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타미 주조의 영화다. 이 한 마디의 말로 모든 게 정리가 되는 느낌의 영화다. 이타미 주조만큼 속도감 있고 단순하지만 명쾌하게 영화를 만드는 이도 없다. 이타미 주조는 감독이기도 하지만 작가에 배우이기도 하고, 디자이너에 카피라이터에 번역가에 일러스트까지 한다.
이런 계보를 잇는 예술가가 무라카미 류가 그렇고, 릴리 프랭키도 그렇다. 이타미 주조의 영화는 일단 보기 시작하면 눈을 뗄 수 없다. 그의 대부분 영화 속에는 음식도 많이 나온다. 음식으로 인간의 모든 감각을 표현한 담포포는 정말 굿이었다.
담포포는 내 최고의 영화들에 껴 있다. 담포포에 나온 불고기가 진정한 불고기, 한국을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슈퍼의 여자 이 영화도 깔끔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요즘의 일본 감독들은 이타미 주조처럼 왜 깔끔하고 단순하고 명쾌하게 영화를 만들지 못하나. 영화 속에 손님으로 나오는 배우 중에는 고독한 미식가에서 고로상이 한국음식을 먹었던 편, 김밥에 오징어볶음에, 잡채에 삼계탕 라면을 먹었던 니시정의 주인으로 나온 배우도 있다. 이 영화가 96년 작품인데 시간이 많이 흘러도 딱 보면 얼굴이 그대로라 알아볼 수 있다.
내용은 망하기 직전의 중형 마트(슈퍼) [정직한 고로]의 지배인 고로가 맞은편에 파격 할인 마트가 나타나서 망할 위기에 처한다. 그래서 자신의 마트를 구하려는 내용이다.
동창이던 하나코를 만나게 되고, 하나코를 부지배인으로 채용하면서 점점 마트가 되살아난다. 하나코의 장점은 오직 [정직함]이었다. 정직함으로 손님을 대하기 시작하니 변화가 찾아온다. 점점 변화하는 모습이 통쾌하면서 재미있다.
즉 상품을 판매하거나 거래를 하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소통에서 [정직]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정직한 고로 마트 맞은편에 들어선 파격 할인마트는 가격이 저렴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객을 그저 호구로 본다.
가격이 저렴한 고기는 유통기한이 다 되어서 색이 흐리멍덩하지만 붉은 조명 아래에 놔두고, 할인해서 50엔인 물품은 원래 30엔짜리다. 하나코는 이런 점을 잘 알고 정직한 고로 마트에서 손님들을 정직함으로 대한다.
이 영화는 고로가 주인공이지만 정작 진짜 주인공은 하나코다. 고로는 육상부에, 유도부에 산악회 출신으로 덩치도 좋고 그쪽으로는 꽤나 잘하지만 마트 운영에는 잼병이다. 그러나 하나코는 물건에 대해서 잘 알고, 상품 진열에 대해서도 빠삭하다. 신선한 채소의 나열이라든가 머리가 재빠르게 회전을 한다.
이 영화를 잘 보면 당시 그저 집안에서 가정살림이나 해야 하는 여자들을 밖으로 꺼내서 일본사회를 지탱하는 남자들보다 훨씬 낫다는 점을 하나코를 통해 알 수 있게 만들었다. 하나코는 여자 손님들을 전부 불러서 매일 마트의 음식을 시식하게 한 다음에 의견을 하나하나 듣는다.
거기서 나오는 여자 손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손님을 속이는 건 안 된다, 정직하게 음식을 만들어 판매해야 한다. 경제 용어인지는 모르겠자만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물품을 만든 회사는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여자 손님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만든 오니기리를 다시 시식하던 손님들이 굿을 외칠 때는 보는 나도 기분이 엄청 좋다.
이타미 주조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녀의 장단점을 잘 정리배치하여 역할을 주었다. 하나코와 주위 여성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중심을 찾아가지만 남자들은 그러지 않는다. 부정한 방법으로 어떻게든 상대방을 무너트리려는 얄팍한 모습을 보인다.
이타미 주조의 영화는 유머 속에 적확한 노림수가 있다. 아주 재미있다. 이타미 주조는 자살로 생애를 마감함으로 97년 이후의 영화는 볼 수 없다. 이타미 주조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다. 오에겐자부로와의 일들 하며. 아무튼 망해가는 우당탕탕 마트 살리기 고군분투기 [슈퍼의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