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심리학 개념어 사전
대릴 샤프 지음, 고혜경 옮김 / CRETA(크레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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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융 심리학 개념어 사전』은 카를 구스타프 융이 사용한 용어와 개념어만을 모아 정리한 사전이다. 국내 최초의 사전이라고 한다. 오늘날 대중에 널리 쓰이는 MBTI 모델의 원형이 되는 유형학을 제시한 융이 다루는 핵심 용어를 융 전집에서 직접 발췌한 원문과 함께 소개한다. 무의식, 자아,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 자기(self) 등 융의 주요 개념들을 융이 직접 전하는 목소리로 접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융의 사유와 개념의 맥락을 체감할 수 있다. 

출판사의 소개글에 따르면 지금까지 심리학 전반을 다룬 사전은 있었지만, 융의 개념어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원문과 함께 해설한 작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사전의 형식을 취했지만 단순한 정의에 그치지 않고, 각 개념어는 융이 실제로 사용한 서술과 맥락 속에서 개념을 이해하도록 돕는다고 밝힌다. 이 책은 내면으로 눈을 돌려 자기탐색의 영역을 무의식으로 확장하려는 이들에게, 융이 그린 ‘영혼의 지도’를 펼쳐 보일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융의 실제 서술을 그대로 담고 있어 융 심리학 입문자는 물론 연구자들에게도 신뢰할 만한 자료가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고형, 감정형, 감각형, 직관형 등 유형 이론, 내향형과 외향형이라는 성격의 특성을 설명하는 융의 실제 문장을 확인할 수 있어, MBTI의 뿌리를 이해하려는 일반 독자에게도 지적 흥미를 채워줄 것이는 소감을 말하고 있다.

독자들이 사전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카를 융의 저서와 이론, 생애까지도 두루 살펴볼 이유가 있다. 특히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와의 친소(親疏) 관계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이에 앞서 저자 대릴 샤프의 〈서문〉이 중요할 것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신의 심리학에 대한 체계적인 요약은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30여 년간 융의 아이디어를 수천의 사람들이 설명하고, 탐색하고, 확충해서 다양한 결실을 보았다. 『융 심리학 개념어 사전』은 독자들에게 원출처가 어디인지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책은 융이 사용했던 관련 용어들과 그 개념들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 쓰였다. 융의 『전집』을 중심으로 엄선, 발췌했으며, 다른 저자들에 대한 참고문헌은 없다. 이 사전은 융의 견해를 비판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풍요로운 융의 사고에 대한 지침이자 융의 관심삳르의 광범위한 범위와 상호 관련성에 대한 해설서다."(p.8)


카를 구스타프 융은 스위스 정신과 의사이며,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이다. 일찍이 단어연상 검사 연구로 콤플렉스의 개념을 정립했고, '조발성 치매(정신분열증)'의 심리적 이해와 치료를 처음으로 시도했다. 한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활동에 적극 참여했으나 그의 '성욕 중심설'에 이의를 제기하여 독자적인 학설을 내세워 분석심리학이라 불렀다. 여기에서 집단무의식이론이 나왔는데, 이 개념은 원형이론과 결합되어 종교심리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융의 업적은 오늘날 심리학뿐 아니라 종교와 문학 등 인문 전 분야의 연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4년본 『해외저자사전』에 따르면 1895년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정신과 개원의 중 한 명이었던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연구』를 발표하고 1900년 『꿈의 해석』을 세상에 내놓은 이후 일약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프로이트는 매주 수요일 저녁에 정신분석 사례를 토론하거나, 문학작품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는 모임인 〈수요회〉를 결성했다. 정신과 의사뿐 아니라 루 살로메 등의 문화예술인들까지 참여하면서 수요회는 점점 더 활성화되었다.

어느덧 정신분석은 유럽 전역으로 조금씩 퍼져나가며 중요한 학문이자 치료법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신분석학의 지지자가 되거나 제자가 되었다. 칼 아브라함, 알프레드 아들러, 산도르 페렌치 등이 핵심 멤버였다. 하지만 빈을 중심으로 하는 프로이트의 모임은 유럽 전역을 아우르지 못했고, 대부분의 멤버들이 프로이트와 마찬가지로 유럽의 소수민족인 유대인었다. 이것이 정신분석학 발전의 한계로 작용할 것을 절감한 프로이트는 적극적으로 외연을 넓히고자 했다.

이때 스위스 정신과 의사 카를 구스타프 융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프로이트보다 스무 살 정도 어리고 스위스 출신에, 목사의 아들이며, 무엇보다도 유대인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가장 유명한 정신과 의사 중 한 명인 오이겐 블로일러가 운영하는 〈부르크휠츨리〉라는 명문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융은 1906년 프로이트의 자유연상이론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단어연상검사를 개발하기까지 했다. 예를 들어 ‘구름’이라는 단어를 듣고 떠오르는 단어를 말하는데,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한다. 이때 만일 ‘하늘’이라고 답한다면 자극이 된 ‘구름’을 듣고 대답하기까지의 시간차를 정교하게 측정한다.


너무 빠르거나 늦게 대답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 단어와 무의식적 콤플렉스가 연관이 있다는 것이 융의 생각이었다. 정신분석이 비과학적이고 지나치게 성(性)에 집착한다고 비판받았던 프로이트에게 융의 단어연상검사는 가뭄에 단비와 같았을 것으로 추론된다. 프로이트는 제자 아브라함에게 “융의 지지가 훨씬 귀중하네. 오로지 그가 나타났기 때문에 정신분석이 유대인의 민족적 관심사가 될 위험에서 벗어났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융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했고 융도 프로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동등한 자격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처럼 교수님과 우정을 나눌 수 있게 해주실 것”을 요청하는 등 프로이트의 제자가 되어 더욱 친근하고 특별한 관계가 되는 것을 기꺼이 여겼다. 프로이트는 1911년 국제정신분석학회를 처음 발족하면서 초대 회장으로 융을 선출할 것을 다른 제자들에게 지시했다. 즉, 공식적으로 융을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프로이트의 생각대로 되는 듯했다. 사람들은 정신분석을 신기해하면서 조금씩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빈 출신 유대인의 비기(秘技)로 인식되던 정신분석이 유럽 전체에서 받아들여졌고, 미국에서 프로이트는 명예박사학위를 받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정신의학에서 정신분석의 비중이 더욱 커지면서 제자들 사이에 균열이 생겼고, 스승의 이론에 의구심을 가지며 자기만의 깃발을 세우고 싶다는 야심을 갖게 되는 이들이 나왔다. 그 첫 번째 인물이 아들러였다.

아들러는 187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헝가리계 유대인이었다. 빈 대학을 졸업해 의사가 되었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모임의 초기 멤버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했기에 은연중에 빈에서는 2인자로 인정받았다. 1902년에 매주 수요일 저녁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에 관심있는 지인들과 함께 토론을 하는 모임으로 시작한 수요회가 1908년 정식으로 빈 정신분석학회로 발족하면서 초대 회장을 맡았다. 프로이트도 아들러를 아껴서 1906년 아들러가 처음으로 발표한 「신경증의 심리학적 근거」에 대한 논문이 자신의 이론과 차이가 있음에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 책의 역자 고혜경은 신화학자이자 꿈 분석가로, 강단에서 꿈과 융 심리학 그리고 개인의 신화와 집단의 꿈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이번 번역작업을 통해 융이 다루는 각 개념어의 맥락을 확인하고, 전문가의 자문을 거쳤다. 역자 고혜경은 〈역자 서문〉을 통해 융을 ‘진정한 영웅’이라 평가한다. “아무도 탐색하지 않은 세상을 먼저 탐험하고 그 세계를 탐색하려는 사람들을 위해 지도를 그렸기” 때문이다. 융은 중년의 위기 상황에서 눈을 내면으로 돌려 무려 16년간의 고독하고 지난한 실험을 자기 자신에게 감행함으로써 인간의 심층을 탐구했다. 융은 현대인이 각종 신경증과 정신병으로 시달리는 이유는 무의식과 단절했기 때문이라 진단하며, 무의식을 탐색해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을 담아 현대인을 위한 ‘영혼의 지도’를 선사했다.

〈역자 서문〉에 따르면 융은 인간의 심층은 개인적인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조상과 역사의 무게라는 것을 인식한다. 아울러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 집단 무의식, 원형, 개성화 이론이 이렇게 탐색하던 중에 잉태되었다. 이후 융의 삶은 이 시기에 경험한 내용을 정교하게 이론화하고 체계화시키는 것으로 채워졌다. 융은 현대인이 각종 신경증과 정신병으로 시달리는 이유를 한마디로 무의식과의 단절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무의식에 접근하여 탐색하고 통합하는 과업이 개인의 건강뿐 아니라 시대적인 미션으로 대두된 이 시점에서 융의 삶은 현대인에게 모델이 되어줄 것이라고 설명한다.

앞서 융이 저서에서 사용한 단어 중 자주 거론되던 아니마(Anima)에 대해 살펴본다. 책에서 아니마는 '남성 내면의 여성적인 측면'이란 뜻으로 풀이한다. "아니마는 남성의 정신에 있는 개인적 콤플렉스이자 여성에 관한 원형 이미지다. 모든 사내아이에게서 새롭게 구현되는 무의식의 요소이고, 투사가 일어나도록 하는 원인이다. 처음에 아니마는 자신의 어머니와 동일시되고, 이후 다른 여성들 사이에서 경험될 뿐 아니라 남성의 삶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p.28)

저자 대릴 샤프는 이 용어의 출전을 「집단 무의식의 원형」이란 저작물에서 찾는다. 이 저작물에서 "아니마는 생명 자체의 원형이다."라고 적혀 있다. 아니마의 해석은 이 책의 일곱 페이지에 걸쳐 설명한다.



현대인은 각자가 속한 공동체나 조직 안에서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문제에 직면한다. 심리를 통해 나 자신은 물론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심리학과 MBTI에 대중적 관심도 높아진다. 불안, 정체성, 관계, 트라우마 등의 주제는 이제 일상에 자연히 녹아들어, 심리학은 삶의 언어로 자리 잡았다. MBTI가 대중에게 친숙해지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원형인 융 심리학은 어렵다. 이 책은 이러한 틈을 메우고자 융이 사용한 개념어를 중점적으로 선별해 융의 전집에 등장하는 맥락 속에서 용어를 독자가 직접 체감하도록 구성했다. 

"기능 유형은 사고형, 감정형, 감각형, 직관형이라 부를 수 있는데, 기본 기능의 특질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즉 합리적인 유형과 비합리적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사고형과 감정형은 전자에 속하고 감각형과 직관형은 후자에 속한다. 이는 리비도의 움직임에 대한 지배적인 경향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더 나눌 수 있는데, 바로 내향형과 외향형이다."(p.255) - 「정의」 《전집》 6권

이 책은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편찬한 볼링겐 시리즈 중 융의 《전집》 20권을 기반으로 개념어를 정리했다. 각 항목에는 해당 개념이 등장하는 융의 원문을 직접 인용했다. 해당 부분의 출처는 미주에 모두 실었으며, 독자의 편의를 위해 각 전집에 실린 글 제목을 번역해 해당 부분을 찾기 쉽도록 안내했다. 또한 출처에 실린 책은 참고문헌 목록으로 정리해 융의 세계를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했다. 또한 번역어가 주는 왜곡을 피하고자 용어를 싣는 순서 역시 원전을 따라 ‘가나다’ 순이 아닌 알파벳 순으로 실었다. 예를 들어 ‘Adaption(적응)’은 다음과 같은 융의 문장이 실렸다.

"[개성화를] 목적으로 삼기 전에 최소로 필요한 집단 규범에 적응하는 교육적 목표가 먼저 성취되어야 한다. 식물이 고유한 본성을 만개하려면, 먼저 씨앗이 파종된 토양에서 자랄 수 있어야 한다. - 「정의」 《전집》 14권

생명의 영속적 흐름은 거듭 새로운 적응이 필요하다. 적응은 결코 한 번에, 그리고 전부 달성되지는 않는다."(p.22) 「초월적 기능」 《전집》 6권


Persona 페르소나

용어가 암시하듯, 페르소나는 단지 집단적 정신의 가면일 뿐이다. 개성을 가장하는 가면을 쓰고 자신과 타인에게 개인이라고 믿게 만들지만, 실상 당사자는 단순히 집단정신이 말하는 역할을 연기할 뿐이다. 페르소나를 분석할 때 우리는 가면을 벗겨내고, 개인적으로 보였던 것이 실제로는 집단적이었음을 발견한다. 바꿔 말해, 페르소나는 집단정신의 가면일 뿐이었다. 본질적으로 페르소나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보여야 할지에 대해 개인과 사회가 타협한 결과물이다. 사람은 이름을 갖고, 직위를 얻고, 특정 임무를 수행하면서 이러저러하게 보이는 인물이 된다. 이 모든 것이 어떤 면에서는 실제일 수 있지만, 본질적인 개성을 기준으로 보면 부차적인 현실일 뿐이다. 또한 이렇게 타협하는 과정에서 종종 자기 자신보다는 타인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p.181)


Unconscious 무의식

의식은 이성을 방어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며, 무의식의 혼란스러운 삶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신의 길을 걷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는 열린 갈등과 열린 협력을 동시에 의미한다. 결국 인간의 삶은 이러해야 한다. 이는 망치와 모루의 오래된 게임이다. 둘 사이에 인내하는 쇳덩이는 파괴될 수 없는 전체, 즉 ‘개인individual’으로 단련된다.(p.267)


저자 : 대릴 샤프(Daryl Sharp)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업 중인 융 학파의 정신분석가. 융 심리학 책들을 주로 출판하는 이너시티북스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취리히에 있는 칼 융 연구소를 졸업한 그는 융 학파의 분석 방식으로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저서로 『비밀스런 까마귀-갈등과 변형』, 『성격의 유형-성격 유형에 대한 융의 모델』 등이 있다.


역자 : 고혜경


신화학 박사이자 그룹 투사 꿈작업가. 현재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꿈과 융 심리학 그리고 개인의 신화와 집단의 꿈을 가르친다. 오클랜드 창조영성대학원에서 제레미 테일러 박사를 만나 꿈 세계를 접한 후 좀 더 깊이 꿈 말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 퍼시피카대학원에서 신화학으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랜 기간 꿈 일기를 작성해오면서 꿈이 가진 놀라운 힘을 느꼈다. 꿈 공부 후 한국에 돌아와 지금까지 그룹 투사 꿈작업과 워크숍을 이끌며 이 땅에 꿈 친구를 늘리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지은 책으로 《선녀는 왜 나무꾼을 떠났을까》 《태초에 할망이 있었다》 《나의 꿈사용법》 《꿈에게 길을 묻다》가 있고, 옮긴 책으로 《꿈으로 들어가 다시 살아나라》 《꿈이 이끄는 치유의 길》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여신의 언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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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 있는 사전 - 말끝마다 웃고 정드는 101가지 부산 사투리
양민호.최민경 지음 / 호밀밭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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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부끄러웠지만 사투리가 지금은 당당히 세계로 알릴 만큼 합리적이고 멋진 언어로 제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날것 그대로 K-컬처와 함께 세계로 나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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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잘데기 있는 사전 - 말끝마다 웃고 정드는 101가지 부산 사투리
양민호.최민경 지음 / 호밀밭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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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사투리'는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이다. 이에 비해 ‘표준어’는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다.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해 전 국민이 공통적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이라고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표준국어대사전』) 이 책 『쓰잘데기 있는 사전』은 '부산 사투리' 가운데 TBN 부산교통방송 〈달리는 라디오〉의 목요일 고정 코너 「배아봅시데이」에서 2년간 소개한 부산 사투리를 담았다. 토박이조차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일상의 단어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공동 저자(양민호 최민경, 이하 저자)는 사투리의 특성상 사전에 등재되지 않는 비표준어가 많고, 어원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고 말한다. 이 책 『쓰잘데기 있는 사전』은 활용 문구와 정의, 그리고 어원까지 최대한 유추해 풀었다.

저자는 부산에 거처를 잡은 외지인들이다. 부산 생활을 시작하고, 마음에 질문을 품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뜻이지?’ 계속 들으니 그 속의 정서와 리듬을 알게 되고, 거칠게 느껴지던 언어가 정감 있는 언어로 들리더라고 털어놓는다. 사투리는 심금을 울리고 온기를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방언', '지방어', '지역어'라고도 많이 썼다. 통상적으는 한 언어의 변종 정도의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라는 의미다. 한때는 사투리가 표준어에 비해 열등하다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표준이 아닌 말'이나 '교양 없는 말'로 정의되기도 했으나, 언어 구조상으로 방언과 표준어 또는 방언들 사이의 우열 관계란 성립하지 않는다. 현재는 이러한 정의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투리의 이미지가 바뀌고 있다. 저자는 "(사투리는) 촌스러운 옛날 말이 아니다. 브랜딩, 캠페인, 방송 매체에서 활발히 다루며 그 중심에 ‘부산 사투리’가 있다. 경제적 가치를 지닌 ‘돈이 되는 언어’면서, 타인으로부터 손쉽게 친근함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읽으면 새로운 홍보 카피나 사람 냄새 나는 문장이 떠오르고, 어릴 적 어른들과 나눈 대화를 추억한다. 또한, 부산 여행이 더욱 즐거워진다."라고 출간 후 소감을 남겼다. 더욱이 나라의 정책도 '지방화', '분권화'하고 있다. 지방문화 시대에 따른 것으로 사투리는 제 대접을 받는다고 봐야 할 듯하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출간 취지와 소감을 밝히고 있다. "말은 지나간 시간을 품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투리는 고향의 땅과 바다, 사람의 체온을 담고 있는 언어다. 단어 하나에 웃음이 들고, 말끝마다 정이 묻어난다. 이 책 『쓰잘데기 있는 사전』은 말끝마다 웃고 정드는, 101가지 부산 사투리에 관한 이야기다."(p.2) 이 책에서 저자는 '부산 사투리'라 부르는 것은 특정 지역 사투리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늘날 부산에서 통용되거나, 부산 사람들의 말 속에서 살아 있는 표현을 중심으로 삼았다고 저자는 밝힌다. 정확한 어원이나 경계가 모호한 단어도 있지만, '부산답다'고 느끼는 말,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정서와 리듬을 담는 것으로 기준을 삼았다고 덧붙인다.

〈서문〉에 따르면 시인 안도현의 글을 통해서도 사투리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사투리는 흙냄새가 나고 고향의 일부를 느낄 수 있는 존재다. '괜찮으세요?'보다 '괘안심까?'라고 말하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부산 말도 그렇다. '단디'에는 부산 사람 특유의 성실함과 꼼꼼함이 묻어 있고, '은다'라는 한마디에 정서적인 거절과 거리 두기의 뉘앙스를 담는다. '내나'에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안다는 공감이 깃들어 있으며, '마!'라는 짧은 한마디엔 짜증과 다정함, 싸움과 웃음이 동시에 실려 있다. 이렇듯 사투리는 그 자체로 부산의 정서요, 부산의 풍경이다.

저자는 전작 『사투리, 부산의 마음을 전하다』에서 "부산 사투리는 긴말 대신 함축된 표현으로, 복잡한 감정을 단숨에 전한다."고 썼다. 항구와 시장, 골목과 사직구장에서 오고 간 이 말들은 짧지만 깊고, 거칠지만 따뜻하다. 부산이라는 도시가 품은 생동감과 굴곡, 그리고 사람 냄새는 이 사투리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부산 출신이 아닌 저자는 이사 와 부산에 터를 잡고 살며 점점 부산 말에 스며들었다고 밝힌다. 단지 말의 재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투리라는 언어에는 그 지역의 시간과 정서, 생존과 유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 책에서 101번째 단어까지 실은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고 털어놓는다. 부산 말은 딱 떨어지는 깔끔한보다, '한 줌 더'의 정서가 어울린다. 이 책에서 주저 없이 한 단어를 더한 이유다.


저자의 부산 사투리 사랑은 작지 않은 듯하다. 저자는 이 책이 단어를 정리한 사전이 아니라고 밝힌다. 말의 체온을 기억하기 위한, 마음을 전하는 사투리 스케치북이라고도 말한다. 어쩌면 언젠가 잊힐지 모를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길 바람과 기대가 크다. 이 책에는 한 글자부터 다섯 글자 이상까지 모두 101개의 사투리가 담겨 있다. 한 글자 사투리로 역시 '마!'가 첫 번째 등장한다. 저자는 이 말을 "짧지만 강렬하고 한 글자로도 충분한 부산의 말맛"이라고 귀띔한다. "마, 니 지금 뭐 하는 기고?"란 예문을 보여 준다. 이 단어의 정의와 특성으로는 ① 응원 구호, 강조 또는 친구를 부르는 말 ② "마!" 한 글자에 담긴 부산의 힘과 리듬이란 표현으로 규정한다. 

"마!"가 처음 사용된 것은 롯데 자이언츠의 성적이 부진하던 2002년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단장이 상대편의 에이스급 투수가 등판했을 때 견제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점차 다른 투수들의 견제구에도 사용되면서 정착했다. 응원가에 맞춰서 "마!"를 반복하여 상대 투수의 혼을 빼놓는 것이다.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함성의 심장부인 1루에서 "마!"를 집중해서 외칠 때의 소리는 107데시벨에 이르러 비행기 이착륙 소음과 맞먹는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을 때 독자는 롯데 자이언츠의 야구 경기에서 처음 나왔다는 말을 믿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마치 독자의 마음을 알기라는 듯하다. 저자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바로 잡는다. "사직구장에서 사용하는 "마!"는 뒤에 느낌표가 붙는 느낌이다. 이때는 짧고 굵게 한마디를 던지는 응원 구호기 때문에 뜻이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마'에서 파생되었다고 불 수 있다. 친한 사이에서 상대방을 부를 때 사용하는 "마!"에서 나왔을 수 있다. 이때 동년배가 아랫사람에게 사용한다. "야!", "이놈아!", "인마!" 정도의 의미다. 또는 '하지 마'가 줄어든 것으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저자는 구별한다.

저자는 또 물론 '마'는 다른 의미도 갖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냥'이라는 뜻이다. '마' 뒤에 물결 부호가 붙는 느낌이란다. 이때 문장의 제일 앞이나 중간, 또는 맨 마지막에 붙는다고 설명한다. "마~ 그대로 해 주이소", "그대로 마~ 해 주이소", "그대로 해 주이소 마~" 이런 식이다.


독자도 대학 다닐 때 경상도 사투리를 충분히 들은 기억이 있다. 물론 나중에는 TV나 인터넷에서 사용될 때 더 많이 듣긴 했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대부분 서울 말을 쓰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다 대학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사투리를 그대로 쓰는 친구들이 대거 입성(?)했다. 독자가 학교 다닐 때 서울 지역 고등학교는 이런 분위기가 상댱했다. 일반적인 추세라고 봐야 할 것도 같다. 대학 때 4년 동안 함께 지내며 친구가 된 학우들도 부산과 대구의 사투리가 조금은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 '쌀'을 '살'로 발음하는 것은 공통적이었는데, '은지예' '어데예'는 각기 다른 지방에서 사용된다는 말도 들었다. 서울 말을 쓰는 독자 입장에서 왜 경상도 말이 조금 다르지? 하는 정도의 궁금증은 있었지만 "원래 아래 해변(남해안) 쪽으로 갈수록 억양이 드세다고 한다. 그것은 전라도 쪽도 마찬가지여서 쉽게 이해가 됐다. 서남해안 쪽이 전주, 광주에 비해 훨씬 강한 억양과 단어 발음도 거칠었다. 당시 '난 긍께 전라도랑께.'처럼 말 끝에 '께'를 붙이는 습관이 있고, 경상도 사람은 '반갑데이, 내는 마~.' 처럼 '마'를 붙이는 습관이 있었다고 독자는 판단했다. 사실 언어 자체가 다르지는 않은데 대체로 억양이 강하다는 점은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 게재된 수많은 말 중에 독자에게도 예전 대학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도 있고, 이것은 일본 말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스러운 단어도 있다. 저자가 잘 알아서 설명하지만 혹시 모를 오류가 있다면 언어를 전공한 독자들이 의문점을 서평에 더해주길 바란다. 언어 연구, 더욱이 사투리 연구는 처음 들어본 말들의 향연인 듯하다. 그러나 저자의 풀이만으로도 읽는 즐거움은 물론 우리말에 대한 애착이 점점 커진다. 

독자가 학교 다닐 때는 ‘사투리’ 하면 드세거나 알아듣기 힘들다는 이미지가 있었다. 또 서울에서 취직해 살기를 원하는 친구들은 될수록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사투리로 쓰는 독특한 말은 비교적 쉽게 바뀌지만 억양은 고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특히 경상도 지방의 강한 억양이 훨씬 오래동안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전라도 지방의 사투리는 경상도 사투리에 비해 억양이 비교적 서울 말에 접근하기 쉬웠다. 이들의 표준어 사용에는 대체로 경상도가 뒤늦게 이루어진다는 점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그런데 지역 갈등은 언어적 변신에도 관여됐다. 전라도 사람들에 근거 없는 편견이 서울에 와 있는 전라도 사람들은 전라도 말투를 고치려 애썼다는 점도 안다. 산업화 시대 농업에 치중했던 전라도는 경상도에 비해 서울로 삶터를 옮기는 사람들의 비율이 훨씬 높았다. 그러나 말투만 들어도 어디 출신인지 알고, 판단하던 시절이었다. 전라도 사람들은 애써 서울 말에 일찍 마스터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억양 차이가 비교적 적어서 쉽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삶과 사회 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한 상경인들의 숨은 노력도 한몫 했으려니 생각하니 조금은 씁쓸하다. 

이런 편견에 가려져 발견하지 못한 사투리의 쓰임새가 많다. 사투리는 지역이 가진 역사와 지형, 정서에 따라 발전하는 언어의 범주가 다른데, 유독 부산에서 발전한 언어가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정 단어는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대표적으로 ‘박상’, ‘빼다지’, ‘개우지’, ‘양분식’, ‘오찻물’, ‘홍큐공’, ‘바보축구온달’ 등이 있다. 사투리는 브랜드나 캠페인의 카피로 쓰이거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종 언급되며 유머 코드로 활용된다. ‘라면 끼리는 남자’를 줄인, 일명 〈라끼남〉의 ‘끼리다’(끓이다)도 역시 책에서 소개하는 사투리다.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끓이다가 끼리다로 변형된 이유는 알 수 없다. 모음 조화 및 발음의 편의성 측면에서 지역 사투리는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해 음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 특히 경상도 사투리는 발음을 간략하게 하거나 쉬운 발음으로 바꾸는 경향이 있다. 어간과 어미의 변화에서 '끓이다'에 'ㅎ'이 탈락해 '끌이다'로 바뀌고, 연음 법칙 현상이 일어나 '끄리다'의 모음 'ㅡ'보다 편한 'ㅣ'로 변화해 '끼리다'가 되었다고 추측한다.(p.159)

이밖에도 부산 사투리의 특징 중 함축성을 지닌다는 점이 있는데, “마!”라는 짧은 단어의 용도가 다양하다. 친구를 부르거나 야구장에서 응원 구호로도 쓰인다. 또한, 부산의 사직구장에서 펼쳐지는 ‘봉다리’ 응원은 매력적이다. 사실 함축성도 있고, 연음 등 쉬운 발음을 그대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단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 표준말보다 제주 사투리가 음절 면에서 훨씬 줄어든 상태라고 주장한 연구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단어의 수나 음절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진보적 변화다.


사투리에 대한 연구 저서나 기록이 별로 없어서, 유래를 마음껏 상상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억지로 문법이 언어를 장악하면 결국 언어는 모순에 빠져 자칫 후퇴시킬 수도 있다. 역사 속 사람이 사는 삶 속에서 역사가 변하듯이 언어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한다. 그것을 표준말이라고 한데 묶은 것은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것일 텐데 정확한 어원이나 시대적 변화 등을 파악하지 않고 표준어를 등재시켜 놓고 사투리는 제외하려는 것은 그닥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언어의 쇠퇴로 이어질 수 있다. 사투리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외국의 사투리 정책에 대해서도 잘 살펴야 한다. 비교하고 열등하다고 억압하면 언어 침략에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한글을 창제하고도 정작 관료나 공식 문서에 사용하지 못했기에 조선 시대 우리말은 엄청나게 사라져 버렸고, 한자 우대로 한자 문화에 예속되는 것은 심화되었다. 

사투리를 보존한다는 건 여러 단어를 조합하며,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행위다. 이것은 과거와 공생하려는 노력이자 앞으로의 생활에 보다 편리함을 위해서다. K-컬처와 함께 사투리의 세계화가 가속화되길 바란다.


저자 : 양민호(梁敏鎬)


1972년 출생. 전주대학교 일어교육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대학원 석사, 도쿄(東京)외국어대학 석사과정을 거쳐 도호쿠(東北)대학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저서로는 일본에서 출판된 『일본어 변이론의 현재』(공저, 2024), 『일본어 어휘로의 어프로치』(공저, 2015), 『외래어 연구의 신전개』(공저, 2012)가 있다. 국내에서는 『바다를 건넌 물건들 I, II』(공저, 2022, 2023), 『바다를 건넌 사람들 I』(공저, 2021), 『동북아해역과 인문학』(공저, 2020), 『동북아해역과 인문네트워크』(공저, 2019), 『소통과 불통의 한일 간 커뮤니케이션』(공저, 2018) 등이 있다. 그리고 역서로는 『경제언어학-언어, 방언, 경어』(공역, 2015)이 있다. 현재 국립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HK조교수(일본어학, 사회언어학, 언어지리학 전공)로 재직 중이고, 국립국어원 공공용어 번역 표준화 위원회 일본어 자문위원, 한국방언학회 연구이사이며, 부산교통방송(TBN) 부산사투리 ‘배아봅시데이’ 코너에도 출연하고 있다.


저자 : 최민경


1983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한 후, 동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석사과정, 일본 히도쓰바시대학(一橋大學) 사회학연구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전공은 역사사회학·일본지역연구로, 특히 국제 이주, 디아스포라 관련 연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9년부터 국립부경대학교 인문사회과학연구소 HK교수로 근무하고 있으며, 주요 저역서와 논문으로는 『동북아해역과 글로벌리즘: 컬처, 로컬, 모빌리티』(공동 저자, 2024), 『바다를 건넌 물건들 Ⅱ』(공동 저자, 2023), 『해항의 정치사』(단독 번역, 2023), 「해역도시는 이민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일본 요코하마를 중심으로」(2024), 「어업이민을 통한 해방 후 해외이주정책의 이해」(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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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사람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와대를 받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강승지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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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정권을 지나고, 스물다섯 번 계절이 바뀌었다. 이 책은 한 사람이 기억하는 청와대의 풍경과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곳에는 권력의 심장부로 대한민국의 영광과 오욕의 세월을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 직원들의 하루는 어떻게 보냈을까.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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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사람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와대를 받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강승지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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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청와대 사람들』은 특별한 공간에서 보낸, 아주 보통의 날들에 대한 기록이다. 청와대는 보안상 인터넷과 카메라가 없는 2G 업무 폰을 써야 한다거나, 대통령 이름으로 된 연하장을 받는 것처럼 특별한 일기도 하다. 저자 강승지는 눈치 싸움와 조용한 동료애, 그리고 위로가 되는 점심시간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평범한 직장인의 하루를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청와대에서 7년 넘게 근무했다고 한다.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자리를 지키며, ‘무대 뒤의 사람들’을 매일 마주했다. 그리고 그 일상의 단면들을 기록해 두었다. 이 책 『청와대 사람들』은 정치의 무게 대신, ‘사람 냄새 나는 청와대’의 하루를 담은 따뜻하고 생생한 이야기다.

청와대는 단순한 ‘국가의 상징’이 아니다. 정치, 외교, 경호, 의전, 기록, 조경, 행사, 보안, 통신 등 수많은 기능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시스템이며, 그 안에는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를 대신 빛나게 하고, 누군가의 뒤에서 균형을 맞추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청와대를 만드는 사람들. 이 책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국정을 살피고 휴식과 잠을 자는 것도 청와대 안에서 모두 해결한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청와대 밖으로 나다니는 것이 극도로 제한된다. 우선 보안 문제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움직이는 일은 수많은 경호원들이 따라 붙여서 경호 업무를 해야 하도록 법으로도 규정돼 있다. 자칫 경호가 시민들의 삶에 불편을 주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보안 문제가 가장 중요한 요인일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아무튼 청와대는 독자가 아직 한 번도 못 가본 곳이다. 과거에는 들어갈 일도, 들어갈 수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방된 이후에는 청와대 내부가 궁금했다면 언제든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국정을 담당하고 그를 돕는 사람들이 없는 청와대는 독자에게 그다지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산책 겸이라면 근처에 그보다 좋은 공원도 많다.


이 책은 청와대 개방 이전의 시간을 담은 1부와 개방 이후의 변화를 기록한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 2부 합쳐 여섯 개 장(章)으로 나뉘어 있다. 1장 「청와대로 출근합니다」, 2장 「청와대 사람들」, 3장 「점심이 온다, 청와대에도」, 4장 「청와대 직장인의 기쁨과 슬픔」, 5장 「개방된 청와대, 남겨진 사람들」, 6장 「청와대를 지켜온 것들」 등이다. 대통령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이야기, 아름다운 샹들리에와 요리책이 있는 도서관, 온실과 잉어 연못 등 청와대 내부 공간의 디테일, 그리고 출입증을 벗고 마주한 개방 이후의 청와대까지. 각 장마다 청와대의 일상과 풍경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 촘촘히 담겨 있다.

저자는 세 번의 정권이 바뀌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청와대에 있었다. 그는 자신을 ‘대통령이 바뀌어도 남아 있는 가구 같은 존재’라 표현한다. 꽤 재밌는 표현이다. 수많은 사임과 임명이 반복되는 동안, 문고리와 의자처럼 청와대 안에 있는 바뀌지 않은 가구들처럼, 그는 많은 사람이 머물다 떠난 청와대 안에 마지막까지 남아 그동안 본 것을 기록했다.

청와대라는 배경 속에서 일상의 풍경이 조금 다른 결로 펼쳐지기도 한다. 아무래도 특별한 곳이라 보안 문제가 가장 중요 임무인 직원들이 가장 많겠지만 일상의 삶을 위한 사람들도 필요할 것 같다. 그들의 일상은 일반 시민들의 생활과는 다소 다를 것이란 짐작을 하기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시민들의 일상처럼 이루어지는 청와대 직원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딱딱하고 권위 있는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청와대가 조금 덜 멀게 느껴질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 책을 읽기로 하고서는 그동안 무관심했던 청와대의 역사와 구조, 그리고 대부분의 대통령이 청와대를 상주를 싫어한 것 같아 "왜 그랬을까?"에 대한 호기심을 위해서라도 독자가 개인적으로 공부를 했다. 아무래도 인터넷에 있는 백과사전을 중심으로 조금 익힐 수 있었다.

역사적 사실과 대통령의 근무 상황 등을 중심으로 기술한 사전(백과사전)을 찾아 사전(事前) 공부를 조금 했다. 다만 한 권의 백과사전으로는 혹시 잘못 기재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 권 이상의 백과사전에서 공통적으로 게재한 부분을 중심으로 한두 개의 사실들을 소개한다.


1993년 2월 25일에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그 해 10월 구 본관이 전부 철거됐다. 현재는 '청와대 구 본관 터'라는 표식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에 북악산의 정기가 이어지는 능선을 끊기 위해 해당 건물이 지어졌다는 풍수적 해석에 따라, 벽돌과 기와는 기존 능선의 복원에 사용하고 가구와 집기는 보존하는 한편, 샹들리에와 승강기는 대통령이 사용하던 물건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도록 분해 후 재사용을 전제로 경매에 내놨다. 

김영삼 대통령은 철통같이 막힌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PC통신 하이텔에 '청와대 큰마당'을 개설했다고 한다. 1995년에는 CI를 도입하고 인터넷 홈페이지도 열었다.

대한민국 제20대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2022년 3월 20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집무실 및 비서실을 서울 용산구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하여 2022년 5월 10일 0시를 기해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 기능이 해제됐다. 이날부터 청와대는 대통령실에 집무실 기능을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에 관저 기능을 넘겨주고 개방되었다. 청와대는 미술관이자 역대 대통령들의 청와대 거주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 같은 건물이 되었다. 그러나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 후 일단은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을 임시로 쓰다가 청와대 보수공사가 끝나는 대로 청와대로 복귀하는 것으로 결정해 임기도 채 지나지 못해 다시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쓰이게 되었다.

개방된 후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청와대는 중심에 위치한 본관, 영빈관, 춘추관, 녹지원, 무궁화동산, 칠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목할 것은 각 건물의 모습이 각기 독특하다는 것으로 특히 한국을 대표하기 위해 한국 전통양식으로 지어 아름답다. 우선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본관은 청기와 지붕에 청와대를 대표하는 곳으로 푸른 색의 기와와 지붕 곡선이 아름답다. 청와대를 상징하는 청기와는 약 15만장을 한 개씩 구워서 100년 이상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다.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춘추관이 보인다. 춘추관은 토기와로 만든 지붕이 전통적이다. 반면 본관 왼쪽에는 영빈관이 보인다. 영빈관은 외국 국빈들을 위한 장소로 18개의 돌기둥이 건물을 받치고 있어 웅장하다. 산책하기에 좋은 곳으로는 녹지원과 무궁화 동산있다. 녹지원은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있는 곳으로 그 중에서도 약 310년 된 소나무가 유명하다. 무궁화 동산은 무궁화꽃을 비롯해 분수대, 봉황상이 있어 관광객들의 기념촬영 장소로 애용된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때 경무대란 이름의 현재의 청와대가 대통령 관저로 쓰였다. 이승만 정부에서는 6·25 전쟁으로 관저의 보안 이외의 일엔 별 개조나 개축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4·19 혁명으로 이승만이 하야한 후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무대라는 이름을 바꾸는 것을 두고 논의가 이루어졌다. 자유당 정권에 대한 반감의식 때문에 경무대라는 이름은 원성의 대상이 되었고, 당시 서울시사 편찬위원이던 김영상이 윤보선 대통령에게 경무대라는 이름을 바꾸지 말 것을 건의했지만, 윤보선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해 김영상이 '화령대'와 '청와대'의 두 가지 안을 제시했다. 윤보선 대통령은 본관의 청기와 지붕에서 의미를 딴 '청와대'를 선택한 것이다. 그때 바뀐 이름이 65년 정도 지속되었다. '청와대(靑瓦臺)'란 명칭은 말 그대로 '푸른 기와집'을 의미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청와대라는 명칭을 '황와대'로 바꾸자는 의견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청색보다는 황색이 대통령에 걸맞은 의미의 색이라며 논란이 일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이름을 또 바꿀 수는 없다"며 기존 이름을 고수하기로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청와대를 'Blue House'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영부인 육영수가 불쾌감을 표하여 청와대를 한국어의 발음대로, 'Chong Wa Dae'로 표기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대통령 측근을 비롯한 청와대 직원들은 Blue House, 약칭 BH로 부르고 있다. 대통령의 지시를 'BH의 하명'이라고 부르기도 한 사실은 지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때 그렇게 호칭한다는 사실을 독자는 처음 알았다. 

전두환 시절에 청와대 구 본관을 다시 리모델링했다. 이후 노태우 시절이 되어서야 본관과 관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을 신축해 2년 2개월간의 공사 끝에 1991년 9월 4일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공사는 당시 이명박이 대표이사로 있던 현대건설이 맡았는데, 경복궁, 창덕궁 등 궁궐을 많이 참고했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 회장이 외국 유명 호텔들과도 비교해가며 직접 문고리 모양까지 고를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고 백과사전은 일치된 기록을 보인다. 청와대 관저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150년 전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쓰인 표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관광공사는 무궁화가 피는 7-10월까지가 특히 아름답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관람 코스로 칠궁을 꼽고 있다. 칠궁은 조선시대 7개의 궁으로 전통가옥과 아담한 뜰이 볼만하다고 기록을 남겼다. 저자 강승지는 김장하 선생의 “이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거야.”라는 말을 인용해 자신의 청와대 사람들의 기록에 힘이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매일 아침, 누군가 가장 먼저 불을 켜고, 회의실을 정리하고, 식물을 돌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청와대도 그렇다.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국기를 다리고, 구내식당에서 요리를 하고, 매일 아침 연못 안 잉어의 수를 세는 사람들. 이 책은 그들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스포트라이트 뒤에 있는 그들의 얼굴을 차분히 비추며, 당연하게 여겨졌던 존재들의 무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날 처음으로, 국기를 다리고 있던 사람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얼룩 없는 국기, 반듯하게 꽂힌 깃대, 우호적인 이미지. 이 모든 ‘당연한 모습’은 국기를 다리는 직원의 손끝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잘 준비된 국빈 환영 행사는 반듯하게 다려진 국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닐까.

가끔 너무나 당연해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 ‘당연’을 만드는 사람들. 주름 없는 외교는 다림질에서부터 시작됐다.(p.44)

권위도 점심시간 앞에서는 잠시 멈춘다. 식당에 들어서면 직급과 관계없이 누구나 식판을 든다. 그때만큼은 비서관도, 보좌관도, 경호관도 그저 ‘배고파서 점심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p.81)

2022년 5월 9일, 떠나는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집무실에 머물렀다. 하루 뒤, 5월 10일 오전 7시. 1호 청와대 관람객이 입장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가 붙은 포토존이 생겼고, 출입 금지였던 초소문이 활짝 열렸다. 단 하루 만에 청와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공간이 되었다.(p.151)


저자 : 강승지


미술을 전공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다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림을 보던 눈으로 청와대의 풍경을 읽고, 몸이 먼저 반응한 순간들을 기록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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