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좋아요’는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는가" 따지는 책이 나왔다. 가상공간에서 친구 맺은 이의 글과 사진에 호의로 클릭한 ‘좋아요‘는 개인 컴퓨터나 핸드폰에서 일곱 단계의 층을 거치며 전기를 소비한다는데, 저자는 ‘디지털 오염‘을 주목한다. ‘녹색‘, ‘친환경‘, ‘지속가능‘ 같은 어휘로 홍보하는 디지털통신은 온갖 자료를 대륙과 우주로 이동시키느라에너지를 낭비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막대한 통신장비의 유지와보수, 그리고 각종 장비에 들어가는 희귀금속의 채굴, 가공, 폐기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막대하다는 거다. 도로를 달리는 내연기관 못지않다는데, 우리는 인터넷 없는 디지털은 상상하지 못한다. 챗GPT는 인터넷통신이 소비하는 전기의 10배 이상을 요구한다고 한다. - P116

4월 둘째 주 주말에 만개하던 수도권의 벚꽃이 올 3월 넘기자마자 일제히 만개하더니 느티나무 가로수는 4월부터 그늘을 펼쳤다. 보름은 빨라진 느낌이다. 3월 벚꽃에 꿀벌 한 마리 없었는데, 근린공원의 4월 양버즘나무 잎사귀에 애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애벌레 없으니 새가 모이지 않는다. 씨줄과 날줄로 이어진 생태계는 혼란스럽다. 환경부는 금세기 마칠 즈음, 한반도에서 사과를 재배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제사상에사과를 올릴 수 없다는 뜻인데, 그 무렵 자손은 선조를 어떻게 기억할까? - P117

만년설이 녹으면 영구동토에 얼어붙은 동물의 사체가 드러난다. 시베리아에서는 출토되는 매머드 상아로 일확천금을 꿈꾼다는데, 상아와더불어 얼어붙었던 바이러스까지 퍼질 수 있다. 기후위기는 감염병 창궐로 이어질 수 있기에 전문가들은 경계한다. 숙주 유전자에 끼었던 바이러스가 활동을 재개해 현존하는 생물을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인데,
얼어붙은 과거의 생물에서 진화해 현재 분포하는 생물이 위험해질 수있다. 문제는 그중 사람과 동물을 동시에 감염시키는 인수공통바이러스로, 티베트고원도 예외일 수 없다.

- 박병상 - P118

요컨대 코로나에 대한 의료대응 측면에서, 한국은 민간자원을 거의동원하지 않고 공적 자원은 보건의료 기능의 근간까지 파괴해 총력 동원하는 방법을 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민간에는 코로나 보상금 명목으로 막대한 재원을 투입해 지금도 버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줬으나, 공공자원은 일시적 지원이 끝나고 긴 어둠만 기다리게 만들었다. 코로나 손실보상금은 2023년 3월까지 총 8조 6,544억 원이 지급되었는데, 만약 2,000억 정도가 소요되는 훌륭한 공공병원을 10여 개 짓고운영했다면 지금쯤 공적 의료체계가 강화되고 다음 팬데믹에 더 훌륭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근시안적 정책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 정형준 - P129

그래서 왜 이렇게 민간기업들이 여기저기서 산업단지를 추진하는가 하고 조사해보니까, 2008년 특례법이 나오더군요.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1호 법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인데,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그 법을 그때 알게 되었어요. 결국 단순히 자본주의 기업들의 횡포라기보다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죠.

산업단지와 관련해서는 그렇습니다. 민간기업들이 주도하는 지방산업단지가 이렇게 많이 무분별하게 추진된 것은 특례법 영향이 큽니다. 그 전에는 국가·지자체 주도 산업단지가 많았다면 특례법 이후엔 민간기업들이 산업단지를 주도해왔어요. 심지어 어떤 경우엔 산업단지한다고 하고 아파트를 짓기도 해요. 택지개발사업 절차를 밟는 것보다 특례법을 활용하면 인허가가 쉬우니까요. 폐기물처리 단지를 만들면서 산업단지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문제는 여야 차이가 없어요. 4대강사업에 대해서는 어쨌든 민주당이 비판적으로 거론하잖아요. 그렇지만 산업단지 특례법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아요. 민주당 정치인들도지방에서 산업단지를 유치하고 있기 때문이죠. - P145

발전원이 원자력에서 재생에너지로 바뀌었다고 해서 결코 친환경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어요.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발전단지나 송전선 인근 주민들에게는 똑같은 폭력일 뿐입니다. - P147

진천에는 산업단지가 이미 너무 많이 들어서서 도시인지 농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예전 구로공단 같은 것들이 전부 농촌으로 오면서 이렇게 된 것이죠. 서울에서 굴뚝이 사라진 대신 농촌에는 어마어마하게 굴뚝이 많이 생겼어요.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렇게 농촌주민들의 피눈물 위에 세워진 산업단지인데 실제로 공장들이 다 입주해서 가동이 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 P148

오랜 삶터에서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이 쫓겨나고 귀한 농토가 산업폐기물로 오염되는 일들이 무슨 국가나 지자체가 공익을 위해 하는 일도 아니고, 민간 대기업 돈벌이를 위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주의에 찌들어 있기 때문이죠. 산업단지가 들어와야 인구가 늘고 지역경제가 좋아진다는 환상을 여전히 갖고 있어요. 지방자치단체장은 실적이 된다고 생각하죠. - P149

전국적으로 보면 충청도가 수도권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하니까 현재 충북에 굉장히 많은 산업단지와 폐기물 매립장, 소각장 등이 들어와있고 충남에서도 계속 시도되고 있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다시 말하지만, 이게 다 민간기업이 하는 거라는 거예요. 생활폐기물을 지자체가처리하니까 흔히 오해를 하는데, 산업폐기물은 민간기업의 돈벌이 수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폐기물이 많이 나오면 나올수록 이윤이커지니까 바람직한 거예요. 도시에서는 이 문제가 눈에 안 보이니까 산업폐기물을 줄이려는 노력도, 관심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전체 폐기물 중에 생활폐기물은 12% 정도이고 나머지 88%가 산업폐기물인데, 대부분의 언론이 생활폐기물 얘기만 하잖아요. 산업·의료 폐기물로 민간기업들이 막대한 돈을 벌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문제의식이 없어요. - P150

주민들이 사업의 실체를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아까얘기한 예산 신암면 조곡리에서 SK가 추진하고 있는 산업단지 명칭이
‘그린컴플렉스‘예요. 자원순환시설이라고 했는데 내용은 산업폐기물 매립장이었던 것이죠. 이름도 늘 이런 식으로 지어서 사람들이 좋은 건가보다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요. 기만하는 것이죠.

가장 큰 문제는 자본과 나쁜 정치가 결합을 해서 농촌을 이윤추구공간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촌이 만만한 거예요. 반대도 약할 것 같고, 땅값도 쌀 것 같고, 여기선 뭐 좀 나쁜 짓 해도 쉽게 빠져나갈 수 있겠다는 계산도 있겠죠. 그래서 제가 정치의 문제라고 누누이 말하는 거예요. 도시에서 토지강제수용하고 산업폐기물 묻겠다고 하면 난리가 나겠죠. 군청 소재지가 있는 읍에서도이런 일 안합니다. 가장 외곽에 있는, 인구 적고 고령화된 가장 취약한면 지역 마을에서 하죠. - P152

우리가 농촌문제라고 얘기하지만, 산업시설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사실 이건 도시문제죠. 도시의 짐을 모두 지고 있는 농촌이 지금우리 사회의 시야에 없다는 게 문제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농촌·농사를 천대해서는 사회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주고있잖아요. 우리 정부가 자급률을 제고한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그런 생각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70대 이상 농가경영주가 이미 42%가 넘어요. 농지는 해마다 1.2%씩 사라지고 있다고 하는데, 10년쯤 지나면 농사지을 사람도, 땅도 없다는 이야기죠. 농촌이라는 공간을 보존하고 농토를 지키고 어떻게든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농민을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사회와 국가가 농사를 천대하고 무시하고 있어요. 정부가 자급률 얘기하는 것은 ‘유체이탈 화법‘이죠. 농림축산식품부는 법에 따라서 계획을 세워야 할 의무가있으니까 식량자급률, 곡물자급률 올리겠다고 목표는 제시하지만, 실제 자급률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계속 떨어져왔죠. 앞으로도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윤석열 정부도 식량자급률 올린다고 하면서도 국가산업단지 15개 조성한다고 발표했어요. 그게 어디에 들어서겠어요? 최근20년 동안 산업단지로 전용된 농지면적이 충남에서만 700만 평이에요.
또 국회에서 예산심사할 때 보면 늘 신규 도로건설 예산이 들어가 있는데, 도로도 농지하고 임야 덮어서 만드는 거예요. 공항 건설도 그렇고,
농지 잠식할 온갖 개발계획 다 통과시키면서 식량자급률 올리겠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죠. - P153

경제관료나 주류 정치인들은 농업은 없어져도 좋은 산업 정도로 생각하겠지요. 농업에 들어가는 예산이 아깝다고 하는데, 다른 산업들에 직간접으로 지원하는 돈은 얼마인데요. - P155

‘지역균형발전‘이라고 부르짖는데 열쇠는 농촌에 있습니다. 농촌이 피폐해져서 균형이 깨진 거예요. 독일이나 프랑스를 보면 수도권 집중 현상이 우리처럼 극악하지 않은데, 독일은 연방제고 프랑스도 지방분권이 잘되어 있는 나라죠. 농촌지역은 읍·면 단위 자치를 하고 있어요. - P161

농촌을 지키고 농업을 유지하려면 읍·면 자치를 부활시켜야 합니다. 읍·면 자치는 원래 우리도 했어요. 1961년에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나서 폐지된 거예요. 그 전까지 읍장이나 면장, 의원과 면 의원 선출했고, 조례도 만들고 예산심의도 하고 지방자치단체에서 하는 것 다 했어요. - P162

어떻게 전국정당이 시골 구석구석까지 챙기겠습니까. 읍·면 자치를 하려고 하면 읍이나 면에도 정당이 있어야죠. 지금 지역정당을 인정하지 않는 정당법은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되어 있습니다. 국회에서 정당법을 바꾸는 게 가장 간단하지만 한국 국회는 그야말로 서울과 기득권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라서…. 사실 이것도 5·16쿠데타 이전으로 회복하자는 것에 불과한데 말이죠. - P165

국가 차원에서 추첨제 시민의회가 정치기구로서 법으로 보장되기 이전이라도, 생활영역에서 승자독식을 거부하고 추첨이라는 방법을 도입하고, 선거를 해야 된다면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든지 해서 우리 안에서부터, 일상에서부터 승자독식 문화를 깨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치기사가 생산되는 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정치인이나 관계자라는 사람들 말을 받아서 다른 매체보다 먼저 보도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까 정말로 시민들이 알아야 될 제도에 관해서는 요령 있게 맥락을 가지고 보도가 되지 않고, 정확하지 않은 기사들이 양산되는 것이죠. 진실된 정보를 제공하고 토론을 해서 나오는 의견이 중요하지,
지금처럼 엉터리 같은 보도들을 쏟아내면서 여론조사를 한다는 것은진정으로 국민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죠.

- 하승수 - P168

도덕·정치·사회 철학의 중심적인 과제로 재차 부상했다. 자유주의가 통합을 위한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은, 이해할 만하게도, 특정 의미와 실질적 가치를 담은 목적지향적 법질서의 구축을 포기하고,
추상적·보편적인 제도적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이성도 가치와 도덕의 화해와 합의의 지난함 혹은 불가능성에 대한 인식,
곧 도덕적 입장은 이성으로 논증될 수 없고 도덕적 차이는 이성으로 중재될 수 없다는 무력감의 자각에서 오는, 요컨대 ‘도구적 이성‘이었다. - P171

테일러는 17세기 과학혁명의 유산, 특히 인식론과 과정에 집착하는도구적 이성관이 철학 전반을 넘어 현대 문화와 현대인의 의식 전반에스며들었다고 탄식한다. 그리고 인간학 탐구를 자연과학에서처럼 인과적 규칙성의 발견과 동일시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단언한다. 가령 텍스트에 대한 독해는 늘 부분적이어서 타자의 해석 (역시 부분적인)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선과 가치를 취급하는 초월적·존재론적 명제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최종적인 언명을 할 수 없다. 그가, 끝없는 ‘비교판단‘을 통해 ‘오류를 제거해나가는‘ 이행(行), 곧 ‘해석학적 순환‘에서 ‘실천이성‘ (도구적 이성과 대비된)의 역할을 살피고, H. G. 가다머의 ‘지평들의 융합‘ 개념, 폴 리쾨르의 내러티브 이론 등을끌어와 해석학적 인간의 불가피성을 주목하는 맥락이다. 도덕적 근원을 표출하는 일도 해석, 설득, 수정, 재해석의 "지속되는 과정"인바, 그자체가 논쟁적이기 때문이다. - P172

특히 오늘처럼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선불평등한 것들을 평등하게 대우한다는 것과 공평무사하다는 것은 전혀다른 문제일 것이다. 테일러에 따르면, 국가중립성이란 "자유주의의 허세"에 불과한,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개념이다. "중립이란 없거니와, 중립적 자유주의란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현실세계와는 무관한 천사의 관점일 뿐이다." - P178

1이 모두가 시사하는 바는, 분배정의를 위한 단일의 원칙군을 찾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평등 원칙과 기여 원칙이 대립하고, 분배정의에 관한 수학적 증명이나 도식주의적 환원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질문과 답변을 판단하는 결정적 준거란 없다. 특정 사회에서 무엇이 정의로운지를 결정하는 일은 역사, 경제, 통합 정도에 비춘, 그 사회에 적합한 가중치와 관련된, 비환원적 원칙들을 상호적으로 결합하는 문제인 것이다. - P182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열린자세일 터인데, 민주주의는 철학자 톰 네이글이 말했던 "인식론적 절제"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동원하는 길고 지루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가령 분배정의에 접근한다면, 결정적인 분배 원리를 지시하는 ‘철학자의 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공감할 만한 원칙들에서 만족할 줄아는 것이 중요하다.
테일러의 저술에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상대 주장에서 최상의 것을 포착하려는 ‘정신의 너그러움‘이 일관되게 포착된다. 인식과 도덕이불완전한 인간은 ‘인식론적 잠정성‘, 해석학적 순환의 운명에 갇힌 존재이며 어둡고 흐린 거울을 통해서만 세상을 본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석양이 돼야 날기 시작하고, 모든 학문에 통달했다는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기에 이르지 않는가. 그리하여 테일러는 인간학이 미래를 자연과학적으로 예측한다는 오만을 버리라고 충고하며, 자유주의의위기와 가능성을 동시에 탐구한다.

- 고세훈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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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과 영원 시리즈. 김남숙 소설가의 <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 중 [너무 시끄러운 고독]

처음 들어본 작가. 짧은 글만으로도 작가의 에세이도 소설도 관심간다. 보흐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도.

2017년에는 책을 많이 읽었다. 특히 마음을 잠재울 수 없는 여름에 주로 읽었다. 밤이고 낮이고 책을 펼치다 보면, 밤이 낮이 되기도 하고 낮이 밤이 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일으키는 소용돌이를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보다 그런 식으로 마음을 정리하는 게 좋았던 것 같다. 말을 하면 할수록 온몸이 텅 비는 것 같은 경험을 누군가는 해 봤을 것이다. 그때 내 몸은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점점 부풀기만 하고 무게감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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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1호 : 플랫폼 인문 잡지 한편 11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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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우의 [독점으로 향하는 급행열차]에 나온 아래 표를 보자.

플랫폼이라는 용어가 최근에, 단기간 동안, 얼마나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는지, 얼마나 핫한 용어인지 알 수 있다.

팬데믹과 함께 온라인 플랫폼, 배달 플랫폼, 플랫폼 노동자, 메타버스 플랫폼, 플랫폼 비즈니스 등 이제 플랫폼이라는 용어 없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설명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이번 호에는 흥미를 끄는 글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에게 흥미로웠던 글은, 


강미량의 [걷는 로봇과 타는 사람]

가장 흥미로운 글이었다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장애와 플랫폼이라니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지하철 플랫폼을 생각하게 하는 주제다.


나는 걷기를 장애 정치의 포기로, 휠체어를 걷기의 포기로 보기를 멈추었을 때 비로소 다양한 움직임을 몸에 축적한 사람들을 만났다. 휠체어를 타다가 로봇에 옮겨 타 걷는 파일럿들이 있듯이, 로봇을 타다가 훨체어로 옮겨 타 춤을 추는 사람들이 세상에 있었다. 이제는 걷는 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대신 함께 걷기에서 함께 움직이기로 문제가 확장되었다. 내가 만난 독특한 몸짓들은 여전히 연구실이나 병원 같은 한정된 공간에 머물러 있다. 장애인과 휠체어와 로봇이 잘 움직일 수 있도록 단을 낮추고 틈을 메꾸고 적절한 인력을 배치한 공간들. 그러나 이 공간을 나서는 순간, 걷기와 타기의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들이 사라지고로봇과 휠체어가 멈춘다. 우리가 목도한 지하철 시위는 이렇게 멈추게 된 수많은 휠체어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만약 플랫폼이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손쉽게 이동시키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 사회의 플랫폼은 타는 사람들을 이동시키는 데 꾸준히 실패하고 있다. 걷는 몸에게 열린 플랫폼이 타는 몸에게는 닫혀 있다. 과연 이 플랫폼이 로봇을 탄 몸을 환영할 수 있을까? 같은 시간에 같은 역에서 내리는 승객들처럼, 타는 몸과 걷는 몸이 동시에 오르고 함께 내리는 플랫폼을 상상한다. 이 공동의 몸짓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남은 숙제다. - P51~52



김민호의 [플랫폼들의 갈라지는 시공간]

철학적 관점에서 플랫폼을 바라보는 글이다. 어렵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글이다.


비선형적 읽기가 일상적으로 실현됐다. 총괄적 체계 속으로 회집되지 않는 파편들이 한꺼번에 제공되는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선형적으로 쓰지 않고 선형적으로 읽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텍스트에 체계적 일관성을 기대하지 않는다. 분석은 단편적 감상들로 대체되고 종합은 감상들의 병렬로 갈음되며 단문은 단순한 미감이나 취향을 넘어서 시대의 미덕이 된다. 이것은 우리 개개인의 무능력이 아니라 세계라는 관념 자체의 갱신과 결부되어 있다. 세계는 조물주라는 저자가 쓴 체계적이고 일관된 책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산만한 글의 파편들로 표상된다. - P83



김혜림의 [K 카다시안의 고백]

비평 플랫폼 기획자의 고뇌와 갈등을 담은 소설인 듯 소설 아닌 글이다.


K가 기획한 플랫폼 노마드는 누구나 비평을 쓰고 ‘공유‘할 수 있다는 가치를 흐릿한 미션으로 잡았다. 누구나 글을 쓰고 보낼 수 있다는 생산 행위가 아닌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교환 행위가 셀링 포인트였다. 비평가 윤아랑이 말한 것처럼 이런 종류의 환상은 건방진 것일지도 모른다. "누구든 ~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이 고도로 대중화되는 흐름을 지시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목적어의 자리에 들어갈 것이 여전히 특권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의식이 숨어 있다. 그 누구도 ‘누구든 숨을 쉴 수 있다‘고 굳이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 P135



문호영의 [번역을 공유하는 놀이터]

하나의 시를 여러 번역자가 동시에 번역하여 기고하는 번역 플랫폼 잡지 <초과>를 통해 번역의 매력, 번역의 어려움, 번역의 예술을 알게 되는 글이다. 진은영 시인의 시 [달팽이]의 영어 번역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초과》를 읽으면서 나는 번역가들의 선택이 각각의 번역시라는 세계를 직조하는 방식에 감탄했다. 중영문학번역가 제레미 티앙은 번역가를 두 언어나 문화 사이의 ‘다리’로 비유하는 것은 적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원문을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번역하기에, 번역가는 다리처럼 중립적인 개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리라는 오래된 비유 대신 티앙은 번역가를 곡을 해석하는 피아니스트에 빗댄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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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벤투라와 아홉 번째 왕국
실비아 플라스 지음, 진은영 옮김 / 창비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이미 가진 기차표의 정해진 종착지에서 내릴 것인가. 여정을 변경할 것인가. 어떤 선택이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지.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할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그럼에도 남들이 정해준 대로 따라 살진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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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여행이 될 거야. 사람은 언젠가 다 집을 떠나야 돼. 더 이르든 더 늦든 모두 떠나야 한단다"
메리는 힘이 빠졌다.
"에이 참, 알겠어요." - P14

"맞아, 얘야."
그녀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하지만 네가 비용을 낸다는 걸 명심하렴. 네가 마지막에 전부 다 계산하는 거야. 여행을 매혹적으로만드는 게 그들의 일이고, 철도 회사는 승객들에게 순수하게 호의적인 관심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란다."
"맞는 말씀인 것 같아요."
메리는 웃으면서 인정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지는 못했어요. 그렇지만 말씀해주세요. 우리가 기차에서 내릴 땐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상상이 안 돼요. 여행 안내서에는 북쪽지방의 기후나 사람들에 대해 아무 말도 없어요. 아무 말도요." - P37

"승객들은 차표를 사지"
여자는 조용히 바늘로 코들을 세다가 말을 이어갔다.
"승객들은 차표를 사고, 정해진 역에서 내려야 할 책임이 있어…. 그들은 기차를 선택했지. 노선도, 자신들의 목적지로 가는 여행도."
"알아요. 하지만 그 여자. 그녀는 너무 겁먹은 듯보였어요."
"그래, 승객들은 종종 그렇지. 그러니까, 마지막 순 - P46

간에 안절부절못해. 깨달음이 너무 늦게 온 거란다. 그러곤 차표를 산 걸 후회해. 후회한다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지만, 여행하는 것에 대해 미리 생각을 했어야 하는데."
"저는 그녀가 왜 생각을 바꿀 수 없었는지, 왜 내리지 않을 수 없었던 건지 여전히 모르겠어요. 기차여행이 끝날 때 더 지불할 수도 있었잖아요."
"철도 회사는 이 여행에서 그런 걸 허용하지 않는단다." - P48

메리의 목소리가 커졌다.
"무슨 뜻으로 무서운 일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모든 걸 너무 이해할 수 없게 말씀하세요."
"사실 무척 간단해. 승객들은 아주 심드렁하고 아주 무관심해서 자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신경조차 안쓰지. 때가 될 때까지 아홉 번째 왕국에 신경 쓰려하지 않아." - P49

"넌 돌아가는 걸 선택하지 않았고, 이제 돌아가기 위해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 P55

옮긴이의 말-진은영

<메리 벤투라와 아홉 번째 왕국>은 친구들과 함께 모여 읽으면 좋겠다. 연기와 석탄재가 휘날리는 창밖의 풍경과 쓸쓸한 주홍색 태양도 친구들의 다정한 목소리 너머로는 조금 따듯하게 보이겠지. 너는 어디쯤에서 어떻게 내릴 거니? 너의 비상 정차 줄은 무슨 색이야? 서로 물으면서 한문단씩 이어서 읽어가자. 소설은 짧고 우리가 모였으니 다른 것도 읽어봐야지. 버지니아 울프와 앤 섹스턴을, 최승자와 김혜순을, 이원과 김행숙을, 김이듬과 김경인을, 김민정을, 하재연을, 신해욱을, 강성은과 박시하와 박소란과 배수연을, 그리고 안희연을………. 친구들의 아름다운 이름은 기차역처럼 많기도 하고 기차 여행처럼 길기도 하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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