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다 밥상 다리가 힘이 없어 기울면서 라면이 전부 방바닥에 쏟아졌다. 그저 멍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그저 멍하게.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아침밥은 고사하고 씻고 옷을 입고 마을버스를 타고 대로변까지 나가서 다시 1029번 버스를 타야 한다. 언제나 그 버스를 그 시각에 타지만 늘 사람들로 터져 나간다. 양보라든가 친절을 찾다가는 버스를 타지 못한다. 버스를 놓치면 그다음은 상상하기도 두렵다.


버스 문에 매달리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올라타야 지하철을 탈 수 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버스 속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숨 냄새와 비 비린내로 먹은 것도 없는데 구토가 인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지옥철에 오르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 버린다. 보이는 건 사람들의 등과 길고 짧은 머리카락이 달린 머리통뿐이다. 고개를 꺾어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도 무사히 회사에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죽을 각오로 지옥철에 올라야 회사에 제대로 출근할 수 있다. 소변이 마려워도 참아야 하고 앞사람의 머리에서 냄새가 나도 참아야 한다.


이렇게 모든 걸 참아가며 서울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5년째다.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 편지를 쓰며 힘없이 서 있던 나를 안아주며 나의 길을 두려움 없이 상경했지만, 현실은 나의 발끝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기만 한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 미래인 지금도 오직 희망 하나만 믿고 달려왔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배신을 잘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 이 세상에서 나는 홀로 되어 버렸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빨리 변해 가는데 나만 같은 곳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소설 속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하워드와 앤이 된 기분이다.


마음에 심한 공백이 생기면 마왕의 노래를 들었다. 고흐의 불꽃 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에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고 마왕이 말했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돈, 큰 집, 빠른 차. 명성 사회적 지휘 같은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라며 나의 등을 토닥여 주곤 했다. 마왕도 가버리고 남은 것이 없다. 이젠 지친다. 라면이 쏟아졌다. 밥상 위에서 흐르는 라면 국물이 바닥으로 퍼지는 꼴이 마치 머리가 터져 뇌하수체가 흐르는 모습처럼 보인다.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https://youtu.be/HRlwPwqC-Y0?si=kLAeXlcO39z22M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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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차인표가 이경규가 나오는 프로에서 연기를 못한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은 연기자로서 이류라고 했다.


하지만 최민식, 송강호 같은 일류만 나오면 세상은 좀 재미없을 것이라 나 같은 이류 연기자도 필요하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나는 한 십 년 전에 차인표가 소설을 썼다는 걸 알고 그의 소설 두 편을 구입해서 읽었다. 구입해서 읽은 때가 2011년인데, 책갈피도 그대 로고, 끼워 넣어준 작은 책자도 그대로다.


‘잘 가요, 언덕’은 위안부 이야기였고, ‘오늘 예보’는 초현실과 리얼리티가 섞인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소설을 읽고 눈물 같은 건 나오지 않는데 오늘 예보를 읽다가 눈물이 흘렀다. 이 소설은 저 밑까지 떨어진 인생의 이야기가 있다.


이 소설은 유머를 잃지 않고 있는데 웃으며 즐겁게 읽다가 끝으로 갈수록 묘하게 코끝이 찡해졌다. 그런 힘이 있었다. 어른들의 동화였다.


누군가는 차인표를 이류 연기자, 2류 배우라 할지도 모른다. 

그의 생각, 그의 생활, 그의 인간관 무엇보다 그가 쓴 소설을 읽으며 

차인표가 2류 배우일지 몰라도 인간으로는 일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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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고스의 영화는 비슷한 듯한데 다르고, 복잡한 듯한데 단순하다. 정확하게 자신의 철학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서 마니아들이 사족을 못 쓰게 만드는 아주 영리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년 외적으로의 최고의 영화가 서브스턴스라면 내적으로의 최고는 단연 가여운 것들이었다. 불쾌한 골짜긴데 한 번 빠지면 거기서 나오기 싫은 영화들이다.

서브스턴스의 또 다른 히로인 마가렛 퀄리와 가여운 것들에서 엄청난 연기를 보여줘서 또 놀라게 했던 엠마 스톤, 연기 천재라 불리는 대포 형님, 그리고 이 사람의 연기가 너무 좋아서 놓치지 않고 보고 있다.

바로 제시 플레먼스. 자신의 아내와 함께 나온 영화와 시리즈도 많다. 가장 가까이는 시빌 워에서다. 그 무시무시한 말, 미국인이냐 아니냐 물었던 군인. 그리고 영화 파고의 흥행으로 인해 드라마 시리즈 5까지 만들어졌던 파고 시리즈 중에 시즌 3에서도 두 사람은 부부로 나온다.

파워 오브 도그에서도 부부는 함께 나온다. 제시 플레먼스는 늘 살이 쪄 있는데 살쪄있는 게 연기하는 것에 전혀 방해가 안 되는 이상한 배우다. 높은 억양으로 대사를 하지 않는데도 묘하게 몰입도가 높다. 심리극에 최적화되어 있는 배우 같다. 연기를 잘 한다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는 몹시 날씬해져서 나온다. 그래서 얼핏 보면 멧 데이먼의 모습도 보인다. 이 영화도 가여운 것들만큼(은 아니지만) 야하고 또 야하고 야한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까 요르고스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애초에 야한 장면이 있음을 알고, 받아들이고 출연하는 것 같다.

마치 일본의 아라키 노부요시의 모델이 되고 싶은 셀럽의 여자들처럼 말이다. 아라키의 사진 모델을 하려면 기꺼이 껍데기를 전부 벗어야 한다. 목욕탕을 제외하고 다른 곳,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금기고 불쾌하지만 아라키 노부요시라면 달라지는 것이다.

이 영화는 세 편의 영화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배우들이 다른 역을 한다. 크게 복종, 불신, 숭배를 영화는 말한다. 권력 앞에 힘없이 복종하게 되어가는 모습이 기괴하게 그려지고, 사랑에 대한 불신에서 오는 모습 역시 기괴하고, 마지막 사이비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의 모습 또한 기괴하다.

기괴하고 기괴해서 기괴한 이야기 세 편이 있어서 요르고스의 팬이라면 기괴함에 풍덩 빠질 수 있다. 자꾸 말하는 건데, 이렇게 기괴한 영화가 나온들 지금 헌제에서 윤도리와 그의 변호인단들이 하는 말을 들으면 세상 기괴의 끝을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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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샌로즈가 5월에 한국에 온다는데? 맞나 모르겠다. 엑슬로즈 형님 드럼통 같은 몸매 관리는 좀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곤센로즈도 머틀리크루만큼 사고뭉치로 신문 1면을 장식했었다. 그러나 노래들이 전부 다 좋은 거야. 나도 실은 ‘노킹스 온 헤븐스 도어’를 밥 딜런이 아니라 곤샌로즈의 노래를 듣고 알게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


가죽에 쇠줄을 몸에 칭칭 감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던 다른 헤비헤비한 형님들에 비해 엑슬로즈는 그 잘생긴 얼굴에, 그 잘 빠진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꼬툭튀의 아주 짧은 숏 팬티 바람으로 무대를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노래를 불러서 문화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숏 팬티에 정장 가다마이를 입기도 했는데 이게 패션 테러 같은데 또 어울렸다는 거지.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는데 피아노도 잘 쳤어. 마초에 부드러움이 묻어서 아주 기묘한 매력을 발산했지.


그 모습이 너무 멋진 거였다. 무엇보다 엑슬로즈의 음색, 이 쇠 갈리는 듯한 이 미친 음색에 한 번 빠지니까 빠져나올 수 없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으니 음악평론가들도 쓸 칼럼이 없으면 곤센로즈의 가십을 알아 와서 썼다. 그러면 칼럼은 인기 폭발이었다. 엑슬로즈가 호텔 2층에서 1층의 팬들에게 소파를 집어던졌다거나, 빈스 닐과 싸움을 했다거나, 본 조비 멤버와 어쩌구 같은 가십은 언제나 재미를 가득 주었다.


Mtv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을 때였다. 93년인가 94년 엠티비 최고 수상을 하기도 했다. 그때 라이벌이 에어로 스미스의 ‘겟 어 그립’ 앨범의 뮤비였다. 막상막하였다. 마치 강호의 고수가 맞붙어서 겨우 승자를 알아내는 것과 비슷했다.


에어로 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는 갑자기 내가 니 딸이야 하며 나타난 십 대의 너무나 예쁜 리브 타일러와 최고의 인기 배우 알라시아 실버스톤을 데리고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곤센로즈 형님들은 ‘유즈 유어 일루션 1, 2’ 앨범이 대박을 치던 때였고 그에 맞는 뮤비가 엠티비를 박살 낼 때였다. 두 그룹의 뮤비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스토리 라인에 엄청난 물량 공세를 퍼부어서 뮤비를 만들었다.


곤샌로즈의 ‘노벰버 레인’은 지금까지 11월만 되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이스트레인지나 돈 크라이나 뭐 노래들의 뮤비가 퀄리티가 지금 봐도 장난 아니다.


에어로 스미스 ‘겟 어 그립’ 앨범의 뮤비는 노래들이 전부 연결되는 하나의 스토리 식으로 촬영해서 전부 보고 나면 긴 영화를 한 편 본 느낌이었다. 서태지의 뮤직비디오가 이런 스토리 구성으로 되어 있다.


곤샌로즈는 다 알겠지만 85년에 엘에이 건스의 트레이시 건스와 할리우드 로즈를 하던 엑슬 로즈가 만나서 시작했다. 성질이 미친개 같았던 엑슬 로즈가의 절친, 이지 스트레들린이 트레이시 건스에게 소개를 해준 거지.


매끈한 외모에 노래를 잘 부르는 엑슬 로즈는 여러모로 보니 딱이었는데 성격을 못 알아본 거지. 열심히 노래하고 연주하고 싸우고 또 싸우고 계속 싸우고 그러다가 트레이시 건스가 그래 니 잘났다 하며 팀을 나가고 만다.


곤샌로즈는 음악성이 엄청나서, 더러운 성격에 침 뱉고 욕하고 폭력을 휘둘러도 잘생긴 얼굴에 실력이 뛰어나니까 여자 팬들이 미치는 거였다.


엑슬 로즈는 많은 여자와 염문을 뿌렸다. 2012년도인가 그때까지도 라나 델 레이와 같이 다니고 막 그랬다.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 단 나쁜 남자 앞에 ‘모성애를 자극하는’이 붙어야 한다. 엑슬 로즈는 더러운 성격이지만 내면은 연약하여 여성들에게 모성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니까 성격은 지질맞은 등신인데 음악성으로 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그 속에서 좌절하거나 방황하는 모습은 뭔가 아주 이상한 매력을 불러일으켰다.


곤샌로즈가 엘에이 메탈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말랑한 메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퀸'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음악적 시도를 했다. 첫 앨범 에피타이트 포 디스트럭션을 들어보면 이 앨범이 얼마나 대단했었는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첫 앨범은 인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중 88년 몬스퍼츠 페스티벌이라는, 전 세계의 록밴드들이 몽땅 출동하여 노래를 부르는 큰 록페(15만 명이 모이는 규모)의 오프닝을 곤샌로즈가 맡으면서 빵 터지고 만다. 그리하여 88년 ‘스윗 차일드 오 마인’이 빌보드 1위를 하며 탄탄대로를 걷는다.


전 세계는 웃통 벗은 엑슬 로즈와 웃통 벗은 슬래쉬의 폭발하는 그 멋짐에 매료되어서 열광한다. 91년에 명반이라 불리는 ‘유즈 유어 일루션 1, 2’ 4장짜리 앨범을 동시에 발매한다. 이 앨범은 빌보드에 동시로 1위, 2위를 하면서 초초초초초대박을 터트린다.



Guns N' Roses - You Could Be Mine (Live In New York, Ritz Theatre - May 16, 1991) https://youtu.be/qnFU-DxwpRs?si=dXLsOdBQaDZj5k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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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풀렸다. 껍질 같은 두꺼운 패딩과 바지를 벗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은 나는 바지를 입을 때 항상 왼쪽 발을 먼저 집어넣는다는 걸 알았다. 습관인 것이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오른 다리를 먼저 바지에 집어넣으니 응? 너무 이상한 것이다.


그러면서 습관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양말을 일어서서 신는데 한 발로 버티고 서서 양말을 신은 지 15년이 넘어가는 거 같은데 늘 아슬아슬하다. 그때도 왼발먼저 양말을 신는다.


오래된 습관 중 하나는 소변을 볼 때, 집 안에서 맨발로 있을 때 늘 뒤꿈치를 들고 있는데 이게 뭔가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습관이 되었는데 고쳐지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갤 때 이불 끝선과 끝선을 뙇! 맞춰서 개 놓는다. 그렇게 개 놓으면 기분이 아주 좋다.


거의 매일 조깅을 하는데 막바지에 이르러 항상 오르막길을 코스에 넣어서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그 느낌을 가진다. 다리에 기분 좋은 통증이 들어야 좀 달렸구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이후 생긴 습관은 엘베에 타서 버튼을 폰 모서리로 누른다거나 손가락 마디로 누른다. 그 외 습관이 많더라.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거리를 지나 커피를 투고하기 때문에 하루이틀 안 가면 사장님이 왜? 무슨 일? 같은 반응이고,


아이패드고 폰이고 아이팟클래식이고 밧데리 성능에 무관하게 백프로 충전시켜놓고 나갈 때 들고 나가고,


생각해보니 인간의 삶이라는 게 습관이 하나씩 모여 이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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