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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올여름에도 하루도 쉬지 않고 조금씩 달렸다. 8월은, 지금까지는 비가 오는 날이 많았는데 조깅을 하러 나가면 소강상태에 있거나 흩날릴 정도로 오면 그냥 달리거나, 비가 쏴아 쏟아지는 날에는 우산을 쓰고 강변 중간중간 마련해 둔 몸을 푸는 곳까지 가서 거기서 근력 운동을 좀 하고 온다. 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는 날에 거기에 가면 사람이 1도 없기 때문에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뭐라고 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소리를 높여 노래를 부를 수 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840


이 글을 쓴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일 년 전이라니.


조깅을 하는 코스가 있는데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는 반대 코스로 달린다. 그러려면 강을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서 저기의 다리를 한컷 찍어봤다. 요즘은 계절이 막 바뀌려고 해서 그런지, 물의 온도의 변화 때문인지 물고기들이 떼로 몰려 강변으로 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물결처럼 보이지만 그게 물결이 아니라 물고기들이 주둥이를 수면 위로 오구오구 드러내고 떼로 몰려다닌다. 그런 모습은 꼭 열심히 달리고 있을 때 보여서 갑자기 멈추어서 사진을 찍기가 좀 그랬다. 달리는 호흡이 끊어지기 때문에 계속 달려야만 했다.


오리가족의 모습은 우리가 바라는 행복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빠 오리가 위험한 게 있나 없나 앞장서서 개척한다. 그리고 나머지 오리가족이 뒤 따라간다. 가장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다. 오리가족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형성한 가족이 붕괴되는 모습이 뉴스를 늘 장식하니까 아이러니다. 아빠 오리는 새끼 오리들이 위험할까 무슨 일이 있을까 앞장서는데 방에서 죽어가는 3살 아이를 팽개친 엄마는 어떤 생각일까.

오리가족이 졸졸졸 물 위에 떠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마음이 편안하다. 어린 시절의 잠깐이지만 행복했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는 저녁 준비로 고등어를 굽고 동생은 엄마 옆에서 종알종알 노래를 부르고 아버지는 회사에고 오고 있고 나는 티브이를 보며 저녁시간을 기다리는 모습. 그러다가 아버지가 버스 정류장에 내릴 시간이면 나는 동생과 함께 마중을 간다. 동생과 이 버스, 저 버스, 내리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다가 한 버스에서 아버지가 내리면 동생은 아버지에게 달려가고 아버지는 동생을 안아 올리고. 오리 가족은 내 유년의 잠깐 행복했던 기억을 되살린다. 오리 가족의 모습은 정말 별거 아닌데 일단 강변으로 나와서 조깅을 해야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건물 안에만 있다면 전혀 볼 수 없다. 그래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이 요사스러운 풍경을 보기 위해서라도 매일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비가 온 후 갠 하늘이 좋다. 저기 구름 사이에 달이 숨어 있다. 달이 빼꼼하며 고개를 내미는데 그런 모습을 잘 기억해 뒀다가 멋지게 적어보고 싶다. 구름의 냄새를 맡고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달은, 생명은 지니되 움직이지 못하는 생명체들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매일 밤 적당한 거리의 하늘에서 빛을 땅으로 쏟아낸다. 달이 없다면 정말 이 세상은 어떤 식으로 변할까. 그러고 보니 살선생, 타코 센세이가 나오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암살 교실에서는 달이 반 정도 파괴된다. 엄청 재미있게 봤는데. 영화가 나왔을 때 예리나 선생으로 카라의 강지영이 나온다.


달은 늘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달을 보며 누군가를 생각하고 달빛이 비치는 가로등에서는 시를 그리기도 한다.


검은 밤 가운데

그대 이름을 써 봅니다


같은 오글거리는 글귀도 달밤에는 아무렇지 않다.


또 열심히 달리다 보면 아빠를 졸라서 밖으로 나온 귀염둥이들을 잔뜩 볼 수 있다.  저 녀석 뒷자리가 편한지 자세가 딱 저 자세로 줄곧이다. 아빠가 잠시 멈춰 전화를 받아도 딱 저 자세다. 강변을 따라 저녁에 조깅을 하면 엄빠를 따라 산책 나온 귀염둥이들이 많다. 전부 행복해 보이고 집에서 귀여움 받으며 잘 자라고 있는 느낌이 충만하다. 뉴스에서 나오는 것처럼 학대받고 버림받는 강아지들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며칠 전에 초딩 5학년 정도로 보이는 녀석이 강아지를 몰고 산책을 하면서 전화를 받으며 나불나불 가는데 강아지가 가기 싫다고 멈칫멈칫거리니 목줄을 확 잡아당기는 것이다. 제길.


신나게 한 판 달리고 도착하면 엘베에서 한 컷 올리고 들어간다. 보통은 그저 물을 마시는데 텀블러에 받아 놓은 물이 없으면 음료를 사 먹는다. 미숫가루처럼 보이지만 아이스라테다. 샷 추가.

이제 저녁에는 제법 바람이 차다. 땀도 폭염 때만큼 나지 않는다. 윗도리가 땀에 젖긴 젖지만 축축하지는 않다.


그간 매일 조깅을 하면서 선택에 대해서 왕왕 생각을 한다. 우리는 늘 선택 앞에서 고민을 하고 더 나은 선택을 못 한 것에 후회를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두 가지의 선택지에 섰다면 근래에는 선택지가 여러 갈래로 있다.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그 사이 길로 갈까, 선택의 폭은 더 넓고 더 어려워졌다. 선택을 하고 나서 늘 찝찝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잘못한 선택이라면 그 선택을 잘 한 선택으로 바꾸면 된다. 내가 택한 선택지가 비록 택하지 못한 선택지보다 못하지만 뭔가를 해서 이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이 들게 바꾸면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서 옳은 선택이라도 그 결과가 옳지 못한 경우가 되는 것을 많이 봤다. 요컨대 일류대학에 가서 모두가 이 사람은 부자에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 만은 않다. 초유의 기업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앞날이 탄탄할 거라 생각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좋은 직장은 있을 수 있으나 좋은 직업은 딱히 없다. 좋은 직장에서 좋지 못한 업무를 맡거나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해 조직에 귀속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며 매일을 보낸다면 그건 좋은 직업은 아니다. 여의도 증권가가 몰린 마천루에서 화이트 컬러들이 일을 한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된다. 모두가 우르르 흘러나와 점심밥을 먹기 위해 북엇국을 잘하는 집 앞에 긴 줄을 선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와서도 점심을 먹으려면 북엇국 집 앞에 줄을 서야 한다. 누구나 식당을 하기는 꺼려한다. 힘들다며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줄을 서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뭐가 좋고 나쁘고 그걸 정할 수 있을까. 좋은 직업이란 따로 있지 않다. 귀천이 없다.


글을 쓰기로 생각한 사람은 선택에 있어서 어쩌면 옳지 못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특히 문학을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을 한다는 건, 글을 쓴다는 건 세상에 가장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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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가 주는 매력은 정말 굉장하다. 색채는 빛이 고통으로 빚어낸 것이라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괴테는 말했다. 정말 밖에 나가면 다양한 컬러가 온 세상에 꽃처럼 피어있어서 보는 맛이 있다. 컬러의 미학 1에서는 단색에 가까운 컬러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905


컬러의 기묘함은 눈으로 보이는 컬러가 사진으로는 똑같이 담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야에 들어온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으로 담으면 생각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컬러가 눈으로 보는 것만큼 사진으로 표현이 안 되기 때문이다. 카메라 안의 ccd라는 것이 아무리 발전을 해서 빛을 그러모아 jpg로 만들어도 인간이 눈으로 보는 것만큼의 색표현은 하지 못한다.


멋진 풍경사진에는 안 그렇던데요?라고 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에게 선 보이는 사진은 후보정 작업이 들어간 사진들이다. 디지털이 세상에 도래하기 전 필름 사진도 다 후보정을 했다. 명부와 암부에 스프레이를 칠하거나, 필름에 연필로 색을 일일이 넣기도 했다.


다양한 색채를 잘 볼 수 있는 것이 꽃이다. 꽃은 정말 각양각색이다. 문어도 자신의 몸을 오만가지 색으로 바꿀 수 있다. 게다가 문어는 모양도 자기 마음대로 바꾼다. 그래서 바다뱀으로도 보이기도 하고 넙치로도 보이기도 한다. 속임수의 대가라고도 한다. 속임수는 문어의 특허라고 할 만큼 감쪽같다. 문어가 어떻게 속임수를 쓰는지 한 번 보자. https://youtu.be/TH3nUCzioNo

와 정말 끝내준다. 문어의 변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상은 치열하고 잔인하다. 그런데 신기한 건 자연 속에는 파란색이 없다. 파란색은 파랗게 보일 뿐 파란색이 아니라고 한다. 그건 문어도 마찬가지다. 문어가 파란색을 가지고 있다면 더 감쪽같이 변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말이다.


사진에서 컬러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사진작가가 니나가와 미카다. 한 번 보고 올까. https://brunch.co.kr/@drillmasteer/555


니가나와 미카의 사진을 보면 컬러가 보는 사람을 얼마나 기분 좋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이번 컬러의 미학은 꽃이 지니는 수많은 컬러를 담아봤다. 꽃은 인간 생활에 전혀 쓸데없다. 그런데 아주 쓸모가 있어서 꽃이 있는 집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축하나 병문안을 갈 때에도 꽃을 들고 간다. 추모할 때 역시 국화를 놓는다.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 엘리스에도 환상적인 컬러가 관객들을 유혹했다. https://youtu.be/NQvUSAzUtWk

채도가 빠진 듯한데 진한 컬러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다. 영화 속 미술이 돋보이는 건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이 그렇다. 미장센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위에도 고개만 몇 도 돌리면 아름다운 색채가 곳곳에 있다. 그러한 색채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사람 역시 색채가 다양한 사람일 것이다. 하루키의 장편 소설에도 색채가 옅은 다자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소설은 마치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 첫 부분의 스산함과 위대한 게츠비에서 게츠비가 마지막에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데이지를 기다리는 부분의 분위기가 전반에 걸쳐 깔려 있는 것 같았다.


이 사진과 밑의 사진은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담았다. 빛과 그림자를 받는 부분에 따라 색채의 차이가 있다. 또 꽃과 꽃잎은 보색으로 대비를 이룬다. 그게 참 신기하다. 꽃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역시 아름다울 것이다. 인간이 죽고 나면 꽃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만.

조화(造花)로운 컬러의 조화(調和).


장미만 엄청 담은 포트폴리오가 있는데 찾기가 귀찮다. 장미가 흔하다 하지만 장미만큼 예쁜 꽃은 없는 것 같다. 너무 많고 흘러넘쳐서 자칫 대수롭지 않은 대접을 받는데 장미는 그래서 도도할 것 같아도 늘 우리 곁에 머무는 꽃이다. 근데 이 사진의 꽃이 장미가 맞나.


벌이라도 날아들면 더 좋은 사진이었을 텐데.


요즘 빨강 머리 앤을 다시 보고 있어서 그런지 붉은색을 보면 앤의 우당탕탕 대환장파티의 일상이 떠오른다. 여차여차해서 남자애 대신 앤이 집으로 오고, 직설적인 옆 집 아줌마가 와서 앤에게 못생겼네, 이런 애가 왔네, 이리 좀 오거라, 해서 앤이 뿔이 나서 아줌마도 뚱뚱하고 무례하다고 하면 기분이 좋겠냐고 시원하게 할 말 한다. 대신 마릴라 아줌마에게 혼나고 방에서 못 나온다. 방에서 나오려면 옆 집 아줌마네 가서 사과를 해야 하는데 앤은 죽어도 하기가 싫다. 그러다가 사과를 하겠다고 하며 마릴라와 옆 집 아줌마에게 간다. 거기서 뭐라고 했기에 옆 집 아줌마가 앤에게 홀딱 반했을까.


앤이 집으로 오면서 마릴라의 손을 잡는다. 그때 처음으로 마릴라는 움찔한다. 그리고 앤은 말한다. 집에 돌아간다는 건 기쁜 일이에요, 좌우간 내 집이에요, 아주머니 전 정말 행복해요.


앤의 가냘픈 작은 손이 자신의 손에 닿았을 때 마릴라의 가슴속에는 뭔가 따뜻하고 유쾌한 것이 끓어올랐습니다. 그것은 마릴라가 어제까지 맛보지 못했던 어머니와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아 몽고메리는 어쩜 이렇게 별 거 없는 이야기를 너무 별 거 있게 적었을까. 빨강머리 앤은 미드 시리즈도 재미있다. 보기 바람요.

그리고 사진으로 출력을 해 본다. 사진은 손으로 만져야 비로소 완성이다. 파일로만 존재한다면 그건 사진이라기보다 jpg 파일인 것이다. 다양한 컬러는 손으로 만져보자.


그런 의미? 에서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https://youtu.be/Y-u7KBjJdww 김광석의 '너에게'를 들어보자.

김광석의 '너에게'를 로이 킴이 같이 부른 버전이 있다. 김광석의 노래에도 꽃들이 잔뜩 나온다.


나의 정원을 본 적이 있을까

국화와 장미 예쁜 사루비아가

끝없이 피어 있는

언제든 그 문은 열려 있고

그 향기는 널 부르고 있음을

넌 알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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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경리가 손주를 업고 창문틀에 원고지를 대고 글을 썼다. 사위인 김지하 시인은 옥고를 치르고 외동딸인 김영주는 남편의 옥바라지를 하고 있어서 손주를 돌 볼 사람은 박경리뿐이었다. 밥을 해 먹을 수 없어서 마른 북어포를 뜯어먹어가며 손주를 달래며 서서 글을 적었다.


글을 적으려면 불빛과 탁자가 있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은 누워서도, 걸으면서, 불빛이 없어도 글을 적을 수 있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야기를 일일이 메모했다가 부랴부랴 노트북을 열어서 글을 적을 필요도 없어졌다. 더 쉬워졌고 간편해졌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렇게 편리하고 글을 쓰기에 너무나 적합한 요즘 저 위의 박경리 소설가가 글을 적기 위해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글을 쓸 만큼 절실함이 나에게 있을까.


나는 계란 프라이를 먹으며, 창틀에 서서 북어포를 먹으며 손주를 업고 한 손으로 글을 쓴 박경리 소설가를 생각한다. 고작 계란 프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 계란 두세 개를 먹을 수 있다는 건 계란값이 오른 작금의 시기에 마음의 사치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사치는 조금씩 영역을 넓혀 아직 아이로 남아있으려는 마음속의 절실함을 가져가는지도 모른다.


복어포를 뜯으며 창문턱에 서서 글을 쓴 박경리 소설가에 비할바는 못 되지만 근래에 나에게 이토록 글에 대한 절실함이 남아있을까 생각해본다. 나도 분명, 글에 대한 갈망으로 잠들기 전까지 고민하며 글을 쓰다가 잠들었다. 매일 조금씩 그 시간에는 쓰고자 하는 글을 썼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에도 환자가족 대기실에서 글을 쓰다가 잠들기도 했다. 그때 새벽에 눈을 뜨니(겨울이었는데 5시가 되면 보일러를 끈다. 그래서 추워서라도 일어나야 한다) 다른 가족이 나에게 이불을 덮어놨다.


그 뒤로도 지금까지 매일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그때에 가졌던 절실함을 손상되지 않게 가지고 있느냐,라고 한다면 나도 자신이 없다. 지금은 분명 그때보다 방대하게 글을 쓰고 있다. 습관과 루틴이 고착되어서 나의 생활 반경 내에서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그에 맞게 방호막을 치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상상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메모를 해놓고 모두가 잠든 밤이 도래하면 노트북을 열어 화면에서 나오는 빛을 받은 나는 신나게 글을 적었을 때의 나에게는 마음의 사치는 적어도 없었다. 그때 맛있게 먹었던 계란 프라이는 지금 먹는 맛과는 또 달랐다. 그때는 고작 계란 프라이였고 단골 식당에서 계란 프라이 하나 달라고 하기도 했다.


박경리의 토지는 못 읽었다. 아마 앞으로도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다. 김약국의 딸들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허장강, 엄앵란과 황정순이 나오는 영화로도 몇 번 봤다. 통영의 유지 김약국 네가 일본인이 들어옴으로 해서 몰락해가는 과정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감독을 했던 유현목 감독은 붕괴해가는 한 가정의 이야기 ‘오발탄’도 만들었다. 나에게 있어 재산이라 함은 흑백 시대의 한국 영화를 잔뜩 본 기억이다.


박경리 소설가는 글을 써야만 하는, 그리고 그의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었다는 것은 절실함을 넘은 어떤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그건 초기 작품들이 한국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미망인의 이야기가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박경리는 비극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비극은 칼날이 되어 베고 찌르고 아프게 했다. 고 생각한다.


예술은 잔인하다. 예술은 삶과 흡사하고 밀착되어 있다. 삶도 잔인하다. 잔인하게 인간을 몰아세운다. 고작 계란 프라이를 매일 먹을 수 있다는 건 잔인한 매일을 숨을 쉬게 해 준다. 북어포를 씹어 먹으며 창문 틈에 서서 손주를 업고 글을 쓴 박경리를 생각한다. 26년 동안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를 생각한다. 대문호라는 칭호는 박경리 소설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 유명한 소설 ‘토지’를 읽은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의 딸 김영주 토지문학 재단 이사장이 토지를 알리기 위해 생을 보냈다. 그랬던 김영주도 2019년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늘 이전에도 매일 먹었던 고작 계란 프라이를 앞으로도 매일 먹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마음의 사치를 줄이고 매일 계란 프라이를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열심히 글을 적겠다. 연일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한다. 마지막 여름을 일별 한다. 매미소리가 좀 더 크게, 길게 들려온다.



오늘도 내 마음대로 선곡. https://youtu.be/mLc5FHrVTP0

가사가 좋아서 왕왕 듣게 되는 하얀 나비. 아주 많은 리메이크가 있는 노래가 이 노래, 하얀 나비가 아닐까 싶다. 김정호는 폐결핵 때문에 일찍 죽었다. 김정호는 폐가 망가지는대도 요양원에서 뛰쳐나와 노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고통을 참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아마 딸에게 아빠가 가수라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래를 힘겹지만 불렀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련하다. 아련함이란 말을 영어로는 어떻게 될까.


김정호는 솔로로 노래를 부르기 전에 ‘사월과 오월’ 그리고 ‘어니언스’에서 활동을 했다. 풍부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음악만을 하게 두면 되는데 대마초 파동에 연관도 없는 김정호가 연루되어서 피해자가 되고 만다. 김정호가 죽은 나이 고작 33살. 그의 노래 ‘이름 없는 소녀’는 정말 호소력 짙다.


재미있는 건 저 유튜브 속 윤복희 쇼에서 노래를 부르는 김정호의 영상 댓글에 가수 윤복희가 댓글로 김정호에 대한 애틋함을 드러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 어린 대댓글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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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을 찍은 사진을 보면 그 어떤 구름도 같은 구름이 없다. 그래서 구름을 담는 사진작가들은 구름을 사람에 비유하기도 한다. 사람은, 사람의 얼굴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쌍둥이도 얼굴은 다르다. 그래서 구름을 담는 사진가들에게 구름은 단지 하늘이 만들어내는 자연현상이 아니라 그 속에서 고찰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 시도를 한 첫 사진가가 아마도 미국의 근대 사진가 스티글리츠다. 그는 이퀴벌런트라는 이름도 요사스러운 연작 시리즈로 구름을 담아서 인간의 마음과 결부시켰다.


스티글리츠의 아내가 누구냐면 바로 조지아 오키프다.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은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 ‘붉은 칸나’를 따라 그려보기도 했다. 스티글리츠의 사진을 검색해서 보면 조지아 오키프가 남편을 위해 발가벗고 기꺼이 모델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스티글리츠는 희대의 바람둥이였다.


조지아 오키프는 유명하니까 대체로 사람들이 다 안다. 그녀가 그린 꽃에서는 색감에서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지고 움직일 것 같은 태동도 느껴지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오키프보다 그녀의 남편인 사진가 스티글리츠의 사진을 먼저 접했다.


스티글리츠는 자신의 학생이었던 조지아 오키프의 특출한 능력을 보고 예술에 대해 가르치면서 연인으로 발전을 했다. 스티글리츠는 아내까지 있었지만 오키프는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키프를 두고 또 바람을 피웠고 그 충격으로 오키프는 두 달간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 우울증이 심했고 유방에 생긴 양성종양을 제거하는 동안에도 스티글리츠는 다른 여자와 연애를 즐겼다. 그랬던 오키프가 자기 돌보기로 모든 것을 이겨내고 화가로서 일종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오키프의 관한 일화(이 이야기는 하루키의 에세이에 소개되었다) 중 하나는 1938년에 석 달 정도 하와이에 체류했다. 파인애플 통조림으로 유명한 돌 사의 초대를 받았다. 비용은 전부 댈 테니 마음껏 하와이에 머물며 광고에 쓸 파인애플 그림 한 장만 그려달라는, 실로 배포 큰 제안이었다.


오키프는 이혼의 상처도 달랠 겸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키프는 하와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신선한 것이 그녀의 창작욕구를 부추겼다. 벨라도나, 하비스쿠스, 플루메리아, 꽃 생강, 연꽃 등 많은 그림을 아름답게, 오키프 식으로 그렸다. 그런데 파인애플 만은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파인애플의 그림은 한 장도 그리지 않은 채 뉴욕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뒤로 난감한 돌 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찾아보세요.


하루키도 오키프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도 한 번쯤은 이렇게 대담해지고 싶지만 천성이 그러질 못한다고 했다. 사진 수업을 듣던 꼬맹이 오키프가 청탁이 들어와도 나는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릴 테야, 그리고 싶지 않은 건 청탁이 들어와도 죽어도 그리지 않을 테야. 라며 그리고 싶은 그림만 잔뜩 그리며 살다 갔다. 일종의 미술의 권력을 쥐고 마음껏 즐겼다.




요즘은 하늘을 보면 구름이 그림을 그리고 있어서 폰으로 담기만 하면 된다. 근래에는 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동호회처럼 사진 찍을 인간들을 모아서 구름을 열심히 담으려 다닌 적도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구름으로 검색하면 각양각색의 구름성애자들의 사진들이 가득하다. 그걸 보는 재미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재미는 구름 사진뿐 아니라 그 밑에 써 놓은 글과 댓글이 재미있다. 사람들은 구름 사진에서 위트와 유머를 전달한다. 아니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지?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한 달 전인가, 한 달 반 전인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는데 그 사연이 소개가 되었다. 소개가 되었을 때 실시간 댓글로 그런 글들이 올라왔다. 그래서 선물을 보내준다는데 아직 선물이 오지 않았다.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당첨이 되어 선물을 받는 기쁨이 있다. 그런 기쁨은 계획이나 생각에 없던 기쁨에 속한다. 배캠을 아주 열심히 들었을 때, 배캠에 사연을 보내서 선물이 왔다. 배캠은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서 유일하게 선물이 없다.


구름이 재미있는 건 멀리서 보면 저 구름이 손으로 만져질 것 같은데 비행기를 타고 구름 속으로 들어가면 여기가 구름 속인지 어떤지 제대로 분간을 할 수 없다. 꼭 역사 속에 있는 것 같다. 지금 이 순간도 역사의 한 페이지고, 우리 모두는 역사에 한 점을 찍으며 발자취를 남긴다. 하지만 시간이 훌쩍 지나야 이런 발자취가 드러날 테지만 지금 현재는 역사 속에 있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한다. 시간 속에 있지만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시간 속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걸 인지하지 못한다. 구름이 딱 그렇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 서보면 비극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티끌 하나 없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은 우리가 늘 꿈꾸는 세상이다. 비 오는 날이나 흐린 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비가 오는 날에 집중이 잘 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역시 이렇게 맑고 깨끗하고 구름이 보이고 쨍하고 더운 날이 좋다.

여름에 이렇게 대기에 가스층이 껴 있지 않아서 맑은 날과 하얀 구름이 보이는 날이 많은 건 아마도 코로나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 코로나가 처음 세상을 위협했던 작년에 인류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자동차도, 공장도, 더불어 생활의 움직임도. 그러다 보니 뿜어내야 하는 가스와 이산화탄소 같은 것들이 코로나 이전보다 덜 나와서 동물들이 더 늘어나서 도심지에 나타나고 물이 맑아지고 하늘도 이렇게 깨끗해지지 않았나 싶다. 코로나 이전의 여름의 하늘을 담은 사진을 보면 늘 가스층이 대기에 껴 있어서 습도도 높고 뿌연 하늘이었다. 과학을 벗어나서 이야기하면 지구가 인간들 때문에 너무 아프니까 이렇게라도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게 아닐까.


구름은 우리를 섣불리 위로하려 들지 않는다. 위로하려 하지 않는 모습에서, 그저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 주는 그 모습이 그저 그런 위로가 된다. 그래서 구름은 사람과 비슷하고, 그런 구름 같은 사람이라면 곁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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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드 사진은 일명 스트리트 포토라고 불리는데 길거리를 오고 가는 사람들의 위트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말한다. 요즘은 이제 이렇게 사진을 담을 수 없다. 사진에 있어서 자유로운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이제 캔디드 사진을 마음대로 담으면 안 된다고 한다.


사진의 분야는 넓고 사진의 종류도 아주 많다. 풍경을 찍은 사진, 그 풍경 중에서도 밤하늘만 담은 사진, 바다만 찍은 사진, 나무 사진 등 풍경을 찍은 사진도 종류가 무시무시하다. 사진은 지구인들이 매일 한 장씩만 찍어도 그 수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똑같은 사진은 1도 없다.


같은 구도로 같은 표정을 찍은 셀카 100장도 다 달라서 하나를 고르는데 시간을 들이는 것을 보면 사진이라는 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카메라를 들고 같은 피사체를 담아도 다 다르다. 사진의 매력이라면 그것에 있다.


그런데 사진 중에서 최고로 꼽는 사진은 무슨 사진일까. 그건 바로 인물사진이다. 사람을 담은 사진이 가장 아름답고 드라마틱하며 감동적이다. 그래서 보도사진에서도,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 라이프 지에서도 전쟁과 기근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아 세계에 알렸다.


아이를 낳고 나면 폰갤러리 속에는 남들이 보면 거기서 거기인, 재미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아기의 사진만 대거 들어있다. 엄마의 눈에는 그 모든 사진이 전부 다르고 다 재미있고 몽땅 사랑스럽다. 사람을 사진으로 담게 되면 그 순간의 감동을 사진으로 잡아둔다는 의식이 우리를 지배한다.


예전에 사진 프로젝트 중에 무용을 전공하려는 여고생의 연습과정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 과정이 꽤나 길었는데 왜냐하면 모르는 이가 와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놀라서 평소처럼 하기 힘들다. 그렇게 때문에 친해져야 하는 과정을 시간을 들여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사진 한 장 속에는 아마도 이런 일련의 과정까지 녹아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사진에는 그렇게 담은 사진을 아이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여고생들만의 그 발랄함을 사진을 담았다. 여고생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리고 단순하다. 표현을 하지 않으며 표현을 잘한다. 이 말은 어른들에게는 잘 말하지 않지만 친구끼리는 비밀 공유를 한다.


이런 여고생의 고민과 불안을 사진으로 담아서 95년에 사진의 나라 일본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 있었다. 그게 바로 혜성처럼 등장한 일본의 히로 믹스였다.

근래에 들어 찍은 캔디드 사진 속에는 사람은 없다. 이제 그렇게 담을 수 없다. 만약 근래에 캔디드를 담았다면 말을 하고 사진을 보여주고 원하지 않으면 삭제를 하고, 그런 과정을 일일이 거쳐야 한다.


캔디드 사진은 카메라가 있다면 그저 찰칵하고 담으면 될 것 같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니는 길목이나 도로, 그 길거리에 어떤 사람들이 다니는지, 그리고 건물의 그림자나 길어지는 길이 따위를 계산을 해서 대부분 캔디드 작가들은 사진을 담는다. 그러니까 처음 가는 장소에서 멋진 캔디드 사진을 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캔디드 사진은 주로 영국 런던의 사진가들이 많이 촬영하고 있다. 그들의 사진을 보면 정말 입을 아 하고 크게 벌리게 된다. 위트와 유머가 가득한 사진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하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사진가 하면 절대 빠질 수 없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숑의 사진도 결정적 순간의 캔디드 사진이다. 


피카소의 친구였던 로베르 두아노의 사진도 캔디드다여기서 유명한 피카소 사진을 하나 소환하면(링크 안에 있다가장 유명한 사진 중에 하나인데 로베르 두아노의 위트를   있는 사진이다그런데  사진을 그냥 찰칵 찍었을까아니면 “이봐피카소! 빵을 이렇게 올려놓고 너는 손을 내려라며 찍었을까.


유명한 사진가들 중에서도 사진으로 가장 웃음을 주는 사진가는 엘리엇 어윗이 아닌가 싶다. 사진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일이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의 사진 속에는 위트와 유머가 가득하다.

엘리엇 어윗은 강아지를 담는 사진가로도 유명하다. 개들과 사람이 공존하는 사진, 강아지와 인간의 위트를 사진으로 담았다. 또 메릴린 먼로처럼 유명인들도 그의 피사체가 되어주었다.


최초의 얘기로 돌아가서, 이 사진들은 아이폰 3이 나오기 전의 사진들로 무거운 카메라를 울러 매고 출품의 목적을 두고 미친 듯이 하루에 몇 시간씩 사진을 담으러 다닐 때 찍은 캔디드 사진들이다. 그때 주제를 숫자 ‘2‘로 정했다. 2, 둘, 이, 두 명, 두 사람을 주제로 정하고 그에 맞게 캔디드 사진을 담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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