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이 속눈썹에 닿을듯이 가까이 내려왔다. 티끌 하나 없이 푸른 4월의 하늘, 그러나 4월은 잔인한 달, 일 년 열두 달 중 잔인하지 않은 날이 없지만 4월은 그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무섭고 섬뜩하고,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달력을 북 찢어 없애 버리고 싶은 달. - P27

"보아하니 고등학생 같은데 그 나이에 근심이 없다면, 그거야말로 근심해야 할 일이 아니더냐." - P34

"내가 명호를 오해하게 한 것 같네요. 혁명을 꼭 정치적으로만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역사에 남는 혁명은 주로 정치와 관련된 것이지만,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환경을 위해 분리 수거에 앞장서는 것도 혁명이고, 고생하시는 부모님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혁명이고, 친구와 싸운 후 먼저 사과를 하는 것도 혁명입니다. 저는 꿈을 가진 사람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게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혁명은 빨간머리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붉은 피가 만들어지는 바로 여기, 여기에 있습니다." - P50

"엄마가 생각하기엔, 한 번밖에 안 본 왕자님이랑 결혼하는 건 너무 이상해. 성에서 사는 것도 너무 지루할 것 같고, 엄마가 백설공주였다면 난쟁이들 중 한 명이랑 결혼해서 광산 탐험도 하고, 숲 속으로 소풍도 가면서 재미있게 살았을 거야." - P57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야. 내 인생 자체가 항상 이런 거야."
"니 인생이 어때서?"
"거지 같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왜 그런 생각을 해?" - P85

노인이 말했다.
"그런 말들에 흔들릴 것 없다. 누구 하나 제 모습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라. 문제는 다른 사람이 널 어떻게보느냐가 아니라 네가 너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 그거 아니더냐."
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대꾸했다.
"그런 위로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젠 지겨워요.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 다른 사람이 절 난쟁이, 라고 부르면 저는 난쟁이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도사님, 전 만족을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기만 했어도, 이 두 다리가 눈에 띄지만 않아도 좋겠어요." - P97

붉은 진주알 같은 열매들이 옹기종기 달려 있는 나무, 사냥한 무당벌레를 머리에 이고 나무 밑동 굴로 들어가는 개미 떼행렬, 검은 갑옷에 삼지창 집게발을 휘두르며 개미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약탈자, 배고픈 곤충들이 엄마 등처럼 찰싹 달라붙어 있는 소나무 껍질, 솔 냄새로 가득한 숲, 숲에 불어오는바람, 바람을 만드는 하늘, 유유히 흘러가는 양떼구름. - P174

"실패했어."
체의 짧은 한마디에 엄마는 목소리를 낮추어 다시 물었다.
"실패? 뭐가?"
체는 손가락으로 방바닥에 무언가를 그려 가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모든 게…… 가기 전에는 정말 자신만만해서 집으로 돌아올 땐 엄마가 깜짝 놀랄 정도로 변해서 올 생각이 - P231

었는데…… 결국은 다 실패해 버렸어. 이렇게까지 뭔가를 열심히 해 본 건 처음이었는데…… 근데도 하나도 변한 게 없어. 가지 말걸, 합이 하는 말 들을 걸 괜히 고집 피워서 얘까지 고생시키고…… 다 나 때문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안 되는 건데."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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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존재감은 다소 약한 이 영화에서 아버지가 노먼에게 적용한 글쓰기 교육법이 인상적이다. 줄이고 줄여서 써 오라고 반복하여 돌려보내다가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었을 땐 됐다고 하며 "이제버리거라."라고 말한다. 글쓰기의 정법을 죽이라는 말로 들린다. 단호한 그 한마디에 노먼은 지겨운 글쓰기 훈련에서 벗어나 종이를 박박 뭉쳐 구겨선 쓰레기통에 던지고 오후 내내 동생 폴과 함께 대자연의 품에 안겨 논다. "버리거라." 이 말은 머무르지 않고 쉼 없이 흘러가는 강물의 지혜와도 다르지 않다. - P103

마지막 목회에서 아버지는 "완전히 이해할 순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고 설교한다. 이 말은 길게 이어져 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가족 간의 설명할 수 없는 애증에 대한 진언(盡言)이다. 나아가한 사람의 예술가를 향한 헌사, 범신론적인 대자연에 대한 태도이기도 하다. 삶과 예술과 자연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한 저 너머의 세계에서 우리를 부르며 미소 짓는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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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그런 책이 아니다.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 10분 이상이 걸릴 만큼 메모할 구절로 가득하다. 인용하기에 좋은 깊은 사유와 무릎을 치게 만드는 미문(美文)으로 그득하다. 진심으로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출판사의 소개대로 용서의 미덕을 무조건 강조하는 책들과 달리 용서를 경험한 사람들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보여줌으로써 공감을 이끌어내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용서라는 행위의 유동성과 주관성을 보여준다. 깔끔한 처방을 내리기보다는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무처방, 불간섭주의적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 이 책의가장 큰 장점이자 핵심이다. 또한 이 책은 용서 담론의 수많은 국면과 요소를 최대한 포괄하고 있다. - P51

이미 용서를 둘러싼 담론에는 분노나 고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사회는 그러한 상태를 암암리에 ‘극복‘의 대상으로 본다. 용서는 분노보다 우월한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다를 뿐이다.
용서에 대한 나의 입장을 굳이 밝힌다면 나는 용서에 관심이 없다. 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용서라는 말이 싫고 용서의 필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들을 의심한다. 내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용서, 화해, 대화라기보다는 부정의한 사람들과 그들의 행위가 가능한 사회적 조건이다. - P52

C. 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용서가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한다. 정작 자신이 용서할 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1952년은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른 지 불과 7년째 되는 해였는데, 사람들은 만일 루이스 자신이 폴란드인이거나 유대인이라면 게슈타포를 용서하겠냐고 물었다. 그는 즉답을 피했다. 대신 그보다 더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히려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 사람은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 P55

용서의 또 다른 어려움은 사건은 구조적이되(정치학), 용서는 개인의 몫(심리학)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 P56

우리 사회는 ‘해결 매뉴얼‘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피해란 원래 복잡하고 다양하고 모순적인 환경에 놓여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우리의 굳은 몸을 다른 세계로 이동시키고 변환시켰다는 점은 분명하다. - P58

내 생각에 현재 한국 사회의 여성주의는 두 그룹으로 ‘양극화’되어 있다. 온라인의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급진적‘ 여성들과 체제 내화된 일부 여성들로 나뉜 것이다. 여성 운동 단체출신 국회위원 중에서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에 서명한 여성 의원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양극이라고 하지만 두 그룹의 페미니즘 모두 ‘파이가 중요한’, 평등 지향의 자유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유례없는 "난민 반대, 트랜스젠더의 여대 입학 반대" 주장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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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와 나혜석 그리고 까미유 끌로델
정금희 지음 / 재원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나혜석 훑어보기

나혜석 얘기하다 나혜석 궁금해져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급하게 찾아보고 산 책. 나혜석은 요즘 시대 대한민국에 태어났어도 대단한 이슈를 몰고다닐, 사상적으로 너무나 시대를 앞서간, 그 당시로는 정말 파격적일 수 밖에 없는 멋진 인물이다. 나혜석이 쓴 글도 읽어보고싶다. 나혜석의 일생 요약에 덤으로 프라다 칼로와 까미유 끌로델의 일생까지 다시 보기. 디에고 나쁜 시키! 로댕 더 나쁜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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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03 2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디에고 로댕. 이노무 시키들 ㅎㅎ 빵 터졌어요 경희 읽고 독후감 숙제 썼던 기억도 나네요 ~ 이 분 참 아까운 분 ㅠㅠ 프랑스에 그냥 계셨음 어땠을까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ㅠㅠ

햇살과함께 2022-02-03 23:07   좋아요 3 | URL
황정은 작가 따라하기 ㅎㅎ 그 당시 나혜석 소설로 독후감도 쓰셨다니! 전 존재도 몰랐는데..맞아요 한국이 품긴 너무 큰 인물입니다:;;

프레이야 2022-02-07 18: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나혜석 평전 권해 드려요. 좋아하는 화가들 프리다까지요^^

햇살과함께 2022-02-07 21:51   좋아요 0 | URL
평전 추천해 주세요~ 어떤 책이 좋은지 몰라서,, 오프라인 서점에서 좀 찾아봐야겠어요

프레이야 2022-02-07 22:09   좋아요 1 | URL
제가 읽었던 건 한길사 발행 “인간으로 살고 싶다”입니다. 오래된 도서라 있을지 모르겠어요. 더 나은 게 나왔을 수도요. 나혜석의 자화상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강렬하게 눈에 들어왔어요. 프리다 칼로 영화 “프리다”도 추천합니다^^

햇살과함께 2022-02-07 23:17   좋아요 1 | URL
이 책은 품절이네요… 최근 나온 책들 좀더 찾아볼게요 ㅎㅎ 저 프리다 영화는 재밌게 봤어요~! 셀마 해이엑이 생각보다도 너무 잘 어울려서 놀랐던 기억이. 디에고도 똑같고요 ㅎㅎ
 

하지만 까미유의 젊은 어머니는 첫 출산으로 얻은 아들을 잃고 그 애통함과 고통에서쉽게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인이었다. 어머니의 이런 정신적 고통은 까미유 가정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 - P142

부친은 늘 까미유를 이해해 주며 아껴 주었으나 부친과 달리 까미유의 어머니는 유난히 막내 루이즈만을 편애하며 사랑을 주었고 까미유를 싫어하고 미워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어머니와의 생활은 까미유 일생 동안 그녀를 괴롭히게 되며 끝내는 정말 피를 나눈 모녀간일까 싶을 정도로 악연을 계속하며 평생 그녀를 고통 속에서 살게 한다. 까미유는 불행하게도 자신을 이 세상에 나오게 해준 어머니로 인해, 훗날 한 많은 생애의 후반부를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것이다. - P143

부셰는 까미유의 이런 작품들을 주시하며 그녀의 천재성을 읽어냈다. 부셰는 조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음영 대조나 생명력이 까미유의 작품속에 깃들어 있음을 간파한 것이었다. 부셰는 그녀를 미술학교 교장에게 소개시켜 주었고 교장 폴 뒤부아는 까미유의 작품 속에서 저 유명한 로댕의 작품과 유사함을 느끼게 되며, 로댕에게 사사를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던지기조차 하였다. 그러나 당시 어린 까미유는 로댕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상태였다. - P146

로댕은 한편으로 그녀에 대해 무관심한 듯, 때로는 거의 적대적인 것처럼 행동하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집요하게 그녀의 견해나 충고를 열심히도 물어 보곤 했다. 그것은 사랑의 열병이었다. - P150

까미유가 1893년 이전까지 제작한 작품들에서는 로댕의 영향을 받았음이 감지된다. 긴장된 동적인 포즈나, 견고한 형태 속에 숨쉬는 생동감 넘치는기운, 육감적인 인체 처리 등등이 로댕에게서 받은 영감이 들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반면 그녀 역시 로댕에게 관능미를 불어 넣어 준 장본인이었다. 그녀를 알기 전 로댕의 작품은 인체의 준엄함과 박진감 있는 걸음걸이 등 넘치는 힘을 주로 보여주었지만 까미유와 함께 한 후로는 유연한 팔, 다리와 함께 섬세하고, 예민한 육감성이 나타나게 된다. - P175

까미유가 연인에게 배신당한 사람을 주제로 한 청동작품 [중년]을 제작하려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로댕이 정부에 압력을 넣어 주물로 완성하지 못하고 말았다. 로댕은 까미유의 작업에 방해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까미유 일에 계속 관여하면서 그녀가 작품 주문은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로댕의 까미유에 대한 이중적인 행동들이었다. - P176

나는 당신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으로부터 자유가 필요하답니다. … 당신의 충실한 시중꾼 로댕

로댕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편지.. 로댕, 나쁜 시키! - P177

망가져가고 있는 그녀의 영혼은 이제 되돌아 올 수 없는 곳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 P193

강박증세 외 별다른 정신병력을 보이지 않는 까미유는 30여년 동안 내내 감옥같은 정신병원에서 세상으로 나가게 해 달라고 간절한 요청을 했지만끝내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파리에 가까이 위치한 다른 병원으로 옮겨달라는 애원마저도 묵살되어 버렸고 마지막으로 요청한 가족의 방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무서운 형벌을 받았다. 어머니나 여동생은 아예 까미유를 찾아오지 않았다. 반면 남동생 폴만이 간혹 그녀를 방문했다. 그러나그는 많은 시간을 외국에서 보내야 했기에 자주 올 수 없었다. - P194

까미유의 인생을 그렇게 만든 어머니의 잔인한 처사에 대한 의혹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물론 딸을 물질적으로 돌보긴 했으나 그녀는 면회는 고사하고 딸이 편지조차도 쓰거나 받지 못하도록 조처했다. 자신과 폴을 제외한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일체 허용되지 않았다. - P194

훗날 프리다가 말하기를 ‘일생 동안 나는 두 가지 커다란 사고를 당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린 시절 당한 전차 사고이고, 또 하나는 디에고와의 만남이다‘ 라고 술회했다. - P28

그녀는 슬픈 현실을 잊기라도 하듯 더욱 더 작품에 매달렸다. 기법에서도보다 풍부해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예술을 분출하는 영감을 일치시켜 능숙하게 표현했다. 프리다의 작품들은 그녀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나는 직관과 세밀한 통찰력으로 더욱 세련된 기교를 표출하고 있다. - P40

그녀의 침대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고통을 피하기 위한 하나의 피난처였고, 모든 고통을 감내한 인고의 장소였으며, 이에 따라 신성한 장소이기도했다. 그녀의 육체에 생긴 영원한 상처에서 예술의 승화로 이어지게 했던 곳도 바로 이곳 푸른 집이었다. 그곳엔 그녀가 좋아하고 영광으로 생각했던 영웅들의 사진들과 종교적인 인물들이 함께 하고 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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