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영화들
이남 지음 / 미메시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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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봉준호 영화들』은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휩쓸었던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준다. 이 책이 〈기생충〉이란 영화를 평론하는 책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카데미상의 권위를 다루고 있진 않지만 독자 개인에겐 그야말로 충격적이었기에 다른 어느 기억보다 독자의 마음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기에 하는 말이다. 한국 영화는 이제 막 100년이 넘어서고 있는데 세계가 놀랄 만한 업적을 이룬 것은 절대적으로 탁월한 봉준호 감독의 재능이 바탕이 되었겠지만 그동안 영화계 안팎에서 노력했던 많은 영화인들도 생각나게 한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의 수상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님을 이 책은 분석하고 있다. 책의 저자 이남은 풍자, 유머, 순수한 오락의 관점에서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봉준호의 재능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모두 성공을 거둔 그의 30여 년에 걸친 경력에 먼저 존중을 표한다. 불안한 현재의 한국을 영화로 표현하는 봉준호 감독, 그리고 그를 사회학적으로 비평하는 영화학자이자 평론가 이남의 세계가 매우 조화롭다.

영화 평론가인 저자가 봉준호의 모든 영화를 파헤치고 뜯어보고 해석하여 우리 앞에 내놓은 이 책 『봉준호 영화들』은 '사회학적 상상력'을 실현하는 봉준호의 영화 세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채프먼 대학교 영화학과 교수이기도 한 저자가 수년간 봉준호를 추적하여 글로 풀어낸 이 책은 첫 장편 영화 〈플란다스의 개〉부터 최근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미키 17〉까지 봉준호가 자기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내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세밀히 분석해 밝히고 있다. "좁게는 한국 사회, 그리고 넓게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구체적 사회 현실에 뿌리내리는 봉준호의 영화들은 개인의 삶, 특히 사회 주변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개개인의 삶은 늘 더 큰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맥락 안에서 그려진다. 봉준호는 사회적 약자인 서민들이 겪는 어려움뿐 아니라 그들이 직면하는 사적인 문제들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곤경의 근본 원인을 이루는 사회 시스템과 공적인 문제들도 함께 드러낸다."는 게 저자 이남의 집필 취지이다.


저자가 살펴본 봉준호의 영화들을 둘러보면, 우선 〈살인의 추억〉은 연쇄 살인범을 잡지 못하는 형사들의 무능을 1980년대 군사 독재 정권이라는 더 큰 맥락 안에 위치 지어 바라보면서 당대 미결 사건에 대한 새로운 사회학적 해석을 내놓는 작품이다. 〈괴물〉은 박씨 가족이 겪는 비극의 근본 원인이 한국의 식민지 시대 이후의 상황들, 즉 미국에 관한 종속적인 관계뿐 아니라 부패하고 무능한 당국에 뿌리 둔다고 평한다. 〈플란다스의 개〉와 〈마더〉에서 주인공들의 도덕적 타락은 개개인의 괴물 같은 본성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약자들에게 강요된 가혹한 사회 경제적 조건에 의해 야기된 것으로 묘사된다. 

〈설국열차〉와 〈옥자〉에서는 봉준호의 영화 사회학이 더욱 노골적으로 정치화되어 기업의 탐욕으로 지구 온난화와 공장형 축산에 의한 동물 학대라는 심각한 문제들이 무시되어 버리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세계화 현상을 고발한다. 〈기생충〉은 신자유주의하에서 더욱 심화하는 계급 양극화 현상과 더불어 경쟁의 사다리에서 추락해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에게는 이제 더 이상 신분 상승의 가망이 없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봉준호의 여덟 번째 장편 영화이자 세 번째 영어 영화, 그리고 첫 본격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미키 17〉은 원작 소설이 천착하는 '인간 프린팅의 윤리와 정체성' 문제를 넘어 파시즘적 독재 체제, 식민주의, 자본주의의 노동 착취와 인명 경시에 대한 사회 비판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미키 17〉은 그가 기존 SF 블록버스터 장르를 재구성하는 창의적 실험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사회 정치적 변혁과 21세기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세계적 확장이라는 맥락 안에 확실하게 자리 잡게 함으로써 그 영화들이 어떻게 한국인들 사이에서 커지는 불공정의 감정과 실패 의식을 반영하고 있는지 보여 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같은 감정 혹은 의식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오늘날의 시대적 추세에 의해 해외 관객들도 크게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감정 혹은 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화는 그들을 발생시킨 그 문화적 체계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영화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확신을 저자가 갖고 있는 것으로 독자에게는 이해된다.


저자는 봉준호의 영화를 군사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한 한국 역사의 전환과 동시에 전개된 한국 영화 산업의 변화라는 이중적 맥락으로 바라보는 분석과 풍부한 한국 하위 텍스트의 문맥들이 그의 영화를 더욱 심도 있게 이해하고 즐기게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다.

저자는 〈머리말〉을 통해 "봉준호 감독과 처음 그의 작품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것은 2011년 11월 몸담고 채프먼 대학교 닷지 영화 및 미디어 예술 대학에서 두 번째 부산웨스트 아시아 영화제를 조직하고 개최했을 때였다"고 말한다. 이 두 번째 영화제의 메인 게스트이자 〈부산웨스트 아이콘상〉 수상자로 초청돼 2박3일 동안 캠퍼스에 머물면서 영화 상영과 함께 마스터 클래스 등 학생들과 다양한 만남을 통해 영화와 영화만들기에 관한 자기 생각을 나누었다고 되새겨낸다. 이 영화제에서는 봉준호의 〈괴물〉 3D버전이 개막작으로 상영됨과 동시에 봉준호 작품의 미니 회고전이 개최됐다. 2009년 작품인 〈마더〉는 첫 부산웨스트 영화제에서 이미 상영됐던 터라 이 해에는 장편 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과 함께 그의 한국 영화 아카데미 졸업 작품인 단편 〈지리멸렬〉과 감시 카메라로 포착된 영상들로 구성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단편 〈인플루엔자〉가 상영됐다고 저자는 전한다.

책에 따르면 당시 봉준호 감독은 〈괴물〉과 〈마더〉가 미국에서 개봉하고 비평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이후 〈설국열차〉, 〈옥자〉, 〈기생충〉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쌓은 세계적인 명성과는 아직 거리가 있는, 떠오르는 한국 감독 중 한 사람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저자가 한국에서 영화에서 영화 기자를 하다 뒤늦게 영화학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 이후인 2000년에 데뷔했으므로, 그의 영화들을 DVD로, 혹은 영화제나 시사회 등을 통해 미국에서 챙겨 보았다. 또 대학원 졸업 후 채프먼 대학교에서 아시아 영화와 한국 영화 수업을 개설하면서 한국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플란다스의 개〉와 〈살인의 추억〉, 그리고 〈괴물〉 등을 소개하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머리말〉에서 밝힌 이 같은 사실은 저자 이남이 오래 전부터 봉준호 감독을 주목해 왔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독자에게는 읽힌다.


이어 저자는 "내가 봉준호 영화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서 한국의 1980년대를 다룬 방식에 있었다"고 강조한다. 1980년대는 한국에서 군사 독재 체제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 운동이 가장 격렬히 이루어지던 연대였고, 마침내 1987년 군사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쟁취한 역사적인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 저자는 한국 영화에서 1980년대 만들어진 영화들(특히 군사 독재 체제의 혹독한 검열하에 만들어졌던 이장호 감독의 1980년대 초 영화들과 1980년대 후반 등장한 코리안 뉴 웨이브 영화들)과 함께 현대 한국 영화에서 1980년대가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가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었다는 점을 주목했다는 이야기다. 

2000년대에 부상한 뉴 코리안 시네마에서 1980년대가 어떻게 기억되고 묘사되느냐는 관점에서 볼 때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과 〈괴물〉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고 지적한다. 〈살인의 추억〉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10건의 연쇄 강간 살인 사건이 잇따라 일어난 서울 근교의 한 시골 마을은 물론 한국 전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소재로 다룬 범죄/연쇄 살인범 영화지만 기존의 영화들처럼 살인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시대적인 맥락을 짚어냈다는 점이 독특한 영화였다고 말한다. 형사들이 범인을 끝내 잡지 못했던 주된 이유로 시민 보호보다는 정권 유지에 공권력을 동원한 1980년대 군사 독재 체제에 눈을 돌린 점, 즉 상업적인 장르 영화 안에 1980년대에 대한 감독의 사회적 해설/논평을 담고 있다는 점이 1980년대를 다룬 기존 영화들과는 확연히 달랐다는 사실을 근거로 한다.

이와 함께 〈괴물〉은 200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학생 운동가 출신인 박남일 캐릭터를 통해 1980년대 학생 운동의 유산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비롯해,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1980년 5·18 민주화 운동뿐 아니라 1980년대 민중 운동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많아 1980년대가 어떻게 기억되는지를 보여 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되는 영화였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 책은 모두 7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새로운 문화 세대의 등장」 2장 「영화적 '변태': 전조(轉調), 시각적 개그, 낯설게하기의 기법」 3장 「사회 부조리와 실패의 내러티브: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서의 글로벌 장르와 지역 정치」 4장 「내면의 괴물들: 〈플란다스의 개〉와 〈마더〉에서의 도덕적 모호성과 아노미 215」 5장 「지역을 넘어서: 〈설국열차〉와 〈옥자〉에 나타나는 글로벌 정치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6장 「〈기생충〉의 파국적 상상력」 7장 「〈미키 17〉: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SF 장르의 봉준호식 변조」 등이다.


1장에서는 영화감독 봉준호의 약력을 소개하면서 그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다양하고 혼종적인 문화적 영향들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또 장편 영화로 데뷔하기 전 만들었던 단편들과 시나리오 작가로서 작업한 작품들을 분석한다. 이러한 개인적인 배경과 함께 봉준호와 그의 영화들을 '뉴 코리안 시네마'의 맥락 속에 배치한다. 2장은 봉준호 영화의 형식적 기법과 시각적 표현에 초점을 맞춘다. 한국적인 것에 대한 봉준호의 관심이 어떻게 시각적인 형식을 통해 전달되는지 자세히 살핀다. 구체적으로, 봉준호의 장르 꺾기와 혼합, 그리고 서로 다른 톤을 뒤섞는 전조(轉調)와 같은 영화 기법, 한국화의 진경산수에 비견할 만한 할리우드 장르의 한국적인 변용과 리얼리즘 미학, 그리고 일상적 공간을 낯설게하기 기법에 대해 논한다. 봉준호는 〈플란다스의 개〉의 평범한 아파트 지하실, 〈괴물〉 속의 한강 하수도 등 종종 사람들이 간과하는 공간을 잘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영화는 이러한 일상적인 공간들을 공포나 재난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3장에서 저자는 범죄 영화(〈살인의 추억〉)와 괴물 영화(〈괴물〉)의 내러티브에서 봉준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국의 지역 정치를 중심으로 할리우드식 장르를 전복하고 재발명하는가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봉준호는 '실패의 내러티브'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영화들을 만들었는데 이 실패의 이야기들이야말로 특별히 한국적인 내러티브 형태를 형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영화 모두 특히 1980년대를 현대 한국 사회를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전환기로 보고 있다. 4장에서는 〈플란다스의 개〉와 〈마더〉에서의 도덕적 모호성과 아노미를 다룬다. '압축된 근대성'이라는 전후 한국의 집단적 체험이 개개인의 삶에 미친 영향들이 이 두 영화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가를 탐구한다. 두 영화는 1990년대 후반 평범한 한국인들이 한국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채택으로 인해 야기된 도덕적 딜레마를 끌어안고 마주하면서 벌여야 했던 감정적인 혼란과 싸움을 묘사하고 있다. 이들 영화에서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에 한국이 겪은 주요한 정치, 산업, 경제적인 변화의 결과가 초래한 도덕적 혼란과 아노미가 개개인의 삶 속에서 심화하는 양상을 드러낸다.

저자는 5장에서 〈설국열차〉와 〈옥자〉에 나타나는 글로벌 정치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를 다룬다. 저자는 두 영화를 세계 영화의 맥락 속에 두고 그 급진적인 정치성을 서술한다. 먼저 〈설국열차〉의 열차와 〈옥자〉의 미란도 그룹이 어떻게 현재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축소판인가를 살펴보고, 이어 영화를 둘러싼 초국적 공감대 형성이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확장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두 영화는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부정과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사회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새롭게 상상하고 제안한 초국적인 '정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어 6장에서 저자는 〈기생충〉을 봉준호의 이전 영화들의 연장선상에 놓고 봉준호 영화의 특징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한편 이전 영화들과 대비되는 새로운 점들을 부각한다. 〈기생충〉은 그의 이전 작품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환기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흔히 개별적이고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어 온 감정의 사회학적인 측면을 천착하는 새로운 면모로 전작들에서 벗어나고 있다. 영화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모멸감이 형성되는지 보여 주고, 이 감정들의 폭발이 어떻게,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총체적 파국으로 이어지는지를 드러낸다.

또 7장은 가장 최근 개봉한 영화 〈미키 17〉이 대상이다. 저자는 이 영화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SF 장르의 봉준호식 변조'라는 제목을 붙이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흔히 스펙터클을 전면에 내세워 서사가 상대적으로 약한 것과 달리, 주인공 미키 17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관객을 몰입시킨 후,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특수 효과 스펙터클을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구성을 택함으로써 장르적 쾌감과 이야기의 완결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연출 방식을 보여 준다. 〈미키 17〉은 봉준호의 영화적 확장을 보여 주는 동시에 향후 그의 영화적 실천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가늠하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키 17〉은 한국적 로컬리티에서 구축해 온 장르적 감각과 비판적 시선을 세계적 블록버스터라는 산업적 조건 안에서 재구성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조율해 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p.383)


저자 : 이남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언론 대학원 영상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앙일보』 영화 담당 기자로 활동하다 2000년 유학을 떠나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USC 영화 대학에서 아녜스 바르다를 연구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주 채프먼 대학교 영화 및 미디어 대학에서 영화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 영화와 동아시아 영화, 여성 영화 등을 연구하고 강의하고 있다. 2018년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가 기획한 [비주얼 히스토리]의 하나로 이창동 감독에 관한 연구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2023년 권위 있는 학술 참고 자료 시리즈인 웹 사이트 Oxford Bibliographies의 [봉준호] 항목을 맡아 주요 연구 문헌을 선별하고 해설을 작성했다. 2024년에는 비디오 에세이 「Aging, Empathy, and Cinematic Metamorphosis: Through the Lens of Agnes Varda」를 학술 비디오 에세이 저널 『[in]Transition』에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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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지정학 전쟁사 지식 도감 지도로 읽는다
조지무쇼 지음, 안정미 옮김 / 이다미디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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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뉴스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인류 역사를 '전쟁의 역사'라고 말하는 역사학자들이 많다. 그만큼 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변화·발전을 가져 오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는 뜻일 것으로 독자는 이해한다. 사실 이 말은 서양 사학자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서양, 특히 유럽은 오랜 역사와 함께 엄청난 전쟁을 끝없이 치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럽은 유사 이래 고대부터 현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멈춘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로 많은 전쟁을 치렀으며 지금도 역시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시대에 따라 크고 작은 전쟁이 모두 전쟁의 카테고리에 들어간다고 볼 때 이는 조금은 과장된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지만, 사실은 일부 서양 사학자들의 말에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인류의 삶은 전쟁과 함께한다고 말해도 틀린 지적은 아니다. 서양 사학자들이 보는 견해로는 유럽 지역의 경우 1885~1914년 30년 정도가 유럽에 전쟁이 없던 평화롭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서양사에서 고대 도시국가로부터 현대의 가장 부유한 대륙이 되기까지 전쟁은 유럽인들과 함께했다는 이야기다.

왜 인류는 끊임없이 전쟁을 해야만 했을까? 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략적으로 우리 인간의 본능은 늘 남과 비교해 우월하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한다. 즉 자존심과 욕망의 결과가 전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부터 전쟁의 원인은 의식주에 크게 좌우됐다. 영토 싸움이고 국가간 전쟁이다. 영토 싸움이란 결국 전쟁으로 귀결된다. 근현대로 들어올 때부터는 국가간 협력과 상호 무역에 의해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제도적 장치도 만들었지만 전쟁을 막지는 못했다. 어떻게 보면 전쟁 휴지기를 틈타 오히려 더 큰 전쟁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이 이를 증명한다.

이 책 『지정학 전쟁사 지식 도감』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대표적인 전쟁사를 지정학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라는 점에서 일본 학자가 썼다는 이유로 배척할 수는 없다. 전쟁을 통해 본 세계 역사의 흐름을 짚어내는 데에는 오히려 적절할 수도 있다. 단 전쟁을 조망하는 선에서 책은 집필돼야만 하고, 다시 전쟁을 준비하는데 필요한 책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일본의 전쟁에 관한 논점은 극우단체나 극우정치인의 논리로 흘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 일본의 책임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다행히 이 책은 저자 조지무쇼((ぞうじむし) 자신의의 저서 『한눈에 꿰뚫는 전쟁사 도감』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 책을 재출간했다는 점에서 올바른 역사 인식과 전쟁에 대한 관점이 세계사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라는 독자의 마음이다.


재출간된 이 책은 초판 발간 때의 책 속 도판을 전면적으로 보완하고, 지도와 본문의 내용도 결정적인 전투의 전술과 전략을 보충해 전쟁사를 다양한 각도로 해설하고 있다는 게 공감대를 형성할 있다고 독자는 판단한다. 저자도 〈들어가는 말〉을 통해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전쟁이 인간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고 역사를 바꾸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인류는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을 되풀이하면서 발전해 왔다. 또한 세계사이든 국가 단위의 역사이든 역사는 크고 작은 전쟁의 기록물일 뿐이다. 인간의 갈등은 정치가 해결하고, 정치의 갈등은 전쟁이 해결한다. 집단과 집단, 그리고 나라와 나라가 전쟁에 이르게 된 경위는 실로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전쟁에는 몇 가지 패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세계의 전쟁의 패턴을 다섯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① 해양 국가와 대륙 국가 - 가치관의 대립

② 기독교와 이슬람교 - 종교의 대립

③ 선발 제국주의와 후발 제국주의 - 경제의 대립

④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 이데올로기의 대립

⑤ 동서 냉전과 민족 분쟁 - 민족의 대립


이 책에서는 인류사의 지정학적 충돌을 상징하는 결정적인 전쟁을 다루고 있다. 대륙 국가끼리의 영토 분쟁, 대륙 국가와 해양 국가의 대립,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분쟁, 제국주의 전쟁, 이데올로기 갈등, 각 지역과 민족 별 분쟁 등 시대의 흐름을 상징하는 전쟁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개별 전투를 하나씩 살펴보는 과정에서 시대나 지역이 전혀 다른 전쟁인데도 원인, 과정, 결과에서 의외의 공통점이나 역사적 진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이 책에서는 표제어에서 나타나듯이 인류사의 지정학적 충돌을 상징하는 결정적인 전쟁을 다루고 있다. 영토 분쟁, 대륙 국가-해양 국가의 대립, 기독교-이슬람교의 종교분쟁, 제국주의 전쟁, 이데올로기 갈등 등이며 각 지역과 민족 별 분쟁 등 시대의 흐름을 상징하는 전쟁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기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별 전투를 하나씩 살펴보는 과정에서 시대나 지역이 전혀 다른 전쟁인데도 원인, 과정, 결과에서 의외의 공통점이나 역사적 진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부모와 형제 간에도 서로 칼과 총을 겨누는 참혹한 곳에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가 전쟁터로 얼룩진 지 76년이 지났고 이 땅에 전쟁이 멈춘 지 68년이 되었다. 그 사이에도 지구에는 전쟁이 멈춘 적이 없지만, 이 땅에서는 인간의 삶을 가장 처참하게 만들어 버리는 전쟁이 없는 시기였다. 그러나 전쟁이 없었을 뿐 우리의 삶은 평화와 행복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칼, 총으로 상대를 겨누는 전쟁과 다름없는 삶의 전쟁이 계속돼 왔다. 이념의 대립, 권력 다툼, 독재와의 전면전 등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이 또 다른 전쟁이었다. '저자가 이에 증거로 내세우는 거의 모두가 반박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사회의 혼란과 법과 양심이 결핍된 세상은 사회적 약자들을 거칠게 다루었다. 고아가 된 아이들, 장애를 가진 사람을 청소하듯이 모아 강제로 집단 수용소에 가두고 노동 착취와 감옥 생활을 방불케 하는 삶을 살게 했으며 여성은 납치, 사기, 협박, 감금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안타까운 삶을 살았다. 그리고 한 해 몇 만 명씩 실종되어도 생사 확인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저자는 과거의 전쟁은 물론, 지금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전쟁은 지정학적 갈등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명충돌이나 경제전쟁, 민족분쟁 등도 이런 전쟁의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현재 지구상에서 빈발하는 각종 테러도 앞서 열거한 갈등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도시 국가 로마와 해양 강국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은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전쟁이고, 섬나라 영국과 대륙 국가 스페인이 맞붙은 아르마다 해전은 제해권을 장악한 영국이 세계 최강국의 자리에 오르게 한 결정적인 전투였다.


또 중동의 시나이반도와 지중해 연안의 발칸반도도 고대로부터 분쟁이 끊이질 않았던 화약고로 유명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부터 십자군 원정과 세계대전 등 대규모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무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늘 전쟁의 불길에 노출되었던 이유는 교통의 요충지라는 이유도 있다. 즉 다른 문명이 만나는 교차점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전쟁터로 변하기도 했다. 이 책은 세상을 바꾼 28가지 중요한 전쟁을 입체 그래픽 지도와 풍부한 컬러 도판을 활용해 쉽고 흥미롭게 설명한다. 전쟁이 발발한 시대적 배경, 역사적 인물, 전쟁의 전술과 전략 등 당시 전투 상황을 그래픽 지도 위에다 생생하게 재현했다. 이런 그래픽 지도를 보는 것만으로 전쟁사는 물론 복잡한 세계사를 한눈에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앞서 분류한 대로 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해양 국가와 대륙 국가〉 2장 〈기독교와 이슬람교〉 3장 〈선발 제국주의와 후발 제국주의〉 4장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5장 〈동서 냉전과 민족 분쟁〉 등이다. 책에 기술한 순서대로 28가지 전쟁을 지정학의 구도로 살펴보면 세계사의 중요한 포인트를 파악할 수 있다. 과거에 일어났던 전쟁의 원인과 결과를 이해한다면 현재의 국제정세는 물론이고, 앞으로 세계의 미래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전망도 가능하리라고 본다. 전쟁이 인류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할 수 있는 윤곽이 갖춰진 셈이다. 다음으로는 이를 연대순으로 머릿속에 새기면서 언제 일어난 전쟁인지, 왜 일어났는지, 결과가 세계 역사의 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잠깐 잠깐 대입해 생각하면서 읽어나가면 세계 역사에 대한 명확한 흐름은 물론 세부적인 분석의 논거를 마련한 셈이다. 

책의 순서대로 1장에서 해양 국가와 대륙 국가의 충돌을 살펴본다. 고대부터 중세에 걸쳐 일어난 전쟁의 배경은 지정학적인 이유가 대부분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기원전 2~3세기의 100년에 걸친 포에니 전쟁은 내륙으로부터 팽창해 나간 대륙 국가 로마와 지중해의 해양 교역로를 장악해 나간 해양 국가 카르타고의 전쟁이었다. 중세의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종교대립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려는 해양 국가 간의 충돌이었다. 이처럼 특정 지역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전쟁을 지정학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쟁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륙국과 해양국의 전쟁은 해양국은 섬나라 및 연안국으로서 해양 교역을 산업의 중심으로 삼는 국가를 말한다. 사람이 살기 위한 영토의 획득보다는 항구 등 교역 거점의 확보를 가장 중요시 한다. 영국과 일본, 네덜란드, 미국 등이 대표적 나라이다. 앞의 세 나라는 해양 국가로서 묶어 판단할 수 있지만 미국을 해양 국가로 분류한다는 것은 지리적 잇점을 통한 교역 국가를 부의 원천으로 삼은 것으로 독자에는 읽힌다. 그러나 저자의 주장에 독자는 선뜻 공감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내륙국도 하닌 하나의 거대한 대륙에 위치한 대륙국가이다. 또 서양인들이 신대륙이라고 발견해 수많은 사람이 이주한 곳으로 이주민의 국가이기도 하다. 다만 이주민 대부분이 서양인들이고, 개척한 사람들이 해외 식민지 개척의 일환으로 아루어진 나라다. 미국은 대부분이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였고 1750년대 이르러서야 비로소 독립국가로 발돋움한 나라다. 이를 교역을 위한 섬나라와 함께 해양 국가로 분류하기에는 독자로서는 선뜻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쓴 내용에 대해 독자로서 이를 인정하고 읽어나가야 할 것이다. 저자도 "대륙 국가는 대륙의 중앙부에 주축을 두고, 내륙 자원의 생산과 이동을 산업의 중심으로 삼는 국가"를 정의하고 있다. 육상 운송과 강을 이용한 수상 운송을 중시하며, 군사적인 전략에서는 영토 획득을 가장 우선시 한다. 중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이 대표적인 나라다. 저자의 관점이 미국에 관해서 독자와 조금 다른 점은 분명하다. 미국은 18세기 후반 독립한 신생국이다. 뿌리가 유럽인들이라고 해양 국가로 분류한 것은 다소 의외다. 자칫 이 분류가 시선이 다르다면 20세기 들어 가장 큰 전쟁, 1-2차 세계대전을 누가 일으켰는지 살펴보면 다른 분석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쟁사를 제대로 읽으려면 전쟁의 원인을 큰 묶음으로 분류하다 실수가 있으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산출할 수도 있다. 전쟁사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원인도 굉장히 중요하다. 

1장에서는 「고대~중세의 전쟁사」(개괄) 「포에니 전쟁 BC 264∼146년」, 「가우가멜라 전투 BC 331년」, 「진시황의 중국 통일 BC 221~210년」, 「투르-푸아티에 전투 732년」, 「십자군 전쟁 1096~1270년」, 「레그니차 전투 1241년」 등 6개의 주요 전쟁이 기술된다. 비전공 독자로서 잘 모르는 「투르-푸아티에 전투 732년」가 눈에 띈다. 이 전쟁은 서유럽을 침공한 이슬람 세력을 기독교의 프랑크 왕국이 방어했다는 전투를 말한다. 당시 프랑크 왕국은 현재 프랑스와 독일 일부 지역이 포함되는 지역의 국가였다.


8세기에 현재의 프랑스 서부를 무대로 일어났던 투르-푸아티에 전투는 기독교 교권과 이슬람 교권이 역사상 처음 대규모로 격돌했던 전쟁이다. 책에 따르면 원래 5세기에 서로마 제국이 붕괴한 후, 서유럽에서는 게르만족의 소국 간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현재의 프랑스에서 독일에 이르는 지역을 지배했던 프랑크 왕국이다. 이에 비해 중동에서는 7세기에 이슬람교가 발흥한 이후로 서아시아 전역부터 북아프리카까지 교단의 세력이 확산하고 있었다. 당시 이슬람 문화권은 여러 분야에서 서유럽 국가들에 앞서 있었다. 특히, 본래 유목민이 중심이었던 만큼 기병의 운용이나 군마의 품종도 서유럽에 비해 월등했다. 이슬람 세력은 711년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한 데 이어, 718년에는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한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레오 3세는 격전 끝에 이슬람군을 물리쳤다. 

그러나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한 이슬람 세력은 점점 프랑크 왕국령에 위협을 가하게 된다. 이처럼 확대되어 가는 이슬람 세력 앞에 위기를 느낀 서유럽의 기독교 문화권이 방어전의 하나로 치른 결전이 바로 732년의 투르-푸아티에 전투였다. 


저자 : 조지무쇼(Zojimusho,ぞうじむし, 造事務所)


‘쉽게, 재미있게, 정확하게!’라는 3대 슬로건을 내걸고 1985년 창립한 일본의 기획편집집단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기획, 집필, 편집에 참여해 복잡하고 어려운 지식과 정보를 쉽고 간단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 종교, 문화 등에 조예가 깊고, 경제를 비롯한 생활실용서까지 여러 분야에서 단행본을 중심으로 다양한 출판활동을 하고 있다. 1년에 평균 40여 종의 단행본을 펴내고, 다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독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주요 도서로는 『세계의 신들을 알 수 있는 책』, 『천사와 악마를 알 수 있는 책』, 『세계를 알 수 있는 지도장』, 『100글자로 알 수 있는 심리학』,『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 『30가지 발명품으로 읽는 세계사』,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전쟁사도감』,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황제의 세계사』 등 다수가 있다.


역자 : 안정미


부산에서 출생해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한 후 잡지사에서 기자로 근무했다. 현재프랑스어와 일본어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J'aime lire’시리즈 아동용 동화 5권과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십자군 전쟁』, 『영원한 일본』 등 많은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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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스파이 전쟁 - 간첩, 공작원, 인간 병기로 불린 첩보원들의 세계
고대훈.김민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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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군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력을 가졌다"고 일반 국민들은 두려워했다. 3공화국 박정희 정권이 출범하면서 생긴 조직이다. 정보부서는 원래 설치 목적이 해외의 첩보나 정보 활동을 하는 요원들로 이루어진 특수조직이다. 이들은 '공작원' '첩보원' '간첩' '스파이' '블랙요원' 등으로 불리며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가정보원으로 개칭될 때까지 해외 공작보다 국내 문제 개입이 훨씬 많았다. 또 가끔씩 들리는 이들의 활동은 학생운동이나 노동가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무튼 군사정부 수십 년간 정보부의 위세는 막강했다. 정보부는 북한과 휴전 중이고 여전히 무력 대치 상태라는 점을 들어 각종 국내 문제에 개입했다. 특히 학생 운동이나 노동 운동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관련자나 관련 의심자는 영장 없이 체포·구금하는 일이 일상적이었다. 정보 당국에게는 학생이나 노동자들이 '반정부 세력'이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노동조합도 불허했고 민주화 운동도 학생 운동이 주축을 이루었다. 노동조합은 70년대 말인가, 80년대 초에 설립이 인가되었다. 그러니 조직적인 노동 운동은 할 수 없었다. 정부가 노동조합 설립을 인허하면서도 노동운동가들에게는 결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군사 정권이 문민 정부에 이전된 후로는 더 이상의 노동조합 감시는 줄었고, 대학에서 민주화 운동 시위도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2000년 들어서기 직전 탄생한 김대중 정부는 안기부를 국가정보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국내 문제는 일체 관여하지 못하도록 법률도 개정했다. 아직 북한과의 무력 대치 중이기에 간첩 혐의자 색출에는 국정원 내의 국내 조직을 활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정보 당국의 국내 문제 개입이 없어지면서 첩보원이나 스파이 등의 단어는 국민 의식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 

국민들의 일상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던 공작원, 첩보원 등이 다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부터다. 당시 윤석열 정부가 야당의 지나친 반정부적 태도와 행위로 국가 운영이 막다른 상황에 처했다는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일사분란한 의원들과 시민들의 발빠른 대처로 비상계엄 해제 결의를 마치고 정부는 새벽이 다 될 무렵 비상계엄을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시민이나 국민들이 다치지 않는 상황에서 상황이 마무리되었으나 윤석열 대통령은 위헌·내란행위로 헌법재판소에 탄핵소추안이 제출됐고, 검찰은 내란죄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되어 재판 중이다. 형사 재판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피소추인의 파면을 인용함으로써 그는 대통령 자리에 물러나 이제 자택에서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이 비상계엄 선포 때 사전 모의 과정에서 '외환' 혐의가 있다는 일부 증인들이 위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가림막을 설치한 채 증언에 임하는 일이 벌어짐으로써 '블랙요원'이란 말이 다시 되새겨졌다. 이후 헌법재판소 결정 여부와 검찰 기소에 더욱 많은 눈과 귀가 쏠림으로써 조금은 잊혀져 가는 듯하다. 이는 더 이상의 증거나 증언 확보가 어려워 기소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국정원의 존재가 새삼 드러나고 첩보원이라는 말이 자주 언론에 오르내리는 바람에 군사 정권 시절의 공포감을 다시 떠올리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국회 청문회장에서는 '간첩'이란 단어가 자꾸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외환 혐의도 입증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내란 혐의만으로도 충분히 탄핵하고 법의 처벌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었는지 더 이상의 수사 의뢰도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중국 간첩이 한국의 선거에 관여했다”는 주장부터 “사상 최악의 영남권 산불은 중국 또는 간첩 소행”이라는 음모론까지 실체 없는 간첩 담론이 판쳤다. 반면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았지만 현재 재판중인 간첩 혐의 사건들이 있다. 제주 ‘ㅎㄱㅎ’(‘한길회’의 초성으로 추정), 창원 ‘자주통일민중전위’, 청주 ‘자주통일충북동지회’ 등이다. 가짜와 진짜 간첩 혐의를 구분해 실체를 밝히는 노력이 중요해진 이유다. 이 책 『남북 스파이 전쟁』은 그런 노력에 여러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남과 북에서 양성한 두 스파이를 추적해, 분단이 지속되는 한 실존적 문제일 수밖에 없는 남북 간첩전쟁의 진정한 속살을 꽤 자세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은 남파간첩 김동식(63)과 대북공작관 정구왕(66) 두 사람이다. 이들은 각각 남한의 체제 전복을 꾀하고, 북한의 붕괴를 도모하며 하루하루 생사의 줄타기를 탔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른바 블랙요원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이름이 당연히 없는 채 일종의 암호명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양측 모두에게 극비의 사항일 것이다. 간첩활동을 하다 체포되면 법정 최고형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투도(投刀, 칼 던지기)는 10m 거리에 있는 직경 40㎝ 목표물에 단도를 꽂히도록 하는 훈련이었다. 단도뿐 아니라 젓가락 · 식칼 · 도끼도 투도의 도구로 활용됐다. 임무 수행 중 식당 같은 곳에서 위험한 순간에 직면했을 때 숟가락 · 젓가락 · 포크 등 손에 잡히는 모든 걸 던져 위기를 탈출하는 연습이었다. 학생 대부분은 명사수로 길러졌다. 소련제 TT 권총, AK 자동소총, 소련제 대전차 로켓 R--- p.G-7, 체코제 기관권총을 가지고 각종 자세를 취하며 실탄사격을 수시로 했다. 철탑 꼭대기에 올라 이동하는 목표물을 조준사격하는 저격 훈련도 있었다. 김동식의 경험담이다.(p.90)


이 책은 두 명의 사건 전문 기자들이 직접 취재한 생생한 '간첩 추적의 기록'이라고 출판사 측의 소개글에 나온다. 첩보원들의 생활은 사실 사생활은 거의 없을 것이라 보인다. 일반인들과 같은 사생활을 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고대훈과 김민상 두 저자는 첩보원들의 파란만장한 발자취와 절절한 육성을 담아 이 책을 펴냈다. 군대 갔다 온 이외에는 공무원 생활은 해본 적이 없는 독자로서는 우리 공작원으로 북한에 갔다 온 사람을 중심으로 한 영화를 본 적이 있지만 기자가 직접 취재해 전해준 이야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책과 영상을 통해서 알게 된 게 전부이다. 영화나 책(소설)으로 것이기에 어디까지 진짜인지, 어디서부터 상상력인지 알 수 없어 오히려 답답할 정도이다. 이 책은 독자의 궁금증과 답답함을 상당 부분 해소시켜 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두 저자는 각각 37년, 17년간 일간지 기자로 일하며 대형 사건을 취재해 온 분들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이들 저자는 간첩 잡는 수사관 등 50여 명을 만나 간첩을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발굴한 뒤 두 스파이의 인생 역정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고 털어놓는다. 

저자는 「“요즘도 남북이 스파이 전쟁을 하느냐”고 묻는다면」이란 제목의 〈들어가는 말〉을 통해 어렵고 지난한 노력으로 비로소 책이 나와 다행이라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국군 정보사령부 중령 출신의 정구왕은 1998년 중국 단둥에서 블랙 공작원으로 활동하던 중 자택에서 북한 기관원들에게 납치당해 평양까지 끌려갔다 살아난 기적의 주인공이다. 220일 동안 평양에 감금됐다가 이중스파이가 되겠다고 속여 탈출에 성공한 뒤 가까스로 생환했다."(p.7~8) 

저자는 죽음의 문턱에서 "총살해달라"던 그의 비참한 절규, 살기 위해 발버둥 친 처절함, 국내에서 '사망'으로 처리된 기막힌 사연을 들었다고 한다. 평양에서 함경북도 회령, 중국 옌지·베이징을 거쳐 서울까지 오는 수천km의 대장정을 설명하는 그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탈출기는 이름 이니셜을 딴 'CKW 사건'으로 전설처럼 입소문으로만 전해오다 처음으로 공개된다고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어 이 책은 단순한 첩보 스릴러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김동식·정구왕은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 거창한 이념이나 신념을 좇은 게 아니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부름을 받아 스파이가 되고, 남과 북의 조국을 위해 몸을 던졌다. 그들의 고백과 궤적 하나하나는 우리가 모르던 남북 간 치열한 공작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 한 곳이 아프게 저며 왔음을 고백한다. 저자가 이번 취재를 하며 느낀 감정은 직업으로서의 스파이라는 가면을 걷어내면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나약한 인간 갈대였다는 점이다. 각자가 '공화국의 배신자' '버림받은 공작원'으로 추락하는 불행에 빠졌지만 홀로 이겨내야만 했다. 남북 분단이 낳은 기구한 운명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인터뷰 대상자들과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된 듯하다. 저자는 한 가지 전하고 싶은 말은 "스파이·공작원·간첩을 이념적 낡은 유물로 치부하는 사회적 거부감이 일부 있다. 하지만 스파이 전쟁에는 휴전도 종전도 없다. 우방이든 적이든 스파이가 없는 세상을 꿈꾼다면 망상이라고 경계한다. 

이 책은 2부로 나뉘어 있다. 김동식과 정구왕이 각각 한 부씩을 차지한다. 각 부에는 각각 9~10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진다. 1부 〈인간 병기 남파간첩 김동식〉, 2부 〈북한에 납치된 대북공작관 정구왕〉이다. 1부엔 「간첩전쟁」「74세 할머니 간첩 이선실」「밤 12시 지령 내린 평양방송」「브래지어 싸들고 잠수정 탄 할머니 간첩」「북한의 ‘혁명 전사’로 길러지다」「서울 사람이 된 평양 간첩」「남한 누빈 공작조 10팀」「포섭 1순위는 SKY 출신」「대선 2년 전 “고은을 포섭하라”」「경찰관 2명을 쏜 남파간첩」 등 10개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2부에는 「“북한이 26년 전 날 납치했다”」「목숨의 대가로 제안한 ‘이중스파이’」「위조여권과 평양 탈출극」「김동식·정구왕·수미 테리」「“사우나서 보자”던 협조자」「내게 눈가리개 씌운 조국」「스파이 본능에 만난 리계향」「“1998년 3월 13일, 나를 죽였다”」「정구왕이 26년 비밀 푼 이유」 등 9개장이다. 

책에 따름녀 남파간첩 김동식은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10년간 혹독한 훈련을 거친 인간병기다. 1990년대 서울에 잠입해 지하당을 구축하고, 여성 거물 간첩 이선실을 북한으로 복귀시키는 공적으로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다. 이후 두 번째 남파 때 운동권 인사 포섭을 시도하다 체포돼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그의 이야기는 남북 간첩 활동의 긴박함과 비장미를 보여준다. 대북공작관 정구왕은 정보사령부 중령 출신으로, 1998년 중국 단둥에서 활동 중 북한에 납치돼 평양에 220일간 감금됐다. 이중 스파이를 자처하며 탈출에 성공한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귀환했다. ‘CKW 사건’으로 알려진 그의 탈출기를 담은 책은 본 도서가 최초이다.


이 책은 그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남북 스파이 전쟁의 이면을 조명한다. 김동식의 포섭 활동과 정구왕의 탈출기는 첩보전의 긴장감과 인간적 갈등을 동시에 담았다. 할머니 간첩 실화의 주인공인 간첩 이선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분단 현실 속 생사의 줄타기를 한 그들의 발자취는 단순한 무용담이 아닌, 우리 시대에 던지는 교훈이다. 사건 전문 기자들이 발굴한 이 기록은 독자를 특별한 첩보의 세계로 초대한다. 중앙일보 더중앙플러스에 연재된 ‘남북 스파이 전쟁 탐구’를 바탕으로 엮은 이 책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스파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조명하며, 분단 현실이 그들의 운명을 어떻게 뒤바꿨는지 성찰한다. 저자들은 “스파이 전쟁은 휴전도 종전도 없는 실존적 문제”라며, AI 시대에도 변치 않는 첩보전의 본질을 강조한다. 두 스파이의 격정적 인생과 남북 대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며, 독자에게 진실에 다가가는 통찰을 선사하는 유일무이한 책이다.

김동식은 28세에 북한에서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았던 인물이다. 1990년대 서울에 잠입해 지하당을 구축하고 여성 거물 고정간첩 이선실을 북한으로 복귀시킨 공적을 인정받았다. 김일성은 “지난 40~50년보다 더 큰일을 했다”고 치하했다고 한다. 그러나 35년이 지난 지금 그는 한국에서 간첩 잡는 일을 돕는 전문가로 일한다. 두 번째 남파 때인 1995년 이인영·함운경·우상호 등 유명 운동권 인사와 고은 시인을 포섭하려다 실패한 후, 총격전 끝에 붙잡혀 대한민국에 정착했다.

정구왕은 정보사령부 중령 출신이다. 1998년 중국 단둥에서 블랙 공작원으로 활동하던 중 북한에 납치돼 평양에 220일간 감금됐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이중스파이를 자처하며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그의 이름 이니셜을 따 ‘CKW 사건’으로 알려진 그의 탈출기는 정보 세계의 치부가 담겨 이제껏 금기로 통했으나 이 책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 책의 백미는 스파이라는 가면 뒤에 있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김동식이 전하는 ‘맨땅에 헤딩’식 포섭 방식은 의외의 허술함과 동시에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유효할 첩보전의 본질을 보여줘 흥미롭다. 정구왕이 귀환 이후 한국에서 받은 대우는 가혹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블랙 요원으로 남지 못한 미안함을 동료 공작관들에게 전한다.할머니 간첩 스토리, 북한이 남파간첩들에게 여성을 대할 때 소련의 전설적인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처럼 하라고 교육하는 이유도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이들의 증언은 우리가 모르던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최근 정국으로 간첩에 관심이 많아진 이들이나, “요즘 간첩이 어딨냐”고 말하던 이들 모두에게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재미를 선사할 책이다.


이중스파이. 국군 정보사 소속 대북공작관 정구왕 중령은 운명의 기로에 섰다. 1998년 3월 13일 중국 단둥에서 신분을 숨긴 채 흑색(비밀) 첩보요원으로 활동하다 북한에 납치된 정구왕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북한을 살아서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했지만 24시간 철저히 감시당하는 처지에서 암담했다. 

조국과 가족을 등진 반역자가 되어 북한에 눌러앉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이중스파이로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가짜 변절을 제안하고, 북한이 이를 덥석 물면 가능한 절박한 도박이었다. 역용(逆用)공작. 적의 스파이를 포섭해 우리 편을 돕는 이중스파이로 만드는 활동이다. 적의 기밀을 빼내거나 역(逆)정보를 흘려 혼란시키는 데 유용하다. 북한은 정구왕을 역용공작에 활용하려는 속셈이 있는 듯했다.(p.181~182)


공작에는 휴민트(HUMINT·인간정보), 테킨트(TECHINT·기술정보), 오신트(OSINT·공개정보)라는 첩보 수집 수단이 동원된다. 휴민트는 공작원이나 협조자 등에게서 채취한다. 테킨트는 도·감청, 사진, 레이더, 해킹 등 영상이나 신호를 활용한다. 오신트는 언론·자료·인터넷 등 대중에게 공개된 정보다.(p.223)


저자 : 고대훈


1988년부터 중앙일보에서 사회부를 시작으로 파리특파원 · 사회부장 · 수석논설위원 · 기획 취재국장을 지낸 기자다. ‘한국기자상’을 수상하는 등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든 대형 사건을 다수 취재했다.


저자 : 김민상


2008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경제부, 국제부, 사회부를 거쳐 기획취재국에서 일하고 있다. 통일부를 취재하면서 남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현재 남북 스파이에 대해 집중 취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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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불시착 세트 - 전2권 - 진짜 백석의 재발견
홍찬선 지음 / 스타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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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의 불시착』에서는 백석 시인이 이상을 만나 시담을 나누고, 윤동주와도 시를 통해 교감한 장면을 그렸다. 노천명 시인의 시 〈사슴〉과 백석의 시집 『사슴』에 얽힌 스토리와 백신애 소설가와의 가슴 아픈 로맨스도 다뤘다. 손기정 마라토너와 깊은 우정을 나눈 뒤 함께 압록강철교를 달려서 건너는 장면도 등장시켰다. 홍찬선 작가는 『백석의 불시착』의 현장성을 살리기 위해 백석의 숨결이 스쳐 간 지역을 직접 답사했다. 백석이 유학했던 일본 동경의 청산학원(대학)과 졸업여행을 다녀온 이즈반도, 백석이 1940년부터 광복될 때까지 살았던 만주의 신경(현 심양) 안동(현 단동)과 함흥고보학생을 인솔하고 수학여행을 갔던 여순의 203고지 등을 다녀왔다. 백석이 조선일보 기자 시절 다녔던 광화문과 소공동,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뚝섬 등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백석의 불시착』은 본문에서 김영한에 관한 얘기는 하나도 다루지 않았다. “김영한의 자서전 『내 사랑 백석』을 정교하게 읽고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과 비교해본 결과, 『내 사랑 백석』에 나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라 김영한의 창작물”이라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김영한의 자서전이 허구라는 내용은 이 책의 〈부록1. ‘백석과 자야의 러브스토리’는 김영한의 소설이었다.〉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김영한이 『내 사랑 백석』에서 주장한 내용은 창작소설이거나 견강부회한 것이 많아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① 1936년 가을, 함흥의 음식점 함흥관에서 영생고보 영어 선생이던 백석 시인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고, 백석 시인이 자야(子夜)라는 호를 지어주었으며 ② 김영한은 1938년 말부터 1939년 말까지 서울 청진동에서 백석과 동거했고 ③ 백석의 대표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에서 나타샤가 김영한 자신이며 백석의 시 〈바다〉 〈내가 외면하는 것은〉 〈힌 바람벽이 있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등에도 자신이 등장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백석의 고향인 정주와 광복 후에 살았던 평양, 그리고 공산당의 숙청으로 정배(定配) 당한 뒤 죽을 때까지 거주했던 함경도 삼수(三水)의 관평농장 등에 관해서도 소설로 재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홍찬선 작가는 『백석의 불시착』을 쓰게 된 동기와 취재과정, 그리고 2년 동안 백석이 살았던 곳을 직접 답사하면서 밝혀낸 결과를 이 책에 가능한 한 담았다.


해방 직후 그는 조만식의 비서를 지내며 솔로호프의 『조용한 돈강』 등을 번역하고 김일성과도 가끔 만났다고 전해진다. 한동안 김일성 대학에서 강의까지 하던 그는 6·25 전쟁이 일어나자 중국의 한인촌에 머물다가 휴전후에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숙청을 당해서 고향 가까운 협동농장에서 시달려 오다가 1996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역시 앞서 인용한 『북한문학사전』에 게재된 내용이다.


1938년 봄이었다. 봄이 늦게 오는 함흥에도 진달래가 만발했을 때니 4월 중하순쯤이었을 것이다. 첫 시집 출판기념회 등으로 바쁘게 지낸 천명이 느닷없이 영생고보로 나를 찾아왔다. 얼굴은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띠었다.

“천명, 무슨 일이야? 편지나 전보도 없이, 갑자기 함흥에 나타나다니.”

“내가 흰돌을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어, 동남풍을 몰고 왔지.”

“뭐야? 뜬금없이.”

“흰돌의 별명을 사슴에서 당나귀로 바꿔 부르는 것을 상의하려고.”

“웬 당나귀?”

“시치미를 떼도 소용없어. 내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보고 그렇게 정했으니까.”

“아, 그 시?”

나는 1937년 겨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란 시를 썼다. 연이와 배신우가 도둑결혼한 고통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나는 시 초고를 천명에게 보여줬다. 고통은 나누면 줄어들고 기쁨은 같이 즐기면 불어난다는 말처럼, 배신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였다.(p.15, 2권) - 「12. 여문인 3인방」 중에서


다음의 내용을 소설 속에 품어 형상화시키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꿈을 바탕해 2년 여의 각고의 노력으로 소설로 엮어낸 것은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기대한다. 다음의 내용은 저자가 〈부록1. ‘백석과 자야의 러브스토리’는 김영한의 소설이었다.〉(2권)는 제목으로 별도 첨가했다.

- 나는 김영한이라는 기생과 깊게 사귀거나 동거한 적이 없다

- 김영한에게 ‘자야(子夜)’라는 호를 지어주지도 않았다

- 김영한이 쓴 『내 사랑 백석』이란 책은 김영한의 ‘창작소설’이다

- 홍 작가가 김영한이 왜곡한 사실(史實)을 바로잡아 나의 억울함을 풀어달라


*백석의 눈과 생각으로 장편소설을 썼다

- 백석의 등단 시 〈정주성〉은 진주성을 묘사한 것이다

- 백석의 첫 시집 제목을 『사슴』으로 지은 것은 배달겨레를 상징한 것이다

- 백석의 대표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나타샤는 박경련이다

- 백석이 1940년 만주로 간 것은 망명이었다

- 백석은 이상과 윤동주를 만나 시를 토론했다


또 저자는 백석이 살았단 곳을 직접 답사했다. 북한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 아쉽게 중단했지만 앞으로 여건이 조성될 경우 저자 홍찬선이 취재를 계속해 시리즈 마지막 3권을 완성시킬 것을 독자들에게 약속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는 다음의 곳을 중점적으로 답사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1, 2권을 작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 백석이 유학했던 일본 동경의 청산학원대학과 졸업여행을 다녀온 이즈(伊豆)반도 등

- 백석이 조선일보 기자 시절 다녔던 광화문과 소공동과 뚝섬 등

- 백석이 1940년부터 광복될 때까지 살았던 만주의 신경(현 심양) 안동(현 단동)과 함흥고보학생을 인솔하고 수학여행을 갔던 여순의 203고지 등

- 함흥은 직접 가지 못했지만 영생고보 영어선생 재직 때 자료가 있어 포함시킴


백신애의 노래는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힘든 세상을 어렵게 살아온 체험에다 여성 특유의 애절함이 묻어 나왔다. 경산군 안심면 반야월 과수원에 살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농촌의 가난함이 배었고, 만주와 시베리아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동포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스며있었다. 〈아서라 세상사〉는 내가 함흥에 있을 때, 연이와 배신우와의 도둑결혼을 안 뒤 가슴 아프게 불렀던 바로 그 노래였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이란 시에서 나는 “〈아서라 세상사〉라도 들을/ 류성기도 없는 것을 생각한다”고 절규했다. 내가 겪었던 아픔과 백신애가 체험했을 고통이 겹치면서 나는 울컥했다. 그 모습을 백신애에게 들켰다.

“아니, 동생. 이 좋은 날에 왜 눈물을 보이고 그러나?”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긴? 눈알이 빨갛고 어깨가 들썩거리는데.”

“누님,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건가요?”

나는 백신애의 품에 안기며 참고 있던 울음을 터뜨렸다.(p.116-117, 2권) - 「16. 백신애」 중에서


“『사슴』을 밤새워 필사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베껴 쓰는 동안 무척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필사본을 늘 갖고 다니면서 선생님의 시를 읽고 외웠습니다.”

윤동주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에서 『사슴』 필사본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필사본은 표지부터 끝까지 『사슴』 그대로였다. 아니 한 자 한 자 정성껏 쓴 글씨는 활자보다 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었다.

“내 『사슴』을 그렇게 사랑한다니 고맙네.”

“제가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동시를 쓰던 제가 『사슴』을 만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래, 『사슴』에서 어떤 시가 마음에 들었나?”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모닥불〉이었습니다.”

말을 마친 윤동주는 〈모닥불〉을 암송했다.(p.92, 2권) - 「15. 윤동주」 중에서


“조만식 선생님의 비서로 일하는 홍사민이라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백 시인을 모셔오라고 하셔서.”

“고당 선생님께서, 왜 저를?”

“자세한 것은 직접 말씀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한시가 급하니 반드시 모셔오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래요? 고당 선생님께서 그리 말씀하셨다면, 서둘러 가십시다!”

나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길을 재촉했다.

“백 시인, 어서 오게!”

“선생님, 이렇게 불러 주셔서 영광입니다.”

“백 시인, 내 곁에서 나를 좀 도와주게!”

“물론입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하겠습니다!”

“고맙네!”

나는 조만식 선생이 위원장으로 있는 평남인민정치위원회 외사과 소속으로 통역 업무를 담당했다. 고당 선생은 평양에 진주한 소련군 사령부 군인들과 자주 만났다. 나는 그때마다 고당 선생을 모시고 통역으로 참석했다. 8월26일, 평양에 들어온 소련군 제25군 사령관 치스차코프 장군과의 첫 만남은 비교적 우호적이었다.(p.210, 2권) - 「20. 조만식과 김일성」 중에서



처음 간 곳은 장춘역이었다. 백석이 이곳에 처음 내렸을 때는 신경역, 그때 역 주변은 이렇다 할 고층건물 없이 한산했을 것이었다. 신경은 일제가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허수아비 황제로 삼아 세운 만주국의 수도였다.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곳에 수도를 만들고 남만주철도가 이곳을 지나도록 했다. 남만주철도는 일제가 간도를 수탈하고 대륙을 침략하기 위해 대련과 여순에서 안동을 거쳐 신경과 하얼빈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뒤 청과 1909년, 간도협약을 맺어 간도를 넘겨주는 댓가로 남만주철도 부설권을 빼앗았다. 우리 땅인 간도를 넘겨주고 간도침략의 고속도로를 만든 것이었다. 을사늑약이 원천무효이기 때문에 간도협약도 원천무효이지만, 힘이 폭력이라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1940년 1월, 살을 에는 만주 추의는 백석을 꽁꽁 얼어붙게 했을 것이다. 지금은 6월, 한낮은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백석이 그때 느꼈을 황량함은 없었다. 다시 지은 장춘역은 입장료를 내야 겨우 속을 보여준다며 위압적으로 서 있었다. 역 앞은 넓은 대로를 끊임없이 오가는 자동차 물결과 높은 빌딩 숲으로 바뀌었다. 추위와 외로움에 떨었을 백석을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다. 

장춘역에서 '동삼마로 시영중택 35번지 황씨방'으로 향했다. 1940년 서울에서 발간된 문인주소록에 기재된 백석이 살던 집 주소였다. 하지만 당신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곳 동삼마로 33번지부터 42지번까지는 주상복합건물로 재개발됐다. 재개발됐을 때는 장통종합대시장이란 이름이 건물 외벽에 붙었다. 지금은 그 이름도 지워졌다. 삼거리쪽 모서리 1층에 항애대약방이 있어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시인들이 빙 둘러서서 백석의 시 「북방에서-정현웅에게」를 낭독했다. 그가 신경에 와서 처음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시다.(p.258, 2권) - 부록 2 〈「북방에서」부터 「나 취했노라」까지 백석의 만주 현장을 가다〉 중에서


저자 : 홍찬선(덕산 德山 洪讚善)


1963년 충남 아산군 음봉면 산동리 뫼골에서 태어나 월랑국민 음봉중 천안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한국경제신문 동아일보 머니투데이에서 28년 동안 경제기자로 지내면서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하고 서강대 경영학과 박사과정(재무관리전공)을 수료했다. 일본 주오(中央)대학교 기업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지냈고 중국 칭화(淸華)대학교 경제관리학원 고급금융연수과정도 다녔다. 머니투데이방송(MTN) 보도국장, 머니투데이 북경특파원과 편집국장을 지냈다. 100세 시대를 준비하려고 2017년 7월에 자퇴(스스로 은퇴)해 시인과 소설가와 희곡작가 되고, 동국대 정치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두 딸과 두 아들을 두었다. 『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2016년 가을호), 제1회 자유민주시인상 최우수상 수상(2021), 제1회 서울시인협회상(2023) 등을 받았다.

소설집 『그해 여름의 하얀 운동화』와 시집 『틈』 『남한산성 100처100시』 『가는 곳마다 예술이요 보는 것마다 역사이다』 『독도연가』 『서울특별詩 1, 2, 3, 4, 5』 등 20권을 출간했다. 기타 경제서적으로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패치워크인문학』 『임시정부 100년 시대 조국의 기생충은 누구인가』 『20대 대통령을 위한 경제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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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윤동주이다. 설문조사 결과다. 그리고 한국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백석이다. 이 책 『백석의 불시착』은 신문기자 출신의 작가 홍창선이 쓴 소설 작품이다. 시인이기도 한 저자 홍찬선은 백석의 시에 매료된 분인 것 같다. 사실 백석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의 우리 시인으로서 꽤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윤동주가 찾아와 시에 관한 대화를 나눈 사이다. 윤동주가 1917년생인데, 백석은 1912년생이니 다섯 살이 많은 나이다. 한참 시인을 꿈꾸던 윤동주가 어느 날 백석의 시를 필사한, 너덜너덜한 노트를 들고 찾아왔다고 한다. 그때 윤동주는 아마 백석이 처음이자 일제강점기 시기 마지막 낸, 시집 『사슴』을 구할 수 없어 필사해 읽고 쓰고 했던 모양이다. 그의 정성에 감동했는지 이들은 이날 시에 관한 많은 토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인 백석은 해방 이후 북한에 있었기에 분단과 전쟁을 겪은 후 다시 서울로 오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적대 국가에서 활동하는 바람에 우리 국민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점이 있을 것 같다. 백석은 외모가 준수해 많은 여성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도 있다. 사실 사상의 문제로 북한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조만식 선생의 일을 돕기 위해 선생의 부름을 받고 한걸음에 달려갔다고 한다. 그러나 분단이 되고, 전쟁까지 겪었으니 서울로 올 수도 없었을 터다. 평북 정주군 갈산면 출신이니 굳이 서울로 올 특별한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시와 시인으로서의 백석은 일제강점기 이후의 소식은 별로 전해진 것이 없었던 듯하다. 

    그의 본명은 기행이며, 백석은 문단에 나오면서 사용하게 된 필명이다. 그의 부친은 한국 사진기술사의 초창기적인 인물로 〈조선일보〉에서 사진반장을 지냈으며 퇴임 후에는 낙향하여 정주에서 하숙을 경영했다고 알려진다. 백석은 개화한 집안의 분위기에 걸맞게 일찍부터 정규 신식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918년 오산 소학교에 입학해 1924년 졸업과 동시에 오산학교에 진학했다.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함과 동시에 조선일보사 후원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으로 유학했다. 일본 도쿄의 청산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다가 1934년 그의 나이 23세 때 귀국, 조선일보사에 입사했다. 그는 조선일보에 근무하면서 자매지 〈여성〉의 편집을 보던 중인 1935년 8월 31일 〈조선일보〉에 시 「정주성」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백석은 첫시집 간행 후 조선일보사를 그만두고 함경남도 함흥의 영생여고보 교사로 있다가 1938년에는 교원직을 사임하고 서울을 거쳐 만주 ‘신경’으로 갔다. 이후 만주의 안동에서 세관업무에 종사했고, 해방 후 귀국하여 그의 고향 정주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책 『백석의 불시착』은 세 권짜리 장편소설로 기획했다. 백석이 해방 이후 주로 북한에서 활동하고 머물렀기에 북한에서의 행적은 일부 알려진 것이 우리가 알 수 있는 거의 전부인 셈이다. 그것도 남북이 휴전 상태이니 왕래는 말할 것도 없고 편지도 오갈 수 없는 완전한 적대국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이런 시대적 상황은 아름다운 시, 민족의식이 담긴 시를 발표해 같은 시대 시인·문인들로부터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백석에 대한 온전한 평가가 불가능하다. 특히 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는 주로 우리말(토착어)과 우리 농촌 풍경이 날것 그대로 표현되는 절창으로 모더니즘 시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평가도 받았다고 한다. 백석은 시인이나 문인, 화가 등과도 잘 어울렸으며 훤칠한 키와 희고 빼어난 외모, 그리고 친화력 있는 성격으로 대인 관계도 원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 홍찬선은 우선 서울과 통영 등 국내는 물론 중국 연길시 등 백석의 행적을 찾아 갈 수 있는 모든 곳을 찾아 헤맸으나 정작 북한에 대한 정보는 크게 얻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저자는 우선 두 권을 발행해 지금까지 백석의 발자취를 찾아 취재한 정보를 바탕으로 소설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저자 홍찬선은 이 소설 작품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백석은 왜곡되어 잘못 알려졌다."고 단언한다. 다른 면에서는 몰랄도 최소한 기생 김영한과의 애틋한 사이였다는 말은 왜곡돼 잘못 알려진 것"으로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 소설 작품의 탄생은 저자 홍찬선의 어느 날 꾸었던 꿈으로부터 비롯됐지만 "백석은 김영한이라는 기생과 깊이 사귀거나 동거한 적이 없고, 그녀에게 ‘자야’라는 호를 지어주지도 않았다."는 주장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일제강점기 백석의 있었던 흔적을 모조리 찾아다니며 현장답사를 통해 왜곡된 부분은 바로잡는 데 많은 지면을 배정하고 있다. 물론 그럴 만한 사건이 있었다. 앞서 언급한 김영한은 당시 권번의 기생이었다고 한다. 당시 기생은 예술인으로서, 지금의 기생과는 꽤 다른 사회적 위치였다고 한다. 사실 조선 시대 기생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 중에 참된 예능인, 예술인들이 많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백석의 불시착』은 신문기자 출신 시인인 홍찬선 작가가 백석의 꿈을 꾸고 2년 동안 백석이 살았던 곳을 직접 답사하면서 심혈을 기울여 쓴 다큐멘터리 장편소설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및 남북 분단기를 살아온 백석 시인의 삶을 불시착의 연속으로 보고, 그의 삶의 궤적을 쫓고 그가 남긴 시들이 어떤 배경에서 쓰였고, 어떤 뜻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홍찬선 작가는 “백석 시인은 한글사용이 금지되고 많은 지식인들이 친일로 돌아선 일제강점기에 오로지 한글로만 시를 썼다”며 “백석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끊임없이 유랑한 그의 삶과 그가 처했던 상황을 바르게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백석의 데뷔시 「정주성」은 홍경래 난이 있었던 평안북도 정주성에 대해 쓴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하지만 홍찬선 작가는 「정주성」이 경남 진주의 ‘진주성’을 노래한 것으로 해석한다. 「정주성」은 제목만 정주성일 뿐 실제 장면은 ‘진주성’이며, 내용도 임진왜란 때 김시민 장군이 왜군을 물리친 뒤 허물어진 모습을 아파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백석 시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 된 시집 『사슴』의 제목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견해를 제시한다. “시집에 「사슴」이란 시도 없고 사슴이란 시어도 등장하지 않는데 『사슴』이라고 한 것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면서 배달겨레를 상징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일제가 배달겨레의 상징인 범을 멸종시키고, 말도 범 대신 호랑(虎狼)이란 한자말로 바꾼 상황에서 범을 쓸 수 없어, 신라 때부터 임금을 상징한 사슴으로 일제의 검열을 피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제기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각이다.

    백석의 시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초기에는 이미지즘에 연결되는 모더니즘의 경향을 드러냈다. 즉 그는 모더니즘 문학운동의 중요 과제인 지적 통제에 의한 감정의 절제에 성공했던 것이다. 첫 시집 『사슴』에 대한 논평에 있어서 오장환은 백석을 비판하면서 그가 스타일만을 찾는 모더니스트에 불과하다고 하였지만 김기림, 박용철은 향토 취미에도 불구하고 그것과 명료하게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다른 모더니즘 시인들과 구분되는 백석의 특징은 그러므로 철저히 도시문명을 외면한다는 점이었다.


    모더니즘이 일반적으로 근대 도시문명을 근거로 하는데 반해 백석의 경우는 고향의 재현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의 시가 지닌 유소년 회상과 동심지향성 등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 또는 추억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고향상실에 대한 기본 정조로 시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의 시에 가득차 있는 외로움·쓸쓸함·슬픔·서러움 등이 결국은 외로움의 정서라는 ‘향수’로 집약이 된다.


    어늬 아침 계집은

    머리에 무거운 동이를 이고

    손에 어린 것의 손을 끌고

    가퍼러운 언덕길을

    숨이 차서 올라갔다

    나는 한동일 서러웠다

    - 「절망」 중에서


    오늘 고향의 내 집에 있는다면

    새 옷을 입고 새 신도 신고 떡과 고기도 억병먹고

    일가 친척들과 서로 모여 즐거이 웃음으로 지날 것이언만

    - 「적막강산」 중에서



    이 책과 직접 관련이 없지만 지난 1995년 출간된 『북한문학사전』에 기록되어 있는 백석 시의 특질로는 산문시로의 가능성과 표현 기법으로서의 직유의 뛰어난 사용이다. 이것은 토속적이고 진솔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효과적으로 이용된다. 백석의 시는 일제강점하의 국권상실 시대에 민족정서와 혼의 상징인 민족어의 완성을 위해 진력한 데서 소중한 의미가 드러난다고 하겠다. 민족공동체, 문화공동체로서 모국어를 사용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그 나라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시가 현실에 맞서서 개척하고 이겨 나아가려는 치열하고 능동적인 대결과 미래지향의 역사의식이 부족하더라도 식민지 땅이 유린당하는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 민족적 삶의 원형성을 내면적 의식 속에서 추구해 온 시인이라고 실려 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힌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쟈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p.251-252, 1권) - 「10. 나타샤」 중에서


    나는 공손히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하지만 이상은 별다른 표정 없이 앉아 있었다. 흔한 인사말조차 하지 않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김기림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 시인, 백 시인 알지? 시집 『사슴』을 출간하고 출판기념회까지 열어 장안의 화제가 됐잖은가?”

    정지용도 거들었다.

    “한국 시단의 위대한 탄생을 알린 백 시인이 『시와소설』에 작품을 내기로 했다네.”

    그제야 이상이 고개를 들고 인사했다. 하지만 여전히 건성이었다. 정지용과 김기림, 두 선배의 체면을 봐서 어쩔 수 없이 인사한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선배의 소설 〈12월12일〉과 연작시 〈오감도〉를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자기가 쓴 소설과 시가 나오자 이상의 눈빛이 달라졌다.(p.170, 1권) - 「7. 이상」 중에서


    예쁜 꽃은 오래 가지 않고 좋은 사람은 늘 함께 하지 않았다. 나의 함흥 생활이 그랬다. 영생고보 영어 선생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1년이란 세월이 후다닥 흐르고 다시 봄이 왔다. 하지만 1937년 봄은 봄 같지 않았다. 나에게 청천벽력으로 다가온 봄은, 배신의 해가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서곡이었다.

    “아니, 진이!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1937년 4월7일 수요일 오후였다. 조선일보 기자로 한참 기사 쓰기에 바빠야 할 벗, 이진이 영생고보로 나를 찾아왔다. 불원천리하고 찾아온 벗이 반가웠다. 하지만 주말이나 공휴일도 아닌 평일에 이 먼 함흥까지 찾아온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틀림없이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나는 이진의 얼굴이 상당히 굳어 있는 것을 보고 ‘큰일이 일어났다’고 직감했다.(p.195, 1권) - 「8. 배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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