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집에서 학교까지 꽤 떨어진 거리를 걷는 시간이 좋았다. 집과 학교 사이에는 여러 학교가 있었고, 문방구를 몇 곳이나 지나쳐야 했는데 문방구를 구경하거나 그 앞의 풍경들이 재미있었다. 들판도 지나쳐야 했고, 도로와 한창 짓는 집들을 지나쳤다. 모든 풍경이 평온하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집에 가는 길 사이사이에는 돈을 빼앗는 불량배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돈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티다 보면 어김없이 폭력이 이루어졌다. 나는 돈을 도시락통에 숨기기도 했고, 양말 바닥에 숨기기도 했다. 그래봐야 코 묻은 돈이었다. 그때의 등하굣길 풍경은 잠이 들면 가끔 나타났다. 꿈에서도 이상하지만 아주 평온하고 고요했다. 보통 꿈은 요란하고 무섭거나 이상했다. 그러나 중학교 때의 등하굣길의 꿈은 고요하기만 했다. 나는 그 거리를 계속 걷기만 한다. 어떠한 사건이나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는 꿈이다.
나는 중학교 때 학교 매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는 걸 좋아했다. 매점 표 도넛이 있는데 컵라면이 익어갈 때까지 도넛을 먹고 있으면 그렇게 맛있었다. 겉면에 묻은 설탕과 기름이 위장에 들어가서 니글니글할 때 컵라면 국물을 한 모금 마셔서 니글거림을 내려준다. 일 학년 때 친구와 함께 먹다가 여름방학이 지나고 나서 친구는 학원 때문에 일찍 집으로 갔다. 나는 집까지 걸어야 하니 매점에서 컵라면과 도넛을 먹었다. 단짠단짠의 맛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터득하게 된다. 소변을 보는 것처럼.
각 학교 안에서도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서클 같은 부가 있었다. 우리 학교는 레슬링부가 그랬다. 덩치도 크고 머리도 빡빡 밀고 레슬링부 아이들은 꽤 무서웠다. 레슬링부 아이들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렸다. 레슬링부는 학교 아이들의 돈을 빼앗기도 했다.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었고 선생님들도 알아서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레슬링부 아이들에게 반항하거나 버티면 학교 뒤 산에 끌려가서 맞기도 했다.
토요일에는 자율학습을 했다. 나는 창가에 앉아서 두 시의 데이트를 선생님 몰래 들었다. 아버지가 작은 포켓 라디오를 사주었다. 이어폰으로 한쪽 귀에만 꽂아서 라디오를 들었다. 그 시간이 나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집중해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을 들을 수 있었다. 가요보다는 팝을 좋아했다. 다른 이유보다 가사를 모르니까 내용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내가 상상하고픈 것만 음악을 들으며 상상하면 된다. 그냥 책만 펴놓고 잠을 자거나 라디오를 들으면 된다. 아이들은 중간고사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다. 공책에 열심히 적어가며, 책에 줄을 그어가며 공부했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왜 이런 식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저 선생님들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했다. 무조건 외우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에는 이런 식으로 공부하지 않았는데 중학교는 전부 외워야 한다. 나와는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전부 외우라고 하는데 외우는 게 나는 잘되지 않았다. 심지어 미술도 외우는 수업뿐이었다.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 만들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미술가를 외우고, 그 미술가가 살았던 시대를 외우고, 뭐든 외워야 했다. 이상했다. 노래 가사는 잘 외워지는데 수업 시간에 공부한 것들은 아무리 붙들고 있어도 외워지지 않았다. 성적은 점점 바닥으로 추락했다. 선생님들은 성적 위주로 차별을 했기 때문에 나는 먼지 취급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걸 싫어하지는 않았다.
토요일 오후 자율학습이 끝나고 매점에서 컵라면과 도넛을 하나 사 먹고 가려고 했다. 오후 세 시 정도였고 출출했다. 매점에는 학생들이 없어서 공허했다. 매점 아줌마에게 도넛과 컵라면을 사서 물을 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레슬링부 일 학년 두 명이 들어왔다. 레슬링부 일 학년들은 늘 배가 고프다. 레슬링부에서 잡다한 심부름과 일은 다 해야 한다. 그래서 평범한 학생들의 돈을 뜯어내는 것도 일 학년의 몫이었다. 나를 보더니 레슬링부 아이들이 와서 나에게 조용하게, 있는 돈을 다 달라고 했다.
매점 아줌마 몰래 말을 한다고 아이들은 한껏 긴장한 채 읊조렸다. 나는 돈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돈이 없었다. 무엇보다 무서웠다. 덩치가 큰 한 녀석이 십 원에 한 대, 라고 말했다. 뒤져서 돈이 나오면 십 원에 한 대를 쳐서 때린다는 거였다. 이백 원이 나오면 스무 대를 맞아야 한다. 녀석들은 그렇게 할 녀석들이었다. 나는 너무 겁이 나고 떨리는 목소리로, 없다고 했다. 컵라면이고 뭐고 집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슬링부 아이들은 매점 아줌마 몰래 나를 협박했고 나는 겁이 너무 났다.
그때 누군가 매점 안으로 들어왔다. 같은 일 학년으로 다른 반 녀석이었다. 레슬링부만큼 덩치가 있었지만, 그냥 살이 찐 녀석으로 매점에 들어와서 대충 눈치를 보더니 알아챘다는 듯 매점 아줌마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며 컵라면을 샀다. 매점 아줌마가 안에서 나와 레슬링부 녀석들의 귀를 꽉 잡고 학생들 돈 뺏는다며 레슬링부 선생님에게 데리고 갔다. 레슬링부 선생님이 가장 싫어하는 게 힘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거였다. 녀석들은 잘못했다며 아줌마에게 귀를 잡혀 아야야 하며 끌려갔다.
아줌마에게 신고해준 학생의 이름은 호철이었다. 그 계기로 친하게 되었다. 우리는 2학년에 같은 반이 되었다. 호철이는 나와 성적도 비슷했다. 중학교 때에는 성적이 비슷한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냈다. 호철이는 2학년에 같은 반이 되고 나서 같이 걸어서 집으로 왔다. 호철이네 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멀었지만, 버스를 타지 않고 나와 함께 하굣길을 걸었다.
살 빼야 하거든, 라고 호철이는 말했지만 걸어가면서 중간중간 문방구에서 불량식품을 자주 사 먹었다. 호철이 별명은 마시멜로다. 고스트버스터즈 1편에 나오는 스테이 퍼프트 마시멜로맨을 호철이는 닮았다. 그러나 찐빵 괴물로 호철이는 불렸다. 호철이는 그런 것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았다. 호철이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선생님들도 호철이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역시 호철이는 신경 쓰지도 않았다.
2학년이 된 후 호철이와 집으로 오는 길은 재미있는 것들로 넘쳐났다. 나 혼자였다면 라디오나 들으며 왔을 테지만 호털이와 올 때면 이야기하면서, 놀면서 오기 때문에 먼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다. 봄이 지나 사월에는 우리 학교와 여중 사이에 방방이 생겼다. 방방에 올라타서 뛰는 아이들은 대부분 남자아이였다. 중학생이 대체로 많았다. 학교 근처니까. 호철이가 올라타려고 하면 주인이 못 타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간다는 말이다. 주인이 호철이를 타게 해주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는 다른 아이들이 방방을 같이 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면 내가 같이 방방을 탔다. 나는 방방이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너무 고된 점프만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도 호철이와 타면 재미있었다. 호철이가 떨어질 때 그 반동으로 나는 좀 놓게 공중부유를 할 수 있었다.
호철이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는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자율학습 시간에 책에 줄을 그어가며 공부했지만, 성적은 바닥이었다. 공부라는 게 하면 느는 건 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호철이네는 고물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호철이는 신기한 것들을 많이 들고 다녔다. 호신용이라는데 그걸 사용한 적은 없다고 했다. 대신에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한 번은 사용할 거라고 했다.
하루는 돌아오는 토요일에 일찍 마치면 우리 집에 안 갈래?라고 호철이가 말했다. 야호! 정말? 호철이는 친구를 한 번도 집으로 데리고 간 적이 없다고 했다. 내가 처음으로 초대를 받은 것이다. 최초다. 뭐든 최초는 의미가 있다. 호철이네 집은 정말 멋졌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멋진 집은 처음이었다. 호철이네 집은 고물상 한 편에 세워진 대형버스가 집이었다. 버스 안에는 없는 게 없었다. 침대와 주방, 거실에 샤워실까지 그리고 거실에서는 고물상 전경이 다 보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