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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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 트로이 전쟁을 이야기한 책들과 영화를 봐서 줄거리는 알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또 읽은 이유가 있단다. 먼저 지은이 매들린 밀러의 최근작 <키르케>를 알게 되었단다. 사람들의 평이 좋은 것도 있지만, 그보다 책 디자인이 예뻐서 눈에 띄었어. 외모를 중시하면 안 되는데, 아빠는 겉표지가 예쁜 책들에게 약하단다. 그렇게 읽는 책들도 여럿 있고 말이야. ㅎㅎ <키르케>도 그렇게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키르케>라는 책과 짝을 이루는 책이 하나 있으니, 그보다 먼저 출간된 <아킬레우스의 노래>라는 책이란다. 출간 시기도 먼저이고, 책의 내용도 <아킬레우스의 노래>가 먼저이기 때문에, 이 책을 먼저 읽게 된 것이란다.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 수많은 작가들이 트로이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또 하나의 이야기나 나왔다고 관심을 가질 필요 있겠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은 또 다른 시각으로 트로이 전쟁을 풀어내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단다. 아킬레우스의 친구였던 파트로클로스. 그 파트로클로스가 죽은 다음 분노에 찬 슬픔으로 복수를 하게 된 아킬레우스. 그 둘 간의 관계는 어떤 관계였길래, 냉정하던 아킬레우스를 그렇게 만들었는지트로이 전쟁의 분수령이었던 그 사건에 숨겨진 이야기를 파트로클로스의 목소리로 들어보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이란다. , 그럼 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꾸나.


1.

파트로클로스의 아버지는 메노이티오스라는 사람으로 작은 나라의 왕이었어. 엄한 아버지였어. 파트로클로스가 아홉 살밖에 안되었는데, 헬레네의 남편 선발 대회에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참가했단다. 당연히 선발될 수 있겠나. 헬레네의 남편은 스파르타의 왕 메넬리우스가 되었단다.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온 파트로클로스. 친구와 시비가 붙어 싸우다가 밀쳤던데, 실수로 그 친구가 죽고 말았어. 이 일로 그는 추방당해야 했어. 파트로클로스의 나이 고작 12살이었단다. 그는 펠레우스 왕이 다스리고 있는 프티아라는 나라로 갔어. 펠레우스 왕의 아들이 아킬레우스였단다. 파트로클로스는 그곳에서 아킬레우스와 친한 친구가 되었단다. 아버지가 친구들을 사귀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말을 안 듣던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와는 곧바로 친한 친구가 되었단다. 이후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는 같은 방에서 자는 등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고, 뭘 해도 함께 했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사이의 관계가 그냥 우정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이 생겨는 것 같았어. 파트로클로스는 자신도 모르게 감정에 이끌려 아킬레우스에게 키스를 했는데, 아킬레우스도 그냥 받아주었어.  그런데 그들의 이런 관계를 알아챈 이가 있으니, 아킬레우스의 엄마 테티스야. 너희들도 잘 알겠지만, 테티스는 바다의 신이잖아. 아킬레우스가 태어날 때 그를 불멸의 존재를 만들기 위해서 저승에 흐르는 스틱스 강에 담겼다 꺼냈다는 일화. 그런데 뒷발꿈치를 손으로 잡고 넣었다 빼서 그곳에는 불멸의 존재가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 너무 유명해서 아빠가 또 할 필요는 없지만아무튼, 테티스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를 떨어뜨리려고, 아킬레우스를 켄타우로스인 케이론에게 보냈단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가 떠난 뒤 무작정 그를 찾아 길을 떠났고, 아킬레우스도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들은 함께 케이론에게 가서 이런 저런 다양한 것을 배웠단다. 의술, 무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배웠어. 나중에 테티스가 케이론을 찾아와 화를 냈지만, 케이론이 잘 설득을 시켰단다. 그곳에서 2~3년을 보내면서, 그들은 서로에게 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그러다가 아버지 펠레우스 왕으로부터 호출이 왔단다. 돌아오라고….


2.

그들이 케이론과 함께 있는 동안, 이쪽 세상에서는 난리가 났구나.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메넬레우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아로 갔어. 너희들도 이 이야기를 잘 알고 있잖아. 이 일로 메넬레우스의 형이자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은 트리이아에 전쟁을 선포했잖아. 당시 아가멤논의 파워가 세다 보니 주변의 여러 왕들도 자의 반 타의 반 전쟁에 참가를 해야 했단다. 그리고 메넬레우스와 헬레네가 결혼했을 당시 맹세가 하나 있었어. 메넬레우스와 함께 헬레네에게 구혼했던 이들은 모두 메넬레우스의 도움을 청할 때 도와주어야 한다고앞서 이야기했지만, 파트로클로스도 그때 구혼자에 포함되어 있었잖아. 그리고 펠레우스 왕도 참전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킬레우스를 소환했던 것이란다.

그런데, 아킬레우스가 사라졌단다. 테티스가 전쟁 못 나가게 빼돌린 것이야. 그 전쟁에 나가면 아킬레우스가 못 돌아온다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야. 아킬레우스가 어디로 갔는지는 파트로클로스도 몰랐단다. 아킬레우스가 사라진 지 한 달이 지나고, 펠레우스 왕은 파트로클로스에게 아킬레우스를 찾아오라고 지시했고, 파트로클로스는 어찌 어찌하여 스키로스라는 곳에서 여장을 하고 숨어 있는 아킬레우스를 찾았단다. 테티스가 강요해서 그곳에서 여장을 하고 있었고, 그곳 공주 데이다메아와 결혼까지 해서 데이아메아는 임신까지 한 상태였단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그녀에게 마음도 없고, 오직 파트로클로스만 사랑하고 있었지.

그들이 그곳에 머물고 있을 때, 이타케의 왕자 오디세우스가 스키로스에 왔어.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를 찾으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거든. 설득의 왕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참전 의무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 테티스가 방해했지만 결국 참전하기로 결정했단다. 아킬레우스에 대한 예언을 정확히 이야기해주면 이랬단다. 첫번째,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아에서 못 돌아온다. 두번째, 헥토르가 아킬레우스보다 먼저 죽는다. , 그러면 이 예언이 틀리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야. 헥토르가 안 죽으면 되는 거지그들의 세상에서 전사 중에 최고는 아킬레우스이고, 헥토르가 2인자로 알려져 있단다. 그리니까 아킬레우스 자신이 헥토르를 죽이지 않으면, 헥토르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어. 그러면 아킬레우스가 죽을 일도 없고 말이야. 그런 생각을 가지고 아킬레우스는 그 전쟁에 참가하기로 했단다. 파트로클로스도 함께 참가하기로 했어.


3.

아가멤논을 총사령관으로 한 여러 나라의 왕들이 모두 모였단다.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을 안 좋아했고, 아가멤논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아킬레우스를 안 좋아했단다. 자신의 말보다 아킬레우스의 말이 더 잘 먹혔으니까트로이아를 진군해야 하는데, 계속 날씨가 궂어서 출발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 이건 트로이아 편에 있는 신들의 짓이었어.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을 신들에게 제물로 바쳤어. 대단한 사람이네. 빼앗긴 동생의 아내를 찾으러 가는 전쟁에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다니그러니, 이 전쟁의 목적이 동생의 아내를 찾는 게 아니라 그것은 핑계이고, 트로이아를 빼앗으려는 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전쟁이었던 거야.

한편, 아가멤논이 제물로 바쳐 죽을 때, 옆에 있었던 아킬레우스는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었는데, 못했다면서 죄책감에 빠졌단다. 아킬레우스가 전쟁에서 사람들을 많이 죽이게 되지만, 그에게는 늘 이런 인간전인 감정이 남아 있었단다. 아가멤논이 바친 제물로 날씨도 개이고, 드디어 전쟁이 시작되었단다.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아 군의 전쟁아킬레우스는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공을 세워서, 트로이아의 여자 노예를 얻을 수 있었는데, 다른 이들과 달리 여자 노예들을 데리고 와서 보살펴 주었단다. 파트로클로스도 함께 끌려온 노예들을 보살펴 주었어. 가장 먼저 끌려온 브리세이스는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단다. 파트로클로스는 전투 능력이 뛰어나지 못해서, 전투에는 참가하지 못했어. 자신도 도움이 될 일을 하고 싶었는데, 예전에 케이론으로부터 배운 의술이 도움이 될 수 있었어.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단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은 해가 지나도 끝나지 않았어.. 4년이 지날 즈음에는 집으로 가겠다고 반란을 일으키는 일도 있었어. 그래도 10년이나 걸릴 줄은 아무도 몰랐지. 그렇게 오랫동안 전쟁을 하면서,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이 쌓여 있던 악감정이 드디어 폭발했단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강제로 데리고 간 것이었어. 그 일로 아킬레우스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어. 아킬레우스가 빠진 그리스 군은 사기가 떨어져서 계속 밀리는 형상이었어. 아가멤논이 미안하다고 한마디만 하거나, 아킬레우스가 마음을 바꾸어 전투에 참여하면 되었지만, 둘 다 자존심을 거둬들이지 않았단다. 군인들이 점점 아킬레우스를 탓하기 시작했어.

파트로클로스도 마음이 불편하여, 아킬레우스에게 제안했어. 자신이 아킬레우스인 척 전투에 참가하겠다고... 실제 싸움은 안 하고, 뒤에 있겠다고 했어. 아킬레우스의 존재만으로도 그리스군의 사기가 올라가니까 말이야. 싸움에 참가하지 않는 약속을 하고 아킬레우스가 그의 복장과 투구를 빌려주었단다. 그런데 파트로클로스는 직접 전투에 참여해보니 가만히 뒷짐만 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 그리고 적군을 스스로 죽이고 보니, 자신이 전투에 능력이 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쾌감 같은 것도 느꼈어. 그래서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고, 결국 헥토르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단다. 이런….


4.

그 이후의 이야기 또한 유명해서 너희들도 잘 알겠지. 이 소설은 파트로클로스의 일인칭 시점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하려나? 궁금했는데, 예상대로 파트로클로스의 영혼이 이야기하기 시작했어.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분노하고 전쟁 시작하기 전 다짐했던 약속을 깼단다. 헥토를 죽이는 것 말이야. 자신의 연인이자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를 죽였으니 보이는 것이 없었단다. 결국 싸움의 2인자 헥토르는 싸움의 1인자 아킬레우스에게 죽고 말았단다. 헥토르의 아버지이자 트로이아의 왕 프리아모스가 시신을 찾으러 죽음을 무릅쓰고 아킬레우스를 찾아오고, 아킬레우스는 인간적으로 헥토르의 아버지를 대했고, 시신을 돌려주었어. 그리고 이후 전투에서 아킬레우스는 예언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이 길고 긴 전쟁은 오디세우스가 짝 목마 작전으로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이 나게 된단다. 그 마지막 전투에 아킬레우스의 아들이 참가했다는구나. 어떤 아들이냐고? 스키로스에 숨어 있다가 그곳 공주 데이다메아와 강제로 결혼하고 데이다메아가 임신했었다고 했잖아. 그 아이가 태어나서 커서 그곳에 온 거야. 이름은 네오프톨레모스. 피로스라고도 불렀단다. 12살 밖에 안된 소년이었는데, 그 잔인함은 엄청났다고 하는구나. 프리아모스의 왕을 잔인하게 죽은 것도 그였고, 헥토르의 갓난 아들을 성벽에서 떨어뜨려 죽인 것도 그였다고 하는구나. 헥토로의 아내 안드로마케도 자신이 가지겠다고 했어. 이 전쟁의 최고 수훈은 자신의 아버지이니까,  그 아버지의 공을 자신이 받아야 한다면서 말이야. 아킬레우스에게 이런 망나니 아들이 있었다니

그렇게 길고 긴 트로이 전쟁은 끝이 났단다. 아킬레우스에게 파트로클로스는 단순한 친구가 아닌 평생 사랑을 했던 연인이었던 것이었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했던 연인.. 하기야 그 정도는 되어야 그의 행동이 설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구나.

키르케 이야기도 곧 해줄게.


PS:

책의 첫 문장 : 나의 어버지는 왕이었고 왕의 자손이었다.

책의 끝 문장 : 태양 밖으로 금 항아리 백 개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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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로드 4000km - 대한민국 100년,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 투어가이드
김종훈 외 지음 / 필로소픽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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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 100년이 되던 해였단다. 100년이라고 하면 매우 기념할 만한 시간인데, 아빠 기억으로는 그리 많은 행사가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 아빠가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야. 2019 4 11일 임시정부가 세워진 날을 즈음하여, 각종 매체에서 100주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뿐이지, 어떤 행사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구나. 2018년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임시정부 26년의 여정을 따라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고 하는구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그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한 책이 바로 <임정로드 4000 km>인데, 그 책을 이번에 읽었단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순례길이 있는데, 이 책의 지은이들은 임시정부가 행적을 따라 가는 임정로드도 순례길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이야기했단다.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광복을 할 때는 충칭(중경)에 있었다는 내용만 알고 있지, 중간에 여러 곳을 거친 것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세세한 곳들을 알게 되어 좋았단다.


1.

이 다큐에 참석했던 이들이 임정로드를 모두 다녀오는데 20 21일이 걸렸다고 한다. 일반 사람들이 가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짧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도 알려주고 있단다. 만일 시간이 넉넉해서 풀코스를 간다면, 이 책을 들고 지은이들이 다녔던 길을 그대로 가면 좋은 가이드가 될 것 같구나. 임시정부의 역사적인 장소와 사건에 대한 것만 이야기하는 주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별로 주의해야 할 점과 숙박, 교통에 대한 정보도 주고 있는 좋은 여행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단다.

서울을 출발하여, 상하이, 자싱, 항정우, 난징, 창사, 광저우, 류저우, 구이린, 충칭으로  이어지는 긴 여행길이었단다. 상하이로 출발하기 전에, 서울의 임시정부 관련 장소 먼저 소개해주었단다.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후 국내에 들어와서 머물렀던 경교장을 소개해주었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분의 유해가 계신 효창공원도 소개해주었단다. 그분들이 효창공원에 그곳에 계셨구나, 이번에 알게 되었단다. 외국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그곳으로 모셔온 것도 백범 김구 선생이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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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이 1946년 고국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당시 재일본조선거류민단 단장 박열 선생을 통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수습해서 국내로 모셔오게 한 것이다. 의거 이후 십수 년이 지났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위해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긴구 선생께서 몸소 보여주셨다. 지금 우리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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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창 공원은 이렇게 애국지사들이 많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구나. 뿐만 아니라 효창운동장이 효창 공원 앞에 떡 하니 있어 가로 막고 있다고 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승만이 그런 일을 벌인 것이란다. 백범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인사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한 짓이 아닌가 싶구나. 그 뒤의 박정희도 만만치 않은 짓을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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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 입구부터 거대한 축구장(효창운동장)이 있습니다. 반세기 넘게 김구 선생과 삼 의사 묘역 남쪽을 막고 있습니다. 효창운동장 때문에 숨이 턱 막힐 지경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9 <2회 아세아축구선구권대회> 개최를 구실로 독립운동가의 표를 이장하고, 운동장 건설을 밀어붙였습니다.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은 김구 선생이 돌아가신 다음, 효창원에 경찰을 배치해서 시민들의 참배를 막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만행이 이 전 대통령이 쫓겨난 뒤에도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1969, 박정희 정권은 김구 선생과 삼 의사 묘역이 능선으로 이어진 머리 쪽에 느닷없이 <북한반공투사위령탑>을 세웠습니다.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만들어진 건데, 이 역시 반세기 넘게 김구 선생의 묘역과 삼 의사 묘역 머리 쪽에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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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19 4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에서 생겨났단다. 하지만,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고 하는구나. 상하이의 서금이로라는 거리에서 생겼다고는 하지만,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몰라서 지은이들도 대략적인 위치를 추정하더구나. 정확한 위치는 아니더라도, 표지석이라도 하나 세워져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 하나 없다고 했어. 이곳뿐만 아니라, 지은이들이 가는 임시정부 유적지 대부분이 표지석이 없어서 어디가 어딘지 정확히 모른다고 했어. 아무튼 알아두자꾸나.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 탄생한 곳은 서금이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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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 탄생한 곳 서금이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 장소다.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 명명된 국가가 만들어진 곳이며,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대한민국 민주공화정이 정립된 곳이다. 우리 헌법이 세계만방에 공표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반복되는 건국절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역사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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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련된 분들을 소개해주었는데, 아빠가 알고 있는 분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던 분들도 많았단다. 그 중에 대표적인 분이 예관 신규식이라는 분이란다. 나라가 망하고 두 번이나 자살 기도를 했다가 살아 남으신 다음, 임시정부에 온 인생을 희생하신 분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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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선생(예관 신규식)의 집을 나오니 빗줄기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더 아쉬웠나 봅니다. 임시정부의 기틀을 마련했고, 외무총장과 국무총리 대리까지 맡으셨던 분의 거처치고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운 좋게 선생의 집에 거주하는 중국인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집 안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지만, 선생의 거주지 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첫 번째, 두 번째 청사처럼 아무런 표식조차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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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선생의 홍커우 의거와 도쿄에서 이봉창 선생의 의거 이후, 그 배후로 지목된 김구 선생은 피신을 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피신한 곳이 중국 자싱이라는 곳이란다. 그곳에서 2년 동안 피신하고 있었는데, 그 때 도움을 주신 분이 중국인 주푸청이라는 분이란다. 김구 선생을 비롯하여 임시 정부 요인들을 2년 동안 도와 주신 것이란다.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그 일을 주푸청과 그의 식구들이 해 주신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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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한번 상상해보자. 이름만 알던 지인에게 무려 현상금 200억 원이 걸렸다. 정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다. 결코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오히려 남남에 가깝다. 만에 하나 그 사람을 숨겼다 발각당하기라도 하면 내 몸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런데 지인이 갑자기 나를 찾아와 숨겨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혹자는 거절에 그치기는커녕 현상금 200억 원에 눈이 멀어 오히려 적극적으로 신고할지도 모른다. 1932, 중국인 주푸청 선생에게 찾아온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그리고 선생은 200억 유혹을 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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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백범 김구 선생의 자싱 피신 생활에 대한 내용은 좀 알고 있단다. 왜냐하면 오래 전이긴 하지만, 중국 작가 하련생님의 소설 <선월>을 읽었는데, 그 소설이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의 자싱에서의 생활을 그린 것이었거든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구나. 너희들도 나중에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어.


3.

일제 36년의 기억은 우리에게 아픈 기억들이 너무 많단다. 그 중에 가장 아픈 기억은 위안부들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싶구나. 이번 임정로드 길에도 위안부들의 유적지가 있다고 하는구나. 난징에 있는 리시샹 위안소 유적진열관이 바로 그것이란다. 리지샹 위안소는 조선인 위안부들을 있던 곳이었단다. 그곳이 위안소가 있었던 곳이라고 확인된 것이, 위안부였던 고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 때문이었다는구나. 중국에서는 과거 아픈 기억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리지샹 위안소 유적진열관을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에는 이런 진열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에서 우리나라 위안부들을 위한 건물이 있다는 것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구나. 그리고 진열관 광장에는 동상이 있는데, 위안부 시절 임신했던 고 박영심 할머니의 동상이 있다고 하는구나. 고맙긴 한데, 우리나라는 뭐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부끄럽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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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난징 <리지샹 위안소 유적진열관> 2015 12 1, 정식 개관했다. 위안소를 주제로 한 전시관 중 압도적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다. 평안도 출신 박영심 할머니가 이곳 두 번째 건물 19번 방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 2003 11 21, 박 할머니가 현장을 찾아 내가 있던 곳이 여기라고 증언하자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 난징 중심부에 유적 진열관을 마련했다. 3,000m^2 규모로 1,600여 점의 전시물과 680장의 사진이 생생하게 보존돼 있다. 진열관 가운데에는 마당이 있는데, 한쪽 벽면이 70명의 할머니 얼굴 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70명 할머니 중 다수가 한국 출신이다. 광장 가운데 박영심 할머니가 위안부 시절 임신했을 당시 모습이 동상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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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란 분이 있단다. 이 분도 아빠가 좀 알고 있단다. 예전에 정정화님께서 직접 쓰신 <장강일기>를 읽은 적이 있거든.. 시아버지 김가진과 남편 김의한이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한 이후, 얼마 안 있어 여자 혼자의 몸으로 상하이까지 가시고, 광복 때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신 분이란다. 임시정부 요원 중에 그 분의 밥을 먹지 않은 분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몇 번이라 국내에 왔다 갔다 하시고, 대한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하는 등 독립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셨단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광복 후 그도 나라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는 것특히 백범 김구 선생이 돌아가시고, 남편 김의한이 납북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고 하는구나. ,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정정화님께서 쓰신 <장강일기>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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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 인사들이 그대로 미 군정에 부역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러난 일제의 자리를 미 군정이 채운 상황, 한평생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정정화 여사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들과 함께 어렵게 서울에 자리를 잡았지만, 믿고 의지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1949 6 26일 암살당했다. 이후에 시련의 연속,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40년 지기이자 독립운동 동지였던 남편 김의한이 납북되었다. 남한에 남은 정정화 여사는 부역죄로 끌려가 투옥당하는 등 잦은 고초를 겪었다. 여사는 1991년 사망할 때까지 세상에 나서지 않고 조용한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별개로, 일제 강점기와 미 군정, 이어진 독재정권이 그들을 가만히 두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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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 밖에 많은 분들과 유적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한 분만 더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를 해야겠구나. 아빠도 처음 들어보는 분인데 조명하 선생님이라는 분이야. 그분은 익숙지 않은 대만에서 의거를 일으키신 분이란다. 꼭 기억을 해야 할 또 한 분의 독립 의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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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조명하 선생, 아마 처음 들어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에 조명하 의사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거짓말인 줄 알았다. 마치 무협지 주인공처럼, 혼자 무공(?)을 연마했다. 단도 한 자루를 던져 의거에 성공했다. 그것도 당시 히로히토 장인이자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를 없애 버린 것이다. 1928 5 14, 대만 타이중에서 의거한 스물네 살 청년 조명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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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가 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해 너무 소홀한 것 같다는 것이야. 일단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곳이 많았고, 관리되고 있는 곳도 다녀간 사람들이 너무 적단다. 그렇게 잊혀지고 찾는 이가 없고, 시간이 흐르면 그곳은 사라질 거야. 대한민국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임시 정부. 그 임시 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유적지들을 좀 잘 관리했으면 좋겠구나. 임시정부 요원들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에게 고마움을 생각하고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너희들도 그러길 바래.

임정로드 4000km 말고 약산로드 7000km도 있다고 하는데, 그 책도 한번 보고 싶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임정 프로젝트>을 진행하며 가장 자주 내뱉었던 말이 있다. “헛헛하다.”

책의 끝 문장 :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작은 움직임들이 생기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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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22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 봐야지 하고 깜박 잊고 있었네요. 약산로드와 함께 다시 바구니에 넣어놓습니다. ^^

bookholic 2021-03-22 08:42   좋아요 0 | URL
독립 운동 유적지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책을 통해서라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즐독하시고, 즐거운 한 주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23)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의 주체는 지역의 소농이다. 땅심을 북돋고, 논밭 농사와 상호 순환하는 축산을 유지하고, 지역사회 먹을거리체계를 지탱하는 원천은 소농이다. 미국 농무부가 지원하는 다국적 농기업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농업통상은 소농의 자치를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힘은 무역이 아니라 소농이 중심이 된 지역사회 자치에 있다. 특히 새 농업통상은 여성 농민의 역할을 중요하게 인식한다. 지구의 보편적 규범으로, 여성이 생산과 유통의 주체가 되어 지역사회 속에서 식량보장계획을 주도하도록 지지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여성 농민에게 농업 공동경영주의 법칙 지위를 보장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36)

이제 도시로의 집중과 개발은 한계에 달했다. 코로나19, 기후위기, 환경위기, 농업위기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 먼저 농어촌을 돌봐야 한다. 농어촌 주민에게 기본소득은 이러한 문영의 전환을 위한 소중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가지 않았던 길을 가도록 요구하고 있다. 농촌기본소득은 그 길의 나침반이자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56)

재생가능에너지를 정말 옹호한다면, 자신이 서 있는 자리부터 돌아봐야 한다. 지배엘리트의 관점에서 농촌, 산촌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숲과 환경을 지배 대상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농촌의 관점, 농민의 관점, 숲의 관점에서 재생가능에너지를 바라보고, 다시 한번 자기 지역 에너지는 자기 지역에서 해결한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에너지전환을 앞당기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래야 도시와 공장 곳곳에서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려고 애쓰게 될 것이고, 전기 소비를 줄이려고 노력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전환을 앞당기는 방법이다.

 

(58)

농촌 없는 사회란 상상할 수도 없다. 농촌이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이 되면, 그 사회는 망할 것이다. 농민이 있어야 농촌이 살지만, 농촌이 살 만한 곳이 되지 못하면 농민도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농촌, 농민, 농업은 서로 떼래야 뗄 수 없다. 그리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농촌-농민-농업의 가치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한반도에서 식량위기로 나타날 것이다. 곡물자급률이 20%대에 머무르는 사회에서 정치와 언론이 이렇게 농촌-농민-농업을 홀대한다는 것은 사회적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102)

농사를 대규모로 짓고 농사짓지 않고 착취하는 수탈계급이 생기면서 인간 문명은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농사를 바라보는 저의 관점은 이중적이 되었습니다. 농업문명은 지주-소작인 계급문명으로 변질되더니 약탈과 전쟁이 불가피하게 되었습니다. 자급 중신의 농사문명이 교환 중심의 농업문명으로 바뀐 건 동력 기계와 자본주의가 출현하면서 결국에는 농업이 산업에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서구 제국주의 지식인들과 아류들이 말하는 직선적 역사발전 단계설이란 결국 탐욕과 착취를 무한 추구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쌓아올린 바벨벨탑입니다. 자본주의 근대문명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역사가 종식된 지상천국이 아니라 지옥이지요.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는 모래성을 허물고 흙으로 되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108-109)

한 스위스 수녀님이 20대 때 우연히 한국에 오게 되었답니다. 1970년대 초였는데 서울의 판자촌에 가게 되었던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여남은 명 되는 동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하나를 나눠 먹는 장면을 보았다고 해요. 이 수녀님이 그 모습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고, 또 감격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한국에서 이런 사람들하고 같이 살고 싶다고 결심을 하고 고아들, 집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거두면서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답니다. 그리고 은퇴를 해서 충청도 어디 시골에 가서 혼자 살고 계셨는데, 그 당시에 기자가 찾아가서 인터뷰를 했어요. 그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이야기, 지금 살고 있는 이야기를 기자가 들었는데, 그분이 굉장히 화가 나 있더라는 거예요. 한국이 너무 달라졌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이곳으로 와서 살지 않았다, 지금 한국은 사람 사는 사회가 아니라 돈만 아는 짐승들이 사는 곳이다, 한국이 이렇게 사나운 사회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그걸 제가 신문에서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요.

 

(114-115)

20세기 초에 미국 농무성 토양관리국장으로 있던 프랭클린 H.킹이라는 사람이 조선, 일본, 중국, 만주를 둘러보고 난 뒤에 돌아가서 <4,000년의 농부>라는 책을 썼어요. 동양에 가보고 탄복했다, 동양 사람들이 굉장히 지혜롭게 토양을 관리하더라는 거예요. 이 사람이 깜짝 놀란 게 뭐냐면 인분을 거름으로 쓰는 거였어요. 서양 사람들은 가축분뇨를 퇴비로 쓴다는 것까지는 알지만 임분을 쓴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그런데 인구가 많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인분을 농사에 쓰지 않고 강이나 바다에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강물, 바다 다 오염됩니다. 동양 사람들은 과학적 지식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랜 옛날부터 이것을 삭혀서 발효시켜가지고 도로 농토로 넣어줬어요. 그렇게 해서 농토가 지력이 고갈되지 않았던 것이죠. 우리가 작물을 키워서 먹으면 그만큼 땅에 있던 양분이 뺏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다시 땅으로 돌려주는 거예요. 이 순환을 4,000, 아니 만 년 동안 계속하니까 땅이 보호가 되는 거죠. 게다가 논농사는 수전(水田)입니다. 표토가 날아갈 일이 없어요. 그리고 논은 기후도 조절합니다. 우리나라 전체 대형 댐 한 10개 이상의 물 저장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논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116)

저는 밥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밥이 어디서 나오는가. 이 밥을 지키기 위해서 농민들이 어떻게 고생하는가. 하늘과 별과 바람과 비가 땀과 결합해서 종합 예술품으로서 쌀이 나오는 거잖아요. 일찍이 해월 최시형 선생님이 밥 한 그릇을 제대로 알면 만사를 안다 그랬는데, 하나도 과장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걸 압축하고 있는 말이 공양인 거예요. , 하늘과 농부와 별과 바람과 비가 결합해서 하나의 제물이 되어서 나를 모시는구나. 그걸 깨닫는 순간 밥 먹는 시간이 한없이 거룩해집니다. 쌀 한 알 한 알 씹으면 희열이 생깁니다. 나한테 희생되겠다고 온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뭐 쌀 아껴라, 밥풀 함부로 버리지 마라,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겠죠. 자연히 경건해지니까요. 해월 선생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고 그랬습니다. 만물의 관계는 이천식천이다. 하늘이 하늘을 먹여 살리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분이 말한 하늘은 모든 생명을 말하는 거예요. 하늘의 도움 없이, 하늘의 정기 없이는 어떤 생명도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게 없어요.

 

(207)

2015년 여름 인권사회학자 조효제 교수는 칼럼 기후변화, 절체절명의 인권’(<한겨레>, 2015 8 19)에서 기후변화를 가장 심각한 구조적 폭력이며 “21세기 인권침해의 주범 중 주범이라 확신한다며, 기후변화가 인권에 주는 끔찍한 함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불면의 밤을 뒤척여야 정상이 아닐까라고 물었다. 인권침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설정되는 관계만을 인권문제로 파악하는 기존의 인권담론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한 시스템적, 구조화된 인권문제는 배제된다는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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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21 0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1 0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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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요즘 책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로는, 알라딘 인터넷 서점 책 전용 SNS인 북플을 통하는 경우가 많단다. 이번에 읽은 <사랑의 역사>도 거기서 많이 올라와서 알게 된 책이란다.

진부한 책제목. 사랑의 역사. 원제도 확인해 보니 The history of love… 그런데 진부한 책제목과 달리 책에 담긴 이야기는 마음을 울리고, 잊었던 사랑의 감정을 불러 일으킬 만했단다. 누구나 자기만의 사랑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거야. 너희들도 앞으로 살면서 너희들의 사랑의 역사를 만들어가겠지. 그리고 자기만의 사랑의 역사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되겠지. 그러면 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이야기가 있을까. 그 많은 사랑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단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하는데, 살짝 걱정이 되는구나. 이야기가 너무 얽히고 설켜서 너희들에게 잘 이야기를 해줄지 모르겠구나. 얼마 전에 엄마가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냐고 물어봐서, 이 책이 괜찮았다고 하니, 내용이 뭐냐고 물어봐서, 줄거리를 이야기하다가 5분도 안되어 이야기가 꼬여서, 한번 읽어보시라 하고 끝맺음을 했는데 말이야. 너희들에게는 잘 한 번 풀어보려고 노력을 해볼게. 중간에 한번 읽어보라고 하면서 편지를 끝내도 이해해주렴.


1.

때는 세계 2차 대전이 한창일 때 폴란드한 사랑하는 젊은 연인이 있었어. 그들은 모두 유대인으로 나치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었어. 많은 유대인이 그런 것처럼 그들은 유럽을 떠나 아메리카 대륙으로 향했단다. 여자의 식구들이 먼저 미국으로 왔단다. 그런데 뒤늦게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남자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응답이 없었어. 유대인에 대한 대규모 살상 소식이 전해졌고, 남자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단다. 그 남자의 이름은 레오폴드 거스키였고, 그 여자의 이름은 앨마 메러민스키였단다.

앨마는 미국에서 아들 아이작을 낳았단다. 그리고 일자리를 얻게 되었는데, 그 회사의 사장의 아들과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그렇게 미국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었는데, 죽은 줄 알았던 레오(레오폴드)가 찾아왔어. 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지.

레오는 원래 작가 지망생으로 글도 많이 쓰고 그랬어. 출간하려고 책도 두어 권 썼으나 지금은 남아 있는 원고는 없었어. 그는 미국에 와서는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 힘들게 살아갔단다. 많은 일을 했지만, 열쇠수리공이 정식 직업이었고, 세월이 흘러 그것도 은퇴를 해서 혼자 쓸쓸히 노후를 보내고 있었단다. 삶에 쫓겨서일 수도 있고, 앨마에 대한 사랑을 잊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단다. 유일한 친구는 윗집에 살고 있는 홀아비 브루노가 전부였단다. 하지만, 알고 보니 브루노도 오래 전 죽은 친구로, 레오의 상상 속에 있는 친구였단다.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에는 여러 친구들이 있었지. 전쟁 통에 뿔뿔이 흩어졌고, 나중에 간신히 연락이 닿은 친구들은 이미 세상을 등지기도 하고불우한 인생이었단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 켠에는 늘 사랑했던 앨마와, 앨마와 자신의 아들 아이작이 있었단다. 아이작이 자신의 존재를 알지 못하지만 멀리서 그를 지켜보곤 했어. 아이작은 유명한 작가가 되었는데, 레오는 팬 싸인회에 참석하기도 했단다. 레오가 젊은 시절을 작가 지망생이었던 만큼 글쓰기 재주가 있었는데, 아들 아이작도 그 재능을 물려받은 것 같았지. 어쩌면 자신의 꿈을 아들이 대신 이루어냈다고 뿌듯해했을 것 같구나.


2.

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단다. 이스라엘 출신의 다비드와 영국 출신 샬럿의 사랑이야기. 그들은 사랑을 하게 되고, 천문학자였던 다비드의 직장 때문에 미국으로 이사를 오게 된단다. 그리고 미국에서 첫째 앨마와 둘째 버드가 태어난단다. 첫째 앨마의 이름은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는 <사랑의 역사>라는 책의 주인공에서 따왔다고 했어. 행복한 가정은 오래가지 못했어. 앨마는 일곱 살 때 아빠 다비드가 병에 걸려 돌아가시고 말았거든. 엄마 샬럿은 아빠를 잊지 못하고 계속 혼자 지내고 있었어.

시간을 흘러 앨마는 열다섯 살이 되었단다. 샬럿의 직업은 번역가였는데, 어느날 이상한 제안이 왔단다. 제이컵 마커스라는 사람이 편지로 연락이 왔는데, 스페인어로 된 <사랑의 역사>를 번역해 달라는 내용이었단다. 다른 책도 아닌 <사랑의 역사>라니엄마는 그 제안을 받았고, 번역을 해서 4번에 나눠 보내주기로 했단다. 앨마는 이 이상한 인연이 엄마의 운명이라고 생각했어. 아빠가 돌아가시고 지금까지 혼자 지낸 엄마의 짝이 드디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지. 엄마가 번역본을 보내는 심부름을 앨마에게 시켰는데, 앨마는 엄마 몰래 엄마인 척 하면서 제이컵에게 편지를 보냈어. 레오가 사랑하는 앨마와 구분하고 위해서 여기 앨마는 앞으로 앨마 싱어라고 이야기할게.

샬럿과 다비드가 그토록 사랑하는 책 <사랑의 역사>는 어떤 책이냐그 책은 지은이는 즈비 리트비노프라는 사람이란다. 그가 남긴 유일한 책이 <사랑의 역사>라는 책인데, 그가 살아 있는 동안은 인정을 받지 못했고, 나중에 우연히 알려지게 된단다. 그 책이 널리 알려지는데 공을 세운 이가 다비드 싱어였는데, 남미 여행 중에 다비드 싱어가 이 책을 중고서점에 우연히 발견되었고, 이 책의 내용이 너무 좋아 아내 샬럿에게 선물을 했던 거야. <사랑의 역사>의 여주인공의 이름이 맨 처음 이야기했던 레오가 사랑했던 앨마와 똑같았잖아. 그렇다면 즈미 리트비노프와 앨마와도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건 조금 있다가 다시 알려줄게.


3.

레오는 우연히 신문 기사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보게 된단다. 아들 아이작이 죽었다는 기사였어. 이제 60살밖에 되지 안 되었는데 죽다니레오가 사랑했던 앨마는 이미 5년 전에 죽고 없었어. 그런데 자신보다 아들이 먼저 죽다니레오는 아이작의 장례식에 꼭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 없으니 먼 친척이라고만 하고, 아이작의 이부 동생인 버나드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어. 아이작의 집에 가서는, 자신과 앨마가 어린 시절 폴란드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게 되어 몰래 가지고 오기도 했단다. 그 옛사진을 누가 신경이나 쓰겠니.

….

레오의 젊은 시절. 기자였던 즈비 리트비노프와 친구였단다. 앞서 이야기했던 <사랑의 역사>의 지은이 즈비와 레오는 친구였던 거야. 즈비도 마찬가지로 유대인이었고, 유럽을 떠나 남미로 향했어. 그때 레오는 자신이 쓴 원고를 그에게 보관해달라고 부탁했어. 즈비가 도착한 땅은 칠레. 그곳에서 로사라는 여인과 만나 결혼도 해서 정착을 했단다. 앨마도 그랬듯이 즈비도 레오가 죽은 줄 알았어. 그리고 그의 손에는 레오의 원고가 있었지. 즈비는 폴란드말로 되어 있는 레오의 원고를 스페인어로 번역해서 출간하였단다. 그가 추가한 글은 마지막 장 레오폴드 거스키의 죽음이 전부였단다. 즈비가 그 책을 비록 출간했지만, 그는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갔단다.

뒤늦게 레오로부터 연락이 왔어. 자신이 미국에 왔다면서 원고를 보내달라고하지만, 그 연락을 즈비가 받지 못했어. 당시 즈비는 큰 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었거든. 레오의 연락을 받은 것은 즈비의 아내 로사였고, 로사는 레오에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어. 몇 년 전 홍수로 원고를 잃어버렸다고 말이야.

, 정리를 하면레오가 자신의 원고를 즈비에게 주었고, 즈비는 레오가 죽은 줄 알고 레오의 원고를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했고, 그 책을 다비드 싱어가 중고서점에 발견하여 샬럿에게 선물했고, 그들은 결혼하여 첫 번째 아이의 이름을 그 책의 여주인공 앨마로 지었고이해했지?


4.

다시 샬럿과 다비드의 열다섯 살 딸 앨마 싱어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꾸나. 호기심 많은 앨마는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 나온 여주인공 앨마 메러민스키가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찾아 나섰단다. 어떤 인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지. 하지만 그런 이름을 갖고 있는 이는 없었어. 당연했겠지. 앨마는 결혼해서 다른 성을 쓰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열다섯 살 앨마는 책 속의 앨마의 결혼 후 성을 알아내고 찾아갔지만, 이미 5년 전에 돌아가셨다고 했어. 다만 앨마의 아들이 아이작이라는 작가라는 것을 알고 그의 집에 쪽지와 연락처를 남겨두고 왔단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아이작의 부고 소식을 기사로 접하게 되었단다. 앨마는 아이작이 어떤 작가일까? 생각하고 그의 대표작 <치유>라는 책을 읽어. 그런데, <치유>라는 책의 주인공 이름이 다름 아닌 제이컵 마티스. 바로 엄마한테 <사랑의 역사>의 번역을 맡긴 제이컵 마티스와 같았어. , 앨마의 머릿속의 한줄기 깨달음. 제이컵 마티스는 바로 아이작이었구나.

아이작이 엄마한테 번역을 맡긴 거야. 그럼 왜? 아이작은 그 <사랑의 역사>라는 책의 번역을 의뢰했던 것일까. 아이작은 5년 전 엄마 앨마가 죽고 나서 엄마가 레오 거스키라는 사람과 주고 받은 편지를 발견하게 돼. 그리고 편지 내용은 스페인어로 된 책 <사랑의 역사>의 이야기와 일치했단다. 그래서 아이작은 레오 거스키라는 사람이 자신의 진짜 아버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제대로 읽기 위해 <사랑의 역사>의 번역을 의뢰했던 것이야. 하지만, 아이작은 번역본 전부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 것이란다. 아이작이 죽기 전에 네오가 자신과 앨마 사이의 이야기를 적어 아이작에게 보낸 적이 있는데, 그 원고가 아이작이 죽고 나서 발견이 되어 아이작의 유고로 오인해서 출간되었단다.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하면서 말이야레오도 아들의 이름을 빌어 인정을 받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구나.

자 이제 소설의 마무리로 달려가보자꾸나. 레오가 사랑했던 많은 이들이 거의 다 죽었잖아. 이제 레오도 죽음을 기다리는 것으로 그의 사랑의 역사도 마무리할 시점이었지. 그런데, 앨마라는 사람으로부터 만나자는 쪽지를 받게 된단다.

그 쪽지의 사연은 이랬단다. 앨마 싱어의 남동생 버드가 오해를 하나 하게 돼. 버드가 누나의 노트를 몰래 봤는데, 거기에서 앨마 메러민스키라는 이름을 보게 돼. 그게 누나의 진짜 이름인 것으로 오해를 했어. 성이 다르니, 누나의 진짜 아빠는 메러민스키라는 사람일 거라고 추측해. 그리고 아이작의 동생 버나드의 전화를 받게 되는데… (앨마 싱어가 아이작이 죽기 전에 아이작의 집에 쪽지와 전화번호를 남겼거든…_) 그래서 버드는 레오폴드와 누나 앨마에게 편지를 써서 서로 만나자는 약속을 정하게 되고레오폴드는 깜짝 놀라게 되지. 죽은 앨마가 만나자고 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 장소에 가보니, 그 옛날 십대 아름다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앨마가 서 있었어.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아름다운 엔딩 장면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햇살 따스하게 내리 쬐는 공원에서 레오폴드와 앨마의 만남좀더 상상의 날개를 펴면 레오폴드는 십대의 모습으로 변하고, 앨마 싱어는 레오폴드가 사랑했던 앨마 메러민스키로 바뀌면서….  서로 미소 지으며 끝. 이 책의 줄거리를 이야기를 어떻게 해주어야 하나 걱정했는데, 어찌저찌하여 마무리는 했구나. 오랜만에 괜찮은 사랑 이야기를 잘 읽었단다. 지은이는 니콜 크라우스라는 사람인데  그 분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어. 그의 다른 소설들도 한번 살펴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내 부고가 쓰일 때, 내일. 혹은 그다음날. 거기에는 이렇게 적힐 것이다.

책의 끝 문장 : 그것이 그의 삶이 전부였다.


내 책에는 내가 가슴으로 외우는 단락들이 있다.

가슴으로(by heart), 이것은 내가 가벼이 쓰는 표현이 아니다.

내 심장(heart)은 약하고 믿을 수 없다. 내가 간다면, 그건 심장 때문일 것이다. 나는 심장에 되도록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무언가 심장에 영향을 줄 것 같으면, 방향을 다른 데로 돌린다. 예를 들어, 내 위장, 혹은 폐, 폐는 잠시 작동을 멈출 수는 있겠지만 아직까지 다음 숨을 쉬지 못한 적이 없다. 거울 앞을 지나다 내 모습을 일별할 때, 혹은 정류장에 있는데 아이들이 내 뒤에 와서, 누가 똥냄새를 풍기는 거야? 하고 말할 때 – 날마다 겪는 작은 모욕들 – 나는 그것들을 대개는 간에서 받아낸다. 다른 피해들은 또다른 곳에서 받는다. 모든 상실한 것들에서 받는 타격은 췌장이 전담한다. 상실한 것들이 너무 많은데 비해 그 장기는 너무 작은 게 사실이다. - P20

인간의 최초 언어는 손짓이었다. 사람들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이 언어는 전혀 원시적이지 않았으며, 손가락과 손목의 섬세한 뼈를 이용한 무한한 조합의 동작으로 현재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표현할 수 없는 것은 없었다. 손짓 하나하나가 복잡하고 미묘했으며, 그 움직임을 통해 발휘되었던 섬세함은 그때 이후로는 완전히 상실되었다. - P111

우리가 손짓의 언어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말을 하며 손을 움직이는 습관이 그 언어의 잔재다. 손뼉을 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엄지를 치켜세우고 하는 모든 것이 고대의 손짓이 남긴 유물이다. 예를 들어 서로 손을 잡는 것은 함께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기억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너무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는 밤중에는 뜻을 전하기 위해 서로의 몸에 대고 손짓을 할 필요를 느낀다. - P113

사람들이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느끼고 싶은 욕망도 커졌다. 이따금 심하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들은 더 많이, 더 깊이 느끼고 싶어했다. 사람들은 감정에 중독되었다. 새로운 감정들을 발견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예술은 바로 이런 식으로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종류의 기쁨이 새로운 종류의 슬픔과 함께 만들어졌다. 예컨대, 있는 그대로의 삶에 대한 영원한 실망, 예상치 못한 유예가 주는 안도감, 죽음에 대한 두려움. - P160

몽상에 빠져 있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을 놓쳐서 열 블록을 되돌아 걸어가야 했는데, 한 블록씩 지날 때마다 불안은 커지고 확신을 줄어들었다. 앨마가 – 실제 살아 있는 앨마가 – 정말로 나온다면 어떡하지? 책 속에서 걸어나온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거지? <사랑의 역사>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다면 어떡하지? 들어본 적은 있지만 잊고 싶다면? 그동안 앨마를 찾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정작 그녀가 발견되기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 P269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때가 있었고,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한 때도 있었다. 최소한 삶을 꾸리기는 했다. 어떤 종류의 삶? 그냥 삶. 나는 살았다. 쉽지는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절대로 견딜 수 없는 것이란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P340

정말이지, 별로 말할 것은 없다.
그는 위대한 작가였다.
그는 사랑에 빠졌다.
그것이 그의 삶의 전부였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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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2021-03-17 0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멋진 어머니세요 ㅠㅠㅠㅠㅠ..... 딸과 아들 분이 정말 부럽네요!:) 읽어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정성스런 독서편지에 감동받아서 꼭 읽어야겠네요!

bookholic 2021-03-17 08:00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리뷰가 스포일러가 되었을까 걱정이네요...
그런데 읽어보시면 위 리뷰가 여기저기 오류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실 거예요..
(몇몇 기억이 애매한 부분은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써서~~^^)
즐거운 독서 되시길 바랍니다.
아참, 그리고 제 프로필 사진 때문에 가끔 ‘엄마(또는 어머니)‘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아빠랍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나탈리 2021-03-17 09:20   좋아요 1 | URL
세상에 제가 편견이 있어나봐요 ㅎㅎ ㅠㅠ 너무나 당연하게 어머니라고 생각하다니....
정말 멋진 아버지분으로 정정할게요!!!
좋은 책은 알고있어도 좋은 책이니까요!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새파랑 2021-03-17 0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네요~!설명하기 힘든 책이던데... 저도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이 책이 제일 감동있고 재미있었습니다 ㅎㅎ 딸과 아들이 부럽네요^^

bookholic 2021-03-17 08:03   좋아요 1 | URL
ㅎㅎ 고맙습니다.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쓴 리뷰일 뿐인데, 칭찬을 해주시니...
다시 읽어보니 문맥이 좀 안 맞는 부분도 있고... 줄거리를 휙 건너뛴 부분도 있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 책 잔잔한 감동을 마구 뿜어냈던 것 같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십시오~~^^
 















(12)

산악파는 열이면 열 모두 사형에 표를 던졌고, 평원파의 38퍼센트가 그들과 함께 찬성표를 던진 반면, 오로지 14퍼센트의 지롱드파만이 시역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코뱅 당원들 중 가장 결연한 자들 눈에는 지롱드파의 이 신중함이 위태한 이 시기에 비난받아 마땅한, 위험한 계산일 뿐이었다.


(41-42)

장 봉 생탕드레는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도처에서 사람들은 혁명에 지쳐 있습니다. 부자들은 혁명을 싫어하며, 가난한 자들에게는 빵이 부족하고, 비난해야 할 것은 우리라고 사람들은 그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기력을 북돋우려고 우리는 모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체들에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빵이 없지만 곡물이 부족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곡물을 꼭 쥐고 놓지 않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살 길을 긴급히 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혁명을 완수하도록 우리를 돕기 원한다면 말입니다......

방데와 그 인근의 도에서 생긴 혼란이 아마도 걱정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위험한 것은 그들 모두의 가슴속에 자유에 대한 신성한 열정이 질식되어 있기 때문일 뿐입니다.”


(138)

뤼오가 결론지었다. “얼마나 이상한 국가인가. 모든 일에서 극단을 달리다니! 프랑스는 왕을 숭배했다가, 마지막 왕을 죽였다. 가톨릭 신앙의 멍에 아래 기꺼이 숙이고 들어갔다가, 막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 중간 조치는 전혀 모른다……. 이 모든 것의 마지막은 무엇일까? 비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녕, 나의 친애하는 친구여, 더 보지 않으려 내 눈에 띠를 맨다네……”


(155-156)

전에는 신권을 가지고 있던 왕이, 왕비가, 1788년 자유를 위해 일어났던 바르나브가, 마르세유 대표자들과 함께 1792 8 10일 튈르리 궁 공격에 나섰던 바르바루가, 브리소가 그들의 머리를 창문에 내놓았다면, 그들처럼 널빤지 위에 굴러떨어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고 할 수 있는 이가 누구겠는가?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외쳤다.

사람들이 나에게도 역시 공포의 생각을 심으려 했으나, 위험이 나에게 뭐 그리 중요한가? 나의 생명은 조국의 것이고, 내 심장은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나무랄 것도, 수치스러워할 것도 없는 일이 될 것이다.”


(170)

혁명 정부의 동력은 덕이며 동시에 공포입니다. 덕이 없으면 공포는 파국을 초래합니다. 공포가 없다면 덕은 무력합니다.”

기요틴은 사람들을 고결하게 만드는 기계와 같은 것이었다.


(208)

구체제에서 손가락질을 받으며 국내 통관세 세무 관리 노릇을 한 징세 청부인 스물일곱 명을 죽였다.

그들 중에는 위대한 화학자 라부아지에도 있었다.

루이 16세의 누이인 마담 엘리자베트도 죽였다.

이는 복수의 살인이었다.

그렇게 공화국을 정화했다.’

로베스피에르의 제안하에, 보클뤼즈와 부슈뒤론의 연방주의자들왕당파들의 재판을 위한 인민위원회를 오랑주에 창설했다. 이 위원회는 사형 332건을 선고했다.


(263-264)

뤼오가 썼다. “, 혁명에서 각 개인의 열정은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것이다. 그 열정들은 가장 활발한 이들을, 이 혁명을 그 목적에 이르도록 이끌 능력이 가장 많은 이들을 사형대로 보낸다. 열정에 빠져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이들은 사형 집행인의 손으로 서로를 죽이고, 자신들의 대의명분을 약화하며, 인류 역사의 이 놀랍고 숭고한 모험을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268)

캉바세레스가 말을 이어 갔다. “우리의 불행도, 우리의 잘못도 서로에게 비난하지 맙시다. 혁명은 이루어졌습니다…… 혁명은 희생자들을 대가로 요구했으며, 운명이 뒤집혔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사건들 각각에 대한 조사를 허락할 것입니까? 건물이 완성되면, 장비를 처분하는 건축가는 협력자들을 부수지 않습니다. 인민과 국민공회가 하나를 이루는 한, 자유의 적들의 노력은 우리 발아래 숨이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324)

나폴레옹이 형 조제프에게 썼다. “나는 삶에 큰 애착이 없으며, 큰 애정을 갖고 삶을 바라보지도 않고, 항상 전투 전야의 마음 상태로,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죽음이 한가운데 있을 때 걱정이나 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생각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계속된다면, 형님, 나는 결국 지나가는 마차에게 길을 비켜 주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이성은 종종 이런 것에 놀랍니다. 그러나 이는 이 나라의 도덕적 광경과 습관적 우연이 나에게 만들어 놓은 경향입니다.”


(406)

보나파르트가 결론에서 말했다. “나에 대해 말하면, 나는 여러분에게 휴식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나에게 준 신뢰를 정당화했으며,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 이상의 영광을 획득했습니다……. 신의 없는 의도를 나에게 돌리려는 중상모략은 허망한 노력이 될 것입니다. 시민으로서 나의 경력은 나의 군 경력과 마찬가지로 하나며 단순한 것이 될 겁니다……”


(486)

그가 말했다. “시민 총재들이여, 나는 이 칼을 오로지 공화국과 그 정부의 보호를 위해서만 뽑을 것임을 맹세합니다.”


(493-494)

보나파르트가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들은 내가 그대들에게 그렇게 빛나는 모습으로 남겨 놓았던 이 프랑스를 가지고 무엇을 했소? 나는 당신들에게 평화를 남겨 놓았소! 나는 전쟁을 재발견했소. 나는 당신들에게 승리를 남겨 놓았소! 나는 그 반대를 발견했소! 나는 당신들에게 이탈리아로부터 수백만 남겨 주었소! 나는 어디서나 약탈의 법칙과 빈곤을 발견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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