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푸 2 초판본 THE HOUSE AT POOH CORNER classic edition 2
앨런 알렉산더 밀른 지음,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 그림, 박성혜 옮김 / FIKA(피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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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푸』는 1926년 출간된 후 누적 판매 7천만 부를 기록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의 명성을 함께 얻었다. 1권 출간 후 1928년 2권이 출간됐으며 ‘100년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은 책’으로 꼽힌다. ‘월트 디즈니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인 〈곰돌이 푸〉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인 『곰돌이 푸2 초판본(THE HOUSE AT POOH CORNER)』은 1권인 『곰돌이 푸 초판본(WINNIE-THE-POOH)』에서 만났던 귀엽고 엉뚱한 곰돌이 푸와 친구들의 후속 이야기다.

이 책에서 곰돌이 푸와 피글렛, 이요르, 아울, 래빗 그리고 크리스토퍼 로빈은 100에이커 숲에서 어우러져 즐겁게 지낸다. 2권은 우당탕탕 좌충우돌하는 그들의 일상에 새로운 친구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콩콩 뛰기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 친구의 이름은 ‘티거’다. 티거는 처음 만난 숲속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신나는 일상을 함께 만들어 간다. 소소하게 벌어지는 사건들과 다채로운 모험을 헤쳐 나가며 곰돌이 푸와 친구들은 여전히 함께라서 매일매일 새롭고 즐겁다.

『곰돌이 푸』의 마지막 이야기를 담은 2권에는 크리스토퍼 로빈과 곰돌이 푸의 마지막 인사가 담겼다. 모두 다른 모습을 가졌지만 성숙하게 만나고 이별하는 이들을 보면 우정과 연대, 화해와 양보,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울림과 메시지가 담겨 있는 이 책은 아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동화이기도 하다.

출판사 피카 클래식 에디션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곰돌이 푸2 초판본(THE HOUSE AT POOH CORNER)』는 1928년에 출간된 『THE HOUSE AT POOH CORNER』의 복원판으로, 초판본의 판형, 편집, 디자인 그대로 제작되었다. 출판사 측은 본문과 표지를 동일하게 디자인한 것은 물론이고, 본문은 재생 용지로 질감을 살렸고, 고급스러운 양장 표지에 금박 인쇄, 커버는 100년 전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크라프트지를 썼다고 밝힌다. 뿐만 아니라 원서가 아니면 보기 힘들었던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의 삽화도 한 컷도 빠짐없이 고해상도로 담아 소장 가치를 더욱 높였다. 오래전 수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고, 삶과 가치관을 변화시켰던 그때 그 책을 선물처럼 다시 만나보는 일은 어릴 때 추억과 함께 아름답고 순수한 동화의 세계로 돌아가는 기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



노랗고 오동통한 몸집에 빨간 티셔츠, 엉뚱하고 천진난만한 얼굴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친구가 바로 ‘곰돌이 푸’다. 독자는 개인적으로 월트 디즈니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1977년 이후 80년 들어서야 처음 만났지만 곰돌이 푸는 이미 1926년 '어린이의 천국'이라는 미국에서 첫선을 보였다.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초판본이 표지, 삽화를 그대로 번역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원작을 보기 전에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시장에서 먼저 선을 보인 곰돌이 푸는 우리에게 여전히 쾌활하고 감동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히 곰돌이 푸는 2권으로 이야기가 끝나기 때문에 초판본 모습 그대로 번역 출간한 것은 의미가 깊다. 소장용 판본이라는 자부심에 걸맞게 책의 모습이 오래되고 귀한 책이라는 느낌이 손에 들어올 때부터 물씬 풍긴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1926년 저자 앨런 알렉산더 밀른(Alan Alexander Milne)은 아들 로빈이 가장 좋아하던 곰 인형과 다른 동물 인형들을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아 『곰돌이 푸 초판본(WINNIE-THE-POOH)』를 집필했다. 출간되자마자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출간되었고, 이후 월트 디즈니가 만화 영화 〈곰돌이 푸〉로 제작하면서 전 세계 아이들에게 더욱 큰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100년이 다 된 지금까지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다. 

1권에서는 100에이커(1에이커는 1,2240평)에 달하는 숲에서 어우러져 지내는 곰돌이 푸와 피글렛, 이요르, 아울, 래빗 그리고 크리스토퍼 로빈이 등장해 즐거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이번 출간된 2권에서는 우당탕탕 좌충우돌하는 그들의 일상에 새로운 친구가 찾아온다. 콩콩 뛰기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 친구의 이름은 ‘티거’다. 티거는 처음 만난 숲속의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신나는 일상을 함께 만들어 간다. 낯선 친구와도 편견 없이 친구가 되고, 이해하며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에서 연대와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The World of Pooh 곰돌이 푸 1~2 초판본 스페셜 박스 세트』에 들어 있는 두 권의 책은 읽고 소장하는 것은 물론, 선물하기에도 적절하게 디자인됐다. 어른에게는 추억을 선물하고 아이들에게는 영원한 동심을 주는 책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독자가 과문한 탓이겠지만 책의 서문(序文)이란 단어는 많이 보아왔지만 반문(反文)이란 말은 처음이다. 이 책 『곰돌이 푸2 초판본(THE HOUSE AT POOH CORNER)』은 반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자 말른은 "서문은 본래 책 속 등장인물을 소개하는 글입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로빈과 친구들은 벌써 여러분에게 소개한 적이 있으니(1권), 이만 글을 마칠까 합니다."며 너스레로 말문을 연다. "그 대신에 반대되는 글을 쓰겠습니다. 푸에게 서문의 반대말이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무엇의 무엇' 하고 되물었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도움이 되지 않았죠. 하지만 다행히 아울이 침착하게 나서서 설명햇어요. '내 친구 푸, 서문의 반대말은 반문이란다'라고 말이죠."(p.4) 

반문을 쓰는 이유는 지난주에 크리스토퍼 로빈이 저자에게 말한 내용을 상기시킨다. "푸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들려준다고 하셨던 바로 그 이야기 말인데요···." 저자는 순간 재빠르게 "9 곱하기 107은 뭘까?"라는 문제를 냈다. 이 문제가 끝난 다음에는, 소들이 1분에 두 마리씩 문을 통과해서 나가고 지금 들판에는 소 300마리가 있다면 한 시간 반 뒤에는 과연 몇 마리가 들판에 남아 있을까 하는 문제를 냈다고 슬쩍 미소를 띤다. 문제를 풀다 보니 참 재밌었다는 말도 잊지 않고서···. 그렇게 실컷 즐기다가 어느새 우리는 몸을 웅크리고 잠들었다고 적고 있다.

베개 바로 옆 의자에 앉아 있던 푸는 좀 더 오래 잠들지 않고 있었다. 혼자 아무것도 안 하는 일에 관한 대닺ㄴ한 생각을 떠올려보고 있었던 것. 그러다 푸도 곧 눈이 감기고 고개가 끄덕끄덕하더니 우리를 뒤따라서 살금살금 숲속으로 들어왔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독자는 여전히 모르고 있지만 그곳 숲속은 여전히 마법 같은 모험으로 가득했고 예전에 들려준 이야기보다도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책은 10개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이야기가 독립된 이야기가 아니라 모두 연결된 상황의 연속이라는 점에서 굳이 장(章)으로 나누지 않고 '이야기'(에피소드)의 연결을 저자가 선택한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모두 10개의 이야기의 제목만을 적어도 어쩌면 숲속에서 푸와 친구들, 그리고 크리스토퍼 로빈의 생활이고 일상의 모습이다. 「추운 이요르를 위해 푸 모퉁이에 지은 집」 「숲을 찾아온 티거에게 아침밥 먹이기」 「하마터면 히파럼프와 마주칠 뻔한 순간」 「나무 위에 고립된 티거와 루 구출 작전」 「크리스토퍼 로빈은 아침마다 뭘 하는 걸까?」 「푸가 만든 게임으로 다 함께 놀기」 「티거가 콩콩 뛰지 않으려면」 「피글렛이 아주 대단한 일을 해내다」 「새로운 집이 필요한 아울을 위해!」 「크리스토퍼 로빈과 푸, 마법의 공간으로 향하다」 등은 숲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대략 눈앞에 떠오를 정도로 구체적이다. 이 책에서 독자가 감명 깊게 읽은 부분이 곰돌이 푸가 말하는 것은 거의 시에 가깝다는 점이다. 시나 노래 가사처럼 말한다. 굉장히 멋들어진 표현이 아니라 그냥 일상적인 언어인데 적은 수의 단어 몇 개를 이어 말하면 그것이 노래 가사가 되고 곧 시가 된다. 그러나 곰돌이 푸는 사실 말을 잘하지도 않고 글도 잘 쓰는 것이 책에 표현되지 않는다. 말을 잘하지 못한 탓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표현하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 몇 개를 띄엄띄엄 이어붙인다. 


"그날 곰돌이 푸는 별달리 할 일이 없었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푸는 피글렛의 집에 가기로 마음먹었어. 피글렛이 무얼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지. 밖을 나서자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어. 푸는 벽난로 앞에 앉아 발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을 피글렛의 모습을 상상하며 하얗게 눈 내린 숲길을 걸어갔어. 그런데 피글렛의 집에 도착한 푸는 깜짝 놀랐어. 문이 열려 있었거든. 또 집 안쪽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피글렛은 없었어.'

대답이 없자 푸는 피글렛이 밖에 나갔다고 실망하며 중얼거린다. "그게 맞지. 지금 집에 없으니까. 그런 나 혼자 생각에 잠겨 빠르게 걷기를 해야 하네. 아, 이런!" 중얼거리는 동안 갑자기 푸의 머릿속에 노래가 하나 떠오른다. 


펑펑 눈이 와, 티들리 팜.

오고 또 오고, 티들리 팜.

오고 또 와도, 티들리 팜.

자꾸 

눈이 와.


아무도 모를걸, 티들리 팜.

내 발가락이 얼마나

꽁꽁 얼었는지, 티들리 팜.

내 발가락이 얼마나 

꽁꽁 얼었는지, 티들리 팜.

지금도

얼어붙는 중.


푸는 최고로 멋지게 누래를 불렀다. 다 부르고 난 뒤에는 피글렛의 반응을 기다린다. 눈 오는 날 야외에서 부르기 좋은 노래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말해주길 기대했단다. 피글렛은 노래 가사를 곰곰이 되짚어 보더니 진지하게 말한다.

"푸, 발가락보다는 귀가 더 꽁꽁 얼어."



밝고 자신 있게 표현하는 말들은 문장으로 보기에는 어딘지 어눌한 느낌이지만 이내 이들이 동화 같은 마법의 세계에 산다고 생각하니 궁금증은 일시에 풀린다. 순수하고 순박한 이들의 마음은 어떤 말이든 시적이고, 맑고 순수하다는 사실을 정작 독자 개인으로서는 이해하지 못한 채 책을 읽어나갔던 것이다.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어린이들의 세계와 그들만의 대화법은 어른이 애써 짜내는 시보다도, 심지어 지능이 높은 어른보다도 더 잘 통하는 명문장이고 시요, 노래 가사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단순하고 짧은 언어만으로도 잘 통하고 마음의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동심의 세계를 어른의 눈으로 보면 그들과의 대화는 물론 의미와 의사 전달도 어렵다. 천진난만한 표현, 그것이 말하는 자와 듣는 자와의 의사 전달이 원활하다면 그것보다 시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하는 자각심이 비로소 독자에게 생긴다. 이 사실이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하려는 동심의 세계가 아닌가 싶다. 이런 동심은 이 동화를 읽는 어린이들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괜히 좀 안다고 그들의 짧은 언어를 이해하려 들다가는 그들이 전하는 의미와는 영원히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들과의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면 푸가 하는 말이나 다른 친구들이 하는 말의 억양과 장단만 들어도, 혹은 몸짓과 표정만 보아도 의사 전달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니 그들의 맑고 고운 언어는 그 자체로 시가 된다는 생각에 확신이 서기 시작한다. 저자는 어린이들은 물론 이 책을 읽는 어른들의 마음속까지 이들의 맑음과 순수함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을 것이란 추정도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닐 거란 생각마저 든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어른의 시각으로 읽으면서 궁금했던 이들의 놀이와 마음이 진실과 가장 가까울 것이란 느낌도 덤으로 얻을 수 있어 읽을수록 즐거워진다. 



「나무 위에 고립된 티거와 루 구출 작전」이란 네 번째 이야기에서 독자의 느낌은 현실이 된다. 햇볕이 기분 좋게 따뜻한 아침. 징검다리 세 번째 돌도 오래 햇볕을 받아 아주 따뜻하다. 푸는 혼자 시냇물 한복판에 앉아 아침 시간을 마저 즐겨야겠다고 마음먹은 참이다. 문득 래빗이 생각난다. 

"나는 래빗이랑 이야기하는 게 좋아. 래빗은 쓸모 있는 이야기를 하거든. 아울처럼 길고 어려운 단어는 안 써. 짧고 쉬운 단어를 쓰지. '점심 먹을래?'라늗니 '맘껏 먹어, 푸'라고 말해. 아무래도 나 래빗을 보러 가야겠다."

이때 푸의 머릿속에 또 다른 노래 한 소절이 떠오른다.

오, 난 래빗의 말투를 좋아해.

그래, 그렇지.

최고로 기분 좋은 말투야.

우리 둘한테는 그래.

맘껏 먹으라는 래빗의 말,

혹시 입버릇이 되려나 싶지만

그래도 상냥한 입버릇 같아.

푸한테는 그래.(p.73)



이 책의 마지막 장면은 감동 그 자체다. 크리스토퍼 로빈과 곰돌이 푸가 이 장면을 연출해 낸다.

"푸, 너 언제까지나 날 잊지 않는다고 약속해. 내가 100살이 되어도 말이야."

푸는 잠시 생각했어.

"그때 나는 몇 살이지?"

"99살."

푸는 고개를 끄덕였다.(p.245)


저자 : 앨런 알렉산더 밀른(Alan Alexander Milne)


188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H. G. 웰즈에게 가르침을 받아 큰 영향을 받았으며, 공립학교 웨스트민스터 및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칼리지를 졸업했다. 학생 시절부터 학내 잡지에 시나 수필을 투고했으며, 대학 시절 유머 잡지 [펀치]의 편집 조수가 되었고 이후 작가로 독립하였다. 몇 년 후에는 [펀치] 편집부의 일원이 되어 해 학적인 시와 기발한 평론들을 쓰기도 했다. 1913년에 도로시 다핀 드 셀린코트와 결혼한 후, 그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이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로 널리 알려졌으며, 이 시기에 인생의 밝은 면을 묘사한 희극을 많이 썼다. 대표 작품으로 『핌씨 지나가시다』, 『블레이즈의 진실』, 『도버 가도』 등이 있다. 1922년에는 유일한 장편 추리소설인 『붉은 저택의 비밀』을 집필했다. 이후 『위니 더 푸』, 『푸 모퉁이에 있는 집』을 집필했으며, 이 두 작품은 가장 인기 있는 작품으로 지금까지 널리 읽히고 있다. 그 이후로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1956년 74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림 : 어니스트 하워드 쉐퍼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곰돌이 푸』를 그린 삽화가로, 1879년 런던 출생이다. 평생 어른과 어린이를 위해 많은 책에 삽화를 그렸으며, 대표작으로는 『곰돌이 푸』,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이 있다.


역자 : 박성혜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와 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편집기획자로 일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출판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수영하는 여자들』, 『안녕은 단정하게』, 『관계의 미술사』 등이 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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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 시집 - 윤동주의 시를 일본 교과서에 수록한 국민 시인, 개정판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윤수현 옮김 / 스타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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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시를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윤동주는 안다. 우리나라 시인들 이름은 많이 알지 못하지만 윤동주는 안다. 일제 강점기 시대 '순수 청년' 윤동주는 일본에 유학 가 시를 쓰고 문학을 했지만 시집 한 권 내지 못한 채 이국 땅에서 스러져갔다. 다행히 그가 남긴 많지 않은 시들은 일제 강점기를 헤쳐 나온 시인들의 힘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윤동주는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서시〉 등을 남겨 우리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 시인이다. 


가슴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 〈별 헤는 밤〉 중에서 


함께 나란히 유학 길에 오른 동향의 죽마고우 송몽규는 더욱 독립운동에 매진하지만, 절망적 순간에도 시를 쓰며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던 윤동주의 가슴속 말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그가 남긴 시는 일제의 폭압을 견뎌내며 결국 우리들 곁으로 돌아왔다. 원고더미 속에 그대로 잠자고 있다가 해방 후 그의 형처럼 뒤를 돌봐주던 〈향수〉의 시인 정지용에 의해 첫 시집이 출간됐다. 위의 내용이 우리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윤동주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았던 일본의 여성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에 의해 시인 윤동주와 그의 시가 4편이나 일본 교과서에 실렸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이고, 충격적이다. 시인 윤동주가 왜 일본 교과서에 실렸을까? 의아하고 궁금하다. 이 책 『이바라기 노리코 시집』의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는 우리나라와 많은 인연이 있는 일본의 여성 시인이다. 그는 한글과 한국, 그리고 윤동주를 사랑한 일본의 '국민 여류시인'이라고 한다. 국내 시인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시인이지만, 이바라기 노리코에 대해 몰랐단 점은 독자가 시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셈이다. 부끄럽지만 그의 시집을 읽고서 그나마 알게 되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는 특별한 인사말을 남기고 2006년 타계했다. “그 사람이 떠났구나” 하고 한순간, 단지 한순간 생각해 주셨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오랫동안 당신께서 베풀어 주신 따뜻한 교제는 보이지 않는 보석처럼, 나의 가슴속을 채워서 빛을 발하고, 나의 인생을 얼마만큼 풍부하게 해 주셨는지…. 깊은 감사와 함께 이별의 인사말을 드립니다. 고마웠습니다. 2006년 3월 길일." 시인은 이 인사말을 생전에 써 두었음을 밝히고, 세상을 떠나게 됨을 알리고 있다. '연, 월, 일'을 빈칸으로 남기며 병명(자주막하출혈)과 당부말을 함께 남겼다. "내 의지로, 장례·영결식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이 집에는 제가 살지 않으니 조위품이나 꽃 같은 것들을 보내지 말아주세요. 반송 못하는 무례를 더하게 됩니다."란 짧은 글이지만 독자에게는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이토록 시를 사랑한 사람이였나 싶다. 마치 시처럼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다.

그가 윤동주와 한글을 사랑했다는 사실은 그의 문학적 행적에서 드러나지만 그의 시에서도 "충분히 그럴 것 같다"는 인식을 주기도 한다.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 독자는 제국주의의 일본이 국민들에게 남긴 것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음을 독자는 발견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이런 엉터리 없는 일이 있느냐고

블라우스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중략)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어질어질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마구 즐겼다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중에서


1945년 일본이 패전했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의 나이는 열아홉 살이었다고 한다. 출판사 측에 따르면 그 이듬해 그녀는 지금의 토호대학인 제국여자약전 약학부를 졸업했다. 말이 대학이지, 여학생들은 전쟁에 동원되어 해군 약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이른바 ‘군국주의 정신대 소녀’나 다름없었다.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동인지 《카이》를 창간하고, 1955년에 출간한 첫 시집 『대화』에 수록한 시에서부터 넘치는 상상력을 보여 주었다.

이바라키 노리코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시인이 32살 때에 20대 초기를 회상하며 쓴 시로서 일본의 국정교과서에도 실렸다. 온 거리가 대공습으로 와르르 무너진 건물 안에서 천정을 보았을 때 “파란 하늘 같은 것”이 보였다는 증언으로 시작하는 이 시에는 죽어가는 사람들, 전쟁에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남자들이 등장한다. 이 전쟁을 그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단정 짓는다. 남자도 흉내 내기 힘든 대담한 표현이다. “비굴한 도시를 으스대며 쏘다녔다”는 표현처럼 그녀는 자유롭게 활보한다. 뒤늦게라도 청춘을 즐기고 싶다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시인은 역경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노래로 이 시를 승화시키고 있다.



민윤기 서울시인협회 회장(시인)은 추천사를 통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시 한 편을 통해 1억 일본인들을 패전국 상처에서 구해 히망의 길로 인도했다"고 전제하고 《요미우리신문》이 극찬한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 속에는 식민 지배 시절 조선의 아픔과 연민이 담겨 있는 시가 많다."고 말한다. 또 노리코는 윤동주의 사진을 우연히 접하고 맑고 청아한 모습에 반해 그의 시를 읽게 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평생 한국과 교류했다고 밝힌다. 

시인 민윤기는 시집 뒷 부분 「부록 2」에 "한국인들을 볼 때마다 곧고 맑은 결정처럼 단단하고 굳센 사람들이라고 느낄 때가 많은데, 모국어를 향한 마음이 그 중심적인 핵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는 이바라기 노리코가 생전에 한글날을 맞이하여 기고한 글 일부를 소개한다. 10월 9일 한글날 《월간시》는 10월호 프런트 스토리로 그의 '한글 사랑' 이야기를 실었다고 전한다. 

「부록 2」에 따르면 이바라기 노리코는 2006년 세상을 떠나기 전 생전에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일본 시는 희로애락 가운데 노(怒)가 없다. 그러나 한국시에는 그 노가 있다.", "일본에는 서정시인만 있다. 시인의 사회적 영향력도 한국에 비해 미약하다."는 말이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서정시인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그런 문학 풍토나 문단의 행위를 비판하는 대표적 시로 평가받는다. 이 시뿐만 아니라 이바라기 노리코가 발표한 많은 시는 역사적인 어둠과 비극적 현장을 생생하고 분명하게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조선의 수많은 사람들이 대지진의 도쿄에서 왜 죄 없이 살해되었는가?"(〈장 폴 사르트르에게〉)라며 1923년 9월 1일에 발생한 관동대지진의 당시의 조선인 학살을 증언한 시도 발표했다. 이 시는 "잘 안 되는 것은 모두 저놈들 탓이다"라며 일제 강점기 시절 유대인 못지않은 박해를 받다 온 한국인이 당한 아픔을 어느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인식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표현 속에도 패배주의적인 비장감은 없다. 오히려 낙관적이다. 밝다. 바로 이런 점 덕분에 전쟁의 풍경을 숨 막히는 비극적 어둠으로 표현하는 다른 시인들과 달리, 이바라기 노리코는 이 한 편의 시만으로도 전후시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열었다는 평을 얻었다. 



「부록 1」에는 이바라기 노리코가 윤동주 시인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직접 읽고 느낄 수 있도록 일본 교과서에 실린 그녀의 수필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 전문을 번역해 실었다. 이 수필에서 이바라기 노리코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는 〈서시〉를 소개한다. "이 시는 20대의 젊은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청결한 시풍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사람이 오래 살다보면 많은 일을 겪게 되며넛 이처럼 영혼까지 맑아지는 시를 쓰기는 어려워진다. 젊은 나이에 죽은 시인에게는 젊음이나 순결을 그대로 간직한 맑고 깨끗함이 후대의 모든 독자들까지 매료시켜 언제나 수선화 같은 상큼한 향기를 풍기게 한다. 윤동주는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고 하지만 사고나 지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 그는 1945년, 일본이 패망하기 6개월 전인 2월 16일 만 스물일곱의 나이에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하고 말았다."(p.104)

이바라기 노리코는 이 수필에서 윤동주는 죽을 때 한국어로 크게 외친 후 숨을 거두었다고 밝힌다. 그녀가 직접 찾아다니며 밝힌 윤동주의 옥사 행적이다. 간수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큰 목소리로 외치다가 절명했다는 증언을 남겼다. 이에 더불어 노리코는 "부연하자면 윤동주는 분명히 일본 검찰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이러한 배경을 알지 못한다면 이 시인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동주의 사인은 일본인 스스로 그 전모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는 노리코의 주장은 1984년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완역 출간한 이부키 고의 노력을 전한다. 이부키 고는 윤동주의 배경을 알기 위해 그가 유학했던 도쿄, 교토, 시모가모 경찰서, 후쿠오카 형무소 등 그 발자취를 거슬러 올라가며 80대가 된 전직 특별 고등 형사와도 만나는 등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윤동주의 옥사에 대한 진상을 끝내 밝혀낼 수 없었다고 시집에 적어놓았다는 사실도 전해준다. 그러나 노리코는 언젠가는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찾아 옥사의 전모가 한 점 의혹도 없이 소상하게 밝혀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고 고백한다.



이 시집에는 시 35편이 4장(章)에 나뉘어 실려 있다. 4개의 장의 제목은 〈1. 네 감수성 정도는〉, 〈2. 내가 가장 예뻤을 때〉, 〈3. 처음 가는 마을〉, 〈4. 식탁에 커피 향 흐르고〉 등이다. 각 장의 표제어는 시의 제목이 그대로 쓰였으며, 다나카 가즈오는 「후기를 대신하여」를 통해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의 마음을 읽다』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는데, 멍청하게도 거기에 이바라기 노리코 자신의 시가 없다는 것을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야말로, '자신의 생각을 깊게, (중략) 우물을 파듯 파 내려가면 지하에 흐르는 공통의 수맥에 닿듯이 진체에 통하는 보편성에 도달한다'(『시의 마음을 읽다』에서 인용)는 시인 것입니다. 저는 어느 날엔가 제 손으로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집을 편찬하며 이 『시의 마음을 읽다』에 필적할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꿈꾸게 되었습니다."고 썼다. 이는 노리코 시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극찬한 것으로 독자에게는 읽힌다.


저자 : 이바라기 노리코(いばらぎ のりこ,茨木 のり子, 본명 미우라 노리코)


일본 현대시의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되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유명한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1926~2006)는 전후(戰後)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이다. 이바라기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시인이기도 하다. 한국어를 직접 배웠을 뿐 아니라 동시대 한국 시인들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하였고, 시와 수필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기도 하였다. 윤동주의 시와 생애에 대해 쓴 수필은 일본에서 잔잔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이바라기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많은 한국인들을 알게 되었고, 한국을 수차례 방문하면서 한국 문화를 몸소 체험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집필한 수필집 『한글로의 여행』(1986)은 한국 문화 입문서로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역자 : 윤수현


독학으로 일본어를 공부하여 통번역의 길로 접어들었다. 기업에서 다년간의 실무 경험을 거쳐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한일통번역과를 졸업했다. 윤동주100년포럼에 참여하여 『장 콕토 시집』『폴 발레리 시집』을 우리말로 옮겼으며,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전문 통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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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 아프고 힘들었던 나를 찾아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시간여행
권은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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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생애가 역사적 사건이나 전쟁, 재앙 등 큰 사변으로 인하여 불행할 경우 우리는 '기구한 운명' 또는 '파란만장한' 삶이라고 표현한다. 또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장애로 힘든 삶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사람도 '흙수저'란 신조어로 결코 행복한 삶을 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회이다. 이들의 삶은 실제 대부분 어렵고 어둡다. 행복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아니 어쩌면 인간의 행복이 앞서 언급한 모두와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극복되지 않은 어려움은 생각보다 많다. 현대 사회가 복잡해지고 빠르게 변화하기에 더욱 그렇다. 이 책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의 저자 권은겸은 10대 시절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청각장애가 생기고 이후 여러 번의 삶을 뒤흔들 정도의 큰 사기와 병, 이혼이라는 시련을 겪고도 다시 한번 삶을 향해 긍정의 발걸음을 내딛는 저자 자신을 향한, 그리고 독자를 향한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담이다.

책의 분류상 자기계발서이지만 저자의 자서전적 역경 극복 과정이 담겨 있다. 저자는 10살이 지날 무렵 어떤 이유인지 모르는 청각장애로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부정적인 사고체계를 가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서도 행복한 생활을 보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40대가 되면서 큰돈을 잃는 일이 계기가 되어 마음공부를 접하게 되지만,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는지 마음공부를 하면서 치유하는 계기가 된 한편,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일이 10년 동안 벌어지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실패한 삶이라도 스스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은 나이나 스펙 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저자는 확신을 갖게 됐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결심이다. 이 책은 저자의 강인하고도 유연한 마음이 삶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응원과 위로가 될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한 번뿐인 삶을 포기하지 말자!」란 제목의 〈프롤로그〉를 통해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과 오빠로부터 이유없는 폭행을 당하는 일, 알 수 없는 이유로 청각장애가 된 일,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자랐다고 밝히면서, 부정적인 사고체계를 갖게 되는 원인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부정적 사고는 결혼 후 아이를 낳아도 개선되지 않아 이혼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하고 있다. 더욱이 큰돈을 사기 당해 더 이상 삶의 의지와 희망이 꺾이면서 '마음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후 10년 동안 마음 공부를 하면서 스스로를 치유하는 동안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일도 함께 겪었다고 언급한다. 이 책을 쓰면서도 엄청난 두려움에 사로잡혀 몇 번이고 중단할 위기도 겪었다고 시사한다. 그러나 완전히 밑바닥에서 두려움을 마주하면 어떤 의지나 혹은 독기가 생기는 것일까. "죽을 때까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 책을 쓴다는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마지막 순간을 후회로 보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부정적으로 극한의 상황까지 가게 되면 평소에 생각이 많지 않은 사람이라도 깊은 생각에 잠길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해서 사건이 벌어졌다기보다는 그 사건으로 인해 스스로 그런 생각을 했다고 믿는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우리는 먼저 침착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삶은 생각하는 대로 지나간다. 자신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긍정적인 생각으로 저자는 누구나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쯤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이 행복과 불행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가 소중한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 각자에게는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있고, 누구라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이왕이면 즐겁고 행복한 꿈을 꾸자. 우리는 그럴 자격이 충분히 있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다.



이 책은 모두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우리는 삶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2장 〈장애는 나를 알게 하는 축복이었다〉, 3장 〈혼자 아픈 사람은 없다〉, 4장 〈다 잃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5장 〈우연히 성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등이다. 1장에서 저자는 '삶과 꿈'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저자가 살아오면서 느낀 가장 큰 아포리즘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삶에 대한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꿈을 꿀 때는 정말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있는 인생이 될 거라는 희망에 찬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삶도 굴곡이 있는 것 같다. 운이 좋아서 술술 풀릴 때는 한없이 올라갈 것 같아도 운이 나쁘면 낙하산 타고 내려오듯 말이다."(p.13~14)

이 대목에서 저자의 5년 전을 되돌아본다. 10년 근무한 회사를 퇴직하면서 친구 5명과 안면도로 여행을 갔다. 밤새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는 각자 열심히 살면서 10년 후에 성공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고 결의했다. 저자는 제일 자신만만하게 큰소리로 외쳤다. "좋았어! 우리 꼭 지금보다 성공한 모습으로 만나자." 그때는 무슨 배짱이 있었는지 삶이 탄탄대로일 것이라고 자부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돈 잘 벌어다 주는 든든한 남편이 있었고, 노후에 대한 대비책도 어느 정도 해놨기에 그랬던 것 같다고 저자는 되새긴다. 하지만 현재의 저자는 '전 재산 다 날린 이혼녀'가 되어버렸다. 어디서부터 삶이 어떻게 꼬인 건지 저자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4명의 친구들 중에는 계속 승승장구 하는 친구도 있고, 좋은 사람 만나 재혼해서 신혼 같은 삶을 사는 친구도 있고, 식당을 개업해서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싱글벙글하는 친구도 있다고 한다. 그 친구들은 아직 저자의 상황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이 출판될 경우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책에 따르면 저자는 스스로의 삶을 진지하게 되돌아보게 되었다. 분명 마음 어딘가에 꿈을 무너뜨린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힘들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엄마인 것 같다. 저자 자신도 그랬다고 털어놓는다. 너무 무서운 나머지 두려움이 엄습해와서 온 세상이 캄캄했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장님이 된 것 같았다.



저자는 1장에서 '생각하는 삶'을 강조하고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란 말을 인용하면서, 이 격언은 저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고 고백한다. 오랜 생각 끝에 평소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저자는 평소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을 구분해 가능한 한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이는 어떤 자기계발서를 읽어봐도 변화의 시작은 '좋은 생각'이다. 저자 권은겸의 생각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많은 생각 끝에 좋은 생각은 좋은 추억도 도움이 된다.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사람, 친근하고 공감을 많이 표시했던 사람과의 추억은 즐겁고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가족과의 삶에 대한 생각은 대부분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다. '감사'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튀어나올 수 있는 곳이 가족이다. 

"그동안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변했다. 건강한 마음과 몸이 있는 것이 감사했고, 따뜻한 집에서 생활하는 공간도 감사했고,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이 있는 것이 감사했다. 그리고 집에 오면 반갑게 맞아주는 반려견이 있어 감사했다. 아침마다 눈을 힐링하게 해주는 식물이 있어 감사했고, 따뜻한 햇볕과 포근한 달빛의 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는 마음이 감사했다. 무엇보다 내면의 영혼을 일깨워주고 영감을 얻어 글을 쓸 때 너무 감사했다.(p.52)

저자가 프롤로그에 쓴 말 "진리란 나를 깨우고 나의 가치를 알리고 그 가치를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의 일을 하는 것이다." 책을 쓰면서 저자는 많은 심경의 변화를 느꼈다고 강조한다.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불평과 불안은 행복과 감사로 바뀌었다. 무엇보다 스스로가 굉장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신의 축복 같은 선물이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1장을 끝내면서 저자는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다」 항목에서 "우리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달란트가 있다고 한다. 다만 그 달란트를 찾아 계발해서 더 크게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찾는 정도로만 끝나는 사람이 있고, 찾지도 않고 그대로 묻혀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 삶은 딱 한 번뿐이다. 한 번뿐인 삶에 주어진 달란트를 찾아 개발해서 더 크게 쓰는 사람이 될 때, 진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p.58)



3장은 이 장의 마지막 항목 「장애는 나를 알게 하는 축복이었다」는 제목이 그대로 장(章)이 되었다. 저자는 10살이 지나면서 서서히 진행된 청각장애를 갖게 됐다는 말은 앞서 언급한 바대로이다. 저자는 우연히 우편함에 들어 있던 〈소원을 성취한 사람들〉이라는 책자를 통해 귀가 안 들리는 어느 보살이 부처님께 '용맹 기도'를 해서 나았다는 체험사례를 읽고 그 길로 절을 찾아 봉사 신도 역할을 5년 이상 했지만 거기서도 신도들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저자가 책에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아서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절에서 나왔지만 경기도의 한 불교 선원을 알게 돼 그곳에서 7년 간 다니면서 마음 공부를 하게 됐다고 한다. 

'안 좋은 추억은 있어도 안 좋은 경험은 없다'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렇게 열심히 다녔고 수양을 한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신처럼 떠받들었던 스님이 신도들한테 돈을 빌려 주식 투자를 하다가 퇴출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저자의 7년의 마음 공부를 헛되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되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저자는 이 경험에 대해 이젠 이렇게 말한다. 

"이런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진짜 신의 사랑을 몰랐을 것이고, 내가 장애로 태어난 이유도 모른 채 이번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내가 장애로 세상에 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장애가 있는 나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부터가 삶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안다. 장애는 나를 알게 하는 신의 사랑 가득한 축복이라는 것을 말한다.(p.109) 

저자가 책에서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저자의 생각은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닮았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역설의 철학자'라고 불리우는 쇼펜하우어는 "세상은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하며, 인간의 행복은 그 고통과 불행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 있지, 행복으로 충만한 파라다이스는 현실이 아닌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쇼펜하우어에게는 염세주의자, 허무주의자, 비관주의자, 아웃사이더 등의 부정적인 꼬리표가 늘 붙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인생을 사랑했고 인간을 사랑했으며, 치열하게 인생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철학자였다. 단지 그는 현실주의자이자 실존주의자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이를 냉철하게 표현했을 뿐이라는 게 쇼펜하우어 철학을 연구하는 후세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책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의 저자 권은겸은 "사람이 행복하기만 하면 그 행복은 결코 행복인지 모를 것이다. 왜냐면 불행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행을 겪어본 사람만이 진정한 행복이 어떤 건지 알 뿐만 아니라 그 행복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p.149)고 말한다. 이는 "너무 행복하면 행복한 것을 모른다. 그것이 권태로 이어지고 고통으로 전이된다. 이 세상 어디에나 고통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고, 행복이 있는 곳에 고통이 있다"는 쇼펜하우어의 세상 인식이 같다는 점에서 보는 독자의 생각이다. 


저자 : 권은겸


나는 희망과 감동을 주는 사랑 가득한 작가다. 자기계발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 글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그동안 삶이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내로라하는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었지만, 내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장애까지 있는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은 좋은 스펙과 주변의 좋은 환경이 받쳐줄 때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은 스펙을 원하니 말이다. 하지만 아니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진정한 자기계발이란, 나를 알아가는 것부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계발서를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닌, 나의 오래된 관념을 바꾸는 것이 자기계발이다. 지금 삶이 힘든 사람들에게 이 글의 의미를 찾아주고 싶어서 책을 쓰게 되었다. 위로와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 나는 희망과 감동을 주는 사랑 가득한 작가 권은겸이다.

Instagram : @kwon.writer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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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 - 걷기전도사 신정일이 만난 쇼펜하우어 인생처세 이야기
신정일 지음 / 다차원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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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철학자는 아마도 쇼펜하우어인 것 같다. 대형 서점에 가면 그에 관한, 이런 저런 책이 늘 놓여 있다. 독자는 개인적인 이유로 쇼펜하우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가 다시 부상된 이유에는 관심이 갔다. 독자는 고등학교 다닐 때 세계사 수업 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에 쇼펜하우어를 싫어했다. 당시 세계사 선생님은 독일의 근대 역사 부분에서 수업 시간에 독일의 철학자들 몇 명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니체와 쇼펜하우어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 있다. 선생님은 "독일의 철학은 음악이나 문학 등과 함께 독일인이 세계문화에 기여한 것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전제하고, 니체는 '독설'로, 쇼펜하우어는 '역설'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냈다는 말이 잠깐 독자의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를 염세주의자·비관론자 등으로 표현하면서 "그의 염세주의적 사상은 수많은 독일 청년들을 '자살'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고등학생 시절이라 선생님의 말은 모두 정설로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90살이 넘도록 살았다"는 비난 섞인 어투로 말을 맺었다. 사실 충격이었다. 그때는 "Boys, be ambious!(청년이여, 야망을 가져라)"가 한창 유행어처럼 회자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이 독일 철학자는 자살을 유도하는 학문을 한 것으로 독자는 오해한 것이다. 어렵기도 했지만 매우 잘못된 학문이고 학자라고 생각했다. 

이후로 독자는 니체의 책은 여러 권 읽었다. 니체가 쓴 책은 아니지만 그와 그의 철학을 해석해서 나름대로 접근한 저자들의 책도 여러 권 접했다. 초인과 독설 등은 모두 공통되게 다루고 있어서 뭔 말인지 정확히 몰라도 겉멋으로 읽기도 했다. 그래도 이 책 저 책, 한 철학자에 대한 책을 읽어 어느 정도 그의 철학이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의 책이나 그에 관한 책은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독자는 그에 대해 어쩌면 싫증을 넘어 염증을 느끼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던 것이 요즘에 와서 부쩍 쇼펜하우어에 관한 책이 많이 출판되면서 적잖게 놀랐다. 왜 쇼펜하우어가 이 시대에 부상됐을까? 



이 책 『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가 눈에 띄었고, 출판사 소개글에는 저자가 신정일이라고 소개돼 있어서 쇼펜하우어를 소개하는 국내 학자의 책임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특히 저자 신정일은 '걷기 전도사'라고 불리워질 만큼 우리 국토 걷기를 일상처럼 하신 분이다. 소개글에 따르면 쇼펜하우어에게는 염세주의자, 허무주의자, 비관주의자, 아웃사이더 등의 부정적인 꼬리표가 늘 붙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인생을 사랑했고 인간을 사랑했으며, 치열하게 인생의 본질을 찾고자 했던 철학자였다. 단지 그는 현실주의자이자 실존주의자로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이를 냉철하게 가감 없이 이야기했을 뿐이다. 

이상의 소개글은 쇼펜하우어를 다시 생각하고, 그의 철학에 접근해 볼 의욕을 불러 일으켰다. 의욕의 바탕에는 얼마 전 읽었던 '쇼펜하우어의 아포리즘'을 주제로 한 책이었다. 즉 쇼펜하우어의 저서 중에서 아포리즘을 추려내 해석하고, 깊은 뜻을 편자의 생각으로 풀이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독자의 쇼펜하우어에 대한 생각을 일시에 바꾸어주었다. 선택된 아포리즘도 해석이 달린 채 소개한 책에는 쉽고 강렬하게 그의 철학이 독자에게 파고 들었다. 지금까지 쇼펜하우어에 대한 독자의 오해가 매우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가끔씩 다시 읽을 수 있도록 책상의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예사롭지 않고 깊은 사유의 결과임을 생각해 볼 때 후에 니체나 프로이트, 칼 융 등의 철학자와 심리학자, 많은 문학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 공감이 갔다.

그 책은 쇼펜하우어가 세상은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하며, 인간의 행복은 그 고통과 불행을 얼마나 줄이느냐에 달려 있지, 행복으로 충만한 파라다이스는 현실이 아닌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뿐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했던 말 중에서 독자가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게 아니었나?" 생각된다. 



쇼펜하우어의 생애를 에피소드로 생각지 않고 학문적으로 접근해보면 그에게서 배울 것은 수없이 많다는 기존 쇼펜하우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의견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점을 발견하게 해준 책이 바로 이 책 『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다. 독자로서는 쇼펜하우어에 관한 두 번째 책이자 그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 첫 책이기도 하다. 

저자 신정일은 「온전히 아름다운 삶이란 없다」라는 제목의 〈머리말〉을 통해 "인간은 어떻게 살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신의 계획과 인간의 계획이 조화롭게 만나는 장소는 과연 존재하는가?"란 질문으로 말머리를 잡는다. 인간이 동경하는 '유토피아'란 없다는 주장에 무게를 두고 철학자답게 수많은 의문을 쏟아낸다.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원하는 세상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말은 지당하다고 소개한다. "유토피아를 포함하지 않은 세계지도는 볼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늘 상륙할 하나의 장소가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나라에 상륙하면 주위를 살피고 더 좋은 나라를 보고 출항한다. 진보란 유토피아의 실현이다." 독자가 느끼기로는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허구적 실체인 유토피아는 인간의 욕망 안에만 존재한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스스로 질문과 답변을 던진다. "우리가 꿈꾸던 유토피아가 이 지상에서 실현된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고 반론을 편 사람이 바로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저절로 자라고, 비둘기가 구워진 채 날아다니며, 모두가 연인을 찾아 관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유토피아로 인류를 옮겨 놓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사람들은 지루해 하다가 목을 매어 자살하거나, 서로 싸우고 목을 조르고 죽여 지금 자연적으로 그들에게 가해지는 고통보다 더 많은 고통을 스스로 초해할 것이다."(p.7) 자문자답이지만 이 질문·답변에는 쇼펜하우어의 생각과 철학이 모두 담겨 있다. 쇼펜하우어의 사유의 단초에 접근해 본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고통에서 벗어난 인간에게는 지루함이나 권태가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결함을 지닌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욕망덩어리라는 단순한 관찰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욕망을 충족하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충족되면 지루함이나 권태에 빠진다." 쇼펜하우어의 저서 속의 아포리즘들은 철학적 사색의 결과를 함유하고 있다고 저자 신정일은 밝히고 있다. 자신의 쇼펜하우어의 책 속 아포리즘에 대한 사색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그를 해석해 준다. 

"너무 행복하면 행복한 것을 모른다. 그것이 권태로 이어지고 고통으로 전이된다. 이 세상 어디에나 고통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고, 행복이 있는 곳에 고통이 있다. 풍수지리학의 명제에 '온전히 아름다운 땅이란 없다(風水無全美)'란 말이 있다. 이 말을 바꾸어말하면 '온전히 아름다운 사람도 없고, 온전히 아름다운 삶도 없다'는 말이 된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철학 에세이집 『여록과 보유』의 「심리적 소견」 장(章)에 있는 문장으로 유토피아에 관한 사유를 대신한다. "인간의 행복한 상태는 멀리서 보면 무척 아름다운 숲과 같다. 숲에 가까이 다가가 안에 들어가면 아름다움은 사라져버린다. 우리는 조금 전의 그 아름다움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나무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의 입장을 부러워한다." 

저자는 이 책 『길 위에서 만나는 쇼펜하우어』의 〈머리말〉에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의 유명한 대사 "용감한 신세계여, 그곳에도 똑같은 인간들이 살고 있구나.", "유토피아는 설익은 진리일 뿐이다."라고 덧붙이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토피아나 많은 사람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내세, 즉 천국보다 지금, 살아 있는 지금을 잘 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열일곱 살에 니체를 통해 처음 접하고 사숙했던 쇼펜하우어의 '크고 넓은 사상'을 두고 이 책을 썼다. "이 책 역시 머리말 제목처럼 온전하지 않지만, 온전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의 여러 가지 이야기로 읽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신경림 시인의 〈파장〉이란 시에서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라고 했듯이 온전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아름답다면, 온전하지 않은 사람이 많은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 아니겠는가?란 반문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진다.



쇼펜하우어는 명예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행복은 마음의 편안함과 만족에 달려 있는 것이지 명예를 얻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는 다른 사람의 평가에 일희일비하며 오히려 불행해진다. 그는 행복해지려면 명예욕을 낮추라고 한다. 명성 또한 인간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자존심과 허영을 위한 매우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에 불과하며,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가치나 무가치가 결정된다면 인간의 삶은 비참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 명예와 명성은 쇼펜하우어가 행복의 원천으로 꼽은 세 가지 부류, 즉 ‘인간을 이루는 것’, ‘인간이 지닌 것’,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 중 자신이 다른 사람의 눈에 비쳐 평가 받는 ‘인간이 남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에 속한다.(p.192~193)


저자 : 신정일(辛正一)


문화사학자 신정일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의 대표로 현재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을 이끈 선구자다. 40여 년간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현장을 종횡무진으로 걸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걸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도보 여행가이자 현대판 김정호, 현대판 김삿갓, 현대판 이중환, 방외지사 등으로 불리며 역사와 문화 관련 저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이다. 1981년 가을 간첩 혐의를 받아서 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 국토를 걷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발족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으며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에 참가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였던 김개남, 손화중 장군 추모사업회를 조직하여 덕진공원에 추모비를 세우는 데 노력하기도 했다. 한국의 10대 강과 조선시대의 옛길 도보 답사를 기획해 답사 후 책을 펴냈다. 소백산 자락길과 변산 마실길 등을 만드는 데 기여했으며, 서해안과 남해안, 휴전선 길을 걷고 500여 개의 산을 올랐다. 다음 카페 〈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에 지속적으로 글을 올리면서 우리나라 옛길의 재발견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저자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과 산림청 국가 산림문화자산 심의위원을 지내며 대기업과 지자체 등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로 『신정일의 신 택리지』(전 11권)와 『왕릉 가는 길』, 『길을 걷다가 문득 떠오른 것들』, 『나는 그곳에 집을 지어 살고 싶다』 1~2권, 『조선의 천재들이 벌인 참혹한 전쟁』, 『천재 허균』, 『그토록 가지고 싶은 문장들』, 『지옥에서 보낸 7일』, 시집 『꽃의 자술서』 등 107여 권이 있고, JTV 전주방송에서 〈신정일의 천년의 길〉을 오랫동안 진행했다.



니체는 쇼펜하우어 책을 스승으로 삼아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스위스 앵가딘 지방의 실스마리아 호숫가를 거닐다가 자라투스트라가 다가옴을 느꼈다. 니체가 쇼펜하우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그처럼 독특한 철학자가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한순간이나 사건이 인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책을 만나기도 하고, 그리고 어떤 절경을 만나기도 한다. 바로 그 순간이 지나온 어느 세 월에서도 접하지 못한 어떤 영감이나 환희의 불길을 활활 솟구치게 하기도 하고 새로운 돌파구가 되기도 한다. 인연이란 그런 것이다. 인생을 지금껏 살아온 것하고는 아주 다르게, 아니 혁명처럼 작용하게 하는 것이 인연이다. 그래 헤르만 헤세는 “인연을 아는 것은 사고요, 사고를 통해서만 감각이 살아난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나 모든 사물과의 인연은 다 운명적이며 필연적이라는 것을 실감한다.(p.213~214)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유럽의 항구 도시인 단치히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 하인리히 쇼펜하우어와 소설가인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실존 철학은 물론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19세기 서양 철학계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흔히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인간 삶의 비극적 면면을 탐구한 사상가이며, 그의 철학은 근대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788년 단치히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793년 함부르크로 이주해 성장했고, 아버지의 바람에 따라 한동안 상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1805년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학자가 되기 위해 김나지움에 입학했다. 1811년 베를린대학교에 들어가 리히텐슈타인, 피셔, 피히테 등 여러 학자의 강의를 들었고, 1813년 베를린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대하여」를 집필, 우여곡절 끝에 예나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819년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출간한 후 1820년부터 베를린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1839년 현상 논문 「인간 의지의 자유에 대하여」로 왕립 노르웨이 학회로부터 상을 받았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1860년 9월 21일 자주 가던 단골 식당에서 식사 중 폐렴으로 숨진 후 프랑크푸르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 『충족이 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이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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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 - 미국 독립 전쟁부터 걸프전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과학적 사건들
박영욱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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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류 역사상 하루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왔다"는 어느 전쟁사가의 말이 새삼 재인식되는 요즘이다. 지난 20세기엔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전쟁에 참여해 무려 2억 명 가까운 희생자를 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지구상에는 어느 한쪽에서라도 늘 전쟁이 게속되어 왔다. 특히 구 소련이 붕괴되고 처음 맞는 뉴 밀레니엄인 21세기에 들어와서도 4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지구상에서 단 하루도 전쟁이 없었던 날이 있었나 싶다. 2001년 9·11 테러로 촉발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뉴 밀레니엄은 피로 시작돼 왔다. 이어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새 희망으로 가득 찬 2000년 벽두부터 우리에게 들려오는 '전쟁' 뉴스는 아직도 휴전 중인 우리나라에겐 섬찟한 뉴스로 다가온다. 아프리카의 종족 간 전쟁이나 내전 등은 이젠 뉴스거리도 안 된다는 듯 외신마저 거의 다루지 않을 정도로 큰 전쟁으로 점점 도를 높이는 것 같아 불안과 공포심을 자아낸다.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독자의 바람은 독자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전 세계인의 가슴속에는 늘 '전쟁은 이제 그만'이라는 바람을 갖고 매일 매일 삶을 위한 전쟁터로 뛰어든다. 경제는 자유경쟁 시장에서 스스로 발전해 간다는 경제 이론이 무색할 정도로 이젠 경제 문제도 전쟁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 국가간 무역은 어느 한쪽이 손해를 거듭한다면 전쟁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 중이다. 직접적으로 군사력을 동원하고 영토를 침범하지는 않지만 이를 바라보는 세계인들은 걱정과 한숨만 내쉬는 형국이다. 사회나 체육, 심지어 문화까지도 '전쟁'으로 표현되고 있다. 상호 이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제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속에서 세계인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21세기 지구상의 현실이다. 국가는 때로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더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전쟁에 뛰어들어 왔다. 

2년 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발발 때만 하더라도 엄청난 전쟁의 시작이라며 각종 뉴스 매체들은 앞으로 세계 패권국의 양상이 재편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해설까지 내놓으며 요란스러웠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환영하는 입장이어서 적극 지원을 약속하고,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는 핵을 사용해서라도 자신들의 침략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아시아 아프리카나 남미 등 다른 대륙의 세계인들도 직접적인 전쟁 피해는 아니더라도 크든 작든 러-우 전쟁은 일상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하는 마음이었다. 식량과 에너지 공급에 대한 압박 때문이다. 그리고 한마음 한뜻으로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은 빌고 또 원했다. 러-우 전쟁은 지금 벌써 2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고 소모전 양상으로 장기화되어 가는 형국이다.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은 물론 민간인 피해자 숫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10월 세계인이 놀랄 만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전쟁을 일어난 계기는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인데, 전쟁 선언은 이스라엘이 했다. 자신들의 국민 100여명을 인질로 잡아갔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총리가 나서 하마스의 완전 축출을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뒤를 쫓고 있다. 미사일 공습과 불법 침략으로 이스라엘 국민 수백 명이 죽었다는 사실에 분개한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 조직을 뿌리뽑아 평화를 되찾겠다는 선언은 불가피하게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의 참혹한 희생이 뒤따랐다. 가자지구에 살던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희생자가 1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생각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인류는 나라가 형성되고부터 전쟁이라는 이름의 죽고 죽이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옛날 고대국가 등에서 하는 전쟁의 방식이 다르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국가간 전쟁은 군이들끼리 어느 장소에 집결해 정면 대결로 승패를 가렸다. 당연히 희생자는 대부분 병사들이고, 민간인의 희생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가 근대로 들어오면서 과학의 힘을 빌어 엄청난 위력을 가진 각종 무기들이 개발되면서 병사들보다 민간인 희생자가 더 많은 숫자의 희생자를 낸다. 2차 세계대전의 원자폭탄이 좋은 예이다. 폭탄 하나로 수십 만 명이 일시에 희생되는 엄청난 살상력은 인류에게 공멸의 무기로 인식되지만, 여전히 위협은 계속된다. 

이 책 『과학이 바꾼 전쟁의 역사』은 과학이 전쟁과 만나 뜻밖의 거대한 시너지를 만들어 낸 근대 이후의 전쟁에서 출발한다. 자연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과학은 자연의 현상을 관찰하고 증명함으로써 세상을 이롭게 하는 굉장한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나라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랬던 과학이 본격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국가의 과업에 적극 활용되면서부터였다. 국가의 기강이 흔들리고, 외부의 침입에 맞서고, 영역을 넓히는 소용돌이 가운데 굵직한 변혁을 이끌어 낸 건 언제나 과학이었다.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2차 세계대전도 당시 나치의 히틀러가 세계 정복의 꿈을 갖게 된 것도 '과학'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패전국에게 부과되는 전쟁 배상금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너무 높았다. 뼈빠지게 벌어서 전쟁 배상금으로 내야 하니 그걸 감당해내기가 매우 힘들었으리라. 더욱이 전쟁에 지는 바람에 산업 시설은 망가지고 국민들의 의지도 거의 없으니 제대로 경제가 돌아가기가 어려웠으리라.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전승국들은 독일의 전쟁 배상금을 독촉했고, 이는 독일인들에게 수치와 경제적 빈곤을 강요하는 일이기에 그들의 분노가 점점 커졌다. 히틀러는 이를 교묘히 선전선동으로 독일인의 분노를 한데 묶어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갔다. 세계 가장 우수한 종족이라는 '아리아인'의 혈통을 앞세웠다. 걸림돌은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나라 없이 2,000년 이상을 떠돌면서 신앙심과 선민의식으로 유대를 지켜왔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를 살펴보면 유독 과학 쪽의 수상자가 국적은 다르지만 유대계가 압도적이었다. 유대인은 과학적 탁월함뿐만 아니라 경제 금융에 관한 지식도 우월했던 것 같다. 장사도 잘했고 기업도 잘 이끌었다. 어쩌면 나라도 없는 유대 민족이 살아남는 길은 돈을 소유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이 책은 전쟁에서 '과학'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를 분석해낸다. 물론 독일의 과학자만을 대상으로 하진 않는다. 문을 연 과학자는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다. 화약 개량을 위해 화약국장으로 임명된 라부아지에부터 원자를 쪼갤 수 있다는 과학적 발견을 원자폭탄으로 완성시킨 물리학자 오펜하이머까지 이 책 속에 모두 들어 있다. 물론 과학자 한 명만의 힘은 아니다. 또 무기 사용 전에 과학자들은 인류에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 발명하고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평화시와 전쟁 때 과학은 '두 얼굴'을 가진다. 인류의 편리함과 건강, 수명을 위해 사용될 경우 더없이 훌륭한 업적으로 남지만, 전쟁 무기로 사용될 경우는 엄청난 수의 희생자를 가져오게 한다. 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한 비료 원료를 개발해 놓고 독가스에 활용한 화학자 하버,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기관총을 발명한 의사 개틀링, 수소폭탄을 개발한 물리학자 텔러 등 전쟁의 고비마다 결정적 장면을 만들어 낸 과학자들의 업적이다.



 원자폭탄 제조와 사용을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는 7개 부문에서 올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이들의 발견과 발명은 전쟁의 승패를 가르고 세계 패권을 바꿔 놓았다. 과학사를 전공하고 국방 기술을 연구하는 저자 박영옥은 과학이 전쟁과 만나 세계정세를 변화시킨 사건들을 포착해 24가지로 정리하면서 전쟁을 우연히 발생한 사건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과학이 전쟁을 도왔고, 과학 기술을 활용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얻은 나라들은 그 지위를 유지 혹은 탈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과학을 지원해 왔다. 그런 과정에서 무기는 더 강력해지고 전투는 보다 치열해졌으며 필연적으로 인류는 늘 새로운 위기에 봉착했다. 이 점이 두 얼굴을 가진 과학의 야누스적인 측면이다. 

이 책의 표제어가 풍기는 뉘앙스 '전쟁사', '과학사'로 봐선 무겁고 어려운 이야기를 담은 것만은 아니다. 에디슨과 벨 등 익숙한 발명가들이나 듀폰과 포드 등 낯익은 회사들의 이름을 만날 때면 반갑고, 무기 경쟁을 유발해 수익을 챙긴 로비스트 자하로프와 원자폭탄 기술을 한 나라가 독점하는 것을 우려해 스파이가 된 푹스 이야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한 편 한 편 마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듯, 영화를 보듯 뇌리에 새기며 책장을 넘길 수 있다. 특히 이처럼 흥미로운 사건들을 더욱 실감나게 해 주는 건 풍부한 사진 자료들이다. 가능한 한 쉽고 간결하게 풀어낸 글에 이해를 돕는 사진들이 더해져 당시의 풍경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특히 원폭 이야기가 나올 때는 얼마 전 아카데미 상을 휩쓴 〈오펜하이머〉가 눈앞에 선하다. 과학의 발전 과정이 그렇듯 저자는 책 속 사건을 가급적 연대순으로 배치하고자 했지만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 소련 등 세계와 시대를 넘나들다 보니 가지런히 정리하기는 어려웠다고 밝힌다. 이런 부분에 아쉬움을 느낄 독자들을 위해 책 속 주요 사건들을 뒷부분에 연표로 정리해 싣는 저자의 센스 또한 유명 작가로서의 면모다. 왼쪽은 전쟁사, 오른쪽은 과학적 사건들이라 책을 다 읽은 후에 쭉 살펴보며 책 속 내용을 정리해 보기에도 좋고, 미리 관련 내용을 훑은 다음 책을 읽는 것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이 책은 「미국 독립 전쟁부터 걸프전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과학적 사건들」이란 부제를 갖고 있다. 「창조와 파괴의 만남」이라는 제목의 〈들어가는 말(프롤로그)〉를 통해 "폐허가 된 전장에서 인간은 다시 모여 창조의 문명을 지었지만 이 문명은 다시 전쟁으로 파괴됐다"는 '전쟁의 이중성'을 전제하고, "이런 역사 속에서 창조를 담당한 건 자연의 이치에 대한 앎과 깨달음으로 만들어진 과학 지식이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쌓은 과학 지식과 기술이 만나 불행하게도 다시 파괴의 도구가 됐다고 지적한다. 적을 더 효과적이고 철저하게 파괴하거나 막아 내기 위한 전쟁의 무기가 된 점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근대 이전 과학자의 위상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고 한다. 대부분 국가의 지원을 받지도, 국가적 사업에 참여하거나 기여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지동설의 갈릴레이, 근대 물리학의 완성자 아이작 뉴턴도 직업이 모두 따로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개인적 과학 연구자였다는 말이다. 이처럼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던 과학 연구가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일로 받아들여지면서 점차 '전문 직업인'이 됐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라 직업적으로 전문 과학자가 나타난 것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무렵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이 시기는 왕정 체제가 막을 내리고, 시민 혁명과 공화정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변기이자, 근대적인 의미에서 국가의 틀이 확립된 시점과 일치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런 과정에서 정부와 권력자들은 과학자들의 자질과 능력이 국가 경영과 군대를 체계화하고 군사력 강화에 상당히 쓸모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과학자가 본격적으로 전쟁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가 된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 독립 전쟁부터 미·소 냉전시대까지 약 200년간이 과학과 전쟁의 발달 과정을 24장(章)으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과학자- 라부아지에의 화약」 「과학, 정치와 만나다- 왕립 과학 아카데미와 미터법」 「강한 군대를 위한 학교- 나폴레옹이 사랑한 에콜 폴리테크니크」 「프로이센의 반격- 워털루 전투를 향한 빌드업」 「공학의 탄생- 그리보발의 대포」 「크림 전쟁과 1세대 방산 기업- 암스트롱 포 vs. 휘트워스 라이플」 「트라팔가르 해전이 쏘아 올린 근대 해군력의 진화- 나폴레옹 함부터 드레드노트까지」 「군국주의 시대 죽음의 상인- 무기 로비스트, 배질 자하로프」 「1차 세계대전 공포의 살상 무기- 하버의 암모니아」 「총기 대량 생산 시대- 개틀링의 기관총과 휘트니의 조면기」 「우연히 일어나는 전쟁은 없다- 포드의 장갑차」 「빠른 군납을 위해 모든 것을 동일하게- 셀러스의 표준 나사」 「엘리트 군인 만들기- 세이어의 웨스트포인트」 「과학 기술이 돈이 되다- 에디슨의 GE와 벨의 AT&T」 「철보다 강한 섬유를 군수품으로- 듀폰의 나일론」 「전쟁이 키운 학교- MIT의 공학 vs. 칼텍의 기초 과학」 「2차 세계대전, 미국의 시대가 열리다- 버니바 부시의 국방연구위원회」 「원자는 쪼개진다- 상대성 이론과 원자핵분열 실험」 「전쟁을 끝내다- 오펜하이머의 맨해튼 프로젝트」 「뜨거운 전쟁에서 차가운 전쟁으로- 냉전 시대 푹스와 맥마흔법」 「핵이 만든 또 다른 무기- 텔러의 수소폭탄」 「육군 대 해군 대 공군- 리코버의 핵 잠수함」 「우주로 쏘아 올리다- 고더드와 대륙 간 탄도 미사일」 「냉전 그 후, 끝나지 않은 전쟁- 정밀 유도 무기부터 인공지능까지」 등이다. 



책에 따르면 과학 기술은 나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이로 인해 인류는 더 편리해지기도 더 위험해지기도 한다. 과학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는 순전히 인간의 의지에 달렸다. 전쟁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동시에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는 미래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삶에는 정답이 없으니 이미 지나간 역사를 보면서도 어떤 선택이 더 옳았을지 섣불리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제까지나 인류를 위해 더 좋은 방향이 무엇인지 생각해야만 하고, 이 책이 조금이나마 그런 생각들을 환기시킬 수 있다고 독자는 믿는다. 저자는 이 책을 펴낸 후 예스24와의 가진 인터뷰를 통해 차세대 전쟁 양상은 'AI의 시대'라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현재 전쟁 양상을 주도하는 한 단어를 꼽으라면 인공지능입니다. 제 책이 주로 2차 대전과 냉전기까지를 다루고 있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그 내용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인류의 일상과 복지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과 서비스 개념을 동시에 무기와 전장에 적용하고 활용하기 위해 세계 주요국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물론 예외는 아니고요. 무기와 군사력이 궁극적으로는 인류 멸망의 어두운 본질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늘 피아 간의 생존 갈등과 투쟁이 있어 왔고, 현시점에서도 우리 개인과 사회, 국가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하는 데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는 점도 너무나 명백합니다. 사이버 테러나 정보전뿐 아니라 이제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해서 업그레이드해 온 거의 모든 지상, 해상, 공중 무기체계에 인공지능 기술과 방법론이 적용돼 더 치명적이고, 더 강력하고, 더 스마트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절대적으로 무기를 조종하고 사용해 왔던 방식에서부터 인간과 인공지능 무기가 협동하는 방식의 전쟁 개념이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저자 : 박영욱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 학사, 동 대학원에서 유럽과학사와 미국과학기술사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회와 방위사업청에서 국방 정책 입법과 행정 업무를 담당했고, 광운대학교와 동양대학교, 카이스트를 비롯한 여러 대학교에서 국방 과학 기술 정책을 중심으로 강의와 연구 경력을 쌓았다. 현재 우석대학교와 명지대학교 객원교수이자 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반도체 인사이트 센서 전쟁』(공저), 『과학기술, 미래 국방과 만나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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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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