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샌로즈가 5월에 한국에 온다는데? 맞나 모르겠다. 엑슬로즈 형님 드럼통 같은 몸매 관리는 좀 하셨는지도 모르겠다.


곤센로즈도 머틀리크루만큼 사고뭉치로 신문 1면을 장식했었다. 그러나 노래들이 전부 다 좋은 거야. 나도 실은 ‘노킹스 온 헤븐스 도어’를 밥 딜런이 아니라 곤샌로즈의 노래를 듣고 알게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


가죽에 쇠줄을 몸에 칭칭 감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던 다른 헤비헤비한 형님들에 비해 엑슬로즈는 그 잘생긴 얼굴에, 그 잘 빠진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꼬툭튀의 아주 짧은 숏 팬티 바람으로 무대를 쉬지 않고 뛰어다니며 노래를 불러서 문화적 충격을 안겨 주었다.


숏 팬티에 정장 가다마이를 입기도 했는데 이게 패션 테러 같은데 또 어울렸다는 거지. 사고란 사고는 다 치고 다녔는데 피아노도 잘 쳤어. 마초에 부드러움이 묻어서 아주 기묘한 매력을 발산했지.


그 모습이 너무 멋진 거였다. 무엇보다 엑슬로즈의 음색, 이 쇠 갈리는 듯한 이 미친 음색에 한 번 빠지니까 빠져나올 수 없었다.


당시에는 인터넷이 없으니 음악평론가들도 쓸 칼럼이 없으면 곤센로즈의 가십을 알아 와서 썼다. 그러면 칼럼은 인기 폭발이었다. 엑슬로즈가 호텔 2층에서 1층의 팬들에게 소파를 집어던졌다거나, 빈스 닐과 싸움을 했다거나, 본 조비 멤버와 어쩌구 같은 가십은 언제나 재미를 가득 주었다.


Mtv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을 때였다. 93년인가 94년 엠티비 최고 수상을 하기도 했다. 그때 라이벌이 에어로 스미스의 ‘겟 어 그립’ 앨범의 뮤비였다. 막상막하였다. 마치 강호의 고수가 맞붙어서 겨우 승자를 알아내는 것과 비슷했다.


에어로 스미스의 스티븐 타일러는 갑자기 내가 니 딸이야 하며 나타난 십 대의 너무나 예쁜 리브 타일러와 최고의 인기 배우 알라시아 실버스톤을 데리고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곤센로즈 형님들은 ‘유즈 유어 일루션 1, 2’ 앨범이 대박을 치던 때였고 그에 맞는 뮤비가 엠티비를 박살 낼 때였다. 두 그룹의 뮤비는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스토리 라인에 엄청난 물량 공세를 퍼부어서 뮤비를 만들었다.


곤샌로즈의 ‘노벰버 레인’은 지금까지 11월만 되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이스트레인지나 돈 크라이나 뭐 노래들의 뮤비가 퀄리티가 지금 봐도 장난 아니다.


에어로 스미스 ‘겟 어 그립’ 앨범의 뮤비는 노래들이 전부 연결되는 하나의 스토리 식으로 촬영해서 전부 보고 나면 긴 영화를 한 편 본 느낌이었다. 서태지의 뮤직비디오가 이런 스토리 구성으로 되어 있다.


곤샌로즈는 다 알겠지만 85년에 엘에이 건스의 트레이시 건스와 할리우드 로즈를 하던 엑슬 로즈가 만나서 시작했다. 성질이 미친개 같았던 엑슬 로즈가의 절친, 이지 스트레들린이 트레이시 건스에게 소개를 해준 거지.


매끈한 외모에 노래를 잘 부르는 엑슬 로즈는 여러모로 보니 딱이었는데 성격을 못 알아본 거지. 열심히 노래하고 연주하고 싸우고 또 싸우고 계속 싸우고 그러다가 트레이시 건스가 그래 니 잘났다 하며 팀을 나가고 만다.


곤샌로즈는 음악성이 엄청나서, 더러운 성격에 침 뱉고 욕하고 폭력을 휘둘러도 잘생긴 얼굴에 실력이 뛰어나니까 여자 팬들이 미치는 거였다.


엑슬 로즈는 많은 여자와 염문을 뿌렸다. 2012년도인가 그때까지도 라나 델 레이와 같이 다니고 막 그랬다.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 단 나쁜 남자 앞에 ‘모성애를 자극하는’이 붙어야 한다. 엑슬 로즈는 더러운 성격이지만 내면은 연약하여 여성들에게 모성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니까 성격은 지질맞은 등신인데 음악성으로 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그 속에서 좌절하거나 방황하는 모습은 뭔가 아주 이상한 매력을 불러일으켰다.


곤샌로즈가 엘에이 메탈이라고 하지만 단순히 말랑한 메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퀸'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음악적 시도를 했다. 첫 앨범 에피타이트 포 디스트럭션을 들어보면 이 앨범이 얼마나 대단했었는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첫 앨범은 인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중 88년 몬스퍼츠 페스티벌이라는, 전 세계의 록밴드들이 몽땅 출동하여 노래를 부르는 큰 록페(15만 명이 모이는 규모)의 오프닝을 곤샌로즈가 맡으면서 빵 터지고 만다. 그리하여 88년 ‘스윗 차일드 오 마인’이 빌보드 1위를 하며 탄탄대로를 걷는다.


전 세계는 웃통 벗은 엑슬 로즈와 웃통 벗은 슬래쉬의 폭발하는 그 멋짐에 매료되어서 열광한다. 91년에 명반이라 불리는 ‘유즈 유어 일루션 1, 2’ 4장짜리 앨범을 동시에 발매한다. 이 앨범은 빌보드에 동시로 1위, 2위를 하면서 초초초초초대박을 터트린다.



Guns N' Roses - You Could Be Mine (Live In New York, Ritz Theatre - May 16, 1991) https://youtu.be/qnFU-DxwpRs?si=dXLsOdBQaDZj5k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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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풀렸다. 껍질 같은 두꺼운 패딩과 바지를 벗었다.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은 나는 바지를 입을 때 항상 왼쪽 발을 먼저 집어넣는다는 걸 알았다. 습관인 것이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오른 다리를 먼저 바지에 집어넣으니 응? 너무 이상한 것이다.


그러면서 습관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양말을 일어서서 신는데 한 발로 버티고 서서 양말을 신은 지 15년이 넘어가는 거 같은데 늘 아슬아슬하다. 그때도 왼발먼저 양말을 신는다.


오래된 습관 중 하나는 소변을 볼 때, 집 안에서 맨발로 있을 때 늘 뒤꿈치를 들고 있는데 이게 뭔가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어쩌다 습관이 되었는데 고쳐지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갤 때 이불 끝선과 끝선을 뙇! 맞춰서 개 놓는다. 그렇게 개 놓으면 기분이 아주 좋다.


거의 매일 조깅을 하는데 막바지에 이르러 항상 오르막길을 코스에 넣어서 다리가 끊어질 것 같은 그 느낌을 가진다. 다리에 기분 좋은 통증이 들어야 좀 달렸구만 하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이후 생긴 습관은 엘베에 타서 버튼을 폰 모서리로 누른다거나 손가락 마디로 누른다. 그 외 습관이 많더라. 매일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거리를 지나 커피를 투고하기 때문에 하루이틀 안 가면 사장님이 왜? 무슨 일? 같은 반응이고,


아이패드고 폰이고 아이팟클래식이고 밧데리 성능에 무관하게 백프로 충전시켜놓고 나갈 때 들고 나가고,


생각해보니 인간의 삶이라는 게 습관이 하나씩 모여 이뤄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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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김은 자기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집은 요즘 보기 드물게 연탄아궁이가 있고 방바닥의 장판은 아랫목 쪽이 쭈글쭈글해 있었다. 김은 라면 하나를 끓여 왔다. 큰 냄비에 물을 잔뜩 부어 끓였다. 멋쩍게 웃으며 먹을 게 라면 하나밖에 없다며 밥을 가득 말아서 먹자고 했다. 다행히 결핵 같은 추위가 지붕을 덮지 않아서 라면을 나눠 먹고 밥을 말아 먹으니 땀이 났다. 겨울이 걱정되었지만 묻지 않았다. 


라면은 물이 많아서 스프의 맛이 살짝 날 정도였지만 김치를 걸쳐 먹으니 어쩐지 맛있었다. 어떻든 먹어야 하고 어떻게든 먹게 된다고 김은 말했다. 다른 가족과는 떨어져 사는 모양이었다. 가족과 지낼 때도 서러운 단어 가난이 악착같이 붙어있었다. 가난에서 겨우 벗어나는가 싶더니 김은 절망의 크레바스로 빠지고 말았다. 


그것이 6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연락이 되지 않았다. 직장을 잃었을 때 지옥이라고 했다. 그렇게 맛있게 먹었던 라면도 목구멍을 통과하지 못하고 햇살이 싫었고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을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잠들어도 거기까지 따라오는 채권자들과 눈을 뜨면 보이는 빚은 자살의 유혹으로 가게 되었다고 했다. 지옥이라는 건 멀쩡한 건물이지만 그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 일이라는 건 생존이 불가능하게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중심에 김이 있었다.     

     

김은 나에게 오천 원을 달라고 했다. 나는 주머니에서 만 원을 꺼내 주었다. 김은 소주를 사 오겠다며 만 원을 들고 나갔다. 나는 현금을 털어 오만 원짜리 한 장과 만 원짜리 3장을 냄비 받침으로 썼던 책 사이에 끼워 넣었다. 라면 받침으로 썼던 책은 윤동주의 시집이었다. 십오 년 전에 내가 선물로 준 책이었다. 김은 모든 걸 다 잃어버리고 이 책 한 권이 남았다. 김은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나에게도 한잔 권했다. 책 사이에서 돈이 수줍게 비어져 나온 것을 보고 김은 고맙다며 라면 사 먹겠다고 했다. 


김은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호의를 거절하지도 않았다. 김은 소주를 한 병 비웠다. 가난은 부끄러운 건 아니지만 불편하다. 생활이 불편한 것보다 마음이 불편하다. 새로 잡은 직장에서는 누구나 돈을 좇지 말고 돈이 따라오게 돈 그 이상의 것을 바라보라고 한다. 정말 개좆 같은 말이다. 가난한 자에게 필요한 건 돈이다. 돈 이외에 따라오는 이상은 돈이 깔려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자살을 결심했을 때 절에 갔는데 할머니가 엎드렸다 일어났다, 집에서는 죽어도 움직이기 싫어하면서 절에서는 옆 사람에게 질세라 절을 하는 거였다. 무엇이 할머니를 저렇게 절을 하게 하는 것일까. 절을 하면서 자신의 안위를 돌봐달라는 할머니들은 없었다. 전부 가족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이곳의 하늘과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하늘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만 가면 그곳을 갈 수 있는데 내 입장이 그곳으로 갈 수 없게 만든다. 윤동주의 글이 떠올랐다. 윤동주의 '눈'을 읽으며 이렇게 맑은 사람이 그 더러운 곳에서 죽어가는 것과 지금 이 방처럼 비루하고 좁은 방에서 저 작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저 달을 쏘고 싶어 하면서 죽어가는 그 모든 것들을 사랑했던 윤동주의 글이 떠올라서 이를 악 물고 싶었다.     

     

절망의 끝에 가면 통통하게 살이 찐 희망이 있다. 삶이 내 살갗을 가차 없이 갉아대는 것이다. 살면서 처절한 가난까지 경험했는데 내 감정과 정직하게 맞서는 것을 피해 왔다. 내 감정을 고스란히 마주하는 것, 그러면 삶이 내 몸으로 스며들게 된다는 걸 알아 가고 있다. 김은 그렇게 말을 하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얼굴에 조금 미소가 파고들어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달은 그 옛날 감옥에 난 창으로 보였던 그 달이었을 것이다. 겨울의 모퉁이에서 윤동주의 글을 읽고 내내 눈물을 흘렸던 그 기억들은 전부 추억에서 살고 있다. 거리가 추울까 봐 이불처럼 눈이 내린다고 한 윤동주의 글을 그동안 잊고 지냈다. 김은 꿈에서 윤동주와 우연히 만났을 것이다. 저리도 웃고 있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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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2-15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티브 문학관에서 단막극 한 편을 본 기분입니다.
라면 냄비 받침으로 쓴 저 시집이 눈에 익어 찾아보니 책꽂이 한 구석에 서 있네요.

교관 2025-02-16 12: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요즘도 유튜브에서 티비 문학관을 가끔 보곤합니다. 단막극을 본 기분이라니 부끄럽네요
 

오늘 여기 바닷가에도 비가 옵니다. 제대로 추적추적 내립니다. 비가 오고, 그 비가 바람에 날려 이 바닷가의 창에 떨어지면 나는 빗방울이 되는 상상을 합니다.


저 빗방울이 되어 하늘에서 내려와 바람에 실려 그대의 창에 가 붙는 상상을 하지요. 어차피 창에서 떨어질 걸 알면서도 나는 그대의 창에 붙습니다.


곧 닥쳐올 나의 역경을 저는 압니다. 그래도 악착같이 붙어서 찰나로 없어질 그대를 봅니다. 잃어버린 그대를 잊을 수 없고 그리움에 빠져 물이 되지 않는 날이 없었습니다.


내가 생을 다 해 할 수 있는 일은 흔적을 남기는 일입니다. 이렇게 창가에 붙어서 밑으로 흘러가 버리고 나면 그 흔적이 남겠지요.


나의 일생은 그대의 하루로 만드는 시간을 쌓아 가는 것입니다. 창에 붙어 나의 검은 눈으로 그대의 심장을 파내 그 속에 나의 흔적을 착상하는 일이 저의 전부입니다.


하늘이 깊은 침묵이고 바다가 긴 고요라면 중간의 비는 가늘고 아픈 은유입니다. 오늘은 괜찮은 지난 노래 한 곡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


https://youtu.be/WgWDL0Vz5iU?si=mN8r7tLP4X1chhF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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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잭의 이야기는 너무 많지만 하나를 꼽으라면 83년의 일이다. 때는 1983년 3월 25일 모 타운 25주년 기념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모 타운은 퀸시 존스의 레이블 같은 회사로, 간단하게 말해서 흑인 음악은 전부 여기에서 생산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이런 모 타운의 상업적인 흑인 음악에 반기를 들고나가 버린 아티스트도 있었는데, 마빈 게이였다. 마빈 게이는 흑인의 소울이 담긴 음악을 생산하는 게 아니라 백인들이 좋아하는 흑인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에 모 타운을 나가 버린다. 마빈 게이의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하자.


아무튼 이날, 모 타운 메들리를 여러 가수가 부르고 마잭은 당시 잭슨 파이브의 막내로 형들과 노래를 불러 사람들의 갈채를 받는다.


잭슨 파이브는 무대를 사로잡으며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은 환호한다. 마잭은 잭슨 파이브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무대를 이끄는 탁월한 마잭 만의 매너를 볼 수 있다.


잭슨 파이브는 마지막 ‘아일 비 데어’를 부르고 형제들은 서로 끌어안고 수고했다며 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전부 들어간다.


그런데, 모두가 무대 뒤로 들어가는데 마잭만 무대에 남아서 마이크를 만지작거린다. 형인 티토 잭슨은 그때 ‘아니 저 녀석 왜 들어오지 않고 저기서 얼쩡대는 거야?’라고 의아해했다.


모 타운의 사장이었던 베리 고디는 67년 떠돌이 가수였던 마잭에게 큰 기회를 주었고 이제 다시 한번 마이클에게 엄청난 기회를 주려고 했다.


모 타운 메들리 이후 마잭의 단독 무대가 있다는 걸 아무도 몰랐다. 잭슨 파이브 멤버들도 몰랐다. 오직 베리 고디와 마잭 본인만 알고 있었다.


모 타운 25주년 무대에서 모 타운의 곡이 아닌 ‘빌리 진’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베리 고디는 철저하게 모 타운의 곡이 아니면 허락하지 않았는데 마이클에게 배려해 준 것이다.

 

잭슨 파이브의 막내가 아닌,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이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 무대가 바로 모 타운 25주년 공연이었다.


마잭은 아주 수줍게 “특별한 무대, 새로운 곡이 있어요”라며 손으로 신호를 보낸다. 무대의 조명이 꺼지는가 싶더니 이내 스포트라이트가 마잭에게 비치고 세계가 놀란 그 노래 ‘빌리 진’을 부르며 마잭은 신들린 것처럼 몸을 음악에 실어 춤을 춘다.


그 손짓과 강렬한 눈빛, 하체만 따로 움직이는 그 춤사위는 전설이 되어 지금까지 후배 가수들에 의해서 생산되고 있다. 얼마 전에는 제이홉이 마잭의 부활을 알리는 것 같은 댄스를 보여줬었다.


마잭이 빌리 진을 부르며 춤을 추니까 사람들이 전부 일어나서 환호를 보내고 손뼉을 쳤다. 이 장면은 지금 봐도 흥분이다.


이 장면 하나도 마잭의 팬이 아니었다면 그의 팬이 될 것이라고 음반 제작자는 말했고, 86년 3월 25일 이후 고요하던 팝계는 마잭의 파도 속에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 전체가 술렁거렸다.


한 사람의 노래와 춤은 충격이자 감동이었다. 오바마는 마잭의 죽음 앞에서 “나는 채무자다, 그가 아니었다면 흑인들은 어디에서도 위로받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 장면 한 번 볼까요? 8분 53초부터 보면 되는데, 그 앞의 알 비 데어를 부르는 마잭도 보면 좋다. 너무 노래를 잘 불러서. 


https://youtu.be/BUcUS2cIieA?si=GohkLJAsnsbL0D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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