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리만큼 친밀한 감각이었다. 윌을 면도해 주는 일은. 차츰나는 깨달았다. 휠체어가 장애물이 될 거라고, 장애 때문에 어떤 종류의 육감적인 관계도 스며 들어올 수 없을 거라고 내가 지레짐작하고 있었다는 걸.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지가 않았다. 이렇게 다른 사람과 바싹 붙어서, 손길이 닿을 때마다 팽팽하게 긴장하는 살갗을 느끼면서, 그가 뱉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얼굴과 얼굴이 기몇 센티미터 떨어져 있는 이런 상황에서 살짝이나마 평정심을 잃지않기란 불가능했다. 반대편 귀까지 수염을 다 깎았을 무렵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표지를 넘어서 버린 듯 기분이 어색해졌다. - P155

그리고 작은 우리 동네. 아름다운 성과 2급 문화유산으로 등재된숱한 건물들과 그림 같은 전원의 가도들에도 불구하고, 작은 우리 동네 역시 그런 병폐에서 벗어나 있는 건 아니었다. 동네 광장은술을 마시는 십대들을 품어주고, 동화 같은 초가집은 아내와 아이를 쥐어패는 남편들의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막아준다. 가끔은 북해 제국을 세운 크누트 대왕이라도 되는 양 슬그머니 다가드는 혼돈과 파괴 앞에서 헛된 선전포고나 하고 있는 기분이 되기도한다. 그러나 나는 내 일을 사랑했다. 이 일을 한 건 질서와 윤리를믿었기 때문이다. 유행이 지난 사고방식일지 몰라도, 옳고 그름이있다고 믿었다. - P166

하지만 아빠의 충고를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 "현실이 기대에 못미치는 경우를 구구절절 실감할 때가 언제인지 알아?" 아빠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신나는 가족 소풍을 한번 계획해 보면 알게 될걸." - P219

하늘에서 기나긴 열두 시간을 보내야 했음에도 비행은 내가 두려
‘워했던 것만큼 끔찍한 시련은 아니었다. 네이선은 담요를 덮고도능숙한 솜씨를 뽐내며 윌의 일과를 해결했다. 항공사 직원은 싹싹하고 눈치가 빨랐으며 휠체어도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윌은 약속대로 제일 먼저 탑승했고 어디 부딪혀 멍드는 일 없이 비행기 좌석으로 옮겨져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이륙하고 나서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깨달았다. 이상한 일이지만, 몸이 흔들리지 않게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기만 하면 구름 위하늘에서 윌은 기내의 여느 승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움직일 곳도 없고 할 일도 없이 약 9000미터 상공의 의자에 처박혀 있는 상황은 다른 승객들의 처지도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식사를 하고 영화를한편 봤으며, 대체로는 잠을 잤다.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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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좋았던 책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이 글을 쓰다보면 2026년 되겠구나.
















박경석, 정창조의 <출근길 지하철>

요즘도 4호선을 타면 울려 퍼지는 특정 장애인 단체의 시위로 혜화역을 무정차한다안내 방송

달라지지 않는, 아니 아주 아주 미미하게 달라지는 세상 속에서 전사로 살 수 밖에 없는 박경석님의 울림을 주는 이야기.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디킨스가 이렇게 재밌었다니. 다 읽어 버릴 테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레이디스>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너무 조마조마한 재미를 주는 단편집이다. <캐롤><리플리> 시리즈도 읽고 싶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었고 <빛과 실>을 읽었다. 올해 한강 작가의 책을 4권 읽었는데, 읽지 못한 책들도 찬찬히 읽어야지. 며칠 전 도서관에 갔다가 어른을 위한 동화 <내 이름은 태양꽃>이 있어서 빌려왔다.


















조앤 디디온의 <상실>

이름은 많이 들었으나 읽어보지 않은 작가 중 하나였는데, 이 책은 곁의 사람의 상실 과정을 너무도 담담하고 현실적으로 기술하고 있어 더 실감하게 되는 에세이다.
















우춘희의 <깻잎 투쟁기>와 한승태의 <어떤 동사의 멸종>

내가 잘 모르는, 대충만 아는,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서 일하며 살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김지우의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길거리에서 휠체어를 보는 일이 유아차를 보거나 자전거를 보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 되는 세상이 언제 올 것인지.



















김하나의 <금빛 종소리>

고전을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읽어야 한다.

영어책으로는,

















케이트 디카밀로의 <The Miraculous Journey of Edward Tulane> <Because of Winn-Dixie>

역시 디카밀로는 디카밀로다. 계속 읽을 작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한글본을 읽고 읽어서 더 좋았나? 달리기 관련 책 중에 가장 좋았다.
















 

프리다 맥파든의 <The Housemaid>

두껍지만 영어가 쉽고 내용이 흥미로워서 재미있게 읽었다.


2019년 100권을 간신히 넘긴 이후 매년 100권 이상 거뜬히 읽었는데 2025년에는 96권을 읽었다.

그 이유는 바로 바로 달리기 때문이다.

2024년 9월말에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 꾸준히 달리고 있다.

2025년에는 10키 대회를 3번 나갔고 하프 대회를 2번 나갔다.

달리는 게 너무 재밌어서 매달 200키로 이상 달리다 보니 책 읽을 시간이 줄어들었다.

2026년에는 첫 풀 코스를 덜컥 신청해 두어서 계속 달려야 한다.

2026년 나의 책 읽기와 달리기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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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1-01 0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햇살과함께 님 하프도 나가셨었군요! 저는 요즘 어쩌다 5킬로 달리는 것도 너무 힘이 드는데 말입니다.
새해에도 열심히 달리시고 열심히 읽으세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냅시다. 그리고 우리 여기서 다정하게 오래 만나요!
해피 뉴 이어!

햇살과함께 2026-01-02 21:10   좋아요 0 | URL
발 다치셨으니 당분간 참으시고 나으면 달리세요. 다정하고 건강하게 읽고 달리고~ 너무 좋아요~ 해피 뉴 이어^^

독서괭 2026-01-01 1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햇살님도 끈기가 보통이 아니십니다! 달리기가 재밌다니~~ 하프까지 나가신 건 정말 대단해요. 전 달리기를 한참 안 해서;; 봄 되면 다시 시작해야겠습니다.
책도 재미난 거 많이 읽으셨네요! 해피 뉴이어입니다~~

햇살과함께 2026-01-02 21:14   좋아요 0 | URL
저도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는데. 제가 숫자로 보이는 기록을 좋아해서 꾸준히 달릴 수 있는 것 같아요 ㅎㅎ
달리다보니 책 읽기 너무 소홀하고 있습니다. 특히, 벽돌책들..
괭님도 새해 독서와 함께 다시 달리기의
즐거움을 찾으시길!
해피 뉴 이어!!
 

세상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과 같이 다니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않는 것들이 있다. 하나는 대부분의 도로포장 상태가 얼마나 거지같은가 하는 실감이다. 여기저기 푹푹 파인 데를 엉망진창으로질해 놓았거나 아예 울퉁불퉁했다. 휠체어를 타고 가는 윌 곁에서걷다 보니 고르지 못한 이음새가 나올 때마다 그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소스라치는지, 장애물을 조심스럽게 돌아가야 하는 일이 얼마나 잦은지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네이선은 모르는 척 태연하게굴었지만 그 역시 윌을 주시하고 있었다. 윌의 어두운 얼굴은 결연해 보였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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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12-31 1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시는군요! 제가 여러가지로 좋아하는 책입니다. 빠샤!!

햇살과함께 2025-12-31 21:37   좋아요 1 | URL
저는 제 취향이 아닐 것 같아 책도 영화도 관심 없었는데 얼마전 지인이 보내준 이 영화 OST 영상을 보고 궁금해져서 빌려왔는데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서곡 2026-01-01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피 뉴이어!!! 영화 ‘미 비포 유‘ 주인공 에밀리아 클랔 좋아요~~~

햇살과함께 2026-01-01 00:29   좋아요 1 | URL
책 다 읽고 영화도 볼까요??

서곡 2026-01-01 10:23   좋아요 1 | URL
전 영화만 봤는데요 여주가 매력 있더라고요 책 다 읽고 보시면 비교하는 재미가 있으실듯요
 
읽는 슬픔, 말하는 사랑 - 우리가 시를 읽으며 나누는 마흔아홉 번의 대화
황인찬 지음 / 안온북스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읽고 쓰는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선한 마음과 슬픈 마음 속에서 작고 다정한 사랑을 발견하는 시인 황인찬의 시 에세이. 두 마음. 두 사람. 기분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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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차를 조금 무서워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대중교통이 아닌 모든 차에 타는 것을 무서워해요. 택시를 타든, 기족이 모는 차를 타든 항상 긴장한 상태예요. 지금 내 눈앞을지나는 차가 시속 수십 킬로미터로, 때로는 100킬로미터를넘는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무지 무서워서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운전하는 차가 그런 속도로 달리고 있다는 것은 너무 무서워서 생각조차 할 수 없고요. - P185

아파서 누워 있는 시간만이 갖는 나룰의 특별함이 있는 것 같아요. 고독함과 짜증, 외로움과 서러움이 잔뜩 뒤섞인, 그 무력한 시간이요. - P196

열기를 지니는 것을 조금 두려워하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하다못해 뜨거운 음식도 잘 못 먹는 저는, 그저 미지근한 상태가 오히려 마음 편하기만 합니다. 물론 그게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런 성격이 저자신의 대인관계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이상한 실망감을 느끼는것보다는 차라리 열기를 피하는 편이 저 자신을 지키기에는더 도움이 되는 거죠. - P201

사랑의 전당

김승희

사랑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으리으리한 것이다
회색 소굴 지하 셋방 고구마 포대 속 그런 데에 살아도
사랑한다는 것은
얼굴이 썩어 들어가면서도 보랏빛 꽃과 푸른 덩굴을 피워올리는
고구마 속처럼 으리으리한 것이다

시퍼런 수박을 막 쪼갰을 때
능소화 빛 색채로 흘러넘치는 여름의 내면,
가슴을 활짝 연 여름 수박에서는
절벽의 환상과 시원한 물 냄새가 퍼지고
하얀 서리의 시린 기운과 붉은 낙원의 색채가 열리는게

분명 저 아래 보이는 것은 절벽이다
절벽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절벽까지 왔다
절벽에 닿았다 - P238

절벽인데
절벽인데도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마음이 있다

절벽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마음
낭떠러지 사랑의 전당
그것은 구도도 아니고 연애도 아니고
사랑은 꼭 그만큼
썩은 고구마, 가슴을 절개한 여름 수박, 그런
으리으리한 사랑의 낭떠러지 전당이면 된다 - P239

사랑에 상처받아본 적 있나요? 사랑하지 않은 사람이있을 순 있어도, 사랑하면서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사랑의 근본적인 속성은 상처와 깊게 연결되어 있기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사랑이란 스스로를 취약한 상태로 내놓는 일이라고요.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됩니다. 상대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만으로도 세상이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은 기분에 빠져들죠. 반대로 말 한마디나 입가에 걸린 작은 웃음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얻은 것만 같기도 하고요. 그러니 얼마나 쉽게 상처받겠어요. 그 작은 웃음 한 조각이 주는 열렬한 환희를 위해, 상처투성이가 되고자 자발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 P240

기분 전환

유병록

어떤 기분은 잘못처럼 여겨지니까

기분 전환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갈까
머리 모양을 바꿔볼까

우리의 기분이란
사소한 이유로도 쉽게 달라지고

어떤 기분은 짐처럼 무거우니까

목욕탕에 갈까
신나는 음악을 들을까
그럼 좀 가벼워질까

어떤 기분은 감옥처럼 느껴지니까

이사를 할까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날까 - P244

기억이란
가벼운 바람에도 흩어지는데

너는 꼭
그 기분 속에서만 나타나고

어떤 기분은 이불처럼 편안하니까

나는 깊이 파묻혀
밖으로 나올 줄 모르고 - P245

시는 우리가 잊고 사는 어떤 기분을 유심히 살펴보고생각해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런 시를 읽으면서우리의 기분과 삶을 다시 돌아볼 기회를 갖기도 하겠지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기분 전환에 시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요.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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