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이름이 모니


봄날에 비가 오는 건, 초봄에 내리는 비는 겨울에 내리는 비보다 잔인한 거 같아. 이른 봄에 쏟아지는 비는 추위를 몰고 오잖아. 까탈스러운 추위 말이야.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다고.


이런 비가 내리는 봄날에 우산 이외에 들어야 하는 짐이 많으면 그건 정말 낭패야. 어딘가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는 건 너무 귀찮아.


우산 드는 것이 너무 싫어서 우비를 입었던 적이 있었어. 우비는 우산이 필요 없지만 우비를 입고 많이 걸으면 더워서 땀이 빠져나가질 못해서 옷이 축축해지더라고. 우비는 옷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그래. 우비를 입고 다니다가 어딘가 들어갈 때 우비를 입고 벗고 하는 건 우산을 접었다 폈다 하는 것의 몇 배는 귀찮은 거 같아. 우비가 우산보다 나으면 비가 오는 날 사람들이 우비를 우산보다 더 입고 다닐 텐데. 우비는 어린이들이나 입고 다닐 뿐이야.


느닷없는 말이지만 비가 온다고 우산을 들고 감독을 봤던 녀석이 클린스만 아냐. 클린스만 웃는 모습은 너무나 얄미워. 웃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싫을 수 있을까. 웃는 얼굴이 그렇게도 미워 보일 수 있나. 대단한 사람들은 참 많아.


무라카미 류도 무의식 중에 들리는 웃음소리는 폭력에 가깝다면서 부정적으로 말했지. 아주 듣기 싫은 웃음소리가 있어. 비웃는 소리처럼 들리는 웃음 말이야. 큭큭큭 하면서. 영화 버닝에서 아주 잘 나왔지. 종수가 벤에게 “씨발 나는 해미를 사랑한다구요”라고 애타게 말을 했음에도 벤은 그저 큭큭큭 웃으며 대마를 피우잖아.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으니 안 그런 척 하지만 나 이외의 사람들은 멸시당해도 지극히 당연하다는 그런 웃음이 있어. 벤처럼 그렇게 웃는 소리는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피부를 통해서 파고 들어오지. 내 얼굴에 뚫려 있는 구멍을 통해서 기어 들어온다구. 벌레처럼 말이야.


무라카미 류의 소설도 꽤나 읽었어, 교코부터 식스티나인, 단편소설집까지. 코인로커 베이비는 정말 빠져서 읽었었지. 무라카미 류의 단편집은 너무 재미있는데 새로운 단편집이 나왔을 때 구매했는데 제목과 책표지만 달랐지 이전의 단편집을 그대로 재출간한 것이었어. 이게 한국 출판사의 계략인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구입을 한 나의 잘못인지. 설령 나의 잘못이라고 해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일이야. 무라카미 류의 ‘식스티나인’은 영화로도 나왔는데 감독이 이상일이야. 식스티나인 영화 정말 재미있었어. 몇 번이나 봐버렸는지 몰라.


이상일 감독의 영화는 대체로 몇 번이나 보게 되는 것 같아. 이상일 감독의 최근 작품도 무척 빠져서 봤어. 거기에는 일반적인 사람이 아닌 주인공이 나와. 이 사회에 섞여 살아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어. 그러나 우리는, 사람은 사랑을 하게 돼. 방식은 다르지만 말이야. 여기서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걸 받아들여야 해. 사람들은 일본의 영화, 애니메이션이 죽었다고 하지만 이상일 같은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와이 슌지, 하마구치 류스케 같은 감독들이 있어서 쉽게 망하고 그렇지 않을 거야. 아무튼 설레발에 혹 하면 안 될 것 같아.


이렇게 봄비가 내리는 날에도 방향제 냄새를 맡았어. 방향제 냄새는 봄을 알리는 향이야. 적어도 나에게는 그래. 목련 꽃에서 나는 향과 비슷하며 다른 계절에는 도저히 맡을 수 없는, 반드시 봄이래야 이런 방향제 냄새가 나거든. 지나치다 방향제 냄새가 나면 그 자리에 서서 흠흠 하며 봄이구나, 잠시 서 있어. 며칠 전에도 그랬는데, 골목의 작은 나무에서 방향제 냄새가 나더라고, 한참을 맡았지. 내일 또 와야지 하며 어제 다시 그 나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어제는 나지 않더라고. 분명 방향제 냄새, 봄의 향이 났는데 어제는 그저 풀 냄새, 그냥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지. 마치 나무가 그냥 오브제 같은 거야. 이상하더라고. 이건 무슨 나무일까.


초봄의 차가운 비는 땅에 닿아 시가 되는 것 같아. 시는 온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거지. 하지만 사람들은 늘 보던 비에서 시를 느끼지 못해. 시는 가까이 있지만 보이지 않잖아. 어젠가 변상욱 대기자가 그랬지.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기 위해 미술관을 가고 공연장을 가고 어딘가를 악착같이 간다고. 그러나 아름다움은 주위에 널려 있대, 아름다움은 찾지 못하고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고만 한대지. 아름다운 것보다 아름다움을 찾아야겠지. 시는 슬퍼서 몸이 차가워져. 초봄의 비는 슬픔을 안고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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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카가 지 외할머니를 그렸다. 하이퍼리얼리즘이다. 미술 하고 싶다더니 중학생 주제에 곧잘 그림을 그리는 모양이다. 그래도 이 정도로 똑같이 그려버릴 줄은 몰랐다. 지 할머니가 동네 자랑하고 다니니까 친구분들이 자신들도 좀 그려 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신나서 조카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무시당한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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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사진

요즘 부쩍 도로에 포트홀이 많아진 것 같다. 뭐랄까 도로가 40년 만에 고질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다니는 20킬로미터 정도 되는 도로에 구멍이 숭숭 뚫리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가끔 하나 정도였는데 요즘은 50미터 안에 대여섯 개의 포트홀이 있을 정도다. 마치 어느 날 갑자기 땅 속에 숨어 지내던 외계종족이 50년 만에 꾸물꾸물 기어 나오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몇 달 사이에 포트 홀이 여러 개 생겼고 아스콘으로 메우고를 반복했다. 내가 다니는 도로만 그럴까.


도로라는 게 오래되었고 차들은 점점 많아지고, 매일 수십수백 대의 차들이 붕붕 거리며 오래된 도로 위를 달리니 몸살이 나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만 요즘 한 번에 구멍이 숭숭 나버리는 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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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도에 나온 공각기동대는 정말 대단했다. 나는 몇 년이 지난 후에 봤지만 입이 쩍 벌 어질 정도로 빠져서 봤다. 공각기동대 시리즈와 티브이 판으로도 다 봤지만 그 세계관은 대단했다. 95년도에 이미 안드로이드라든가 현재의 AI 모습이라든가, 인터넷 망을 타고 어디까지 뻗어나가는 가에 대해서 현재를 고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공각기동대에서도 현재의 휴대폰의 모습은 예측하지 못했다.


예전의 백 투 더 퓨처에서도 미래가 나온다. 영화 속 미래가 2015년인데 영화가 현실보다 훨씬 앞서 있지만 현실의 휴대폰의 모습은 그 어떤 영화에서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게 신기하다면 신기하다. 그러고 보면 키보드의 모습도 최초 나온 이후 그 모습 그대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시대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전기 자동차가 나왔고 자율주행자동차까지 나온 마당에 키보드는 양손으로 타이핑을 하는 그 모습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분명 이 형태보다 더 간단하게 타이핑을 할 수 있는 키보드가 나와도 벌써 나왔어야 하는데 그것 역시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모든 부분이 새것으로 바뀌고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지만 어떤 부분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나 역시 변화의 물결에 흐르지 못하고 머무르는 웅덩이 같은 기분이 든다. 여러 번 시도를 해봤지만 다시 원래대로의 키보드 형태로 되돌아가고 마는. 그래서 양손으로 타이핑을 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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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살아간다


요즘 일드에서는 한국 대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쪽 ‘그리고, 살아간다’에서는 강지영이 나와서 한국말을 극 중에서 가끔 한다. 그러면 사타구니 켄타로가 뭐야 그 말은?라고 궁금해한다.


저쪽 ‘아이 러브 유’에서는 채종협이 나카이도 후미와 함께 작정하고 한국말에 한국음식에 한국문화로 일본 여자들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대고 있다.


강지영은 연기를 아주 잘한다. 슬픔을 안고 바라보는 연기를 하더라고. 강지영은 일본 영화에서도 단독주연을 하기도 했다. 그런 것을 보면 문화적 개방은 일본이 우리보다는 더 위에 있다.  

eye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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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너무 밉상 얼굴이야

요즘 꽃샘추위 때문에 아주 쌀쌀하다. 하루 중 잠잘 때와 조깅할 때를 제외하고는 쌀쌀한 채로 지내는 것 같다. 사실 요즘 가장 핫이슈는 아무래도 총선이다. 쌀쌀함을 잊게 만든다. 엎치락 뒤치락이라는 말로도 모자라고, 제일 재미있고 스릴 있고 조롱거리에 실컷 욕할 수 있는 부분이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느닷없이 사태가 터지고, 사건이 일어나고, 발언이 문제 되고, 기자회견을 하고 눈물을 흘리고, 몰려다니고, 사진을 찍고 으 하는 부분이 캡처되어서 돌아다니고. 엉망진창인데, 엉망진창이라 너무 재미있다.


만약 우울증으로 괴롭다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뛰어들어라 하고 싶다. 정신을 다른 곳에 돌릴 수가 없다. 매일 매시간 뭐가 어떻게 터질지 모른다. 욱하는 부분은 상대방을 향해 토해내면 된다. 그 과정에서 욕을 할 수도 있고 비방도 가능하다. 얼마나 좋아. 나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정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시간이 가는지도 모른다. 이번 총선에서는 그간 숨어 있던 야수를 깨우기도 했다. 와 그 같은 야수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니.


그리고 수천 대나 되는 도시 곳곳의 카메라와 녹음기능 덕분에 정치인이 뒷돈을 받는 장면을 영화처럼 볼 수 있었다. 수순처럼 기자회견에서 그 모든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는데, 그것 역시 거짓말이라는 것도 우리는 다 보았다. 지금까지 그럴 거야,라는 추측만 난무했지만 이렇게 대 놓고 실제로 볼 수 있다니, 이건 정말 영화 속에서 지내고 있는 기분이다.


이번 대통령의 그간 지지율을 보면서 이건 정말 잘못되어도 너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간 40% 정도가 나왔는데, 온 언론이 밀어주는데 80%는 나와야 맞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행보를 그동안 보면서 임기 기간 중에 이혼을 할 수도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혼을 당한다면 대통령 임기 기간 중에 이혼을 한 대통령 몇 번째일까. 석 달 가까이 두문불출하는데 실은 얼마나 멋지게 입고 꾸며서 나타나고 싶을까. 그 행보를 못하는 것에 남편이 있어서 매일 화를 내지는 않을까. 국가는 국민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딱 그 짝이지 싶다. 우리 엄마 어제 밥상 위에 망고를 올리더라! 망고가 웬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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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갈비탕은 결혼식장에서 나오는 그런 갈비탕이다. 나는 그 갈비탕이 제일 좋다. 적당히 고기가 들어있고 적당히 당면도 들어있는 갈비탕. 간간하니 간을 더 하지 않아도 괜찮은 갈비탕의 맛. 똑 그 정도의 맛이 내겐 딱이다. 내가 좋아하는 갈비탕의 모습이다.


맛으로만 따지면 갈비탕 전문점의 갈비탕이 맛있겠지만 이상하게도 너무 맛있어서 나에게는 별로다. 갈비탕 전문점에서 갈비탕은 한 대 여섯 번 정도 먹어봤나? 그 정도 먹었는데 맛은 좋으나 맛이 너무 난다. 간간한 맛이 아니라 육향이 짙고 갈비의 맛이 아주 잘 나는 그런 맛? 이 있다.


갈비탕은 뜨거운 음식이라 추운 겨울에 자주 먹었을 것 같은데 이상하지만 여름에 주로 먹었다. 여자 친구와 밤새 술을 마시고 오전에 문을 여는 갈비탕 집은 전문점이었다. 여름의 오전은 푹푹 찌고, 열을 받은 아스콘은 달아오르고, 숙취는 온몸을 전부 분리하려고 하고, 그때 갈비탕 전문점에 들어가면 시원하니 갈비탕의 그 달큼하고 뜨거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숙취가 확 내려가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라나 전문점 갈비탕은 맛이 너무 났다. 맛이 너무 난다고.


초등학교 때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대구에 가서 거기 숙소를 잡아서 하루 묵었다. 가족이 전부 대구에 갔었다. 대구에는 왜 갔을까. 기억이 없다. 대구는 큰집이라 불리는 큰아버지의 댁이 있어서 제사 때 가곤 했었다. 그리고 가면 보통 큰집에서 하루 자고 왔다. 큰집은 방도 많고 가정부도 있었다. 가정부 누나는 청각장애자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는 벙어리 누나라고 불렀는데 우리만 보면 무섭게 으 하면서 좀비처럼 양손을 앞으로 뻗어서 놀리곤 했다.


그러면 동생이나 다른 친척 아이들은 울곤 했다. 가정부 누나는 큰집에서 아기 때 고아원 같은 곳에서 데리고 와서 키워주는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든 대구는 큰집이 있어서 대구에 가면 큰집에서 잠을 잤지 숙소 같은 곳에서 잠을 자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는 뭣 때문인지 큰집에 간 것은 아니고 숙소에서 하루 자고 이른 아침, 거의 새벽에 숙소에서 나왔다. 잠이 쏟아지는데 겨울에 나와서 아버지가 문을 연 식당에서 갈비탕을 사주었다. 그게 딱 내가 좋아하는 갈비탕의 맛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그 입맛에 길들여졌나 보다. 그 뒤로 친척들 결혼식에 가면 결혼식에 딸려 나오는 갈비탕을 맛있게 먹었다.


갈비탕은 갈비로 만든 탕이니까 기본적으로 고깃국이다. 고기가 들어간 국, 탕이 많아서 우리나라 음식은 어떤 면으로는 축복받은 음식들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탕이나 국으로 먹게 된 건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부분 못살았던 서민들이 닭 한 마리 잡으면 많은 식구가 다 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닭을 삶으면 나오는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모두가 배부르게 한 끼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집안의 행사가 있을 때 고깃국이 우리네 밥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지난 현재는 이렇게 탕이나 국은 몸에 그렇게 좋지는 않다. 일단 뜨겁기 때문에 빨리 먹게 된다. 뜨거운 음식은 늘 빨리 먹는다. 뜨거우니까 식혀서 천천히 먹는 게 아니라 뜨거운 음식은 식으면 맛이 없다는 인식이 가득해서 뜨거울 때 빨리 먹는 게 맛있다고 느끼고 있다.


국물문화가 발달된 아시아에서도 탕에 밥을 말아먹는 탕반문화는 한국만 발전했다. 그래서 국밥집부터 탕이나 국을 파는 식당이 아주 많다. 보통 국에 밥을 말아서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3 40대가 되면 살이 많이 찐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이 찌지 않는다면 그건 유전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다. 축복받은 유전자는 그런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20대 때 아무리 먹어도 날씬하던 사람들도 나이가 들어 국에 밥을 말아먹는 걸 좋아하면 살이 많이 붙는다.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열에 한 명 정도는, 아니 천명에 한 명 정도는 유전자의 영향을 받아서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갈비탕을 좋아하던 아버지, 고모들 전부 일찍 돌아가셨다. 그런 유전자를 달고 태어났다. 정말 너무나 비슷한 모습으로 비슷한 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런 저주받은 유전자를 나 역시 이어받았다. 매일 조깅을 하지만 하루 이틀 조깅을 하지 않고 하루만 평소 양보다 많이 먹어도 살이 쪄 버린다. 1년 내내 관리하며 지냈어도 다 소용이 없다. 예전에는 이런 신체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서 늘 어딘가를 향해 불만을 토해내고 싶었다. 그건 요즘도 비슷하지만 예전과 다른 건, 그런 몹쓸 유전자 때문에 하루도 쉬지 않고 조깅을 하고 식사량을 조절하려고 노력한다. 이미 이렇게 생활한 지도 오래되어서 이런 루틴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지내고 있다.


인간이란 어떤 면으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대단한 존재이지만 자신의 손톱 모양도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아주 하찮은 존재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데 어떤 사람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너는 참 많이 변했네]라는 말을 듣기도 하다가 누군가에게는 [넌 변한 게 하나도 없네] 같은 말을 듣는다. 나는 비정상일까.


누군가 나에게 변함이 없어서 참 좋네요,라고 했다. 그 말을 좀 삐딱하게 들으면 변화도 없다는 말로 들린다. 나는 늘 행복하게 보인다고 했다. 사람이 늘 행복할 수 있을까. 그냥 그렇게 보일 뿐이지. 하지만 겉으로는 예예 하며 지나칠 수밖에 없다. 이런 날은 갈비탕 한 그릇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면 국물 있는 음식을 먹지 않은 게 좀 되어서 갈비탕이 먹고 싶은 그 마음만 가지고 저녁이 도리 때까지 끌고 간다. 막상 저녁이 되어 밥을 먹을 때가 되면 먹지 않는다. 국물이 정말 간절하게 당길 때는 컵라면을 먹는다. 작년까지는 끓여 먹는 라면을 먹었는데 욕심이 생겨 라면 속에 이것저것 자꾸 넣어서 끓이다 보니 항상 찌개가 되어서 요즘은 컵라면을 가끔 먹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오랜만에 체했다. 그렇게 심하게 체한 건 몇 년 만인 거 같다. 소화가 안 되는 경우는 왕왕 있다. 그러면 병으로 된 소화제를 찾아서 마신다. 날 때부터 좋지 못한 위장을 달고 태어나서 위가 부담을 느끼면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먹는 음식이 위에 부담을 주기 시작했다 싶으면 숟가락을 놓는다. 그랬는데 엊그제는 뭔가를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 심하게 체하고 말았다. 사촌동생이 서울에서 케이크를 하나 사들고 왔는데 그게 아마 속에서 아다리가 된 것 같다. 다음 날 아침부터 체기가 있는 것 같더니 머리도 어지럽고 그 더부룩한 느낌. 거기에 설사까지. 마치 숙취 같은 그 느낌이 나를 괴롭혔다. 몸이 힘이 전부 빠져나가고, 정말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었다. 몸이 고통스러운 이 느낌은 진짜 별로다. 결국 약국에서 약을 사 먹었다. 다시는 느껴보고 싶지 않은 느낌. 이런 혹독함이 휩쓸고 지나가는 이런 날에는 어릴 때 먹던, 결혼식장의 그런 갈비탕이 먹고 싶다.


어린 시절에는 갈비탕을 먹으러 갈 때 혼자 가지 않는다. 항상 부모님이 함께 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와 함께 먹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난 후에는 혼자서 갈비탕이나 국밥을 먹을 수 있다. 그게 외롭다고 느낀 적은 없다.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나는 위 때문에 빨리 음식을 먹지 않는데 일행은 대체로 뜨거운 국밥 같은 경우 빨리 먹는다. 그러면 나는 일행의 속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여자와 함께 먹으면 속도가 얼추 비슷했다. 여자들은 국밥이나 갈비탕이나 그렇게 빨리 먹지 않는다. 이토록 갈비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놓고 막상 식사 때에는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 인간이란 제 멋대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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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젤리비가 내린다. 골목에 내리는 젤리비를 맞으면 똥이 젤리가 되어 나온다. 젤리비는 골목에만 내린다. 몸에서 나온 젤리는 꿈틀꿈틀 움직여 서로 붙어서 새로운 골목을 만든다. 젤리비를 맞은 후 48시간 안에 젤리똥을 누면 괜찮은데 48시간이 지나도 젤리똥이 나오지 않으면 몸이 점점 젤리로 변한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몸이 녹아서 없어진다. 정부는 이 세계에서 골목을 전부 없애려 하고 골목은 전부 사라지는 골목길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골목은 하늘에 물질을 쏘아 올려 먹구름에서 비를 뿌릴 때 젤리비를 내리게 했다. 그렇게 세력을 확장하려 했다. 정부는 애써 막으려 했고 골목은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정부에게 위협을 가했다. 어느 비가 오는 날 골목에 내리던 젤리비가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



골목이 사라지고 있다. 뭐 당연한 것이겠지만. 어릴 때 골목에서 놀고 시간 가는 줄 몰랐지. 엄마가 몇 번이나 불러야 겨우 집으로 마지못해 들어갔다. 동네 아이들과 골목에서 노는 게,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뭘 하며 놀았냐고 한다면 뛰어다니며 놀았던 것 같다. 보자기 울러 매고 슈퍼맨 놀이를 하기도 했고, 칼 들고 마징가가 되기도 했다. 골목에 있는 집들은 전부 대문을 열어 놨는데, 이 집 저 집 아이들이 나와서 놀다 보니 이 집 저 집으로 마구 들어갔다가 다시 나왔다가 우르르 몰려다녔다. 대체로 아버지들은 회사에 다 나가고 엄마들이 집에 있었는데 나무라지는 않았다. 간혹 야간하고 들어와서 잠자는 김 씨 아저씨가 이놈들아!라고 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이들은 옥상과 옥상을 건너뛰어 다녔다. 옥상과 옥상은 거의 붙어 있지만 그래도 공간이 있다. 떨어지는 죽는 거지.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떨어질 것 같은 공포가 있었다. 그러나 어디서 나왔는지 용기가 불쑥 올라올 때가 있는데 동네 형들이 다 옥상에서 옥상으로 건너뛰고 나면 우리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또 보자기를 등에 착용하면 정말 슈퍼맨이 되어서 날아갈 것만 같은 용기가 생겼다. 하지만 꼭 누구 하나가 넘어지거나 떨어져서 다리가 부러지거나 팔이 부러졌다.


봄이 오면 골목에는 표가 확실하게 났다. 블록 사이에서 잡초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집집마다 고등어를 굽고 된장찌개를 끓이는 냄새가 골목에 가득했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퇴근하고 오시면 놀던 아이들도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들어가서 밥상에 빙 둘러앉아서 저녁밥을 먹었다.


한 십 년 동안 내가 살던 동네로 조깅을 하면서 돌아왔다. 사람들이 여전히 동네에 빼곡하게 들어앉아서 생활을 했는데, 재개발 구역에 들어가더니,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고, 철거가 찍히고, 집들이 하나 둘 허물어지고, 동네 고양이들도 다 떠나고, 벌판이 되더니 철근이 박히고 아파트 단지가 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래도 갈 때마다 사진을 찍어놔서 점점 변해가는 과정을 기록할 수 있었다.


골목은 감성에 기인한다. 이성적으로 골목의 오래된 집들은 불안해 보인다. 아주 긴 시간 버텨왔기 때문에 담장이 무너질 것 같기도 하고, 장마나 폭설에 위험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화재에 대해서 취약하다.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놈의 골목 빨리 떠나야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진으로는 운치 있어 보이지만 70년대부터 있던 전깃줄이 신경줄처럼 골목에 널어서 있어서 간당간당하다. 몇 번이나 새 전깃줄로 갈았을까. 아마 한 번도 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골목은 기묘하지만 동네마다 느낌이 다르다. 골목의 분위기? 골목의 스타일이 동네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저 뛰어다니며 놀기 좋은 골목이 있는가 하면 연인끼리 몰래 키스하기 좋은 골목도 있다. 저녁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나와서 장판 깔고 소담을 나누기 좋은 골목이 있다.


골목은 상당히 없어졌지만 그럼에도 아직 골목이 많이 남아 있다. 골목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는 것도 재미있다. 혹시 모르지. 시간이 흘러 신문사에 팔아먹을지도.




여기서부터는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동네다. 21년도에 찍은 사진들인데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느껴진다. 21년도 초반에는 골목 집집마다 사람들이 살고 있다가 점점 사람들이 빠져나가더니 철거가 시작되고 벌판으로 바뀌고 지금은 몽땅 아파트 단지가 되어간다.




여기 골목은 스타일이 다르다.




여기서부터는 시에서 밀어주는 골목이다. 오래된 골목이기는 하지만 도심지 중앙에 있는 골목이라 없애지는 못하고 사람들이 더 모이게끔 문화의 거리로 만들었다. 꽤 긴 시간 공을 들여서 이쪽 동네는 모든 것이 바뀌어서 골목 어디에서나 사진 찍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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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공이 굴러가서 부딪히는 소리는 경쾌했고 짜릿했다. 초크를 문지를 때의 그 기막힌 찰나의 느낌이 좋았고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이 아주 멋져 보였다. 한창 당구에 심취해 있을 때, 그래봐야 50에서 80으로 넘어갈 때였다. 자려고 누우면 네모난 천장은 어김없이 꿈틀거리며 당구대로 보였고 그 안으로 당구공이 굴러가는 모습이 아른아른거렸다. 당구는 그런 마력으로 사람을 끌어당겼다.


당구장에 여자는 거의 없었다. 가끔 커피 배달을 오는 나 양이 보였고, 당구를 잘 치는 아저씨가 큐대를 잡으면 그걸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당구장으로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언제나 내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당구에서 패하면 게임비를 계산해야 한다. 거기에 짜장면을 먹기라도 하면 돈이 왕창 걸려 있기 때문에 정신을 놓을 수만은 없다. 짜장면은 왜 당구장에서 서서 먹을 때가 가장 맛있는지 미스터리다.


당구만큼 재미있는 게임이 있을까. 당구는 가만 서서 그저 큐대를 밀어칠, 뿐인 것 같지만 두 시간 정도치고 나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당구는 그랬다. 아주 묘한 게임이었다. 자주 가는 당구장에는 자주 오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주 보니 자주 인사를 하게 된다. 그러면 자주 오는 아저씨들과 친해져서 당구의 가르침을 한 수 받기도 했다. 그런 날은 우쭐해진다.


당구공에 힘을 얼마나 주는 가에 따라, 당구공의 포인트 어느 지점을 맞히는가에 따라, 공은 180도 다르게 움직였다. 당구는 그야말로 또 다른 세계였다.


친구는 우리가 자주 가는 당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거기서 먹고 자고 했어. 작은 방에서 잠을 자면서 당구장에서 일을 했는데 친구는 사장님에게 허락을 받았다며 당구장 영업이 끝나면 놀러 와서 밤새도록 당구를 쳐도 된다고 했다.


당구장은 가장 사람들이 북적이는 다운타운의 중심가에 있었다. 그래서 당구장은 문을 열자마자 사람들이 들어와서 문을 닫을 때까지 북적북적거렸다. 당구장에는 매니저가 있었다. 마치 북한 공작원 같은 표정으로 일별 하듯 우리를 보는 사람이었다. 살도 찌지 않고 웃는 모습이 없고 당구장에 일 대 일 게임을 하러 오는 사람들을 다 이겼다.


[저 매니저는 당구 몇 치는데?]

[400]


친구가 말해줬다. 개인 큐대가 있고 절대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 골초라서 하루에 담배 한 갑은 넘어 피웠다. 당구장 사장님도 매니저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매니저가 사장님의 친척이나 아내의 동생이나, 뭐 그런 사이인 줄 알았지만 친구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했고 그저 직원이라고 했다. 어떤 계약으로 묶여 있는지 모르겠지만 매니저는 매일 당구장으로 출근을 했고 손님들이 오면 당구 상대를 해주고 저녁 8시가 되면 퇴근을 하고 집으로 갔다. 창문으로 보면 그 뒷모습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느릿느릿한 걸음걸이었다. 키도 커서 마른 사람이 느리게 걷는다는 게 기묘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사장님은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할아버지였다.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니까 친구들이 많이 당구장에 갔다. 친구는 사장님이 없으면 대충 시간을 멋대로 계산해서 우리 게임비를 줄여서 받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장님은 그런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매니저 역시 무서운 북한공작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우리를 모른 척해주었다. 인간미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는데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여름이라 밤에 문을 닫고 당구를 칠 때에는 에어컨을 틀 수 없어서 팬티만 입고 큐대를 들었다. 그저 신났다. 뭐 50, 80 하던 때이니까 신날 수밖에 없었다. 오시, 히끼, 우라마시, 오마시 같은 용어가 입에 짝짝 달라붙었다. 큐대를 들고 날리기 전 까지는 머릿속에서 이렇게 공이 굴러가서 딱 맞을 것 같은데 막상 휘두르고 나면 생각과는 다르게 공이 굴러갔다. 그 몇 번의 휘두름으로 생각과 같게 공이 굴러가서 맞는 그 타격감은 엄청났다.


그렇게 공을 치다가 새벽 2시 정도가 되면 당구장 바로 밑 포장마차에 내려가서 소주를 한 잔씩 했다. 여름인데 포장마차 안은 그렇게 덥지 않았다. 에어컨을 틀어 놓은 것도 아니지만 모두가 앉아서 오징어나 문어, 곰장어 구이에 소주를 한 잔씩 하고, 선풍기가 덜덜 돌아갔지만 시원했다.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로 낮에는 사람들로 항상 가득 차고 밤이 되면 포장마차가 일렬로 죽 늘어선다. 그래서 깨끗할 날이 없다. 새벽 4시가 되면 청소부 아저씨들이 열심히 원상태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곧바로 거리는 쓰레기로 쌓이고 또 새벽에 싹 깨끗해지기를 반복한다. 누구 하나 그런 반복에 신경을 쓴다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일상은 그렇게 되풀이되고 있었다.


당구를 치다가 내려와서 자주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재미있는 모습도 많이 본다. 가장 재미있는 건 스님 둘이 앉아서 소주를 마시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아무 거리낌이 없었는데 스님들이 술에 취해서 곰장어를 더 주문해서 먹으니까 친구가 어? 스님들이 고기를 먹네? 했다. 그러자 스님들 중 한 명이 합장을 하고 우리를 봤고 친구도 합장을 하고 인사를 했다. 친구 녀석 대학교를 여기서 먼 군산으로 가서 학교를 다니다가 느닷없이 배를 타더니, 그러더니 해외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아오는 배를 타고 나가버렸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나는 친구가 일하는 당구장이 문을 닫고 어두워지면 놀러 가서 밤새도록 당구를 쳤다. 청소도 같이 해 주었다. 무엇보다 당구를 치면서 꼭 담배를 피우고 담배를 당구대에 올려놓는 사람이 있다. 담배가 타 들어가면서 당구대에 표시를 남기기도 하는데 그걸 닦아서 없애야 했다.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당구대였다. 녹색천을 물에 적셔 박박 닦았다. 물론 화장실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화장실에서 해야 하는 것 이외의 것들을 하는 사람들이 꼭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를 그걸 치워야 한다. 누군가는.


그날도 사장님이 집으로 들어가고 당구장 불은 꺼지고 친구는 나를 불렀고 나는 당구장으로 출동을 했다. 늘 그렇듯이 우리는 아직 더운 날 때문에 웃통은 벗고 맥주를 홀짝이며 친구는 당구대에 걸터앉아 담배를 입에 물고 멋지게 맛세이를 찍었다. 80으로 올린 지 일주일 밖에 안 된 놈이. 그날따라 친구 한 명이 더 왔다. 맥주캔은 쌓였고 대환장파티가 이어지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으로 치달아 갔다. 하루 중 최고의 시간이지. 새벽이라는 시간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누리는 자는 몇 명 되지 않는다. 그 몇 명 안 되는 사람들 속에 우리가 속했다. 매일 이렇게 멋진 날들이 이어지다니.


새벽 시간은 3시로 향해가고 있었다. 모두가 알딸딸 취했고 바닥에는 맥주캔과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었고 엉망진창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사장님이 들어왔다. 우리는 몸에 얼음을 뒤집어쓴 것처럼 그대로 얼어붙었다. 사장님은 이렇게 쓱 한 번 훑어보더니 카운터에서 뭔가를 꺼내서 이런저런 말도 없이 그냥 나가 버렸다. 마치 나왔던 곳으로 시간을 되돌려 그대로 돌아가는 토끼처럼 말이다.


친구와 나는 큰일이 났다고 감지했다. 친구는 분명 당구장을 잘릴 것이고 우리는 그동안 벌여 놓은 것들에 대해서 변명을 해야 할 것이다. 하필 새벽 3시에 올 것이 뭐람. 4시에 왔다면, 아니 5시에 왔다면 바로 청소라도 하고 사장님을 맞을 텐데. 우리는 일단 누가 보지도 않는데 청소부터 했다. 순진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순진한 녀석들인가. 그냥 계속 당구나 치고 놀아도 되었을 것을. 우리는 새벽 3시부터 열심히 청소를 하고 또 청소를 하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며 청소를 했다. 근데 이놈의 청소하다 보니 잠이 왔다.


나는 밀대 자루를 들고 소파에 앉아서 잠이 들었고 친구는 바닥에 대자로 뻗었고 또 다른 녀석도 어딘가에서 자미 들었다. 하필 그 어딘가가 화장실이었다. 그 녀석은 술이 취하면 온갖 화장실에서 잠이 들었다. 그건 유전일까, 아니면 스타일일까. 스타일은 필시 아닐 것이다. 습관, 무의식의 습관. 어린 시절에 어떤 무엇에 의해 화장실에 대해서 깊은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녀석 군대에서 휴가 때 나와서 같이 술을 마시고 보니 사라졌는데 술집의 화장실에서 잠들어 있었는데 그 모습이 쏘우에서 학대당하다가 죽음으로 간 그런 모습처럼 잠들어 있었다. 누군가가 아아악 군인이 죽었어요, 해서 달려가니 그 녀석이었다. 몸에서 찌든 소변냄새가 계속 났다. 젠장 부축해서 왔다. 다른 녀석들도 있었는데 집이 가깝다는 이유였다. 그 녀석과 나는 집이 버스로 40분은 가야 하는 곳인데.


끝나지 않는 교통체증은 없듯이 밤이 지나 아침은 오고 사장님도 출근을 하고 매니저도 출근을 했다. 아침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 10시를 지났고 점심으로 달려가는데도 사장님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나는 슬그머니 당구장을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거기 서!]라고 사장님이 분명하고도 똑 부러지는(아마도 노인네 치고는 그렇게 카랑카랑하게 말을 하다니) 말로 나에게 멈춰라고 했다. 사장님은 화장실에서 잠든 녀석은 집으로 가라고 했다. 왜 하필 나야? 나는 너무나 겁이 났다. 집에 알리려고 그러나. 친구와 나는 세상의 슬픔을 전부 짊어진 것처럼 오전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을 때 사장님은 우리를 불러 밥집에서 정식을 시켜 주었다. 그리고 먹으라고 했다. 이게 마지막 만찬인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배고프니까 열심히 야무지게 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사장님의 면담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60초. 사장님은 나에게도 일을 하기를 권했다. 밤새도록 몇 날며칠이나 당구장에서 논 것도 다 알고 있으니 도망칠 생각 마라. 라며 낮에 일을 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낮에도 당구장에 와서 친구의 아르바이트를 도왔다. 친구가 잠이 온다며 방으로 들어가 잠들면 내가 대신 당구장 일을 했는데 사장님이 눈여겨본 모양이다. 나의 능력 중 하나라면 나도 당구가 80인데 나보다 잘 치는 상대방을 만나면 나는 강했다. 그리고 대부분 나보다 강했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당구를 쳤다. 나의 어떤 면모가 사장님의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 나는 당당하게 낮부터 당구장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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