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 천재들을 이끈 오펜하이머 리더십
박종규 지음 / 터닝페이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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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 제조 프로젝트를 이끈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을 재조명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인 독일, 일본을 제압하기 위한 특단의 무기 개발 경쟁에서 미국이 앞섬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로써 물리학자였던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자로서가 아닌, 가공할 무기 제조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당시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로 '맨해튼 프로젝트'란 명칭의 원자폭탄 제조 연구개발팀의 리더로 오펜하이머가 지명됐다. 그는 물리학자로서의 명성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이 세계 패권을 차지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다만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를 거침으로써 오펜하이머는 원폭 제조를 후회하고 핵반대 운동에 참여하는 '모순'을 보여주기도 했다. 원자폭탄은 가공할 위력으로 한 번의 폭발로 수십 만 명의 인명을 살상하는 바람에 세계 강대국들의 전략 무기로 너도나도 개발함으로써 세계 무기와 전쟁의 흐름을 한순간에 바꾸어 버렸다. 

오펜하이머는 1954년 청문회를 통해 그가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던 원자력에너지위원회에서 과거 행적이 낱낱이 왜곡되면서 파헤쳐지고, 결국 쫒겨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마치 순교자처럼 그 결과를 묵묵히 받아들였다고 기록은 증언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당연히 상처받고 고통스러웠겠지만, 누구에게나 있는 '모순' 속에서 자신과는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과 그 당시 처한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2022년 12월, 미국 정부는 1954년 청문회에서 오펜하이머에게 내린 보안인가취소는 부당했다고 판단하고 그 결정을 취소했다. 오펜하이머의 비밀취급인가가 취소된 지 68년 만에, 그리고 1967년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5년 만에 마침내 그에 대한 공식적인 복권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난해 7월 개봉된 영화 〈오펜하이머〉 끝의 한 장면에서, 1954년의 청문회 결과가 내려진 다음 "그렇게 혹독한 벌을 묵묵히 견디면 세상이 당신을 용서할 것 같아?"라는 아내 키티의 울음 섞인 힐난에 오펜하이머는 "두고 보면 알겠지"라고 조용히 답한다. 이 책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의 저자 박종규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마지막 장면의 짧은 말 속에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는 것과 자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고 분석한다. 그의 리더십을 재조명하기로 결심하게 된 까닭이다.



지난해 7월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열풍을 일으키며 역사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이 놀라운 흥행에는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현존하는 최고의 감독이 영화를 만든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인류의 역사를 바꾼 인물들 중 상대적으로 베일에 싸여있던 ‘오펜하이머’를 본격적으로 다룬 전기 영화라는 점이 가장 컸다고 영화평론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그동안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대중에게 알려진 정보가 적은 사람이었다. 머리가 비상했고 핵물리학과 양자물리학의 대가였지만, 정작 물리학자로서의 업적은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닐스 보어나 엔리코 페르미 같은 기라성 같은 위대한 학자에 비하면 비교적 평범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 독자도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기 전까지는 원자폭탄 제조에는 아인슈타인이 기본적 자료를 제공하고 행정으로서의 프로젝트 수장 역할을 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그 책임자가 '오펜하이머'라는 이름의 물리학자란 사실도 제대로 모를 정도였다. 다시 말해 학계에서는 그가 맡은 폭탄이 대량 살상 무기로서 유사 이래 '최악의 무기'라는 여론에 밀려 미국의 승전 영향력이 반감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원자폭탄 프로젝트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리더로 기억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한 번에 끝낸 원자폭탄을 만든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이자 리더였지만, 폭탄 투하를 결정한 트루먼 대통령 앞에선 “내 손에는 피가 묻어있습니다”란 발언을 해 트루먼 대통령에게 '겁쟁이 과학자'라는 멸시를 받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또 미국이 소련과 핵전쟁을 시작한 이후엔 자신이 만든 핵폭탄을 반대하는 완전히 모순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는 전쟁을 끝낸 '영웅'과 대량살상 무기의 '학살자'라는 이중적 평가를 받았을 것으로 누구나 추정할 수 있다. 오펜하이머의 변신(?)도 어쩌면 이런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저자는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을 읽어냈다고 밝힌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인류 역사를 뒤바꾼 역사적 인물인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을 조망하고 설명하는 책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저자 박종규는 비밀해제된 기록, 영화와 기록 등을 통해 오펜하이머를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며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킨 탁월한 리더로 분석한다. 이 프로젝트에는 인력 13만 명, 비용 40조 원이 투입되었고, 개발 목표 기한을 불가능하게 설정해 모순으로 가득 찬 평범한 인간을 리더로 임명했다는 점에서 무리한 계획이었다고 한다. 결정을 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업적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를 수행한 오펜하이머는 온갖 비난을 받아낸 '희생양'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 오펜하이머는 청년기에 타인의 재능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으로 자신을 주체하지 못했으며, 리더가 된 후에는 수많은 장애물들을 극복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인생 후반기에는 자신이 개발한 핵폭탄에 반대하는 모순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오펜하이머에 대한 면밀하고 끈질긴 연구와 분석을 통해, 훌륭한 리더는 자신 안의 ‘모순’을 직면하고 ‘인정’한다는 사실을 이미 발견해냈다. 모순과 인정을 통한 리더는 그것을 통해 오판과 실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을 한다고 저자는 본다. 오펜하이머 또한 ‘모순’과 ‘인정’이라는 촉매제를 통해 리더로서 끊임없이 성장했고, 결국엔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탁월한 리더로 거듭났다고 이 책에서 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책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에는 오펜하이머가 불가능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적용한 사람, 일, 조직에 대한 다양한 방법론들을 담았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며 사람을 이끄는 ‘감성지능 리더십’,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에서 시작되어 확실한 성과를 내는 프로젝트 방법으로 급부상한 ‘애자일’*, 권위를 바탕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명령을 내리는 탑다운 방식이 아닌 조직의 맨 아래 구성원부터 설득하여 조직 자체의 변화를 이끄는 ‘상향식 조직개발’ 등 리더와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리더십과 방법론의 모든 것들을 오펜하이머가 실천한 프로젝트 리더로서의 한 일들을 상황별로 정리해 보여준다.

* 애자일(Agile) :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이미 ‘애자일’(Agile)이라는 단어가 익숙할 테다. 애자일은 문서작업 및 설계에 집중하던 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프로그래밍에 집중하는 개발 방법론이다. 애자일이란 단어는 ‘날렵한’, ‘민첩한’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다. 애자일 개발 방식도 그 본래 의미를 따른다. 정해진 계획만 따르기보다, 개발 주기 혹은 소프트웨어 개발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식을 뜻한다.(독자 주)



이 책은 모두 4부(Part) 25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부 〈뛰어난 리더도 사람이다-미숙했던 오펜하이머〉, 2부 〈탁월한 리더는 만들어진다-새로 태어난 오펜하이머〉, 3부 〈훌륭한 리더는 사랑받는다-모두가 원하는 사람이 된 오펜하이머〉, 4부 〈진짜 리더는 숨지 않는다-전부 꺼내보였던 오펜하이머〉 등이다. 25개의 각 장에는 핵심어가 등장한다. 오펜하이머를 중심으로 4부로 나눈 뒤 각 장에서 리더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덕목을 핵심어로 표기해놓았다. 일부만 여기에 적시해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많은 덕목이 제시된다. 이 많은 덕목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는 의문이 들지만 오펜하이머가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리더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오펜하이머는 가지고 있는 것이 있고, 또 리더가 된 다음에 습득한 것도 있다. 그러나 리더는 어찌됐든 이런 조건들이 뒷받침되어야 탁월한 리더로서 거듭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한, 필요한 리더십의 덕목들이 이 책에 차근차근 선을 보인다. 리더고 되고자 한다면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책에 핵심어로 표기된 리더의 조건을 깊이 사유할 수 있고, 실천해야 탁월한 리더로 거듭날 수 있다. 이 책에서 채택한 오펜하이머는 많은 것이 부족했지만 오히려 많은 것을 실천하며 불가능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질투 시기심 자존감 모순 양면성 다면적 입체적 오만 겸손 감성지능 사회성 자기인식 긍정심리학 강점탐구 오너십 로열티


이상은 1부에 독자가 각 장에 끼워넣은 핵심어들이다. 이들 핵심어는 각 장의 본문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되고 있다. 오펜하이머의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드러난 많은 문제점도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약점이 강점이 되고 리더십의 중요한 조건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또 그 에피소드를 오펜하이머가 프로젝트 수행 과정과 이후의 행동에 대해서 잘 드러내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각 장의 제목에 주목해 본다. 이를 테면 1부 5장 「그는 싫어하고 재능도 없는 실험 물리학을 포기했다」에서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배우고 있던 실험물리학이 자기의 재능과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오펜하이머는 결국 독일의 괴팅겐 대학교로 옮겨, 자신이 좋아하고 또 잘 할 수 있는 이론 물리학에 집중하게 된다. 오펜하이머는 당시를 회고하며 자신이 실험실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해방감을 느꼈으며, 이론 물리학이라는 재밌으면서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찾아서 기뻤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잘 못하고 게다가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과감히 떨쳐 버리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그 후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고,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이론 물리학 분야에서 훌륭한 성과들을 낼 수 있게 되었다.(p.80) 5장의 핵심어를 저자는 '#긍정심리학 #강점탐구'로 기록하고 있다.



15장에서 저자는 '#진성리더십 #진정성'을 꼽고 있다. 책에 따르면 진정성은 그리스 말인 'Authentikos(자연스럽게 생긴, 진정한)'에서 비롯된 말로 원래의 형태나 본질을 유지하면서 모방이나 가짜가 아닌 진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Authentikos'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인 'Authentes'인데, 이 단어는 'autos(자신)'와 'hentes(행동하는 존재 혹은 성취)'의 두 의미가 합쳐져서 '자신의 권위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진정성을 가지는 것은, 소크라테스가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지가 없다"ㅁ녀서 강조한 '자기탐구'와 '자기성찰'을 통해, 즉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이해하는 노력을 통해서 실현이 가능하다. 그런데 어찌 보면, 그렇게 어려울 것만 같지는 않은 진정성을 추구하는 일, 다시 말해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왜 실제로는 쉽지 않을까? 왜 나 자신을 비롯해서 우리 주변에는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그 진정성의 개념 안에는 자신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그런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또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게다가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노력은 지금까지 자신이 겪어온 경험과 삶,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을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만의 시선으로, 즉 주체적으로 이해하고 또 주도적으로 통제하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게다가 우리는 타인의 기대 혹은 사회적인 기대나 잣대에 영향을 받거나 쉽게 휘둘린다. 모두가 한 명의 주체적인 개인으로서 자신의 가치와 목표에 맞게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안다. 또 때때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감추거나 혹은 의도적으로나 의도치 않게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말하거나 행동할 때도 있다. 즉 자신의 진정성을 숨기게 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물론 종전 후 오펜하이머의 행동에 따라 그가 진정성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다만 저자는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면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초창기에 장교 군복을 차려 입은 오펜하이머에게 이지도어 라비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Take your uniform off ··· So, be yourself, only better(먼저 그 군복을 좀 벗어버려. ··· 너 자신이 돼야지. 더 나은 자신.) 여기에서 'be yourself'는 자신의 본래 모습을 지키라는 것을 의미하고, 'only better'는 좀 더 나은 버전의 자신이 되도록 노력하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것은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모순'과 '인정'을 통해 탁월한 리더로 거듭나기까지 오펜하이머의 리더십은 오늘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덕목일 듯싶다. 리더로 가는 길목에 반드시 부딪치는 문제일 수도 있다. 오펜하이머 역시 연인원 13만 명의 과학자들을 이끌며 절체절명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성공기키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있었다는 것을 영화 〈오펜하이머〉에서도 보여주지만 하나하나 짚어서 리더십의 덕목으로 상장한 저자의 리더십에 대한 연구는 굉장히 응원받을 만하다고 독자는 생각한다. 뛰어난 리더도 결국 사람이기에 처음에는 미숙했던 사람 오펜하이머가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많은 일들이 리더십의 덕목과 연결되는 과정을 밝히고 이를 연구 결과로 묶어내는 저자의 리더십 강의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먼저 읽은 독자로서 이제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특히 저자가 각 장의 제목으로 쓴 문구들은 잘 기억해 자신의 도약 발판으로 이용하는 독자들은 수많은 현인들의 오랜 지혜를 한 손에 쥐고 있는 충만한 느낌을 가질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스스로를 알고 이해하는 것 즉, 진정성의 힘과 긍정적인 영향력을 알게 된 사람은, 아무리 시간이 없고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더라도, 진정한 나다움이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자기를 거짓 없이 탐구하고 진실되게 성찰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진정성을 찾으라는 말인 “너 자신을 알라.”가,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나은 리더가 되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메시지라는 것 역시 진심으로 이해할 것이다.(p.213) - 「결국 진정성이다」 중에서


저자 : 박종규


뉴욕시립 대학교(CUNY) 스테튼아일랜드 칼리지 경영학과 조교수.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리더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팀원과 팀장으로 일하면서 ‘리더십’이란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리더십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 알고자 하는 욕망이 커졌다. 결국 대학교에서 리더십을 전공하고 지금은 리더십을 가르치는 학자이자 리더십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성균관 대학교, 서울시립 대학교, LG, 포스텍, 롯데 등에서 리더십 관련 강의를 했고, 〈동아비즈니스리뷰〉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LG인화원에서 근무했다. 타워스왓슨과 딜로이트에서 HR과 전략 컨설팅을 수행했고, 현재는 미국 로스웰앤드어소시에이츠의 파트너로도 일하고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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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 스케치
김유경 지음 / 하움출판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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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누드 스케치』는 우리에게는 여간해서 접하기 힘든 북한 문학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는 소설집이다. '탈북 작가' 김유경의 두번째 단편소설집이고, 네 번째 작품으로 알려졌다. '탈북 작가'란 명칭은 공식적 명칭은 아니지만 저자가 북한 출신으로 대한민국으로 와서 문학 활동을 계속한다는 의미에서 독자가 임의로 붙여본 것이다. 독자들이 그를 기억하기 쉽게 붙인 것으로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이 책의 표제어 '누드 스케치'는 북한에서는 허용되지 않은 그림 기법임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은 실제 사람의 '누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실상을 가감없이 그린 화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리는 북한의 문학 활동을 잘 알지 못한다. 철저하게 가려져 있는 데다 그들의 문학은 사상적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본주의적 사회의 단점을 형상화하는 작품만 허용된다는 사실을 교육을 통해 배워 알고 있는 터다. 오히려 그들이 '최고 존엄'이라고 하는 독재자 칭송의 문학이 활발하다고 알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도 그들의 문학의 한편만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이 책 『누드 스케치』에는 모두 8편의 단편소설이 들어 있다. 출판사 측에서는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북한 소재를 다룬 작품들(「죄를 묻다」, 「누드 스케치」, 「되찾은 밑천」, 「붉은 저녁노을」)과 탈북민을 주인공으로 남과 북 소재를 함께 다룬 작품들(「하얀 별똥별」, 「베이초센 마마」, 「올가미」, 「그 봄날의 인연」)이 혼재되어 있다고 분류한다. 독자들에게는 작중인물이나 활동 공간 등이 생소할 수 있지만 읽다 보면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흡입력을 지녔다. 어쩌면 북한 문학을 접하지 못하기에 희소성과 북한의 현실을 가늠하는 잣대로서의 책읽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소설들의 주제는 북한의 현실과 맞닿아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도 쉽게 접하는, 사랑하지만 헤어져야 하는 연인, 가슴 아픈 모성애, 선택의 갈림길에 선 순간 마주하게 된 충격적인 진실 등으로서 거부감은 없다. 더욱이 저자 김유경은 대한민국 사회 생활에도 정착한 만큼 충분히 대한민국 소설 기법으로 풀어내는 이중고를 겪은 점을 감안한다면 작품 수준보다는 소설의 스토리 중심으로 읽는 것이 독자들이 흥미를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독자는 믿는다.



우선 출판사 측 분류대로 게재 작품들 가운데 북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다룬 4편의 작품을 살펴본다. 작품은 4편이다. 게재 순으로 「붉은 저녁노을」이 가장 먼저다. 이 작품은 북한 최고 존엄 김정은이 정식으로 권력을 틀어쥐고 있던 고모부 장성택 김정은에 의해 숙청되는 과정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용돌이 속 연인들의 가슴 아픈 사랑을 다루고 있다. 저자가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실었다는 것은 아마도 이 작품에 가장 애정이 있는 것을 아닐지 궁금하게 한다. 

「죄를 묻다」는 우리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이끌어가고 있는 '한류 문화'를 소재로 한다. 한류 문화 가운데서도 한국영화가 북한 주민들에게 널리 퍼지고 있다는 현실은 우리 방송 가운데 탈북자들이 출연해 현실을 고발하는 형식의 프로그램에서도 자주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나 방송에 자주 나온다고 모든 우리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특성상 방송에 부적절한 용어라거나 선정적, 폭력적 용어 사용이 불가능한 점에 비춰볼 때 글로 보는 북한의 실상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독자 개인적으로서도 방송을 통해 자주 접했던 이야기다. 한국영화는 북한 사회에서 엄격히 시청이나 유통이 금지되어 있을 것이다. 북한 특유의 페쇄적 사회의 산물이다. 한국영화 시청이나 유통은 국가안전보위부 담당 사건으로 취급한다. 북한에서는 줄여서 '보위부'로 통칭하는 모양이다. 보위부는 반체제사범 색출 및 관리, 출입국 관리, 간첩 및 불순 적대분자 색출활동, 해외정보 수집 및 공작, 주민사상 동향감시 등 체제 안전과 유지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곳이다. 한국영화 시청이나 유통을 보위부에서 담당한다는 것은 국가 질서를 문란케하는 정치범 수준으로 판단하는 듯하다. 한국영화를 팔다가 적발된 사람은 최고 사형까지 받을 수 있는 중범죄로 다룬다고 하니 북한 사회의 조급성과 문화적 붕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알아낼 수 있는 소설이다. 

우리도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이나 인사들을 중범죄인으로 다룬 적이 있지만 지금은 법 조항에서 사라졌다. '불온서적' 적발 감시하던 제도도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 사회에서는 사회주의를 좀 먹는 것으로 아직도 엄벌을 하고 있다고 한다.



「누드 스케치」는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기근의 시기(1990년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를 지내는 동안 배급도 보수도 주지 않는 직장인 극장에 나가는 화가가 주인공이다. 북한은 계획경제 사회다. 공동으로 일하고 공동으로 생산물을 받는 공산주의 사회다. 따라서 국민들이 먹을 것, 입을 것, 살 곳 등 의식주는 물론 의료, 교육까지 모두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 제도다. 그러나 국가가 돈이 없으면 배급도 끊기고 먹을 게 굶주리게 된다. 국민이 굶주리면 다음 그 사회가 어디로 갈지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혁명으로 국가는 전복된다. 이런 과정은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실 공산주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러시아에서 가장 먼저 벌어진 것도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 로마노프가의 황제가 유럽에서 지양하던 농노 제도를 유지하고 일반 국민마저 농노로 전락하는 상황에서 공산주의 혁명(10월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이런 러시아가 주변의 많은 나라를 소련(소비에트 연방)으로 묶어 공산주의 세를 확산시키고 세계의 패권국인 미국에 맞섰으나 겨우 70년을 넘길 무렵 경제 체제 붕괴로 실패했다. 이때 푸틴이 정권을 잡고 들어서기 전 민주주의 소련을 이끌었던 유명한 서기장들이 고르바초프와 옐친이다. 그러나 혁명에 참여했던 국민들의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하자 결국은 강력한 나라 회복을 내세운 푸틴에게 나라를 맡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누드 스케치」는 파국으로 치닫는 공산주의·사회주의 체제의 가장 적나라한 치부를 보여준다. 난처한 상황에서 인근에 사는 화교가 찾아와 노모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의뢰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그림으로 거금을 번다. 중국에 사는 화교의 사촌이 그림을 보고 감탄하며 주인공에게 북한의 현실이 담긴 그림을 요청한다. 북한의 현실을 그려 외국으로 반출하는 것은 물론 초상화를 그리는 것도 불법인 북한에서 몇 차례 그림을 보내 큰돈을 벌지만, 그림이 미국으로 넘어가 화제가 된다. 이렇게 일이 확산되자 이미 통제 북한 사회의 흐름을 개인인 화가 한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개인적 능력은 집단의 통제하에서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는 집단 체제의 허점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저자 자신의 현실과도 다르지 않다는 것은 독자만의 느낌일까? 



「누드 스케치」는 이로써 선정적인 그림이 아니라 북한 사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그림이 개인의 불행과 예술혼에 엄청난 파괴력으로 부숴버린 폐쇄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장마당의 꽃제비들이 죽은 노파의 옷을 서로 차지하려고 벗기고 싸우는 풍경을 스케치한 그림은 헐벗고 굶주린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어떠한 감정이나 사상의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준 작품이다. 

"민화도가 소리치자 옷을 벗기던 꽃제비들이 뭔 상관이냐는 듯 흘겨보며 굳어 가는 사람의 몸에서 깡그리 옷을 벗겨서 달아났다. 서로 쥐어박으며 욕질하던 꽃제비들이 사라지자 민화도는 누워 있는 사람에게 조심히 다가섰다. 커다란 황철나무 밑에 서리 낀 누런 나뭇잎이며 풀들, 쓰레기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는데, 그 위에 웬 할머니가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올리고 누워 있었다. 이미 숨이 넘어간 듯 미처 감지 못한 눈은 휜자위만 보였다. 앙상하고 주름진 몸에 남은 것이라곤 누런 팬티 한 장뿐이었다. 무릎뼈가 불룩 솟은 다리며 온몸의 골격이 선명히 드러난 해골 같은 나체는 부끄러운 줄 모르고 태평하게 누워 있었다."(p.165)

「되찾은 밑천」도 고난의 행군 시기에 배급도 끊기고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억척같이 가축을 받아서 장마당에 팔아 가족의 생계를 유지한는 강인한 여인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군인들이 집에 처들어와 가축들과 돈주머니까지 빼앗아 간다. 먹고 살길이 막막한 상황에서 이 여인은 집안 식구들의 생계를 이어가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다행히도 이 작품은 「올가미」와 함께 비교적 해피 엔딩을 보여준다. 「올가미」는 주인공 용범이 특수부대 훈련 교관으로 한참 잘나가던 때, 평양 무역국 간부로 외국을 들락거리던 삼촌이 한국 정보기관과 접촉했다는 간첩죄로 처형당하면서 용범의 신원이 급전직하 모든 것을 잃는다. 고향 평성에서 추방은 물론 강제 제대로 이어지면서 이혼으로까지 연결된다. 이혼 역시 평양 토박이고 꽤 힘 있는 처가 쪽에서 서둘러 부랴부랴 이혼을 시켰다. 자신들의 가족에게 미칠 화를 미리 차단하려는 차원이다.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었다. 손에 남은 것은 쌀 몇 킬로에 사품이 든 제대 배낭이 전부다. 초라한 몰골로 쓸쓸하게 부대도 떠나야 했던 용범은 검덕이란 행선지가 적힌 종이쪽지 한 장을 들고, 어제까지 부하였던 호성 겸 감시를 검덕으로 가야 했다. 용범은 검덕에 도착하기 전 감시를 따돌리고 중국 쪽 산속에 자리잡고 앞날을 모색한다. 그러나 용범을 호송하던 대원의 보고를 받은 보위부는 곧 추적에 나선다.



정찰총국 특수부대 현황을 손금 꿰듯 아는 용범의 탈북은 비상 사고였다. 부랴부랴 중국 공안에 도움을 요청하고 체포조를 파견했다. 신속히 국경 쪽 중국인들에게 용범의 사진을 배포하고 중국 돈 2만 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기 전 보위부는 회유책을 쓴다. 대한민국에 간첩으로 침투시키려는 것이다. 침투 전 검덕으로 가 가족들을 확인시켜 준다. 남파 후 딴 맘 먹지 못하게 미리 공작하는 술수다. '올가미'다. 그러나 용범은 일부러 남한에서 사고를 친 후 경찰에 자수한 후 전향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죽지 않고 끝나는 몇 안 되는 저자 김유경의 작품 중의 하나다. 

「베이초센 마마」 는 중국어를 모르는 독자에게 새로운 낱말 하나를 가르쳐 준다. '베이초센' 즉, 북한 출신, 탈북 여성이란 뜻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압록강은 건넌 탈북민 중에서 여성들은 중국에서 결혼을 하거나, 불법체류 상태에서 먹고살기 위해 중국인과 정착하기도 하기에 이런 용어가 태어난 게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의 주인공 '나'는 소설 첫 문장에서 "나의 마마는 베이초센 출신이다."고 정체성을 드러낸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중국인과 함께 살면서 아이를 낳고 기르고 있는 '베이초센 마마'(북조선 엄마)이다. 나는 나이가 되었는데도 호적이 없어서 학교에 갈 수 없게 된다. 할 수 없이 큰아버지의 호적에 올려서 학교에 다닌다. 하지만, 엄마가 언제 공안에 잡혀서 북한으로 끌려갈지 항상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우려하던 상황은 발생하고 북한으로 끌려간 엄마는 수용소에서 모진 고난을 당하고 병을 얻은 후에야 풀려난다. 다시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 아들에게 돌아온다. 그러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중국인 아버지가 사고로 죽고, 큰아버지는 자식이 없으니 어린 나를 데려다 키우겠다고 한다. 엄마와 다시는 떨어지고 싶지 않은 나는 엄마와 함께 험난한 탈출을 시작한다. 남한으로 오기 위해서다.

마지막 작품 「하얀 별똥별」에서도 고난의 행군 시기에 가족들을 먹이고 자신은 먹지 못한 어머니가 영양실조로 숨을 거두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지경이 되도록 주인공인 '나'의 아버지는 대학교수라고 양복 입고 배급도 나오지 않는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만 몰두한다. 내가 그런 아버지를 좋아할 수도, 존경할 리도 없다. 그런데 어느날 엄마가 죽고 먹을 것이 없자, 아버지가 갑자기 결단을 내린다. 아들을 데리고 탈북한다.



험난한 탈북과정에서 아버지를 의지하며 대한민국에 오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양복만 입고 다닌다. 엄마 제삿날에도 엄마한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집에 늦게 돌아온 어느 날 어떤 아주머니가 와서 내 밥상을 차려준다. 나는 아버지가 새장가 가려는가 하여 더 미워한다. 얼마 후 아주머니가 술 마시며 아버지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그때서야 아버지의 진심을 알게 된다. 

이 8편의 작품들 속에서 탈북민들이 대부분 가족이 죽거나 헤어지고, 북에도 아직 가족이 남아 있다. 남겨진 가족이 당할 고초를 대한민국에 와서도 함께 겪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들을 대한민국으로 오게 하는 방법은 없기도 하려니와 탈북마저도 녹록치 않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북한 사회가 어지러워 대규모 탈북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많이 안정되는 바람에 가족 단위의 탈북도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더욱이 '탈북 비용'도 북한 사람들이 감당하기에는 천문학적 숫자다. 한 달 일해야 쌀값도 안 되는 현실에서 수천 만 원의 탈북 비용은 엄청난 제약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와 있는 탈북민의 숫자가 3만 명을 넘었다고 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그 숫자는 별로 늘어나지 않은 데서 탈북을 못하도록 강화하는 북한 당국의 감시가 엄격해졌음을 알 수 있다. 

소설가 이정(통일문학포럼 상임이사)은 「한국문학의 확장, 그리고 축복」이란 제목의 소설집의 〈추천사〉를 통해 "김유경은 한국문학의 축복이다. 남북 양쪽을 다 겪은 희소한 작가라서 그런 것만이 아니다. 미개척지로 남겨 두었던 한반도의 북쪽으로 한국 문학의 터전을 소설 미학적 관점에서 훌륭히 확장시킨 작가이기 때문이다."고 썼다. 김유경은 조선작가동맹원으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 중반 남한으로 삶의 터전을 바꿨다. 적대적 관계의 한편에서 '복무'하다가 다른 한편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건 피눈물을 품은 번민과 목숨을 건 지난한 여정, '상갓집 개만도 못한' 냉대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이정은 말한다. 그는 김유경이 마침내 당과 수령에 가없는 충성을 바친던 '문학 아닌 문학'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문학의 본령과 만났다"고 평가했다. 


저자 : 김유경


북한에서 조선작가동맹 작가로 활동하다가 2000년대에 한국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꾸준히 소설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장편소설 《청춘연가》(웅진지식하우스)로 한국 문단에 데뷔하여 대중과 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장편소설 《인간 모독소》(카멜북스)는 프랑스 출판사(필립 피키)에서 불어판으로 출간되었다. 2023년에 내놓은 소설집 《푸른 낙엽》(푸른사상출판사)은 올해 초 ‘진중문고’에 선정되었으며, 일본 홋카이도 신문사와 번역 출간 계약을 맺었다. 이번에 출간한 소설집 《누드 스케치》는 2024년 통일부 남북통합문화콘텐츠 창작 지원 공모에 선정되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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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신 - 신이 없다면 우린 행복할까?
앤서니 T. 크론먼 지음, 이재학 옮김 / 돌밭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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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제3의 신』의 〈서문〉의 제목은 「벽장 속에 숨겨진 신」이다. 쉽지 않은 내용을 다룬 책이라는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 신을 벽장 속에 숨겼다(숨겨졌다)는 말은 애매모호하다. 아마 독자가 비종교인이라서 그럴지 모르겠다. '신(神)'에 대한 개념은 종교적 범주에서 출발했기에 존재 유무를 독자가 추정한다면 논쟁만 낳을 뿐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신(神, God)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어 백과사전을 찾았다. 인터넷을 통해서다. 존재 유무가 불확실한 신의 의미에 대해 백과사전은 어떻게 풀이할까? 백과사전이 신에 대한 궁금증을 완전히 풀어줄 것이라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아무도 본 적도 없고, 따라서 형태가 묘사된 적도 없는 것으로 미루어 추상적 개념으로 막연히 붙여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독자는 지울 수 없다. 사전적 풀이로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지니고 자연계를 지배하며, 인류에게 화복을 내린다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초월적인 존재'를 의미한다. 시대와 분야에 따라 그 개념과 성격이 다양하게 정의되었다고 한다. 신의 개념을 문자로 정의한 것은 불과 수천 년의 역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유사 이전에도 인간은 신을 믿었다고 배운 적이 있다. 그 신은 지역마다 다르고, 존재의 형식도 다르게 표현된다고 교과서에 씌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류는 문자가 없던 유사 이전에는 신에 대해 어떻게 표현했을까? 독자의 짧은 지식으로 판단하자면 아마 하늘을 가리키는 정도의 몸짓이나 손짓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논쟁이 있어 왔다. 이를 긍정하는 측의 대표적인 것에는 다음의 세 증명을 든다. ① 신은 완전한 것인데, 만약 ‘존재’라고 하는 요소가 빠지면 신은 불완전하게 되므로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본체론적 증명. ② 자연계에 있는 것은 모두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므로 인과관계를 더듬어서 점차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후에는 제1원인으로서의 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우주론적 증명. ③ 천체가 질서정연하게 운행하고 있는 것은 목적이나 의장을 창출한 신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 목적론적 증명 등이다. 또한 이들을 비판한 역사적 증명, 도덕적 증명, 체험적 증명 등도 있다고 두산백과사전에는 기술되어 있다. 비종교인인 독자로서는 충분하진 않지만 어떤 의미로 정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실마리를 잡은 것으로 만족한다.



이 책의 저자 앤서니 T. 크론먼(Anthony T. Kronman)은 윌리엄스 대학을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예일 대학교 법과대학 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예일 대학교 법과대학 석좌교수로 계약, 파산, 법률학, 사회이론과 ‘지도연구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에 기여하고 있다. 예일 대학교 이전에는 시카고 대학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저서로 『막스 베버의 법률사회학』(공저), 『길잃은 변호사』, 『예일 법과대학사』, 『계약법의 경제학』(공저) 등이 있다. 대학과 저서를 보니 법학자이고 법학 교수 등을 지낸, 종교와는 무관한 삶을 살아온 분인 것 같다. 저자는 왜 종교와 신에 대한 관심을 갖고 책을 썼을까? 

이유가 책의 〈서문〉에 적혀 있다. 저자는 신앙심이 깊은 종교인이나 종교에 무관심한 사람이나 모두 어딘가 너무 넘치거나 조금 부족하다 싶다고 느낀 때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한편으론 광신자라 외면하고 다른 한편으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사는 일에 치여 그런 문제를 곰곰이 따져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살아왔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을 버텨내는 일이 더 버겁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열두세 살 무렵 어머니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털어놓는다. 이에 따르면 자신이 가진 우주의 처음은 있는가? 아니면 언제나 계속 존재해왔는가? 우주는 소멸되는가? 인간은 광대한 사물의 질서 속에 어디쯤 서 있는가?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에 비추어 인간의 삶에 어떤 지속적인 의미가 있기는 한가?라는 질문들을 그때부터 끊임없이 해왔다. 

당시 어머니와의 대화 상황을 서술한다.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난 다음 마티니 한잔을 손에 들고 어머니는 집 현관의 계단에 서서 한 말을 전한다. "우리는 오직 잠시 살아갈 뿐이다.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유일한 성취는 이 생애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존재하지 않는 신의 도움 없이, 그리고 목적이나 계획이 없는 세상의 어떤 지지도 받지 못한 채"라는 내용이다. 그때 저자의 어머니는 실존철학을 신봉한다고 선언했다고도 한다.



이후 저자의 어머니는는 96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그 철학을 꿋꿋하게 지켜나갔다. 저자는 어머니와 나누었던 그런 대화에 넋을 잃을 정도로 집중했다. 치자나무 꽃이 만개했던 그날 밤도 저자는 결코 잊지 않았다. 아마 그런 기억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그렇게 수십 년 간 지속해온 독서와 사색의 결과물로 자신만의 독특한 종교관과 인생관을 정리해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는 이 책에 앞서 2016년 10월 『다시 태어난 이교도의 고백』이란 책을 출간했다. 비록 아브라함의 종교가 가리키는 창조주 유일신은 아니지만 영원불멸의 존재인 세계 그 자체를 하나의 신으로 받아들이게 된 자신만의 신학을 기술한 내용이었다고 밝힌다. 기독교에서 하느님의 아들로 거듭난다는 의미의 다시 태어난(Born-Again)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인 책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책 『제3의 신』은 그 후속편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작은 오늘 날 우리의 사고를 형성해온 고대의 위대한 철학 체계들에서 시작해서 어떻게 자신이 현재의 세계관을 갖게 됐는지 하향식으로 설명한다. 철학적 배경 지식이 없으면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반면 이 책 『제3의 신』은 인간의 경험, 저자의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어떻게 자신의 인생관과 종교관까지 나아갔는지 차근차근 비교적 쉽게 설명해 간다. 전작의 해설서 또는 입문서와 같은 책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이 무한한 시공간을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라는 출발점에서 『제3의 신』을 시작한다. 인간은 그런 점에서 여느 동물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무한한 시간의 존재를 인지한다는 지점에서 동물과 달라진다. 그런 절대 불변의 영원성을 인지한다는 생각이 곧 신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따라서 인간은 순간을 사는 동물이면서도 영원성을 관장하는 신의 세계에도 '어정쩡하게' 걸쳐 있는 존재라고 한다. 따라서 이 어정쩡함을 인간의 존재 구속적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두 세계의 간극에서 깊은 절망과 삶의 환희를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주장이다.



저자의 관점에 따른다면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듯 인간이 이성을 발휘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만 하면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주장은 오류다. 그렇다고 지상에서의 삶은 아무 의미 없지만 하느님을 받아들이면 천국에서 누구나 우주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영원한 행복을 누린다는 아브라함의 종교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한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 인간은 그 어느 쪽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않은 경계인의 삶을 살아간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의 질서, 사회적 이상향, 심지어 완벽한 사랑을 찾아가는 단계를 살아갈 뿐, 그 최종적인 단계엔 영원히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상과 천상의 도시 양쪽 모두에 속하는 이중적 시민권을 가진 인간의 삶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른바 '제3의 신'의 개념이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저자가 사춘기 시절의 자의식을 폄하하고, 설익은 자신만의 철학을 끝까지 천착한 노학자가 이끌어낸 사색의 결과물이라는 종교인들의 반대와 저항에 부닥칠 수도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성을 대단히 중시하지만 만능으로 여기지 않고, 영원성과 영성적인 태도를 중시하지만 인간됨의 포기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원하는 소중한 목표에 끝내 도달하지는 못한다는 좌절에 시달려도 신을 향해 뚜벅 뚜벅 걸어 나가는 길에 삶의 환희가 있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비종교인인 독자가 읽기에는 수용하고 이해하는 일이 가능하지만 종교인, 특히 기독교인이나 무슬림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일 것 같다. 

나는, 이 공동체와 나라는, 아니 세계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가? 무엇이 진정한 사랑이고 그런 사랑과 현대 과학의 학문적 노력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알고 싶은가? 우리는 어떤 종교를 가져야 할지 망설이며, 사회 정의의 구현에 어떻게 기여해야 할지 가슴이 답답한가? 나는 무엇을 하며 왜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한가? 저자의 이 같은 질문은 이 책의 주제와 연결된다. 저자의 논리에 따른 신은 종교에서 말하는 창조신도 아니고, 무신론자의 믿음처럼 '신은 없다'도 아니다. 그 경계에 선 저자의 신은 이렇게 '벽장 속에 숨겨져 있는, 제3의 신'이 성립을 가져온다. '저자만의 신'이라고 바꿔 말해도 이상할 게 없다. 대학 공부를 앞두고 있거나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청년,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유할 만한 소중한 책이다. 저자나 출판사 측은 적어도 세 번은 읽어보길 권한다. 본문과 저자 주를 읽을 때마다 무언가 조금씩 더 깨닫고 공감하게 된다는 사실은 먼저 읽은 독자도 느낀다. 사실 어렵다. 그러나 가치 있는 책이다. 어쩌면 인생관이나 세계관, 가치관 등 세상을 살아갈 사람이 가정 먼저 읽어야 할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모두 4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인본주의자에게 찾아온 신」, 2장 「시작과 끝이 없는 시간」, 3장 「아테네와 예루살렘의 미몽」, 4장 「삶의 환희」등이다. 제목으로만 깊이 생각하고, 유추하면 이 책의 절반쯤 읽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독자는 판단한다. 1장에서는 제목처럼 저자 자신은 부모로부터 기독교나 유대교, 이슬람교 등 종교는 결코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배웠다고 말한다. 성공을 무조건 떠받드는 사람들을 경멸하는 저자의 어머니는 이성을 기초로 해 수립된 견해들만이 숙고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저자가 믿기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숙고하기보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종교가 범죄를 저지른다고 말할 정도였다. 또 신앙을 근거로 했다든가, 혹은 남들이 그렇게 말했다는 이유만으로는 어떤 말도 인정하지 말라고 어린 저자에게 주지시켰다 밝힌다. 어머니는 합리주의자였고, 또한 철학자였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책에 따르면 저자의 종교관은 어렸을(12~13세) 때 부모, 특히 어머니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철학자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라는 입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과도 화합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어린 저자에게 "오직 잠시 살아갈 뿐"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을 잠시 인용해본다. "우리는 죽는다.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유일한 성취는 이 생애에 있을 뿐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하며,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도움 없이, 그리고 목적이나 계획 없는 세상의 어떤 지지도 받지 못한 채 말이다." 삶의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가며, 그마저 덧없다고 저자의 어머니는 말했다. 그런 어머니는 독립적인 정신의 소유자였고, 합리주의자, 실존주의자였다는 것. 저자는 이를 물려받아 대답을 스스로 찾아가려는 노력 덕분에 카뮈와 사르트르에 이르렀다. 어려운 책을 읽어가면서 실존주의에 심취하기는커녕 서서히 실존주의는 무너져갔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종교인과 무신론자의 경계에서 사색의 시간을 많이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신론이 번성하는 최근의 환경에서 무신론자는 인간 삶의 의미와 가치가 진실로 영원한 무엇과 우리를 이어주는 그 연결고리에 달려 있지 않다고 말한다. 과거엔 그 같은 연결성이 강조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착각이었다. 역사적으로 오랜 투쟁 끝에 우리는 이제 이를 더 분명하게 본다. 우리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무엇이 우리 자신들의 삶보다 (조금 더)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저자는 무신론자를 비난하지 않는다. 무신론자가 조롱하는 영원에의 갈망이 우리 인간성에 가해지는 피치 못할 위협이 아니라 그 구성 요소의 하나임을, 오류가 아니라 그 특징의 하나임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육받은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더할 나위 없이 표현한 내용이 무신론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들의 이런 반종교적 독단의 가장 정교한 주장을 물리치려면 무신론자의 손아귀에서 인본주의를 구해내야 한다. 신을 부끄럼 없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유물로 인본주의를 되돌려주어야만 한다. 영원성에의 갈망을 인간 조건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을 필요가 있다. 그 갈망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곳에 속한다.

2장 「시작과 끝이 없는 시간」은 '영원성'에 대해 살펴본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 과학의 특징은 우리가 시간을 두고 더 가까이 다가가긴 하지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시간을 다 쓰고도 결코 도달하지 못할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에 있다. 사실 이런 종류의 모든 추구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영원성이라는 단어에 있는, '초시간성'과 '무한한 시간'이라는 두 가지 의미와 개념이 모두 필요하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깊은 좌절이라는 인간 특유의 경험과 그럼에도 조금씩 발전하면서 점점 더 커져가는 능력이 주는 환희를 설명하려면 우리에게는 그런 개념이 필요하다. 좌절이 수반되는 그런 환희는 더 많이 이해하고 싶다는 갈망만큼이나 사랑과 정의를 추구하는 우리의 모든 노력에서 얻는 유일한 보상이라고 시간을 풀어헤친다. 현대과학은 인간 조건의 한계와 전망을 무엇보다 더 잘 나타내는 일반적 현상의 특별하고 명쾌한 사례일 뿐이라고 저자는 역설한다. 

3장 「아테네와 예루살렘의 미몽」은 고대 그리스와 예루살렘에서의 학문과 종교가 가진 헛점을 짚어낸다. 인간만이 우리의 삶에 끝이 있음을 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또한 끝없는 시간의 존재를 안다. 무한한 시간이라는 개념은 어떤 제한된 시간 안에 달성되지 않는 목표를 상상하게 해준다. 우리가 창조주에 비해 얼마나 결함이 많은 존재인지 알게 되면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누리는 상태 이상의 더 나은 무언가를 갈망하게 된다. 우리는 더 신과 같아지기를, 부패와 죽음을 넘어, 우리의 모든 고통의 근원이 되는 시간 그 자체를 초월해 신의 왕국에서 신과 함께 하길 갈망한다. 저자의 논리에 경의를 표할 만큼 이 저서는 독자들의 경이와 경탄을 불러낸다. 이 책의 가치가 영원성 위에 놓일 것이라고 독자는 믿는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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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전 우리는 '이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을 떠나보냈다. 평생을 우리와 우리나라를 위해 애쓰던 고(故) 이어령 선생은 아직도 우리 가슴속을 떠나지 않은 듯 수많은 저서들이 재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선생이 평생 쓴 저서나 논문, 글들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듯 몇 권의 책을 냈는지, 몇 편의 논문을 남겼는지도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끊임없이 재출간되는 그의 저서들은 아직 그가 우리 곁에 있는 것처럼 많은 기억들을 소환해 준다. 그리고 그의 글들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우리 자신을, 또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성찰하게 해준다. 이 때문에 타계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이란 것은 자연스럽다. 

이 책 『만남』은 선생의 배우자로 70년을 해로한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이 남편인 고 이어령 선생에 관해 쓴 에세이다. 「이어령 강인숙 부부의 70년 이야기」란 부제가 붙어 있다. 독자는 이어령 선생의 책은 많이 읽었지만 한 번도 그의 얼굴을 직접 뵌 적은 없다. 배우자인 강인숙 관장은 책으로도 만난 적이 없다. 독자보다 한 세대 윗분들인 데다 이어령 선생이 대학 교수직을 여대에서 했기 때문일까? 책으로, 혹은 공직에 있을 때 영상 등으로 만난 이어령 선생의 이미지는 단정하고 조금은 고지식한 듯한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문인이고 학자인 이어령 선생을 직접 뵌 분들은 모습 그대로의 인연에 더욱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그는 아무래도 글로써, 책으로써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났으리라 본다. 배우자가 본 이어령 선생의 모습은 어땠을까? 사뭇 궁금하다. 부부는 대학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맺고 70년을 함께 살았다. 주위에서 70년을 해로한 부부를 찾기란 쉽지 않아서인지 부부 사이가 살갑고 애정이 깊었을 것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책에 따르면 이들은 동갑내기 부부이자 친구이자 연인으로 일평생을 함께해왔다. 이 책의 저자인 강인숙 관장은 남편에 대해 사적인 글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저자 역시 문학평론가이자 교수이기도 하다. 독자가 과문한 탓이리라 생각하지만 강인숙 관장도, 남편 이어령 선생도 부부나 가족 관계의 사적인 이야기는 책으로 쓴 적이 없는 것으로 독자는 알고 있다. 이 점도 부부가 닮았다. 이어령 선생의 글은 많이 접했고, 책도 적잖게 읽었지만 강인숙 관장의 책은 읽은 적이 없으니···.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와의 70년 역사(사생활)를 정리해 보기로” 결심하고 이 책을 썼다고 〈머리말〉을 통해 밝힌다. 이어령 선생과 동갑내기인 저자 역시 이미 고령이다. 평생 쓰지 않던 신상과 그와의 만남 등 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낸 것은 아마도 저자의 기억이 더 사라지기 전에 이어령 선생과의 70년의 삶에서 알려지지 않은 모습들을 담아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훗날 누군가가 이어령 선생의 평전을 쓰거나 회고할 때 정확하게 기억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부부가 모두 사생활에 대해 글을 잘 남기지 않았으니 사적인 이야기는 부부 아니면 알 수 없을 터, 부인인 강인숙 관장의 기억의 끝머리에서 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다. 이 책은 본문을 시작하기 전에 표제어에 쓰인 '만남'을 설명하고, 이 책의 성격을 압축한 문장을 첫 면에 실었다. “까까머리를 막 기르고 있는 대학 신입생의 모습으로 그는 내 앞에 나타났다. 이름을 안 것은 신입생 환영회 자리였던 것 같다. 머리가 짧아 얼굴이 네모로 보였다. 무언가가 안에 꽉꽉 차서 터질 것 같은 느낌을 주는 모습······. 호기심에 빛나는 눈이 눈부셨다." 

저자는 이어령 선생이 스무 살 때 처음 자신 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아흔 무렵의 그가 투병 끝에 운신하지 못하게 된 모습이 안쓰러워 “마주 잡고 큰 소리로 통곡했”던 이별의 시기까지, 함께 울고 웃었던 70년의 세월을 이 책에 담았다. 책의 마지막 부분 〈부록〉에는 특별히 이어령 선생의 넷째 형과 외사촌 누나가 쓴 글을 함께 수록하여, 저자가 잘 알지 못하는 이어령 선생의 어린 시절과 집안에 대한 이야기를 보충하기도 했다. 또한 이어령 선생이 부인 강인숙 관장에 대해 쓴 글 한 편도 수록했다. 이 글은 「정복되지 않는 네모꼴의 신비」란 제목의 글이다. 이 글 한 편이 유일하게 아내 강인숙에 대한 글이라고 이 책에 끼워넣었다. 이 글은 사실 경기여고 100회 졸업생 축사의 글이라고 한다. '경기 졸업생을 아내로 둔 모든 이들에게'란 작은 글씨의 부제가 붙어 있다.(저자는 이 글이 아내에게 점수를 가장 후하게 주었다고 말한다. 일상사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은 타입이어서 아내에 대해 쓴 것은 이것이 유일하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가장 가까이에서 산 사람”으로서 보고 느낀 이어령 선생을 최대한 윤색하지 않고 충실히 기록하고자 한 노력의 기록이자, 그만큼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자 한 기록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70년이 농축된 기록은 진한 사랑이 느껴지지만 폭발적인 에너지라기보다는 차분하고 담담한 문장들이 이어진다. 함께한 삶의 무게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감의 깊이만큼, 담담한 문장에도 진한 사랑과 감동이 우러나오는 것은 독자의 감정이 이입된 데 따른 것일 터다. 저자는 그 자연스러운 여운이 독자들에게도 가닿기를 바랄 뿐이다. "이어령 선생을 미화하거나 영웅화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어령 선생은 어디까지나 예술가였지 행정가나 정치가나 위인은 아니었습니다. 창조하는 부분만 빼면 그냥 보통 사람이죠. 결점과 장점을 함께 가지고 있는 그런 인간mortal 말입니다. 다만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여, 창조의 붓을 놓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노력 속에 이어령이라는 한 인간의 온 무게가 다 실려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기 일만 외곬으로 하다가 떠난 한 예술가를,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윤색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인간의 약점은 뒤집어보면 장점이기도 하고, 어쩌면 인간스러운 점이기도 하지 않습니까."(p.9~10)

저자가 집필을 결심하고 가족을 한 명 한 명 떠올리면서 가장 기술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이어령 선생의 어머니에 관한 부분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이어령의 세계를 해독하려면 어머니를 알아야 하는데, 저자는 한 번도 어머니의 살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혼해 이어령 선생의 집에 들어가기 14년 전에 어머니는 이미 타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어령 선생은 가족의 일상을 전혀 글로 적지 않았지만 유독 어머니에 관한 글은 많이 남기셨다. 이어령 선생이 한국의 전통이나 민족성, 문화적 독창성 등에 관한 이야기를 책에 많이 담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에 대한 여러 표현과 묘사를 독자도 자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어령 선생의 글에 나타나 있는 어머니상과, 집안에 내려오는 에피소드를 통해 어머님의 인품을 가늠해보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또 충분한 시간도, 체력도 없어지면서 이젠 이마저도 불가능해지는 세월이 곧 올 것을 짐작했기 때문에 모든 힘을 다잡아 기력을 다해 글을 썼다고 말한다. 자신마저 세상을 뜬다면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더 이상 없다는 생각에서 증언을 남긴다는 의미로 집필을 했다고 밝힌다. 또 이 과정에서 부부란 '나눌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실감했다고도 고백한다.



이 책은 모두 3부와 〈부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부에는 2~5장(章)으로 나누어 모두 14장으로 구성됐다. 1부에는 「이어령을 기른 흙과 바람」, 「네오필리아와 김치」, 「이어령과 어머니」, 「아버지 이어령의 두 가지 소원」, 「이어령과의 만남」, 2부에는 「모놀로그와 다이얼로그」, 「장관 이어령의 희한한 이벤트들」, 「이어령과 골프」라는 제목의 글들이 실려 있다. 이어 3부에는 「1955년과 '이상론(李箱論)」, 「문학사상」, 「『축소지향의 일본인』 태동기」가 게재됐고, 마지막 〈부록〉에 「어린 날의 기억들」, 「나의 자랑스러운 고종사촌」, 「정복되지 않는 네모꼴의 신비」 등이 각각 각각 담겨 있다. 

저자는 우선 자신과의 ‘만남’ 이전의 이어령의 시간부터 살펴나간다. 생전에 이어령 선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가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의 뿌리와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조심스레 조명한다. 집안과 지역적 환경, “행복한 막내 도령”으로 자랐던 어린 시절, 열한 살 무렵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몰아친 불행, 고독과 설움 속에서 견딘 사춘기 등 ‘이어령의 세계’를 이룬 축과 토대가 된 삶의 궤적들을 정리했다.

부부는 사실 대학 시절 만나 인연을 맺고 70년을 해로했다. 저자는 대학 시절 그와 만나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를 전한다.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보았던 그에 대한 첫인상. “‘작품을 돌려드립니다’라는 사무적인 말로 끝나는 평범한 글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건 아우성이고 함성”이었던, “그가 나를 좋아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그때 비로소 하게 되었”던 그의 첫 편지를 받았다고 회고한다. 다방을 아지트 삼아 종일 온갖 화두로 이야기를 나누던 연애 시절. 너무나 외로운 성장기를 보냈기 때문에, 결혼 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셋방이라도 자기 집이 생기니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이 기뻐했”던 그의 모습의 이야기도 담았다. 그리고 그가 많이 아플 무렵엔 “저녁때마다 ‘오늘도 살아 있어 고마워요’ 하고 감사 기도를 하면서 하루치씩 견”디던 세월들의 이야기도 실려 있다. 부부 사이를 가로지르는 때로는 반짝이고 때로는 먹먹했던 삶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밖에 이어령 선생이 창간한 기념비적 문예지인 『문학사상』의 탄생과 운영 비화, 한국 학자가 쓴 일본에 대한 책으로서 일본 열도에 큰 돌풍을 일으킨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의 집필 과정, 문화부 장관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창의적 퍼포먼스를 기획했던 이어령 선생의 예술가적 집념을 담은 일화 등 이어령 선생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담겨 있다. '연인의 자리, 아내의 자리'는 1부 마지막 장(章) 「이어령과의 만남」의 작은 항목의 제목이다. 이 글에서 저자와 이어령 선생과의 서울 셋방살이 시절을 회고한다. 이에 따르면 극장과 다방을 돌면서 5년이라는 밀착된 세월을 공유했는데, 내가 야간에 나가고 있어서 밤에만 같이 있으면서 신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선생은 주말에도 원고가 밀려서 느긋하게 쉴 시간도 많지 않았다. 바빠서 밤에 나를 데리러 오는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자기도 나도 생활인이 된 것이어서, 바쁜 것은 당연했다. 놀 시간이 주는 것도 당연했다. 우리는 이제 한 가정을 끌고 나갈 어른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나는 곧 임신을 했고, 현대평론가협회가 활성화되어 그는 강연과 미팅을 하느라고 늦게 들어오는 일이 많아졌다. 드디어 혼자 나다니는 '바깥사람'다워진 것이다. (중략) 

이어령 씨는 본래 추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게 안 되는 사람을 만나면 입을 봉해버리는 버릇이 있다. 결혼을 하니 나와의 대화에서도 같은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상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입을 다물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곧 임신을 했고, 그는 차차 혼자 나다녔다. 그러면서 임신한 아내를 위해 네이블오렌지 같은 것을 사 나르는 소시민적 남편이 되어갔고, 나는 서투른 솜씨로 김치를 담그는 초보 주부가 되어갔으니, 우리의 대화에는 지상적 요소가 늘어갈 수밖에 없었다. 가정은 일상적인 장소여서 저기에서는 아이의 배탈, 지붕의 누수, 집안의 경조사 같은 것들이 대화의 주류를 이룰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내 지상적 이야기들을 좋아하지 않게 됐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그는 장난으로 '인생고'라고 이름 지었다. 하지만 '새것 주고받기' 부분은 그때도 남아 있었다. 새 책을 읽을 때라든가 새 영화를 볼 때면 우리는 다시 토향 다방 시절처럼 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문화의 모든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다른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괴테의 광물학이나 색채학에 대한 관심이 깊은가 하면, 최근에는 『파이 이야기』(얀 마텔)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공자님의 노년에도 관심이 많아서, 화제의 폭이 엄청나게 넓다.(p.138~139)



『문학사상』 장(章)은 독자가 가장 재밌게 읽었다. 『문학사상』은 독자도 많이 사본 잡지이기도 하고, 당시 제정한 〈이상문학상〉은 올해로 47회를 맞는 것 같다. 첫 수상자가 1977년 김승옥의 〈서울의 달빛 0장〉이란 작품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얼마 전에 읽은 『무진기행』이란 작품에서 얻은 정보이다. 순 문학잡지라고는 〈현대문학상〉 정도였을 때이니 인기도 높았을 터다. 이 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작가들이다. 이청준 〈잔인한 도시〉, 박완서 〈엄마의 말뚝〉,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은희경 〈아내의 상자〉, 신경숙 〈부석사〉, 김훈 〈화장〉, 공지영 〈맨발로 글목을 돌다〉 등 전후 한국문학을 다진 쟁쟁한 작가들이 총망라됐다. 『문학사상』은 한국문학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다. 주간이 이어령이었다는 사실은 이 책 『만남』을 보고서야 알았지만, 한국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은 『문학사상』과 관계를 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굉장한 이목을 끌었던 잡지다. 창간 당시 주간이었던 이어령 선생이 창간사를 썼다고 한다. 

특히 저자 강인숙은 창간호 표지화가 화가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였다고 한다. 구본웅이 그린 그 그림은 이상을 그린 것이라는 사실이 그 무렵에 밝혀져서, 세인을 놀라게 했다는 에피소드는 우리 문단의 에피소드로 길이 기억될 만한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문학사상』 창간호는 무려 5만 부가 넘게 팔렸다고 한다. 당시 잡지가 5만 부가 넘게 팔렸다는 사실은 우리 국내 뉴스로만 그칠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문단에서도, 학계에서도 어떤 그룹이나 파(派)에 나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은 성격이어서 문학지의 성격이나 문학상 수상작 결정에서도 『문학사상』의 성격에 따라 엄격하게 추구되고 관리된 데서 최고의 인기 잡지로 단숨에 뛰어올랐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이 책을 통해 문학에의 열정 그리고 올곧은 심성에 감사드리고 싶은 생각이다. 


저자 : 강인숙


문학평론가, 국문학자. 1933년 10월 15일(음력 윤 5월 16일) 사업가의 1남 5녀 중 3녀로 함경북도 갑산에서 태어나 이원군에서 살다가 1945년 11월에 월남했다. 경기여자 중·고등학교를 나와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숙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평론가로 데뷔했으며, 1958년 대학 동기 동창인 이어령과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건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평론가로 활동하다가 퇴임 후 영인문학관을 설립했다.

저서로는 논문집 『일본 모더니즘 소설 연구』『박완서 소설에 나타난 도시와 모성』『김동인』『자연주의 문학론 1 · 2』, 수필집 『언어로 그린 연륜』『생과 만나는 저녁과 아침』『겨울의 해시계』『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아버지와의 만남』『어느 고양이의 꿈』『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문명기행 내 안의 이집트』 『셋째 딸 이야기』, 옮긴 책으로는 콘스탄틴 버질 게오르규의 『25시』『키랄레사의 학살』과 에밀 아자르의『가면의 생』 등이 있다. 현재 건국대학교 명예교수이며, 영인문학관 관장이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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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최고로 사는 지혜 - 어떻게 하면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아놀드 베넷 지음, 윤춘송 옮김 / 알파미디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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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인생을 최고로 사는 지혜』의 저자 아놀드 베넷(Enoch Arnold Bennett, 1867~1931)은 영국 출신의 작가로 프랑스에 살면서, 자연주의 소설 기법으로 고향을 배경으로 한 실생활을 작품에서 그려냈다. 소설뿐만 아니라 희곡·평론·잡문 등에서 대중의 인기를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런던 대학을 마친 뒤 법원에서 근무했고, 잡지 편집에도 종사했다. 그의 명저로 꼽히는 이 책은 '최고의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인생론을 담은 에세이로 자기계발서로 더 유명하다. 출간한 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인생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한 책으로 명성을 굳혔다. 인간관계, 자녀교육, 사회생활, 기질과 습관, 연애와 결혼 등 우리가 빛나는 인생을 보낼 수 있는 10가지 방법을 어떠한 기교나 허세 없이 순수하고 직설적인 어조로 담아내고 있다. 그의 문장은 자연주의 소설 기법처럼 세밀하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허세나 가감 없이 직설적 어조를 구사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다만 소설에서는 자연주의 기법에 사실적 표현을 주로 작품에 담았기에 '비판 정신의 결핍'이라는 악평을 받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작품 『늙은 아내들의 이야기』는 피터 박스올이 쓴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의 한 권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두 늙은 아내들'이란 표제어처럼 작품 속 주인공인 콘스탄스와 소피아 베인즈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두 사람은 평범한 상인의 딸들로 자란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이름의 운명은 두 사람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얌전하고 예의바른 콘스탄스는 아버지의 조수와 결혼하여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전통적인 삶을 살아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피아는 행상인과 함께 사랑의 도주를 감행하지만, 애인이 그녀를 버리고 떠나버리자 동전 한 푼 없이 파리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저자 아놀드 베넷은 둘 중 어느 쪽의 삶도 옳거나 그르다는 편을 들지 않는다. 소설가로서 베넷은 현실과 사실을 담담하게, 그리고 세밀하게 묘사할 뿐이다.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 것이다. 파리의 흥분은 이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한 소피아의 투쟁과 균형을 이루고, 콘스탄스의 화목한 가정 생활은 질식할 듯한 무료함으로 괴롭다는 사실적 판단만 작가의 의견이 개입되어 있다.. 『늙은 아내들의 이야기』에서는 전반적으로 베넷의 연민이 느껴진다. 두 자매의 감동적인 재회는 시들어버린 두 인생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충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준다.



이 책 『인생을 최고로 사는 지혜』의 저자 베넷이 소설가로서도 활동했기에 그의 소설 중 호평을 받은 작품의 이야기를 잠깐 독자가 언급한 것이다. 베넷이 당시 서유럽의 사회를 보는 눈이 매우 객관적이고 표현이 사실적이고 세밀한 작가인 까닭이다. 이에 따라 그의 세심하고 세밀한 문장들은 이 책에도 담겨 그의 인생관과 가치관,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책은 모두 10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타고난 자질과 야망의 줄다리기」, 2장 「인생 감각을 기르기 위한 중요한 원칙」, 3장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 4장 「일에는 아낌없이 열정을 쏟는다」, 5장 「사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6장 「결혼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7장 「열정은 '똑같은 풍경' 속에서 시든다」, 8장 「자녀에 대한 몇 가지 중요한 조언」, 9장 「두 번째 인생의 참맛을 찾아서」, 10장 「현명하게 힘껏 산다는 것」 등이다. 독자가 각 장의 제목을 굳이 여기에 열거하는 이유는 몇 개의 핵심어를 추출하기 위해서다. 독자가 읽어본 이 책에는 저자 베넷의 인생관 등이 담겨 있기 때문이란 말은 앞서 언급한 대로다.

이 책을 읽게 되면 유독 몇 개의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기질', '열정' '야망' '성공' '결혼' 등이다. 대체적으로 우리가 살면서 부닥치거나 문제가 되는 큰일들이다. 기질이란 타고난 기세를 말한다. 우리말로 하면 천성, 혹은 인품과도 뜻이 비슷하다. 다만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질로 국한되어 사용된다. 1장에서 베넷은 "인생을 잘 살아가려면 욕망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자신의 기질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첫 머리를 시작한다. 저자는 '냉철한 이성(理性)'이 중요한 덕목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이끌어가는 유일한 지침인 것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항상 이성만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엄청나게 지루하고, 분위기를 망치며, 까칠하고,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사람이 이성적인 동물이라는 말은 시적 허영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때때로는 이성적일 수 있지만 본능적이라는 전제를 말하고 있다. 이에 독자가 선정한 단어 '기질'이 등장한다. 모든 사람은 특정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며, 기질은 생애 내내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기질을 바꿀 수 없으며 아주 조금이라도 바꾸는 데 성공하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힘들다고 '기질'을 정의한다. 저자가 기질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의 기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삶의 방식을 정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따라 인생의 길을 정한다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1장에서 저자는 이 '기질'의 문제를 꽤 심도 있게 다룬다. 특히 개인적 삶의 목표가 되는 '야망'과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기질은 목표를 좇다가 생애를 마치게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개인의 성향과 성격을 의미하는 기질로서 자칫 극단적으로 흐르는 일을 주의할 것을 주문한다. 일부 사람은 야망을 타고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라고도 말한다. 모든 기질은 그 자체로 강력한 진실을 내포하고 있으며 대개 이성쯤이야 가볍게 제압하고 능가한다고 정의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신의 기질에 완전히 순응해야 할까? 저자는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답한다. 저자에 따르면 기질이 완전히 억제될 경우 지속적인 행복을 경험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기질에 완전히 몰두하면 개인과 사회가 모두 불행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논리다. 물론 기질 중에는 모범이 될 만한 것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악한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질 안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의 기질에 대한 해석은 1장 내내 지속된다. 전술한 대로 1장 1항은 "자신에게 맞는 꿈을 꾸어라"라는 취지이고, 1장 2항은 기질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본다. 3항에서는 "목표 달성이 정말 최고의 행복일까"에 대한 탐구이다. 3항에서 저자는 야심 차고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은 운명에 순응하며 평범한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고 전제힌다. 그리고 야심 있는 사람들은 대개 세 가지 목표 중 하나를 추구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권력, 돈, 지식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권력, 재산, 명예로 읽히는 부분이다. 야심을 가진 사람은 그중 하나를, 때로는 두 가지를, 때로는 세 가지 모두를 추구한다. 그러나 이런 영광은 쉽게 얻을 수 없으며 인생의 절반, 또는 4분의 3을 전력투구해야만 얻을 수 있음을 저자는 확신한다. 지나친 야망은 개인은 물론 사회, 국가에도 결코 이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부각한다. 독자는 저자의 주장에 대체로 공감하고 동의한다. 그러나 이 에세이의 발간 시점을 돌이켜보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즉 서유럽이 세계를 식민지로 삼고, 제국주의를 지향함으로써 막대한 부를 쌓고 강력한 군대를 가진 시점이다. 이 제국주의는 지나치면 유럽 자체가 다시 예전의 '죽고 죽이는' 시대를 돌아갈 수 있음을 경고하는 글로 이해된다. 또 하나는 제국주의 지향은 피해 식민지의 양산으로 결국 군림하지 못하고 공격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예방 차원의 글이 될 수도 있다고 독자에게는 읽힌다. 



두 번째 핵심어는 '열정'이다. 이 단어는 4장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4장 「일에는 아낌없이 열정을 쏟는다」에는 '기본적인 것을 소홀히하지 말라'와 '지적 생활을 대비하라'이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도 적용되는 말들이다. 회사 직원들은 "도대체 왜, 고용주만 부자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일해야 하나요?라며 항의한다. "우리가 사업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한다 해도, 고용주가 정말 우리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까요?" 등의 불만을 늘어놓을 것을 저자는 예상한다. 이런 불만은 진실이 담겨 있지만 대개 초보자가 많다. 그러나 이런 전략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직원에게 불리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최선을 다하는 직원은 거의 모든 경우에 자신이 받는 대가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며, 이로 인해 다른 직원들 사이에서 순진한 박애주의자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직원은 결국 자신의 위치에서 승진하거나, 더 나은 기회를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젊은 직원은 당장의 보수와 하는 일을 비교하며 지속적으로 저울질하거나 노닥거리거나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 귀 기울일 것을 저자는 조언한다. 만일 모든 직원이 이 조언에 따라 행동한다면 그들 중 누구도 그런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고 고용주만 황금마차를 타게 될 것이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이 초보 직원들에게 저자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조언을 서슴지 않는다.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세상에서 홀로 생계를 유지하며, 모든 필수품과 사치품을 자신의 노력으로 사야 하는 젊은이가 취해야 할 한 가지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있다. 너무 초보적인 사항이라 이름 붙이기는 민망하지만, 그렇더라도 언급하지 않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끈질기고 무던한 자세로 이를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답한다. 그것은 바로 '저축'이다. 당시 유럽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타당한 지적이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의 일원으로, 저자의 입장에 동의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당시 유럽은 식민지로부터 벌어들인 엄청난 재화를 자국(제국)의 산업시설 확충과 국민 일자리는 아낌없이 창출해낼 수 있는 분위기였을 테니···. 그렇다고 저자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저자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저축'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 하고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열정적으로) 해내야만 자신의 꿈이든 야망이든 실현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하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4장 2항의 '지적 생활을 대비하라'에서 저자는 삶의 물질적 측면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삶에는 수입과 지출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있으며, 그 중요성을 고려할 때 이런 문제들을 먼저 거론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의 오해도 풀고자 이 글을 쓴다고 먼저 밝힌다. 저자는 삶의 도덕적, 지적, 예술적, 정서적 부분이 단순한 물질적인 요소보다 행복 그리고 올바른 삶과 더 관련이 있다는 데 동의한다고 전제한다. 저자는 사람이 삶의 모든 측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정신적 활동이 육체적 건강에 의존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더 훌륭하고 고상한 모든 인간의 활동은 건전한 물질적, 경제적 기초 위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물질세계를 빼놓고 누구도 더 높은 차원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물질적인 기초 없이 영적인 분위기에서만 헤엄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묵상과 기도, 구원과 영원한 복리를 위해 존재하며 그 구성원들이 '세상과 단절한 채' 살아가는 종교 공동체 같은 극단적 경우의 예를 들어 저자는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그들은 세상과 자신을 단절하지 않았다. 또 자신 역시 엄청나게 복잡한 인간 사회라는 유기체에서 매우 고상한 기능을 수행하는, 그런 공동체에 반하는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를 덧붙인다. 그들이 입는 옷, 먹는 음식,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석탄, 앉는 의자, 거주하는 건물은 모두 물질 체계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이런 것들은 물질 체계의 인간 노동으로 만들어졌다. 공동체가 어떤 소득을 누린다면, 이는 물질적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물질적 활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자본을 축적하거나 순수한 물질적 노동을 통해 토지를 획득한 이들이 그 결과물을 공동체가 소유하는 것을 정당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물질 체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 영향은 공동체의 고등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공동체의 리더들이 물질적 문제에 심취해 있으며, 그렇게 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원하는 차원의 수준 높은 활동이 원활하게 번성할 수 있도록 물질적 문제에 전념한다. 그들은 물질 세계와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밀접하게 개입한다. 또한 물질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평판까지 누린다. 실제로도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누구든 삶의 물질적 기초를 무시하고는 안전할 수 없다. 일반적인 성공을 바라는 우리 중 대다수에게는 상업이든, 학문이든, 예술이든, 과학이든, 적절하게 수입을 관리하는, 말 그대로 상식적인 재무 관리가 최우선의 선결 과제가 되어야 한다. 개인과 세계 전체의 관계는 개인의 사적인 기준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규범에 따라 결정된다.



앞서 언급한 핵심어 중 '성공'은 기질과 열정에도 관여하는 덕목이고, '결혼'은 이 책에서 6장 「결혼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에서 다룬다. 주로 여성들에게 해당하는 항목이 많다. 그렇다고 여성에 국한해서 하는 조언은 아니지만 사회 속에서 통용되는 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조언들이 많다. 이 장에는 '결혼은 가장 현실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강렬한 개성은 힘의 불균형을 만든다', '빈곤 속에서 행복은 유지되지 않는다', '집안일을 대하는 아내의 자세' 등 4개 항에 걸쳐 살펴본다. 대체적으로 각 항목의 제목만 읽어도 무슨 말이 쓰였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5장 「사랑하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과 7장 「열정은 '똑같은 풍경' 속에서 시든다」에서도 결혼에 관한 주의 사항을 다룬다. 6장 마지막 항목인 '집안일을 대하는 아내의 자세'는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혹시 유교적 관념의 이야기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서양의 사랑, 결혼관은 우리와 달리 아내의 절대적 복종 등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이니 말이다. 제목만 보고 착각할지 모르니 한 단락만 인용해 적는다. 

"여성은 매력을 발휘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두가 그것을 알고 인정한다. 그리고 아내가 죽을 때까지 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정당화시켜줄 사유는 없다. 많은 여성, 특히 예쁜 여성은 그저 존재만으로도 매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는 착각이다! 매력을 발휘하는 건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인 기능이다. 생각과 노력 없이는 효율적으로 매력을 발휘할 수 없다. 때로는 돈을 버는 것만큼이나 매우 힘들고 지치는 일이지만, 인생을 충만하게 살기 위해서는 돈을 버는 것 못지 않게 필수적이다. 아내는 이 경이로운 개인적 과업에 충실하면서 나머지 시간에 집안 일을 하거나 친구들을 사귀고, 대부분의 남편들 마음속에 남아 있는 야만성을 길들이고, 기분전환을 포함한 수십 가지 다양한 활동에 전념하라. 그러면 도는 일이 놀라울 정도로 쉽게 진행될 것이다."(p.166~167)


저자 : 아놀드 베넷(Arnold Bennett)


1867년 잉글랜드 스태퍼드셔 주에서 태어나 런던대학 졸업 후 소설가로서 영국 소설과 유럽 사실주의 문학의 주류를 잇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다. 또한 수준 높은 평론으로도 유명했으며 일상에 필요한 생활 철학이나 시간 활용 및 자기 관리에 대한 다양한 저서를 집필, 대중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사상가로 활동했다. 프랑스로 건너가 10여 년간 머물면서 자연주의의 영향을 받고, 평범한 현실을 담담히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을 익혔다. 프랑스 체류 중에 쓴 『늙은 아내들의 이야기』(1908)는 고향을 배경으로 성격이 다른 자매가 겪는 운명을 적확한 필치로 묘사해낸 걸작이다. 수전노 내외의 심리를 그린 『라이시먼 계단』(1923) 외에 『이정표』(1912)를 비롯하여 다양한 평론, 잡론 등을 집필했다.


역자 : 윤춘송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뒤 국민대학교 Business IT 전문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해외영업과 일간지 기자 등의 직업을 거쳐 지금은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백 번째 여왕』 시리즈, 『수익 먼저 생각하라』『나는 4시간만 일한다』(공역), 『디지털콘텐츠는 처음입니다만』『나무늘보 널 만난 건 행운이야』『40일 만에 기억력 천재가 된다』 등이 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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