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이 따로 있다는 논리는 여성과 남성이 태어날 때부터 명확히 구분되고, 성별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며 성차에 따르는 것이사회질서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성소수자는타고난 이분법적 성별과 그에 기반을 둔 성역할 분리가 당연하지 않음을자신의 존재로써 입증한다. 이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성소수자는 낯설고기이하고 불편한 존재다. 성소수자는 전통적인 성역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 부적응자이자 조직생활에 부적합한 노동자, 질서의 교란자로 평가되어 차별과 괴롭힘이 정당화된다. 무급 돌봄노동자 여성과 생계부양자 남성의 결합에 바탕을 둔 이성애적 혼인제도에 편입되지 못하는 성소수자는 공고한 가족제도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진 노동시장에서 저 멀리 밀려나고, 이상적 노동자상에 가닿을 수도 없다. - P84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차별을 "사회적 소수자 개인을 그가 속한 집단과 동일시하여 그 개인 역시 그 집단의 속성을 가졌다는 전제 아래 그 개인을 불리하게 구분하고 배제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정의에서는 차별이 ‘그 집단의 속성‘을 전제하는 데서 시작한다고 보고있다. 특정 집단이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하고 ‘사회적 소수자개인‘도 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집단과 동일시하여 그 사람을 불리하게 구분하고 배제한다는 것이다. - P94

성소수자를 존중하기 시작하면 성수소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우리 애가 저거 보고 동성애자가 되면 어떡해요?"나 "댁의 자식이 동성애자가 돼도 괜찮다는 말인가요?" 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성소수자가 많아지는 것이 성소수자가 주는 피해라는 인식이다. 그런데 성소수자가 되면 어떤가? 성소수자가 늘어나는 데 우려를 보이는 사람은 성소수자가 문제라는 생각을 먼저 가지고 있다. 논리학에서는 이것을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라고 말한다. 자신이 증명하려고 하는 명제(‘성소수자가 문제다’)를 아직 증명하지 않은 채 새로운 주장( ‘성소수자가 늘어나는 것이 문제다’)의 근거로 쓰는 잘못이다. 그리고 성소수자는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닌데, 성소수자가 늘어난다거나 바뀐다고 오해하고 있다. - P100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그 거부감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다른 집단을 향한 혐오로 이어지면 사회적 문제가 따른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자주 접하기 힘든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감정이 크게 드러나지 않다가 성소수자의 존재가 점차 가시화됨에 따라 사회 전체적으로 혐오 분위기가 퍼져가고 특정 종교가 거기에 가세하여 성소수자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특히 성소수자의 ‘익숙하지 않음‘ 또는 ‘자연스럽지 않음‘은 그들을 특이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혐오를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성소수자는 ‘자연의 섭리에 어긋난다‘거나 아이를 낳지 못한다‘거나 하는 이유로 부자연스럽다는 논리다. 철학에서는 자연스러움에서 어떤 규범을 이끌어내는 시도를 ‘자연주의의 오류라고 부른다. 자연스러움은 자연스러움으로 끝나는 것이지 거기서 어떤 옳고 그름을 이끌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태풍, 가뭄, 전염병 따위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를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거꾸로 태풍, 가뭄, 전염병따위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자연의 일에 역행하므로 옳지 않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성소수자는 아이를 낳지 못하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거기서 옳고 그름의 규범을 도출할 수는 없다. 만약 아이를 낳지 못한다고 해서 옳지 않다고 한다면 이 세상의 불임 부부들은 모두 비난을 받아야 한다. 그들에게 혐오를 보내는 것이 마땅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 P110

이들은 100여년 전, 미국 사회와 교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개신교 주류집단이 "인종차별철폐는 동 시대와 사회의 시각일 뿐이고,
성경이 가르치는 하느님의 질서는 인종차별이다"라고 했던 주장을 ‘여성 혐오와 차별‘로 변주하고 있었다. - P122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신은 우리가 낯설게 만든 이들의 얼굴과 삶, 목소리를 통해 다가오신다. 신은 우리에게 그 낯섦으로 질문하신다.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때, 우리는 신의 꿈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교의 신은 ‘너머의 하느님‘ 이다. 신은 항상 우리가 ‘안다‘라고 생각하는 그 너머에 계신다. 그 너머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오늘날 우리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신의 초대가 ‘사랑과 연대, 다양성과 교차성의 길‘로 우리를 이끈다는 것뿐이다. - P130

청소년 성소수자가 가능하다면 자신을 고치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모두를 위해 가장 완벽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다운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부모님한테 커밍아웃을 한 후 사이가 나빠졌다. 엄마는 다운을 "치료" 하려고 교회 수련회에 보내기도 했다. 다운은 이런 불행한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자신도 행복해지고 부모님도 행복해지려면 자신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학교 때 거의 2년 동안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일예배까지 모든 예배를 다 나가보았다. 다른 사람이 모두 떠날때까지 교회에 앉아서 혼자 기도하고 울며 고쳐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고쳐지지 않는 걸 보고 다운은 결론을 내렸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다. 고치려는 사람들이 잘못이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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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염색체를 중시한 법원의 판단은 10년이 지나 뒤집힌다. 2006년 대법원은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정체성에 따라 법적 성별을 정정할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에서 대법원은 "인간의 성은 염색체, 생식기 등 생물학적 요소만이 아닌 정신적·사회적인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2009년 대법원은 위와 유사하게 법적 성별은 남성인 트랜스젠더 여성이 강간 피해를 입은 사건에서 1995년의 경우와는 달리, ‘피해자는 여성이며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법적 성별을 판단하는 기준이 고정되거나 획일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 P19

법 앞에 자신을 인정받기

자신이 인식하는 성별을 법 앞에서 인정받는 것, 그리고 이것이 공적인서류에 반영되는 것은 단지 개인의 불편을 더는 수준의 사안이 아니다.
이는 근본적인 인격권에 관련된 문제다. 작년 10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제3의 성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며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격에 관한 권리는 개인의 인격의 구성 요소인 성별정체성 역시 보호한다. 한 개인이 어떤 성에 속하는가는 그의 정체성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그를 어떻게 여길지에 출발점이 된다. 여기서, 남성에도 속하지 않고,
여성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의 성별정체성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 P25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은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때, 과연 그것이 누구의 안전인가 하는 것이다. 앞서 국가인권위의 조사 결과에서트랜스젠더의 다수가 화장실을 이용할 때 언어폭력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고, 미국 윌리엄스연구소의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가 물리적으로 폭력을 겪는 것으로 집계됐다. 성별분리 화장실은 트랜스젠더 등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결코 안전하지 않은 공간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안전을 중요한 가치로 둔다면 정말 필요한 것은 ‘모두가 안전한 화장실‘이 아닐까?
결국 화장실, 성별분리 자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모두가 안전하고 쾌적한 화장실은 어떠해야 하고, 그곳에서 누구도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 P31

존재에 대한 처벌은 타당한가

구금시설 수용자는 죄를 지었지만 사람이다. 그렇기에 죄에 대한 책임과는 별도로 기본적인 인권은 보장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성별이분법을벗어난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성별에 맞지 않는 수용시설에 강제로 수감되고, 성별정체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처벌‘ 하는 것이다. 존재를 위법하다고 보고 처벌하는 것, 이것이 현재 한국의 구금시설이 성별이분법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대해온 방식이다. 이제는 이를 바꾸기 위한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방책들을 마련해야 한다. - P34

다만 동성애가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에 대한 논쟁과 별도로, 성적 지향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미국소아과학회에서 아래와 같이 명확하게 정리하고 있다.

최신 문헌과 이 분야 대부분의 학자들은 성적 지향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즉 개인은 선택에 의해 동성애자 또는 이성애자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성적 지향은 대개 아동기 초기에 형성된다.

성적 지향은 유전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요소가 함께 작용하여 아동기초기에 형성된다는 설명으로, 스스로의 성적 지향을 인지하게 되는 10대가 되면 이미 개인이 자신의 성적 지향을 선택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 P41

그런 측면에서 ‘HIV 보균자‘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감염인은 제거해야 할 병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을 병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HIV 환자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가족이 경찰에 신고하면 전국에 수배령이 내리는 일이 실제로 발생한다. HIV 감염인은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뿐, 자신의 역사를 가지고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살아가는 존엄한 인간이다. 영어로 감염인을 ‘HIV/AIDS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people living with HIV/AIDS 이라고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당뇨 환자를 ‘당뇨를 가진 사람‘이라고, 조현병 환자를 ‘조현병을 가진 사람‘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동의를 얻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P52

혐오는 쉽다. 가장 약하고 아픈 사람을 욕하면 되니까. 어떤 이들은 HIV감염인에게 ‘네가 잘못해서 걸린 거다. 네 치료에 들어가는 세금이 아깝다‘고 함부로 손가락질한다. 이러한 혐오는 인권과 사회보장의 관점에서 그릇된 태도일 뿐 아니라 상황을 더 악화한다. 혐오와 낙인은 한국의 HIV 신규 감염을 부추기고 더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한국사회의 HIV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첫걸음은 혐오와 사회적 낙인을 거두고 그 바이러스를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것이 HIV감염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지난 30년간 과학적 연구를 통해 인류가 터득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 P53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트랜스젠더가 받는 호르몬요법이나 성전환수술이 개인의 ‘성적 기호‘에 따라 본인이 ‘선택‘한 성별로 살아가기 위해 받는 ‘미용성형‘쯤으로 여겨 굳이 의료적 트랜지션을 국민건강보험으로 보장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곤 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성적 기호가 아닌 트랜스젠더 개인이 겪는 성별위화감 정도에 따라 의료적 트랜지션이 시술된다는 것이다. 최근 의학 전문가들은 의료적 트랜지션이 트랜스젠더가 겪는 성별위화감을 완화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고 필요한 조치라는 점에 합의하고 있다. - P60

‘차별은 나쁘다. 하지만 내게 가까이 오지는 마라.’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하면서 실제로는 도덕성이나 취향의 문제로 우회하여 배척하는 태도, 성소수자가 직면하는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 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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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가 가장 잘 읽히지 않았다. 1부는 주로 몸, 통증, 고통, 용서에 대한 책을 얘기하는데, 정희진 선생님 특유의 머리를 마구 찌르는 질문들에 온통 의문투성이로, 계속 혼란을 느끼며 읽었다. 2,3부는 그 혼돈에 익숙해진 것인지, 폐미니즘에 대한 글이 많아서인지 상대적으로 잘 읽혔지만, 여전히 내 머리 속에 고여있는 가부장적, 권위주의적 생각들을 계속 퍼내고 새로운 의문들을 담아내야 했다(그렇지만 그 의문들의 많은 부분을 이해하기도 힘들다). 정희진 선생님의 책은 그냥 서평 책이 아니다. 계속 나를 파괴하는 힘이 있다.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책에 나온 27권 중에서 이미 읽은 책은 [빨래하는 페미니즘]과 [인 콜드 블러드] 2권이다. [빨래하는 폐미니즘]은 재작년에 읽었는데 다시 읽어보고 싶고, [아내가뭄]과 [페이드 포]가 가장 관심 간다. 물론 계속 언급되는 베티 프리던과 보부아르와 주디스 버틀러 등등을 읽어야 한다는 부채감도(계속 외면 중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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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2-09 17: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페이드 포>강추합니다~♡
여성 스스로 가지고있는 가부장적 편견을 깨는게 쉽지 않은듯해요.
저도 이런 책들 읽고 나서야 그런 부분들이 조금씩 보이고 놀라고...
정희진님의 3부작 읽어봤는데 여기 담긴 책들은 계속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요.ㅠ 덕분에 재찜해갑니다^^*

햇살과함께 2022-02-09 17:40   좋아요 3 | URL
페이드 포, 이 책 미미님 읽는 거 보고도 관심 있었는데^^ 조만간 이 책 사러 동네서점 가야겠어요 ㅎㅎ
 

탈감정은 직접적인 감정이 아니라 재생된 감정이다. 《탈감정사회》는 감정 없는 사회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제조된 가짜 감정들로 충만하고 그러한 감정을 소비하는 사회, 소비재로서 감정, 감정 제조 산업이 제도화된 사회에 대한 고찰이다. - P198

‘군 위안부‘ 역사처럼 여성은 언제나 전쟁 혹은 ‘나라 없는 설움‘의 가장 큰 희생자일까? 인류 역사상 여성이 노동 시장에 가장 적극적으로 진출했던 시기는 여성 운동이 활발했던 때가 아니라 전쟁 때였다. 전쟁에 동원된 남성 노동력을 대신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어떤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국가 간) 전쟁이 끝나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자 집에서 전쟁이 시작됐다." 1990년대 초 소말리아 내전에서 여성들이 전쟁에 자원한 이유는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집보다 밥을 주는 군대가 낫기 때문이었다. 유랑 중인 쿠르드족 여성 운동가는 이렇게 외친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독립 국가가 아니라 민주주의입니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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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여자가 자기를 무시할까 봐 두려워하지만, 여자들은 남자가 자기를 죽일까 봐 두려워한다. - 마거릿 애트우드 - P101

경험은 겪은 것이 아니다. 선택적인 기억이다. 경험은 철저히 정치적인 것이다. 무엇을 잊고, 무엇을 의미화하는가, 내가 겪은 일은 어떤 것인가. 경험은 저절로 기억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이 생길 때 비로소 ‘떠오르고’ 인지되고 해석된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에게는 자기 경험을 바로 볼 수 있는 렌즈가 주어지지 않는다. 남성의 언어가 여성의 삶을 규정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기 경험을 믿지 못한다. 자기가 겪은 일을 남 이야기하듯 말한다. 나도 그랬다. 가부장제는 모든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한다. 가해 남성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자기가 저지른 일을 남의 얘기처럼 말하며 피 - P102

해 여성을 비웃거나 자신과 같은 가해 남성 ‘동료‘를 비난하기도 한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이 겪은 폭력이 훨씬 심각한데도 ‘덜 맞은‘ 여성들을 보며 놀라고 걱정한다. 경험, 몸, 인식의 분리 속에서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 P103

여성이 모르는 남성에게 집 밖에서 죽으면 충격적인 사건이고, 집에서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맞으면 사소한 일인가. 모든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의 원인은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통제다. 그 통제의 장소가 집 밖이면 사회적 충격이고, 집 안이면 사소하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 P105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다.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자기가 치우는 것이다. 자기가 입은 옷은 자기가 빨래하는 것이다.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개인) 미달‘ 이다. 그러므로 ‘주부‘나 ‘아내‘는 정체성도, 직업도, 지위도 될 수 없다. ‘아내가뭄‘은 모두에게 아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반대로 어느 누구도 ‘아내를 가질’ 특권은 없다는 뜻이다. - P113

인간성과 정치 의식의 가장 정확한 바로미터는 ‘집안일‘에 대한 관점과 실천이다. - P114

20세기에 출간된 책 중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과 베티 프리던의 《여성성의 신화》만큼 찬사와 논쟁의 대상이 된 텍스트도 드물 것이다.
특히 《여성성의 신화》는 이론 자체에서 여전히 내파와 여진, 확장과 변태(變態)를 거듭하고 있는 자유주의 사상의 특징을 잘보여준다는 점에서 영원한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근대의 거의 모든 지식 체계가 자유주의의 자장(磁場)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오늘날 이 책을 읽지 않으면 남녀를 불문하고 자신과 사회,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이해할 수 없다. - P115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여성에게 개인화, 시민권을 허용했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성 운동의 ‘대중화‘이다. 현재 한국 여성 운동의 일부가 유례없이 동성애, 트랜스젠더, 난민 혐오적 경향을 보이는 것은 당대 페미니즘이 사회 정의와 연대로서 페미니즘이기보다는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이기 때문이다. - P119

차이가 차별을 낳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특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인간들 간의 의미 있는 혹은 의미 없는) 차이를 생산한다. 저자의 지적과는 반대로 생물학적 성차는 원인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젠더화된 각종 제도적 실천, 법, 감정 노동, 언어, 무의식, 섹슈얼리티 등이 상호 작용하면서 체현된 인간의 몸(social body)의 일부이다. - P129

2권의 부제 ‘왜 인간은 농부가 되었는가?‘는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지적을 하고 있다. "수렵인들은 호전적이고 농경 민족은 평화롭다."는 상식을 뒤집는다. 농사는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겠다는 명백한 의도를 품고 환경을 통제하는 것이며(57쪽), 농업 발달은 인구 증가와 생태계 파괴의 악순환을 가져왔다. 게다가 농업은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는 경제 체제다. 인류 역사에서 농업의 발달과 그로 인한 정착 생활은 영토적(territorial)사고를 기반으로 한 정체성, 폭력, 전쟁, 계급 제도의 시작이었다. 이 책은 홍적세(약 258만~1만 년 전)의 대량 멸종 사건과 후기 구석기인들의 원시 농업의 인과 관계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만(92쪽), 농업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이러한 차원을 넘어선다. 2권은 옮긴이의 지적대로 결국 근대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매우 당대적인 연구로 읽힌다. - P133

내 서평의 목적은 이 책이 널리 읽혀서 성별, 가족, 섹슈얼리티에 대해 한국 사회가 좀 더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집단‘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내가 글을 쓸 때 검열에 덜 시달리고, 조금은 소통이 되었으면 하고, 말이 되는 비판을 받았으면 좋겠다. 책 소개를 인용으로 대신하면 다음과 같다. 괄호 안은 내의견이다. 흥미롭기를 바란다.

"성이 본질적으로 상반된 대립 관계라는 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동물계와 식물계는 두 성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48개의 염색체 중 단 하나만 다른데도, 우리는 48개 전체가 다른 것처럼 행동한다." (29~34쪽, 맞다. 인간은 양성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양성 평등 구호는 자제되어야 한다.) - P141

내가 아는 남성 중에는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관계‘인 경우지 ‘남녀 관계’일 때는 다르다. - P145

캐럴 길리건과 주디스 버틀러는 자주 오해받는 페미니스트 사상가들인데, 이들의 사상을 이렇게 쉽고 분별력 있게 정리한 저자의 지적 역량과 글쓰기 능력이 놀랍다. 길리건은 여성성의 재평가보다는 돌봄 노동의 언어화와 여성적 윤리가 공적영역의 규범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단순한 모성 찬양이 아니다. 길리건은 자신의 논의가 남성다움, 여성다움 운운하는 젠더 문제가 아니라고("This is not gender issue.") 책서두에 못 박았는데도 그녀를 향한 페미니즘 진영 내부의 비판과 남성들의 전유는 여전하다. - P148

내가 생각하는 지식으로서 페미니즘의 가장 큰 매력은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는 점이지만, 페미니즘의 정수는 스스로 내파와 파생을 거듭하는 지식이라는 데 있다. 이 변화는 멈출 수가 없다. 왜냐하면 여성의 현실, 그리고 현실의 운동이 끊임없이 언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 P151

전쟁은 상대편을 절멸하거나 항복시키는 행위다. 그러나 성별에 따라 방식은 다르다. 남성도 죽이고 여성도 죽이지만, 여성을 죽이는 방법은 강간하는 것이다. 강간은 패전국 여성에게 사회적 죽음이고, 전승국에게는 전리품 획득이다. 노동력 착취는 물론이고 강간으로 여성이 적국의 아이를 출산하는 것은 승전국의 영토 확장, 국가 건설을 의미한다.
일본의 한반도 침략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보스니아 내전 같은 형태가 아니었다. 일제의 한국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한반도 현지에서 직접 이루어진 대량 강간 형식보다는 군수품으로 동원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 P168

성매매, 성폭력 제도의 본질적 공통점은 남성의 성은 남성의 몸에서 분리되지 않지만 여성의 성은 여성의 몸에서 분리된다는 점이다. 남성의 성은 남성 개인의 몸에 소속되어 있다. 여성의 성은 여성 자신의 것이 아니라 국가, 가족, 그리고 그녀의소유자인 남성의 자원이거나 상징이다. 남성의 성과 달리 여성의 성은 대상화된다. 유통, 기부, 거래, 순환 등 교환 가치를 지닌다. 남성 간 정치의 매개물이 되거나 강자들의 싸움터(battle - P170

ground)로 제공된다. 우리가 성 상품화, 여성의 대상화라고 부르는 현실이 이것이다. 내가 스스로 팔든 남에게 팔리든, 성매매는 여성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물건(object)이 됨을 의미한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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