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궁극의 혁명: 요구와 사변

옮긴이의 말

10장 궁극의 혁명: 요구와 사변

생태학과 사회계획social planning의 가장 새로운 경향은 페미니스트의 목적과 부합한다. 페미니즘과 혁명적 생태학이라는 두 가지의 사회적 현상이 우연의 일치로 나타난 방식은 역사적 진실을 보여준다. 즉, 새로운 이론들과 새로운 운동들이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발달한 것이 아니고, 환경의 모순들에 필요한 사회적 해결책의 선봉으로 일어난 것이다. - P279

페미니스트 운동이 직접적으로 흥미를 가지는 생태학의 관심사들은 무엇인가? 나는 새로운 페미니즘과 특히 관련되는 새로운 생태학의 문제를 두 가지 간략하게 논의하겠다. 인구 증가에 의한 위기와 피임법을 포함하는 생식과 그것의 통제, 그리고 인간과 노동 및 임금과의 아주 오래된 관계를 변형시키면서 점점 복잡해지는 기능을 기계가 완전히 장악하게 될 사이버네이션cybernation이 그것이다. - P280

아직 대중은 과학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일반사람들이 ‘과학자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그렇게 열렬하게 믿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은 언제나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는 것처럼 보인다는 주술사 신화 이외에 정보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너무 느리게 새어나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중이 ‘녹색혁명‘에 관해서 듣기 시작했을 때는 과학자들이 그것에 관한 희망을 포기했을 때인 것이다. 녹색혁명은 세계적인 기근을 한 세대 후로 지연시키기 위한 절망적인 미봉책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 정보는 경각심을 주는 것이 아니라 상투적인 것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 P282

사람들은, 과학자 자신들조차, 이러한 일들에 대해 문화적으로 준비되어 있는가? 단연코 아니다. 『라이프 Life』 지에 인용된 최근 해리스여론조사Harris poll*는 미국인 중에서 광범위하게 표본을추출했는데 예를 들어 아이오와의 농부까지 포함해서-놀라운 수의 사람들이 새로운 방법들을 기꺼이 고려하겠다고 했다. 문제는 그들이 가족생활과 출산에 관한 현재의 가치들을 강화하 - P285

고 촉진할 때만 예를 들어 불임인 여성에게 남편의 자녀를 갖게 하도록 돕는 일그 방법들을 고려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해방 그 자체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질문은 비자연적인 것이라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러나 비자연적이라고 여겨진 것은 ‘시험관‘ 아기 자체가 아니었다는 것을 주목하라. (25%가 아내가 불임인 경우 스스로 이 방법을 사용할 것이라는 데 주저함 없이 동의했다.) 그들이 비자연적이라고 여긴 것은 남성 우월성과 가족의 제거에 기초한 새로운 가치체계였다.
이제 생식의 영역에서의 연구가 문화지체cultural lag와 성적 편견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 P286

페미니스트 혁명은 새로운 생태학적 균형을 수립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즉 인구폭발에 관한 관심, 생식에서 피임으로 그 강조점이 전환된 것, 그리고 인공생식의 완전한 발달에 대한 요구는 생물학적 가족의 억압에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사이버네이션은 인간과 일 및 임금과의 관계를 변화시킴으로써, ‘노동’ 활동에서 ‘놀이‘ (그 자체를 위해서 하는) 활동으로 변형시킴으로써, 경제적 능력을 갖춘 가족 단위를 포함하여경제에 대한 전면적인 재정의를 가능하게 할 여지를 줄 것이다. 남자는 땀 흘려 일하고 여자는 고통과 산고를 참아야 하는 이중저주는 처음으로 인간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놀로지를 통해 해소될 것이다. 페미니스트 운동은 20세기의 인류생존을 위해서 필수적인 새로운 생태학적 균형을 받아들이는 문화를 창조한다는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 P292

1)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하여 여성을 생식의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양육의 역할을 여성뿐 아니라 남성, 즉 사회 전체로 확산시킬 것 - P294

2) 여성들과 아이들에게 경제적 독립에 기초한 정치적 자율성을 줄 것 - P295

3) 여성과 아이들을 사회에 전면적으로 통합시킬 것 - P297

4) 모든 여성과 아이들에게 성적 자유를 줄 것 - P2977

그럼에도 결혼은 바로 그 정의상 참가자들의 욕구를 절대 충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우리가 이제서야 바로잡는 기술을 가지게 된 근본적으로 억압적인 생물학적 조건을중심으로 조직되었고 그것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결혼제도를 가지는 한 우리는 그것에 내재된 억압적인 조건들을 가질 것이다. 낡은 대로 여전히 만족시키고 있는 결혼이란 것의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거나 더 잘 만족시킬 새로운 대안들에대하여 우리는 이야기하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떤 제안이든 우리의 페미니스트적 구조에서는 결혼보다 적어도 하나라도 더 나은 것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번 한 번만은 오직 그들에게만은 결혼이 의무를 다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결혼에 매달려 있을 것이다. - P319

혁명적인 것에 대한 전형적인 덫은 언제나 ‘대안이 뭔데?‘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질문자에게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가 그것을 활용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경우 그는 진정으로 알기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것은 흔한 공격으로, 혁명적 분노를 모면하려는 기술이며 혁명 그 자체에 등을 돌리려는 것이다. 더욱이 억압받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납득시킬 책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은 현 제도가 그들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 P320

어떤 혁명에서든지 유지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특성은 유연성이다. 따라서 나는 다수의 선택의 여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어떤 것은 과도기적이고 어떤 것은 먼 훗날의 것으로, 서로 뒤섞이는 프로그램을 제안할 것이다. 한 사람의 개인은 10년 동안 하나의 ‘생활방식‘을 선택하고, 다른 시기에는 다른 방식을 선호할지도 모른다. - P321

2) 함께 살기
처음에는 보헤미안이나 지식인 사회에서만 실천되었으나 이제는 일반인 사이에서도 특히 대도시의 젊은이들에 의해 일반화되어 사회적 풍습이 되어가고 있다. ‘함께 살기‘는 성이 무엇이든지 간에 둘 또는 그 이상의 상대가 내적 역학관계에 따라 다양하게비법적인 성-동반자 합의 기간에 돌입하는 느슨한 사회적 형태이다. 계약은 당사자들 사이에서만 맺어진다. 사회의 이해관계와는 무관하다. 그 이유는 생식도 생산-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의존하는 것도 개입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연한 비형식적인 삶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애 대부분을 살아가는 표준단위가 되도록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 P323

‘우리가 지금까지 제안한 두 가지 선택-독신의 직업인과 함께 살기‘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 사회의 주류바깥에서나 혹은 평범한 개인의 삶에서 짧은 기간 동안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생애에서 더 오랜 기간을 포함할 수 있도록 이러한 선택을 확장시키고, 현재 결혼을지지하고 있는 모든 문화적 혜택들을 여기로 이전해서, 이러한대안들이 마침내 오늘날의 결혼만큼이나 흔히 받아들여질 수있게 되기를 원한다. - P324

그러므로 사이버네틱 코뮤니즘이라는 커다란 맥락에서 아이의 생식을 위한 가족의 대안으로 가구를 확립하고, 독신 혹은 생식과 무관한 단위에서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을 위한 모든 상상가능한 생활방식이 결합되면, 현재 가족으로부터 발생해 인간의 행복을 방해하는 모든 기본적 딜레마들이 해소될 것이다. - P336

옮긴이의 말 - 김민예숙

이 책을 처음 번역할 당시 이십 대였던 나는 몇 달 동안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하루 여덟 시간씩 꼬박 번역 작업을 하였다. - P342

급진적 여성주의의 구호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Personal is political"는 여성주의상담의 원리 중의 하나이다. - P344

그리고 그녀는 여성주의 혁명을 위하여 ①여성을 생물학적 생식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출산과 양육의역할을 여성에게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담당하게 하기, ②경제적 독립을 포함하여 여성들과 아동들에게 완전한 자결권을 주기, ③여성과 아동들을 사회의 모든 면에 전면적으로 통합시키기, ④모든 여성과 아동들에게 성적으로 그들이 하고자 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자유를 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생각들 중 어떤 것은 그 후 남성의 육아휴직, 기본소득, 차별금지법등으로 실천되거나 논의되고 있다. - P346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에 대하여_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 유숙열

번역을 끝내고 나는 그녀 개인에 대해 알려주는 자료를 찾아 헤맨 끝에 저명한 페미니스트 필자인 수잔 팔루디 Susan Faludi 가 「뉴요커」(2013년 4월 15일)에 쓴 ‘한 혁명가의 죽음‘이라는 글을 발견했다. 그 글은 그녀의 정신병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녀를 병들게 하는 데 일조를 했을지도 모를 진보운동과 페미니스트운동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충실한 취재와 함께 자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 글을 보며 난 그동안의 수수께끼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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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의 ‘위로 3부작’ <철학자의 위로> 중 [가족의 고통을 지켜보는 이에게: 헬비아에게 보내는 위로]

어머니에게 병 주고 약 주는 아들 세네카.

17.5 그 학문이 어머니를 안전하게 해 줄 것이고. 위로해 줄 것이며, 즐겁게 해 줄 거예요. 그것이 진정으로 어머니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면 슬픔과 근심, 혼란스러운 시름의 고통이 침입하는 일도 없을 거예요. 어머니의 마음은 그런 감정에는 열리지 않을 거예요. 그 마음은 이미 다른 악덕들에 대해 닫혀 있으니까요. 이 학문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보호막이며, 유일하게 어머니를 운명으로부터 구해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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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타우닝은 그게 아니라고, 실업 문제는 순전히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 때문이라고 말하고, 나는 ‘침체‘가 재미있고 매력적인 표현이라고 느낀다. 나는 상상한다. 별 하나 없는, 위로할 길 없는 회색빛 하늘에서 빗줄기가 쏟아지는 동안 모두가 자기 집 차양을 내린 채 불을 끄는 장면을, 그 깊고 깊은 슬픔에 잠긴 세계를 "그리고 이제," 마침내 스타우닝이 말한다. "우리의 대의를 위한 노고에 보상하는 의미로, 부지런한 당원 모집 담당관 여러분 각자에게 상품을 수여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우리 아버지가 그들 중 한 명이라는 자랑스러움으로 얼굴이 빨개진 나는 아버지가 앉아 있는 곳을 곁눈질로 바라본다. - P106

나는 가상의 인물에게, 루트에게, 그도 아니면 아무도 대상으로 하지 않고서 사랑 시들을 썼다. 나는 내 시들이 아직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 않은 딱지 밑에 매끈하게 돋아난 새 피부처럼 내 어린 시절의 휑한 공간들을덮어 준다고 생각했다. 내가 쓴 시들이 어른으로서의내 모습을 빚어내게 될까? 나는 궁금했다. 그 시절 나는 거의 언제나 우울했다. 거리에 부는 바람은 세상 전체가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내 키 크고 여윈 몸을 차갑게 뚫고 지나갔다. 어른들을 보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학교에서도 나는 언제나 눈을 부릅뜨고 선생님들을 노려보았다. 어느 날 대리 교사로 온 음악 선생님이 내 자리로 조용히 건너오더니 조용하지만 또렷한목소리로 말했다. "난 네 얼굴이 맘에 안 드는구나." 집에 온 나는 수납장 위에 있는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노려보았다. 얼굴은 창백했고, 두 뺨은 통통했고, 두 눈은 겁에 질려 있었다. - P111

들이고 있는 듯하다. 아버지는 언제나 내가 학교를 마치면 ‘연금이 나오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내게는 숙련공만큼이나 끔찍하게 느껴지는 일이다.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어느 방향으로 가든 벽에 부딪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내가 이토록 절실하게 어린 시절을 연장하고 싶어 하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거기서 빠져나갈 길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 P130

"잘 가요, 학생." 그가 말한다. 나는 온통 부서진 희망들을 끌어안고 어찌어찌 문 밖으로 걸어 나온다. 천천히, 아무런 감각 없이, 나는 도시의 봄을, 다른 사람들의 봄을, 다른 사람들의 기쁨 어린 변화를,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뚫고 걷는다. 나는 절대로 유명해질 수 없을 것이다. 내 시들에는 아무 가치도 없다. 나는 술을 안 마시는 착실한 숙련공과 결혼하든지, 아니면 연금이 나오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죽도록 실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시 노트에 다시 글을 쓴다. 아무도 내 시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나는 시를 써야만 한다. 시가 내마음 속의 슬픔과 갈망을 무디게 만들어 주니까. - P157

여러 시험을 끝낸 우리는 학교에서 졸업 파티를한다. 모두가 ‘붉은 감옥‘을 떠나게 된 것에 환호했고,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큰 소리로 환호를 보낸다. 내게는 무척 신경 쓰이는 일이 있다. 이제 나는 어떤 진짜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듯하고,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흉내 냄으로써 내게도 감정이 있는 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직 내게 간접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에만 마음이 움직이는 모양이다. 집에서 쫓겨난 불운한 가족의 사진을 신문에서 보고 눈물을 흘릴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 그것과 똑같은 흔한 광경을 볼 때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지금도 시와 서정적인 산문에는 감동하지만, 그 글 속에 묘사된 사물들에 대해서는 철저히 냉정한 마음이 된다. 현실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내게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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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메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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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집 <달려라 메로스> 중 표제작

민음북클럽 특별판으로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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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친구로 지내는 오랜 날들 내내, 나는 루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한다. 내가 정말로 어떤 앤지 그 애가 알게 될까 봐 겁이 난다. 루트를 사랑해서, 그리고 그 애가 너무도 강한 아이라서 나는 그애의 그림자가 되기를 자처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나는 여전히 나다. 내게는 이스테드가데를 벗어난 미래에 대한 꿈이 있지만, 루트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그거리에 매여 있어서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애와 같은 부류인 척하면서 그 애를 속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그 애에게 빚을 지고 있고, 이 사실은 두려움과 희미한 죄책감을 불러 와 내 마음을 괴롭힌다. 결국, 그빚은 우리의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 훗날 내 인생에서친밀하고 오래 갔던 모든 관계에 영향을 끼치게 될 바로 그 방식으로. - P62

내가 어머니에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자 어머니는 쾌활하게 대답했다. "음, 있지, 첫 아이는 임신 기간이 두 달을 넘지 않는 법이야." 그런 다음어머니는 웃었고, 에드빈과 아버지는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점이 어른들의 가장 나쁜 점같다. 그들은 자기들이 살아오면서 저지른 잘못된 혹은 무책임한 행동을 단 하나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다른 사람들을 그토록 성급하게 판단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심판대에 세우지는 않는다. - P81

아버지가 곧 도착할 거라서 그들은 서둘러야 한다. 어머니는 반짝이는 스팽글이 수백 개나 박힌 검은 튈로 한껏 치장한 채 서 있다. 스팽글들은 어머니의 덧없는 행복만큼이나 쉽게 떨어져 내린다. 그들이 막 문을 나서려는데 퇴근한 아버지가 집에 도착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노려보고는 말한다. "하, 허수아비 할망구 같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아버지를 그냥 미끄러지듯 지나쳐 에스테르를 바짝 뒤따라간다. 자기가 한 말을 내가 들었다는 걸 아는 아버지는내 맞은편에 앉아 아버지 특유의 온화하고 우울한 눈으로 자신 없는 표정을 짓는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아버지가 어색하게 묻는다. "밤의 여왕이요." 나는잔인하게 대답한다. 바로 이 사람이 언제나 우리 어머니의 즐거움을 망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 ‘디틀레우’이기 때문이다. - P85

"죄다 뜬구름 잡는 소리들이야." 아버지는 경멸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시들은 현실하고 아무 관련이 없어." 나는 현실을 좋아해 본 적도 없고, 현실에 관해 쓰지도 않는다. 내가 헤르만 방의 「길가에서」를 읽고 있으면 아버지는 두 손가락 사이에 그 책을 끼워 들어 올리고는 온갖 싫은 티를 다 내며 말한다. "이 사람이 쓴 건 아무것도 읽어선안 돼. 이 사람은 정상이 아니었다고!" 정상이 아니라는게 끔찍하다는 건 나도 안다. 정상인 척하려고 애를 쓰느라 나도 나름의 고생을 하고 있다. 그래서 헤르만 방 역시 정상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자 나는 되레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열람실에서 나는 그 책을 마저 읽고 마지막 부분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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