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목로주점>은 내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순수한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훨씬 더 끔찍한 상처들은 건드려야만 할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인들은 그것들을 담아내는 형식만으로도 질겁하며 분노했다. 또한 그 속에 사용된 언어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내가 저지른 죄과라고는 지극한 문학적 호기심으로 민중이 사용하는 언어를 다방면에서 수집해 치밀하게 연구된 틀 속에 담아낸 것뿐이다. 맙소사! 그들의 언어를 새로운 형식에 담아낸 것이 어떻게 그토록 크나큰 범죄 행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언어가 담긴 사전들도 이미 존재하며, 그것들이 그려내는 이미지의 신랄함과 신선함 그리고 강렬함의 매력에 빠져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들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호기심이 왕성한 문법학자들에겐 상관없다. 역사적, 사회적 측면에서 생생한 가치를 지닌, 현실에 대한 순수한 문헌학적 작업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이고 의도인 것이다. 그 사실을 아무도 간파하지 못했다는 점이 심히 유감스러울 뿐이다.


(58)

제르베르는 의자 등받이에 젖은 옷들을 걸쳐놓았다. 그리고 멍하니 서 있다가 몸을 돌려 가구들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너무나 큰 충격에 눈물마저 말라버린 듯했다. 그녀에게 남은 돈이라고는 세탁비로 남겨둔 4수 중 1수가 전부였다. 그사이에 마음이 진정된 에티엔과 클로드가 웃는 소리에 제르베즈는 창가로 가서 두 팔로 아이들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바로 그날 아침, 노동자들과 파리의 거대한 일터가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던 그곳에서 회색빛 도로를 바라보면서 잠시 자신을 잊고자 했다. 그 시각, 세관의 담벼락 뒤쪽 도시 위로는, 분주한 일상으로 인해 달구어진 도로에서 뜨거운 복사열이 뿜어져 나왔다. 제르베즈는 바로 저 용광로 같은 뜨거운 길바닥 사로잡혀 외곽 도로의 오른쪽 끝과 왼쪽 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제 그녀의 삶은 바로 저곳, 도살장과 병원 사이의 공간에 달려 있다는 예감과 함께.


(127)

그러면서 행렬의 끄트머리를 살피더니 손짓으로 살롱 카레 한가운데서 멈춰 서라고 지시했다. 그는 마치 교회에 와 있는 것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곳에는 걸작들만 모여 있다고 설명했다. 일행은 살롱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제르베즈는 <가나의 혼인 잔치>가 무엇에 관한 그림인지를 물어보았다. 액자에 그림의 주제를 적어놓지 않은 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나리자> 앞에 멈춰 선 쿠포는 그림 속 여인이 그의 숙모 중 한 사람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보슈와 비비라그리야드는 벌거벗은 여인들의 모습을 흘끗거리면서 히죽댔다. 그중에서도 그들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안티오페의 허벅지였다. 행렬의 맨 끝에 있던 고드롱 부부는 스페인 화가 무리요의 <성모마리아> 앞에 이르자 무지와 감동이 동시에 드러나는 눈빛으로 한동안 그림 앞에 머물러 있었다. 남편은 입을 헤벌리고, 아내는 배에 손을 올려놓은 채.


(277)

인간의 육체가 쇠로 된 기계와 싸워 이길 수 없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자 애쓸 때조차 그의 우울함은 커져만 갔다. 물론 언젠가는 기계가 노동자들을 모두 죽이고 말 터였다. 그 때문에 이미 그들의 하루 일당은 12프랑에서 9프랑으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어쨌거나 소시지를 만들 듯 리벳과 볼트를 찍어내는 이 커다란 짐승들은 전혀 유쾌하지가 않았다. 구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삼 분 정도 기계를 응시했다. 그러면서 그가 눈살을 찌푸리자, 아름다운 황금빛 턱수염이 위협적으로 곤두섰다. 그러다가 온화함과 체념의 기운이 그의 표정을 점차 누그러뜨렸다.


(345-346)

! 신이시여! 예수회교도들이 뭐라고 하건 아무 상관 없었다. 포도주는 진정 놀라운 발명품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초대객들은 모두 웃음을 터드리면서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노아는 분명 함석공과 재단사, 그리고 대장장이를 위해 포도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포도주는 몸을 깨끗이 정화해주고, 노동의 노고를 달래주며, 아무런 의욕이 없는 이들에게 자극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 다음 어릿광대가 당신에게 묘기를 부리기라도 하면, 당신은 우쭐해져서는 파리가 온통 자신의 것인 양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자들에게 괄시받는 지치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웃을 수 있는 것도 모두가 포도주 덕분이다. 그런데 단지 인생을 좀 더 장밋빛으로 느끼고 싶어 가끔씩 술에 취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야박한 처사가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은 황제인들 대수겠는가? 어쩌면 황제 역시 술에 취해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우리는 그보다 더 취하고 더 즐기면 되는 것이다. 고귀한 척하는 이들은 모두 꺼져버리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콜드브루 데미안 - 350ml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5월
평점 :
일시품절


데미안 한 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키드 4 - 겁쟁이 사자 이야기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민음사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그레고리 머과이어 <위키드> 시리즈 4권 이야기를 해줄게. 4권의 부제는 겁쟁이 사자 이야기란다. 겁쟁이 사자는 <오즈의 마법사>의 주요 주인공 중에 하나이니 너희들도 누군지 잘 알겠지? <위키드> 2권에서도 잠깐 등장했었잖니. 그런데 그 겁쟁이 사자의 이름이 브르르였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단다. <위키드> 4겁쟁이 사자 이야기에서는 브르르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도로시와 헤어진 다음 어떤 삶을 살아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은이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란다.

오랫동안 오즈의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오즈의 마법사가 어디선가 기구를 타고 와서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했다는 것은 이전 <위키드> 시리즈에서 이야기가 되었잖아. 그리고 <위키드> 2권 마지막 부분에서는 그 오즈의 마법사가 바로 엘파바의 친부였다는 것도 밝혀졌지. 오즈의 마법사의 이름을 아빠가 알려주었었나 모르겠구나. 오즈의 마법사의 이름은 오스카 조로아스터 디그스라고 하는구나. 오즈라는 말도 오스카 조로아스터 디그스의 준말이라고 하네. 그 오즈의 마법사가 다시 기구 타고 오즈를 떠나고 권력이 잠시 여러 사람에 거쳤다가 엘파바의 남동생 셀이 차지하게 되었잖니. 먼치킨랜드는 네사로즈가 영주로 있을 때부터 분리 독립하겠다고 오즈 정부와 분쟁을 겪고 있었는데 셀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서 4권의 이야기 할 때도 오즈 정부와 먼치킨랜드는 계속 내전 중이었단다.

그 전에도 이런 저런 일로 많이 등장했던 세인트글린다 수녀원 근처에서 전선이 형성되어 있어 그곳에는 포탄 소리도 자주 들리곤 했어. 어느날 겁쟁이 사자 브르르가 세인트글린다 수녀원에 찾아왔단다. 당시 브르르는 에메랄드 시 법원 행정관 서기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어. 예언자로 부르는 야클 수녀를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 온 것이야. 야클 수녀는 예전에 엘파바와 연관성 있는 수녀로 엘파바에게 빗자루를 선물해준 그 수녀란다. 야클 수녀는 찾아온 브르르에게 오히려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어보았어.

 

1.

브르르는 태어날 직후부터 엄마 없이 자랐단다. 엄마가 왜 없는지 이유도 몰랐어. 그렇다 보니 겁이 많고, 어둠을 무서워하고 사냥꾼도 무서워하고 먹는 것도 풀만 먹는 채식주의자였단다. 사자가 채식주의자라니어렸을 때는 시즈 대학에 지내면서 수업시간에 실험용 사자로 사용되기도 했단다. 이것은 영화 <위키드>에서도 등장했었잖니.. 영화 속 그 사자가 바로 나중에 커서 겁쟁이 사자 브르르가 되는 것이란다. 시즈 대학에서 탈출한 브르르는 혼자 줄곧 자라서 친구도 없었단다.

길을 가던 브르르가 젬시라는 사냥꾼이 덫에 걸려 고통에 호소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사냥꾼은 너무 고통스러워 자신을 빨리 죽여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브르르는 그의 곁에 있으면서 물도 갖다 주면서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어. 하지만 결국 젬시는 죽고 말았단다. 젬시는 죽기 전에 유언을 남겼고, 자신의 훈장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했어.

브르르는 자신의 첫 친구가 될 뻔한 젬시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그의 훈장을 들고 그가 속해 있던 군대가 있다고 하는 테니킨을 찾아 길을 떠났단다. 가는 길에 새끼곰 커빈스를 만나게 되어 커빈스의 마을에 잠시 들렀다가 방향을 잘못 들어 트리움이라는 마을에 도착했어. 트리움에서는 에메랄드 광산 노동자들을 뜻하는 글리쿤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파업 시위를 하고 있었어. 정부는 트리움의 상인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글리쿤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었단다. 글리쿤들을 브르르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이야기하고 도와달라고 했지만 겁쟁이 사자 브르르는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단다. 자신이 겁이 많아서 거절한 것이지만 그의 이런 행동은 트리움 상인과 오즈 정부를 도와주는 격이었어. 이 일로 나중에 브르르는 오즈 정부의 중요 요직을 맡기도 한단다.

트리움에서는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단다. 브르르는 정부 요직으로 일하기는 했지만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어. 그리고 브르르가 트리움에서 한 행동을 알고 있는 이들은 브르르를 조롱하곤 했단다. 결국 브르르는 에메랄드를 떠나 남동쪽으로 길을 떠났단다. 가는 길에 브르르는 자신의 동족을 만났지만 그들 중에도 브르르의 엄마나 아빠의 소식을 알고 있는 이들은 없었어.

브르르는 다시 길을 가다가 도로시와 허수아비와 양철 인간을 만나게 된단다. 바로 <오즈의 마법사>의 그 장면이란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니 짧게 이야기해보자. 오즈에 가서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서 서쪽 나라에 가서 도로사가 서쪽 마녀를 죽이고 오즈의 마법사와 도로스가 차례로 오즈를 떠났지. 그리고 오즈는 글린다와 허수아비가 잠깐 통치하게 되었어. 이 때 브르르는 글린다로부터 을 하사 받아 브르르 경이라고 불렀어. 그는 먼치킨랜드로 가서 시즈 대학에서 퇴출된 늙은 동물 교수들의 연금 문제를 해결해 주었어. 시즈 대학에서 퇴출된 늙은 동물 교수들이 예금을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브르르는 은행과 협상을 통해 동물 교수들의 예금을 일부 돌려주게 되었단다. 이후 브르르는 한때 개인금융협상전문가로 일하기도 했어. 그런데 오히려 브르르는 이 일로 사기죄로 기소되고 감옥에 갈 위기에 빠지게 되었단다.

귀족 중에 애버릭 경이 중재를 하여 그를 구제해주었지만 조건이 있었어. 첩보부에서 하고 추진하고 있는 비밀 임무를 맡아야 했어. 그것은 마법서 <그리머리>를 찾는 일이었단다. 엘파바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행방을 모른다고 했어. 브르르는 관련자를 찾다가 기록보존실 담당자로부터 야클 수녀가 연관되어 있다고 하여 브르르가 야클 수녀를 찾으러 왔던 것이란다.

 

2.

야클 수녀도 수수께끼를 가진 사람이란다. 어느날 잠에서 깨어났는데 자신은 중년을 넘어 노년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고 했어. 그 이전의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는다고 했어. 오래 전 어느날 야클을 찾아온 스펀지라는 사람이 있었어. 스펀지는 바로 엘파바라는 키워주었던 유모란다. 엘파바의 엄마 멜리나 트롭이 네사로즈를 임신하고 있을 때 이번에도 녹색 피부를 가지고 태어날까 봐 걱정되어 정상적인 아이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 왔던 거야. 그 때가 야클 수녀가 엘파바 집안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던 시기란다.

그들이 인터뷰를 할 때 타임드래곤 부대가 찾아왔어. 타임드래곤 부대장은 난쟁이였고, 그 외에 일리아노라라는 여자도 있었어. 일리아노라의 정체는 사실 노르였단다. 노르 기억나지? <위키드> 3리르 이야기에서 리르가 애타게 찾았던 이복누이 노르. 그 노르가 드디어 나타났구나. 무슨 사연인지 이름을 일리아노라로 바꾸었구나.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세인트글린다 수녀원 밖에서는 오즈의 군대와 먼치킨랜드 군대가 대치하고 있다고 했잖아. 수녀원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생각한 수녀들은 수녀원을 떠나게 된단다. 그런데 야클 수녀와 사자 브르르, 타임드래곤 부대가 안에 있다는 것을 몰랐는지 수녀원 문을 밖에서 잠그고 떠나는 바람에 그들은 안에 갇히고 말았어.

타임드래곤은 과거를 볼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단다. 타임드래곤을 통해 야클 수녀의 정체가 밝혀졌는데 야클 수녀는 마법서 그리머리에서 나온 사람이었단다. ‘그리머리마법서에서 나온 야클 수녀는 엘파바 담당 천사로 일했던 거야. 엘파바에게 마법의 빗자루를 준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지. 하지만 현재 그리머리는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어. 그런데 타임드래곤이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그리머리를 보여주었단다. 야클 수녀는 자신의 고향인 그리머리로 다시 들어가 버렸단다. 나머지 일행은 수녀원을 떠나기로 했단다. 브르르는 원래 그리머리를 찾는 비밀 임무를 맡고 있었는데 그 일을 관두고 타임드래곤 부대 멤버들과 함께 길을 떠나기로 했단다. 그렇게 4권의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단다.

<위키드> 5권의 부제는 레인 이야기란다. 레인은 리르의 딸인데 어떤 이야기가 또 펼쳐질지 궁금하구나. 아빠가 부지런을 떨어서 빨리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죽을 때가 왔지만, 그 노인은 죽을 것 같지 않았다.

책의 끝 문장: 브르르는 줄곧 고개를 숙인 채로, 자기가 하려는 일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성스러운 음악이란…… 이것도 변칙이다. 내세가 온갖 좋은 것들이 영원히 다 함께 존재하는 곳이라면, 거기에 음악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음악이란 서로 인접한 소음들이 떠듬떠듬 연이어지는 것이다. 강세, 불협화음, 부조와, 협화음, 그리고 해소에 이른다. 이어진다는 건 시간차가 있다는 뜻이다. 음악을 이루는 소리들이 모두 함께 존재한다면, 즉 모든 음이 동시에 울린다면, 그리고 영영 그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냥 소리일 것이다. 탁하게 흐린 소음 덩어리이자 청각을 교란하는 윙윙거림의 바다이리라. - P415

"거기에는 언덕 아래 네 번째 아이가 있었어요. 날씨를 볼 줄 알아서 벼락이 칠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 여자애는 달음질쳐 올라가서 다른 아이들을 모두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가게 할 수 있고, 그러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죽음을 무릅써요. 만약 그 용감한 아이가 벼락을 맞아 죽음을 당하면 그것은 엄정한 운명이 작용한 거예요. 그러나 다른 아이들의 인생은 달라졌지요. 역사는 줄곧 소수의 놀이꾼들의 간섭에 휘둘려 왔어요. 그게 우리가 소망하는 바이고, 또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하지 않은가요? 그렇지 않아요?" - P4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왠지 묵직한 작가 필립 로스의 신간 <샤일록 작전>이란 책을 이야기할게. 신간이라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만 신간이고, 원작으로는 1992년에 출간된 비교적 오래된 소설로, 고전의 반열에 들어가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필립 로스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여러 편 집필했다고 하는데, 이번에 읽은 <샤일록 작전>도 주인공이 필립 로스란다.

<샤일록 작전>은 아빠가 읽은 필립 로스의 다섯 번째 작품인데, 그 전에 읽은 <미국을 노린 음모>의 주인공도 필립 로스였단다. 그런데 <미국을 노린 음모>는 대체 역사 소설로 당연히 허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번에 읽은 <샤일록 작전>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1992년 당시 실제 벌어지고 있는 데미야뉴크 사건에 대한 재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이것이 소설인지 실제 이야기인지 헛갈리기도 했단다. 아빠는 초반부에 지은이가 직접 겪은 일에 허구적인 요소를 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소설 맨 마지막 작가의 말을 통해 이 모든 것이 허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읽는 사람이 헛갈리는 것은 필립 로스의 필력이 그만큼 좋았다는 것이 아닐까 싶구나.

소설의 제목 <샤일록 작전>의 샤일록이 무슨 말인지 몰랐어. 소설 중간을 넘어서까지 샤일록 작전에 대해 나오지 않아서 더욱 궁금했단다. 그런데 Shawn이 책의 제목을 물어보고 아빠가 <샤일록 작전>이라고 하니, 샤일록?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그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라고 물어봤잖니이 책이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소재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소설 제목의 샤일록이 <베니스의 상인>의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베니스의 상인>을 언제 읽었냐고 물어보니 학원에서 읽으라고 한 책에 있었다고 했잖아. 비록 학원 숙제로 읽었어도 그걸 잘 기억하고 있구나. 아빠는 기억력이 완전 휘발성인데 말이야. 아빠도 Shawn 덕분에 샤일록은 안 잊을 것 같다. 아빠는 <베니스의 상인>을 그 전까지는 읽지 않았는데, <샤일록 작전>을 읽고 나서 <베니스의 상인>도 읽어 보았단다. <베니스의 상인>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줄게.

, 그러면 <샤일록 작전>은 어떤 작전인지 이야기해 보자. 아참, <샤일록 작전>은 지금까지 읽은 필립 로스의 소설들 중에 가장 읽기 어려웠던 것 같구나. 소설의 설정은 신선해서 흥미롭게 시작해서 좋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관계의 배경지식이 적다 보니 그러지 않았나 싶구나. 하지만 필립 로스의 소설들은 역시 묵직함과 재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이 이번 소설에서도 증명된 것 같구나.

 

1.

1988년 이스라엘에 사는 친척과 친구 작가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이스라엘에 필립 로스를 사칭하고 다닌다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 가짜 필립 로스는 자신이 필립 로스라고 하면서 재판에서 참석하고

언론 인터뷰도 한다는 거야. 이런 어이 없는 상황이 있나. 그런데 당시 필립 로스는 건강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어. 몇 달 동안 잠을 못 자서 수면제를 복용하였고, 무릎의 통증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더 악화가 되었어. 정신도 비몽사몽인 상태라서, 며칠이 지나자 이스라엘에서 온 전화가 진짜 있었던 일인지 꿈인지 헛갈렸어. 그러던 중에 또 자신을 사칭한다는 전화를 받았단다. 가짜 필립 로스가 묵고 있는 호텔도 알려주었어. 그래서 그 가짜 필립 로스가 묵고 있는 호텔에 기자인 척 목소리를 변조해서 전화를 했는데, 그 놈은 자신이 필립 로스라면서 인터뷰에 응하는 거야. 내가 진짜 필립 로스라고 큰 소리를 치고 싶음 마음을 참고 전화를 이어갔단다.

그런데 그 인터뷰에서 가짜 필립 로스는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이야기했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서 이야기했어. 유럽 출신인데 이스라엘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은 모두 유럽으로 돌려 보내고 이스라엘 국경을 1948년 이전의 국경으로 삼고 이웃하는 이슬람국가들과 협조하며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단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리는구나. 그런데 그는 이런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했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이웃 이슬람국가들에 의해 학살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말이야. 필립은 반박하며 이야기를 했지만, 가짜 필립 로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단다. 그런 식으로 이스라엘에서 자신을 사칭하면서 인터뷰를 한다면, 그곳에는 필립 로스가 그런 주장을 편다고 생각하겠지? 얼른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는 데미야뉴크 사건 재판에도 방청했는데, 이 사건은 실제 있었던 재판으로 상당히 논란이 되었다고 하는구나. 그 사건의 내막과 결론은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알 수 있단다. 아빠는 간단히 이야기할게. 2차 세계 대전 당시 홀로코스트에서 만행을 저지른 공포의 이반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가 있었어. 그런데 미국의 공장에서 평범하게 일하고 있는 존 이반 데미야뉴크라는 사람이 공포의 이반과 동일한 사람이라고 신고를 해서 진행되는 재판이었단다. 아무런 특색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그 사람이 제2 홀로코스트 범죄자였다니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동일인이었다는 것 또한 밝히기 쉽지 않았대. 그래서 재판은 엄청 길어졌다고 하는구나. 이 소설을 쓴 1992년도 여전히 재판 진행 중이라고 했어. 가짜 필립 로스가 이스라엘에서 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필립 로스는 자신이 직접 이스라엘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단다. 소설가 친구 아하론를 인터뷰할 일도 있고 해서 그는 이스라엘로 향했단다.

 

2.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에 도착해서 데미야뉴크 재판에 방청했어.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사칭하는 가짜 필립 로스도 만나게 되었단다. 가짜 필립 로스, 이름 부르기가 헛갈리니까 필립 로스가 가짜 필립을 부르는 호칭인 모이셰 피픽으로 호칭을 부르자꾸나. 이제부터 가짜 필립 로스는 피픽으로 부를게. 피픽은 필립 로스를 보더니 먼저 아는 척을 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어. 보통 자신이 사칭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도망가기 마련인데 말이야.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외모마저 무척 닮아있다는 거야. 필립 로스도 놀랬단다. 아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구분을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 피픽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이름도 필립 로스라고 했어. 그런데 자신은 암에 걸려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믿을 수 있는 것인지그러면서 자신이 소설가 필립 로스 행세를 한 것은 맞지만 그것으로 피해를 준 적이 없지 않냐고 반문했어. 필립 로스는 사칭 그 자체가 큰 잘못이라고 했어.

나중에 호텔에 묵고 있는데, 피픽의 대리인이라면서 간호사 징크스 모제스키라는 사람이 찾아왔어. 필립 로스가 바로 내치지 못하고 이야기를 들은 이유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는 것. 징크스는 필립의 담당 간호사였는데, 오히려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반유대주의자였던 자신을 살려준 이가 필립 로스, 그러니까 가짜 필립 로스, 그러니까 피픽이라고 했어.

 

그들은 반유대주의자 비밀 모임을 갖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어.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에 있으면서 이상한 경험들을 했단다. 스마일스버거라는 낯선 사람이 아는 척을 하면서, 100만불을 기부하겠다면서 수표를 주었단다. 나중에 알고 그는 자신을 피픽으로 잘못 보고 그 돈을 준 것이었어. 그 이후에도 자신을 피픽으로 잘못 알아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어. 그리고 우연히 30년 전 대학 친구였던 조지 지하드를 만났단다.

조지 지하드는 아랍인이었는데 미국에서 생활했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아버지의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어. 유대인도 그렇고 아랍인도 그렇고 위험한 예루살렘으로 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교의 믿음이 그렇게 강한 것일까? 아빠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구나. 조지는 자신뿐만 아니라 아내와 어린 아들까지 함께 왔다고 했어. 하지만 아들은 예루살렘에 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어. 당연한 것 아닌가 싶네.

조지는 예루살렘의 현실을 알려주겠다면서 필립 로스를 데리고 재판장에 데리고 갔어. 그 재판은 친구 카말의 동생은 십대 소년인데 누명을 쓰고 감옥에 투옥되어 있다고 했어. 조지는 재판장에 가는 길에 예루살렘의 현상황과 문제점에 대해 엄청 길게 이야기를 했어. 이스라엘 사람들이 홀로코스트에서 많이 희생한 것은 맞지만 그들은 그것을 상품화하여 자신들만 큰 희생을 당한 것처럼 홍보한다고 비판했어. 그러면서 그들이 아랍인에게 하는 행하는 나쁜 짓들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어.

이것은 좀 생각해볼 문제란다. 이스라엘이 아랍국가들을 상대로 한 전쟁으로 인해 아이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죄 없는 민간인들이 죽었단다. 지난 주도 뜬금없이 이웃 나라에 포탄을 날려서 전세계로부터 욕을 먹었잖니.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신의 폭력적인 살인 행위에 대해 사죄를 안 한 것으로 알고 있어. 자신들인 인종 차별을 당해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다른 인종에게 가한다니.. 아빠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단다. 그들 또한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저지를 뿐. 아무튼 필립 로스는 대학 동창의 친구의 어린 동생의 재판에 참여했는데, 그 어린 소년은 몸이 엉망이 되어 있었어.  그 재판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재판에 대해 자기 의견을 내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단다.

 

3.

피픽의 필립 행세는 계속되었어. 어느날은 필립을 사칭해서 필립이 없는 필립의 호텔 방까지 들어와 있었어. 뒤늦게 필립이 와서 또 둘은 설전을 벌였어. 피픽은 필립에게 100만불 수표를 달라고 했어. 그 길거리에서 만난 스마일스버거가 건네준 돈 100만불을 달라는 거였어. 하지만, 필립은 오는 길에 경찰에 수색을 당하다가 잃어버렸다고 했어. 실제로 필립은 그 돈을 어디선가 잃어버렸단다. 둘은 티격태격하다가 피픽이 문 밖에 잠시 나간 틈에 문을 굳게 잠그고 그를 들여보내주지 않았어. 그가 돌아가고 징크스가 찾아왔단다.

그녀의 매력 때문인지 그녀의 말에 설득하여 문을 열어주었어. 징크스는 피픽이 데미야누크의 아들을 납치하려고 한다그러니 그걸 막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어필립은 그녀의 매력 때문인지 또 그녀의 말에 설득 당해 결국 피픽의 숙소를 찾아가 보았지만 그는 그곳에 없었고, 어떤 무리들에 잡혀 감금당하게 되었단다. 그제서야 함정에 빠진 것을 알았지.. 당연히 피픽이 자신을 데리고 온 줄 알았는데, 그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스마일스버거였어. 스마일스버거는 자신들이 계획하고 있는 샤일록 작전에 참여 달라고 요청했어. 결국 필립 그 작전에 참가하게 된단다.

하지만 아테네에서 진행된 샤일록 작전에 대한 내용은 책에 실리지 않았단다. 원래 필립 로스가 그 작전에 대한 내용으로 한 챕터를 썼다고 했어. 하지만 그 내용에 중요 기밀이 너무 많이 실려 있다면서 스마일스버거가 책에서 빼달라고 요청을 했고, 필립 로스는 그 작전에 대한 내용은 빼고 책을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끝까지 이 이야기가 진실인지 허구인지 헛갈리게 하는 지은이의 능청. 그렇게 소설은 끝맺음을 하게 된단다. 그리고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맨 마지막에 독자에게 보내는 말에서 이 책은 허구다라고 자백을 했단다.

아빠가 너희들에게 이 소설에 대한 줄거리를 이야기하면서 앞뒤 흐름이 이어지지 않고 개연성 없이 이야기가 점프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모두 아빠가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란다. 이런 소설은 좀더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데, 핑계지만 좀 바쁜 기간에 읽어서 집중해서 읽지 못한 점도 소설의 흐름을 잃은 이유 중에 하나였던 것 같구나.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지만, 일단은 밀린 책들이 워낙 많이 대기하고 있어서 먼 훗날로 미루기로 하자.

이 책이 쓰여진 것은 1992. 30년이 흘렀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구나. 더 악화되었다면 되었지 해결할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구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주변 아랍국까지 횡포를 부리고 있는 상황. 더 이상 유대인이 제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로 보이지 않는 요즘이란다. 그거보다 더 큰 가해자로 보이기 시작했어. 힘이 아닌 평화로운 방식으로 해결되었으면 좋겠는데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1988 1, 신년이 밝은 지 며칠 뒤에 나는 또 다른 필립 로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책의 끝 문장: “당신의 유대인 양심이 이끄는 대로 따르시오.”


홀로코스트의 현실은 모두의 상상력을 뛰어넘었습니다. 만약 내가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했다면,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당시의 나보다 아주 조금 나이가 위인 여자아이를 선택하는 순간, 기억의 힘센 순아귀에서 ‘내 인생 스토리’를 빼내 창조적인 실험실에서 넘겼습니다. 거기서 기억은 유일한 주인이 아닙니다. 거기서는 인과관계에 입각한 설명, 사건들을 서로 묶어주는 가닥이 필요합니다. 예외적인 일은 전체 구조의 일부로서 그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때에만 허용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인생 스토리’에서 믿을 수 없는 부분을 덜어내, 좀 더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내놓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 P114

놈들이 성공한다고 가정해보세. 놈들이 싸움에서 이겨 나블루스의 모든 아랍인, 헤브론의 모든 아랍인, 갈릴리와 가자의 모든 아랍인, 세상의 모든 아랍인이 유대인의 핵폭탄 덕분에 사라진다고 생각해봐. 앞으로 오십 년 뒤 놈들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중요성이라고 전혀 없는 작고 시끄러운 나라뿐이겠지. 팔레스타인을 박해하고 파괴한 결과가 그렇게 될 거야. 유대인만으로 이루어진 벨기에 같은 나라가 만들어지는 거지. 하지만 그나마 자랑할 만한 브뤼셀 같은 도시도 없는 나라. 이 ‘진짜’ 유대인들이 문명에 기여한다면 그런 것뿐이야. 유대인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모든 특징이 없는 나라! 자기들의 사악한 점령체제하에 살아가는 다른 아랍인들에게 자기들의 ‘우월성’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을 주입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난 자네의 민족과 함께 사람이야. - P175

전세계 유대인들의 눈에도 유지되는 나라라는 것, 점령지에서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봉기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마키아벨리 국가라는 것, 이 나라가 마키아벨리식 세계에 있는 것은 사실일세, 시카고 경찰국과 마찬가지로 성결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그들은 이 나라가 유대인 문화, 민족, 유산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지난 사십 년 동안 선전했지. 사실 이 나라의 존재는 품질과 가치 면에서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선택적인 것이었는데도 이스라엘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현실이라고 선전하는 데 온갖 술수를 동원했어. - P189

사람은 이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이건 아주, 아주 기본이죠. 사막에서 온 겁니다. 저 풀잎은 내 것이고, 내가 기르는 짐승은 그 풀을 먹지 못하면 죽는다. 우리 집 짐승이 먹을 것이야, 너희 집 짐승이 먹을 것이냐, 여기서부터 타키야(시아파 신도들의 박해의 위험이 있을 때 신앙을 감추는 행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대개 ‘위장’이라고 하죠. 시아파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지만, 사실은 이슬람 문화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위장은 이슬람 문화의 일부입니다. 위장을 허락하는 분위기는 널리 퍼져 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위험해지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문화, 상대가 분명히 솔직하고 진실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문화죠. - P204

그 작품의 첫 번째 대사, 그러니까 1막 3장을 여는 대사에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의 사백 년 전 샤일록이 세상의 무대에 나와 자신을 소개한 말 때문에요. 그래요. 사백 년 전부터 유대인들은 이 샤일록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대 세계에서 유대인은 항상 재판을 받는 신세였어요. 지금도 유대인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인이라는 형태로, 유대인을 상대로 한 현대의 재판, 결코 끝나지 않는 이 재판의 시발점이 바로 샤일록 재판입니다. 전세계 관객들에게 샤일록은 유대인의 화신입니다. - P392

관용구, 관심사, 정신적인 리듬 면에서 K의 일기나 A. F.의 일기 같은 글들은 훤히 눈에 띄는 애잔함을 확인해준다. 첫째, 유대인은 평범하다. 둘째, 그들은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평범한, 단조롭고 눈부시며 축복받은 평범함, 모든 관찰, 모든 감상, 모든 생각에 이것이 있다. 유대인이 꾸는 꿈의 중심, 시온주의와 디아스포리즘 모두에 열기를 제공해주는 것은 유대인이 유대인임을 잊었을 때 사람이 되리라는 것. 평범함. 지루함.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단조로움. 진을 치지 않는 삶. 각자 자기만의 유람선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는 안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대인의 삶이라는 믿을 수 없는 드라마. - P4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5)

민주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고 국가를 사유화하려는 욕망밖에 없어 보이던 정권이 물러나고, 국정 운영자로서 펼치고자 하는 뜻도 있고 실력도 있어 보이는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민중의 생활 현실을 이해하는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기득권 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혹은 우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로 당선된 5년 단임제의 대통령이 화석연료에 무겁게 의지하고 있는 경제를 지속가능한 구조로 바꾸는 일에 서둘러 착수하리라고 전망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것은 단기간에 가능한 개혁도 아니지만, 끈기를 가지고 시간을 들여서 대중을 설득하면서 합의에 이르는 민주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실제로 성공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마도 틀림없이 시행착오와 희생도 따라야 할 것이다. 4년 뒤의 총선, 5년 뒤의 대선 일정을 늘 머릿속에 두고 있어야 하는 정치인들이 흔쾌히 선택할 수 있는 경로가 아닌 것이다.


(25)

일본은 핵 식민주의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전쟁범죄 가해자로서의 역사는 삭제한 채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비극 뒤에 숨어서 100% 원폭 피해자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다. 매년 8월이 되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전 세계 반핵 활동가들이 모여들고 행사들이 열리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히로시마에 일본군 최고사령부 대본영이 있었고 나가사키에는 미쓰비시중공업 조선소가, 그 앞바다에 군함도가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는 어렵다. 두 도시의 원폭 피해자들 중에는 식민지에서 끌려온 여러 국적의 무고한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조명되지 않는다.


(27)

일본은 한국과 유사한 기후조건 및 기후변화 특징을 보이고 있지만, 최근 10년간 대형산불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발생 건수 및 피해면적 또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기후변화가 극심해진 2000년 이후 오히려 산불피해는 급감하고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 산불, 특히 대형산불은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 차이를 기후변화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산불을 키우는, 기후변화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그것은 산림청이 얘기하지 않는 우리나라 대형산불 발생지역의 중요한 공통점에서 찾을 수 있다. 울진, 삼척, 고성, 밀양, 합천, 홍성, 안동, 강릉 등과 올해 발생한 대참사 의성과 산청 산불 등 대형산불 발생지역은 모두 소나무 우점림에서 간벌과 숲가꾸기 사업이 집중된 곳이다. 분명 기후변화가 아닌, 제도적 행정적 개입의 결과로 변형된 연료조건을 최근 잦아진 대형산불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산불이 기후위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인위적 개입의 부작용을 감추려는 수사에 불과하다.


(31)

한편, 소나무림과는 달리 활엽수림은 산불을 자연스럽게 저지하거나 완화하는 방화선역할을 한다. 참나무, 물푸레나무, 느티나무와 같은 활엽수는 잎과 가지에 수분 함량이 높고, 불이 잘 붙지 않으며, 불길이 옮겨붙더라도 천천히 연소된다. 이러한 특성은 산불의 확산 속도를 낮추기 때문에, 진화 인력이 접근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등 인위적 관리의 손길이 적은 국립공원 지역은 대형산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데, 활엽수림으로 전환되는 생태적 과정을 인위적으로 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45)

반이민 반기후를 간판 정책으로 내세우는 극우정당의 부상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폐해가 기존의 세계질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된 현실을 반영한다. 극우세력은 국가, 종교, 인종 같은 이데올로기의 깃발 아래 모여들지만, 그 깃발을 세우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로 가동되는 자본주의경제라는 지지대가 필요하다. 유럽의 이런 상황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및 중동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에너지 패권전쟁의 배후에는 자본주의경제와 극우 이데올로기의 위험한 밀월관계가 숨겨져 있다. 같은 맥락에서 윤석열 정부가 시도한 퇴행적인 기후 에너지 정책에 대해서도 화석연료에 기반한 제국주의적 세계질서와의 연관성을 물을 수 있다. 원전과 댐 건설이 최선의 기후위기 대응책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의 보수세력과 반이민 반기후를 표방하는 서구 극우세력을 관통하는 역사적 흐름은 무엇일까?


(57)

윤석열이 0.7% 차이로 근소하게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필자는 도쿄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지지율이 낮은 윤석열 정권이 향후 정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세 가지 방식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것은 첫째, 야권 및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에 대한 양보와 타협, 둘째, 정치적 능력이 있는 인물을 기용하여 중간층을 포섭, 셋째, 이재명 민주당 대표,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야당 및 반대세력에 대한 일관된 탄압이다. 그러나 모두 실패할 것이며, 결국 북풍 또는 북한을 상대로 국지전을 일으키는 외환 방식에 의하여 정권을 유지하는 것 말고는 선택권이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63)

윤석열과 기시다 정권의 정치적 밀월관계는 캠프데이비드 공동선언(2023 8 18)을 통해서, 한일 및 한미일의 포괄적 군사동맹 강화와 대중국 포위망 구축에 한국과 일본이 선봉에 서는 것으로 이어졌다. 미국일변도를 주장해온 아베의 외교 노선은 인도태평양전략과 캠프데이비드 공동선언을 통해서 동남아시아, 대만해협, 한반도에서 3개국 군사력의 동시 운용을 가능케 함으로써, 동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격화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할 수 있다. 12.3 내란 회환 사태는 한미일 군사협력의 토대 위해서,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일어나면 미국과 일본이 언제든 적극적으로 개입, 지지해줄 것이라는 확신 위에서 준비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89)

지난 헌정의 회복, 지난 민주주의의 수호에 멈출 수 없다. 되돌아가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 새롭게 세우는 것이다. 극우세력의 든든한 온상이 되고 있는 불평등, 혐오, 차별, 분단사회의 모순을 넘어서 민주공화국을 구축하는 것이 내란을 종식시키는 일이다. 사회대개혁은 긴 여정이 될 것이다. 내란청산특별법 제정, 내란행위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설치는 필요한 최소한의 일이다. 결선투표제, 국민소환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확대, 주권자 참여형 헌법개정 등 분명한 정치개혁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종전 선언, 평화협정 체결,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민간교류를 활성화하고, 국가보안법 등 분단체제의 악법 개폐(改廢)도 대전환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광장의 이름으로, 전체 주권자의 요구로 끊임없이 제도정치권을 추동, 견인해야 할 것이다. 평등하고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차별금지법,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1,100만 비정규직 악법을 개폐하고 노조법 2,3조 개정 등 민생, 노동, 인권, 법안 제정을 미루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모으고 높여야 한다. 블랙리스트 진상규명 특별법(가칭, 한강특별법)을 제정하여 문화, 예술의 힘이 진정한 자산이 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도록 만인이 힘써야 할 것이다.


(106)

정보통신기술이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소통의 창구도 넓혀서 민주주의가 강화될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망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기술이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 있고 빅테크 기업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커진 오늘날, 그런 기대나 가능성을 내비치며 낙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사회가 양극단으로 분열되고, 사람들이 삭자 저마다의 정보감옥에 갇혀서 갈수록 객관적인 현실로부터 단절되는 것처럼 보이고, 급기야 많은 사람들이 정부와 법, 제도를 완전히 불신하는 지경에 이른 현 세태의 원인으로 디지털기술(소셜미디어)이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다.


(147)

장점마을에서 확인되었던 것처럼, 지역주민들의 삶과 안전은 법령이나 단체장, 사업자의 선의에만 기대어서는 지킬 수 없다. 주민들이 주체적으로 나서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지역 고유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조례는 자치단체의 법이다. 비록 법령보다 하위에 있기는 하지만 조례를 잘 활용한다면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상당하게 차단할 수 있다. 조례에 의해 구성된 거버넌스가 지역주민의 역량으로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다.


(152)

어린이날

   - 김성규

나이가 어릴수록

엄마가 없으면 슬프고

나이가 늙을수록

엄마가 없으면 외롭다


(171-172)

올해 초 소셜미디어 제국 메타(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왓츠앱 등을 소유한 소셜미디어 그룹)3자 팩트체킹프로그램을 폐지한다는 발표를 전격적으로 감행했다. ‘팩트체킹의 폐지는 트럼프가 오랫동안 메타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이제 표현의 자유로 돌아갈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으로 트럼프에게 굴종했다. ‘표현의 자유는 트럼프가 소셜미디어의 팩트체킹기능을 비난하면서 가장 강력하게 내세운 논리였다. 많은 언론에서는 이번 투항을 두고 트럼프를 위한 저커버그의 선물이라고 묘사했다. 이로써 그렇지 않아도 가짜뉴스와 허위정보의 온상이었던 소셜미디어는 이제 허위와 혐오가 판치는 오물통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메타의 투항은 기술기업이 정치권력의 위압에 굴종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소셜미디어가 그 이름의 의미와는 다르게 사회적 매체가 아니라 영리가 최우선인 매체임을 분명하게 드러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222)

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했다. 이 문장은 가슴 아프다. 왜 주어가 국민이 아닌가 하는 마음의 저항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2024 12 3, 대통령이 일으킨 내란을 맨손으로 막아내고 탄핵으로 이끈 것은 국민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모르는 이 없다. 광장정치의 힘을 보여준 쾌거였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의 파면 결정은 판사들의 손에 달린 일이었다. 나는 탄핵 판결을 들으면서 국민의 한 명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짜증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허탈감, 새로운 정치를 만들고 싶은 열망과 그놈이 그놈이라는 걸 확인했을 때의 절망감이 공존한다.


(226)

헌법은 이 나라 정치가 광장의 찬 바닥에서 인민의 분노의 힘에 의해서 바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공간에서 토론과 협의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근본 토대이다. 지금과 같은 대의정치제제로는 불평등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청와대와 여의도 엘리트 정치인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기득권 계급의 이해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녕 새로운 정치체제를 향해서 물길을 바꾸고자 한다면, 주권자 국민들은 탄핵 이후 국면에서 또다시 기득권 세력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담론에 낚이지 말아야 한다. ‘보수 대 진보가 아니라 기득권층 대 국민이라는 프레임으로 주체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의 정당한 주인은 주권자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천명할 수 있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