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집에서 학교까지 꽤 떨어진 거리를 걷는 시간이 좋았다. 집과 학교 사이에는 여러 학교가 있었고, 문방구를 몇 곳이나 지나쳐야 했는데 문방구를 구경하거나 그 앞의 풍경들이 재미있었다. 들판도 지나쳐야 했고, 도로와 한창 짓는 집들을 지나쳤다. 모든 풍경이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집에 가는 길 사이사이에는 돈을 빼앗는 불량배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티다 보면 어김없이 폭력이 이루어졌다. 나는 돈을 도시락통에 숨기기도 했고, 양말 바닥에 숨기기도 했다. 그래봐야 코 묻은 돈이었다. 그때의 등하굣길 풍경은 잠이 들면 가끔 나타났다. 꿈에서도 이상하지만 아주 평온하고 고요했다. 보통 꿈은 요란하고 무섭거나 이상했다. 그러나 중학교 때의 등하굣길의 꿈은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그 거리를 계속 걷기만 한다. 어떠한 사건이나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 꿈이다.               


 나는 중학교 때 학교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는 걸 좋아했다. 매점 표 도넛이 있는데 컵라면이 익어갈 때까지 도넛을 먹고 있으면 그렇게 맛있었다. 겉면에 묻은 설탕과 기름이 위장에 들어가서 니글니글할 때 컵라면 국물을 한 모금 마셔서 니글거림을 내려준다. 일 학년 때 친구와 함께 먹다가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서 친구는 학원 때문에 일찍 집으로 갔다. 나는 집까지 걸어야 하니 매점에서 컵라면과 도넛을 먹었다. 단짠단짠의 맛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터득하게 된다. 소변을 보는 것처럼.    

           

 각 학교 안에서도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서클 같은 부가 있었다. 우리 학교는 레슬링부가 그랬다. 덩치도 크고 머리도 빡빡 밀고 레슬링부 아이들은 꽤 무서웠다. 레슬링부 아이들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렸다. 레슬링부는 학교 아이들의 돈을 빼앗기도 했다.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었고 선생님들도 알아서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레슬링부 아이들에게 반항하거나 버티면 학교 뒤 산에 끌려가서 맞기도 했다.    

           

 토요일에는 자율학습을 했다. 나는 창가에 앉아서 두 시의 데이트를 선생님 몰래 들었다. 아버지가 작은 포켓 라디오를 사주었다. 이어폰으로 한쪽 귀에만 꽂아서 라디오를 들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집중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을 들을 수 있었다. 가요보다는 팝을 좋아했다. 다른 이유보다 가사를 모르니까 내용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내가 상상하고픈 것만 음악을 들으며 상상하면 된다. 그냥 책만 펴놓고 잠을 자거나 라디오를 들으면 된다. 아이들은 중간고사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다. 공책에 열심히 적어가며, 책에 줄을 그어가며 공부했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왜 이런 식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했다. 무조건 외우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에는 이런 식으로 공부하지 않았는데 중학교는 전부 외워야 한다.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전부 외우라고 하는데 외우는 게 나는 잘되지 않았다. 심지어 미술도 외우는 수업뿐이었다.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 만들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미술가를 외우고, 그 미술가가 살았던 시대를 외우고, 뭐든 외워야 했다. 이상했다. 노래 가사는 잘 외워지는데 수업 시간에 공부한 것들은 아무리 붙들고 있어도 외워지지 않았다. 성적은 점점 바닥으로 추락했다. 선생님들은 성적 위주로 차별을 했기 때문에 나는 먼지 취급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걸 싫어하지는 않았다.               


 토요일 오후 자율학습이 끝나고 매점에서 컵라면과 도넛을 하나 사 먹고 가려고 했다. 오후 세 시 정도였고 출출했다. 매점에는 학생들이 없어서 공허했다. 매점 아줌마에게 도넛과 컵라면을 사서 물을 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레슬링부 일 학년 두 명이 들어왔다. 레슬링부 일 학년들은 늘 배가 고프다. 레슬링부에서 잡다한 심부름과 일은 다 해야 한다. 그래서 평범한 학생들의 돈을 뜯어내는 것도 일 학년의 몫이었다. 나를 보더니 레슬링부 아이들이 와서 나에게 조용하게, 있는 돈을 다 달라고 했다.   

            

 매점 아줌마 몰래 말을 한다고 아이들은 한껏 긴장한 채 읊조렸다. 나는 돈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돈이 없었다. 무엇보다 무서웠다. 덩치가 큰 한 녀석이 십 원에 한 대, 라고 말했다. 뒤져서 돈이 나오면 십 원에 한 대를 쳐서 때린다는 거였다. 이백 원이 나오면 스무 대를 맞아야 한다. 녀석들은 그렇게 할 녀석들이었다. 나는 너무 겁이 나고 떨리는 목소리로, 없다고 했다. 컵라면이고 뭐고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슬링부 아이들은 매점 아줌마 몰래 나를 협박했고 나는 겁이 너무 났다.    

           

 그때 누군가 매점 안으로 들어왔다. 같은 일 학년으로 다른 반 녀석이었다. 레슬링부만큼 덩치가 있었지만, 그냥 살이 찐 녀석으로 매점에 들어와서 대충 눈치를 보더니 알아챘다는 듯 매점 아줌마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며 컵라면을 샀다. 매점 아줌마가 안에서 나와 레슬링부 녀석들의 귀를 꽉 잡고 학생들 돈 뺏는다며 레슬링부 선생님에게 데리고 갔다. 레슬링부 선생님이 가장 싫어하는 게 힘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거였다. 녀석들은 잘못했다며 아줌마에게 귀를 잡혀 아야야 하며 끌려갔다.         

      

 아줌마에게 신고해준 학생의 이름은 호철이었다. 그 계기로 친하게 되었다. 우리는 2학년에 같은 반이 되었다. 호철이는 나와 성적도 비슷했다. 중학교 때에는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냈다. 호철이는 2학년에 같은 반이 되고 나서 같이 걸어서 집으로 왔다. 호철이네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멀었지만, 버스를 타지 않고 나와 함께 하굣길을 걸었다.        

       

 살 빼야 하거든, 라고 호철이는 말했지만 걸어가면서 중간중간 문방구에서 불량식품을 자주 사 먹었다. 호철이 별명은 마시멜로다. 고스트버스터즈 1편에 나오는 스테이 퍼프트 마시멜로맨을 호철이는 닮았다. 그러나 찐빵 괴물로 호철이는 불렸다. 호철이는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다. 호철이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선생님들도 호철이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역시 호철이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2학년이 된 후 호철이와 집으로 오는 길은 재미있는 것들로 넘쳐났다. 나 혼자였다면 라디오나 들으며 왔을 테지만 호털이와 올 때면 이야기하면서, 놀면서 오기 때문에 먼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다. 봄이 지나 사월에는 우리 학교와 여중 사이에 방방이 생겼다. 방방에 올라타서 뛰는 아이들은 대부분 남자아이였다. 중학생이 대체로 많았다. 학교 근처니까. 호철이가 올라타려고 하면 주인이 못 타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간다는 말이다. 주인이 호철이를 타게 해주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는 다른 아이들이 방방을 같이 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같이 방방을 탔다. 나는 방방이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너무 고된 점프만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도 호철이와 타면 재미있었다. 호철이가 떨어질 때 그 반동으로 나는 좀 놓게 공중부유를 할 수 있었다.               


 호철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는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자율학습 시간에 책에 줄을 그어가며 공부했지만, 성적은 바닥이었다. 공부라는 게 하면 느는 건 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호철이네는 고물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호철이는 신기한 것들을 많이 들고 다녔다. 호신용이라는데 그걸 사용한 적은 없다고 했다. 대신에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한 번은 사용할 거라고 했다.         

      

 하루는 돌아오는 토요일에 일찍 마치면 우리 집에 안 갈래?라고 호철이가 말했다. 야호! 정말? 호철이는 친구를 한 번도 집으로 데리고 간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처음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최초다. 뭐든 최초는 의미가 있다. 호철이네 집은 정말 멋졌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멋진 집은 처음이었다. 호철이네 집은 고물상 한 편에 세워진 대형버스가 집이었다. 버스 안에는 없는 게 없었다. 침대와 주방, 거실에 샤워실까지 그리고 거실에서는 고물상 전경이 다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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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정중하고 진중하게 조금씩, 어김없이 다가오고 있다. 마치 지구를 덮치는 대재앙처럼 멈추지 않고 온다.

크리스마스 하면 역시 오래전 영화들이다. 게 중에 크리스마스에 병맛쪼꼬미들의 인간사냥 영화 그램린 1, 2가 있다.

중국 잡화상에게서 들여온 지정할 수 없는 귀여움을 장착한 생명체 기즈모는 햇빛을 보면 안 되고, 물이 묻어도 안 되고, 자정이 지나 음식을 먹이면 안 된다. 그러나 영화에서 금기시 되는 건 반드시 하라는 것이다.

기즈모의 몸에 물이 묻고 기즈모의 몸에서 돌기가 솟아나서 여러 다른 그램린을 만들어 내는데 기즈모에게서 나온 그램린들은 아주 고약하고 무섭고 개판이다.

1편은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작은 마을에서 난리피우는 이야기고 2편은 뉴욕 도심지에서 일어나는 소동극이다.

책받침 여신이라 불리는 피비 케이츠가 나오는 것으로도 유명한 영화다. 2편에서는 뉴욕 거대 빌딩 안에서 인간들을 점령한 후 크리스마스에 맞춰 뉴욕 뉴욕을 부른다. 아주 인상적이다. 1편에서 으캬캬캬칵 하는 악마 그램린을 엄마가 믹서기에 넣고 돌려 버리는 장면이 굿이다.

1편이 84년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인기가 엄청나서 제작비 14배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그래픽이 없기 때문에 스타일이 다 다른 그램린들을 전부 하나하나 다 만들어서 촬영을 했다.

각본을 쓴 크리스 콜롬버스가 후에 나홀로 집에를 연출한다. 기획을 맡은 사람이 스필버그이며 감독은 죠스와 피라냐를 연출한 죠 단테 감독이다.

당시 스톱모션으로 영혼을 갈아 넣어서 현실과 이질감이 나지 않게 연출을 했다. 12세 관람이라 어린이들이 봐도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어린이 들이 보면 조금 무섭지 않을까 싶다가고 요즘 어린이들은 또 흥! 할 수 있는 그램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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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4-11-26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나중에 아기랑 같이 보고 싶네요...^^

교관 2024-11-27 11:20   좋아요 0 | URL
다시 봐도 재미있었어요 ㅎㅎ 마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잉크냄새 2024-11-26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램린 하면 피비 케이츠죠!!
소피 마르소, 브룩 쉴즈와 함께 책받침 3대 여신...

교관 2024-11-27 11:21   좋아요 0 | URL
피비 케이츠 노래도 불렀던데 좋더라구요 ㅎㅎ
 

10.


 해안도로가 길어도 신호등이 없고 차들이 7, 80킬로미터로 달리기 때문에 10분이나 15분 정도면 끝이 난다. 해안도로가 끝이 나면 신호등의 연속이다. 다운타운으로 들어가게 된다. 해안도로 끝에 처음으로 보이는 건물이 어린이집이다. 아이들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물론 그저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어느 공포 영화에서 누군가 댓글을 달았는데, 아이들은 늘 착한데 왜 괴물로 변하는, 같은 글이었다.        

       

 아이들이 착하다는 건 너무나 심한 편견이다. 가장 악한 존재가 가장 순수할 때의 아이들이다. 벌레 죽이는 재미를 들이면 다른 재미를 찾을 때까지 벌레를 잡아서 죽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죽이는 재미를 알게 되지 않는 건 훈련과 교육 때문이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서 선과 악의 구분이 가능하게 되는 게 어린이들이다.               


 물리적인 힘이 약하다는 것을 착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 분쟁 지역 국가에서는 사격 연습을 어린이 때부터 시킨다. 그래서 상대국 군인이 망설일 때 어린이는 교육받은 대로 방아쇠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당긴다. 무라카미 류의 희망의 나라 엑소더스에서도 세상을 지배하려는 미성년자들이 나온다. 그들은 단지 물리적인 힘이 약할 뿐이지 착한 것과는 무관하다. 아이들은 거침없이 말을 한다. 엄마가 못생겼으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도 큰 소리로 말을 해버린다.               


 그러나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런 아이들이 좀비 영화 속에서 좀비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 영화는 더 무섭고 더 공포스럽게 된다. 배 속에 있을 때 엄마가 좀비에게 물려 태어날 때부터 좀비로 태어나는 경우도 있고, 어른들보다 면역체계가 약하기 때문에 좀비에게 물려 금방 좀비가 되는 경우도 있다.               


 스티븐 킹의 한 영화에서는 한 마을에 아이들만 산다. 어른들을 어린이들이 다 죽여 버리고 만다. 마을에 들어온 성인 남녀를 아이들이 죽이려 든다. 생각만으로 너무 끔찍하다. 아이들이 어른들을 살해한다니. 여자 주인공으로 아주 젊을 때의 린다 해밀턴이 나온다.        

       

 아이들은 무력한 존재다. 그렇기에 어른들의 손길이 항상 필요하다. 어린이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기 때문에 잠이 오는데도 하품을 하면서 한숨을 쉰다. 바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든다면 이 도시의 다운타운에 폭력으로 버려진 아이들이 어른들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아이들은 폭력에 노출된 가장 연약한 존재다.              

 

 해안도로를 벗어나 다운타운의 진입로에 들어섰다. 들어오자마자 신호등이 기다리고 있다. 어김없이 빨간불에 걸렸다. 여기서 보면 저기에 마을의 작은 공원이 보인다. 공원은 성의 이름이기도 하다. 성은 석성으로 임진왜란 때 일본장수가 마지막까지 버틴 성이다. 원래 토성이었는데 밀리고 밀리던 왜장이 데리고 있던 말도 다 잡아먹고, 성의 벽면을 채우고 있던 흙, 적토를 끓여서 먹어가면서 목숨을 유지했다. 그러면서 방어를 해야 하니 성벽을 돌로 쌓았다. 성의 이름은 직성으로 직성의 벽면은 돌로 바뀐 석성 형태가 되었다. 토성에서 석성으로 바뀐 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그 일대는 벚꽃이 봄이면 활짝 피어나는 아름다운 공원이 되었다.               


 그래서 불리는 이름은 직성공원이다. 직성공원은 오래전에 그림 그리기 대회를 많이 하던 곳이었다. 현재는 국가정원도 있고 크고 작은 아름다운 공원이 이 도시에도 수십 곳이 조성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직성공원 하나뿐이었다. 도시락 먹기 좋고, 꼭대기에 올라서 그림 그리기 대회를 하기도 좋아서 많은 어린이들의 미술 대회가 열렸다. 나는 그 대회에 종종 참여했던 어린이였다. 그림은 곧잘 그렸다. 나는 학교 대표로 그림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집에서 그렇게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어린이 때 그림 잘 그려봐야 그게 죽 이어지지 않는다고 부모님은 믿고 있었다.           

    

 부모와 자식은 언제부터 사이가 벌어지는 것일까.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모르는 사이가 부모자식 간 일지도 모른다. 우리 애는 안 그래요. 같은 말을 하는 부모는 참 자식에 대해서 무지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삶은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아주 비슷하게 흐른다. 아이를 낳으면 옆에 끼고 다닐 정도로 아끼고 사랑한다. 그러다가 학교에 가면서 친구를 만나고 여자 친구를 사귀고, 사회와 부모에게 반항을 하며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인간관계에 허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부모와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내 아이의 얼굴을 묘사하라고 하면 잘 하지만 부모의 얼굴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어째서 이렇게 모순에 모순을 거듭할까. 사랑의 결정체 아이는 섹스를 통해서 태어난다. 그러나 많은 곳에서 섹스는 금지어이며 묘사 또한 해서는 안 된다. 고귀한 행동인 동시에 퇴폐적인 인간욕망의 결정체가 섹스다. 섹스는 빛이며 어둠이다. 모순에 모순을 거듭하며 인간의 삶을 보내고 있다. 그게 인간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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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90년대 뉴욕 배경으로 한 영화가 최고다. 대도시의 온 거리가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되어 있고 어디를 가나, 길거리에도 캐럴이 흘러나왔고 눈도 내려서 몽글몽글한 크리스마스는 역시 90년대다.

34번가의 기적은 크리스마스에 딱 맞는 영화다. 그 분위기, 따뜻한 털실 같은 그 느낌이 물씬 나는 크리스마스 영화다.

크리스마스를 믿지 않는 10살의 수잔에게 최고의 선물인 가족과 집을 선물하는 산타인 크리스의 이야기. 백화점과 백화점의 경쟁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려 불타오른다.

백화점의 진가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니까 영화를 보면 크리스마스 기분이 확 올라온다. 요즘 공원에 가면 사계절의 옷차림을 다 볼 수 있는 희한한 계절이다. 반팔, 긴 티셔츠, 겨울 겉옷, 오리 털까지 보이고 대형 백화점은 이미 크리스마스 장식을 마친 곳도 있다. 그러나 길거리에 캐럴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앞으로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매년 삭막해지는 것 같은 크리스마스지만 영화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하다. 수잔의 엄마로 나오는 엘리자베스 퍼킨스는 고급 지게 예쁘다. 키도 크고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고급 지다는 말이 어울리는 얼굴이다.

수잔의 아빠가 되는 딜란 맥더모트는 이때가 정말 리즈시절이다. 너무 잘 생겼다. 딜란하면 가장 생각나는 건 개인적으로 아호스에서 였다. 그 외에 떠오르는 영화가 없네.

무엇보다 수잔 역의 열 살의 마라 윌슨의 연기가 똑 부러졌다. 산타는 없는 거죠? 할 때에는 아니 저 어린애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심하면,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라 윌슨은 이 영화보다는 로알드 달의 마틸다에서 마틸다 역으로 기억에 박혀있다. 너무 사랑스럽고 연기를 잘했다.

영화 속에서 마틸다를 괴롭히는 아주 못된 계부로 대니 드비토가 나온다. 마라 윌슨은 마틸다를 끝내고 공황장애에 정신질환까지 힘든 시기를 가졌는데 이유는 마틸다 촬영 당시 엄마가 암에 걸려 너무 고통스러워했는데 그걸 보면서 마틸다를 연기해야 하니까 어린 나이에 뭔가 뇌의 어느 부분이 긁혀 버린 것이다.

어린 나이에 너무 힘들어할 때 영화 속 계부였던 대니 드비토가 물심양면으로 보살피고 도와주었다. 암이 너무 심해 임종이 다가왔을 때 아직 마틸다가 나오지 않았는데 1차 편집본을 들고 대니 드비토가 가장 먼저 마라 윌슨의 엄마에게 들고 가서 보여 주었다. 당신의 딸이 이렇게 주연으로 세상의 아이들에게 용기를 줄 거야, 그러니 마라 윌슨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마라 윌슨의 엄마는 죽음을 맞이했다.

마라 윌슨은 그 후로 공황이 심해 연기는 하지 않고 뉴욕대에 입학해서 공부에 몰두했는데 그때에도 대니 드비토가 도움을 주었고, 얼마 전에 마틸다 멤버들이 모여 그 당시를 이야기하는데 마라 윌슨에게 엄마에게 가장 먼저 영화를 보여주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현재는 서른 중반인가? 서른 초반인가? 전업 작가라는데. 34번가의 기적은 마라 윌슨의 연기와 산타를 보낸 재미, 위에서 말한 것처럼 90년대 뉴욕의 크리스마스 분위기.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건 너무나 어렵지만, 진정한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걸 믿는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신과 같은 산타도 실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 마지막 재판정에서는 실수가 많은 인간이라도 옳은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영화 ‘34번가의 기적’이었다.

이 영화는 47년도 버전, 73년도 버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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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운전을 하다가 도로 한가운데 구두 한 짝이 떨어져 있으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저 신발 주인은 어쩌다가 한 짝을 잃었을까. 아니면 사고를 당했을까. 장갑이나, 수건, 옷이 떨어져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데 신발은 그런 생각에 휩싸이게 만든다.      

         

 신발 주인의 안타까운 사연이 상상이 되고 만다. 만약 한 켤레가 떨어져 있다면 오히려 그런 생각이 덜하다.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한 짝만 있다면 신발 주인이 불행한 일을 당해서 그렇게 된 것만 같다.   

            

 나는 구두를 신어본 적이 없다. 구두를 사 본 적도 없다. 지금까지 전부 운동화만 신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의 구둣발 소리가 듣기 좋았다. 구두를 신고 바닥에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나는 소리. 무척 듣게 좋은 소리였다. 내가 초등학교 때 옆집에 사는 대학생 형이 있었다. 4학년인데 구두를 신고 다녔다. 제대도 했고 영문과에 다니고 있었다.          

     

 말 그대로 나는 대학생이야, 같은 모습이었다. 서류 가방 같은 가죽으로 된 가방을 손에 들고 다녔다. 나는 그 형이 정말 멋있었다. 중학교 때 그 형에게 과외받았다. 영어다. 나는 영어 성적이 형편없었다. 그런데 과외받은 후에 신기하게도 차도가 있었다. 나는 그 얘기를 동네 친구에게 했더니 같이 친구의 어머니가 같이 과외받게 했다. 형은 답답할 법도 한데 우리에게 영어를 천천히 잘 가르쳐 주었다.       

        

 어느 일요일에는 우리를 데리고 소풍까지 갔다. 마치 초등학생이 된 기분까지 들었다. 영어 시험 성적이 나오는 날 두근거리는 기분이 과외받지 않았을 때와는 달랐다. 형은 대학교 졸업 후에 자동차 회사에 입사했고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마냥 행복한 앞날만 있을 줄 알았는데 회사 다닌 지 일 년 만에 과로사하고 말았다. 형은 항상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했다.          

     

 소풍을 갔을 때도 바람을 느끼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파란 하늘을 오랫동안 쳐다보라고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려 들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면 세상은 폭력이 난무하고 천재지변으로 사람들은 고통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한창 신혼이고 아직 애도 없었는데 피곤해서 잠들어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후에 과로사라는 결론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 형은 운동화를 신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항상 구두를 신고 멋있는 소리를 내며 걸었다. 형이 죽고 형의 집에 갔을 때 형의 신발 한 짝을 보았다. 그 뒤로 도로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은 바닥에 뿌려진 피 같은 기분이었다.            

   

 해안도로를 달리면 늘 하늘이 막역하게 보였다. 하늘은 마치 사랑하는 연인처럼 허물 하나 없이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 이렇게 바다처럼 펼쳐진 하늘을 보며 해안도로를 달리는 걸 좋아한다. 이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는, 차의 운전자는 그렇지 않을까 싶다. 비가 오지 않는 이상 하늘에 구름은 늘 있다. 그리고 구름은 매일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어떻게 매일 다를 수 있을까.         

      

 구름은 인간과 비슷하다. 인간도 구름처럼 같은 인간은 없다. 쌍둥이라도 둘은 다르다. 인간은 눈은 두 개, 코는 하나, 입도 하나에 귀는 두 개라는 건 같지만 그 모양새가 전부 달라서 같은 얼굴의 사람은 없다. 구름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마음 역시 구름처럼 시시때때로 변한다. 구름은 방금까지 저 모양이었지만 잠깐 생각하는 사이에 다른 모양이 된다. 인간의 마음도 그렇다. 시시각각, 시시때때로 변한다.      

         

 에이리언에서도 인간은 마지막에 감정 때문에 선택을 흩뜨려 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마음은 전부 제각각이며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시시때때로 변한다. 구름을 보면 인간의 내면을 보는 것 같다. 하늘 위에 있어서 구름에 날아가면 만져질 것 같지만 실은 구름 가까이 가면 실체가 없다. 인간의 마음도 그렇다. 실체라는 게 없다. 언젠가는 그런 인간의 마음을 빗대어서 만연한 폭력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 물론 생각일 뿐이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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