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알았다. 멋진 감정이었다. 그러나 또한 두려운 감정이기도 했다. 자기가 이런 행운을 누릴 만한 존재가 못 된다는 사실을 계속 느끼기 때문이다. 원래는 다른 사람이 누려야 할 기쁨인데 완전히 실수로 이런 행운을 누리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에 그 행운이 코앞에서 사라지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일단 그 감정을 맛보고 나면 가슴속 욕망을 계속 충족시키기 위해 하지 못할 일도, 희생하지 못할 대상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키티와 내가 완전히 같은 느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대상은 달랐다.훗날, 나는 이를 기억했어야 했다. - P99
썩어도 준치 얘기하다가(그 준치가 생선 맞아?) 오랜만에 꺼내본 그림책~~ 오 왜 이렇게 호러블한 느낌이지??
거기에 가톨릭 부르주아 계층이라 교황이 피임에 대해 제시한 훈계들을 존중했기에, 비밀을 털어놓는다면 가장 마지막에 선택할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부터 끝까지 내가 속내를 털어놓았던 사람은 바로 그녀다. 나는 이제야 이런 사실을 깨닫는다. 내가 처한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하라고 몰아붙이는 욕구는 비밀을 털어놓을 상대의 가치관이나 판단을 고려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상황에서 말조차 하나의 행동이었고, 그 결과는 아무래도 상관없었으며, 말을 함으로써 상대방을 현실의 놀라운 광경 속으로 끌고 가보려고 애썼다. - P40
내가 겪은 임신 중절 체험 - 그것도 불법으로 - 이 끝나 버린 이야기의 형식을 띤다고 해서 그것이 그 경험을 묻히게 놔둘 타당한 이유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정의로운 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거의 매번 ‘모든 게 끝났다.’라는 명목으로 이전 희생자들에게 입 다물 것을 강요한다. 그래서 그 이전과 똑같은 침묵을 일어나게 하는 일들을 다시 뒤덮어 버려도 말이다. — 1970년대의 투쟁들 - ‘여성들에게 가해진 폭력‘ 같은 것에 맞선 - 이 어쩔 수 없이 단순화한 문구들과 그런 집단적인 관점에 거리를 두면서, 내가 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이 사건을 당시의 실재 속에서 과감하게 맞설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임신 중절이 이제는 금지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P20
장 T.가 나를 모욕적으로 대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그에게 나는 섹스 제안을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알 수 없는 여자의 범주에서, 이제 의심할 여지없이 이미 섹스를 경험한 여자의 범주로 이동한 셈이었다. 두 범주 사이의 구분이 엄청나게 중요하고, 여자를 판단하는 남자의 태도에 영향을 끼치던 시절에, 그는 무엇보다 현실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게다가 나는 이미 임신한 상태라 임신할지도 모른다는 위험마저 없었다. 불쾌한 일화였지만, 내 상황에 비춰 보면 어쨌든 하찮은 일이었다. 그는 의사의 주소를 찾아 준다고 약속했고, 나는 달리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이들을 알지 못했다. - P25
반전 매력이 철철~~
나이가 더 많고 세상을 더 잘 아는 여자로서, 그 애의 잘못을 이해하고 헤아리게 되면서, 그리고 그 애의 망가진 미래를 예견하면서, 마로너 부인의 마음속에 새로운 감정이 강력하면서도 분명하게, 억누를 수 없이 차올랐다. 이런 일을 저지른 남자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원망이. 그는 알고 있었다. 간파하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충분히 예견하고 가늠할 수 있었다. 순진하고, 무지하고, 고마워하며 따르고, 타고나길 온순한 성격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남았다. 다 알면서 그런 점을 의도적으로 이용했다. - P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