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반복되었던 잘못된 선택, 착각, 부질없는 기대, 굴복이나 패배 따위에 대해 생각했다. 언제나 그런 식이지. 그녀는 항상 그게 용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녀는 그게 용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곤 했다. 그렇다면 그건 무엇이었을까? 때때로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삶이, 그녀 앞에 놓인 삶이 버둥거림의 연속이고, 또한 기도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더이상 기도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기도, 제발 내가 또다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지 않게 도와주세요. 그녀는 얼마나 자기 자신이 기도를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랐던가.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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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마주앉은 사람의 피부 한 겹 아래까지 닿을 듯 꼿꼿한 시선이 있었고 말로 사람들을 이끄는 사람답게 동굴 안에서부터 울려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가 있었으며 주목과 주시 속에서 살아온 사람 특유의 피로한 윤기가 지우다 만 분장처럼 얼굴 여기저기에 묻어 있었다. - P122

추석이면 아버지는 집에 온 나를 데리고 뒷산으로 나갔다.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를 걸으며 그래서 너는 변하지 않는 거니? 언제 변할 건데? 하고 한 점도 변함없이 기다리는 어조로 묻는 아버지의 지친 목소리를 들으면 당장 늑대로 변해 아버지 앞에서 닭의 목을 물어뜯으며 피를 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모든 시간들을 종합해보면 내게는 모두의 앞에서 나를 분명히 밝힌 경험이 영원한 회한으로 남지는 않았다. 문이 열린다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용기보다는 침묵이, 대담함보다는 소심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 나였으므로 더욱 그랬다. - P126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일에는 그 모든 것들이 관여하고 있었다. 나와는 달리 네가 신의 말씀을 들으며 자라났고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대학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관계되어 있었고 네가 네의 신에 대해 갖고 있던 불편하지만 온전히 떠날 수는 없다는 태도가 관계되어 있었다. 네가 가진 형제들과 내게는 없는 형제들이 관계되어 있었다. 너의 교회 사람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에 대해 했던 말들이 관계되어 있었고 내 동료들이 너의 교회 같은 교회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하는 말들이 관계되어 있었다. 내가 나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기 위해 너의 경제적 도움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능 사실이 관계되어 있었고 그 사실에 대해 내가 품는 감정이 관계되어 있었다. 네가 나를 위해 포기한 것들이 나를 건드리는 방식이 관계되어 있었고 그런 나를 보는 너의 표정이, 무엇보다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두 사람이 동시에 도달하는 침묵의 농도와 빛깔, 어떻게 해도 건너갈 수 없는 그 여울의 세찬 물살이 관계되어 있었다. - P146

커밍아웃이나 퀴어활동을 통해 퀴어로서의 자기인식을 수행하는 것이 퀴어담론의 핵심적 장치이긴 하다. 하지만 성소수자 인권운동가 한채윤의 지적처럼, 커밍아웃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 인식하는 순간 차별의 사회·역사적 맥락은 사라진다. 딸기는 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고 싶어하는 루카에게 딸기만을 "유일한 시민"으로 삼는 세계에 살도록 요구한 것, 즉 퀴어세계에서만의 안존을 강요하는 것이 또다른 ‘클로젯팅(벽장 안에 가만히 숨어 있기)‘일 수 있음을 알지 못했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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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장사실주의자의 소설에 후장사실주의자의 해설. 난해하다..
어떤 관점에서 봐야하는가.

우리는 하와이에서 일 년간 함께 살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행복했고 행복할 땐 행복한 줄 모른다는 사실을 행복하지 않은 뒤에야 알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이후 영원히 행복하지 않을 줄은 몰랐습니다. - P16

김원은 이구가 공적인 공간에서 얼마나 자신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고 서울은 그에게 얼마나 어색한 공간이었는지. 일상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싸움과 투쟁, 연기의 연속이었나 하는 것을 미국에 가서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 P28

내가 지은 건물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제금 지어지고 있는 건물과 앞으로 지어질 건물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벌써부터 숨이 막혀오고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나는 선 하나 제대로 그을 수 없는 지경에 사로잡히지만 임박해온 마감 날짜와 시공 날짜 때문에 스스로를 기만하며 그림을 그리고 설계를 하는데 그런 다음에는 견딜 수 없는 자기혐오와 좌절에 사로잡히지요. - P48

진실함은 진실함이 아니라 진실함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이성복은 말했다. 그는 또 허구로서의 진실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보호하고 삶을 기획하게 한다고도 말했다. 시험 때 만화를 보면 더 괴롭다. 그럼 공부할 수밖에 없다. - P56

하지만 그 생각은 (다행히) 이내 폐기되었다. 다른 원고를 쓰기 위해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를 읽다가 키르케고르를 다룬 카를 달라고의 출판물에 대한 카프카의 촌평을 기록한 구스타프 야누흐를 인용한 바르트의 강의록을 변광배가 우리말로 옮긴 문장을 만났기 때문이다. - P63

작가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삶을 써라. 대화를 기록하고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라. 그것뿐이다 라는 당선 소감으로 자신의 지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 P66

귀보씨는 ……… 멀리 있어야만 가까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 P76

안녕, 아름다운 동화에서 한 페이지를 찢어냈는데도 이야기가 연결되는 느낌으로, 그렇게 살아갈게..
이 고별사는 조영숙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슬픈 동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잠겼다. 영원히 찢어진 한 페이지라는 로맨틱한 비극의 세계로 내던져진 느낌이었다. 그것은 쓸쓸하면서도 달콤한 고독의 감정을 그녀에게 남겨주었다. - P77

죽음은 삶 전체를 드러내는 무한한 거울이다〉
〈죽음은 단순한 없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소유할 수없는 신비이자, 무한한 사건의 발생 가능성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을 것이며, 죽음이 오면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등등.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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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날도 이유는 있어서 - 어느 알코올중독자의 회복을 향한 지적 여정
박미소 지음 / 반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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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 출신 작가의 필력(특히, 술을 넘길 때의 그 느낌, 감정을 묘사하는 부분을 반복해서 읽다보면 못먹는 소주가 땡길 지경이다!!), 기자 특유의 정보에 대한 호기심(중독의 매커니즘, 뇌과학 관점에서의 중독의 영향, 중독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다양한 독서와 리서치)이 개인적 중독 경험과 어울려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중독에 관련되 다양한 책을 인용하고 있는데, 특히 캐럴라인 냅의 드링킹에 대한 언급이 많다. 작가가 이 책을 쓰는데 큰 영향을 끼친 것 같고, 나도 읽고싶은 책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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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2-07 1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요즘 인디 책방에서 책+맥 취향대로 골라주는 이벵을 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만 작품 읽으면서 작품 속 도시에서 생산된 맥주 마시능 ㅋㅋㅋ
코로나 팬더믹 시기 겨울나기는
결국 집콕+음주+책!^^

햇살과함께 2021-12-07 11:20   좋아요 2 | URL
오~ 가고 싶네요~ 치맥보다 피맥보다 책맥이죠~!!

프레이야 2021-12-07 11: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맥독 와독 좋지요. 소독은 안 해봤는데 햇살 님 못 마시는 소주가 땡길 지경이시라니 이 책 읽고 싶어지네요. 책 소개 고맙습니다. 담아가요.

햇살과함께 2021-12-07 13:53   좋아요 2 | URL
절주하려고 읽었는데 술이 더 먹고 싶어지는 부작용이 있어요 ㅎㅎ
 

첫번째 영화가 컨테이젼!
이 책 덕분에 넷플릭스에 찜만 해두고 보지 않았던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와 [컨테이젼]을 보았다.
섹스..는 제목만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영화인데, 너무 좋았다. 특히, 남주 제임스 스페이더! 너무 잘생겼다! 리즈다! ㅎㅎ
컨테이젼은 정말 현재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듯..너무 신기했다. 박쥐로부터의 전염, 사회적 거리두기, 악수하지 않기, 손 잘 씻기, 격리, 체육관 임시병동, 사재기…
본 영화가 12편, 볼 영화가 많다~!

이제는 바이러스 사태로 밀쳐 두었던 산재한 전지구적 문제들에도 다시 주목해야 한다. 점점 더 올라가는 지구 온도와 백신 보급에서도 드러나는 불평등한 가난의 구조, 일상을 파고든 차별과 혐오는 우리의 물리적, 정신적 생태계를 교란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예측과 담론이 대량 생산되고 위드 코로나로 향하는 시점에서 이를 다룰 영화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 P26

"나의 사진은 내가 조작하는 나의 시선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초대다.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사고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작업이다." - P41

생을 대하는 혜안에 유머와 활기까지 더해 어디선가 달콤한 향기가 바람결에 실려 오는 것 같다. 바디가 구덩이에 몸을 누이고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코발트빛 밤하늘엔 수많은 별이 총총 박혀 빛난다. 날이 밝자 변함없는 풍경 속 왁자한 사람들 소리 그리고 영화에 비추진 않지만 분명 자신을 깨우러 달려온 신실한 박제사 노인으로 바디는 혼자가 아님을 깨달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신의 이름으로‘라는 자막으로 시작했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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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2-06 0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임스 스페이드 약간 몽환적인 이미지로 핸섬하죠^^. 누가 물어 본 건 아니라도 제 취향은 아니지만요. 소더버그도 천재과인 듯.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천재과들은. ^^ 일단 12편이나 겹치니 반가워요 햇살과함께 님.

햇살과함께 2021-12-06 13:57   좋아요 1 | URL
이 역할에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