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영향력‘ 이라는 단어가 달라졌습니다. 이제 교육받은 남성의 딸은 이전에 지녔던 영향력과는 다른 영향력을 수중에 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레이디 세이렌의 영향력이 아닙니다.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투표권이 없었을 때 발휘했던 영향력도 아니지요. 또한 투표권은 있었지만 생계비를 벌 수 있는 권리가 없었을 때 발휘했던 영향력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릅니다. 매력이라는 요소가 배제된 영향력이기 때문입니다. 돈이라는 요소가 배제된 영향력이기 때문이지요. 여성은 더 이상 아버지나 남자 형제에게서 돈을 얻기 위해 애교를 부릴 필요가 없습니다. 가족이 그녀에게 재정적으로 압박을 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견해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전에는 돈이 - P198
필요하기 때문에 종종 무의식적으로 상황에 따라 경탄과 혐오감을 표현했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녀는 순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비판할 수 있지요. 마침내 그녀는 공평무사한 영향력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 P199
이러한 의식과는 별도로, 이 장식적인 의상들은 처음 본 순간 극히 기묘하게 여겨집니다. 여성에게 의복의 용도는 비교적 단순한 것이지요. 몸을 감싸주는 기본적인 기능 이외에 의복은 다른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합니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을 만들어줄 뿐 아니라 당신의 성에게서 찬사를 이끌어내는 것이지요. 1919년—채 이십 년도 지나지 않은—까지 여성에게 개방된 유일한 직업이 결혼이었기에, 여성에게 의상의 중요성이란 두말할 필요가 없지요. 의상과 여성의 관계는 소송 의뢰인과 당신의 관계와 같습니다. - P203
그러므로 눈에 띄는 표시들을 달고 있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럽게 보이고 학문을 경멸할 만한 것으로 만든다는 견해를 표명한다면, 우리는 전쟁을 유발하는 감정들을 간접적으로 억제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 즉 전쟁을 방지하는 방법에 대한 하찮기는 하지만 명백한 공헌이고, 당신과는 다른 훈련을 받고 다른 전통을 가진 우리가 더욱 용이하게 접근할수 있는 방식입니다. - P209
그러나 교육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천부적인 본성이라서, 전기를 살펴보면, 전통과 가난과 조롱이 부과한 온갖 장애에도 불구하고 여성들 사이에 동일한 열망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단 한 명의 여성, 메리 애스텔의 생애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그녀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약 이백오십년전 그녀의 내면에 이 완강하고 어쩌면 비종교적인 열망이 살아 있었음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합니다. 그녀는여성 대학을 설립하자고 실제로 제안했으니까요. 그 못지않게 놀라운 사실은 앤 공주가 그녀에게 그 기금으로 만파운드를 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는 물론 지금도한 여성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금액으로는 엄청난 액수이지요. 그런데 그때(바로 그때 우리는 역사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나 극히 흥미로운 사실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교회가 간섭합니다. 버닛 주교는 교육받은 남성의 누이들이 교육을 받으면 그릇된 기독교 종파 즉 로마 가톨릭이 부흥할 거라는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그 돈은 다른 곳으로 흘러갔고, 그 대학은 결코 설립되지 않았지요. - P215
그러므로 대학의 여학장들은 글자가 붙은 교수를 선호한다. 따라서 이름 뒤에 B.A.를 붙일 수 없었던 뉴넘과 거턴의 학생들은 직업을 얻는 데 불리했다." 이름 뒤에 붙은 글자가 직업을 얻는 데 도움을 준다면, 도대체 그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어떤 타당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역사는 답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심리학이나 전기에서 그 답을 찾아보아야겠지요. 그러나 역사는 사실을 제공합니다. 트리니티 대학 학장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 제안은," 즉 시험에 통과한 여성이 스스로를 B.A.라고 부를수 있어야 한다는 제안은 "더없이 확고한 반대에 맞닥뜨렸다. ………… 투표 당일에 학내에 거주하지 않는 학자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1,707 대 661의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되었다. 투표 참여자 수가 이에 버금간 적은 한번도 없었다. 평의원회는 투표가 끝난 후 일부 학부생들의 행동이 유례없이 유감스럽고 불명예스러웠다고 발표했다. 많은 학생들이 평의원 회관을 나와 뉴넘으로 가서 초대 학장인 클러프양을 기념하여 세워진 청동 문을 부서뜨렸다. - P221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교육을 통하여 전쟁을 방지하도록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을 위한 대학에 될 수 있는 대로 관대하게 기부하는 것이란 사실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반복해서 말하건대, 이 딸들이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은 생계비를 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생계비를 벌지 못한다면, 그들은 다시 사적인 가정교육에 얽매일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사적인 가정교육에 얽매인다면, 그들은 또다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전쟁을 옹호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 P233
이 세월들, 이런 교육의 위대한 목적과 목표가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결혼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결혼을 해야 할 것인가가 아니라,오로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였다."라고 그들 가운데 한명이 말합니다. 결혼을 목적으로 그녀의 마음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결혼을 목적으로 그녀는 피아노를 뚱땅거렸지만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순진무구한 가정 풍경을 스케치했지만 누드를 연구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지요. 이 책은 읽었지만 저 책을 읽거나 그 책에 매료되어 이야기하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결혼을 목적으로 그녀의 몸은 교육되었습니다. 하녀 한 명이 그녀에게 제공되었습니다. 길거리는 그녀에게 차단되었지요.들판도 그녀에게는 닫힌 곳이었습니다. 고독도 그녀에게는 주어지지 않았지요. 이 모든 것들은 그녀가 남편감을 위하여 처녀의 몸을 보존하도록 강요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결혼에 관한 생각이 그녀의 모든 말과 생각, 행동에영향을 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혼이 그녀에게 개방된 유일한 직업이었는데 말입니다. - P235
싸우는 것은 영웅적이고 전장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은 그녀들의 온갖 보살핌과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젊은 남성들을 부추겼지요. 그 이유는 바로 그교육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적인 가정에서 이루어지는교육의 잔인함과 결핍, 위선, 비도덕성, 공허함에 대한 그녀의 무의식적 혐오가 대단히 뿌리 깊이 박혀 있었기에, 거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아무리 비천한 일거리에라도 뛰어들고 아무리 치명적인 매력이라도 발휘하려고 했을 겁니다. 그리하여 의식적으로 그녀는 "우리의 찬란한 제국"을 열망했습니다. 무의식적으로는 우리의 찬란한 전쟁을 갈망했지요. - P237
따라서 여성은 아주 협소한 교제 범위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그 범주를 벗어난 것에 대한 그녀의 ‘무지와 무관심‘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여성의 무지와 19세기 남성성의 개념 사이에는 명백한 관련이 있으며 (빅토리아 시대의 영웅을 주목하라.) ‘미덕’과 ‘사내다움‘은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한 유명한 구절에서 새커리는 미덕과 사내다움이 자신의 예술에 부과한 제약에 대해 불평하고 있다.- 3기니 1의 미주 - P408
물론 교육받은 여성이 공급할 수 있는 한 가지 필수품 즉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여성이 도울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아이 낳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헬레나 노만턴 부인은 "어느 나라의 여성이든 전쟁을 방지하기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대포 밥‘의 공급을 중단하는 것이다."(「동등한 시민권을 위한 연례 회의 보고서」, 《데일리텔레그래프》, 1937년 3월 5일)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편지들이 신문에 왕왕 등장한다. "이런 시대에 여성들이 왜 출산을 거부하는지 나는 해리 캠벨 씨에게 말할 수 있다. 남성이 자신이 통치하는 땅을 제대로 운영하는 법을 배우고, 분쟁을 일으키지 않은 사람들을 전쟁으로 소탕할 것이 아니라 분쟁을 일으킨 사람들에게만 타격을 준다면, 그런때가 되어야 여성들은 다시 대가족을 이루고 싶은 생각이 들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세상에서 여성들이 왜 아이를 낳아야하는가?" (에디스 매튜린포치, 《데일리 텔레그래프》, 1937년 9월6일) 교육받은 계층에서 출생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교육받은 여성들이 노만턴 부인의 조언을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약 이천 년 전에 이와 대단히 유사한 상황에서 리시스트라타(그리스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리시스트라타』의 주인공으로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등 도시국가들 사이의 끝없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여성들이 단합하여 성 관계를 거부할 것을 제안한다. ― 옮긴이)도 비슷한 충고를 한바 있다. - P409
"그 돈은 두 가지 다른 이율로 계산되었으며" 그녀에게 속한 돈이기는 했지만 배렛 씨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미혼 여성들이었다. 결혼한 여성은 1870년 기혼 여성 재산법이 통과될 때까지 재산을 소유할 수 없었다. 레이디 세인트 헬리어는 옛 법에 따라 결혼 재산 양도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내가 가진 돈은 모두 남편에게 양도되었고 나는 한 푼도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나는 수표책도 없었고, 남편에게 부탁하지 않고는 돈을 전혀 얻을 수 없었다. 남편은 친절하고 관대했지만, 여성의 재산은 모두 남편에게 속한다는 그당시의 견해를 묵묵히 따랐다. 그는 내가 쓴 계산서를 모두 지급했고, 내 은행 통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도록 약간의 용돈을 주었다." (레이디 세인트 헬리어, 『오십 년의 기억』, 341쪽) 그러나 그녀는 그 금액이 정확히 얼마였는지 말하지 않는다. 교육받은 남성의 아들에게 지급된 금액은 상당히 큰 액수였다. 1880년 무렵 "아직 근검절약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었던" 베일리얼 대학의 학부생에게 200파운드의용돈은 그저 근근이 살아갈 만한 금액이라고 여겨졌다. 그 용그러돈으로는 "사냥을 갈 수도, 도박을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신중하게 지출하고 휴가 때마다 집에 가서 지내면 이 돈으로 버틸 수 있었다."(C. 맬릿 경, 『앤서니 호프와 그의 저서』, 38쪽) 지금은 훨씬 더 많은 금액지노이 필요하다. 지노 윗킨스는 "연간 400파운드 이상의 용돈은 쓸 수 없었고 대학에서 필요한 잡비와 휴가비를 그 돈 안에서 모두 해결했다." (J. M. 스콧, 『지노 윗킨스』, 59쪽) 이것이 몇 년 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의 일이다. - P423
2022년 11월 녹평시선 1권.녹색평론사 신간 시집이 왔다. 나뭇잎 무늬 표지 맘에 든다.김명수 시인 몰라서 검색해 보니 시인이자 동화작가, 번역도 하시는 분이다. 번역하신 책 중 그림책이 눈에 띄어 찾아보니 얼마전에 읽은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그림책이다. 도서관에서 찾아봐야지.
저기 예배당과 회관과 초록빛 운동장이 있고 수도원처럼 보이는 저 건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당신에게 그것은 예전에 다닌 이튼 고등학교나 해로 학교이고, 당신의 모교인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대학이며, 갖가지 기억과 무수한 전통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아서 교육 자금의 그림자를 통해서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에게는 교실의 탁자이고, 강의실로 운행되는 승합 마차이며, 자신은 교육을 잘 받지 못했음에도 병든 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코가 붉고 체구가 작은 여성이고, 옷을 사고 선물을 주고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치라고 받는 연간 50파운드의 용돈입니다. 아서 교육 자금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것은 마술을 부리듯 풍경을 바꾸어버리기 때문에, 옥스퍼 - P179
드와 케임브리지의 고즈넉한 안뜰과 그것을 둘러싼 건물들이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에게는 종종 구멍 난 속치마라든가 차가운 양고기 다리, 그리고 외국으로 떠나는 임항 열차로 보입니다. 문지기가 그들의 면전에서 꽝 소리가 나도록 문을 닫아버리는 동안 말이지요. - P180
다행히도 ‘교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교육’ 항목에 해당되는 한 분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와 인간의 심리적 동기에 대한 이해로서 심리학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용어에서 과학에 대한 연상을 배제한다면 말이지요. 유사 이래로 1919년까지 우리에게 개방된 유일하고도 위대한 직업이었던 결혼을 통해서, 우리는 더불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인간을 고르는 기술에 있어 약간의 재주를 익혔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다시 다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양성은 여러 가지 본능들을 다소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쟁은 언제나 여성이 아닌 남성의 습관이었다는 것입니다. 타고난 습성이든 우연히 습득된 것이든 이러한 차이는 법과 관행으로 더욱 발전되어 왔습니다. 역사상 인간이 여성의 소총에 맞아 쓰러진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새와 짐승을 살해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이었지요. 우리가 공유하지 않은 것을 판단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 P181
만약 당신 직종의 남성들이 단결하여 어떤 것을 요구하고 "이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일하지 않겠다."라고 말한다면, 영국의 법령은 집행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 직종의 여성들이 똑같이 한다면, 영국의 법령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우리는 같은계층의 남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력할 뿐 아니라, 노동 계층의 여성보다도 무력합니다. 만약 "당신들이 전쟁에 나간다면, 우리는 군수품 제조를 거부하거나 상품 생산을 돕지 않겠다."라고 노동하는 여성들이 말한다면, 전쟁을 수행하기가 심각할 정도로 어려워질 겁니다. 그러나 교육받은 남성의 딸들이 내일 모두 파업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공동체 생활이나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부분이 방해받는 일은 없겠지요. 우리는 국가의 모든 계층 가운데 가장 무력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의지를 강행할 수 있는 무기기 없으니까요. - P191
선남씨 이야기선남은 매일 저녁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비극의 자리에 자신을 가져다놓지 않기‘. 아빠 없는 아이를 가졌다고, 아빠 없이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한다고, 천지간에 아이와 나뿐이라고, 이런 불행의 문장들은 처음부터 선남의 것이 아니었다. 불행의 문장은 선남의 마음이 물러지거나 몸이 약해졌을 때를 기다렸다가 튀어나오곤 했다. 약한 틈새를 알고 단박에 공격해 들어오는 음험한 문장들을 선남은 경계했다. 지금은 오로지 자신과 아이의 삶에 집중할 때다.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하규의 기억마저 버려야 한다. 선남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수시로 되뇌었다. 하규에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당장 이 험악한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은 하규가 아니라 선남과 아이였으므로. - P219
그동안 용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무모함과 무식함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숯처럼 달아올랐다.- 봄의 왈츠 - P236
온은 이마를 찌푸리며 나를 탓했다. 간절히 기다리던 일이 무산되었을 때 슬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어? 짜증이 솟구친 나는 율을 두둔하는 온에게 버럭 화를냈다. 간절? 고작 그런 일 따위에 간절하다는 말을 붙여? 네가 자꾸 오냐오냐하니까 애가 진짜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철딱서니 없게 굴잖아! 너는 개새끼처럼 며칠 예뻐하고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네가 망쳐놓은 애 버릇을 상대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나야! 나뿐이라고! 온이 단박에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눈치 빠른 율이 분위기 수습에 나섰을 때야 나는 또 아이한테 감정노동을 시켰구나,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우리 셋은 주섬주섬 짐을 챙겨 들고 어색하게 호텔을 나와 오도리공원으로 걸어갔다.
이게 저승길을 환히 밝혀준다네. 이렇게 일주일 간격으로 봉숭아 물을 들이면 손톱에불이 들어 나중에 죽으면 저승길을 밝혀준다네. 내 팔자에 저승길을 마중 나올 살뜰한 부모도 없고 애틋한 남편은 더더욱 없으니 내 저승길은 내가 미리 밝혀야지 싶어서. 돈도 안 들고 얼마나 좋으냐? 안 그러냐, 이년아? 그러면서 엄마는 또 징그럽게 깔깔 웃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뭔가를 참으며 엄마의 손에 둥글게 빚은 봉숭아 반죽을 하나씩 올렸다. 그때 내 안에서 치밀어 올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저 순도 높은 분노만은 아니었기를, 백반 가루 같은 연민이 조금은 섞인 마음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제야 나는 궁금해진다. 내가 스무살에 집을 떠난 이후 엄마의 봉숭아 물은 누가 들여주었을까? 엄마가 딱히 사랑하지 않았지만 미워하지도 않으며 짐승처럼 풀어 키웠던 어린 남동생들 중 한명에게 부탁했을까? 서울로 떠난 후 나는 엄마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본적이 없다.)- 그 시계는 밤새 한번 윙크한다 - P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