 잊어버리는 거겠죠.
그러니까 화장실 꿈도 거의 안 꾸죠.
잠도 줄어서 꿈 꿀 새도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나이 드니까 그건 좋더라구요.
전엔 꿈을 너무 많이 꿔서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을 때도 있었거든요.
쓰고 보니 나이 엄청 많은 거 같죠? 뭐 적지는 않습니다.ㅋㅋㅋ

근데 잡지 사러 일본까지 갔다 오시고.
하루키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맨 밑의 사진은 비틀즈의 그 문제의 앨범 자켓을 패러디...?ㅋㅋ

교관 2021-12-04 11:47   좋아요 1 | URL
저도 꿈을 많이 꿔서 더 피곤한 것 같아요 ㅋㅋㅋ 어제도 5시간 잤는데 꿈 속은 평소에 보지 못하던 인간들이 나타나서 벽짚고 난리 옆차기를 하는 등 꿈 속도 만만찮습니다.

중학교 때 우연찮게 하루키 놀웨이숲을 읽고서는 그만, 발을 빼기가 이젠 어려워졌습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