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에 마요네즈는 이상하지 않지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무래도 사람들은 어려워서 못 하는 게 아니라 쉬워서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하는 건물 화장실에 [문을 닫아 주세요]라고 써 놨지만 문을 닫지 않는다. 문을 닫는 게 어려워서 못 하는 건 아니거든, 쉬워서, 너무 쉬어서 안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는 건 아니다. 만약 사람들이 전부 문을 닫지 않는다면 받아들이고 내가 일일이 닫겠지만 다 그러는 게 아니다. 다수보다는 소수가 절대적으로 문을 닫지 않고 나온다. 늘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언제나 그렇게 할 뿐이다.


그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절대 닫지 않는다. 마치 닫으면 자신의 자존심 같은 것에 금이 간다고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화장실을 나오면서 문을 닫는 일이 어렵다면 이 세상은 너무나 어려운 일들로 가득 차서 사람들은 서로 미워할 것이다. 미움이란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증오는 공격성을 드러내고 결국 망하는 꼴이 되겠지.


쉬우니까 해봐,라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쉬우니까 사람들은 하지 않는다. 쉬우니까 나중에 언제라도 하면 된다는 얄팍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쉬우면 당연히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 이렇게 쉬운데 자신 혼자 이 쉬운 걸 성공하지 못하면 타인에게 비방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다. 그런 불안이 쉬워서 안 하는 것에 가득 붙어 있는 것이다.


[얼마 전의 일인데 일방통행으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어. 그 도로는 한 300미터 정도 되나, 반 정도 왔을 때 저 앞에서 차가 오는 거야. 나는 상향등을 깜빡 깜빡였거든. 근데도 계속 오는 거야. 마주하고 보니까 그걸 썼더라고. 선캡. 김여사더라. 양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절대 비켜주지 않을 것처럼 가만히 있는 거야. 일방통행이라고 했지만 김여사는 그냥 운전대를 잡고 나와 대치를 할 뿐이었어. 나도 더 이상 말하기 귀찮아서 신호 때마다 잠깐 읽으려고 차에 둔 짤막한 소설책을 집어 들어서 봤지. 그리고 내 뒤로 여러 차들이 온 거야. 차들은 빵빵 거리고 난리가 났지. 차들이 계속 빵빵 거리니까 일방통행 도로의 양 옆의 상가 사람들까지 나왔지. 김여사에게 여기는 일방통행이니 차를 뒤로 빼라고 해도 꼼짝도 하지 않았지. 여기저기서 이해 못 하겠다는 소리가 나왔고, 끝내 경찰에게 신고를 했어. 그리고 경찰이 와서 김여사를 끌어내렸는데 김여사는 그때에도 버티더라고, 결국 경찰이 김여사를 차에서 내리게 해서 여기는 일방통행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왜 차를 뒤로 빼지 않았냐고,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냐고 하니까 자신은 후진은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데. 그저 전진만 할 뿐이다, 오직 앞으로만 갈 뿐이다! 참 좋은 미래지향적인 생각이야. 후진도 못하는 사람에게 운전면허증이 나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의심해 봤지.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경찰이 차를 뺐지. 김여사는 뭐랄까 사람들에게 욕을 많이 들어도 아무렇지 않더라고. 그래 너네는 짖어라, 같은 모습이었어. 욕을 많이 들었나 봐. 정말 아무렇지 않더라고. 그 자세에서는 나는 내일에도 앞으로만 갈 거고, 내가 가려고 하면 일방통행이라고 역주행을 할 거거든, 같은 분위기가 흘러나왔어. 물론 나만 그렇게 느낀 거겠지만 말이야]


강변을 조깅을 하다가 산스장 같은 강스장에서 몸을 푼다. 근데 거기서 허리 돌리기를 하던 한 아저씨가 가래가 끓어오르니 그 앞에 퉷 뱉는 것이다. 한 번은 그렇다고 해도 몇 번이나 가래를 뱉는 것이다. 3미터만 나가면, 고작 3미터만 나가면 강변이라 풀숲에 뱉어도 될 텐데 모두가 운동하는 거기에 가래를 계속 뱉는 것이다. 입을 꿰매어버리고 싶더라고. 누가 운동하다가 가래 뱉은 자리에 넘어지기라도 해 봐라.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몇 걸음 나가서 가래를 뱉는 게, 그게 정말 어려운 일일까.

쉬워서 사람들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어려워서 못하는 게 아니라 쉬워서 안 하는 것이다.

그런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 같다.


에쿠스를 모는 어떤 아저씨는 인도로 차를 올려 주차를 하려고 했다. 근데 전봇대 옆에 근처에서 내놓은 쓰레기봉투가 있었는데, 에쿠스가 인도로 올라와서 쓰레기봉투를 밟은 것이다, 봉투가 다 터져서 그 안의 쓰레기가 다 봉투 밖으로 나왔는데 그냥 아무렇지 않게 가버렸다.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쳐다보고 있는 내가 있음에도 뭐야? 같은 표정이었다. 한 60 중반정도로 보이는 아저씨들은 대체로 고집이 센 거 같다. 내가 한다는데 뭐? 같은 분위기가 몸에 가득 배어 있는 거 같았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사람은 종교인이다. 특히 내가 아는 기독교인. 나는 신은 없다고 생각하는 인간에 속한다. 만약 신이 있다면,라고 해서 쓴 글도 많다. 가장 간단하게 하느님이 있다면 하느님을 자신과 동격으로 놓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전광훈이라든가, 그간 입에도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신도들을 유린한 목사 놈들을 가만 내버려 둔다는 게 신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하느님의 존재는 없다고 본다. 기독교인 대부분이 하느님이 자신 옆에 왔다고 말하는 개소리를 늘어놓는데 참 웃긴 소리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신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을 믿는 신도들 역시 잘못은 없다고 생각한다. 없는 신을 만들어서 인간 형상화 시켜 중간에서 신을 믿게 만드는 중간자들이 나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내가 아는 교인도 교회에 나가면 세상 착하고 나긋한 말투에 친절하다. 너무나 사람 좋아 보인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화를 자주 낸다. 짜증도 가장 그러지 말아야 할 옆사람에게 다 풀어 버린다. 그럴 때 이게 뭐지? 하게 된다. 제일 사랑하고 온화하게 대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고 타인들에게는 그저 온화할 뿐이다. 이거 왜 이러는 걸까. 너무 이상하다. 교회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지 못해서 밖에 주차를 했을 때 그 공간이 타인의 주차공간인데 차를 빼달라고 연락하면 연락도 안 되거나 연락이 되면 적반하장의 경우가 온라인에 많이 있다.


이렇게 이상한 교인들 대부분 어른들이다.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은 그러지 않는다. 이상한 교인들은 전부 어른들이다. 사람들은 청소년 범죄에 대해서 큰일이다, 문제다, 세상이 말세다, 같은 말을 하는데 뉴스를 장식하는 사건 대부분이 어른들이 저지른다. 청소년들이 주식 사기나 전세 사기를 치나? 피를 빨아들이는 악독한 범죄는 어른들 뿐이다.


나도 누군가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겠지.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건 정상일지도 몰라. 그러나 정상이 정상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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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A 영화는 재미없을 것 같은데 보다 보면 영화라는 세상에 빠져들어 장면 장면을 놓치지 않고 보게 된다. 다큐를 보는 것 같은데 극한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고, 인간을 보는 것 같은데 인간 이면의 괴물을 보는 것 같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신들린 것처럼 연기를 한다. 아니 욕망에 찌들어 갈수록 고독해지는 신이 된다. 이처럼 묵직하게 빨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전반에 깔리는 음악은 뇌간을 긁고 지나간다. 이토록 팽팽한 긴장감을 주는 음악이 이야기 내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욕망의 근원으로 생겨났다는 것 낱낱이 까발려준다.

석유를 향한 강한 집착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종교에 빙의하여 미쳐 보이는 폴 다노의 광기가 마치 사자와 호랑이의 대치를 보는 것 같다.

거대한 야망으로 석유를 거머쥐지만 탐욕으로 쓸쓸하고 외롭게 나락으로 떨어진다.

PTA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조합은 그냥 엄청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현대물보다는 시대극에서 늘 진가를 발휘한다.

다시 봐도 이런 느낌이라니 역시 PTA. 이 영화는 1927년의 소설 ‘오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석유재벌의 탄생, 그리고 재벌의 자본을 필요로 하는 광기의 종교 이야기다.

제목인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출애굽기에서 가져왔다. 피가 되리니, 저주의 문장이다. 피가 상징하는 하는 건 천국이기도 하지만 지옥이기도 하다.

남녀의 쾌락을 욕하지만 가장 신성한 생명의 잉태를 나타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영화광들이여 PTA의 영화에 빠져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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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에 목마른 사람들에게 딱인 영화다. 제이슨 스타뎀은 나이가 들었는지 언젠가부터 나오는 액션은 힘이 딸리고 성에 차지 않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제이크 질렌할의 액션은 액션에 목말라 있는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다.

전직 유에프씨 선수 출신이 로드하우스에서 일을 하면서 동네 깡패들부터 부동산 기업의 하수인들을 아작내는 이야기다.

보면 그간 액션배우들이 뭔가 모자란 액션에 경종을 울리듯 시원시원하고 강력한 액션을 보여준다.

액션배우들은 액션에서 벗어나면 인기가 없는데 제이크 질렌할은 액션배우는 아닌데 왕왕 액션 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온다.

예전에 페르시아 왕자에서도 벌크업된 몸으로 액션을 보여주더니 옥자에서는 또 그렇게 나사가 하나 빠진 박사 역을 하더니, 라이프에서는 외계 생명체와 사투를 벌이고, 나이트 크롤러에서는 광기를 보여줬다.

나이트 크롤러는 제작까지 맡아서 해서 그런지 굉장한 연기였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제이크의 굉장한 근육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리메이크로 원작은 1989년 페트릭 스웨이지 주연의 동명 제목의 영화다.

제이크는 이 영화에서 주연을 위해 엄청난 몸을 만드는데 맨즈헬스 채널에 훈련 과정이 영상으로 있다. 대단해.

이 영화의 백미는 실제 유에프씨 선수인 코너 맥그리거가 빌런으로 나와서 둘이 맞짱 뜨는 액션이 시원시원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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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역시 오리올 파울로의 가장 최근의 영화다. 주인공 알리스 굴드로 나오는 바르바라 레니는 한국판 [자백]에서 나나 역할을 원작에서 했던 배우다. 매력적이고 아주 예쁘다.

신의 구부러진 선은 70년대 스페인의 소설가의 동명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그래서 영화 속 배경도 70년대다. 화면상으로는 70년대 같지 않지만 그렇다.

보다 보면 스페인산 셔터 아일랜드인가 할 정도로 진실과 허구, 진짜와 가짜가 모호해진다. 알리스는 탐정으로 한 사건을 의뢰를 받는다. 굴지의 부자인 델올모 가문의 아들이 정신병원에서 죽었는데 자살로 판명이 난다. 델올모는 알리스에게 자살이 아닌 것 같으니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자살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아 달라고 한다.

알리스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위해 환자로 위장을 하고 들어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정신병원에는 많은 환자들이 있고, 그 환자들과 접촉을 하면서 단서들을 필두로 사건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병원장이 알리스를 진짜 편집증 환자로 취급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리스 역시 자신이 환자인지 사건을 의뢰받은 탐정인지 모호해진다. 밖에 있는 의뢰인과 남편도 딴 소리를 하고 병원장은 자신에게 계속 주사를 맞힌다.

알리스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믿을 수 없는 환자들 뿐이다. 진실과 거짓이 뒤바뀌고 다시 한번 반전을 거듭하면서 이야기는 미궁 속으로 들어가는 스릴러가 된다.

영화는 15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인데도 감독의 재능이 발휘되어서 그런지 지루한 감이 없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영상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을 하는 영화다. 이런 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보다 보면 윤곽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 감독의 이전작들이 전부 재미있고 볼만하기에 이 영화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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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의 귀재 오리올 파울로 감독의 영화 [폭풍의 시간] 역시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기가 막힌다. 처음 반전에 헉하게 되고 그 뒤로 반전이 계속 거듭되는데 방해받지 않는다.

오리올 파울로의 최고의 반전 영화는 [인비저블 게스트]로 정말 재미있게 봤는데 우리나라에서 소간지가 리메이크해서 [ 자백]으로 나오기도 했었다. 자백은 원작과 달리 후반이 다른 결말이었다. 또 [더 바디]는 김희애 주연의 [사라진 밤]으로 리메이크되었는데 다 재미있었다.

이 이야기는 판타지가 있다. 타임슬립 내용이 있는데 영화의 큰 흐름에 해가 되지 않는다. 베를린 장벽에 무너지기 전 독일의 니코라는 소년이 비디오로 자신의 기타 연주를 녹화하고 있는데 옆 집의 아줌마가 남편에게 죽음을 당한다. 니코는 아줌마를 죽인 니코를 피해 집 밖으로 나가다가 차에 치여 죽는다.

25년 후 니코의 집에 한 가족이 이사를 온다. 베라는 간호사로 일하며 딸 글로리아와 남편을 사랑한다. 그러다가 집구석에서 오래된 티브이와 비디오를 발견하고 틀어 본다. 거기에는 니코의 영상이 녹화되어 있다.

태풍이 부는 날 티브이가 자동으로 켜지면서 그 속에서 과거의 니코와 마주하게 된다. 니코 역시 태풍이 부는 날에 티브이 속에 어떤 아줌마가 나와서 이상한 말을 한다. 자신이 죽기 때문에 옆집을 가지 마라, 아줌마가 있는 곳은 25년 후 니코 너의 집이다. 같은 말을 한다. 니코는 무서워서 가려는데 벨라는 니코에게 내일 학교 시계탑에 번개를 떨어져 휴교가 일어나는 걸 말해준다.

니코는 벨라 덕분에 죽음을 면하고 죽 지내게 된다. 그러나 현실의 벨라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 달라져 있다. 딸은 없어지고 남편은 자신을 몰라보고 자신은 간호사가 아니라 의사가 되어 있다. 벨라는 딸 글로리아를 찾기 위해 다시 니코를 보려고 하고.

니코는 옆집 아줌마를 죽인 남편을 의심해서 경찰에 신고하지만 증거나 나타나지 않는다. 니코 역시 벨라를 만나기 위해 비디오 앞에 앉지만 만날 수 없다. 니코는 점점 그 사건에 집착을 보이며 시간이 흐른다.

그리고 25년 후 니코와 벨라가 만나서 범인을 찾고 딸을 찾아가는 이야기. 타임슬립 판타지로 시작해서 스릴러로 이어지다가 드라마로 끝이 난다. 이 감독의 영화들이 몰입하게 되고 대체로 재미있게 잘 만든다.

이 감독은 영리하게 영화를 잘 만들어서 책으로 친다면 불란서의 기요미 미소 같다. 대중을 확 잡아끌면서 그 속에서 던지는 메시지나 철학적인 의미를 풀어낸다. 그나저나 요즘도 기요미 미소 소설 많이 읽나.

폭풍의 시간은 2시간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휙 지나간다. 오락물을 좋아한다면 봐도 좋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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