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런트가 불쑥 말했다.
"나는 그 동안 모든 면에서 바보였소. 우리가 이제까지 한 대화는 무척 괴상했소. 덴마크 연극처럼 말이오. 하지만 선생은 훌륭한 분이오, 푸아로 씨. 고맙소."
블런트는 푸아로의 손을 잡고는 그가 아파서 찡그릴 만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옆문을 통해 정원으로 나갔다.
"모든 면에서 바보였던 건 아니지. 오직 한 가지, 사랑에 빠진 바보일 뿐이지."
푸아로가 아픈 손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 P3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그 모든 추론이 터무니없노라고 힘주어 말했다. 누이가 말한 것 중 적어도 일부에는 마음속으로 동의하고 있었던 만큼 내 어조는 더욱 단호했다. 하지만 누이처럼 그저 어림짐작만으로 사태를 판단하는 건 정말 잘못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일을 부추기지 않을 터였다. - P19

어떤 사내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하고, 여가와 소일거리를 갖기 위해 땀과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자신이 기뻐하며 떠나왔던 과거의 일과 분주했던 지난날을 그리워하고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걸 말입니다."
"그럼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저 자신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1년 전 저는 유산을 물려받았죠. 꿈이 실현되었다고 여길 만한액수의 돈을 말입니다. 전 언제나 여행을 하고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죠. 음, 그게 말씀드린 대로 1년 전입니다. 그런데 전 아직 여기 이러고 있답니다."
내가 느릿하게 대답했다. 자그마한 이웃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습관이란 게 그런 거죠. 우리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하지만,
목표가 달성되고 나면 우리가 진짜 원한 것은 사실 매일의 노동임을 알게 되지요. 그리고 기억해 두세요. 무슈, 제 직업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었답니다. 세상의 여러가지 일들 중 가장 흥미로운 종류의 일이었지요." - P37

"돈이란 지금 제게 중요합니다. 언제나 그래 왔지요. 하지만 제가이 사건을 맡는다면 돈 때문이 아닙니다. 한 가지만은 분명히 알아두셔야 합니다. 전 이 사건을 끝까지 파헤칠 겁니다. 명견은 냄새를 맡으면 끝장을 보는 법이란 걸 잊지 마십시오! 나중에 당신은 그냥이 사건을 지방 경찰에 맡겨 두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하실 수도 있습니다." - P116

"의자에 관한 한 그렇다고 봅니다. 그 밖에는 모르겠습니다. 이런종류의 사건을 많이 다루어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선생님, 이런 사건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내가 호기심을 느끼며 물었다.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 각자가 뭔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 P1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미니즘 운동을 발아시킨 존 스튜어트 밀의 저서 《여성의 종속》은 1869년에 출판되었는데, 이후 페미니즘 운동가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 P1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여성 억압을 가장 먼저 포착하여 쟁점화했고,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한 점에서 높이 평가되지만 여성의 지위개선을 위한 개혁주의적인 접근에 그쳤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이같은 한계에 부딪치자 페미니스트들은 독자적인 조직이나 이론의 정립문제를 다시 부각하면서 이를 사회주의 사상에 기저를 두고 해결코자 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여성 차별에 근원적으로 저항하고자 중산층 백인 여성 소집단에서 출범한 ‘급진적 페미니즘‘이 대두되는데, 이는 이후 여성 억압의 근원 찾기, 또는 여성 억압이 모든 억압의 뿌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P2

당시 동경에는 여성해방을 주장하는 잡지 《청답>이 간행되어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미술학교 2년 재학 때 동경 유학생들의 동인지인 《학지광》 3호에 최초로 근대적 여권을 주장하는 <이상적 부인>을 기고하였다. 이 글의 주된 내용은 ‘부덕의 장려‘란 여자를 노예로 만들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앞으로 여자도 기예를 익히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자는 제안이었다. - P86

단편소설 <경희>는 200자원고지 125장으로 역작이다. 여성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근대단편소설의 형식적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이 작품의 일부분을 살펴본다면, "경희도 사람일다. 그 다음에는 여자다. 그러면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일다. 또 조선사회의 여자보다 먼저 우주안 전 인류의 여성이다…" 라며 무엇보다 여성을 하나의 주체적 인격체로서 인식하고 이를 전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우리 나라 페미니즘 문학의 선두라 봐도 될 것이다. - P87

김우영은 그녀와 나이 차이가 10년이나 연상이었지만 근대적인 여성의 사고를 존중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나혜석이 결혼하면서 요구한 파격적인 결혼 조건인 죽은 애인의 무덤에 돌비석을 하나 세워 달라는 요구까지도 들어주었다. 김우영의 열렬한 구애로 이루어진 결혼은 그녀에게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녀는 《신여자》 4호에 김우영과의 사랑의 일기를 공개하는 <4년전의 일기 중에서>를 기고하기도 하였다. - P90

《삼천리》 7월호는 <여인 독거기>를 8, 9월호 2회에 걸쳐서는 이혼한 김우영 앞으로 띄운 한국 근대여성사에 전무후무한 이혼 고백서를 발표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 내용 중에는 그녀가 최린에게 이런 말을 한 기록이 있다. "나는 공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내 남편과 이혼은 아니하렵니다 … 나는 결코 남편을 속이고 다른 남자, 즉 최린을 사랑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죠. 본남편이나 본체를 어찌하지 않는 범위내의 행동은 죄도 아니요 실수도 아니며 가장 진보된 사람에게 마땅히 있어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고백은 사실상 그녀의 연애론이라 할 수 있다. - P130

그녀는 이혼 고백서에서 자신을 파멸시킨 것이 김우영이라기보다는 남성위주의 사회제도, 그들에게만 유리한 법률과 여권 부재의 사회인습이었다고말하고 있다.
이 공개장은 사회와 김우영에 대한 나혜석의 분노와 저항 심리였다. 신문, 잡지들은 그녀의 저항과 고독한 생활 변모를 끊임없이 기사화하고 행선지를 추적하여 보도했다. 그녀는 최린에게 1만 2천원의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정까지는 가지 않고 양쪽의 타협을 통해 수천원의 위로금을 받았다. 그 이유는 최린에게 수십 회 정조를 유린당했다고 주장한데 따른 대가성이었다. 이 돈은 자신을 위해 청구한 것이 아니었기에 시인으로서 입산 수도를 하고 있는 김일엽 스님을 통해 절에 시주되었다. 한 때 그녀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수덕사로 찾아가 일엽 스님에게 자신도 승려가 되겠다고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935년 《삼천리》 2월호에 <신생활에 들면서〉를 통해 자식에게 유언 아닌 유언을 남겼다. 일부분을 소개해 보면 "4남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의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느니라" 이 내용을 보면 분명 그녀 스스로는 보수적인 시대적 상황에 희생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 P131

나혜석의 자유주의적이고 저항적인 기질은 이상향에 대한 꿈을 실현하기에는 자신에게 너무도 큰 아픔을 줄 수밖에 없었다. - P1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하미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 책, 표지부터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제목이 아주~ 길고 크고 붉은 강력한 글씨로 쓰여 있고, 중간에 그림인지 글씨인지 모를 것이 검은 색과 파란 색으로 그려져 있다.

책 구입 후 표지를 한참 들여다 봤지만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다. 화산 같기도 하고?? 뭘 그린거지? 무엇을 설명하는 그림이지? 궁금증이 일었다. 프롤로그를 읽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사람이었다. 울고 있는 사람들, 같이 손 잡고 울고 있는 여자들, 연대하고 이해하고 서로 돌보는 여자들.

대학원에서 과학사를 공부한 하미나 작가의 우울증에 대한 이론 공부와 본인의 내밀한 이야기와 30명 가량의 젊은 여성 인터뷰이의 솔직한 이야기가 잘 어우러져 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많은 여자들에게 용기와 위로의 손길을 내미는 책이다. 이제 시작이므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1-17 0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 표지의 그림이 이제야 보이네요. 이해하고 연대하고 돌보는 여자들 좋네요. 보관함에 넣어뒀는데 올해가 가기전에 읽어야겠어요.
 

책에 집을 바치겠습니다

붉은 색 표지에 검은 색 띠지. 서평가 로쟈와 유튜브 겨울서점 김겨울 강력 추천! “책 없이 산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다!”라는 문구가 적힌 띠지를 보고 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전날 구매한 정희진 선생님의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 머리말에 ‘좋은 책을 열심히 소개해도 그 서평이 판매에 끼치는 영향은 많아봤자 열 권 내외’라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서평(여기서는 추천사)보고 책 산 열 명에 해당되시겠다.

자동차가 말을 대체했듯이 전자책이 책을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임을 부인하지 않고, ‘책이 언젠가 내 곁을 떠나게 되면, 잃어버리게 될 것들’에 대해 얘기한다. 독일 작가 특유의 진지함으로. 톰 라비의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에서 느끼는 유쾌함, 위트를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독일인이니깐. 그렇지만,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의 사정과 비교하고 자기만의 책에 얽힌 추억에 빠져들 책이다. 내가 내 소박한 책장을 보며 느끼는 뿌듯함, 행복감에 동의 받는 느낌이다.

아쉬운 점은 작가가 책에서 인용한 책이나 작가가 거의 독일 또는 독일어권이어서 나에게 생소한 그 작가, 그 책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2-01-16 00: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 2022-01-16 12: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들은 보통 서평을 보고 구매하지 않나요?? 아닌가???ㅋㅋㅋ
그럼 나도 그 10 명 중 한 명??
그럼 나머지 8 명은 누굴까요?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01-16 14:23   좋아요 3 | URL
여긴 이상한 나라?? ㅎㅎ

mini74 2022-01-16 17: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에 집을 바치겠습니다 ㅎㅎ 이 문장 넘 웃겨요. 저도 북플님들 서평 보고 주문하는 1인입니다 ~~

햇살과함께 2022-01-16 20:00   좋아요 2 | URL
미니님 집은 이미 책에 바쳐졌을 것 같습니다 ㅎㅎ 저도 믿고 보는 작가분들이나 플친님들 추천 보고 구매를 하기 때문에 저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기도요~

그레이스 2022-01-17 01:30   좋아요 2 | URL
저는 이미 바친듯, 우리 아이들이 사람보다 책이 더 존중받는 집이라고...ㅋㅋ

바람돌이 2022-01-17 01: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 집에서 책에 집을 바쳤다가 책쓰레기더미에서 살았습니다. 별로 쾌적하진 않았어요. 지금은 절대로 이미 가진 책장이상의 책을 사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있다는..... ^^

햇살과함께 2022-01-19 09:11   좋아요 0 | URL
저도 책장을 더 안사려고 아이들 어릴 때 보던 전집을 동생이나 지인에게 넘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