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에 도둑맞은 탁월함
이재영 지음 / 원앤원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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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평범함에 도둑맞은 탁월함』의 저자 이재영은 「내면의 탁월함으로 나아가라」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신은 천재에게 불행을 선사해 일반인에게 위로를 주는가? 아니면 불행한 사람에게 재능을 선물해 위로를 주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첵의 표제어의 '탁월함'에 대한 저자의 사유의 단초를 제공한다. 저자는 얼마 전 TV 드라마로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사례를 들어가며 과연 탁월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에 접근해 간다. 드라마에서 우영우는 법전과 판례를 정확하게 외우는 기억력과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논리력으로 법정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일상적인 행동에서 불안장애를 드러내는 등 약점을 보이기도 한다.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보이는 이와 비슷한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살펴도 많은 사람이 있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을 비롯, 발명왕 에디슨도 일상에서 허점을 드러낸 '괴짜'의 이력을 갖고 있다. 예술계와 철학자 중에도 정신장애로 불행한 삶을 살지만 뛰어난 학문적, 예술적 업적을 쌓기도 했다. 고흐나 쇼펜하우도 등도 이런 범주에 속할 것이다. 이를 학문적 용어로는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라고 말한다. 

서번트 증후군이란 흔히 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이 암산, 기억, 음악, 퍼즐 맞추기 등 특정 분야에서 매우 우수한 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영국의 의학박사 다운(John Langdon Haydon Down)이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다운 박사는 정신과 병동에서 30년간 일하면서 1887년 런던의학협회에 서번트 증후군에 해당하는 10명의 사례를 발표한 것이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다운 박사가 이들을 ‘이디엇 서번트(idiot savant)’ 혹은 ‘백치천재’라 호칭했는데, 이는 낮은 IQ를 가진 석학 혹은 천재를 뜻한다고 한다. 이들 환자는 수학, 음악, 미술, 기계 등의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였고,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공통점이 있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자연 속의 생존경쟁은 치열하다. 사슴은 뿔을 부딪쳐 우열을 다투고, 하마도 입을 크게 벌려 영역을 다툰다. 심지어 자그마한 화단에서조차 식물들끼리 뿌리를 뻗으며 경쟁한다. 끝없는 생존경쟁에서 가장 우위를 점한 동물이 호모 사피엔스다. 이들은 힘과 속도로 경쟁하는 다른 짐승들과 다르게 사고하는 능력을 길렀고, 덕분에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랐다. 문명이 발달한 현대 사회도 자연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생존 외의 것을 두고 경쟁할 뿐이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재력을 과시하고, 누구나 알아주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고, 명함에 한 줄이라도 더 새기고자 분투하는 등 갖가지 경기장에서 선수의 입장이 된다.

경기장의 테두리, 즉 셀(cell)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우리의 행동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선을 넘는 자에게는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셀은 그 안의 존재들을 하나로 묶어서 평범함의 범주에 끼워 넣는다. 그래서 셀 안에서 아무리 날고 긴다는 사람도 그 작은 경기장을 넘을 수는 없다.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마냥 꼼짝 못 하고 굶주린 거미에게 잡아먹히길 기다리는 신세에 불과하다.

그래서 우리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아브라삭스’처럼 알을 깨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은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알, 즉 스스로의 한계를 깰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야기 속의 영웅들처럼 커다란 시련을 거칠 필요도 없다.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인지하지 못했던 7가지 능력을 찾아내고, 7가지 도구를 통해 능력을 배양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탁월해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사유와 연구의 결과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탁월(卓越)함에 대해 '남보다 두드러지게 뛰어남'으로 풀이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주제어로 삼은 '탁월함'이라는 단어에 대해 한자어 어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탁(卓) 자의 갑골문을 살펴보면 '새가 새 그물 위에 나는 모습'이다. 사람이 쳐놓은 새 그물보다 훨씬 높게 나는 새는 높을 뿐만 아니라 자유롭다.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안전하다. 바로 그런 높이를 탁(卓)이라 한다.



탁월함은 시대에 따라 다른 말로 등장한다. 지고한 이데아를 추구하던 시절,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과 달리 현실을 바라보았다. 그는 탁월함을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어떤 가치나 상태로 설명하고자 했다. 그의 설명은 '아레테(ARETE)'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이 단어를 '어떤 존재의 본질이 드러남' 혹은 '자기다움'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이것을 덕이라고 불렀는데, 그 덕은 '비르투스(VIRTUS)'라는 단어로 오늘날 전해진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백과사전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고르기아스』(해제)란 저서의 「탁월함(덕)과 질서」의 장(章)을 통해 ① 도구든 육체든 혼이든 살아있는 어떤 것이든 각각의 탁월함은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각각에게 할당되는 짜임새 있는 배열(taxis)과 올바름(orthot?s)과 기술(techn?)을 통해서 그렇게 된다. ② 각 사물의 탁월함은 짜임새 있는 배열에 따라 배치되고 질서를 갖춤으로서 성립하는 것이다. ③ 따라서 있는 것들 각각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은 각자 안에 생기는 각자의 고유한 어떤 질서(kosmos)이다. ④ 따라서 자신의 질서를 갖고 있는 혼이 무질서한 혼보다 더 훌륭하다. ⑤ 질서 있는 혼은 절제가 있다. ⑨ 절제 있는 혼은 훌륭한 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기능과 덕(탁월성)」의 장(章)을 통해 매우 자세하게 탁월함에 대해 기술했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이제 인간의 기능은 이성과 일치하는 혹은 적어도 이성과 분리되지 않은 영혼의 활동이라는 것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아가 한 종에 속하는 어떤 것의 기능과 그 종에 속하는 탁월한 어떤 것의 기능은 동일하다는 것을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프 연주자의 기능과 탁월한 하프 연주자의 기능은 동일하고, 이 점은 다른 모든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탁월한 것의 탁월성(arete)에 있어서의 두드러짐은 기능에 부가된다. 즉 하프 연주자의 기능이 하프를 연주하는 것이라면 탁월한 하프 연주자의 기능은 하프를 잘 연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상정이 맞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기능을 어떤 종류의 삶으로 규정하고, 또 이 삶을 이성을 동반하는 영혼의 활동과 행위들로 규정한다. 따라서 뛰어난(spoudaios) 사람의 기능은 이것들을 잘 그리고 훌륭하게 행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각각의 기능은 그것의 부류에 고유한 탁월성(arete)에 따라서 수행될 때 잘 수행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로 ‘탁월성’(excellence)으로 번역되지만 워낙 ‘덕’(德, virtue)이라고 자주 번역되어 온 헬라스어 아레테(arete)는 앞서 토론했던 ‘좋음’과 ‘선’의 구별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외과 의사로서는 좋지만 인간으로서는 선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주는 바는 한 인간의 전문적 능력, 기능을 중심에 놓는 ‘좋음’과 그것과 상관없이 성립하는 듯이 보이는 도덕적 의지의 ‘선’한 사용 사이의 괴리를 드러낸다. 물론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에서와 같이 ‘좋음’이 전문 지식과 대비되는 도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또 주로 인간의 좋음과 관련해서 양자의 일치 현상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저자가 〈프롤로그〉를 통해 언급한 자연 속 생존경쟁의 사례로 "올챙이가 자라서 개구리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올챙이 꼬리는 개구리가 되는 과정 속에서 생체시계가 다해 소멸한다고 한다. 옛 사람들은 이를 사후세계에 대한 지혜로 여겼지만 개인의 내면에 숨어있던 탁월함이 드러나는 것을 설명하기에 안성맞춤이란 지적이다. 이런 까닭에 저자는 평범에서 탁월함으로의 변화는 간헐적인 불연속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지는 체험을 경험한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규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날개를 달고도 풀잎 위를 기어 다니는 애벌레 흉내를 내는 나비는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작 『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데 이견이 없는 과학자들이 지닌 천재성의 이면에 숨겨진 노트를 들춰내고 그 노트를 따라 쓴다면 누구든지 탁월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독자는 이 전작을 읽어보지 못했다.) 하늘은 공평해서 누구에게나 천재성을 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꺼내지 않은 채 평범하게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했다.



이 책에서의 저자의 주장은 한층 더 나아간다. 탁월한 사람은 남다른 사람이다. 경쟁에 승리하여 금메달을 거머쥔 자는 탁월한 사람이 아니라, 우수한 사람일 뿐이다. 탁월한 사람은 남다른 사람, 즉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주장한다. 책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가 탁월한 까닭은 모두가 전기로 움직이는 차는 골프장 카트 정도로만 생각하던 시절에 자동차 바닥에 배터리를 깔아서 엔진 자동차와 동일한 성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가 개척한 길은 전 세계 시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탁월함의 길은 일반적인 의미의 성공과는 다르기에 좁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심지어 성공을 거뒀음에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대세를 거부하고 나만의 작은 길을 찾으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p.7)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탁월함의 결과보다는 탁월해지기 위해서 무얼 해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그저 "우리는 모두 탁월함으로 나아갈 문을 갖고 태어났고, 그 문을 찾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것이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피로사회를 떠나 여행을 떠나자〉, 2부 〈평범한 사람이 탁월해지기 위한 7가지 조건〉, 3부 〈평범한 사람이 탁월해지기 위한 7가지 도구〉 등이다. 각 부는 각각 5~7개의 장(章)으로 나뉘어 있고, 각 단락별로 소제목을 붙여 일목요연하게 책의 내용을 살필 수 있도록 목차에 적어 두었다. 물론 1부는 서론에 속하는 일반적인 풀이와 '평범함'의 성격을 말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진단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논의한다. 2부에서는 개인의 내면에 잠재된 능력들 중 어떤 것을 이끌어내야 하는지 '7가지 조건'을 조목조목 알려준다. 3부는 탁월해지기 위한 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도구들을 제시한다.

개인의 능력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굴레가 아니다. 당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밀레니얼 제트 세대, 즉 ‘MZ세대’는 이미 기성세대가 만든 틀을 깨고 탁월함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잘나가는 젊음이 있는가 하면, 일면에는 많은 걸 포기하고 그저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N포세대’도 있다.

두 집단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기에 삶의 양식이 이토록 다른 걸까. 소위 금수저로 불리는 이들만 잘나가는 걸까? 그렇지 않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천재 중에는 불행한 가정사를 가진 이들이 많다. 위대한 사람의 불행을 들춰내서 그들의 상처를 후벼 파자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탁월한 성취와 결핍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게 분명하다. 결핍은 우리에게 지독한 무력감을 선사하지만, 때로는 원하는 걸 손에 쥐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내 능력으로는 안 돼.’ ‘천재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야.’ ‘1등은 분명 똑똑한 애들이나 하는 거겠지.’ 살면서 한 번쯤 해봤을 체념을 넘어서자. 수많은 천재들도 처음부터 두각을 드러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을 가슴에 품은 채 탁월함으로 도약할 준비운동을 하자. 이 책은 당신이 탁월해지기 위해 떠나는 여행길에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탁월함을 향해 떠나는 여행길은 고되겠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기회를 붙잡을 순간은 반드시 온다.

이 책은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탁월함에 이를 수 있는 7가지 조건과 7가지 도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7가지 조건은 ① 통찰력 ② 괴짜 정신 ③ 결핍 ④ 도전 정신 ⑤ 의지력 ⑥ 프로 의식 ⑦ 인문학적 성찰 등이다. 독자가 임의로 핵심 단어만 나열했으니 독자들의 일독이 필요하다. 또 7가지 도구로서는 ① 휴대 노트 ② 도서관 ③ 편지 ④ 멘토 ⑤ 창조의 시간 ⑥ 나만의 작업실 ⑦ 휴식 등을 제시하고 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의 목표는 세우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라고. 목표를 세우고 쉼 없이 정진하는 것도 좋겠으나, 목표가 보이지 않거든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다 보면 오늘이라는 무수한 점들이 이어져 선이 될 것이고, 언젠가 ‘나의 목표는 이것이었구나.’ 하고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혹시 오디세우스도 한동안 아내를 잊었다가 어느 날 아내의 존재를 깨달으며 집요하게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p.171)


저자 : 이재영


한동대학교 기계제어공학부 교수이며 포스코 석좌교수이다. KAIST에서 이상유체 지배방정식과 해석 및 특이현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McMaster 대, Purdue대에서 객원교수를 했다. 에너지시스템 안전과 미래에너지 관련 연구, 과학기술과 인간정신의 상호작용 관련 연구를 해오고 있다. 산문집으로 『탁월함에 이르는 노트의 비밀』 『노트의 품격』 『탁월함이란 무엇인가』, SF 장편소설 『지적거인』을 펴냈다. 강연으로는 2010년 G20 정상회담기념 TECH+2010강연 <융합인재의 조건>, 2017년 석학 인문강좌 <공기방울의 인문학>, 2018년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노트쓰기로 당신의 천재성을 끌어내세요>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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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나이 드는 기쁨
마스노 슌묘 지음,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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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심플하게 나이 드는 기쁨』은 표제어에 나타난 대로 '나이듦에 대하여'에 대한 에세이다. 나이듦이란 늙는다는 의미의 다른 표현일 뿐 늙기 전에 갖추어야 할 자신의 마음과 정신, 삶의 자세를 모두가 바라는 '평안한 노후'를 대비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저자는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선(禪)의 정원 디자이너로 유명한 마스노 슌묘이다. 승려이자 대학 교수이고 디자이너다. 일본의 승려는 우리와는 다르게 별도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고 들은 바가 있는데 이 때문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는 ‘아무것도 없는 정원’을 디자인하기 위해 늘 고심한다고 한다. 그는 정원 디자인을 의뢰받았을 때 늘 염두에 두는 것은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단계까지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의뢰자로 하여금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느끼는 평온함’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선의 정원이 지향하는 목표라고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복잡함을 덜어내면 편안함이 뒤따른다. 주변 시선을 개의치 않고, 단조로운 가운데 여유가 생긴다. 또한 복잡함을 덜어내면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보인다. 새로운 내가 보이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즐거움이 뒤따른다. 생활에서도 마음에서도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줄이고 각자 간소하면서도 편안하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노년을 구상해 보자는 취지로 집필했다. 심플하게 나이 든다는 것은 세상의 분주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데서 출발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책의 서문인 「들어가며」를 통해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 늙음이다. 그렇다면 굳이 나이 드는 것에 거역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더 지혜롭고 즐겁게 나이 들어 갈 것인가에 마음을 기울이는 쪽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행복한 노년을 살기 위해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덜어낸 것은 무엇인지, 또 빛나는 말년을 보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사고방식은 어떤 것인지, 이 책이 적어도 그 힌트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썼다.(p.7)



우리도 한동안 '100세 시대'라고 떠들썩했었다. 이 열풍을 앗아간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이겠지만, 사실 굉장한 뉴스거리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보다 이 열풍이 먼저 불었던 나라라면 일본일 것이다.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장수국'으로 손꼽히고 있고 장수시대 열풍도 수십 년 전 겪었다. 책 속에서 저자는 2021년 통계에 따르면 일본인의 기대수명은 여성이 87.6세, 남성이 81.5세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일본은 최상위에 있는, 그야말로 장수국가라 할 수 있다.(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2년 기준, 여성이 85.6세, 남성이 79.9세다.) 

우리 대부분은 인생 50, 60까지 부지런히 달려왔어도 여전히 부양해야 하는 가족들이 있고, 얽히고설킨 인간관계로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끌려 다니다가 ‘아뿔싸, 늦었구나!’ 할 때가 온다고 저자 마스노 슌묘는 말한다. 저자는 이 모든 게 단숨에 정리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우선 10%씩만 정리해 보자고 책에서 제안한다. 옷장 속에 열 개의 가방이 들어 있다면 그중 한 개씩 버리거나 정리하는 연습을 하자는 제안이다. 처음에는 10%를 덜어냈지만 나중에는 꼭 필요한 것만 남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단조로움 속에서 느긋하게 웃는 것이야말로 누구나가 바라는 노년, '평안함'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옷장을 조금씩 정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자는 죽기 전에 하는 생전 정리가 아니라 노인이 되기 전에 ‘노전’ 정리를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신체의 쇠약함을 느끼기 시작한 이후에 “이제 생전 정리를 해야겠다”라고 하면 만족스럽게 정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늙기 전에, 몸을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을 때 차근차근 정리를 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물론 그게 물건이 될 수도 있고, 마음 가는 사람일 수도 있고, 놓지 못하는 미련이나 집착일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건강을 위해서도 노전 정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60세가 넘어서 ‘이제 운동을 시작해보자’ ‘건강을 챙겨보자’ 하면 늦다고 한다. 운동도 습관이 들어야 60대, 70대가 되어서도 꾸준히 할 수 있고, 수영을 하거나 자전거를 탄다고 하더라도 하루라도 일찍 배워 두어야 노년에 가서도 다치지 않고 운동으로 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사는 동안 운동의 필요성을 느껴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자각했던 사실이다. 독자 역시 이젠 슬슬 노후 자금도 걱정되고 건강도 걱정될 나이다. 아직 일상을 꽉 채우고 있는 것들을 덜어낼 생각은 없지만 계획을 세울 무렵엔 채우기보다는 비움으로 새로운 즐거움들을 찾아가야겠다는 각오를 이 책을 통해 다질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의 표제어 『심플하게 나이 드는 기쁨』으로 정한 이유를 슬며시 꺼내 놓는다. 지금까지는 정신없이 바삐 살아왔지만 이제는 숨을 고르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는 것. 세계적 추세도 복잡함을 덜어내고 간소함의 미덕을 배워야 할 때라는 지적이 많다. 사실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복잡하고 속도가 빠른 변화로부터 오는 것이 클 것이다. 이를 일상에서 매일 감내하고 극복해야 하는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속에 매일을 살아야 한다. 심지어는 스트레스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일에 몰두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정신적 불안 등 장애 요인을 발견해 당황하는 사례가 셀 수 없이 등장한다. 정신 장애나 심리학이 부각되는 사회다. 그만큼 사회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주범은 스트레스 누적으로 인한 신경증세가 단연 압도적이라고 전문가와 언론은 한목소리를 낸다. 이에 저자의 '심플한 삶'과 '평안한 삶'이 함께 나란히 설 수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저자는 나이 드는 것을 서글프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겠지만, 반대로 나이를 먹어야만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과 삶의 지혜가 있다고 역설한다. 늙음도 얼마든지 즐겁게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이자 곳곳에 배어 있는 중심 생각이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나이 들면서 새롭게 알게 된 즐거움〉, 2장 〈나이 들어 더 이해되는 인간관계의 행복〉, 3장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기 위한 지혜〉, 4장 〈소박함 속에서 다시 배우는 풍요로움〉 등이다.



이 4개의 장에는 각각 11~15개 항목의 소제목으로 나뉘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구분되어 있다. 책을 읽어본 독자로서 이 책은 워낙 쉽게 기술돼 한 번 쭈욱 훑어만 봐도 이해되고 기억에 오래 남을 정도다. 장을 나누는 것은 형식상의 문제이지 나누지 않을 경우 너무 길게 늘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을까 우려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쉽게 이해되는 까닭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정서가 같은 동양인으로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면 역자가 훌륭하게 번역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역자 이정환은 일본어 번역에는 많이 알려진 번역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일본어뿐만 아니라 일본인의 의식과 우리나라 사람의 의식을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훌륭한 번역은 그만큼 독자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다음으로는 저자가 승려이고 대중에게 삶의 태도나 지혜를 전수하는 일을 한다는 데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일본어로 된 훌륭한 책은 일본인에 대한 민족적 반감보다는 친근감이 드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즐거움은 무엇일까? 1장의 표제어다. 독자는 1장의 여러 항목 중 「새로운 자신을 만난다」에 주목한다. 이 제목의 글에서 저자는 나이를 먹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고 전제하며 글을 이끌어간다. "신체는 근력이 쇠약해지고 정신적으로도 집중력이 떨어진다. 젊은 시절에는 간단히 할 수 있었던 일들이지만 나이를 먹으면 그게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많이 있다." 저자의 논리는 급반전한다. "하지만 그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포기한다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포기한다’는 것은 ‘명확하게 판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명확하게 판별하는 것! 나이를 먹어서 할 수 없게 된 것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이제 포기하자.’, ‘이것까지는 아직 할 수 있으니까 시도해보자.’라는 식으로 현재 자신의 능력을 판별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새롭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보인다."(p.38)



2장 〈나이 들어 더 이해되는 인간관계의 행복〉에서는 「대접을 하며 활력을 되찾는다」가 눈길을 잡아 끈다. 타인을 집으로 초대하면 집안의 활기가 넘칠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도시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집으로 사람을 초대하는 일에 익숙지 않다. 그러다 보니 독자도 집으로 사람을 초대한 일이 별로 없었음을 되새겨본다. 겨우 집 사서 이사한 후 동료나 친구들을 초대해 '집들이'와 가까운 동료들과 '2차'로 집에 '초대' 아닌 '습격'한 일은 있었지만 말이다. 저자도 그 점을 의식했을까? 한 사례를 80대, 남편과 사별한 여성 S로 들고 있다. 젊은 나이에 혼자 살면서 이성을 초대하거나 아무 관계도 없는 사이의 사람을 초대할 일은 없을 터다. 책에는 다음과 같이 에피소드가 소개된다. "지인을 집으로 초대하는 습관은 S씨에게 재미있는 변화를 안겨주었다. 그중 하나가 복장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는 양말이 약간 낡았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라도 갑자기 지인을 집으로 초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단정한 차림을 갖추게 되었다. 나아가 집 안도 몰라볼 정도로 깨끗해졌다. 정성을 들여 청소하게 되었고 차를 내놓는 식탁은 늘 깨끗하게 정돈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일상에 활력을 준다. 식사 준비를 할 때에도 ‘다음에 지인들을 초대하면 이런 요리를 해줄까?’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제과점 등에서 맛있는 과자를 발견하면 자연스럽게 지인들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p.97)

같은 장의 「혼자 여행을 떠나본다」는 무척 인상적이다. 어쩌면 독자도 이 항목의 일들을 오래 기억에 남겨 한 번쯤은 꼭 해보고 싶은 일이다. 혼자 하는 여행은 자신이 가고 싶을 때 가고 싶은 장소로 떠날 수 있고 여행지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어서 좋다는 장점을 먼저 이야기한다. 혼자 하는 여행은 굳이 계획을 짜지 않아도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정하면 된다는 의미에서 매우 자유롭다는 잇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혼자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면 여행지에 관한 기대감이나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등, 일상생활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감정이 넘쳐 흐른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익숙하지 않은 탈것들을 타보고 익숙하지 않은 경치를 만나면 마음은 고조되는 까닭이다.

 

3장에서는 일찍 일어나는 습관, 소식(小食), '신체의 말'에 귀 기울이기, 바른 자세, 호흡, 웃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인생 마무리 방법 등 적지 않은 분야에서 부딪치는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의 제안대로 실천만 한다면 '삶의 지혜'로 바꿔도 상관없을 일이다. 이 가운데 소식은 일본인들의 '장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고 독자는 알고 있다. 또 육류보다는 가급적 채소와 생선을 주로 먹기를 권장하는 의사의 처방과도 잘 어울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배가 부를 때까지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60이 넘을 경우 소식을 권장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또 곧고 바른 자세를 유지할 것을 주문한다. 이밖에도 호흡, 웃음 등 많은 참고 사항을 말한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저자 : 마스노 슌묘(ますの しゅんみょう, 升野 俊明)


1953년 가나가와 현 출생으로, 겐코지建功寺의 주지스님이자 정원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또한 다마미술대학 환경디자인과 교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특별교수로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다. 선禪 사상과 일본의 전통 문화를 바탕으로 한 ‘선의 정원’ 창작활동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예술선장 문부대신 신인상’을 정원 디자이너로서는 최초로 수상하였으며, 독일연방공화국 공로훈장인 공로십자훈장,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공로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하였다. 2006년에는 <뉴스위크> 일본판 ‘세계가 존경하는 일본인 100인’에 선정된 바 있으며, 주요 작품으로 도쿄 캐나다 대사관과 세룰리언타워 도큐호텔의 ‘일본 정원’ 등이 있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 『불필요한 것과 헤어지기』『일상을 심플하게』『오늘, 마음 맑음』 등이 있다.


역자 : 이정환


경희대학교 경영학과와 인터컬트 일본어학교를 졸업했다. ㈜리아트 통역과장을 거쳐, 현재 전문 번역가 및 동양철학, 종교학 연구가, 역학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돈의 맛』 『2억 빚을 진 내게 우주님이 가르쳐준 운이 풀리는 말버릇』 『지적자본론』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구마 겐고, 건축을 말하다』 『사소하지만 강력한 말의 기술』 『오다 노부나가 카리스마 경영』 『적을 경영하라』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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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 끝에 있는 상담소 - 우리 모두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지연 지음 / 보아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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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우울증, 화병, 불안, 집착, 열등감 등 여섯 가지 실제 사례를 소설로 재구성했다. 상담심리사와 치유 과정을 함께하며 마음을 바꾼 후 삶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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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떠러지 끝에 있는 상담소 - 우리 모두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지연 지음 / 보아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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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낭떠러지 끝에 있는 상담소』는 이 책 속표지 맨앞에 '일러두기'처럼 적혀 있는 심리상담소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각색하고 창작한 이야기다. 저자 이지연은 "평소 사람의 마음, 뇌과학, 첨단기술에 관심이 많아 우리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과 감정을 소재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책의 뒷 부분 〈작가의 말〉을 통해 "누구나 저마다 삶의 서사를 갖고 있고, 그 이야기에서 주인공이다"고 전제하고 "이 소설을 통해 고군부투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그리고 그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조용히 들여보며 어루만지는 시간이 되기"를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있다. 

이 소설은 마음을 바꿔 삶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다. 독자들은 치유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상담심리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다양한 마음의 모습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병든 마음을 치료하고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은 쉽지 않다. 우리가 흔히 병든 육체를 치료하는 의사는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병든 마음을 치료하는 '정신 건강'은 돈으로도 살 수 없다는 말을 실감케 하는 책이다. 

이 소설을 읽기에 앞서 저자는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라고 질문한다. 돈, 명예, 성공, 가족, 일 등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마음이 무너지면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결국 삶도 무너지게 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때문에 살면서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이 내 의지를 벗어나 무너지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는 남보다 앞서고 빠르게 달려야 한다는 경쟁심과 욕망,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시간이 없다. 이는 우리를 병들게 하고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을 외면하게 한다. 내면에 쌓이는 부정적인 감정은 마치 언젠가는 폭발하는 화산처럼 폭발할 기회를 노리다 반드시 고개를 들어 예기치 못한 일을 감행하기도 한다. 저자는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을 다치지 않게 돌봐야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각인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 소설 집필의 취지이기도 하다.



이 소설엔 모두 여섯 가지의 사례가 등장한다. 「세상에서 고립된 아이' 현수」 「여자가 되어 엄마를 간직하고 싶은 청년' 세훈」 「기댈 곳을 찾아 헤매는 어른아이, 미희」 「돈과 결혼한 여자, 희진」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남자, 희준」 「거울을 보지 않는 상담사, 유경」 등 6개 에피소드를 통해 마음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치유를 통해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우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번아웃, 우울증, 화병, 불안, 집착, 열등감 등 부정적 감정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이 되는 셈이다. 저자는 심리상담의 결과를 갖고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혹시 모를 마음의 병을 예방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실제 사례를 소설로 재구성(각색·창작)한 리얼리티 심리 소설이다. 쉽게 말하면 실화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우리 누구나 갖고 있는 감정을 대변하는 6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삶이 무너져 마음의 낭떠러지 끝에 서 있지만, 치유의 과정을 통해 마음을 회복하고 삶이 바뀐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아픈 마음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힐링을 넘어 반드시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힐링은 외부로부터 받는 위안이기에 수동적이지만, 치유는 능동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밝힌다.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어루만지기, 자신의 열등한 부분을 받아들이기,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퇴행을 극복하기,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통합하기 등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신의 노력을 요청하고 있다. 이 소설은 치유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하는 직업을 가진 상담심리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다정한 마음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병든 마음을 치료하고 무너진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겨운 과정에서 독자들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낼 감동적 사연도 자주 등장한다. 

특히 표제어에 등장한 '낭떠러지 상담소'의 상담심리사 역시 소설 속 한 사람의 실제 사례로 등장해 마음의 병을 앓는 '환자와 함께하는 치유자'라는 인식을 독자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 호응도 배가된다. 마음의 병을 앓아본 사람이 환자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일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사례자 '유경'이 상담심리사이자, 그 자신 역시 심리적으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앞에서 사례적으로 살펴본 부정적 감정 중의 하나인 '열등감' 때문이다. 이는 소설 속 마지막 사례 「거울을 보지 않는 상담사, 유경」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유경은 미국으로 떠나기 전 유학원에서 상담도 받고 책을 찾아보면서 미국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한 정보를 수집했다. 마침 준호가 유학 중인 시카고에 꼭 만나고 싶어 했던 밥 교수가 교수로 있는 대학이 있었다. 유경은 일단 가격이 저렴한 시카고에 있는 칼리지 대학에 들어가서 2년 과정을 마치고, 밥 교수가 있는 대학으로 편입을 목표로 준비했다. 유경은 결혼식을 마치고 지원한 칼리지 대학에서의 비자가 허락되어 미국으로 향했다. 엄마가 남겨주신 소중한 돈은 학비의 일부로 보태 유용하게 쓰였다."(p.304) 

유경은 학업과 결혼생활을 병행하면서 결국 노력 끝에 7년째 되었을 때 한국으로 귀국했다. 유경은 귀국 후 한국상담연구소에 상담심리사로 취업해 자신이 그렇게 바라던 상담사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더, 그리고 기관에서 상담사로서 크게 인정을 받고 5년째 되던 해 독립해 '마음서고 심리상담소'를 차렸다. 부유한 집안의 며느리, 해외 유학을 다녀온 유능한 상담사, 능력 있는 남편의 아내라는 겉으로 내세우기 좋은 모습만을 자신으로 인정하고 싶은 것이다. 

심리상담소장 유경은 어느 날 딸이 선물한 거울을 보며 지난 과거를 돌이켜본다. 문득 거울 속에 비친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거울을 본 것은 준호와 결혼하고 나서 처음임을 자각한다. 유경은 준호와의 결혼으로 완전히 새로운 인생의 장이 펼쳐졌다. 자신의 초라하고 어두운 과거를 완전히 지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미국 유학생활을 할 때도, 한국에 귀국해 상담사 일을 할 때도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일절 말하지 않았다. 유경은 내담자들에게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마주하고 자신의 어둡고 열등한 면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고 늘 말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고 깨닫게 된다. 겉으로 드러난 자신의 현재 모습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과거의 어두운 모습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싶었다.



유경은 상담심리사로서 다른 환자들과의 상담 치유를 하는 것처럼 자신이 부정하고 지워버리려 했던 마음 한구석에 처박아버린 어린 유경에 대한 기억을 꺼내 어루만졌다. 한없이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어둡고 열등한 자아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러자 꼭꼭 숨기고 싶던 자신의 모습이 오히려 없어서는 안 될 존재처럼 소중하게 느껴졌다. 유경은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또 가장 필요한 일임을 새삼 깨달았다.(p.307)

책에 따르면 인간은 이성보다 감정의 지배를 받는 존재다. 그리고 감정은 우리 삶뿐만 아니라 사회,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남보다 앞서고 빠르게 달려야 한다는 경쟁심과 욕망, 물질에 대한 집착이 우리 개인은 물론 사회적 정서를 집어삼키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조현병에 의한 살인, 은둔형 외톨이, 왕따, 우울증, 공황장애 등이 해가 갈수록 증가하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근본을 들여다보면 공통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세상에서 고립된 아이, 현수」의 주인공 현수는 어렸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와 둘이 사는 고2 학생이다. 아빠는 현수를 방치해 현수는 학교와 집에서 문제아이자 외톨이다. 현수는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어 세상과 격리된 채 게임을 친구로 삼아 컴퓨터만 끼고 산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때로 폭력을 행사하고 문제를 일으킨다. 현수는 세상과 전혀 소통할 수 없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간다. 현수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할 뻔하지만, 그의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으로 학교에서 마지막 기회를 주어 상담소로 오게 된다.

「여자가 되어 엄마를 간직하고 싶은 청년, 세훈」의 주인공 세훈은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을 해서 엄마의 정이 몹시 그리운 애정결핍의 청년이다. 감성적이고 정서적으로 여자인 세훈은 여자가 되고 싶지만, 완벽주의에 보수적인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이로 인해 아버지와 사이가 극도로 좋지 않다. 더욱이 아버지는 성전환을 하려는 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그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 적이 있다. 자신의 문제를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세훈은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대상이 필요해 상담소를 찾게 된다.



「기댈 곳을 찾아 헤매는 어른아이, 미희」의 주인공 미희는 알코올 중독자이고,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 있는 40대 주부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 의해 잘난 여동생과 모든 것을 비교당하며 살아온 미희는 항상 주눅이 들어 있고, 매사에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해 자신의 문제를 다 해결해줄 것처럼 보이는 그 무엇인가에 의존하며 산다. 그것이 처음에는 마시면 모든 것을 잊게 해주는 술이었고, 그다음으로 찾은 것이 사이비 종교다. 이로 인해 미희의 남편은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혀 이혼을 고민하며 마지막 기회를 준다는 심정으로 미희를 데리고 상담실을 찾아온다.

「돈과 결혼한 여자, 희진」의 주인공 희진은 미모의 여성으로 아버지 사업이 망해 가난에 시달리다 돈이 많은 집안에 시집을 간 신데렐라 여성이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전혀 모르는 자신을 무시하는 시댁, 남편의 폭력 등 불행한 결혼생활로 인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시달리다 탈출구의 방편으로 상담소를 찾아와 상담을 시작한다. 「신데렐라가 되고 싶은 남자, 희준」의 주인공 희준은 외도로 이혼을 하고, 이혼녀인 여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했지만 여자친구가 의사와 재혼을 하는 바람에 독신이 된다. 그러나 명문대 출신의 약사인 여자친구를 잊지 못해 공허함과 외로움으로 상담실을 찾게 된다.

「거울을 보지 않는 상담사, 유경」의 주인공 유경은 앞의 5명의 내담자들을 상담해주는 심리상담센터의 소장이자 상담사다. 앞서 언급한 대로 지금은 10명의 상담사를 둔 상담센터의 소장이자 부유한 집안의 며느리이지만, 그녀에게는 상담사가 된 기구한 사연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과거를 어느 누구에게도 밝힌 적이 없는데, 그녀의 에피소드에서 그것이 밝혀진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내담자들은 어떻게 자신의 무너진 마음과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는지 차분한 마음으로 읽을 것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권유한다. 차분하지 않다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내담자들의 가족이 내담자로 인해 받은 상처와 고통을 어떻게 치유하고 그들과 관계를 회복하게 될지 깨닫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 남편이 술을 마셔서 그랬어요.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저에게 그러지 않아요.”

희진은 매 맞는 아내들이 자신은 폭력의 희생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할 때 하는 변명을 똑같이 내세웠다. 희진은 자신이 선택한 결혼생활이 실패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술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희진을 바라보며 유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어서 유경은 지금 희진이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드는지를 물었다. 그러나 희진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유경은 희진이 건네는 침묵의 답변에 함께 침묵했다. 이윽고 희진이 입을 열었다.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요. 지금 이 모든 것들이요.”

희진의 말은 내담자들이 자신이 믿고 있었던 진실, 신념들이 깨졌을 때 내뱉는 말이었다. 유경은 내담자들이 자신의 왜곡된 신념들을 재정의하는 과정을 수없이 보았다. 희진도 이제 그 과정의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어떤 점이 믿어지지 않나요?”

혼란스러움에 빠져 있는 희진의 마음을 다독이며 유경은 희진이 말한 믿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제가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이요. 남편은 내가 얼마나 돈에 집착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돈으로 자신의 폭력을 무마했던 거예요. 왜 요즘 한창 난리 난 가스라이팅 있죠. 생각해보니 저는 지금까지 가스라이팅을 당해온 거 같아요.”

희진은 마침내 자신의 돈에 대한 집착이 자신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잘못 선택하도록 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희진은 현재 비극적인 영화 속의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여주인공이나 마찬가지였다. 유경은 희진의 앞으로의 삶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위해서는 그녀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pp.186-187) 「돈과 결혼한 여자, 희진」 중에서


저자 : 이지연


이화여자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고전 마니아. 시공간을 뛰어넘어 살아남은 고전처럼 좋은 책을 쓰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평소 사람의 마음, 뇌과학, 첨단기술에 관심이 많아 우리 누구나 갖고 있는 마음과 감정을 소재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다. 이 소설은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독자들에게 질문을 건네고 있다. 또한 우리 누구나 살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 그때 어떻게 그 순간들을 건너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삶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있다. 앞으로도 한 번뿐인 삶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과정을 소설을 통해 독자들과 함께 나누려고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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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세계사 - 생명의 탄생부터 세계대전까지, 인류가 걸어온 모든 역사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육혜원 옮김 / 이화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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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인류의 세계사』는 『타임머신』, 『투명인간』, 『우주전쟁』 등 세계적인 명작을 남긴 허버트 조지 웰스가 저술한 역사서다. 이 책은 웰스가 자신만의 통찰력으로 저술한 역사서이지만 인류의 기원부터 현대까지 인류가 지구상에서 해온 일을 일목요연하게 풀어쓴 명저로 손꼽히고 있다. 웰스는 이 책이 출간된 해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독자도 어렸을 때 완역판은 아니지만 발췌본으로 나온 『타임머신』, 『투명인간』 등을 읽은 기억이 있다. 오웰의 과학적 상상력은 독자들을 과학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데 월등한 기여를 함으로써 'SF 문학(과학 소설)의 창시자'로 불리운다. 이 책은 역사, 철학, 종교를 아우르는 인류사의 치열한 고민들을 담아냄으로써 아인슈타인에 의해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책으로 추천되기도 했다. 특히 이번 개정판에는 200여 개의 이미지 자료와 지도를 수록하며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모두 담아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독자도 이 책을 받아든 순간 사진과 그림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금세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생동감 있는 이미지를 보고서다. 높은 해상도의 사진과 그림들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고, 독자들에게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 번 사실로 각인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아마 발전된 편집 능력과 인쇄술의 혜택도 작용했을 것이다. 

『인류의 세계사』의 이번 개정판은 200여 개의 시각 자료와 지도를 수록하며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모두 담았다. 인류의 위대한 모험을 함께하는 우리 모두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이 책은 역사적 사건들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세계사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소설처럼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조지 오웰, 버트런드 러셀 등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역사를 바라보는 웰스의 객관적인 통찰력으로, 초판 출간 당시 나치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다는 사실은 역사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에피소드이자 증거로 역할을 해내고 있다.



「허버트 조지 웰스, 아인슈타인을 설득하다」란 제목의 개정판 책의 〈서문〉에서 앞서 언급한 세 명의 저명 인사에 미친 영향을 그들의 입을 통해 들어보는 기회가 제공된다. 〈서문〉에 따르면 『동물 농장』의 저자 조지 오웰은 그에게 큰 영향을 받았는데 웰스를 "너무 제정신이어서 현대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허버트 조지 웰스의 작품을 사숙하며 소설과 과학을 익혔다고 말했다. 로켓 공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버트 고다드는 웰스의 『우주전쟁』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우주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는 인류 발전에 끝없는 비전을 제시했으며 '어두운 진실'을 예언했다.

〈서문〉을 쓴 사람은 웰스는 아니지만 이번 개정판의 편집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는 '어두운 진실'의 이야기도 여기에 실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한 달 전인 1939년 헝가리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실라르드 레오(1898~1964, 헝가리는 우리처럼 성이 앞에 오고 이름이 뒤에 온다)는 헝가리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다. 1933년에 핵 연쇄 반응을 발견하여 핵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1939년에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아인슈타인-실라르드 편지를 보내 핵무기 개발을 비밀리에 건의하여 맨해튼 계획을 추진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역시 아인슈타인처럼 유대인이다. 베를린-카를로텐부르크 공과대학교에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막스 폰 라우에 등의 물리학 강의를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아인슈타인과의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실라르드는 1933년 나치의 유대인 사냥에서 벗어나 런던으로 건너왔다. 바로 그 무렵 그는 핵에너지의 실용화 가능성을 부정하는 어니스트 러더퍼드의 글을 타임스에서 읽고 그의 속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바로 1년 전에 실라르드는 H. G. 웰스의 1914년 과학 소설 『해방된 세계』에서 인위적 핵붕괴를 이용하는 "원자탄"에 대한 공상과학적 묘사를 읽고 웰스의 상상력에 공감하였다. 그해 1933년에 실라르드는 핵 연쇄 반응 제어를 설계하고 이듬해에 이에 관한 특허를 출원하였다. 이렇게 해서 핵 연쇄 반응의 평화적 이용과 전략적 이용의 길이 열렸으나, 이러한 실라르드의 공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고 한다.



책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실라르드는 독일에서 망명한 유대인 과학자로서 히틀러의 위험성을 잘 알았다고 한다. 그는 아인슈타인에게 원자폭탄이 생겨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니, 최소한 히틀러보다는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원자폭탄의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실라르드의 설득에 아인슈타인도 결국 원자폭탄의 가능성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다. 역사적인 맨해튼 계획의 시작이었다. 오웰은 당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가'로 불릴 정도로 통찰력과 영향력을 지닌 사상가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상상력을 뛰어넘었다. 자신이 예측한 년도에 우려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원자폭탄이 실제로 사용되는 것을 목격하자 말년에는 비관주의자가 되고 만다. 

"우리가 전쟁을 끝내지 않는다면 전쟁이 우리를 끝낼 것이다. 모두들 그렇게 말하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동감하지만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자의 운명은 그 미래에 압도당할 운명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그는 자신의 책 개정판에 〈서문〉을 추가한다. "더는 할 말이 있는가? 이제는 내 묘비명밖에 없다. 내가 말했잖아, 이 바보들아.(I told you so. You dammed fools.) 

아인슈타인은 인류 문명의 발전을 이해하기 위한 역사책으로 이 책을 추천했다.(Education and World Peace, A Message to the Progressive Education Association, 23 November 1934) 아인슈타인은 〈추천사〉에서 저자 "웰스는 역사를 살아가는, 살아가야만 했던 '사람'에 집중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생각햇던 사상, 철학, 종교와 치열한 고민들을 담았다. 웰스가 과학 소설로 유명했듯 세계사 역시 소설을 읽듯 단숨에 읽을 수 있게 썼다. 세계사의 단편이 아닌 전체적인 흐름 자체를 담았다"고 평가했다. 이후 웰스는 3권 분량의 『세계사 대계(The Outline Of History)』를 집필하여 당시 200만 부가 팔리며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다. 역사에 더욱 몰두한 그는 내용을 다듬고 간추려 이 책 『인류의 세계사』를 출간했는데 대중을 상대로 한 최초의 한 권짜리 역사 책이었다고 이 책의 〈서문〉은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생명의 탄생」 2장 「인류의 기원」 3장 「문명의 발생, 고대 국가의 출현」 4장 「고대 철학과 사상」 5장 「천년 제국, 로마인 이야기」 6장 「중세 유럽과 아시아」 7장 「종교개혁과 패권 다툼」 8장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9장 「제국주의와 세계대전」 10장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등이다. 한국어 번역판이어인지 「한국사 세계사 비교 연표」가 눈에 띈다. 4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으로 고등학교 때 배운 세계사 교과서가 생각나기도 한다. 역사에 통찰력을 갖고 있는 웰스지만 이 세계사 책은 서양 중심에 치우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세계의 중심이 된 가장 발전된 문명은 유럽 중심의 세계관이었으니 그랬을 것이란 추정은 가능하다. 아예 동양사를 뺀 것은 아니지만 다루는 페이지도 적을 뿐 아니라 저자 웰스가 연구하고 탐구한 느낌은 별로 없는 것은 독자가 동양인이고, 역사 지식이 부족해서일까? 기술 내용으로 독자가 판단하기엔 깊은 연구는 없었던 듯한 느낌이다. 연대순으로 본 「한국사 세계사 비교 연표」는 원래 초판에 실린 것인지 후에 번역 개정판에 우리 출판사 측에서 붙여 넣은 것인지는 독자로서는 알 수 없다. 세계 속의 한국을 들여다보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인 것 같아 편집진에게 감사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유럽 중심의 역사서지만 세계 인류의 역사 속 활동은 감탄을 자아낸다. 그것은 웰스에 대한 역사 통찰력이 작용한 탓으로 이해된다. 웰스는 아인슈타인의 〈추천사〉에서 말한 역사를 살아갔던 ‘사람’에게 집중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역사의 흐름에서 기점이 되었던 사건들은 물론 당시 시대를 살아갔던, 살아가야만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 자체에 집중한다는 것이 역사를 보고 이해하는 올바른 관점이 아닐까 하는 자각심도 생긴다. 한다. 웰스의 역사 관점은 역사란 무엇이고, 인류의 역사는 어떤 것이었는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이 분명한 이상 역사서 기술의 한 모델로서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다는 평가에 독자는 공감한다.



세계사 책 가운데 생명의 기원이나 인류의 기원을 함께 다룬 것은 독자로서는 이 책 『인류의 세계사』이 처음이다. 세계사는 유사 이후의 인류의 발전 과정을 통해 문명 발전에 초점을 두고 기술하기 때문에 확실한 기록이나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해 과거사를 파악하고 있다. 문자나 그림 등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시대의 상황을 고고학이나 인류학 등을 통해 가설을 인정하고는 있지만 과학적 사실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이 책은 생명의 탄생과 인류의 기원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 점은 세계사를 기술하는 책에서는 흔히 있던 일이 아닌데 웰스는 과감하게 이를 세계사 시작 단계에 끼워넣음으로써 인류의 발전을 조망하고 있다. 현재 인류의 기원은 현생 인류가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하는 것은 단일 지역 즉,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설과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기원했다는 설로 나뉘는 상황이다. 또 생명의 기원설도 아직은 확실히 밝혀내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생물학의 뉴턴'으로 불리는 찰스 다윈은 1831년에 비글호를 타고 5년 간 세계 일주를 할 때 라이엘의 지질학 원론을 탐독함으로써 광범위한 지질학적, 식물학적, 동물학적 자료를 수집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윈은 아메리카 대륙을 남하함에 따라 극히 가까운 종들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을 보았다. 또한 다윈은 육지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동태평양의 갈라파고스(Galapagos) 제도의 섬들에서 참새와 비슷한 되새류가 30여 종이나 있음을 보았다. 이들은 육지에서 보았던 되새류와 비슷하기는 하나, 부리 모양이 달랐으며 섬끼리도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다윈은 어떻게 30여 종의 비슷한 새들이 격리된 섬에서 살게 되었는가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것이 우연이기보다는 아마도 아주 오래전에 한 종류의 새가 이 섬으로 날아온 후 세월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형태로 변했으리라고 추측했다. 다윈의 진화론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비록 짧지만 매우 조리 있고 설득력을 가진 생명과 인류의 기원을 생명체-바닷속-어류-육지 등의 진화론에 맞춰 생명이 인류로까지 진화하는 단계를 독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비록 과학계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추정하는 바에 웰스는 공감했던 듯하다. 웰스는 이 책을 통해 과학의 세계에 통찰력과 상상력을 불어넣어 현실화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세계사 기술을 시도함으로써 설득력 있는 역사 기술의 한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이 책은 그가 상상력으로 그려낸 과학의 세계가 굵직한 인류 문명사와 잘 맞아 떨어지는 점을 보고 '예언자'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통찰력을 가진 인물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고의로 전쟁을 일으키며 사람의 생명을 놓고 도박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걸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끔찍한 전쟁이 끝났지만, 그 어떤 것도 종결되지 않았고 시작되지도 않았으며 해결된 것도 없었다. 모든 전쟁을 끝내고자 전쟁을 시작했지만 전쟁을 끝내기 위한 또 다른 전쟁이 생겨났을 뿐이다.(p.365)


저자 :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과학 소설(SF)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이자 문명 비평가이다. ‘타임머신’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작가로, 과학 소설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역사, 정치, 사회에 대한 여러 장르에도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1866년 영국 켄트주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파산으로 학업을 그만두고 포목점과 약국의 수습 점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미드허스트 문법학교의 보조 교사로 채용된 데 이어 사우스켄싱턴 과학사범학교에 국비 장학생으로 입학하며 뒤늦게 학업에 정진하지만 생물학과 동물학 외의 다른 과목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해 과정 도중 학교를 떠난다. 이후 다시 공부를 시작해 런던대학을 졸업한 후 유니버시티 코레스폰던스 칼리지에서 생물학 강사로 재직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

학창 시절 『사이언스 스쿨 저널』에 연재한 단편소설 「크로닉 아르고 호」를 퇴고하여 『타임머신』으로 출간하였다. 『타임머신』의 큰 성공 이후 『모로 박사의 섬』, 『투명 인간』, 『우주 전쟁』, 『세계사 대계』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SF의 창시자’로 자리매김하였다. 이와 동시에 정치학과 사회문제 분야까지 두루 아우르는 글을 저술했으며 당대 최고의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다양한 주제와 장르를 다룬 20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역자 : 육혜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고려대학교, 경희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저서로는 『왜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셨을까?』, 『보편주의』, 『좋은 삶의 정치사상』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니체』, 『미래전쟁』, 『영웅본색』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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