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얼 씽 - 문학 형식에 대한 성찰
테리 이글턴 지음, 이강선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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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더 리얼 씽』은 「문학 형식에 대한 성찰」이란 부제를 갖고 있다. 원제 'The Real Thing'이 무슨 말인지 얼핏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을 읽어보면 서서히 책의 주제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사실주의는 각각 다른 여러 가지 예술 형식에서 사용되는 용어이므로 이 책에서 나의 초점은 오직 문학에만 있음을 말해 두고자 한다. 그러나 내가 말해야 하는 것 중 일부는 더 널리 적용되기를 바란다." 문장의 마지막에 'T.E.'란 저자 이름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의 머리문자가 씌어 있다. 독자가 이 책을 접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이유는 '문학 형식'으로서의 사실주의(realism)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사실 직시하기〉, 2장 〈사실주의란 무엇인가?(1)〉, 3장 〈사실주의란 무엇인가?(2)〉, 4장 〈사실주의의 정치학〉, 5장 〈사실주의와 평범한 삶〉 등이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측은 「문학이론 입문의 최종 확장본」, 「문학 형식에 대한 궁극의 성찰」, 「포스트모던 시대에 리얼리즘의 운명을 개척한다」 등으로 이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만 이는 사실주의 문학에 정통한 문학평론가들에게 어필하는 수준의 책임을 드러낼 뿐이다. 일반 대중 독자를 위한 책이라는 말은 '문학이론 입문의 확장본'이란 표현뿐이다. 문학이론에 문외한인 독자에게는 버거움을 느끼게 한다. 이 조그만 책자에 이렇게 고급의 문학이론을 담았다고 하니 더욱 경계심을 갖게 한다. 더욱이 마르크스에 대해 우리나라 독자들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서는 넘어서야 할 문학이론 책자임을 분명히 인식하게 한다. 바로 '포스트모던 시대에 리얼리즘의 운명을 개척한다'는 문구 때문이다. 리얼리즘의 시대가 저물었나 싶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문구라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독자는 우리나라의 산업화 시대에 태어나 학교를 다니고 산업화가 끝나고 경제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판단이 선 20세기 말 무렵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학교를 다녔기에 산업화 시대 이면의 이야기는 대부분 책을 통해, 특히 소설 등을 통해 읽었거나 배운 셈이다. 산업화 시대 우리 사회에는 '리얼리즘 문학'이 대세를 이루었다. 소설 작품에는 '분단'과 '산업화' 이면의 한국인과 노동자들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많았다. 


이때 독자가 배운 리얼리즘 문학이란 우리 시대 현실을 문학에 담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 그런 문학이야말로 예술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참여문학론'이다. 우리는 서양 예술사조에 관한 이론을 일본 제국주의를 통해 받아들였다. 일본은 일찍부터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우리와는 다른 길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을 이끌어간 정치·관료들도 대부분 서양 문명을 받고 성장하거나 직접 대영 제국으로 유학 갔다온 사람들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토 히로부미도 영국 유학생이라고 들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나라 발전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대영제국처럼 식민지 확보가 가장 빠르다는 인식을 분명히 했던 것 같다. 조선은 물론 중국, 심지어는 아시아 전역을 식민지화 나갔다. 그들의 계획은 군대의 힘을 앞세워 어느 정도 성사되어 갔다. 빠른 속도였고, 드디어 동양에 식민지를 갖고 있던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강국들과 이해 관계에 얽혀 들어간다. 1차 세계대전에도 군대를 파견했던 일본은 2차 대전에는 독일·이탈리아 독재자들과 함께 동맹을 맺고 세계를 분할 점령하겠다는 야욕을 키웠다. 이 기간 점령 당한 일본의 식민지들이 입은 피해는 당사국인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낱낱이 드러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지식인은 일본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지만 대다수 예술인들은 그저 일본이 전해준 예술사조에 따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짧은 기간에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기에 사실주의나 낭만주의, 계몽주의와 자연주의, 그리고 모더니즘 등이 혼재된 양상을 보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실주의는 일본을 통해 'realism'이 번역된 것으로 생각된다. 단어의 번역이기에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긴 했지만 지금은 '리얼리즘'이란 원어 그대로의 한글 표기가 주류를 이룬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주의란 말보다는 리얼리즘이란 말이 더 자연스러운 이유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의 문학평론가이자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가로 유명한 테리 이글턴이다. 출판사 측이 소개한 바에 따르면 테리 이글턴은 영국 신좌파의 대부이자 문화 연구의 창시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제자로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옥스퍼드대학교와 맨체스터대학교 영문학 교수를 거쳐 현재 랭커스터대학교 영문학 석좌 교수로 있다. 19세기 이후 영미 문학을 주로 연구하며, 문학사상론, 포스트모더니즘, 정치·이념·종교 등의 분야에서 『미학 사상』 등 5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특히 저자는 미학 이데올로기(Aesthetic Ideology)에 관한 이론을 완벽하게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는 세계 유명의 문학평론가이기도 하다. 테리 이글턴의 미학 이데올로기는 '일반 이데올로기(general ideology)' 가운데에서 예술과 관계된 영역에 존재한다고 한다. 미학 이데올로기는 일반 이데올로기에 의해 최종적으로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결정되지만, 윤리적·종교적 영역과는 구분된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미학 이데올로기는 복잡한 내부구조를 지니고 있는데, 문학을 비롯해서 다양한 하부구조를 포함한다. 이 문학의 하부구조도 복잡해서 문학이론, 문학평론, 문학전통, 장르, 문학적 관습, 기법, 문체 등 다양한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 미학 이데올로기에는 어떤 사회체제에서 미적인 것이 지닌 기능, 의미, 가치를 나타내는 미의 이데올로기가 포함되는데, 그것은 일반 이데올로기에 포함되는 문화 이데올로기의 일부를 이룬다.

테리 이글턴은 '미'라는 것이 계몽주의 시대에 등장한 부르주아적 개념이라고 강조한다. 이 '미'의 범주가 현대 유럽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예술이 부르주아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의 핵심에 놓이게 되면서부터이다. 초기 부르주아 사회에서 사회적인 삶의 현상은 사물화에 시달리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전통적인 철학의 개념인 정체성 개념은 더 이상 가치에 관한 담론들의 적절한 출발점이 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그러한 담론은 관념주의적인 것이 되고 만다. 가치라는 것은 그 자체에 기초를 두거나 직관에 의거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데, '미'의 개념은 그 두 가지 방식에 중요한 모델이 된다.

바로 이러한 '미'의 범주가 등장하게 된 것은 부르주아 사회 초기 단계에서 문화적 생산이 자율적인 것이 되도록 하는 물질적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테리 이글턴의 생각이다. 물론 '미'의 범주는 전통적으로 문화적 생산이 담당해 온 여러 사회적 기능들로부터 자율적인 것이다. 일단 문화적 생산물들이 시장의 상품이 되면, 그것들은 특정한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합리화된다. '미학'이라는 새로운 담론이 주된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바로 그러한 자율성 또는 자기준거성의 개념이다. 문화적 생산물이 스스로를 규제하고 결정하는 존재양식을 지니고 있다는 자율성의 개념은, 부르주아에게 물질적 활동들에 필요한 주체성의 이데올로기적 모델을 제공한다.


이와 함께 그는 주장하는 자율성의 개념은 칼 마르크스나 다른 사상가의 저작들에서 알 수 있듯이, 부르주아적인 공리성에 대한 혁명적 저항의 인간학적 토대가 되는, 인간의 힘과 능력에 내재된 자결적 본성 또한 강조한다. 테리 이글턴은 바로 이러한 '미학'의 양가성이야말로 미학 이데올로기라고 본다. 그는 미적인 것은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 주체성의 내밀한 원형이자, 동시에 인간의 에너지들을 근본적으로 그 자체가 목적인 것으로, 모든 헤게모니적이고 도구주의적인 사고의 적수로 보는 비전이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구체적 특수성에 대한 해방적인 관심, 다른 한편으로는 보편주의의 사이비 형태를 대변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학 이데올로기하고 한다. 테리 이글턴은 마르크스주의 비평의 과제 중의 하나는 미학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 그 이데올로기의 기능과, 미학 이데올로기를 일부 포함하는 일반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분석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제롬 J. 맥간은 현재 우세한 미학 이데올로기가 낭만주의에서 파생되었다는 논의를 펼치고 있다는 점도 〈문학비평용어사전〉은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 『더 리얼 씽』에서 몇 가지 리얼리즘의 핵심어를 짚어내고 설명한다. 「공감과 합리성」 「인지적 사실주의와 도덕적 사실주의」 「현실」 「묘사」 「허구」 「반영」 「가상」 「사실주의와 이데올로기」 「예술과 환상」 「필연성과 우연성」 「사실주의와 자연주의」 「아우어바흐」 「사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책의 가장 앞 부분에서 "리얼리즘은 왜곡이나 환상 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단정한다. 「공감과 합리성」을 설명하기 위해 19세기 영국 소설가 조지 앨리엇의 소설 『아담 비드』와 『미들마치』를 인용한다. 『아담 비드』는 19세기 초 잉글랜드 중부를 배경으로, 목수인 아담 비드는 경박하고 변덕스럽고 허영심 많은 헤티 소렐을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헤티는 매력적이지만 무책임한 마을 지주 아더 도니손과 사랑에 빠지고, 그녀가 임신한 직후 도니손은 마을을 떠난다. 저자는 이 소설의 주요 사건이 떠나버린 애인을 찾기 위한 헤티의 외로운 여행과 좌절, 영아 살해, 그리고 사촌인 다이나 모리스에게 털어놓는 그녀의 고백이라고 지적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과 공감의 감동적인 순간에 이루어지는 마음을 울리는 고백은 이 소설의 상징적, 도덕적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담 비드』가 나오기 약 1세기 전 수많은 영국의 평민들이 철저한 정치 개혁을 너무나 호전적으로 요구했기 때문에 귀족들은 끊임없이 혁명에 대한 두려움으로 떨었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앨리엇 자신의 작품이 이 평민을 이상화했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역자 이강선은 「마르크스주의자 테리 이글턴, 사실주의를 옹호하다」란 제목의 〈옮긴이의 말〉을 통해 그의 문학이론은 여러 대학 교수직을 거치면서 오늘날 학문 영역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우뚝 서 있지만 처음부터 동료들로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마르크스주의 관점과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옥스퍼드의 벽 안에서 학문 동료들과 대립하고 했다고 말한다. 특히 그의 유명한 저서 『문학이론 입문』의 소개편에 실린 내용의 일부가 확장, 이 책이 되었다고 덧붙인다. 또 이글턴은 그의 학문 성향으로 인해 마르크스주의자로 여겨지고 있는 한편, 가톨릭교도로 다양한 학문 영역을 넘나든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에 따르면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해서 사실주의에 대한 옹호라고 보아도 좋다. 사실주의는 18세기에 중간계급의 부상과 더불어 태어나 19세기에 절정을 이룬, 오래전의 사조로서 이미 낡았다고 여기는 이론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다양성을 논하는 포스트모던 시대에 왜 이 케케묵은 사실주의를 들고 나왔을까가 당연히 의아해진다. 포스트모던 시대와 사실주의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책 머리에서 이글턴은 사실주의와 포스트모던을 대조시켜 이 책을 쓴 이유부터 짚어 나간다. 사실주의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고자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아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본다는 것은 진실과 통한다. 그러므로 사실주의에는 진실을 보는 일단의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포스트모던에는 아예 그 방법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 점을 말하기 위해 책은 사실주의가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진실이란 무엇인지를 논하고 이어 사실주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에서 시작해 사실주의의 정치학에 이르고 마침내 사실주의와 보통의 삶, 즉 평범한 삶이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논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오늘날의 포스트모던에 대해 거의 공격이라 할 만한 어조가 느껴진다고 역자는 강조한다. 그는 포스트모던 문화가 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사실주의가 우리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인지 지도'를 제공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진실을 이야기한다. 이 사실들이 그는 사실주의 옹호자는 점을 증거한다고 역설한다.


출판사 측은 이 책의 성격을 담아 소개글을 내놓는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사실을 경계한다. 모든 것을 동등하게 여기며 절대적 진리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실제 삶을 그려 낸 사실적 드라마를 선호한다. 저명한 마르크스 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최근작 『더 리얼 씽The Real Thing』에서 그 이유를 유쾌한 필치로 탐구한다. 그는 부르주아의 작품인 사실주의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사실주의의 가치를 뿌리부터 더듬어 간다. 사실주의가 실제로는 시간 및 공간의 제약 없이 언제나 존재해 왔음을 밝히며, 18세기 사실주의 소설의 탄생부터 시작해 어떤 역할을 해 왔는지를 차례차례 분석하는 것이다. 그는 문학에서 낭만·신·감상을 벗겨 내고 계급 구조의 물질 세계에 대한 벌거벗은 진실과 독자들을 대면하게 하는 이 중간계급의 작품인 사실주의 소설을 경멸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감탄한다. 그것은 사실주의 소설이 있는 그대로 사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비판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 :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가이자 문학 평론가. 1943년 영국 샐포드에서 태어났다. 영국 신좌파의 대부이자 문화 연구의 창시자인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제자로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옥스퍼드대학교와 맨체스터대학교 영문학 교수를 거쳐 현재 랭커스터대학교 영문학 석좌 교수로 있다. 19세기 이후 영미 문학을 주로 연구하며, 문학사상론, 포스트모더니즘, 정치·이념·종교 등의 분야에서 5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그중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 『미학 사상』 『문학이론 입문』 『비평과 이데올로기』 『마르크스주의와 문학비평』 『우리 시대의 비극론』 『성자와 학자』 『포스트모더니즘의 환상』 『문화란 무엇인가』 『비극』 『더 리얼 씽』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근간) 등 30여 권이 있다.


역자 : 이강선


성균관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토니 모리슨의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로 미국 소설을 대상으로 정체성과 치유 관련 연구를 해 왔다. 논문으로 「인종적 수치심의 전승 과정에 관한 고찰」(2009), 「정체성 리터러시로 소녀 드래곤 서사 읽기」(2021) 등이 있고, 리터러시와 치유를 주제로 한 학술서를 2권(공저) 썼다. 옮긴 책으로 『미래 생활 사전』(공역, 2003), 『새들백』(2006), 『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2016), 『문화란 무엇인가』(2021) 등 10권의 영한 번역서와 Arirang(2021), Weaving of Mosi(2023) 등 4권의 한영 번역서가 있다. 성균관대 대우교수, 호남대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성균관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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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마음공부 - 걱정 많은 삶을 평온하게 바꾸는 법 불경 마음공부 시리즈
정운 지음 / 유노책주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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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불교 경전 《법구경》을 영화-소설-경전의 경로로 접했다. 영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본 지 30년쯤 된 것 같다. 한참 후 원작 소설도 읽었다. 공지영 작가가 썼다. 소설의 표제어로 쓰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당시 페미니즘 운동이 가속되던 무렵이라서 그런지, 여성 운동의 대표 문구처럼 쓰이기도 한 것으로 독자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억압을 사회 전반의 문제로 끌어올려 페미니즘에 관한 논쟁에 불을 붙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연히 영화화되면서 더욱 관심을 끌어올렸다. 이 소설에서 저자 공지영은 ‘끝내는 (남자들과) 함께 가야 하는 길을 걸으면서도 우리 여성들이 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만 하는가’를 강하게 질문하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 시대 여성들이 숱하게 겪어왔으며 앞으로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 있는 남녀 차별과 여성에 대한 편견 등의 문제를 기혼의 세 여성의 삶을 통해 날카롭게 보여준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귀절은 불교 경전 《법구경》에 나오는 문구라고 한다. 특이한 문구에 매력적인 인상을 받았지만 독자는 불교인도,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더 이상 추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법구경'이라는 경전 이름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귀절은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차일피일 머릿속 한구석에만 남아 있는 채 책을 직접 읽지 못한 차에 이 책 『법구경 마음공부』는 강한 기억과 함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느낌을 주었다. 이 책은 40년 전 출가한 이래로 평생을 경전 연구에 몰두한 정운 스님이 《법구경》의 가르침 중 우리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말씀(부처님)만을 골라 담은 책이다. 단순히 경전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법구경》의 지혜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적인 시선에서 자세히 해설해 준다. 현대인들은 오직 목표만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산다. 사회가 점점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신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상처, 두려움, 외로움, 분노 등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꼭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 책 『법구경 마음공부』와 함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면 복잡하게 얽힌 마음의 실타래를 풀고 평온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모든 순간을 분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두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나 자신을 굳건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법구경》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길 바란다고 저자 정운은 머리말에 쓰고 있다. 

한국인에게 큰 존경을 받는 '무소유'의 법정 스님은 ‘우리의 진정한 마음은 비어 있는 상태이며,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는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매일 갖가지 소음에 둘러싸인 채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고, 하나라도 더 가지길 바라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몹시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매일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간다는 것이 불교에서 본 대중에 대한 관점이다. 어떻게 해야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 평온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전하는 경전이 바로 《법구경》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책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살아생전 설법하신 내용을 423개의 시로 전하는 《법구경》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불경이다. 《법구경》은 번뇌로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가라’라고 말한다. 난생 처음 만난 것처럼 세상을 대하고, 고정관념에 휩싸이지 않으며, 순간순간 내 감정을 투명하게 바라보라는 말이다. 있는 그대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볼 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고, 인생과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고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법구경(法句經, 산스크리트어 Dharmap?da, 팔리어 Dhammapada)은 인도의 승려 법구(法救)가 인생에 지침이 될 만큼 좋은 시구(詩句)들을 모아 엮은 초기 불교 경전이다.



이 책 『법구경 마음공부』에는 《법구경》에 대해 자세한 소개를 책 앞 부분에 두고 있다. 처음 접하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저자 정운이 배려한 덕분이다. 책과 백과사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법구경은 전 26장 423의 시를 수록한 팔리어본의 국역(國譯)과 전 39장으로 구성된 한역 법구경(2권)의 국역(國譯) 두 가지가 있다. 이 한역본과 팔리어본은 그 장수(章數)나, 시구(詩句)의 배열 및 종류가 다르기 때문에 한역본의 원전은 팔리어본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집은 주로 단독의 게(偈)로 되어 있으나 때로는 두 개, 또는 여러 개의 게(偈)가 한데 묶여져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시들은 물론 부처님이 직접 읊은 것은 아니지만 부처님의 요긴한 뜻이 시(詩)의 형태로 엮여져서 원시불교 교단 내에서 널리 유포되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각각 달리 편집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경전은 불교의 윤리적인 교의를 시(詩)의 형태로 나타내어 불교에 입문하는 지침으로 하고 있는데 방대한 불교 경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부처님의 진의를 전하는 주옥 같은 문자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불교도들에게 가장 많이 애송되어 왔기 때문에 이 경전만큼 오래 되고 또 널리 불교도들에게 읽힌 불교 경전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이 경전은 이본(異本)이 많다고 한다. 우선 팔리어의 법구경은 서력기원전 4~3세기에 편집된 남방 상좌부계통의 것이고, 한역 법구경은 서기 1~2세기에 법구(法救)라는 스님이 편집한 것으로 서기 224년 지겸 축장염(竺將焰)에 의해 한역되었다. 팔리어본의 게송수가 423인데에 비해 한역본은 26장 500게송의 원전을 기본으로 하여 다른데에서 13장 250게송을 추가 보완하고 있다.

법구경과 동일계 경전으로 한역 대장경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있다.

①법구비유경인 한역 법구경의 게송 가운데서 3분의 2를 그대로 옮겨와서 그것이 설하여지게 된 사정과 인연을 말하여 주는 비유를 적은 것이다. 이 경은 39품으로 그 배열과 순서는 한역 법규경의 장(章)의 배열이나 순서와 일치한다. 각 품(品)마다 한 가지 이상 다섯 가지나 여섯 가지의 비유를 들고 있는데 그 수는 모두 68가지에 이른다. 서기 290~306년 법거(法炬)와 법립(法立)에 의해 한역되었으므로 법구경보다는 한역 연대가 약간 늦다. ②출요경이다. 이 경은 법구비유경보다도 100년 뒤인 서기 398~399년에 축불념(竺佛念)에 의해서 한역되었다. 내용은 법구경의 시구를 부분적으로 인용하면서 다른 시구들을 많이 섞어 넣고 그 싯구들에 담긴 교훈을 부처님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관련시켜서 실례를 들어가며 산문으로 해설을 가한 것이기 때문에 법구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③법집요송경으로 경전 이름 그대로 순전히 게경(偈經)이다. 출요경에 나오는 게는 4자 1구, 5자 1구가 섞여 있는데 비해서 법집요송경의 게는 전부 5자 1구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불교 입문서로 손꼽히는 경전 중 하나인 《법구경》은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화를 통해 부처님의 지혜를 전하고 있어 널리 읽힌다. 그러나 '3법인', '4성제', '8정도' 등 일반인에게는 다소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는 용어도 자주 등장한다. 불교 수행자에게는 즉각적으로 해탈에 이르는 방법을, 대중에게는 삶의 의미와 실천 가능한 지혜를 알려 주지만 오래 전 부처님 말씀을 현대의 불교 입문자가 즉각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법구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짧고 간결한 시를 통해 전하기 위해 쓰였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심오하다. 집착을 내려놓고, 내면을 다스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흔들리는 삶에 울림을 준다. ‘진리의 길’이라는 이름처럼 고된 인생살이에 휘둘리다 지친 마음을 다스릴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이 책 『법구경 마음공부』는 《법구경》을 한 번 읽고 즉각 이해하기 힘든 대중들에게 가장 쉬운 우리말로 전해주기 위해 해설과 주석을 달아준 책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이 책에 들어 있는 삶의 지혜를 하나씩 습득하는 것은 삶에 집중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용기를,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바로 세우는 수행으로 이끌어 주기 위해 쓰였다. 이 책의 구절들을 하나씩 읽고 읊다 보면, 번잡한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을 느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이 책 『법구경 마음공부』는 단순히 《법구경》을 번역해 나열한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경전 속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나를 다스리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이 책은 모두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삶의 무상함을 기억하라〉, 2장 〈나부터 돌아보라〉, 3장 〈버려야 채워진다〉, 4장 〈남을 나처럼 생각하라〉, 5장 〈자신을 놓치지 말라〉, 6장 〈늘 마음을 다하여라〉, 7장 〈항시 끝을 생각하라〉 등이다. 제1장에서는 본격적으로 《법구경》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 알아야 할 불교의 기본 개념을 설명한다. 나를 괴롭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또 부정적인 마음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교의 핵심 개념과 함께 알려 준다. 제1장에서 불교 교리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도록 저자는 배려했다.



제2장에서는 나를 돌아보고 성숙한 마음을 갖는 법을 이야기한다. 인욕의 자세를 가질 것을 강조하는데, 이는 ‘업’과 관련된다. 몇 개의 소제목으로 귀절을 살펴보면, 「나의 과오부터 살펴라」 「‘나’를 망치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었다」 「말이 부른 복, 말로 쌓은 악업」 「비난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번뇌가 없으면 화도 사라진다」 「남을 괴롭혀 무엇을 얻을 것인가」 등이 있다. 소제목만 읽어도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면 굉장한 수준의 불교 입문자이자 삶의 성숙도가 높은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2장에서 주요한 가르침은 세상의 잘못은 '나'로부터 인한 것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수행을 할 것을 말하고 있다. 또 일상의 순간순간이 모두 깨달음의 길이라는 점을 강조해 '진리는 늘 가까운 곳에 있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다. 이와 함께 「비난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항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이러했다. 서로 서로 헐뜯고 비방한다는 사실이다. 또 말이 많아도 비방을 받고, 말이 적어도 비방을 받으며, 또한 적당히 말해도 비방을 받나니, 비방 받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란 「忿怒品 227」에 나오는 이야기를 인용해 설명하고 있다. 

제3장은 「집착을 내려놓게 할 부처의 조언」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제3장은 나를 괴롭히는 집착과 탐욕을 내려놓는 장이다. 부처님은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서 살라’라고 말씀하셨다. 내 눈을 멀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소한 것에 감사하며 살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이 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비교적 많이 들어온 삶의 교훈 같은 말들이 많다. 탐욕은 고난을 초래한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빠져나가기 마련이다. 선행을 하는 사람은 복을 받지만, 악행을 하는 사람은 과보가 자손들에게 미친다. 진실하게 돈을 벌며, 바르게 살아야 한다. 마음에 선 또는 악의 씨앗을 뿌릴 것인지는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즉, 탐욕을 경계하기, 겸손한 행동, 무위복과 유위복을 절충하며 살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재물 활용, 가장 중요하지만 홀대받는 마음, 어린 시절 바른 교육의 중요성, 번뇌와 해탈이 다르지 않음을 말한다.



제4장은 어른스러운 마음가짐으로 좋은 인연을 쌓는 법을 알려 준다.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결국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좋은 인연을 만드는 부처의 지혜」란 부제가 붙어 있다.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준 소항목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이다. "자기 자신이 행복을 원하고, 고통을 바라지 않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행복을 바라고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그대 생명을 소중히 여기듯 남의 생명도 존중해 주어라."(「벌 받는 이야기 129」) 저자 정운은 이 대목에서 서양의 같은 뜻의 이야기를 인용하기도 한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의 욕구 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인정받고 싶은 갈망이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제임스가 주장하는 핵심은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하면서 자신은 타인을 존중해 주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마태복음》에도 '너희가 남에게서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는 말이 있다. 모든 존재가 인격을 갖춘 존재이므로 타인도 그러함을 존중해 주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도 바로 모든 존재가 다 소중하고 귀하므로 어떤 생명체든 귀중히 여겨야 함을 일러주기 위해서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제5장에서는 잃어버린 자존감을 되찾아 주는 내용이 가득하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 「나다운 삶을 찾아 주는 부처의 가르침」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인생을 낭비한 죄'라는 항목에서 "진리를 모르고 백년을 사는 것보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성스러운 진리를 알고 사는 것이 품격 있는 인생"이란 법구경의 내용을 인용한다. 에피소드는 부처님이 사위성 기원정사에 계실 때가 배경이다. 결국 부모의 재산 상속에 관한 일이다. 자녀는 부모의 재산만을 상속받으려 하지 의무를 다하려 하지 않는다. 돈을 좇는 사람들의 속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식이 부모에게 재산만을 바라고, 그 재산을 상속받고는 천대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범람하는 문제라고 전제하고, 이런 못된 자식의 행태는 그 옛날이나 요즘 세상이나 똑같은가 보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서도 몇 년 전 '효도하라'는 광고를 내걸기도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에 사찰 법문할 때 저자는 "보살님들은 자식이 학문이든 예술이든 그 어떤 것이든 하고 싶어 하는 대로 가르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공부시켜 준 것이 재산 상속임을 자식에게 일러 두세요. 이후 재산은 보살님들 자신을 위해 쓰십시오."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제6장의 부제는 「목표를 이루게 할 부처의 조언」이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마음가짐을 다지기 위해 깨달을 것을 이야기한다. 깨달음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며, 결코 남에게 의지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의지로 자신을 일으켜야 한다. 내 인생을 대신해 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을 주문한다. 또 이 장에서는 인생의 어려움을 해결해 내는 노력, 선업과 악업의 사필귀정, 인과를 이해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겸손하기, 노년기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 존경받는 리더의 행동, 좋은 습관의 중요성, 소식과 건강, 윤회와 업을 통해 본 현재 삶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 제7장에서는 죽음을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해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정리해 알려 준다. 건강을 유지하고, 인생의 모든 과정을 행복으로 여기면 죽음은 친구가 된다고 말하는 것은 무척 인상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빠지지 말라. 미운 사람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을 만들어 가지지 말라. 사랑은 미움의 원인이다. 이미 번뇌를 제거한 사람은 사랑도 없고 미움도 없다.(p.262)


이른바 지혜로운 사람이란 반드시 말 잘하는 것만 일컫지 않는다. 겁먹지 않고 두려움 없이 선(善)을 지킬 줄 알아야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른바 법을 받드는 사람이란 말을 많이 하는 것만 일컫지 않는다. 비록 들은 것이 적다 하더라도 몸소 법대로 닦아 행해서 도를 잘 지켜 잊지 않아야 법을 받든다고 할 수 있다.(p.308)


저자 : 정운(定蕓)


불교학을 연구하는 스님. 대승불교를 연구하는 대승불전연구 소장 및 《한국선학》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동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한불교조계종 불학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조계종단 교육아사리(승려 교육과 불교학 연구를 담당하는 스님)이며, 동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출가한 이래로 불교의 다양한 경전들을 연구하였고, 이를 통해 깨달은 바를 칼럼과 저서로 중생에게 전한다. 불교의 수만 가지 경전 중에서 ‘동방의 성서’로 불리는 《법구경》은 삶의 가치관과 불교관을 정립해 준 경전이다. 대부분의 대승불교 경전이 교리상의 문제나 계율적인 쟁점을 다루는 것과 달리, 《법구경》은 누구나 깨닫고 실천할 수 있는 부처님의 순수한 진리가 담겨 있다. 경전에 담긴 부처님의 423가지 말씀 중에서도 사람들의 인생에 가장 도움 될 만한 구절들을 선별해 《법구경 마음공부》로 정리했다. 저서로 《서른 즈음, 꼭 읽어야 할 금강경》, 《경전숲길》(편역), 《유마경》, 《경전의 힘》(편역), 《살다보면 살아진다》 외 다수가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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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
시가 아키라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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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뿐만 아니라 일본 문학을 거의 접하지 않다가 읽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 작가(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 2명이라고 들었다)를 제외한다면 일본의 소설가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몰랐다. 일본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추리소설에 대한 독자의 개인적 취향 때문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간이 남아돌아 우연히 마주친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이었다. 이후 무라카미 하루키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도 몇 편씩 읽었다. 일본은 추리소설이 굉장히 강세를 가진 것도 알게 되었다. 불과 4~5년에 불과한 기간에 일본 소설을 읽은 편수가 많지는 않지만, 일본 소설의 두 가지 특징을 발견했다. 그동안 독자가 의도적(?)으로 피했던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니, 일반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 소설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과 관련되기도 밝힌다. 일본 문학의 수준이 의외로 높다는 것, 그리고 일본인의 기본적 정서는 우리와 정말 많이 닮았구나 하는 점이었다. 추리소설에 강세를 가진 것은 일본인들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영국에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들이 많이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 문학의 특징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소설 속에 나타난 일본인들의 정서는 우리와 많이 비슷했다는 점과 일본 문학의 수준이 꽤 높다는 점은 크게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 작품은 표제어나 표지에 적힌 책의 성격을 나타내는 문구보다 덜 자극적이긴 하다. 그러나 세부적 표현과 다루는 사회 현상이 서민이 겪는 아픔이 주제가 되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그것도 돈 때문에 겪는 역경을 이겨내려는 주인공(싱글맘)의 심리 묘사도 자세한 만큼 구체적으로 실감난다. 이 소설이 리얼리티를 획득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어린 딸을 데리고 도망쳐 도쿄에서 생활하는 싱글맘 다카요가 주인공이다. 그녀에게 도착한 임대료 체납 독촉장은 이 소설의 사건과 방향을 암시하고 있다. 독촉장의 내용에 따르면 강제 퇴거까지는 열흘밖에 남지 않았다.



긴박한 상황에 도움을 기대할 만한 친정도, 심지어 대부업체도 그녀를 외면한다. 주부였던 싱글맘이 갑자기 취업하려 해도 쉽지 않은 것은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취업자가 아니면 은행은 물론 우리나라의 제2 금융권 같은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길바닥에 나앉을 정도의 궁지에 몰린 다카요가 매달린 곳은 SNS로 고객을 모집하는 불법 개인 사채업자였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다 겨우 맘씨 좋은 사람일 것 같다는 '미나미'가 사채 이자로 돈을 빌려준다. 간신히 돈을 빌려 급한 불은 껐지만, 여전히 반반한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힘들다. 임시 일자리라도 구하지 못한다면 대출금은커녕 이자와 공과금 내기에도 어려운 상황으로 점점 내몰리는 다카요의 앞날은? 우리나라도 얼마 전 학생들이나 직장 임시직인 사람들이 사채로 돈을 빌려 썼다가 그들의 빛 독촉과 고금리에 시달리다 못해 극한 선택까지 한 일이 잦아 사회 문제로 비화된 적이 있었기에 다카요의 상황을 이해하기에 훨씬 수월했다.

다만 우리나라는 사채업이 문제가 될 때 성매매업을 알선하거나 종용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일본은 그런 일이 잦은 편인 것 같다. 그것은 일본과 우리의 성 문화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하다.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돈을 빌려주고 받아내는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돈만 받아내기 위해 합법, 불법을 따진다면 사채업은 못할 것 아니겠는가. 다카요는 결국 고민 끝에 큰 결심을 하고 성매매업에 뛰어들지만 결정적 장면에서 정신이 차리면서 다시 돈에 쫒긴다. 돈을 못 갚으면 사채업자의 불법 알선은 더욱 교묘해지고 빛 독촉은 더욱 심해진다.  

그런데 이 미나미라는 사람, 유난히 친절하다. 대출금 변제일을 유예해주는가 하면 육아 고민이나 한부모 가정의 고충과 같은 개인적인 상담까지 해준다. 그와는 별개로 돈 드는 일은 자꾸만 생기고 친절함에 반비례하듯 대출금은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간다.



성매매업에 뛰어들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현장을 벗어나긴 했지만 빚 독촉은 더욱 극심해진다. 결국 친절한 미나미에게 부탁을 한다. 

“미나미 씨, 혹시 주말에 효율적으로 일할 만한 곳을 아시면 조언해 주세요.”

“그런 일자리가 전혀 없지는 않죠.”

조르고 졸라서 받은 구인 목록은 성매매 일이다. 다카요의 의심은 커진다. 이 사람, 애초에 날 성매매 쪽에 팔아넘길 꿍꿍이였을까? “내가 대출해 준 돈은 다달이 조금씩 갚아도 괜찮으니까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라며 오히려 소개를 꺼리는 듯하며 자신의 친절을 내보이려는 사람인데···. 대체 ‘미나미 씨’는 누구일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맞을까? 빚밖에 없는 인생에서 벗어날 길은 있는 걸까?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생각만으로는 의심의 결말이 나올 수는 없는 법. 

이 소설은 돈 없는 사람이 어떻게 고금리 사채의 늪에 빠지는지, 그리고 사채를 쓰는 순간 악귀와 같은 인간들에게 시달리며 어떤 지옥으로 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하나씩 하나씩 궁금증을 풀어주는 형식으로 사채업의 실상을 낱낱이 밝힌다. 리얼리즘 형식에 심리 묘사에도 탁월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추리·미스터리·스릴러·장르 소설은 대개 범죄와 연관되어 있다. 범죄와 관련된 소설을 쓸 때 자칫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평론가와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성 범죄 소설일 경우 계획적이고 폭력적인 장면 묘사가 지나치면 범죄 수법을 가르친다는 오명을 쓸 수 있다. 선정적일 경우엔 '삼류 소설'로 낙인 찍힐 우려도 있다. 물론 지나칠 경우의 이야기지만 판단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기에 시대적 인식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일이니 애매모호하다는 기준 때문이다. 

이 소설에 대해선 "이 시대 일본 사회의 현실을 실감 나게 그려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독자도 공감한다. 이 때문에 독자가 앞서 언급한 대로 일본인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가 상당 부분 비슷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간당간당하다'는 단어 사용도 눈에 띈다. 순우리말으로 전 지역에서 골고루 사용하는 단어는 아닌 듯하다. 일부 지역에서 사투리처럼 쓰였을 뿐이다. 국어사전에 정식으로 등재된 말이니만큼 역자 양윤옥이 선택했다고 추측된다. 독자로서는 일본어 어떤 단어의 번역인지 모르기에 역자의 어휘능력에 감탄한다.



번역하시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한마디 내놓자면 번역가들은 특출한 영역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문학, 특히 소설 번역은 어떤 영역보다 힘들 것이라는 독자의 추측은 사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본다. 소설의 특성 때문이다. 전문 서적 번역은 그 분야에 뛰어난(전공자) 분이 번역을 맡는다면 전문 용어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독자는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은 영역뿐만 아니라 시대적으로 뛰어난 언어 감각과 지식이 뒷받침돼야 훌륭한 번역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소설 번역의 어려움을 추측한다. 이 책의 역자 양윤옥은 '일본 문학 전문 번여가'로 소개돼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문학 작품을 번역했다는 다른 표현이기도 하겠지만 양윤옥에게 일본 문학 번역을 맡기면 완벽에 가까운(원작자의 취지에 맞는) 언어감각을 갖췄기에 붙여진 별칭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른 작품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작품 해설〉이나 〈작가의 말〉 대신 「돈에 속아 아프고, 작가에 속아 짜릿하다」는 제목의 〈역자 후기(옮긴이의 말)〉가 있다. 이에 따르면 주인공 다카요의 삶에 고통을 주는 요인으로 '허랑한 남편'을 꼽았다. 맞다. 남편이 허황된 사업을 벌이면서 장인어른 집에 엄청난 폐를 끼치고 실패하자 도박에 손대고 성격마저 거칠어져 가정 폭력을 휘두른 남편이다.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추락을 길을 걷는 사람이다. 그래서 저자가 책의 가장 앞 부분에 "내 인생의 좌절은 그 남자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을 적었다는 것이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기시감이 든다고 역자는 표현한다.

독자는 남편을 수식하는 '허랑하다'란 단어도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엔 알지 못했다. 역자 후기에 이르러서야 사전을 찾아 알게 된 단어다. 국어사전에는 "언행이나 상황 따위가 허황하고 착실하지 못하다"고 풀이돼 있다. 일본에서 자주 쓰는 단어인지 독자는 알지 못하기에 앞서 언급한 '간당간당하다'는 말과 함께 역자의 어휘 능력에 감탄할 뿐이다. 자세한 줄거리를 설명해주지 않지만(스포 우려 때문에) 한 가지는 귀띔하는 사실이 있다. 이 소설은 "작가가 주인공뿐만 아니라 독자도 함께 속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 대해 역자는 일본 사채업자를 소설 속에 '미나미'는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은행도 대부업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맑은 날에 우산을 빌려 주고 비 오는 날에 우산을 빼앗아 가는' 매정한 금융 시스템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미나미는 절박한 상황에 빠진 다카요에게 친절의 손을 내미는 듯하지만 점점 궁지에 몰리게 해 결국 헤어나오기 힘든 수렁 속으로 밀어넣는 인물이다. 저자가 이런 인물을 등장시킨 이유에 대해, 역자의 판단은 대부업계의 리얼리티를 살리고 오리무중이지만 결국은 '나쁜 놈'들의 꼭대기에 있는 인물이다. 저자가 이런 리얼리티를 확보한 후, 트릭을 사용해 주인공이나 독자 모두를 속이고 있는, 소설 구성을 가진 이 작품 『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를 역자는 높이 평가한다. 모두가 속을 수밖에 없는 서술 트릭, 속는 사람과 속이는 사람이 구분되지 않는, 서로 속고 속이는 기막힌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격찬하고 있다. 

흔히 추리소설은 반전, 미스터리 소설은 트릭, 스릴러는 공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넣을 수만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이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정립하기 힘든 요인으로 생각지 않고 융복합적으로 생성해 낸다면 평론가들로부터 극찬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란 이런 장르 소설의 애호가들은 충분히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요인을 융복합적으로 사용하다 소설의 구성이 얽히거나, 줄거리가 설켜 들어가면 뒷 감당(수습)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함부로 시도하기에 어려운 일일 것 같다. 이 소설은 '속임수' '돈' '힘없는 서민'들이 엮어내는 리얼리즘 형식의 미스터리 소설이다. 사회 저층에 사는 사람들이 돈 때문에 갖은 수모를 당하고, 생각지도 못한 범죄에 빠져들기도 하고, 추락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한 단계 높은 사회 계급, 결국에는 상류 계급으로 신분 상승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오늘날 일본 사회를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그것은 곧 우리 사회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아니 이미 적용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돈의 위력은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다르게 커졌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에 대해 역자 양윤옥은 "돈에 속아 아프고, 작가에 속아 짜릿하다. 과연 당신은 속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말로 이 소설에 대한 구미를 북돋운다. 역자의 말은 소설 읽기에 스포가 아닌 윤활유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방금 20만 엔 이체했어요.'

그 메시지를 보자마자 우리 모녀의 목숨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간당간당 다시 붙은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겨를도 없이 은행 카드가 든 지갑을 움켜쥐고 집을 뛰쳐나왔다.(p.73)


저자 : 시가 아키라(しが あきら, 志駕 晃)


1963년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난 소설가. 1986년 닛폰방송에 입사하며 프로듀서, 라디오 디렉터 등을 거쳐 2018년 상무 이사직을 맡았다. 관리직으로 시간 여유가 생긴 48세부터 상무 이사직과 소설가로 투잡 생활을 하며, 미스터리 소설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제15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에 『패스워드』라는 작품을 투고한 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로 2017년 데뷔했다. 소설 소재로서는 드문 분야인 SNS 사기, 가상화폐 유출 등의 시사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

시가 아키라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원작 『패스워드』로 제15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대상에 최종 당선되며 일본 추리소설계에 혜성처럼 입성한 작가이다. 1986년 후지 TV의 자회사인 닛폰방송에 입사한 이래, 다양한 직책을 거쳐 현재는 엔터테인먼트 개발국장이라는 요직을 맡고 있다.

독자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의 설정을 생각해 낸 저자의 비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스마트폰을 택시 안에 깜빡 두고 내린다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설정은 독자에게 압도적인 현실감을 불어 넣는다.

이야기는 세 가지 시점을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스마트폰을 주운 남자, 그 표적이 된 이나바 아사미, 그리고 가나가와의 어느 숲속에서 백골 상태의 여성 사체를 발견한 형사! 독자는 이 세 가지 시점을 동시에 읽어가면서도 저자의 상황 설명에 과부족이 전혀 없어, 단 한순간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다. 글을 이끌어가는 시가 아키라의 훌륭한 솜씨는 흡사 숙련된 외과의나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우수한 수학자의 그것에 비견될 만하다.

중복 없는 속도감 있는 전개, 유머 가득한 문체, 무슨 일이 있어도 독자를 즐겁게 만들겠다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적 재미, 자연스럽게 영상이 떠오르도록 만드는 이미지 환기력, 현대인의 공포를 끄집어내는 동시대성, 그 외 다양한 매력이 시가 아키라의 소설 속에 녹아 있다.

이 소설의 장르를 굳이 분류해 보자면, 「미스터리 성향이 강한 서스펜스 소설」이 되겠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호러소설로도, 근미래 SF소설로도, 어떤 면에서는 청춘소설이나 연애소설로도 볼 수 있다. 잔학하고 에로틱한 냄새도 난다. 시가 아키라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역자 : 양윤옥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 2005년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으로 일본 고단샤에서 수여하는 노마문예번역상을 수상했다. 사쿠라기 시노의 『호텔 로열』, 『별이 총총』,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 스미노 요루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 『밤의 괴물』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눈보라 체이스』, 『그대 눈동자에 건배』, 『위험한 비너스』, 『라플라스의 마녀』, 『악의』, 『유성의 인연』, 『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지옥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칼에 지다』, 마스다 미리의 『5년 전에 잊어버린 것』 오카자키 다쿠마의 [커피점 탈레랑의 사건 수첩] 시리즈, [가가 형사 시리즈], [라플라스 시리즈],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사쿠라기 시노의 『굽이치는 달』 등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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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너머의 클래식 - 한 소절만 들어도 아는 10대 교향곡의 숨겨진 이야기
나카가와 유스케 지음, 이은정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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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악보 너머의 클래식』은 우리가 '클래식'이라고 지칭하는 세계의 거장 음악가들이 쓴 10곡의 교향곡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 음악은 클래식을 두 가지로 나뉘어 정의하고 있다. 고전파음악(classic music)을 뜻하는 경우와 또 하나는 대중 음악에 대한 '서양의 고전적 예술 음악'을 가리킨다. 전자는 음악사에서 바흐와 헨델의 시대를 지나 베토벤이 세상을 떠나기까지(1827)의 음악을 말한다. 시대적으로는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초에 걸친다.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의 시대에 음악의 중심이 빈으로 옮겨졌으므로, 하이든 이후를 빈 고전파음악이라고 할 때도 있다고 한다. 이 시대를 고전파음악의 시대라고 하는 것은, 당시의 음악이 정연한 형식을 존중하고 균형감을 주체로 하는 유형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백과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고전파의 어원에 해당하는 라틴어 'classicus'는 계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을 말하는데, 문학에서는 모범적이고 영속적이며 고대 그리스·로마 사람들의 미적 이상을 추구한 것을 의미한다. 미의 이상이란 형식의 조화와 유형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스토리텔링한 교향곡은 베토벤 이후의 음악가, 말로와 스트라빈스키 등 20세기에 활동한 작곡가들이 포함돼 있으니 넓은 의미의 클래식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하면 된다. 

10곡의 교향곡은 저자 임의로 선정된 것이지만 클래식 애호가들은 누구나 인정할 만한 곡들이라 어느 곡이 선정됐는지에 대한 관심은 무의미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각 곡의 제목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은 우리들도 어렸을 때부터 음악 교과서 등을 통해 자주 들었던 곡명이라 독자처럼 클래식 문외한이거나 입문 수준의 독자라 할지라도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곡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위대한 교향곡을 남긴 음악가들 생애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포함돼 있어 누구나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된다. 특히 저자 나카가와 유스케는 일본에서 〈클래식 저널〉을 창간하고,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클래식 50』 『예술 개념어 사전』 『클래식 음악, 뭔데 이렇게 쉬워?』 등 클래식 전문 저서도 발간한 '클래식 통'으로 알려진 인물이어서 신뢰감 또한 높다는 점이 이 책의 가치 수준을 높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10곡이 모두 교향곡 역사에서 중요한 곡들이라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처음에는 작곡가 한 명당 한 곡씩 선정할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베토벤의 〈영웅〉, 〈운명〉, 〈전원〉은 인기와 인지도는 물론 음악사에서의 중요도도 무시할 수 없어서 베토벤의 작품만 세 곡을 선정했다고 「서문(들어가며)」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독자들이 미리 알아야 할 이야기가 있어 미리 밝히고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교향악'이란 표현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교향악이라고 쓰이는 단어는 일본이 서양 고전음악을 받아들이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심포니Symphonie(독), symphoni(이), symphony(영)'의 단어들을 '교향악'이란 표기로 받아들인 데서 연유한 것이라는 말이다. 일본식 한자라는 뜻이다. 서양에서 온 원어 대신 일본이 자신들의 말로 번역해서 표기한 것이 '교향악'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된 단어라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로 인해 용어 사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듯 보인다. '관현악'이란 표현도 있는데 '교향악'은 관현악을 위하여 만들어진 음악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혼동한다고 해서 뜻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관현악이란 '오케스트라'란 말의 번역어로서 그리스어 '오르케스트라(orkh?stra)'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에서 무대와 관람석 사이에 마련된 넓은 장소를 뜻한다고 한다. 코로스(무용수)가 노래 부르며 춤을 추고, 악기연주자가 위치한 장소였다는 것. 그 후 고대 그리스 말기에는 무대를, 16세기에는 무용을 뜻했으며, 18세기에는 극장에서 악기가 위치한 장소를 가리켰다. "여러 가지 악기의 집합체"라는 정의는 J.J.루소의 『음악사전』(1767)에서 처음으로 쓰였다고 알려지고 있다고 〈두산백과〉에서 풀이하고 있다. 결국 오케스트라나 관현악, 교향악이라는 표현이 조그만 차이가 있지만 같은 의미로 혼동돼 써왔다는 이야기다. 

베토벤의 ‘영웅’이 전대미문의 긴 연주 시간으로 야유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가? 슈베르트의 ‘미완성’이 무려 40년 동안이나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가 가까스로 세상의 빛을 본 이야기는 어떤가? 차이콥스키가 역작 ‘비창’을 초연하고 고작 9일 뒤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 이야기는? 이 책은 악보와 음표 너머, 위대한 명곡들이 탄생했던 바로 그 순간으로 독자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책에는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전설적인 명곡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 ‘다다다 단~’ 하는 강렬한 도입부로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베토벤의 〈운명〉, 영화 〈죠스〉 주제가의 모티브가 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등 교향곡은 클래식 음악의 꽃이라고 불린다. 이 책은 클래식 교향곡 가운데서도 가장 대중적이고 음악사에 큰 의미가 있는 불후의 10곡을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엄선된 불후의 10대 교향곡은 〈주피터〉, 〈영웅〉, 〈환상〉, 〈비창〉 등 별칭이 붙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가사가 없으니 이해하기 어려워서, 또는 ‘누구의 피아노 몇 번 협주곡’처럼 복잡한 명칭이 낯설어서 클래식을 가까이하기 힘들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에 수록된 곡들을 클래식 감상의 시작점으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듯하다. 아직 초보 수준이지만 5년여 전부터 클래식을 즐겨 듣던 독자에게도 명곡의 작곡 배경과 작곡가들에 얽힌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는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포인트가 됐다. 

모차르트의 〈주피터〉에서 쇼스타코비치의 〈혁명〉에 이르는 150년 동안 음악사의 주요 장면들은 격변하는 유럽사와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전 생애에 걸쳐 나폴레옹과 묘한 연결고리를 가졌던 베토벤, 대숙청 당시의 러시아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쇼스타코비치 등 위대한 작곡가들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격랑의 시대 속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을 통해 독자들은 재미있고도 유익하게 클래식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수 세기를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살아 숨 쉬는 명곡들, 그 악보 너머 탄생의 순간 속으로 저자를 따라 들어간다. 이 책은 음악 역사 논픽션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부터 베토벤, 슈베르트, 베를리오즈, 차이콥스키, 드보르자크, 말러, 쇼스타코비치까지 위대한 작곡가들의 교향곡 이야기가 국경과 대륙을 넘나들며 이어진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라이벌 관계나 베토벤의 관을 멘 슈베르트처럼 작곡가들 간의 흥미로운 교집합을 따라가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어느새 클래식의 큰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시험을 위해 암기해야 했던 딱딱한 정보와는 달리,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설과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자료를 통해 누구나 부담 없이 재미있게 클래식 배경 지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엄선된 10곡은 모두 과감한 형식 또는 예술성으로 당대 음악계를 뒤흔들고, 음악사의 흐름을 바꾸었으며, 지금까지도 대작으로 손꼽히는 불후의 명곡이다. 고전파 교향곡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모차르트의 〈주피터〉, 교향곡의 규모를 비약적으로 확대한 베토벤의 〈영웅〉, 낭만파 교향곡의 막을 열고 표제음악을 개척한 베를리오즈의 〈환상〉, 유럽 음악과 미국 음악의 만남을 상징하는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등은 클래식의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이 10곡의 또 다른 공통적인 특징은 곡이 갖는 느낌을 표현하거나 작곡 당시에 반영되었던 상념, 정경, 이야기 등을 나타내는 '특별한 이름'이 붙어 있다는 점이다. 이 이름들은 숫자와 약어로 이루어진 복잡한 분류체계에 비해 기억하기 쉽고, 이미지를 연상시켜 곡 이해에 도움을 준다. 특히 클래식 음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첫 시작을 위한 곡으로 제격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책에는 수록된 곡과 작곡가들을 순서대로 열거해 본다. 곡에 대한 제목은 저자가 붙인 것이다. 모차르트-〈주피터〉「교향곡의 최고신」, 베토벤-〈영웅〉「영웅이 된 교향곡」, 〈운명〉「운명이 문을 두드리면서 시작되는 교향곡」, 〈전원〉「전원의 분위기와 정경이 느껴지는 교향곡」, 슈베르트-〈미완성〉「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명곡이 된 교향곡」, 베를리오즈-〈환상〉「사랑의 열병 속에 탄생한 교향곡」, 차이콥스키-〈비창〉「조용히 끝나는 교향곡」, 드로르자크-〈신세계〉「대서양을 건넌 교향곡」, 말러-〈거인〉「모습을 바꾸고 이름을 바꾼 교향곡」, 쇼스타코비치-〈혁명〉「대숙청에서 탄생한 교향곡」 등 8명 10곡이다. 

저자는 첫 장인 모차르트를 프리랜서 음악가로서의 '개척자'라고 설명한다. "모차르트가 살았던 18세기 후반에는 대부분의 음악가가 왕이나 귀족의 궁정악단에 소속되어 있거나 가극장 또는 교회에 속해 있었다. 프리랜서 음악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모차르트는 개척자 같은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프리랜서가 된 모차르트의 수입원은 음악 가정교사, 가극장에서 의뢰받은 오페라의 작곡, 공개 연주회, 악보 출판 원고료(당시에는 인세라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았다) 등이었다. 때마침 그 무렵은 시민 계급이 대두되고,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음악 분야에서도 상업화의 조짐이 나타나며 막 시장이 형성되려던 참이었다. 시대의 변화와 천재가 만나 상승효과가 나타난 것이다.(p.19)



베토벤의 교향곡은 이 책에 세 곡이 올랐다. 베토벤은 모차르트가 한참 줏가가 높을 때 "제자로 삼아 달라"며 천재 소년들이 찾아오던 무렵 그 소년들 중의 한 명이어서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날도 한 소년이 모차르트를 찾아와 별 기대도 않고 소년의 연주를 들었다. 상당한 실력이었으나 소년에게 "그 정도 실력으론 안 돼"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년은 "그러면 즉흥 연주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해, 모차르트는 간단한 주제를 적어서 건넸다. 모차르트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소년이 계속 연주를 이어가자, 모차르트는 조용히 방을 나와 옆방에 있던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아이는 보통이 아니야. 언젠가 세계적으로 꼭 유명해질 거라고. 베토벤이라고 하던데, 이름을 잘 기억해 둬." 

모차르트의 말을 듣지는 못했지만 어린 베토벤은 연주 실력도 뛰어났다는 이야기다. 그가 나중에 ‘다다다 단~’으로 유명한 〈운명〉 교향곡 작곡가다. 그가 〈영웅〉을 썼다가 '보나파트르'라고 제목을 붙인 교향곡 제3번의 표지를 찢은 일은 유명한 에피소드가 이 책에 나온다. 1804년 5월, 나폴레옹은 원로원 결의에 따라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는 국왕이 되길 원하지 않았다. 촌스럽다고 느낀 것이다. 국왕의 개념은 이미 혁명으로 부정되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과거의 칭호인 황제를 택했다. 나폴레옹은 세세한 곳까지 신경을 썼다. 자신이 민중에 의해 선택된 황제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국민 투표를 실시했고 찬성이 357만 2329표, 반대가 불과 2579표로 '국민의 권리로 세운 세습황제'라는 전대미문의 지위에 올랐다.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소식을 들은 베토벤이 격노하며 '보나파르트'라고 적힌 표지를 찢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작곡가 자신을 위한 음악, 음악으로 작곡가의 사상과 신조를 표현한다는 전대미문의 혁명은 모차르트로부터 막연하게 시작되어 베토벤에 이르러 달성되었다. 이를 통해 음악가는 장인 또는 귀족이나 교회, 극장의 사용인이라는 신분에서 예술가의 신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영웅〉은 이러한 예술 혁명의 영웅이었다. (중략) 베토벤은 모차르트의 시도를 간파하고 교향곡에 표제를 도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표제가 있는 교향곡’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영웅〉에서 잠재되어 있던 표제는 〈전원〉에 와서 실체화된다. 하지만 그전에 한 곡 더 표제가 있는 듯 없는 듯 애매모호한 문제작이 탄생한다. 바로 〈운명〉이다."(p.100~101)



이 책에 실린 10편의 교향곡에 대한 스토리는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부분적으로는 잘못 전달된 것을 바로잡은 것도 있고, 또 알려진 것들 중에서도 축소되거나 과소평가된 것들을 정확하게 전달한 것도 많다. 예술은 자체가 가진 개방성과 무목적성으로 모든 인간에게 열려 있다. 그러나 간혹 정치 권력에 의해 목적성을 가지기도 하고, 폐쇄적인 곳에서 외부에 대한 과대 선전용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의 마지막 화(話)에 등장하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5번 〈혁명〉이 한 사례다. 1937년 러시아 혁명 20주년 기념을 축하하는 소비에트 음악제에서 초연됐다. 11월 21일,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음악제 프로그램 후반부의 날이다. 명문 레닌그라드 필하모니를 지휘하는 젊은 예술가는 프라빈스키였다. 당시 프라빈스키는 서른네 살로, 훗날 세계적인 거장으로 주목받는다. 이 젊은 지휘자에게 명예로운 초연 기회가 들어온 것은 연장자인 지휘자들이 쇼스타코비치의 곡에 위협을 느끼고 피했기 때문이라니 쇼스타코비치의 곡들이 '반혁명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던 까닭이다. 소비에트가 낳은 빛나는 천재 음악가로 추앙받던 쇼스타코비치는 한 해 전인 1936년 소비에트 공산당으로부터 비판의 집중포화를 받고 실각했던 것이다. 이에 기사회생을 노리고 작곡했던 곡이 제5번이다. 

1934년 12월 1일 스탈린 후계자로 점쳐지고 있던 키로프가 레닌그라드 광장에서 암살됐다. 현장에서 체포된 암살범은 그의 아내와 키로프가 불륜을 저질러서 죽였다고 자백했다. 겉으로 드러난 살해 동기는 삼각관계의 갈등이었지만 의문점이 가득한 사건이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측근의 암살로 정권의 위기를 감지한 스탈린은 사건의 배후 관계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범인은 사건의 발생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12월 29일 총살당했고, 레닌그라드의 당 관계자 약 5,000명이 체포되어 수용소로 보내졌다. 대대적인 수사 진행 결과, 스탈린 정권을 파멸시키려고 하는 음모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이 당시 스탈린 정권이 발표한 사건의 개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키로프의 인기를 질투한 스탈린이 암살을 명령하고 입을 막기 위해 범인인 니콜라에프를 총살했다는 설도 있다고 저자는 기록하고 있다. 이 암살사건을 구실로 스탈린의 대숙정이 시작됐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우연으로 보기에 마땅찮은 점이 분명 있다. 소비에트는 밀고와 도청으로 치안이 유지되는 음습한 사회가 되어 갔다.



소비에트 혁명 20주년 기념 음악제는 스탈린 정권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기념 음악제가 된 셈이다. 실각 후 생계를 위해 영화 음악을 작곡하던 쇼스타코비치에게는 지위 회복의 기회가 된 것이다. 제4번은 전위적이고 혁신적이었지만 스탈린 정권하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전위적인 작품은 비판받았다. 쇼스타코비치는 대숙청으로 음악가로서의 생명뿐만 아니라 목숨 자체가 위험했다. 늘 위협을 느끼며 살아야 했다. 쇼스타코비치는 세월이 지난 후 "한밤중에 발걸음 소리가 가까이 들리면 공포가 절정에 달했다."고 회상했다. 체포당할 경우 운이 좋으면 수용소행이지만 운이 나쁘면 사형이었던 시대였다. 그런 공포 속에서 1937년 4월에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제5번에 착수한 것이다. 

교향곡 제5번 제1악장은 짓눌리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첫머리의 '다다ㅡ안, 다다ㅡ안'이라는 강렬한 울림은 베토벤의 제5번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도 베토벤의 제5번과 마찬가지로 '고뇌에서 승리의 환희로'라는 이야기를 느끼게 만드는 곡이다. 제2악장이 스케르초, 제3악장이 완서악장인 것은 베토벤의 제5번과 반대다. 제4악장은 행진곡풍으로 혁명 투쟁과 같은 이미지다. 싸움은 격렬해지고 승리하나 싶었다가 와해되더니 마지막에는 결국 승리한다. '제1악장에서 러시아 인민은 황제의 압정에 고통스러워하며 고뇌하고 제4악장에서 드디어 혁명의 승리로 해방된다.'라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알기 쉬운 음악을 작곡한 쇼스타코비치는 복권되었다.


저자 : 나카가와 유스케(中川右介)


1960년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제2문학부를 졸업했다. 출판사 IPC 편집장을 지낸 뒤 1993년 출판사 알파베타를 설립해 2014년까지 대표이사 및 편집장을 지냈다. <카메라 저널>, <클래식 저널>을 창간했으며 독일, 미국 등 출판사와 제휴해 예술가들의 평전과 사진집 등을 출간했다. 문학, 음악, 영화, 만화 등 예술 전반에 조예가 깊어 2007년부터 지금까지 관련 저술 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다. 주요 저서로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클래식 50》, 《예술 개념어 사전》, 《클래식 음악, 뭔데 이렇게 쉬워?》, 《에도가와 란포와 요코미조 세이시》 등이 있다.


역자 : 이은정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으며, 일본어 교사 양성과정(문부성 승인)을 수료했다. 현재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 기획 및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연봉 2천만 원부터 시작하는 저축 습관』, 『중요한 것만 남기고 버려라』, 『인간실격』, 『마음』, 『하루 한 번 호오포노포노』, 『봄·여름·가을·겨울 이렇게 멋진 날들』,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가득』, 『서른 살, 만남에 미쳐라』, 『오늘도 집에서 즐거운 하루』, 『말은 필요없어』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일본어 첫걸음』,『흑백 일러스트 테크닉』『쉽게 배우는 옷 주름 그리기 마스터』『만년필로 그림 그리기』『쉽게 배우는 귀여운 동물 드로잉』『클립 스튜디오로 제작하는 동물귀 캐릭터 일러스트 테크닉』『만화 쉽게그리기 : 캐릭터 손&발』『만화 쉽게 그리기 : 배경마스터 1』『가장 친절한 수채화 교과서』『쉽게 배우는 만화 캐릭터 감정표현』『뚝딱 스케치』『맛있는 수채 일러스트』『가장 친절한 데생 인물 소묘』『핵심을 콕콕 찍어주는 미소녀 캐릭터 쉽게 그리기』『재봉틀로 쉽게 만드는 원피스 스타일 북』『재봉틀로 쉽게 만드는 블라우스 스커트 팬츠 스타일 북』『미소녀 그리기』『그날 그때 그 순간의 기록 수첩 스케치』『인물 기본데생』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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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얄롭 지음, 김지선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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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과 함께 발전한 SNS(Social Network Service)의 다양한 방법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대중 문화 프레임을 바꿀 정도로 부상했다. SNS는 이미 전 세계인들이 실시간으로 의사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인터넷 발전에 힘입어 개발된 SNS가 이젠 인터넷을 통한 인류 번영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개인과 개인의 소통을 목적으로 발전해온 SNS는 이제 약칭으로 더 많이 불리는 월드와이드웹 기반의 서비스이다. SNS는 21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사회적·학문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등장한 서비스의 수가 많은 만큼 서비스의 특징 또한 다양하여 이것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로 인해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정의하고 있을 정도로 SNS는 발전 초기다.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얼마만큼 진화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위키토피아〉는 2012년 SNS를 "관심이나 활동을 공유하는 사람들 사이의 교호적 관계망이나 교호적 관계를 구축해 주고 보여 주는 온라인 서비스 또는 플랫폼"으로 정의한 바 있다.

보다 이론적인 관점에서는 보이드와 엘리슨(Boyd & Ellison)가 2008년 정의한 "개인들로 하여금 ① 특정 시스템 내에 자신의 신상 정보를 공개 또는 준공개적으로 구축하게 하고, ② 그들이 연계를 맺고 있는 다른 이용자들의 목록을 제시해 주며, 나아가 ③ 이런 다른 이용자들이 맺고 있는 연계망의 리스트, 그리고 그 시스템 내의 다른 사람들이 맺고 있는 연계망의 리스트를 둘러볼 수 있게 해주는 웹 기반의 서비스"이다. 어떤 관점을 따르냐에 따라 정의는 각기 달라지지만, 정의들에서 공통으로 지적되는 요소는 웹 사이트라는 온라인 공간, 대인 관계의 형성 및 유지, 관계망의 구조, 관계망의 파도, 정보의 교류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SNS는 웹 사이트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공통의 관심이나 활동을 지향하는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일정한 시간 이상 공개적으로 또는 비공개적으로 자신의 신상 정보를 드러내고 정보 교환을 수행함으로써 대인관계망을 형성토록 해 주는 웹 기반의 온라인 서비스로 정의될 수 있다.



SNS 이외에 소셜 미디어, 소셜 소프트웨어, 마이크로블로그 등 다양한 용어들이 혼용되고 있지만, 마케팅 기원을 가지고 있는 소셜 미디어나 기술적 측면이 강조되는 소셜 소프트웨어 등에 비해 SNS라는 용어가 보다 중립적이고 포괄적인 것 같다. SNS 발전은 디지털 시대에 '영향력 있는 사람"이란 뜻의 '인플루언서(Influencer)'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인플루언서는 대중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개인을 말한다. ‘영향을 주다’는 뜻의 영어단어 ‘influence’에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을 붙인 단어이다.

인스타그램·유튜브·트위터 등 SNS에서 수십만 명의 구독자(팔로워)를 보유한 SNS 유명인 혹은 유튜버, 영향력이 큰 블로그(blog)를 운영하는 파워블로거 등이 이에 속한다.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이들을 활용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는 마케팅 방법이다. 보통 사용 후기 등을 올리는 식으로 기업이 원하는 정보를 전달해 홍보 효과를 내는 정도이지만 향후 발전 방향에 따라 세계를 이끌 리더로 부상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인플루언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따라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는 의미에서 디지털 시대의 새 직업으로 떠오른 상태다. 사실 사회적·경제적 의미로 국한되어 있지만 정치 등 전문 분야에서의 활동도 자신이 원한다면 지속할 수 있기에 인류 삶의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이해된다. 

"인플루언서들은 현재 우리가 놓인 순간의 상징이자 우리가 앞으로 향할 곳의 조짐"으로 풀이될 정도의 형국이다. 이 책 『인플루언서 탐구』는 오늘날 온라인 생태계를 지배하게 된 인플루언서의 모든 것을 설득력 있게 분석하기 위해 쓰였다. 저자 올리비아 얄롭은 "개인의 일상과 정보가 업로드되고, 소셜 미디어 스타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좋아요’와 구독자 수를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콘텐츠를 양산하는 인플루언서의 시대에 꼭 알아야 할 것들을 풍부한 사례와 유명 인플루언서 및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심도 있게 탐구"하고 있다. 이 책은 인플루언서는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고, 그들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그 성공 가능성과 인플루언서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플루언서 세계의 핵심을 짚고 그 미래를 전망한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는 개인적인 정보를 기꺼이 공유한다. 뜬금없는 생각과 사소한 행위부터 출산, 입양, 결혼, 죽음, 프러포즈, 휴가, 그리고 미용, 육아, 가족생활 등을 낱낱이 보여주는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다. 이러한 온라인상의 공유는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고도로 수익성 높은 산업이 되어, 가장 인기 있는 이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수백만 명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온라인상의 유명인, 즉 인플루언서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일정 분량의 영상을 만들어 온라인에 매일 업로드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샅샅이 파헤치고, 자기 삶의 주요 행사를 방송하고,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숨 가쁜 몸짓으로 보이지 않는 이들을 사적인 순간에 초대한다. 어느덧 온라인에 자신을 공유하는 것은 제2의 천성이 되었고, 참여와 자기 최적화의 논리는 우리 삶에 구석구석 침투하기 시작했다.

SNS 가운데 하나인 '인스타그램'은 전 세계적으로 매달 10억 명 이상의 활동적인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8분의 1이고, 매일 1억 개 이상의 포스트가 그 플랫폼에 올라간다는 것. 지난 2018년에는 370만 개 이상의 스폰서십 포스트가 올라갔고, 이 수치는 2020년 600만에 도달했다고 저자는 밝힌다. 여러 곳의 연구는 전 세계에 5,000만 명 이상의 인플루언서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전업 인플루언서는 약 200만 명, 그 나머지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 활동하는 아마추어로 파악하고 있다.

저자는 인플루언서 업계에서, 이른바 '소셜 미디어 혁명'이라고 불리는 현상에 대한 반응으로 생겨난 디지털 에이전시 수백 개 중 하나에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소셜 미디어 공간을 지배하는 인플루언서라는 존재를 깊이 있고 폭넓게 분석한다. 열 살도 되지 않은 형제가 공동 유튜브 채널에서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10대 엄마가 자신의 출산 과정을 브이로그로 기록하고, 대학생을 사칭해 온라인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채널을 키우기 위해 괴상한 행위를 일삼고, 정치적 폭동 사건 현장을 찾아가 생중계하는 등과 같은 사례를 통해 인플루언서의 면면을 책을 통해 밝힌다. 저자 올리비아 얄롭은 디지털 미디어의 변화를 실감하면서 이 책을 통해 인플루언서의 세계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려는 취지로 집필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8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100만 팔로워 정책〉, 2장 〈‘인플루언서’ 인자〉, 3장 〈극도로 온라인인〉, 4장 〈하이프 하우스, #이상적관계, 그리고 키드플루언서들〉, 5장 〈크리에이터 경제학〉, 6장 〈차 엎지르기〉, 7장 〈플랫폼 대 사람〉, 8장 〈로그오프〉 등이다. 인플루언서가 무엇인지부터 왜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 하는지, 인터넷 문화가 어떻게 거대한 인플루언서 산업으로 진화했는지, 그리고 그 끝은 어디일지까지일까. 저자는 인플루언서를 더욱 가까이서 지켜보며 밀착 취재하기 위해 10대 인플루언서 훈련 캠프, 유명 인플루언서들을 위한 파티와 시상식, 온라인 콘텐츠용 사진 촬영 현장을 찾아가는 등 종횡무진 누비는 한편 저자 자신도 직접 인플루언서 실험을 감행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에서 온라인 생태계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인플루언서로 성장할 수 있는지를 기술한다. 이에 따르면 먼저 조회 수와 시청자 수가 치솟아야 한다. 그러면 브랜드와의 협찬 계약과 에이전트가 달라붙기 시작하고, 콘텐츠 업로드 주기는 갈수록 더 큰 압박을 받게 된다. 또한 파벌이 형성되고, 경쟁이 과열되고, 불매운동의 위협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러한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 100만 이상의 구독자를 달성하면 수많은 팬 계정, 현장 뒤에서 일하는 팀, 그리고 자기 이름을 단 상품 라인 여럿을 거느린 미디어 제국이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된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인플루언서의 수익 창출은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말하고, 구체적으로 수입액도 밝힌다. 인스타그램의 최고 인플루언서인 카일리 제너(Kylie Jenner)는 포스트당 약 120만 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포브스〉는 2019년 최고 10위까지의 게이밍 스트리머가 도합 2억7,000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총 1억2,100만 달러를 벌었다고 보도했다. 2019년, 음모이론 블로거인 셰인 도슨(Shane Dawson)과 과시적인 뷰티 구루인 제프리 스타(Jeffree Star)가 손을 잡고 아이섀도 팔레트를 공동으로 출시하여 쇼피파이 서버를 다운시키고 즉시 매진으로 불과 몇 초 만에 3,5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사실도 이 책에 적혀 있다. 특히 ‘키드플루언서’인 라이언 카지(Ryan Kaji)는 텍사스에서 활동하며 다채로운 색색의 장난감을 언박싱하는 발랄한 영상으로 조회 수 450억 회 이상을 달성한 어린아이인데, 2020년에 광고 수익으로 2,950만 달러를, 자신의 상품 라인으로는 2억 달러를 벌어들여 유튜브 소득 순위의 정상을 차지했다고 강조한다.



SNS를 자주 이용하지 않은 독자로서는 믿기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저자의 설명을 듣다 보면 SNS가 급격하게 부상한 이유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처럼 온라인상에서 인플루언서가 창출하는 수익과 활동 범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까지 바꿔놓고 있다. 그 핵심은 구독과 조회 수라고 저자는 말한다. 스스로 자신을 상품화하고, 더 많은 구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도덕관념까지 기꺼이 집어던져버리는 행태는 인플루언서라는 성공 지표의 어두운 그림자다. 현재로서는 인플루언서 공간을 향한 관심이 전례 없는 성공 사례에만 쏠려 있다. 핵심 선수, 우수 성과자, 새로 등장한 10대 백만장자, 판매 기록 경신, 그리고 인터넷을 폭발시키는 바이럴들···. 하지만 인플루언서는 그저 꼭대기의 숫자가 아니다. 기사 제목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성공적인 콘텐츠로 꾸준히 자리를 지키는 크리에이터 계급이 상당수 존재한다고 책은 덧붙이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생활양식과 정체성을 소득원으로 삼는 전업 크리에이터다. 그리고 인플루언서를 보조하는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전체 골조가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 마케터나 법률가, 매니지먼트, 홍보 담당, 창작자, 편집자, 전략가, 조수를 비롯해 대체로 레이더에 잡히지 않게 활동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인플루언서’라는 용어는 남용되고 오해받고 클릭 낚시용 유행어로 전락하면서 여러모로 그 의미를 잃었다. 그 말은 자신을 넘어 더 넓은 기표가 되었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현대인의 신경증, 불만, 영감 등을 나타내는 언어이자 특정한 유형의 사람이나 철학, 그리고 문화적 순간에 대한 지시어가 된 것이다. 많은 점에서 ‘인플루언서’라는 용어는 거꾸로다. 인플루언서가 오히려 영향을 받는 쪽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어떤 개인의 통제력도 전혀 미치지 못하는 힘들의 산물로서 말이다. SNS가 급격히 부상하고 또 역사도 얼마 되지 않아 부작용도 많다는 점도 지적한다. 인플루언서의 과도한 정보 공유에 대한 비판은 흔히 개인의 구체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곤 하지만, 포스팅할 권리는 갈수록 광범위하게 기대되는 듯하다. 특히 온라인 콘텐츠를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이 계속해서 혁신되고 강화되면서 말이다. 우리 삶과 정체성의 모든 측면을 상업화하는 경쟁에서, 인플루언서는 나머지 우리보다 그저 한 발 앞서 있을 뿐이다는 저자의 지적이다.



저자는 인플루언서의 세계는 어떻게 작동하고, 또 재구축되고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인플루언싱'은 누구나, 모두가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 잠재력과 가능성이 인플루언서 산업의 핵심 유인이다. 성공의 비결은 언뜻 스마트폰 버튼 몇 개를 누르는 게 전부인 것 같다. 하지만 저자가 직접 인플루언서의 꿈을 실현하려고 노력해본 결과로 남은 건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겨우 한 줌 더 늘어난 팔로워, 그리고 성공이라는 것의 엄청난 복잡성과 상황에 대한 모호한 개념뿐이었다고 주의를 당부한다. 주의 깊게 계산된 전략과 오랜 시간에 걸친 최적화는 이 모든 노력의 결과를 예측 불가하게 만드는,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변덕과 균형을 이룬다고도 귀띔하기도 한다. 명확해지는 것은 인플루언스라는 상업적 기계의 요구사항이 갈수록 늘어나기만 한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조차 자리를 지키려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단 뛰어들기는 쉽지만 성취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말이다. 이는 SNS는 개인이 무한의 개인과 무한의 경쟁적 구도기 때문으로 독자는 이해된다. 일단 직업적 크리에이터로 성공하고 나면 인플루언서에 대한 요구는 오로지 증가하기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정치인이나 유명 인사와 달리 인플루언서들은 고도로 내밀한 순간을 전략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프로필을 구축해왔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화려해 보이는 인플루언서의 빛나는 조명 뒤에는 비방과 인플루언서 가십이 따라붙고 인신공격과도 뒤엉킨다. 안티팬덤, 비판, 혐오, 악플 등과 같은 뜻하지 않은 상황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인플루언싱은 수익성 높은 부문으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에서 2016년 사이 ‘인플루언서’에 대한 구글 검색량은 다섯 배로 치솟았다. 전통적인 미디어가 종말을 고하고 우리 스스로 온라인 존재가 되어가는 현실에서 저자의 지적은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소셜 미디어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방위적인 변화를 감지하고 추적하고 분석하면서 그 위험성 또한 적지 않음을 다각도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입버릇처럼 ‘좋아요’와 구독 버튼을 눌러달라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의 간곡한 부탁을 매일같이 받고 있다. 낯선 이들과의 소통, 콘텐츠 제작에 대한 압박감, 바이럴 경쟁, 그리고 플랫폼과의 역학 관계 등에서 빚어지는 문제들 또한 이 책을 통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것들이다.



정치가들이 인플루언서가 된 것을 넘어, 그들이 존재하는 플랫폼은 이제 엄청난 영향력을 축적해 그 자체로 핵심적인 정치 참여자가 되었다. 그들의 데이터 뱅크, 정보 흐름에 미치는 영향력, 그리고 전 지구의 수백만 시민이 이용하는 공적 인프라스트럭처로서의 역할은 페이스북, 틱톡, 유튜브, 그리고 트위터를 심지어 가장 노련한 정치적 인플루언서들조차 맞서 싸워야 하는 권력으로 만든다.(p.329)


"인플루언서 문화는 어쩌면 사멸하는 게 아니라 어느 한편에서 빼앗은 기회를 다른 이들에게 넘겨주는 유동의 시기를 겪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위기에서 발생한 혼란은 인플루언서 시스템을 포함한 인터넷 전체를 휘감아, 그 위계질서를 파괴하고 그것이 의존한 기존 패턴을 해체했다. 친구, 가족, 팔로워, 정치가, 공인, 직장 동료, 그리고 내 뉴스피드를 채우고 한밤중에 열이 오른 내 머릿속을 빙빙 도는 크리에이터와 함께 난 무슨 일이 일어난대도 놀랍지 않은 탄력적인 시대에 들어섰다. 비록 인플루언스 종말의 시대는 아니라 해도, 내가 아는 형태의 인플루언스는 종말을 맞을 터였다."(p.389)


저자 : 올리비아 얄롭(Olivia Yallop)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전통적인 광고업계를 거쳐 소셜 미디어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전략가 겸 크리에이티브이자 트렌드 분석가로 일했다. 나이키, 아디다스, 디즈니, 에스티 로더 및 컨버스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전략 수립에 관여했으며 런던 패션 칼리지, 콘데나스트 칼리지 등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할 때 가장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역자 : 김지선


서강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위대하고 찬란한 고대 로마』, 『품위 있고 매혹적인 고대 이집트』, 『대담하고 역동적인 바이킹』, 『기사도와 테러리즘』, 『런웨이 위의 자본주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북유럽 문화사』와 『살인자의 사랑법』, 『애프터 쉬즈 곤』, 『출구는 없다』, 『폴른: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등 다양한 서스펜스 소설과 더불어 『엠마』, 『오만과 편견』 등의 고전소설을 한국어로 옮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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