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회계 1도 모르겠습니다 - 0부터 시작하는 나의 첫 회계 공부
고야마 아키히로 지음, 김지낭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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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지에 쓰여 있는 것처럼 '0부터 시작하는 나의 첫 회계 공부'가 맞다. 크게는 재무회계, 관리회계, 세무회계로 나누고 이를 손익계산서, 재무상태표, 현금흐름표라는 재무 3표를 기반으로 설명한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쉽고 기본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책상 앞에 각을 잡고 앉아 읽을 필요가 없다. 나는 출퇴근 길에 읽었다.


쉽다고 깊이가 없는 건 아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기본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실상 체계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얻을 것인가 낚는 법을 배울 것인가. 재무 3표가 무엇이고 복식부기와 단식부기의 차이를 아는 건 물고기를 얻는 것에 해당한다. 반면 이것들이 어떤 필요에 의해 생겨났으며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낚는 법에 해당한다. 재무 3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관련 자격증을 따고 취업 기회를 얻을 수 있겠지만 이해하는 사람은 재무 4표, 5표를 만들어내고 세상의 변화에 맞춰 그 시스템을 수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해의 시작은 지식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괜찮은 내용을 전달한다. 핵심만 간결하게. 내가 추천하는 독법은 이렇다. 일단 전체 내용을 쭉 한 번 훑어본다. 그다음 종이에 무엇을 배웠는지 정리해본다. 정리한 내용을 읽으며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파악하고 그 내용만 다시 읽는다. 어느 정도 개념이 잡혔다 싶으면 상장 기업의 재무제표를 받아(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다) 분석해본다. 이 작업을 반복한다.


최근에 서점을 가지 못해 읽을 책이 너무너무 없었고, 주변 사람들의 책장에서 안 읽은 책을 선택한 거라 사실상 기대가 0에 가까웠지만 나름 배울 게 있어 기분이 좋았던 책이다. 힘들고 어려웠던 프리랜서 시절 세무 신고를 할 때 수익이 낮아 복식부기를 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귀찮음을 덜었다는 생각에 마냥 즐거웠던 바보 시절도 생각나고, 아주 먼 옛날 영업이익이 인건비를 뺀 것이냐 아니냐를 두고 친구와 설전을 벌이던 일도 떠올랐다. 적어도 이 두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알게 되어 마음이 가볍다.


그래도 가장 큰 불씨는 다른 회사의 재무제표를 읽어보겠다는 마음을 지펴준 것이 아닐까 싶다. 때로는 가벼운 시작이 긴긴 여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오래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는데, 더 중요한 건 가볍게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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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요괴 도감
고성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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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어른이 되서까지 왜 요괴 따위에 관심을 갖느냐 하면, 어릴 때부터 버려지고 소외된 것들을 주워 모으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내 책상 서랍에는 부서진 전화기 부품부터, 자석, 고장 난 시계, 다양한 크기의 쇠파이프 등 온갖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다. 용도는 당연히 불명. 남들이 보기엔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을 고이 모아 보관했다.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힐끗 눈길을 주고 지나친 것들 일지 몰라도 내게 괴물과 귀물 온갖 귀신들은 과거에 실재했고 지금도 어딘가에 숨어 자기들만의 세계를 갖추고 살리라는 상상의 끈을 이어가게 만든다. 물론 최근 몇 년 동안은 이런 소재들을 내가 만들려는 이야기와 게임에 활용하겠다는 목적이 더해지긴 했지만 말이다.


<한국 요괴 도감>은 나 같은 사람들이 돈을 모아 꾸린 개인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책이다. 오덕들의 구매력은 워낙 정평이 나있지 않은가. 정가의 10배로 거래되던 책이 위즈덤하우스에서 정식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용재총화>, <어우야담> 등 고문헌과 도시전설, 다양한 민담을 바탕으로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한국에 존재했던 괴물, 귀신, 사물, 신적 존재 218종을 소개한다.


분류는 크게 괴물, 귀물, 사물, 신으로 나뉜다. 괴물과 귀물은 살아있느냐 아니냐, 물리적 실체냐 영적 존재냐의 차이로 보면 된다. 예컨대 구미호는 괴물에, 도깨비는 귀물에 속한다. 사물은 영험한 또는 사악한 힘이 깃든, 일종이 아이템이라고 보면 된다. 신은 사방신, 설문대할망 등 한국의 신화에 등장하는 존재들이다.


신화는 고대인들이 이 세상을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해 도입한 수단이니 그렇다고 넘어가도, 괴물과 귀신의 목격담은 왜 시간을 막론하고 계속되는 걸까? 문헌을 보면 장삼이사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역사 속 위인들이 진심으로 믿는 듯 진지하게 남긴 기록들도 있다. 일부는 이야기 속 주인공을 더 돋보이게 만들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 같다. 거구귀를 타고 과거를 보러 가 장원급제했다는 이야기는, 알에서 태어났다는 박혁거세 이야기처럼 인물을 신화화하는 기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한편으론, 그래, 그 시절에도 버려지고 소외된 것들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할 필요는 없는 책이다. 기승전결을 갖춘 이야기들이 아니라 출처, 생김새, 목격담을 짤막하게 구성한 글이니까. 쭉 읽어나가기엔 지루할 가능성이 높다. 인덱싱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기에도 좋다. 하지만 나는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내 손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이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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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재 오늘의 젊은 작가 23
황현진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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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재는 고모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호재에게 고모부 내외는 부모와 같은 사람이었다. 친엄마는 도망간 지 오래였고 택시 운전을 하는 아버지는 일 년에 고작 두 번 정도 호재를 보러 오는 게 다였다. 그마저도 10년 전이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빚을 진 누군가를 쫓는 길에 호재를 데려갔고, 아무 소득 없이 끝난 그 추적 이듬해에 완전히 종적을 감췄다. 발견된 건 문이 다 열린 채 방치되어 있던 택시뿐이었다.


고모부는 평생 큰 거 한방을 노리는 무일푼의 사내였으나 친절하고 착한 남자였다. 씹다 버린 껌만도 못한 호재를 거둬 그나마 사람답게 만들어준 건 그 가난한 사내였다. 그러나 늘 그렇듯 아이는 나이를 먹고 부모와 소원해진다. 고모부는 재개발 단지에서 인생 마지막 한 방을 꿈꾸며 낡은 복덕방을 운영했다. 매주 로또를 사는, 요행의 꿈을 곁들이면서. 그리고 어느 날 저녁 퇴근길에 괴한의 칼에 맞아 살해당한다. 훔쳐갈 거라곤 낡은 슬리퍼밖에 없는 복덕방이었다.


미스터리가 <호재>의 핵심은 아니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건 고모부의 죽음을 계기로 불려 나온 고모 두이와 그 동생 두오, 그리고 그의 딸 호재의 구질구질한 인생사다. 시간은 과거를 한참 거슬러 이 일가가 어디서부터 파멸하기 시작했는지 보여준다. 문제는 역시 두오였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우연히 시비가 붙은 동갑내기를 죽이면서부터. 폭력에 가담한 두 친구들 대신해 기꺼이 죄를 뒤집어쓰면서부터. 두오는 멍청함을 의리로 착각했고 평생 그 의리의 빚을 받으러 다녔지만 두 친구는 멍청함에 값을 치를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 이 괴리가 그의 인생을 구렁텅이로 처박는다. 혼자였으면 다행일 그 구덩이에 온 가족이 빠진 건 당연한 일이었다. 두이는 살인자의 누나, 호재는 살인자의 딸이었으니까.


그다지 흥미로울 거 없는 이 이야기를 팽팽하게 당기는 건 죽은 줄 알았던 두오가 다시 두이의 앞에 나타나면서부터다. 그것도 1등에 당첨된 로또를 들고서. 불길한 소름이 호재의 등줄기를 타고 오른다. 고모부를 죽인 건 누구일까? 혹시 두오가 당첨됐다는 그 로또가 고모부의 것은 아니었을까? 소설은 의문을 남긴 채 불현듯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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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의 생각노트 - 좋은 아이디어는 어떻게 탁월한 비즈니스로 발전하는가?
박지영 지음 / 가나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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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가의 생각노트>는 린 스타트업 경영 전략을 기반으로 원포인트 강의를 시도한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문제 인식

사업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고객의 불편'에서 시작해야 한다. 써놓고 보면 맥이 풀릴 정도로 당연한 말이지만 망하는 사업의 대부분은 내가 잘하고 익숙한 일에서 싹을 틔운다.


2. 해결책

MVP를 만들어 가볍게 시작해야 한다. 모든 필요를 예측해 완벽한 제품을 만들려는 생각은 집념이 아니라 멍청함이다. 서비스는 끊임없는 피드백을 거치며 점진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3. 시장 잠재력

현대 사회는 정신이 나갈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 2022년에는 유튜브 광고 매출이 줄어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애들 장난으로만 여겼던 숏폼이 이제는 영상의 대세가 됐다. 지금은 큰 나무들 사이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조만간 그 숲을 지배할 새싹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4. 비즈니스 모델

무엇으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사업은 결국 이 3개의 퍼즐을 맞추는 일이다. 이 답 안 나오는 과제를 푸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보고 또 보자.


5. 경쟁 우위

당신이 돈을 좀 만진다는 소문이 돌면 여기저기서 당신을 따라 하기 시작한다. 배민과 요기요가 싸우고 카뱅과 토스가 격돌한다. 그들이 주지 못하는 우리 서비스의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 그 가치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6. 성장 전략

쿠팡이 흑자에 전환했다는 거짓말 같은 뉴스를 들었다. 의도적 적자를 계속하며 성장에 치중했던 쿠팡의 전략이 맞았다는 분위기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역시 스타트업은 폭발적인 성장을 통한 미래 가치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가 보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케일을 키울 것인가.


7. 팀 역량과 미션

당신이 투자자라면 회사의 무엇을 보고 돈을 태울 것 같은가? 그 회사의 아이템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한국의 경우 의외로 사람에게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어차피 이 세상엔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중요한 건 '무엇'이 아니라 '누가'인 법. 이를 잘 설득하려면 회사의 비전과 창업가들의 스토리가 필요할 것이다.


길게 적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그렇게 인상적이었던 건 아니다. 사실 이런 부류의 책들이 갖는 공통적인 한계, 뻔한 말들의 러시가 재현된다. 출간은 2020년이다. 고작 2년 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읽다 보면 그때와는 또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라면 솔직히 겁나서 이런 류의 책을 쓰지는 못할 것 같다. 불과 1년 전에 좋은 사례라며 꺼내온 사업이 지금은 망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고 뻔한 회사를 끌고 들어오자니 너무 약하고. 이 딜레마를 알면서도 시도하는 저자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이런 게 스타트업 정신인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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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러블 스쿨보이 1 카를라 3부작 2
존 르 카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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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러블 스쿨보이>는 카를라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다. 나는 이 3부작을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스마일리의 사람들>, <오너러블 스쿨보이> 순으로 봤는데, 비슷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면, 시간 순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떤 책을 먼저 읽어도 당신은 이 마스터피스의 깊이와 우아함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물론 이 3부작이 모두 다 번역 출간된 이 시점에서 굳이 시간 순서를 다르게 읽을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아마 판권이 문제였던 것 같은데 팅커와 오너는 열린책들에서, 스마일리는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 펴냈다. 나는 팅커를 영화로 시작해 정주행을 노렸으나 중간이 비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금단 현상에 괴로워하다 결국 스마일리에 먼저 손을 댔다. 이제라도 퍼즐을 다 맞췄으니 여한이 없다.


<오너러블 스쿨보이>는 카를라가 무너뜨린 영국 정보부를 스마일리가 재건하는 과정을 다룬다. 스마일리의 역습. 그러나 이 단어가 풍기는 역동적 에너지와 다르게 이 늙은 스파이는 천천히, 은밀하게, 적의 숨통을 조여나간다.


이야기는 3부작 중 가장 방대하다. 중국-러시아-홍콩-영국-태국-베트남-기타 국경을 마주한 동남아시아가 배경이다. 씨실과 날실이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최종 단계의 문양을 추측하기란 불가능하다. 심지어 전말이 드러난 최종장에 이르러서도 그 완성된 무늬가 무엇을 그려낸 것인지 모를 정도다. 바로 이 부분이 존 르 카레의 소설을 단순한 장르를 떠나 위대한 작품으로 만드는 요소이자 독자를 괴롭히는 요인이기도 하다.


행간에는 수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어 두 번 세 번 곱씹어야 한다. 그 어떤 스파이도 행동의 이유를 시원하게 밝히지 않는다. 존 르 카레의 캐릭터들은 진짜이기 때문이다. 빈 공간을 유추할 수 없는 사람들은 이 속을 알 수 없는 노인의 이야기가 그저 지루한 중얼거림으로 들려 피로를 이기기 어려울 것이다. 취향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존 르 카레, 특히 이 카를라 3부작을 지나친다면 인류 문학사의 아주 중요한 페이지를 찢어버린 거라고 생각해도 좋다.


존 르 카레의 스파이 세계는 언제나 회색지대에 놓여있다. 그들의 활약은 결코 영웅적이지 않다. 삶은 늘 비참하다. 이 비참함을 이겨내는 건 사랑 같은, 촌스럽지만 결코 시들지 않는 인류의 보편 가치인데 이걸 강렬히 추구할수록, 그러니까 온 힘을 다해 인간다워지려고 노력할수록, 처참하게 짓이겨지는 게 이 이야기의 특징이다.


스마일리의 이야기를 거의 모두 읽은 이 시점에서 나는 이 작고 뚱뚱한 노인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체 위에 쌓아 올린 정보부, 아니 영국이란 국가는 스마일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인간다워지기 위한 노력을 짓밟아 버리는 체제가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 가치를 저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스마일리가 이 관점에서 그 모든 고독을 짊어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렇다고 용서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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