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미술 이야기 2 - 그리스.로마 문명과 미술 : 인간, 세상의 중심에 서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2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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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줄여서 난처한미술이야기 시리즈 2권을 읽었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강의 형식으로 질문과 답변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서 읽기 편했단다. 1권에서는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그리스 로마 문명과 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단다.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은 워낙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익숙한 것 같지만, 미술만 떼어내어 자세한 설명을 들어본 경험이 없는 것 같구나.. 이 책을 통해 그리스 미술과 로마 미술의 대한 공통점과 차이점그리고 숨겨진 에피소드에 관한 알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어. 읽은 내용들은 금세 머릿속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지만 말이야. 더 사라지기 전에 얼른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겠구나.


1.

먼저 그리스 문명과 미술부터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그리스 문명도 어느날 갑자기 땅에서 쑥 솟아난 것은 당연히 아니란다. 그 이전에 있었던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거야. 소위 오리엔트라고 말하는 곳에서 말이야. 그래서 미술이나 건축도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리스 건축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파르테논 신전도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받았대.

오리엔트와 그리스 사이에 에게 해라고 부르는 바다가 있는데, 그곳에서 먼저 그리스 문명의 태동이 있었단다. 당연하겠지오리엔트와 가장 가까웠으니까 말이야. 고대에는 육로로 가게 되면 빙빙 돌아가야 하고 산악지대고 많다 보니, 바닷길이 지름길이었기 때문에 바다를 중심으로 문명이 전달되었단다. 그 중심에 에게 해가 있었던 거지. 그 에게 해에 크레타라는 섬이 있었는데, 그 크레타 섬은 이집트와 그리스의 무역 기지와 같은 역할을 했어. 그리고 문명도 일어났지만, 화산 폭발로 멸망하고 말았다고 하는구나.

크레타 섬은 아틀란티스나 미노타우로스와 같은 그리스 신화의 무대이기도 했는데, 이집트 미술의 영향을 받아 독자적인 특징을 가진 미술로 승화시켰어. 예를 들어, 정면성의 원리로 인물을 그린 것을 들 수 있겠구나. 이집트에서는 높은 신분만 그런 방식으로 그렸다고 했었잖아. 그런데 미노아 문명에서는 평범한 소년도 정면성의 원리로 그림을 그렸대. 그리고 누드 작품이 많았는데, 이것은 후에 그리스 미술의 특징이 된단다. 당당한 자신감을 보여주기 위해 누드로 작품을 만든 거야.

에게 지역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트로이 전쟁이란다. 트로이 목마로도 유명하고 너희들도 아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트로이 전쟁. 전설로만 내려오던 트로이라는 나라의 유적이 발견되면서 실제 있었던 나라로 밝혀졌단다. 당시 그리스 본토에는 미케네 문명을 꽃피고 있었어. 이때가 기원전 1800년에서 1100년까지 이어졌는데, 무척 오래 전의 이야기구나. 미케네 문명의 유물이 나온 대표적인 곳이 아트레우스의 보물 창고라는 곳이야. 미케네 왕 아가멤논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트레우스의 보물 창고라고 했다지만, 실제 연관성은 없다고 하는구나.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라고 발견된 것도 있지만 실제 아가멤논의 얼굴은 아니라고 했어.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100년 경에 도리아인의 침략으로 멸망하고, 좀 더 시간이 흐른 기원전 800년 그리스 문명이 태어난단다.


2.

고대 그리스는 여러 도시 국가들로 이루어졌단다. 그리스는 해안선이 복잡하였고 섬이 많고 산맥도 높다고 했어. 도시들은 아무래도 해변 근처에 생겨나게 되었는데, 아테네, 테베, 스파르타, 올림피아 등 많은 도시국가들이 출현했어. 너희들도 이제 곧 배우겠지만, 고대 그리스는 오늘날 민주주의 시작점이었어. 그런데 오늘날처럼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권리를 준 것은 아니었고, 시민의 자격이 있는 성인 남성으로 국한되어 있었어. 그리고 시민들이 모두 의사 결정에 참여해서 의사를 전달해야 했어. 민주주의가 그리 쉬운 게 아니란다. 그리고 시민권을 갖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단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시작할 수는 없는 것이지

고대 그리스 미술이라고 하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봐야 하나이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작 시점을 서로 다르게 주장한다고 했어. 올림픽의 시작한 시점,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집대성 한 시점그리스 알파벳을 사용하기 시작하던 시기 등으로 다르게들 주장했대. , 이제 그럼 본격적으로 그리스 미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서양미술사는 그리스 미술을 재해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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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일단 미술에 대해서만 말해보겠습니다. 서양미술사는 그리스 미술을 재해석해온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닙니다. 문명의 한 단계를 거칠 때마다 서양의 미술가들은 그리스 미술을 새롭게 해석해나갔거든요. 예를 들어 15~16세기 유럽에는 르네상스라는 미술 흐름이 있었지요. 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부활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부활시킨다는 걸까요? 바로 고전의 부활을 뜻하는데 그 고전이 바로 그리스 미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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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미술을 시대별로 구분할 때 이용하는 것이 도자기라고 하는구나. 고대 그리스의 도자기의 변화를 시대별로 구분 할 때 기원전 1050년의 원-기하학 문양 시대부터 시작하여 기하학 문양 시기, 동방화 시기, 흑색상 도기 시기, 적색상 도기 시기로 구분한다고 하는구나. 이런 걸 너희들한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가 굳이 그런 시대구분까지 알아야 하나 싶구나. 그저 미술 작품을 잘 감상하면 되는 거지. 도자기를 생활에서 직접 사용하는 것이잖아. 시대를 거듭할수록 고급지고 기술이 들어가고 화려해졌다는 점만 알고 넘어가자꾸나.

그리스 조각상을 보면 젊은 남성의 나체를 조각한 경우가 많단다. 아빠도 학창 시절 미술책에서 그런 작품을 보면, 무척 궁금했단다. 창피하게 왜 벗겨 놓은 조각상을 만들었을까 하고 말이야. 그리스인들이 젊은 남성의 나체를 많이 조각한 이유는 인간을 신적인 존재로 격상시켰기 때문이라고 하는구나. 초창기의 젊은 남자 조각상을 쿠로스라고 불렀어. 쿠로스를 보면 오리엔트의 영향을 받았는데, 후에는 그리스만의 특징을 가진 조각으로 발전했다고 하는구나. 그 특징 중에 하나가 젊은 남성의 누드인 거지. 그런데 그것을 통해 건강한 육체를 중시하는 등 그리스 내의 불평등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대.

쿠로스는 돌을 조각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청동상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구나. 이 책에 청동상을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었는데, 여러 단계를 거쳐야 만들 수 있단다. 어떻게 그렇게 만들 생각을 했는지…. 여러 단계를 줄여서 간단히 이야기하면, 흙으로 빚고 그 표면에 밀랍을 칠하고 다시 그 위에 벽돌가루 등으로 감싼 다음불로 밀랍을 녹이면 틈이 생기는데, 그 틈에 청동물을 붓고, 식은 다음 벽돌가루와 청동상 안의 흙을 제거하면 된다고 한단다. 아빠도 청동상을 만드는 방법은 처음 본 것 같은데 신기하구나.

그리스는 민주주의가 시작된 것으로 유명한데, 이런 민주주의 체제 때문에 조각상을 만들더라도 개인을 우상화할 수 있는 초상 조각을 만들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 그리스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하르모디우스와 아리스토게이토만 초상 조각이 있다는구나. 예전에 학창 시절 배운 기억으로는 그리스에 도편추방제라는 제도가 있었어. 그런데 그 도편추방제라는 것이 가장 인기가 있어 독재자가 될 위험성이 있는 사람을 쫓아냈다는 것이라고 하니, 그들이 민주주의를 얼마나 중요시 여겼는지 알겠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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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그리스인들은 민주주의가 유지하려면 사회에서 특별히 인기 있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테네에는 도편추방제라는 제도가 있었지요. 이 법에 따라 아테네 시민들은 가장 인기 있는 사람’, 즉 독재자가 될 위험성이 가장 높은 사람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 냈습니다. 투표 결과 6000표 이상 받은 사람은 아테네 밖으로 추방당했어요. 그만큼 아테네인들은 독재자의 출현을 경계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살아 있는 사람의 초상을 새기지 않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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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미술에서 그리스 건축을 빼놓을 수 없을 거야. 가장 유명한 건물 중에 하나인 파르테논 신전이 건물은 아테네가 전쟁에서 이긴 기념으로 만든 건물인데, 이 건물이 왜 이렇게 유명하냐면,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사람을 배려한 디자인으로 세웠기 때문이란다. 기둥을 디자인할 때 중간 부분을 약간 불룩하게 해서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볼 때 지붕에 짓눌린 듯한 착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래. 배흘림 기둥 양식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의 무량수전도 떠오르는구나. 그리고 기중의 배치도 건물 안쪽보다 바깥쪽 기둥을 더 가깝게 배치해서 바깥쪽 기둥의 간격이 더 크게 보이는 착시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대. 바닥도 완전 평평한 것이 아니라, 안쪽이 볼록한 곡선 형태로 착시 효과를 방지했다고 하는구나. 이렇듯 감상하는 사람의 시선을 신경을 썼다고 하는구나. 파르테논 신전 둘레를 돌아가면서 신들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들이 있어서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전쟁의 승리를 만끽하는 그런 작품인 것 같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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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파르테논의 모든 곳에 휴머니즘이 녹아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하고는 다르게, 이 건물에는 사실 직선이 없어요. 우리 눈은 둥글기 때문에 직선은 우리 눈에 들어오면 곡선이 됩니다. 우리 눈에 직선으로 보이려면 실제로는 어느 정도는 곡선이어야 한다는 말이죠. 파르테논 신전은 그런 착시까지 고려했습니다.

심지어는 바닥도 휘어 있습니다. 파르테논 신전 한쪽 끝에 서서 보면 맞은편 바닥이 안 보입니다. 바닥이 중간 부분에서 부풀어 올라갔다가 내려가기 때문이지요. 직선을 위한 곡선인 겁니다. 가장 높은 부분과 가장 낮은 부분을 비교해보면 바닥 표면의 높이 차이가 10센티미터 이상 납니다. 신전의 긴 축인 남북 면으로 보면 최대 12.3센티미터까지 올라갔다 내려와요. 동서 축도 중심에 최대 6센티미터 가까이 부풀어 올라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시야에 대한 그리스인의 이해도는 정말 놀랍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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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것은 없잖니. 그리스 민주주의도 시간이 흐르면서 쇠퇴했어. 그러자 금기시되었던 초상 조각이 출현하였고, 개인 소유의 거대 건축물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리고 주변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그리스를 점령하면서 고대 그리스는 쇠망의 길을 걸었어. 알렉산더는 그리스를 점령하기는 했지만, 그리스 문화를 존경했기 때문에 그리스 미술은 계속 이어졌단다.

하지만 온전히 이어질 수는 없겠지. 마케도니아의 미술과 합쳐져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를 헬레니즘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알렉산더를 자신을 나타내는 여러 미술 작품을 만들게 했대. 알렉산더가 그리스뿐만 아니라 동방의 페르시아까지 점령을 했어. 그래서 헬레니즘은 페르시아 지역까지 퍼지게 되었는데, 그렇다 보니 자연적으로 그리스 미술이 동방에 전파되었다고 하는구나. 그런 헬레니즘이 간다라 불상을 거쳐 우리나라 석굴암까지 영향을 준 것이라고 하는구나.

고대 그리스의 시대는 끝이 났지만,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는 그리스 미술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고 하는구나. 근현대 건축물에서 고대 그리스의 건축물을 본 따서 지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덕수궁의 석조전도 고대 그리스 건축물 양식을 본 따 지은 것이라고 하는구나. 화려했던 고대 그리스의 미술을 그렇게 오늘날까지 숨쉬고 있는 것이란다.


3.

로마의 시작은 기원전 753년 작은 마을이라고 하는구나. 예전에 읽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를 세운 사람이 로물루스였고 그의 이름을 본 따 로마라고 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그 외에는 정말 아무 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단다. 이 책에서 다시 읽은 내용을 기반으로 이야기해볼게 로마 이전에 이탈리아반도에는 에트루리아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들의 문화와 예술이 후에 로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구나. 참고로 에트루리아는 전쟁에서 패한 트로이의 유민이 와서 세운 나라라는 설도 있다고 하는구나.

로마는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와 레무스 쌍둥이가 건국했다는 건국신화가 있고, 최초 로마는 티베르 강의 늪지대에 작은 언덕에서 생겨났대. 로마의 문화와 미술은 앞서 이야기한 에트루리아와 당시 선진 문명인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단다. 그래서 그리스의 신들이 대부분 라틴어로 바뀌었지, 똑같았단다. 정체체계는 원로원 중심의 로마 공화정이 나라를 다스렸고, 개인의 능력을 인정하여 그리스와 달리 초상 조각이 많이 있었어.

고대 로마에 관한 책을 읽다 보면, 자동차와 전기 시설 등이 없는 것만 빼고는 오늘날 도시가 갖추고 있는 것은 대부분 갖추며 살아갔단다. 여러 공공 시설과 문화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연장도 있었고, 여러 가지의 형태의 주거시설과 완벽한 도로와 수도 시절이 있었어. 로마의 공공시설의 건축물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콜로세움이 아닐까 싶구나. 영화에서도 많이 나오는 콜로세움은 타원형인데 긴 쪽 지름이 189미터나 되는 무척 큰 공연장이란다. 무려 5만명이나 들어갈 수 있대그리고 또 하나 유명한 건물로 판테온이 있는데신전으로 지었으나 나중에는 성당으로 사용했다가 지금은 이탈리아 국립 묘지로 사용하고 있다는구나.

로마의 여러 건축물에는 장식을 위한 미술 작품들이 이용되었지얼마 전에 너희들과 화산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빠가 이야기해준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가 있잖아. 화산과 함께 도시 전체가 화산재로 덮였다가 오랜 시간 뒤에 발견이 되었는데, 그곳에 건축물과 함께 장식을 위해 사용한 미술 작품들이 그래도 복원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폼페이의 유물을 통해 로마 미술의 발전상을 볼 수도 있었대.

로마에도 조각상이 있었는데, 그리스 조각상과 달리 옷들을 걸쳤단다. 보기 덜 민망하구나. 로마 조각은 대부분 왕족이나 귀족 자신을 알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그렇다 보니 로마 황제들의 조각상도 많았대.

영원할 것만 같던 로마도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단다. 3세기 무렵 조짐이 보이다가 로마 제국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열이 된단다. 그리고 476년 서로마가 멸망하고, 1453년 동로마가 멸망한단다. 그렇게 로마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로마가 남긴 기독교 세계관은 그 이후 시대를 지배하였고,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단다….

….

여기까지가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2권의 이야기란다. 아빠가 급하게 이야기한다고 빼먹은 내용들이 많은데, 이해 해 주렴… 1권에 이어 2권도 유익하면서 재미있었단다. 이 시리즈가 모두 여섯 권인데, 아마 다 찾아 읽게 될 것 같구나. 그럼,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 그리스 문명은 자타가 공인하는 서양 문명의 뿌리입니다.

책의 끝 문장 : 각자의 수도원과 성당 건축, 아름다운 필사본과 공예품을 보며 그리스식 합리주의와는 다른 서양의 이면을 만나보도록 하지요.

사는 내내 즐거움을 누리며 웃도록 하십시오.
삶이란 그저 버텨내라고 있는 게 아니라,
즐기라고 있는 것입니다.
- 고든 B. 힝클리
- P38

앞서 말했지만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끊임없는 전쟁이라는 치열한 현실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리스 남성의 육체는 나라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어요. 그야말로 체력은 국력이었던 거죠. 그리스 사회가 남성 육체를 찬양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겁니다. 아테네를 비롯해 몇몇 도시에는 미남 선발대회를 열기도 했고, 미술도 튼튼하고 강한 육체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데 초점을 맞췄어요. - P199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테네 사람들은 적인 페르시아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면서 관계를 복구한 것처럼 아테네도 페르시아와 전쟁을 치르고 나서 외교 관계를 정상화시키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예술가가 교류하게 됩니다. 그리스 예술가들은 페르시아 문화에 놀라워하고 영감을 얻었겠지요. 그리고 이전의 아테나 신전보다 훨씬 큰 신전을 짓겠다는 건축적 야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야망이 바로 페르시아와의 교류에서 자극받아 생겼을 겁니다. - P268

로마가 성장할 때 마치 부모처럼 나란히 로마에 큰 영향을 준 두 세력이 있었습니다. 앞서 살펴본 그리스, 그리고 이제부터 설명드릴 에트루리아입니다. 로마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는 외래 문화인 반면 에트루리아는 이탈리아 토착 문화에 가까워요. 로마는 관용과 다양성의 강자답게 두 세력으로부터 각각의 장점을 취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죠. - P350

로마인의 능력이란 이런 게 아닐까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의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능력 말입니다. 이는 대단한 능력입니다. 모르면 배우면 되고, 배운 것을 더 잘 응용해 사용하면 되죠. 로마인은 이 점을 제대로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P353

최소한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476년 이후 서로마제국을 차지했던 게르만 용병대장은 결국 동로마제국 황제의 신하가 되었습니다. 일개 영주로 전락한 겁니다. 이후 서로마 옛 영토에서는 게르만족을 비롯해 수많은 ‘야만족’이 난립하며 조그만 영지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서로마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명목상으로나마 자신이 로마제국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 P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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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박열
손승휘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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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일제 시대 독립운동 관련된 책을 보다 보면, 분량은 적지만 인상 깊은 인물 박열을 가끔 만나게 된단다. 아빠도 그런 책들을 통해서 처음 박열이라는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분의 아내가 가네코 후미코라는 일본 사람이라서 더 그랬어. 당시 일본 사람들 중에서 극히 소수는 일제의 조선 침략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박열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라는 분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어. 그래서 언젠가는 박열이라는 분에 대해 자세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어. 그러다가 몇 년 전에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다룬 영화가 개봉했었단다. 그 영화도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아직 보질 못했구나. 뭣 한다고 그리 바쁜지 모르겠구나.

얼마 전에 정운현님의 <조선의 딸, 총을 들다>라는 책을 읽다가 문득 가네코 후미코가 생각이 났단다. 비록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지만, 박열과 함께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애를 썼으니까 말이야. 이번에는 꼭 읽어봐야겠다고 책을 뒤져봤단다. 귀가 얇은 아빠는 먼저 읽은 이들의 평이 좋은, 손승휘님이 소설로 이야기한 <아나키스트 박열>을 골라서 읽었단다. 박열은 무정부주의자라 편히 이야기하기도 하는 아나키스트의 삶을 살았단다. 일제 시대 아나키스트들을 보면 다들 호기 있고 자존감이 강한 이들이 많았어. 박열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싶다면 그가 남긴 개새끼라는 시를 읽어보면 금방 느낌이 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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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새끼

- 박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짓는

달을 보고 짓는

보잘 것 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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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제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1.

소설의 시작은 가네코 후미코의 일인칭 시점으로 시작한단다. 일본에 온 조선인 유학생들을 통해 박열의 개새끼라는 시를 통해 먼저 박열을 알게 되고 그를 만나고 싶어했어. 그리고 다른 조선인 유학생을 통해 박열을 만나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단다. 또 같이 지내기로 하는데, 신여성이었던 후미코는 그에게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웠고, 박열 또한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고 오케이했고, 그들은 그렇게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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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박열은 내가 내민 쪽지를 받아들고 중얼중얼 읽었다.

첫째, 동지로서 함께 살 것.

둘째, 내가 여성이라는 관념을 반드시 제거할 것.

셋째, 둘 중 하나가 사상적으로 타락하여 권력자와 악수하는 일이 생길 경우에는 즉시 공동생활을 그만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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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은 조선에서 온 가난한 유학생이었단다. 결국 학비가 없어서 학교도 그만두고 따로 모임을 만들어 공부하고 노동운동도 하고 그랬어. 조선의 독립 운동도 하곤 했지만 그의 최종 목표는 아나키즘이었단다. 그는 뜻을 함께 하는 조선인 유학생들과 함께 흑도회를 만들고 잡지 <흑도>, <뻔뻔스러운 조선인>을 출간하기도 했단다.

박열은 조선 독립을 위해서 무력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의열단에 가입하기 위해 국내로 잠입하여 종로에서 의열단 연락책 김한을 만나 의열단 가입했단다. 그 자리에서 내년에 있는 황태자 결혼식에서 천황을 죽이겠다고 다짐을 했단다. 그리고 다시 일본에 건너가 의거 준비를 하였고, 가네코는 인삼을 팔면서 생계를 돕고 박열을 도와 의거 준비를 했단다.

박열은 지식인으로써 일본에서도 아나키즘에 대한 강연도 했어. 조선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들도 그의 강연을 들었단다. 그렇게 그는 천황 제거를 위한 준비를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진행했단다.

2.

폭탄은 의열단 김상옥이 준비해서 일본으로 반입하기로 했으나, 검열이 심해지는 등 쉽지 않은 상황이라서, 일본 내에서 직접 조달하는 것을 알아보았단다. 그런 와중에 1923년 간토대지진(관동대지진)이 일어났단다. 이 때의 지진은 거의 100년 전인데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지진을 이야기할 때 꼭 회자되는 그런 큰 지진이란다.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이 죽고 이 지진 이후 일본 사회는 혼란스럽고 불안했단다. 그리고 다른 민족에 대한 경멸도 심해졌는데, 그러면서 조선 사람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는 헛소문을 내면서, 그 이유로 자경단은 조선 사람들을 조선 사람이라는 이유로 무참히 학살했다고 하는구나. 어려운 일본어 발음을 시켜서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조선 사람으로 간주하고 바로 죽였대. 뭐 이런, 무식한 만행이 다 있더냐

이런 것들이 일제가 과거에 저지른 짓들인데, 도대체 사과를 안 하니뻔뻔함이 그들의 민족성인가? 이런 와중에 박열의 천황을 죽이려고 했던 혐의가 알려져서 후미코와 함께 감옥에 잡혀 들어갔단다. 천황을 죽이려고 했던 반역죄였지. 후미코는 감옥에 들어가서는 살아나오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변호사에게 부탁을 해서 혼인 신고를 부탁했어. 그렇게 박열과 후미코는 이제 정식 부부가 되었단다.

검사의 회유가 있었지만 박열은 모두 거절하고 재판을 받겠다고 했어. 그는 사형선고를 두려워하지 않았어. 끝까지 자신이 조선 사람으로 부당한 재판을 받고 있음을 알리려고 했어. 그는 변호사를 통해 재판에서 다섯 가지를 요구했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개새끼라는 시를 현실의 말로 바꾼 듯 기개가 철철 넘쳤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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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요구사항은 모두 네 가지였다.

첫째, 공판정에서는 일절 죄인 대우를 하지 않아야 하며 피고라고 부르지도 말 것

둘째, 공판정에서 조선 예복 착용을 허락할 것

셋째, 자리도 재판장과 동일한 좌석을 마련할 것

넷째, 공판 전에 자기의 선언문 낭독을 허락할 것.

다섯째, 만일 이상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에는 입을 닫고 일절 신문에 응하지 않을 것임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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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재판 장면이 아닐까 싶구나. 먼저 가네코 후미코의 재판 장면왜 국가와 대척점을 두었냐는 질문에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억누르기 때문에 대척할 수밖에 없다고 답변한단다. 가네코 후미코도 그렇게 자유를 꿈꾸는 영혼이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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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가네코도 당당한 응답으로 재판정을 흔들었다.

피고는 국가에 해가 되는 사상을 가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 어떠한가?”

방금 그 질문은 상당히 모욕적이다. 내가 무적자로 태어나 어려서 친척들로부터 학대를 받았다는 것은 내가 국가와 대척점에 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오히려 학대한 사람들에 대해서 나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들이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면 나도 고분고분하게 순응하는 머저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와 사회에 어째서 대적하는가? 그럴 만한 계기가 있었는가?”

국가와 개인은 어떤 계기가 있지 않아도 대척점에 있을 수밖에 없다. 국가는 힘으로 개인을 억누르고 자기들이 만들어놓은 틀에 맞춰서 순응하도록 하기 때문에 개인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억압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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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열도 가네코 못지 않게 재판정에 대고, 재판정을 큰소리 비판하였단다. 그들에게 재판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어. 일본의 부당함을 알리는 게 중요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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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박열은 미리 약속한대로 자기 선언문을 낭독했다.

국가는 개인의 신체와 생명과 자유를 끝없이 침해하면서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강도들 중에 대강도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가의 편에 선 재판관이 공정한 판결을 할 리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내가 이 법정에 선 것은 재판을 받자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입장을 정확하게 선언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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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정에서 이렇게들 이야기했으니, 사형 선고를 받는 것은 당연했을지 모르겠구나. 박열과 가네코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단다. 그리고 둘은 재판정에서 모두 만세를 외쳤다고 하는구나. 그림이 그려지고, 이 장면이 영화 <박열>에서 어떻게 그려졌을지 궁금하면서 예상이 되더구나. 재판은 끝났지만 탄원이 계속 이어져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어. 하지만, 가네코는 그해 여름 옥중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했어. 그 동안의 모습을 보면 절대로 목을 맬 사람이 아니었는데, 형무소의 주장은 그랬어. 자세한 내용은 숨겼고. 시신도 보여주지 않았대아무리 생각해도 자살 같지는 않구나. 어떤 음모가 있을 거라는 것이라는 더 합리적 판단일 것 같구나.

박열은 22 2개월 동안 형무소에서 지내다가 해방 이후 석방이 되어 조국의 땅을 밟게 된단다. 얼마나 감격했을까. 하지만 얼마 안 있어 한국 전쟁이 일어났고, 한국전쟁 중에 납북되었다고 하는구나. , 정말 기구한 인생이구나납북된 이후 그는 특별한 활동은 하지 않았고, 1974 1 17 73세의 일기로 죽었다고 하는구나. 뜨거운 삶을 보냈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이제는 하늘에서 다시 만나서 이 땅에서 못 이룬 사랑을 다시 이루어 행복하길 바란다.

오늘은 이만 줄일게.

PS:

책의 첫 문장 : 지바의 역사를 벗어나 습하고 뜨거운 바람이 부는 벌판을 걸었다.

책의 끝 문장 : 방법은 그뿐이다. 내가 하나의 등불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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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0-12-16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로 뵜는데 후미코 연기가 참 좋았어요. ~ 책도 찾아봐야겠어요 *^^*저희 아이는 수능 끝나면 읽겠다고 책주문만 늘더니 지금은 잠과 게임의 나라로 ㅎㅎ

bookholic 2020-12-17 00:15   좋아요 1 | URL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 영화가 더 보고 싶네요. 조만간에 봐야겠어요..^^
자녀분은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했으니 당분간은 푹 쉬는 걸로 ㅎㅎ
mini74님도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많으셨어요~~^^
 
페르세폴리스 2 -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최주현 옮김 / 새만화책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페르세폴리스 1권을 이야기하고 곧바로 2권을 이야기해주려고 했지만, 갑자기 회사 일로 정신을 못 차리고 퇴근도 늦어지다 보니 좀 늦어졌구나. 이해 바람. 1권과 2권이 이야기가 이어지긴 하지만 실제로는 1권만 출간되었다가 몇 년 뒤에 2권을 출간했다고 하더구나. 그러니 아빠의 이야기가 늦어졌다고 너무 뭐라 하지 말길.

..

마르잔은 오스트리아 빈의 엄마의 친구 집으로 오긴 했는데, 곧바로 수녀원에 보내져서 수녀원에서 생활했어. 수녀원에서 생활은 십대 소녀가 적응하기 쉽지 않은 생활이었단다. 더욱이 모국은 전쟁이었고, 오스트리아에서 사용하는 독일어도 잘 하지 못했거든거기에 한참 방황기가 최고치에 다다른 십대 소녀가 억눌린 수녀원에서 얌전히 생활하는 것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았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나쁜 짓도 하고 그런 마르잔은 결국 퇴학까지 당했단다. 수녀원에서도 쫓겨나서 길거리 생활까지 하게 되어 거의 폐인 직전까지 갔어. 다행히 병원에서 회복할 수 있었지. 오스트리아에서 생활은 실패라고 할 수 밖에 없었고, 마르잔은 오스트리아에 온지 4년 만에 이란으로 귀국한단다.


1.

4년 만에 돌아온 조국. 전쟁은 끝나 있었어. 불과 4년이지만 십대 소녀의 모습은 크게 달라져서 심지어 마르잔의 아빠도 마르잔을 못 알아 볼 정도였단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다시 만난 마르잔.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단다. 전쟁에 참전하여 불구가 된 친구들도 있었어.

전쟁 전 이슬람 혁명을 통해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잖아. 전쟁이 끝나도 여전히 그들이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그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이란은 예전의 이란이 아니었단다. 엄격하게 통제된 사회였고, 남녀 차별이 엄청 심한 나라가 되어 있었단다. 교리 해석을 너무 좁게만 하다 보니, 특히 여자들에게 대한 규제가 심했어. 얼굴뿐만 아니라 온 몸을 베일로 감싸야 했고, 화장도 하면 안되고, 노출도 안되고, 빨간색 옷을 입고 다녀도 안 되고, 멋진 의상도 안 됐어. 데이트도 금지 당했고, 부부 아니면 같이 다닐 수도 없었단다.

마르잔은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기 전 어렸을 때는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살았고, 오스트리아에 살면서 서양의 자유주의를 맞본 이로써, 억압된 이란의 생활을 참을 수가 없었어. 남자 친구가 생겨도 좀더 사귀어 보고 결혼하고 싶었지만, 데이트를 금지 당했으니 말은 다했지. 그래서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었어. 마르잔의 엄마는 심한 반대를 했단다. 마르잔의 아빠는 이혼할 것을 예상하면서 허락을 했단다. 마르잔은 결국 결혼을 하게 되었고, 마르잔의 아빠가 이야기한 것처럼 한 달도 안되어 각방을 쓰기 시작했단다. 그리고 3년 만에 이혼을 했단다.

다시 방황의 길을 들어설 수 있었는데, 마르잔의 부모님은 다시 마르잔을 유학보내기로 하고 그 행선지는 프랑스였단다. 예전에 무서운 중2 나이에 외국에 가는 것과 철도 좀 들고, 어린 나에에 결혼 실패도 해 본 이가 외국에 가는 것은 천지차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렇게 만화는 끝이 났지만, 프랑스로 유학을 간 마르잔은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우리의 예상대로 마르잔은 실제로 성공한 만화작가와 영화감독이 되셨더구나. 널리 이란도 알리고 말이야.

이 책을 통해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된 것 같더구나. 이 책에서 이야기한 것은 1990년대 초반까지의 이란의 모습이었는데, 그 후로 또 많은 시간이 지났구나. 그 이후의 이란은 또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을까. 궁금하구나.

….

1권 이야기하면서 이야기한 것처럼, 에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니, 그 만화를 한번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너희들이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과 다르긴 하겠지만, 너희들도 같이 볼래?^^


PS:

책의 첫 문장 : 1984 11, 나는 종교적인 이란을 떠나 개방적인 유럽을 찾아 이곳 오스트리아에 왔다.

책의 끝 문장 : 자유에는 대가가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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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

이렇게 보면, 코로나19는 단지 경제의 외생변수가 아니라 지금까지 진보와 발전으로 여겼던 경제성장에 내재한 위험을 알리는 경고음이다. 이제는 성장신화의 미몽에서 깨어나라고 우리를 깨우는 죽비소리다. 결국, 바이러스 재난의 근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극복할 것은 바이러스가 아닌 우리 자신이고, 싸울 것은 사람과 자연을 희생하여 성장을 거듭해온 탐욕의 경제다. 코로나19는 현상으로는 질병의 문제지만 근본으로는 자연과 경제 문제다. “우리는 환경위기와 사회위기라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했다(프란치스코 교종, <찬미받으소서>). 기후문제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의 문제다(나오미 클라인,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코로나19를 질병으로만 접근하면 이 바이러스 감염병이 가리키는 문제의 본질과 근원을 놓치고 결국 문제해결에 실패할 것이다.


(24)

성장은 언제나 큰 것이 좋다고 말하지만, 탈성장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적은 것이 많은 것이고, 단순한 것이 좋다고 말한다. 탈성장을 세상을 보는 또다른 시각이다. 소유와 소비, 경쟁과 독점, 효율과 이윤, 통제와 지내, 무한한 욕구가 성장을 나타낸다면, 단순과 절제, 협력과 나눔, 환대와 보존, 돌봄과 공생, 자족과 충분함은 탈성장을 가리킨다. 탈성장과 관련된 다양한 삶의 태도는 더는 성장할 수 없다는 좌절에서 비롯된 강요된 선택이 아니다. 이러한 태도도가 좋은 삶에 필수적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자발적 선택이다. 탈성장은 우리 각자의 내면의 성찰과 변화를 요청한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의 변화는 우리 안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절제는 탈성장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개인 차원의 덕()이다. 절제의 내면화로 탈성장에 조응하는 단순하고 검약한 생활양식이 가능해진다.


(28)

돌연변이는 보통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2~3개의 단백질의 머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해서 인간 세포에 정박하여 침입할 수 있게 된다. 해마다 생산되는 백신은 바로 그곳을 표적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 단백질들의 줄기들은 안정적이고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는다. 따라서 바로 이 변하지 않는 줄기들을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여러 해 동안 지속될 수도 있는 모든 바이러스 변종에 대해 전부 면역력을 갖게 하는 범용 백신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데 대해서는 사실상 모든 연구자가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연구는 존재하지만 수익성이 없기 때문에 거대 제약회사들은 범용 백신을 개발하거나 제조하려고 하지 않는다.


(36)

나는 자본주의가 대다수 인류에게 소득을 만들어주고, 일자리와 의미 있는 사회적 역할을 제공하고, 화석연료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멈추고, 생물학의 발전을 공중보건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현실이 우리 시대의 문명적 위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위기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독립된 별개의 문제가 아닌 복잡한 하나의 총체적 위기로서 보아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오늘날의 초자본주의는 인간 종의 생존에 필요한 생산력의 진보를 막는 절대적인 족쇄가 되었다.


(45)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의 지구 평균기온보다 약 1℃ 올라간 현재의 수준에서도 우리는 이미 너무나 큰 규모로 지구의 한계를 초과하고 있어서 어느 때고 걷잡을 수 없는 폭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험에 처해 있다. 더욱이 이 메커니즘은 대단히 복잡해서 우리는 그런 일이 진행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현 상태가 이어진다면 보수적인 추정으로도 80년 내에 지구 평균 기온이 3~6℃ 상승한다는 것이다. 최소로 잡아도 16년 이내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2℃ 뜨거워진 지구도 인간 종에게는 극히 위험한조건이다. 역치라고 하는 3~4℃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인류 문명의 핵심적인 기반시설들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다.

전지구적인 산업의 확장은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조건도 만들어냈다. 산업활동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함에 따라서 인간은 야생 동식물과 자연 서식지를 침범하였고, 수많은 미지의 질병을 갖고 있는 동물들이 인간 주거지와 더욱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이미 수십 면 동안 이번 세기에 전세계적인 전염병이 필연적으로 창궐한 것이라고 경고해온 것은 바로 그래서이다.


(104)

인류의 당면 위기 중 하나인 기후위기를 넘어서려면 탈탄소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에너지 전환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인류가 처한 위기 중 하나는 생물종 멸종이다. 2000년부터 매년 약 650ha의 산림이 사라졌고(우리나라 전체 산림면적과 비슷한 규모), 100종 이상의 생물종이 멸종위기에 처했다는 게 유엔 생물다양성과학기구의 설명이다. 지구 전체 동식물의 8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런 속도라면 지난 1,000만 년의 평균 멸종 속도보다 수십, 수백 배 빠르다. 원인은 도시화 등 인간의 토지이용 변화와 그에 따른 동식물의 서식지 감소가 압도적이다. 이어서 식물 채집과 사냥, 그리고 기후변화가 세 번째 위협요인으로 꼽혔다. 자칫 6,000만 년 전 공룡이 멸종한 뒤 처음으로 지구가 대멸종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다.


(156)

우리 사회에서 모든 사람이 건강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 통용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은 당연한 듯이 쓰이고 있는 건강권이란 말이 우리나라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이후이고, 현재도 모든 국민이 차별 없는 건강권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또 건강권이란 개념이 너무 포괄적이고 선언적이라 실제로 구체화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건강권 중 일부인 공평한 의료접근성의 실현조차 건강보험 역사가 40년이 넘은 현재에도 요원하다. 하물며, 모든 시민을 위한 건강 유지 증진 정책은 항상 부수적이고 우선순위에서 떨어진다.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제공 체계는 해방 이후 민간에 맡겨져 거의 방치되어왔고, 건강보험 등 각종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그 비효율과 상업성으로 인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의료 공공성이 매우 취약한 범주에 속한다.


(179-180)

1800년까지는 누구나 이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을 알고 있었다. 선거대의제는 민주주의의 정반대라고 생각되었다. 그것에 그리스에서 전래된 용어로 이름을 붙인다면 올바른 명칭은 선거 과두정이 될 것이며, 그 뜻은 우리가 우리를 통치하도록 선택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한 통치이다. 선거에 나온 후보자들이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 민주주의자를 자처한다는 발상이 생겨난 것은 1800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전후해서였다. 그 뒤로는 이 잘못된 인식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였다. 서로 다른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혁명가, 신층 중간계층, 지식인, 학자들이 이 주장을 받아들였고, 1920년경에 이르면 그것은 사회 일반에 수용되기에 이른다. 즉 선거대의제가 민주주의라고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182~184)

헤로도토스(기원전 5세기)

민주주의는 가장 공평하다. 즉 법 앞에 평등하다. 공직자는 추첨으로 임명되고, 권력에는 책임이 지워지고, 모든 질문은 열린 토론에 붙여진다.(<역사>, 3 80 6)

플라톤(기원전 428~348)

그리고 가난한 자들이 승리하여, 몇 사람은 처형되고 또 몇 사람은 추방되고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통치권력이 동등하게 분배될 때 민주주의가 성립된다.(<국가>, 8)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

추첨으로 공직을 임명하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선거로 선출되는 것은 과두정치였다.(<정치학> 4, 1294a)

키케로(기원전 104~43)

통치권이 한 사람에게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군주제라고 부른다. 특정의 선택된 사람들에게 통치권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귀족정이라고 부른다. 통치권이 민중의 손에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른다.(<국가론>, 1, 41, 42)

엘리엇(1490~1546)

도시와 자치령은 전 시민의 합의에 의해서 통치되었다.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괴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은 믿을 만하지도,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그 자신이 보유한 미덕과 지혜로써 공공선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가장 뛰어난 시민을 추방하거나 죽이는 일이 흔했다. 이런 통치방식은 그리스어로 데모크라티아(Democratia)’, 라틴어로 포퓰라리스 포텐티아(Popularis Potentia)’, 영어로 평민에 의한 통치(rule of the commonalty)’라고 불렸다.(<위정자론>)

알투시우스(1557~1638)

민주주의는 그 본성상 자유와 평등한 존경을 요구한다. 평등한 존경이란 다음과 같은 것들에 존재한다. 시민들은 번갈아가며 통치하고 복종한다. 모두가 똑 같은 권리를 갖고 있다. 사적 삶과 공적 삶이 교차하며 존재하기 때문에, 특정 문제에 대해서 모두가 함께 결정하고 개인은 언제나 순종한다.(<정치학>, 39, 61>

홉스(1588~1679)

통치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군주제는 단 한 명이 통치권을 갖는 경우이고, 데모크라시는 민회에 통치권이 있는 경우이며, 귀족정은 임명되었든 선출되었든 아무튼 나머지 사람들과 구별되는 일부 특정 사람들로 구성된 기관이 통치권을 갖고 있는 경우이다.(<리바이어던>)

몽테스키외(1689~1755)

공화국에서 민중이 주권을 갖고 있으면 그것은 민주주의다. … 추첨에 의한 선발은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선거에 의한 선발은 귀족정의 방식이다.(<법의 정신>, 22)

루소(1712~1778)

추첨의 의한 선발은 그 본성이 민주적이다라고 몽테스키외는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 그러나 나는 이미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상(理想)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선거의 추첨을 결합할 때, 군사직위처럼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한 자리는 선거를 통해 임명해야 한다. 추첨은 사법관 같은 경우에 적합하다. 양식이 있고 정의롭고 정직한 것으로 충분히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경우 말이다. 잘 구성된 국가에서는 이러한 자질은 모든 시민에게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사회계약론>)

시에예스(1748~1836)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은 스스로 법을 제정하고 공무원을 직접 임명한다. 우리의 계획에서는 시민들은 대체로 직접 대리자를 선발한다. 따라서 입법행위는 민주적이지 않다. 그것은 대표제가 된다.

버크(1729~1797)

[‘민주주의를 묘사하면서] 여기서는 모든 공무 혹은 공무 전반을 민중이 직접 개인적으로 처리했고, 법은 민중 자신에 의해 제정되었고,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공무원이 직무에 소홀한 점이 있었을 때에는 당사자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OO경에게 쓴 편지)

메디슨(1751~1836)

민주주의에서 민중은 모여서 직접 통치한다. 공화국에서 민중은 대표자들과 대리인들을 소집하여 통치를 위탁한다.


(228)

이제 지방분권균형발전이라는 구호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분권은 권한을 단순히 넘겨받은 것 이상의 자치에 근접해야 하고, 균형발전은 기업과 기관 이전을 넘어서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아니 그런 구호는 이제 폐기됨이 옳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하면 세상이, 삶의 질이 더 나아지나. 그것을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지향이 없다. 발전이라는 것이 서울과 똑같아지는 것을 뜻함인가. 도시화되는 것을 뜻하는가. 서울의 복제품을 여기저기 만들겠다는 것인가. 이제 균형발전이라는 용어는 순환과 공생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자는 구체적인 언어로, 지방분권이라는 용어는 자치와 자급의 지역공동체를 만들자는 말로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 밑도 끝도 없는 성장과 발전 대신, 순환과 공생의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잘되는 놈만 키워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최소한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의 지역사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부분을 착취해 성장하고, 경쟁과 도태로 거르는 방식이 아닌 협동과 연대의 방식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역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행정체계와 시장체계에 예속되지 않고 관계가 이들을 제어하고 부릴 수 있는 새로운 지역사회가 건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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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은 <페르세폴리스>라는 만화책이란다. 이 책은 예전에 즐겨 듣던 팟캐스트 <지대넓얕>에서 소개 해주어 알게 된 책이란다. 그래서 읽어보려고 했었는데, 품절이 되어 중고책으로 어렵게 구했었어. 이 만화책이 2권으로 되어 있는데, 작년인가 합본으로 개정판이 나왔더구나. 아빠가 이번에 읽은 것은 예전에 사둔 2권짜리 책으로 읽었단다. 1권은 빨간색, 2권으로 파란색 겉표지로 개정판보다 옛 2권짜리가 더 예쁜 것 같구나.

지은이는 마르잔 사트라피라는 사람으로 이란에서 태어났지만 나중에 프랑스에 주로 활동하게 되었고, 작가보다는 감독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란다. <페르세폴리스>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만화로 그린 것으로 이 책을 통해서 이란의 실상을 서방 세계를 비롯하여 다른 나라에게 정확하게 알려준 것으로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뿐만 아니라 이 만화의 느낌 그대로 같은 제목의 에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등 주요 국제영화제의 상을 받았다고 하는구나.

그러니까 <페르세폴리스>는 무척 유명한 책이었던 거구나. 아빠가 모르고 있었다는세상에는 이렇듯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좋은 책들이 많은 것 같구나. 역사를 이야기하는 만화책이 지루한 경우도 있는데, 이 책은 정말 재미있고, 유머도 있고, 감동도 있단다.


1.

페르세폴리스는 그리스에서 고대 왕국 페르시아의 수도를 일컫는 말이라고 알고 있어. 페르시아의 폴리스란 뜻이란 말이지. 오늘날 이란의 땅에 터를 잡았고 페르시아 왕국. 만화가 시작하기 전에 책 앞쪽에 이란의 역사를 간단하게 소개를 해주었는데, 더 간단히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주면

기원전 6세기 키로스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되었고, 서양에서는 이 나라를 1935년까지는 보통 페르시아라고 불렀대. 1935년 팔레비 왕조의 레자 샤라는 왕이 이란으로 나라 이름을 정한 이후로 서양에서도 이 나라를 이란으로 부르기 시작했단다. 이란은 아이리아나 바에조라는 말에서 유래가 되었는데, 메디아 사람들이 기원전 7세기에서 세운 나라라고 했어.

이란이라고 나라 이름을 바꾼 레자 샤. 석유를 노리는 영국 등 서방 세계의 압력을 받자 이란을 중립국으로 선언하려고 하였대. 그러자 영국은 그를 몰아내고 아들 아들 모하마드 레자 팔레비를 왕위에 올려놓았대. 당시 영국 등 서양의 제국주의 열강들이 온 세상을 간섭하던 시기였어. 그러나 팔레비를 몰아내고 모하메드 모사데크라는 사람이 수상이 되었고, 그는 석유를 국영화하려고 하려는 등 영국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했어. 이에 영국에서는 이에 보복 조치를 감행하였는데, 이때 미국의 CIA도 참여했다고 하는구나. 결국 모사데크는 제거되고 외국으로 도망가 있던 팔레비가 다시 귀국하여 영국과 미국을 등에 업고 정권을 잡은 것이 1953년이었어.

그 이후 오랫동안 팔레비의 독재정권이 유지되었고, 이 만화의 시작 부분인 1979년까지도 이어지게 되었단다. 1979년 이란에서는 팔레비의 독재정권에 대한 시위가 계속되었어. 주인공인 9살 소녀 마르잔의 가족들도 시위에 참여해서 삼촌은 감옥에 가기도 했단다. 그리고 드디어 팔레비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이슬람 세력이 정권을 잡게 되었단다. 이란에서는 이것을 이슬람 혁명이라고 했어.


2.

하지만 이 이슬람 혁명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는 못했단다. 팔레비의 독재 정권을 반대하던 모든 이들이 이슬람 정통파는 아니었어. 자유주의자들도 있었고, 공산주의자들 등 다양한 사상들을 가진 이들이 있었어. 그러나 정권을 잡은 이들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었어. 그렇다 보니 그들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가지고 국민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단다. 팔레비 독재 정권에서는, 독재이긴 했지만, 이란 국민들은 서구의 영향으로 비교적 자유주의가 널리 퍼져있었거든.

이슬람 혁명 이후, 여자들은 다시 베일을 써야 하는 등 신체를 모두 가리고 다녀야 했어. 태어나서 10살이 되도록 한번도 베일을 쓰지 않았던 마르잔은 베일을 쓰는 무척 싫었던 거야. 마르잔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모두 싫어했어. 그리고 서양의 문물도 모두 금지가 되면서, 그 동안 누리던 문화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어. 몰래 숨어서 해야 했지.

그 전의 팔레비 독재 정권과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정권도대체 뭐가 좋아진 것인지이슬람 정권은 공산주의자들을 더더욱 싫어했어. 마르잔의 삼촌은 이슬람 혁명과 함께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이슬람 혁명 이후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다시 감옥에 갔다가 결국 사형당했어. , 이런이렇듯 반대파에 대한 가차없이 숙청이 이어져서 이란 사회는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었지. 팔레비 왕조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미국과 영국의 등에 업고 있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들의 무기도 많이 사오고 군사적 지원도 받고 그랬어. 그런데 이슬람 정권은 그들과 관계를 딱 끊게 되자, 아무래도 군사력은 떨어지게 되었지.

그렇게 국력이 약화된 것을 보고 주변의 이라크가 이때다 싶어 전쟁을 일으키게 된단다. 그리고 그 이라크의 무기를 대 준 나라가 미국이란다. 이란이 괘씸했겠지. 그것이 이란-이라크 전쟁이란다. 8년이나 이어졌는데, 아빠도 초등학교 때 뉴스에서 이 전쟁을 봤던 기억이 있구나. 그때는 이란과 이라크가 이름도 비슷하여 우리나라의 남한과 북한의 관계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아무튼 전쟁으로 혼란의 사회가 된 이란. 마르잔의 식구들도 전쟁이 일상이 되었고, 마르잔의 부모는 열네 살이 된 마르잔을 지인이 있는 오스트리아로 보내기로 결정한단다. 여기까지가 1권의 이야기란다. 마르잔이 이란에서 마지막 밤을 보낼 때 할머니가 마르잔에게 건넨 조언이 명언이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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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사내 녀석들을 많이 만나게 될 거야.

만약 그 녀석들이 네게 상처를 준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

그건 녀석들이 멍청해서라고.

그렇게 하면, 네가 남자들의 잔인함에 대응하려는 걸 막을 수 있을 게다.

세상엔 상대를 비꼬고 복수하는 것만큼 나쁜 건 없으니까

언제나 네 존엄성을 잃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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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에 대한 이야기도 해줄게.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 이건 1980, 그러니까 내가 10살 때 모습이다.

책의 끝 문장 : 그냥 떠나는 게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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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2-10 20: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ookholic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따뜻하고 좋은 연말 보내시고,
항상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bookholic 2020-12-11 00:07   좋아요 1 | URL
앗,, 감사합니다.
늘 빠르고 친절한 축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드리고...
코로나 때문에 우울하지만, 그래도 뜻깊은 연말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